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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이다.
시골에서 기업을 하시는 분이 잔치를 한다고 우리 부부를 초청을 하면서 차를 보내겠다고 하였다. 고맙다고 하면서 한 분 더 갈 수 있느냐 하니 네 분까지는 된다고 하였다. 나는 이곳에 계시는 선배님 한 분을 모시고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 그분에게 연락을 드리고 같이 놀러가자고 하였다. 그분도 고맙다며 같이 가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 전날부터 허리가 아파 운신이 어려웠다. 1년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오는 병이다. 이럴 경우 침을 맞으며 혹은 안마를 받으며 며칠을 푹 쉬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처럼의 잔치에 어찌 외면할 수가 있으랴? 더구나 나는 외람되게도 그곳의 고문이라는 직함까지도 받아놓고 있는 터이라 안 갈 수가 없었다. 또 다른 분 한분도 초청해 놓은 상태인데 내 어찌 안 갈 수 있으랴?
억지로 일어나 아내와 함께 약속 시간에 약속 장소로 갔다. 선배님도 오셨다. 현지 분 세 분도 그리로 간다며 오셨다. 그러나 차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 차인가 저 차인가 하며 물어 보았다. 아니었다. 짜증이 났다. 30분이나 가까이 지나서야 차가 왔다. 7인용 승합차였다. 낯선 여자 한 분이 안내를 하였다. 나는 선배님을 앞자리에 모셨다. 현지 분 세 분은 뒷자리로 갔다. 나와 아내는 중간 자리에 앉았다. 이러니 안내원이 앉을 자리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 안내하는 분이 아내더러 뒷자리로 가라는 것이다. 아내는 오래 전부터 만성적으로 허리가 아픈지라 뒷자리로는 갈 수가 없다고 하였다. 또 낯선 남자들 사이에 끼이기도 싫었을 것이다. 게다가 뒷자리는 본래 세 사람의 좌석인데 네 사람이 앉기는 몹시 비좁은 것이다. 그렇게 네 사람이 비좁게 타고는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가기는 힘 드는 것이다. 게다가 가는 길은 요즘 확장하느라 마구 파 헤쳐 놓아 차가 많이 비틀 거린다. 또 비포장 길도 있어 덜커덩거리면 허리에 무리가 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허리가 아파 뒤에 앉기는 곤란하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이 안내하는 분이 이번에는 나에게 기어이 뒷자리로 가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이 그리로 가면 되지 않느냐?” 하니 자기는 가다가 내려 돈도 주어야 할 일이 있어 여기 앉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당돌하였다. 이미 이렇게 대접하며 나서는데야 더 이상 다투어 무엇하랴? “그렇습니까?” 하며 내리었다. 아내도 따라 내리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선배님도 내리셨다.
나는 화가 몹시 났다. 세상에 이렇게 사람을 대접하는 법이 있느냐 싶었다. 이 당돌한 여자도 그렇지만 초청하는 분에 대하여 더 섭섭하였다. 안내하는 분에게 뭐라고 하였기에 이렇게 마구잡이로 대하느냐 싶었다. 나의 수준이 이 정도로 대접 받는 수준인가 하니 서글펐다. 내가 뭐 대단한 인물이야 아니지만 그래도 나이 대접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 싶은 것이다. 이 나이에 이 젊은 여자에게 이 무슨 꼴이냐 싶었다. 이왕 초청을 하다면 그래도 최소한의 예우는 있어야 그게 바른 초청이 아닌가 생각 되었다.
생각할수록 화가 더 났다. 씩씩 거리며 걸어오는데 그 고집스럽던 여자가 당황을 하였는지 쫓아오며 잡는다. 자기가 잘못했다며 이렇게 가시면 자기가 사장님께 뭐가 되느냐는 것이다. 낯이 없다는 것이다. 그 말이 더 괘씸하였다. 자기 낯을 제대로 바로 세우려면 우리를 바로 모셔야 하지 않느냐 생각되었던 것이다. 자기는 편한 자리에 편안이 앉으며 손님은 가기 싫은 자리에 앉히어서 학대하면서도 자기 낯을 세우려 든다니 어이가 없어 보였다. 손님은 푸대접으로 모시면서도 낯은 세우려 든다니 염치도 너무 없어 보이는 수작이었다. 대하기도 싫었다. 손을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와버렸다. 조금 뒤 전화가 왔다. 잘못했다며 다시 가잔다. 나는 아직 화가 그대로 남아 이런 대접이 어디 있느냐고 야단을 치며 끊었다.
선배님도 오히려 잘 되었다며 의사를 불러다 침을 놓아 주셨다. 죄송하였다. 공연히 가자고 하여 오시게 하고는 가지도 못하고 또 추태마저 보이었으니 정말 이런 대접이 어디 있던가? 진정으로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렸다. 그러나 선배님은 아니라고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초청하는 분을 나무라기만 하신다. 그럴수록 더 죄송하건만 말만 그저 죄송하다고 할 뿐이었다. 이런 저런 감정으로 마음이 영 편찮았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차차 제 정신이 돌아왔다. 아침의 그 치기(稚氣)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도대체 나의 처신이 잘못 되었던 것이다. 그 안내자의 조그만 실수를 핑계로 큰 일을 그르친 것이다. 그 잔치는 1년에 한 번 있는 귀한 잔치라 어떤 일이 있어도 가서 축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일로 화를 내어 어린 여자를 난처하게 만들고 나아가 초청자까지도 무안하게 만 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잔치에 못 간 것이다. 하기야 뭐 내가 못간다 하여 그 잔치에 무슨 차질이 있거나 또 내가 간다고 하여 그 잔치가 더 빛나거나 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도리는 해야 하는데 그걸 놓친 것이다.
자리 때문에 화가 났다면 그럼 그 차 말고 다른 차라도 타고 가야 하지 않았더냐? 왜 그 생각은 못 하였던지 참으로 답답하였다. 애초 허리로 인하여 가기 싫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얼씨구나 좋다 하고 가지 않았던 게 아니더냐? 내가 비록 이성으로 지각하지는 않았지만 내 무의식에서는 그렇게 작용하였기에 다른 차로 간다고는 상상도 못한 게 아니던가?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상대의 조그만 실수를 빌미로 보다 근본적인 일마저 부정하였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더냐? 그야말로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삼간 태워버리는 격이었던 것이다. 또 초청하는 분도 그냥 모시고 오라고 시켰으면 되었지 뭐 앞자리 뒷자리까지 따져가며 모시고 오라고 할 것까지야 있었으랴? 초청하는 분에게 섭섭하다는 생각은 나의 교만이 아니냐? 생각할수록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또 원망한 상대에 대하여 미안하였다.
진정 내 수준이 이 정도인가?
정말 내가 이렇게도 좁쌀 같은 자잘한 인간이던가?
왜 좀 더 대범하게 처신하지 못하였던가? “그래요?” 하며 뒷 자리로 가서 좀 견디었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게 아니더냐? 그 사이 허리가 아픈들 뭐 그리 대단하였으랴? 어쩌면 끼이게 앉았더라면 덜 아팠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프더라도 좀 참으면 될 일을 이렇게 여러 사람을 난처하게 하다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짓이더냐? 생각하니 스스로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내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후회하는 말을 하였다. 정말 내 수준이 이 정도인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이번엔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경멸스러웠다.
나는 당장 초청하신 분에게 전화를 걸었다. 못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드리려 하였다. 그러나 통화가 되지 않았다. 오후 내내 되지 않고 이튿날도 되지 않았다. 사흘째 되던 날 그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는 우선 못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려는데 그분이 먼저 사과를 한다. 더 죄송하였다. 나는 진정으로 정중하게 사과를 하려는데 통화가 잘 되질 않았다. 잘 들리지도 않고 잡음도 많았던 것이다.
이다음 조용한 기회에 다시 사과를 드리리라. 잔치에 못 가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을 원망하여 미안하다고. 또 그 여자에게도 사과를 하리라. 공연히 화내어 미안하다고. 그리고 모두에게 내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질 않아 부끄럽다고 고백하리라.
自嘲
고희를 넘겼어도
소가지는 그대로라.
어린 여자 데리고선
자리나 다툼하고
이래도
군자연하는
스스로가 가련타.
09.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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