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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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배달민족의 얼 (안병렬)
2010년 10월 25일 09시 39분  조회:3064  추천:51  작성자: 안병렬

끈질기게 이어져 오는 배달민족의 얼



  안병렬



  몽골에서의 일이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야 하는데 나는 중국에 거류증이 있어 입국비자를 받을 필요가 없지만 같이 간 구 선생은 그냥 여행비자로 중국에 오셨기에 또다시 중국 입국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 중국대사관을 찾아갔다.

죽 길게 줄을 지어 문 열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키가 훌쩍 크고 안경을 낀,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몽골여자 같은 분이 왔다. 몽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그 몸 어디선가 품위가 돋보이는 인상이었다. 고상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 뒤에 줄을 서더니 구 선생더러 몇 시냐고 정확한 한국말로, 그것도 서울의 세련된 말로 묻는다. 구 선생과 내가 하는 말을 듣고 한국인임을 안 모양이었다. 구 선생이 9시 조금 넘었다고 대답한다. 한국인인가 여겨 더 이상 괘념하지 않았다. 관광 온 한국인이 더러 있기에 그렇게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이 거기 보초를 선 군인에게 몽고어로 무엇을 묻는다. 그러니 그 군인이 벽에 붙은 안내를 가리키며 뭐라고 대답한다. 아마 왜 아직 문을 열지 않느냐고 묻고 여기 9시 30분에 연다고 쓰여 있지 않느냐고 대답하는 것 같았다. 그러면 이 분은 몽고 사람으로 한국말을 배운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몽골에서도 한국어를 배운 사람들을 간혹 만난 경험이 있기에 그런가 보다 하였다. 그런데 이 분, 이번엔 서양인들이 웃고 떠드는 틈에서 웃으며 뭐라고 한다. 그럼 이분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의문과 함께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 직접 물었다.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데 그렇게 여러 나라 말을 구사하느냐고 하였다.


  그랬더니 웃으며 자기도 어느 나라 사람인지 헷갈린다는 것이다. 자기는 나기는 우즈베키스탄에서 나고 자라기는 몽골에서 자라고 결혼은 영국 사람하고 하였고 지금 살기는 워싱턴이라고 하면서 몽골에 국적이 있으나 미국에 또 시민권이 있어 어느 나라 사람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자기도 모른다는 것이다. 지금 몽골 국민은 중국에 비자 없이 가는데 자기의 경우 몽골 국적자로 인정을 받아 비자 없이 갈 수 있을지 아니면 미국 시민으로 인정을 받아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그걸 물으러 왔다는 것이다. 그 문제는 조금 있다 들어가 물어보면 될 것이므로 나는 우선 궁금한 것을 물어 보았다.


  몽골에서 자라고 미국에서 살므로 몽골말과 영어를 잘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한국어는 어떻게 그리 잘하느냐고 하였다. 이 말에 이분은 긴 설명을 하였다. 이 설명이 나를 감동케 하였다. 한국어는 나면서부터 배웠다는 것이다. 그래 한국어가 자기에게는 가장 모어라는 것이다. 하도 놀라 어쩐 일이냐 하니 자기 외할머니가 한국인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외할머니는 그 부모를 따라 한국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와서 살다 스타린 시대에 강제 이주를 당하여 우즈베키스탄으로 갔는데 그때 어린 소녀였던 외할머니가 따라가 살다 거기서 우즈베키스탄 사람과 결혼하여 자기 어머니를 낳았으므로 어머니는 자연스레 한국어를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어머니는 그곳에 온 몽골 사람과 결혼하여 자기를 낳았는데 자기는 어릴 때부터 자기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하는 한국어를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다 나중 아버지를 따라 아버지의 고향 몽골에 와서 학교를 다녔으므로 몽골어를 배웠고 그러다 커서는 이곳에 온 영국 청년과 만나 결혼하고 미국에 가서 살다보니 영어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남편이 서울에 파견 와서 살게 되어 서강대학교 어학당에 다니면서 한국어를 더 철저히 공부하였다고 하였다. 이번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고 돌아가는 길에 중국에 잠깐 들르려고 이곳 대사관에 왔다고 하였다. 이제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마저 돌아가시니 몽골에 올 일이 없어졌다며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긴 사연을 듣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외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이 딸에게 이어지는 그 연면하고도 끈질긴 한국어의 계주(繼走). 일찍이 어느 분이 여자가 민족을 지킨다며 유태인을 예로 들더니 정말 그 말이 실감나는 것이다. 그 분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가 유태인이면 그 자녀는 꼭 유태인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아버지가 유태인이라도 자녀가 다 유태인이 되는 건 아니란다. 이렇게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져 가는 민족의 얼. 이분의 가정도 그렇게 유태인처럼 배달민족의 얼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 한 줄기 배달민족의 가냘픈 피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록 물어보지는 못하였어도 이분이 또 자기 자녀에게도 한국어를 가르쳤으리라고 상상하여 보았다. 자기가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더 깊이 공부하였다니 그때 자녀에게도 가르쳤으리라 짐작되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끈질기게 이어져 오는 할머니에서 어머니, 그리고 이 딸, 어머니의 민족, 배달민족에 대한 동경, 향수,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 가서 산다. 그러나 한국어를 지키어 자녀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얼마나 되던가? 오히려 영어만 잘하면 된다고 영어만 가르치는 부모가 훨씬 더 많지 않던가? 그리하여 끝내 그 아이들로 하여금 국적 미상의 국제 미아로 만들어 결국 그 자녀들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던가? 이 반민족적인 행위를 저지르는 부모들은 대개가 다 상당한 지식인들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가장 무식한 짓이다. 그 자녀를 출세는 시킬지 몰라도 정서적으로 고향을 잃은 미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은 부모들은 이분의 이야기를 한번 진지하게 경청하여 주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머니에서 어머니로 이어지는 그 가냘픈 핏줄기의 계주를 한번 상상하여 보시길 바란다. 그러나 그 가냘픈 피도 민족을 지키지만 그보다 거기 깃들인 얼이 민족을 지킨다는 사실을 깨닫기 바라는 것이다. 그런데 외국, 특히 서양권에 사시는 당신들은 그 튼튼한 피에 무슨 얼을 심고 있는가? 잘 음미하시며 부디 이분을 생각하여 보시기 거듭 바란다.   

1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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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2 ]

2   작성자 : 서전일송
날자:2010-10-25 13:39:58
난 한족 마누라하고 결혼했는데 마누라한테 한글을 배워 줄려고 하니 기어코 싫단다.휴ㅠ 애한테는 한글 가르치고 싶은데.... 이제 기회가 되면 연변에가서 살아야겟다.음...
1   작성자 : 아,민족
날자:2010-10-25 12: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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