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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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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경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평론)
2019년 07월 15일 09시 49분  조회:44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령혼의 메아리

손경란

 

 

숙아, 너는 구름을

                      박장길

산으로 들로

아침 먹으러 가자고

양우리문을 열면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

 

어서 가자 빨리 가자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

 

해가 솟으면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해가 솟으면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

 

굴리는 눈덩이 같이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

 

이 시는 박장길시인의 처녀작으로서 1979년에 창작되여 1980년 8월호 《연변문예》 (지금의 《연변문학》)에 발표되였고 그 이듬해인 1981년에 한어로 번역되여 《민족문학》에 발표되였다. 그러니까 이 시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태여나던 해에 창작된 시이다.

문학작품은 부동한 시대 부동한 독자들에 의해 새롭게 또 다양하게 읽히울 수 있다. 이 또한 문학작품의 생명력이기도 하다. 박장길시인의 <숙아, 너는 구름을> 이란 처녀작은 발표된 시간이 오래된 만큼 아마 많이 읽히웠으리라 믿는다. 39년이란 유구한 세월이 흘러 이 시를 처음 읽어보는 독자로서 필자는 시의 행간에 살아숨쉬는 그 진미와 향기를 느껴보고저 한다. 

이 시는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시 <숙아, 너는 구름을>은 발화체 형식의 제목으로 시작된다. ‘이름짓기’ 문화는 시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바 70, 80년대까지만 해도 ‘숙’자는 우리 민족 녀자들의 이름자에 흔히 애용되던 글자이다. 영숙이, 옥숙이, 경숙이… 등 녀자들의 이름을 쉽게 볼 수 있었으며 략칭하여 ‘숙이’라고 부를 때가 많다. 이렇게 미루어볼 때 ‘숙이’라는 인물은 분명 우리 민족 녀성이다. 이어서 ‘너는 구름을’으로 이어지는 제목은 두개의 시적 대상물인 ‘숙이’와 ‘구름’이 어떤 련관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그 호기심은 곧바로 시의 제1련에서 풀린다. 첫련 “산으로 들로 / 아침 먹으러 가자고 / 양우리문을 열면 / 숙아, 네 구름떼 흘러나온다지”에서 시인은 풀빛으로 물든 산과 들에 방목되고 있는 하얀 양떼들과 하늘의 하얀 구름떼의 류사성을 발견하고 시적 합일을 이루어낸다. 산과 들에 펼쳐진 짙푸른 풀빛, 파아란 하늘빛, 하얀 구름빛과 양떼빛 그 속에 서있는 한 처녀… 그야말로 한폭의 목가적인 풍경화이다. ‘숙이’와 ‘양떼’, ‘하늘’, ‘구름’, ‘산’과 ‘들’… 자연과 인간과 동물이 조화를 이룬 평화로운 세상이다. 이 련에서 사용된 시어들은 사물을 지칭하는 ‘산’과 ‘들’, ‘양우리’, ‘구름떼’ 등 명사적 낱말들로 되여있고 수식어인 ‘푸르다’, ‘하얗다’ 등 색채 형용사가 빠져있기에 오히려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2련 “어서 가자 빨리 가자 / 쨩쨩 채찍소리 울리면 / 하늘의 구름이 내린듯 / 숙아, 네 구름떼 산과 들을 덮는다지”에서 ‘쨩쨩’ 울리는 채찍소리로 청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산과 들을 순식간에 덮어버린 양떼들을 하늘의 흰 구름이 내려앉은 이미지에 비유함으로써 생동한 시각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제3련 “해가 솟으면 / 산을 감았던 안개는 걷히지만 / 해가 솟으면 / 숙아, 네 구름떼는 피여난다지”의 시구를 보면 해가 솟아나는 시점에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은 시작된다. 부지런한 양치기 처녀의 삶은 자연의 리듬과 일치해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삶과 존재의 모델을 시인은 양치기 처녀에게서 발견했던 것이다.  

제4련 “굴리는 눈덩이 같이 / 커만 가는 양떼를 앞세우고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에 들에 가는 /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에서 ‘숙이’의 양떼는 굴리는 눈덩이같이 커져간다. 산과 들에 흘러가면서 하루하루 살찌는 양떼들의 모습이 눈덩이가 굴러가면서 커지는 이미지에 비유되는 이 시구에서는 양치기 처녀의 고생이 결실을 맺어 보람된 로고로 이어지고 있다. 1, 2, 3련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이미지에 풍요로운 이미지가 가미되여 느껴진다. 또한 양치기 처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방목을 멈추지 않는다. 산과 들은 그녀의 삶의 터전이며 그 속에서 ‘숙이’의 충만된 끊이지 않는 하루 일상은 계속된다. 비바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양치기 처녀 ‘숙이’의 정신력과 삶의 자세에 대한 감동과 찬미이다. 자연 속에서 점점 더 강인해지는 그녀의 찬란한 아름다움은 말없이 불타는 생명의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전반 시의 시어 구성을 보면 형용사는 절제하고 동사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 형용사가 사물의 성질, 감각, 색갈, 시간, 수량 등 정지 상태를 표현하는 데 반해서 동사는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력동적인 어휘이다. 동사가 움직이는 선이라면 형용사는 고정되여있는 하나의 점에 불과한 것이다. 각 련에 사용된 ‘열다’, ‘흘러나오다’, ‘가자’, ‘울리다’, ‘덮는다’, ‘피여난다’, ‘앞세우고’ 등 시어들은 양치기 처녀 ‘숙이’의 방목과정을 동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으며 시의 력동성을 더해주어 시가 살아 꿈틀거리며 뛰여가게 하고 날아가게 한다. 

또한 각 련의 마지막 시구는 모두 “숙아, 네 구름떼…”란 반복구로 시적 리듬을 살려내며 음악성을 짙게 한다. 양떼는 구름떼가 되여 흘러나오고 산과 들을 덮고 피여난다. 이렇게 양치기 처녀 ‘숙이’는 “구름을 몰고 있”다. 마지막 시구 “숙아, 너는 구름을 몰고 있구나”란 시적 표현과 함께 구름을 탄 ‘선녀’의 모습이 확연히 안겨온다. 순간 “와!” 하는 감탄이 흘러나오며 독자의 시선은 다시 양치기 처녀와 양떼에 주목된다. 그러면서 “왜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였을가 하는 의문의 여운이 안겨온다. 

양치기는 일명 목자라고도 부른다. 양치기는 소아시아에서 5000여년 전을 시작으로 가장 오래된 직업들 가운데 하나이다. 젖과 양고기, 특히 양털을 위해 양을 길렀다. 이후 수백년에 걸쳐 양과 양치는 일은 유라시아를 통해 퍼져나갔으며 양치기에 대한 이야기 또한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고 양치기는 이야기문학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헤라클레스, 오이디푸스, 다윗 등 인물은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양치기이다. 이 외에도 더 잘 알려진 양치기가 있다. 심심풀이를 하고저 “늑대가 왔다!”라고 거짓말이나 해대는 양치기 소년을 우리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양치기 하면 ‘양치기 소년’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 시는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 ‘숙이’와 그녀의 양떼를 시적 대상으로 표현한 시이다. 양치기 소년이 아닌 양치기 처녀의 등장에 호기심이 더해진다. 우리 민족은 농경민족인 만큼 양치기 처녀의 모습을 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우도 매우 드물다. 때문에 박장길시인의 <숙아, 너는 구름을>에 등장하는 양치기 처녀는 더욱더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정열로 불타는 19살 남자 시인의 감성으로 담아낸 20세기 우리 민족 양치기 처녀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독자들의 가슴에 녹아들고 있다.

시인은 그의 시집 《너라는 역에 도착하다》(2016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 후기에서 《시와 시창작》에 대한 시인의 견해를 피력하는 대목에서 “전통을 타파하지 않으면 거기에 얽매이게 된다. 하지만 전통이 없으면 목동이 없는 양떼와 같고 혁신이 없으면 시체와 같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는바 목동과 양떼가 어우러진 풍경은 이미 시인의 무의식 속에 각인된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녀작이란 첫 시적 체험인 만큼 그의 처녀작 <숙아, 너는 구름을>은 양치기 처녀와 양떼들의 풍경에 매혹된 시인의 령혼의 메아리이다. 

출처:<장백산>2018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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