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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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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욱: 란숙의 거리두기(시평)
2019년 07월 14일 09시 20분  조회:354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란숙의 거리두기

조영욱

 

조선족 문단의 중견시인 최룡관의 신작시 여섯수는 절제가 잘되여있다. 어떤 숭고한 생각을 내포하고 있지도 않고 쉽게 의도를 드러내보이지도 않는다. 필자는 감상자의 립장에서 이 여섯수 시의 미적 거리에 주목하였다. 

<축구장 별곡>은 ‘축구장의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족 문단의 작가들은 거개가 다 연변축구팬이다. 시인도 례외가 아니기에 이런 시가 나오지 않나 싶다.

아마 화자는 관중석에서 축구장을 내려다보는 시각이다. 키퍼의 움직임을 ‘폴짝폴짝 뛰는 개구리’에 비유하였다. 2행 “무르익은 검은 포도 박스에 넘쳐”라고 한 것은 카트에 담겨있는 축구공을 련상케 한다. 또한 3행 “꽃물결 우-우- 운다”라고 한 것은 상대편을 야유할 때나 심판의 판정을 야유하는듯하다. 축구공을 ‘검은 포도’에 빗댄 것은 아마 정당치 못한 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6행과 맞물린다. “흰 거미 한마리 중심에서 눈을 뒤룩거린다”라고 한 것은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행은 아마 정말로 차유리에 돌을 던진 것 같다. 차유리가 돌을 맞으면 그 모양이 거미줄 같지 않은가? 그래서 5행에는 거미줄이 등장하고 6행에는 거미가 등장하는 것이다. 

이어서 7행에서는 ‘사람들 목에서 찬탄을 뽑아 하늘에 널어’놓았다고 했다. 이는 아마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관중들이 ‘찬탄’하는 것이거나 우리 편이 경기에서 져서 하는 ‘찬탄’ 같다. 그래서 마지막 행에서는 비가 온다. 슬프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이다. 

이 시는 축구장과는 상관이 없는 사물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몽타주기법(montage techinique)을 구사하고 있다.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린다면 몽타주란 이질적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시키는 것인데 이것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존재할 수 없는 사물들을 결합시키거나 사물을 원래의 장소에서 추방시키는 기법이다. 개구리나 포도, 거미 등은 축구장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시는 론리가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따져본 결과 그래도 하나의 구조를 추상적이나마 이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이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거리다.

시인은 새 세기에 들어서 이른바 다다이즘시 혹은 이체시异体诗를 쓰기도 하고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시를 쓰기도 한다. 이러고 보면 그 유명한 리상李箱의 <오감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이 시에서도 보인다. 

<단풍>은 제목에 시적 상관물을 명시해놓고 있지만 아주 난해한 시다. 제목부터 내용과는 반대된다. 

첫 행부터 ‘단풍이 바람을 뿜는다’고 했다. 낯설게 하기는 맞는데 류사성과 린접성을 가진 사물들을 배치하여 혼란을 주게 하는 게 아니다. ‘꽃비가 내리여 강이 된다’고 하다가 갑자기 ‘뽈’이 등장한다. 단풍 얘기를 하다가 ‘빨간 노란 바람’이라고 한 점까지는 알겠는데 ‘사막’이 나오고 ‘뽈’이 나오다가 ‘둥지에 꿀을 채운다’고 했다. 그래서 화자는 모든 것을 해체하고 불확실한 것을 추종하는 해체주의자다. 

<하늘진창에>라는 시는 ‘진창’을 중심으로 시가 전개된다. 진창이라는 것은 땅이 질어서 질퍽질퍽하게 된 곳을 말한다. ‘새는 하늘진창’에, ‘가오리는 바다진창에’, ‘소나무는 바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고 했다. 이 시의 이른바 진구真句는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이다. 이러한 구절은 일반적으로 시의 마지막에 배치되는데 반해 이 시에서는 세번째 행이다. 과연 우연일가? 진창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그 가운데에 있어야 되는 것이다. 이 세번째 행이 바로 이 시의 가운데 행이다. 

‘사람은 관계진창에 빠져서 허우적거린다’라는 것은 요즘 사회의 현상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픔’이다. 화자는 시종 시 안에서 ‘아픔’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고 있다. 그래서 ‘폭풍은 고요의 진창에서 뛰쳐나와 장벽을 짓부시며 달리는 말떼’라고 했다.

<바다>는 어렵다. 

‘나락’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다. 물론 오늘날 현대조선어에서는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화자의 인상 중에서 나락 혹은 지옥은 ‘검푸른’색이다. 화자는 아마 하늘 혹은 하늘과 바다가 보이는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듯하다. 그러나 거기에 ‘나락’이 등장한다. ‘나락’이 출현한 것은 화자가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얄밉게도 날은 아주 화창하다. 손을 벗어난 ‘연’이 보인다는 것은 하늘이 맑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빨간 장미 한송이’가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가 비유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을 가리키고 의도하는 바는 확실치 않다. 단지 ‘나락’, ‘하늘’, ‘가슴’, ‘장미’, ‘연’ 등등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라렬되여있다. 이 이미지들은 어떤 통일성에 따라 배치된 것이라기보다 서로 경쟁하듯이 공간을 차지한다. 그래서 통일성이 없고 원리도 없으며 중심도 없다. 다시 말하면 어떤 중심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른바 환유시처럼 시적 자아의 간섭이나 통제를 배제하여 미적 거리를 무화시킨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중심을 향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화자는 로련한 거리두기를 한다고 할 수 있다. 

시인들은 동년을 시화诗话하기를 즐긴다. <살구꽃 시절>이 그러한듯 보인다. 제목이 그냥 ‘살구꽃’이 아니라 ‘살구꽃 시절’이라고 한 점이 이를 증명하는듯하다. 또한 확실치는 않지만 이 시는 그 유명한 <고향의 봄>의 가사 ‘복숭아꽃 살구꽃’의 그림자도 보인다. 그러나 이 시는 <고향의 봄>과 같은 동시가 아니다.

이 시의 시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행 ‘쌓였네’(과거), 2행 ‘섰네’(현재), 3행 ‘덮었네’(과거), 4행 ‘날리네’(현재), 5행 ‘있네’(현재), 6행 ‘도배하였네’(과거). 

앞서도 언급하였다만 이 시는 동년의 기억과 성년의 감정을 결합하였다. 시는 전체적으로는 기억 즉 과거다. 그 과거 속에 과거가 있고 현재진행형이 있다. 화자는 현재에 서서 이를 성년의 감정으로 맞이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제는 단순화하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이를 더 묶으면 다음과 같다. 과거.현재→과거.현재→현재.과거. 

과거와 현재가 한번씩 엇갈아서 순서 대로 된 것이 아니고 5행과 6행에서 순서가 바뀐 것이다. 이른바 AAB 혹은 ‘같음 같음 다름’인 것이다. 시조의 기본구조가 대개 이러하다는 것을 감안할 때 시조의 영향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용은 살구꽃이 핀 산을 다른 산 우나 중턱에서 바라본 오감도다. 그 하얀 살구꽃이 ‘하얀 눈, 양산(하얀 양산으로 추측됨), 락하산, 하얀 연, 학, 하얀 종이’로 보였다고 화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 동년의 기억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성년의 감정과 결합시켰다. 그럼으로써 일정한 거리두기를 시도하여 성공적으로 오감도식 기법을 구사한듯하다. 다시 말하면 감정의 양식화에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의문이 있다. 학은 10월에 나타나 2월에 사라지는데 왜 4월에 나타난다고 했는지 의문이 든다. 그것도 ‘학이 울다’가 아니라 ‘지저귀다’라고 했다. 지저귀는 것은 참새나 종달새인데 왜 학이 지저귄다고 했을가? 살구꽃이 4월에 피는 것은 맞으나 학은 4월에 보기 힘들다. 4월 살구꽃이 필 때 다른 것을 경험했는데 학에 빗대여 말하고 있는 것일가? 시인의 의도가 궁금하다.

<별무리>도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바로 별이다. 화자는 별 관찰하기를 즐기는듯하다. 별을 오래 관찰하다 보면 류성우流星雨를 보게 된다. 이를 ‘함박눈이 내린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혹은 맑은 날(‘연푸른 밤하늘’) 별이 많을 때를 표현하고 있는듯하기도 하다. 별은 항구적으로 대개 원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만년, 억년’이라 표현하고 있다. 

별을 관찰하는데 별은 ‘강물, 소무리, 국자, 사자, 개발자국, 지렁이’ 등등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가온다. 중국인들은 고대에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리념하에 천문으로부터 대일통大一统을 상상했다. 이러한 경향이 마지막 행으로 표현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화자는 분명 별 관찰하기를 즐긴다. 그러나 그 즐기는 감정을 직접 표출하지 않고 ‘색스폰 연주’라고 객관화하여 표현하였다. 

시인은 시학 리론서를 쓸 만큼 학문적으로도 해박하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도 보다 싶이 로련한 시인답게 거리두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여느 미숙한 시인과는 다르게 이 여섯수의 시에는 ‘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사물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객관화시켜 감성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시종 적절한 거리를 두려고 심혈을 기울였다. 단어를 절제하려고 한 흔적이 력력하다. 이는 이미지들을 폭력적으로 결합하는 몽타주기법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이 여섯수의 시들은 또한 모두 시적 상관물이 명확하다. 제목에 벌써 시적 상관물을 드러내고 있다. 명확한 시적 상관물을 명시하고 있다는 것은 거리두기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시들은 통일된 구조가 있는듯하면서도 탈구조주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 목소리들이 란립하는 것이다.

거리두기를 의식적으로 했든 하지 않았든 중요한 것은 시인이 여러 기법을 동원하여 어떤 시험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인은 1960년대부터 시를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개혁개방 전까지는 당시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거리두기를 지나치게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자기반성을 하면서 여러 시험을 하며 시를 쓰고 시집을 냈다.

이 시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여섯수의 시에서 알 수 있다. 다다이즘, 시조, 천문, 몽타주기법 등등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시를 쓰면서 그 우에 어떤 다른 시도를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선족 시문학의 모방성과 변방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인의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출처:<장백산>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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