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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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
2006년 05월 10일 00시 00분  조회:2889  추천:102  작성자: 안병렬
넉넉한 마음

안병렬


마음이 울적하여 훌쩍 집을 나섰다.
두레마을에 가기로 하였다. 원래 “두레마을”이란 한국의 남양주에 있는 농촌 공동체마을에서 출발하였다. 농촌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두레”의 정신을 이어받아 함께더불어 잘 살아가자고 시작한 것이다. 이 운동이 지금 온 세계로 퍼져 있다.

연변의 두레마을은 연길시의 의란진에 있다. 한국의 두레 본부에서 두레의 정신으로 직접 간여하여 꾸리고 있다. 조용한데다 숙박시설이 잘 되어 있고 또 경영하는 분들이 친절하여 더러 가서 쉬곤 하였었다. 전에는 차편이 잘 없어 일부러 택시를 전세 내어 가야만 하였으나 이제는 하루 한 번이지만 가는 버스가 생겨 아주 편리하게 되었다. 버스는 오후 2시 10분에 있었다.

나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버스를 탔다.
큰 버스인데 승객은 20명 안팎이라 널찍하여 좋았다. 두 자리를 겹쳐 차지하고 편안히 앉았다. 마침 그날은 크게 떠드는 분도, 담배 피우는 분도 없어 아주 좋았다. 몸도 마음도 좀 피곤한데다 날씨마저 무더워 나는 오르자마자 곧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를 지났던가? 버스가 어떤 주유소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며 그대로 잤다. 한참 만에 눈을 뜬 나는 깜작 놀라고 말았다. 차 안에 운전사도 안내양도 손님도 아무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차는 앞도 옆도 꽉 막힌 감옥 같은 곳에 멎어 있는 것이다. 놀라서 일어나 차문을 열고 나가려니 문마저 닫혀 있었다. 갑자기 어딘가에 갇혀진 것 같은 감이 들면서 두려움마저 들었다. “開門” “開門” 문을 열어달라고 외치었다.

안내양 - 실은 40이 넘은 부인이었다. - 이 달려와 문을 열어주며 웃었다. 그 웃음이 나를 무척이나 안? ?쳔갼駭? 왜 이렇게 있느냐 하니 차를 잠깐 좀 고친단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주유소가 아니라 정비 공장이었으며 차가 멈춘 곳은 바로 차바퀴 밑으로 들어가 수리하도록 장치된 곳이었다. 그러므로 앞과 옆이 꽉 막힌 공간이었던 것이다.

밖에 나와 보니 차 부속품 같은 것을 갖다 놓고 한창 수리하고 있었다. 이런 줄도 모르고 놀라서 야단친 자신이 좀 쑥스러웠다. 그래 열적게 웃으며 곧 수리되느냐고 하니 “馬上好了” (곧 된다)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수리하는 걸 구경하며 기다리는데 아무래도 곧 될 것 같지를 않았다. 그래 큰 맘 먹고 바쁠 것 없으니 좀 느긋이 기다리자 하였다. 그래 아무리 늦어보아야 한 시간이 더 걸리랴 하며 공장 사무실에 들어가 앉았다.

쇼파에 앉아 다시 잠을 청하였다. 그러나 한번 깨어난 잠이 다시 오지를 않았다. 실컷 쉬었다 생각하고 시계를 보니 벌써 3시 반이나 되었다. 수리를 시작한지 한 시간이 넘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어지간히 되었겠지 하며 나와 보니 아직 그러고 있었다. 아직 멀었느냐고 하니 역시 “馬上好了”(곧 된다)이다. 기가 찼다. 곧 된다는 것이 한 시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 그 대중인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더 이상 따지다가는 한국사람 성급하다는 욕 밖에 더 들으랴? 말없이 공장 밖 큰길가로 나왔다. 행여나 가는 차편이나 만날까 해서였다.

그런데 거기 승객들이 다 모여 앉아 놀고 있었다. 아무도 나처럼 초조해 하는 빛이 없었다. 모두들 태평이었다. 나 역시 하나도 바쁠 것이 없는 터이라 죽치고 앉았다. 그들과 같이 오는 차 가는 차를 구경하며 한가로이 지났다. 그러기를 약 30분쯤 하였을까 이제는 다 되었겠지 하며 일어섰다. 그러나 아직도 그 모양으로 그 부속품에 기름을 바르고 닦고 있었다. 속으로 기가 찼지만 이젠 물어보지도 못하였다. 속으로 짜증만 내었다.

다시 길가로 나왔다. 행여나 같이 갈 사람이 있으면 택시를 전세 내어 가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초조해하는 사람이 없어 입도 못 떼었다. 어떻게 이렇게 태평할 수가 있을까? 대개 농촌 분들이라 집에 가면 일들도 많을 터인데 더구나 부인들은 저녁밥도 지어야 할 텐데 아무도 초조해 하지를 않는 것이다. 초조해 하는 사람은 다만 나 한 사람, 가장 한가한 나뿐인 것이다. 언제 수리가 다 되느냐고 묻는 사람도 나 한 사람뿐이요 수리하는 걸 구경하는 사람도 나 한 사람뿐이었다.

어찌 사람들이 저리도 느긋할 수가 있을까? 아니 그것은 다만 느긋한 것만이 아니라 나아가서 넉넉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초조해 하는가? 나는 사실 아무런 일이 없었다. 다만 늦으면 저녁밥이 좀 걱정이나 그것도 내 가는 걸 알므로 두레마을 가족들이 다 챙기어 놓을 것이다. 그래 정말 나야말로 태평할 수가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럼에도 실상은 가장 초조해 하며 가서 묻고 야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나를 뒤돌아보며 몹시도 부끄러워하는 한 편 저들의 그 넉넉한 마음을 몹시도 부러워하였다.

이윽고 차는 수리가 되었다. 馬上好了(곧 된다) 하던 것이 두 시간이 넘게 걸리었다.
모두들 차를 탔다. 부룽 부룽, 차는 출발을 하였다. 그런데 공장 문 앞에서 차가 다시 서더니 운전수는 다시 내린다. 나는 또 무슨 고장인가 아니면 수리가 잘 못되었는가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운전수는 그저 웃으며 휴대전화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조금도 바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아마 5분은 걸리는 것 같은 긴 통화인데도 손님 누구도 애타하지를 않는다. 그저 웃으며 전화하는 그를 덤덤히 보고만 있다. 참 넉넉한 마음들이라 여겨졌다.
이 장면을 잠깐 한국으로 옮겨 상상하여 보았다. 손님을 어떻게 취급하느냐고 아우성치는 그 살벌한 모습이 보여 눈앞이 아찔하였다. 누가 보는 듯 부끄러워 내 얼굴이 뜨거웠다.

얼마 후 운전수는 환한 얼굴로 차에 올랐다. 차는 수리한 탓인가? 엔진 소리도 맑아 경쾌하게 달리었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잠깐 눈을 뜨는데 차는 두레 마을 들어가는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착각인가 하여 자세히 보았다. 그러나 확실하였다. 차는 벌써 두레마을 안내판을 지나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하여 묻는 나에게 여기 손님 가운데 한 분이 새로 생긴 유원지에 가는데 크게 멀지 않으므로 거기까지 모셔다 드린다는 것이다. 참 할말이 없었다. 두 시간도 넘게 늦었음에도 오히려 부족하여 이렇게 한가하게 다른 나들이를 한다는 말인가? 기가 찼다.

그럼에도 아무도 불평을 않는데 외국인인 나 혼자 야단할 수가 없었다. 그저 참았다.
그러면서도 참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짜증이 났다. 운전수도 너무 하고 승객도 너무 심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nb! sp; 그런 승객이니 운전수도 그렇게 하리라 생각되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니 참으로 느긋하고 넉넉한 마음들이라,

나는 그저 놀랄 뿐이요 부러울 뿐이었다. 얼마를 가다 차는 멈추어 승객 둘을 내리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저 집이라고 운전수가 손짓하고 두 손님은 고맙다고 인사를 한참이나 한다. 그리고는 다시 차를 돌리었다. 그 사이 승객 모두는 그 낯선 손님이 집을 잘 찾았다고 기뻐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참으로 착한 민족, 이들에게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기다리는 그 넉넉한 마음과 더불어 남에게 집을 찾아 주고 기뻐하는 이 따뜻한 마음씨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아. 나는 왜 이리도 마음이 좁은가? 기다릴 줄도 모르고 남의 기쁨을 내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옹졸한 인간인가? 정말 저 마음, 저 자세를 배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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