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부산으로 가는 새마을호 기차간입니다. 더없이 조용한 차안에서 손님들은 창 밖의 한여름 풍경을 감상하거나 신문이나 책을 보거나 혹은 지그시 눈을 감고 낮잠을 즐기거나 하고 있습니다. 참 조용합니다. 기침 소리 하나 말소리 하나 들리지도 않습니다. 혹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남에게 들릴세라 아주 작은 소리로 소곤소곤합니다. 참으로 평화롭고 느긋한 모습입니다. 정말 쾌적한 분위기의 차안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배나 되는 비싼 요금을 내고도 이 차를 타는가 봅니다. 거기에다 시간도 한 시간 이상 단축되므로 돈 좀 있는 분들은 즐겨 이 차를 타는가 보지요.
그런데 이 차가 천안을 겨우 벗어났을까 할 때쯤부터 갑자기 차안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다섯 살 여섯 살쯤 되었을까 여겨지는 두 사내녀석들이 마구 차안을 돌아다니며 야단을 치고 분탕질을 하는 것입니다. 손님들은 모두 못마땅해합니다. 얼굴을 찌프립니다. 그러다 혹 조용히 하라고 말리어도 이놈들은 듣지를 않습니다. 떠들고 엎어지고 자빠지고 마구잡이로 돌아다닙니다.
마침내 어떤 여자 손님이 “이 아이 누구 아이예요? 좀 조용히 시켜요.”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저쪽 한 구석에 앉아 정신없이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30대 중반의 젊은 사나이가 일어나더니 아이를 불러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 옆에다 앉히고는 나가지 말라고 주의를 줍니다. 아이들은 제 아버지 옆에서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 지나자 또 이 사나이는 정신없이 창 밖을 내어다 보고 아이들은 또 몰래 아버지 옆을 빠져 나와 그전처럼 또 마구잡이로 분탕질을 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승객이 다 화가 난 듯한 모습입니다. 모두 못마땅하여 짜증스러워합니다. 마침내 어느 부인이 아이의 아버지를 보고 야단을 칩니다.
“여보, 젊은 양반, 좀 체면이 있어야 하지 않소? 이게 뭐요? 이 아이들 때문에 책을 볼 수 있소? 낮잠을 좀 잘 수 있소? 여기가 당신 집 안방은 아니잖소?” 이 말에 그 사나이는 얼굴이 벌겋게 되어 일어나더니 승객을 향하여 큰절을 하며 “손님 여러분, 대단히 죄송합니다. 실은 이놈들 어미가 어제 제 아버지 생신이라고 부산으로 내려가서 오늘 새벽 부두에 생선회거리 사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지금 급히 가는 길이라 정신이 없습니다. 양해하여 주십시오.” 라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옆에다 앉히었습니다.
이 사나이의 말을 들은 승객들은 모두 숙연하여졌습니다.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침묵이 흘렀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는 하염없이 창 밖을 내어다보고 있고 아이들은 또 몰래 아버지의 품을 떠나 또 뛰어다니며 분탕질을 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도 그 아이를 귀찮게 여기지를 않습니다. 아무도 그 아버지 되는 사나이를 향해 불평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과자를 주기도 합니다. 또 어떤 아주머니는 아예 아이를 안고 재우기도 합니다. 모든 승객이 다 그 아이들을 귀엽게 보는 눈치입니다.
왜 이렇게 변하였습니까? 조금 전까지도 그렇게 귀찮던 아이가 이제 어떻게 이렇게 귀여운 아이가 되었습니까? 그 아이들의 행동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장난을 치고 귀찮게 굽니다. 그럼 무슨 환경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대로 그 차요 그 환경입니다. 바뀐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승객들은 180도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요? 간단합니다. 아이들에 대하여 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아이가 얼마나 불쌍한 아이인가 바로 알고 나니까 측은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찮던 아이가 도리어 귀여워진 것입니다.
알아야 합니다. 상대를 바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여러분, 이곳의 우리 동포들에 대해서도 바로 이해하시길 바랍니다. 얼마나 이해하시고 계십니까?
저는 며칠 전 아주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조선족 청년이 “우리는 계모 밑에서 삽니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말을 듣는 저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실로 그러냐 아니냐 하는 것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은 적어도 그 사람에게만은 사실인 것입니다.
“우리는 계모 밑에서 산다.” 이 얼마나 비참한 표현입니까? 불행한 자기 인식입니까? 이게 이 한 분만의 인식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마는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럼 이 불행한 조선족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며 우리와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들은 옛날 이들의 모국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은 백성들이요 또 지금도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은 조선조 말이나 구 대한제국의 말에, 혹은 일제시대에 가난에 쫓기어 들어와 지금껏 살고 있거나 살고 있는 분들의 후예입니다. 이들은 이곳에 온 후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며 사셨는지 여러분 상상이 안 될 것입니다.
1937년에 이곳으로 왔다는 어느 할머니는 저에게 손을 내어 보이며 자기는 환갑이 될 때까지 손톱을 깎아본 기억이 없다고 합디다. 처음 오신 분들은 청나라 즉 만주족이나 한족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약과였습니다. 곧 이어 들어온 일본사람들은 참으로 못된 짓을 많이 하였습니다. “경신년 대참변”이란 걸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1921년 이들은 우리의 독립군들을 토벌하러 와서는 우리의 양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였습니다. 그때 맞아죽은 우리 동포가 얼마며 불탄 교회가 얼마며 학교가 얼마인지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어떤 마을은 온 마을이 다 잿더미가 된 마을도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윤동주의 모교인 명동학교도 그리고 독립군을 가장 많이 배출한 창동학교도 다 이때 불타버렸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지나다 해방을 맞았습니다. 세계2차대전에 패망한 일본 사람들이 쫓겨 간 것입니다. 그 자리에 소련군이 왔습니다. 이들의 만행도 심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때는 국민당 군과 공산당 간의 내전이 또 치열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곧 중국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것입니다.
조금 안정을 찾는 듯하였으나 1950년에 한국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말하는 이른바 抗美援朝 전쟁이었습니다. 이 전쟁의 피해는 엄청났습니다. 많은 지원군이 나갔습니다.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지금 연변지방에 “골마다 진달래요, 마을마다 열사비”란 말이 있는데 그 열사의 95%가 다 조선족입니다.
그 후에도 “반우파 투쟁”이다, “문화대혁명”이다 하는 엄청난 회오리를 맞았습니다. 이때는 민족이 다 부인되었다고 합니다. 종교도 다 부정되고 심지어는 족보마저 다 불태워야만 하였습니다. 모든 윤리가 짓밟히고 모든 가치관이 전도되는 기간이었습니다. 집단 농장을 아무리 가꾸어도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으며 저녁마다 모택동 어록을 외우고 학습을 하여도 머리에는 무엇 남은 것이 없었다고 합니다.이런 어려움을 견디다 모택동이 죽고 등소평이 정권을 잡아 개혁개방정책을 씀으로 이제는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평성대를 구가할 이 시기에 한국의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잘 산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도 나도 다 돈벌러 한국으로 나갑니다. 이제 온 민족이 다 한국병, 곧 돈 병에 걸리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결코 고맙지만은 않았습니다. 한국은 오히려 이들을 꺼리었습니다.
그들의 모국인 한국은 OECD 선진국에까지 진입하였다고 하나 이들 쫓기어 와서 가난하게 사는 동포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였습니다. 아니 주지 않았습니다. 찾을 생각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오는 것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난날 가난에 쫓기어 외국으로 나간 동포들이 이들만은 아닙니다. 일본으로도 가고 미국으로도 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지금 마음대로 그들의 모국을 찾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국은 그들을 환영하고 심지어는 국적도 주겠다고 합니다. 이중 국적을 가져도 좋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나 구 소련에 있는 동포들은 못 들어오게 합니다.
이에는 갖가지 정치적인 사정이 있는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얼키고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당장 중국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자국민인 조선족의 대한민국 국적회복을 반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 정부에서는 “우리가 해드리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변명을 합니다. “결코 정부가 야박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사정도 하는가 봅디다.
그러면 이분들은 “그럼 정부가 반대하지 않은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호스탄 동포는 왜 못 들어오게 하느냐?” 하면서 뭐라고 말하든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항변을 합니다. 사실 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부자 나라 동포는 오라고 환영하고 우리는 가난하다고 못 들어오게 한다고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다 같은 해외 동포인데 우리에게만 이렇게 야박할 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다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어떻게 되었든 이들이 이렇게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렇게 이들은 버림받은 동포라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자의식이 이들의 가장 큰 비극입니다. 이 비극을 스스로 확인하며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불행합니까? 얼마나 불쌍합니까?
여러 가지 원인으로 하여 어떤 측면으로 볼때 현재의 조선족은 원대한 민족적인 희망을 잃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족적인 비전이 없어요. 그냥 그냥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저 자기 한 몸이나 잘 살아보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사람이 큰 비전을 잃으면 사소한 일에 얽매이게 되고 사소한 일에 얽매이면 결국 사소한 인간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지금 이곳 동포들의 심리상태를 살펴보세요. 자기 한 몸 위한 돈벌이에만 급급하고 있습니다. 어디 큰 비전 있는 사업이 벌어집디까? 너도 나도 모두 돈에만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들에게 국가와 민족에 대한 올바른 자아정립을 하도록 지도하여야 합니다.
이들은 비록 조선민족이지만 엄연한 중국 국민입니다. 이들은 유능한 중국 국민으로 자라 이들의 조국인 중국에 기여하는 민족이 되어야 합니다. 이 엄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한국 국적 운운하며 퇴영적인 사고에 젖어 해매는 동포들의 참상이 참으로 딱합니다.
참으로 이들을 사랑한다면 이들이 이들의 자리, 즉 중국 국민으로 당당히 서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동포로서의 동질성 회복은 좋으나 그게 국적문제로까지 이어지게 유도한다면 이는 우리 동포 사회를 멍들게 하는 가장 큰 독소가 됩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조국이 없는 고아가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들은 이를 모르고 조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 스스로 고아가 되고 영원한 이방인이 되고 있습니다. 고아와 이방인, 참으로 불쌍하지 않습니까?
이모든 문제들은 올바른 자기 인생관을 가지는 데에서 풀어야 할 것입니다만 너무 어렵지요. 이렇게 이분들이 참으로 불행한 분들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분명히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밖에도 조선족에 대하여 올바로 알아야 할 사실들이 참으로 많으나 이만큼 하고 다음 문제로 이러한 이곳 분들을 우리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간단히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이는 간단합니다. 이분들을 생각하는 올바른 시각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앞의 그 새마을호 열차의 승객들처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분들을 잘 알지 못하여 오히려 귀찮아하고 업신여기며 돈 몇 푼 던지고서 대접받기를 원하고 섬기려 하지 않고 부리려 하다가 자꾸 마찰을 일으킵니다. 먼저 이분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이분들이 지난 세기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는지 한번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 보세요. 광복전 만주족과 한족으로부터의 괄시와 일본 사람으로부터의 학대, 그리고 가난으로 인한 서러움을 얼마나 받으며 안고 살아왔는지 또 지금도 얼마나 많이 지니며 살고 있는지 한번 곰곰이 살펴보세요. 그러면 이들을 알게 됩니다.
알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해하면 정이 갑니다. 정이 가면 마음을 얻습니다. 그래야 이곳 분들에게 모국의 정도 느끼게 할 것이요 우리 한 핏줄의 사랑도 알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라고 이런 일 하라고 우리를 이곳에 보내었다고 한번 마음을 넓혀 봅시다.
그리고 이분들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하나를 바꾸셔야 합니다. 무엇인고 하니 이분들을 같은 민족으로 사랑은 하되 같은 국민으로는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국은 대한민국이요 이분들의 조국은 중국입니다. 이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바로 직시하여야 합니다. 한때 이분들에게 한국 국적을 주어야 한다는 운동이 한국에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아무리 국적을 준다고 하여도 이분들이 다 가서 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이분들이 국적을 얻으려는 이유는 돈은 한국에서 벌고 살기는 중국에서 살자는 얄팍한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국적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영원히 한국에서 살라면 다 포기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한국에서 남들이 다 싫어하는 3D업종에 종사하며 그 밑바닥 인생을 자취하겠습니까? 그저 국적 얻어 부담 없이 돈벌어서 나중에는 중국에 와서 살자는 마음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 아니지요? 그러다 이다음 거꾸로 중국의 경제가 앞서고 한국이 가난하여진다면 이들은 또 다시 중국 국적을 요구할 것입니다.
이렇게 이분들은 아직도 자기 정체성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에게 바로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어차피 이분들은 다 중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이곳에서 마음을 다잡고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 가장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분들더러 한국과 중국이 축구 시합을 하거든 진정으로 중국을 응원하여야 한다고 강조를 합니다. 그래야 이들이 이곳에서 주인으로 삽니다. 그렇지 못하고 자꾸 한국으로 기웃거리면 결국 한국인도 중국인도 못되고 불행한 미아가 됩니다. 그러면 중국에서도 누가 진정으로 돌보려 하겠습니까?
과거 이곳 우리 민족은 일제와의 전쟁에서나 공산당 정권 수립 시 국민당과의 싸움에서나 그리고 조선 전쟁에서나 다 혁혁한 공을 세웠고 또 그 우수한 두뇌와 놀라운 교육열로 인하여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자주 한국 바람으로 인하여 좀 이상한 눈초리를 받습니다. 어느 나라가 외국에 가서 이 나라 국민이 되겠다고 아우성치는 국민을 곱게 보겠습니까? 결국 마음만 들뜨게 만들어 자기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처량한 신세가 됩니다. 진정 이분들을 사랑하신다면 이분들이 이곳에서 중국 국민으로 그리고 조선민족으로 떳떳이 살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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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Sejong
날자:2011-11-20 04:46:35
높은 수준으로 요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는것은 우리의 수준이 어느정도 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비상식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들이 이미 우리에게 상식으로 다가왔다는 현실이 가슴이 아프지요. 실제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유태인 청년들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겠다고 참군하러 이스라일로 돌아간다고도 하더군요...과연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올바른 정체성과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것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불쌍하게도 정체성의 혼돈속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조선족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1 작성자 : 류차달
날자:2006-09-25 11:20:29
높은 도덕표준으로 백성들을 요구해서는 안됩니다.백성은 배부른곳으로 가기 마련입니다.중국에서 나간 류학생들이 돌아오지 않는것처럼.학력높고 능력있는 사람들마저 이러는데 백성들이야......방법이라면 안병렬씨가 말한것처럼 조선민족으로 떳떳이 살아야 할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곳을 배부른곳으로 만드는데 정력을 몰부어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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