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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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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왕붓으로 돋을새김할 그 이름들
2019년 07월 16일 11시 07분  조회:511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왕붓으로 돋을새김할  그 이름들

김혁
 

십여년전부터 나는 내 고향 룡정의 력사와 인물을 정리하는 작업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중국조선족문화의 발상지이자 민족의 독립과 반일의 전초였던 룡정에 대한 긍지와 자호감을 머금고 시작한 벅찬 작업이였다.

휴일을 타서 혼자거나 혹은 동인들을 휘동하여 력사전적지 수십여곳을 일일이 답사하고 수백명의 관련 증인, 유가족, 학자들을 찾아 취재한 끝에 50만자에 달하는 장편력사기행 “일송정 높은 솔 해란강 푸른 물”을 집필하여 대형문학지에 3년간 련재를 마쳤다. 그 와중에 한락연이라는 이름과 다시금 만나게 되였다.

비록 예전의 력사총서들에서 한락연에 대해 접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룡정의 대사기, 룡정이 배출한 인걸들의 력사를 세세히 쫓는 가운데서 나는 한락연은 응당 기행문의 한단락으로 쉽게 묘사할 인물이 아니라 대서특필해야 할 인물, 작은 글체로써가 아니라 대문자로 돋을새김해야 할 인물임을 황연대오(恍然大悟) 느끼게 되였다.

한락연, 그를 지칭하는 칭호는 많다. “인민예술가”, “정치활동가”, “반파쑈투사”, “동북지구 공산당의 초기 창시자”, “조선족 첫 공산당원”, “중국의 피카소”… 여러가지 타이틀로 력사의 갈피에 그 이름이 우람하게 적혀있다. 한 사람을 두고 이렇듯 평가가 다채로운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이 그만큼 다채롭다는 방증이다.

이주민의 후예로서 룡정에서 출생한 한락연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의 행동반경은 실로 종횡무진이였다. 세상의 모습을 올곧게 그려내는 한편 그는 그림에만 매달리는 다른 화가와 달리 좁은 화폭안에서 살아가는 화가로 만족하지 않았다.

민족의 독립과 해방의 사명을 짊어지고 거대한 중국대륙을 무대로 혁명투쟁에 혼신을 바쳤으며 국공량당의 통전사업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다. 또한 서역의 문화재 발굴에 선구자적인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락연은 그야말로 예술가로서, 열렬한 사회활동가로서, 굳건한 “력사문물의 지킴이”로서 시대적사명에 충실한 지성인들의 귀감이였다  . 

그 생애에 초연이 피여오르는 력사의 현장에서 수많은 역경을 겪어왔지만 운명의 굴레에 짓눌려 지내지 않고 예술가적 기질을 보이고 실천한 동시에 고매한 혁명가적 기질로 커다란 업적을 남긴 한락연을 통해 우리는 예술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과 고난을 대하는 그의 락관주의적 풍모를 대할수 있을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비록 그가 살았던 세상과는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많은것이 바뀌여버렸지만 그가 보여준 진취적인 삶과 정신만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해본다.

주은래총리가 생전에 “왜 한락연을 위한 전기물이 나오지 않냐”고 애석해했듯이 그에 대한 조명은 여러모로 진행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완정한 인물전의 결여로 그의 생애는 편파적으로 알려져있으며 이로써 커다란 유감을 남기고있었다. 중국에서도 그에 대한 추모문집 한두부가 나왔을뿐이고 해외에서도 그에 대해 조명한 문장이 더러 있으나 겨우 수만자 미만, 몇편 정도의 미비한 량에 그쳐있었다. 

중국조선족의 수많은 인걸들중에서도 혁혁한 인물인 그에 대한 체계적인 인물평전조차도 없다는것은 어찌보면 우리 후세로서는 결례요, 실책이라 말해야 할것이다. 그리하여 한 고향의 위인에 대한 숭모의 감정을 품고 인물전기 집필에 열정을 불살라 착수했다. 

2008년부터 사비를 털어 한락연의 자취를 찾아 심양, 할빈, 치치할, 상해, 중경 등 지역을 답사하였다. 

그를 바탕으로 한락연 관련 신문기사, 인물소개들을 다각적인 쟝르를 동원하여 수차 간행물들에 기고, 발표하였고 《연변일보》 《종합신문》 주간에 그의 인물전기를 8개월간 련재하였다. 그리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한락연 인물전기를 책자로 묶었다. 

한락연이라는 인물에 천착되여 관련 연구를 감행한지도 어언 8년 철이다. 그만큼 힘든 시간, 벅찬 시간들이였다. 그리고 속필을 자랑하는 나였지만 감불생심 평전에 필을 대는 가벼움이나 서두름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한락연의 일대기에 대한 나의 집필은 선인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진지함을 기하는 진행형이라 해야 할것이다. 

 

근년래 우리 문단에서도 뒤미처 인물전기서들의 “보물”이 터진듯하다. 

문학적 감동과 학술적 객관성을 함께 지닌 묵직한 분량의 인물전기들은 침체화, 단일화 경향을 보이던 우리 문단에 새로운 활력소를 주입해주고있다. 품격이 두드러진 인물전기 수작(秀作)을 읽을수 있기를 우리의 출판과 독자들은 바라고있다. 

그에 편승하여 이 십여년동안 나는 한락연외에도 자치주 창립의 산파인 주덕해, 겨레의 창공에 “별”처럼 빛나는 민족시인 윤동주, “조선족문단의 거목” 김학철, 상해와 태항산을 주름잡으며 일제와 싸운 항일녀걸 리화림, 무성영화시대 오렷한 소리와 자취를 남긴 “영화황제” 김염 등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인걸들을 장편소설, 인물평전, 청소년전기 등 픽션과 논픽션물로 재현하는 작업에 몰두하여 관련서적들이 이미 출간되였거나 바야흐로 출간중에 있다. 

수십년동안 매체의 기자와 소설가로서의 삶을 병행해 살았던 나에게 있어 “문학적 다큐멘터리”로 특징지을수 있는 저널리즘적 글쓰기가 남들과 차별화된 나만의 창작성향이라고 말하고싶다.

 

사학자들은 력사란 “인간이 거쳐온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을 말하는 단어”라고 정의하고있다. 력사의 물줄기를 바꾼 개인의 삶을 통해 우리는 한 시대와 만나고 그 시대의 공과를 헤아려볼수 있다. 변화의 시대를 보아내고 넉넉한 삶을 예시하는 새로운 눈을 인물전기들은 갖게 한다. 여기에 인물전의 매력이 있다. 

시대에, 제반 분야에 굵직한 획을 그은 우리의 위인들을 조명하는 작업은 현재 변혁기의 소용돌이에 꺼둘리고있는 민족의 발전과 우리의 삶에 기气를 불어넣고 비젼을 제시하는 좋은 작업으로 될것이라고 나는 믿어의심치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나는 왕붓을 무겁게 고누고 만방에 자호할 우리네 인호(人豪)들의 진영(真影)을 한획, 한자 경필(劲笔)로 그리고있다. 굵다랗게 돋을새김하고있다. 

 

출처:<장백산>2017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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