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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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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청춘이 비껴있는 풍경
2024년 03월 09일 06시 14분  조회:639  추천:4  작성자: 방순애
   올해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강떼질 쓰는 듯 싶다. 겨울이 유달리 지리하여 새봄을 기다리는 마음마저 조바심치는데 “기다려, 아직은 아니야!'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 들으면 바야흐로 다가오는 봄의 숨결이 지척에서 들린다. 들에서도 산에서도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 봄이 오는소리, 아직 꽃샘추위가 매정하지만 가까이서 들린다. 봄이 오는 반가운 그 소리…
   그처럼 부드럽고 따뜻해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 있는 봄이 오는 소리, 부르하통하에 굳어져 버렸던 얼음장이 튀는 소리. 은근한 정경을 도심에서 사는 이들은 마음을 쓰지 않으면 미리들을 수도 보아낼 수도 없다. 봄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혹독한 떵떵언 땅속에 동면하던 조그마한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여나와 꿈틀꿈틀 거릴 봄은 내 마음속에 언녕 들어섰다.
   동장군이 싫어싫어 물러간 수천리를 예돌아온 봄은 계절의 선물, 나무가지에 움튼 새싹으로 봄날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물결처럼 흘러가는 나날을 애석하게 보내며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젊은 날을 그리노라면 새삼스럽게 봄날에 대한 애착심이 짙게 된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창가에 등을 비비는 아침햇살을 마주하고 산등성에 걸린 대자연의 풍경을 내다보며 인생마당의 풍경을 련상하게 된다.
  그 풍경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있다. 솔솔 바람이 불다 쏴쏴 큰 바람이 불기도 한다. 상념에 젖어드는 보슬비도 내리고 가슴속을 허비는 비도 내린다. 비바람과 더불어 파도같이 거세차게 마음의 오물도 싹 씻어 버린다. 그 풍경의 색조들은 한편 화려하고 한편 암울하기도 하다.
  철새같은 사람들이 철따라 오가며 노래하고 여름이 되면 매미같은 인연들이 다녀와서 울고 간다. 인생 사계절에서 내가 누리는 여름의 풍경선은 얼마나 긴 걸가? 내가 말하는 풍경의 화려함은 얼마나 지속될가. 풍경속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 같은 젊음이 진한 향기를 풍기고 진하고 끈끈한 생명을 실감하게 해준다. 아울러 쏟아지는 해살속에서 다시 싹이트고 줄기가 뻗어 희망을 딛고 일어 선다.
  그 풍경은 바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멜로디와 그에 실린 목소리이다. 우리 집 라디오는 45년 전에 내가 13살에 떠난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다. 내 기억속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있은 것 같다. 그때는 라디오가 있는 집은 부자로 생각할 정도로 마을에 희소했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비자루를 들고 집마당과 동네 골목길마저 깨끗이 쓸어 놓고는 집에 들어와서 라디오방송을 듣는 것이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앞마당이 깨끗하면 동네분들은 누구 아버지가 집에 있구나고 했다. 라디오 방송소리가 들려오면 꿀잠에 빠졌던 나는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구나!”며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군 했다. 경찰관이였던 아버지는 늘 공무로 출장이 많았었다.
   “여기는 연변인민방송국입니다”하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리게 되며는 또 무슨 소식이 있을가 하고 궁금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조용하기만 하면 들을 수 있는 시사와 노래, 그리고 련속방송극은 우리집의 일상 생활에서 하루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였다.
   아버지가 우리곁을 떠났지만 작은 책궤 위에 덩실하게 앉아 았는 라디오가 아버지의 화신처럼 우리를 굳건히 지켜 주었다. 나는 종이꽃을 이쁘게 만들어 라디오옆에 놓고 늘 올려다 보았다. 아버지를 잃고 슬프고 외로울 때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책상앞에서 손으로 턱을 고이고 방송을 들어가며 프로에 따라서 웃고 울곤했다.
   아침뉴스 시간이 되면 꼭 시사를 듣는데 집식구들 중 누구도 잡담하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듣고 자기나름대로 생각하며 자기 할일을 했다. 매주일가가 울려나오면 모두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신명나 했다.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만끽하며 더없이 즐거워 했다. 70년대초 중학교 다닐 때도 나는 제일 먼저 매주일가를 배워서 반급 애들에게 배워 주었다. 영화 한번 보기 힘들었던 그 세월에 라디오방송극은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문화생활이였다. 어디에 갔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서 라디오를 틀어놓군 하였다. 살며 힘들 때 인생살이에서 좌절을 할때 듣고 싶은 것은 인생의 이런저런 형상들이 재현되는 방송극이다. 극속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어떻게 성공하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냐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지식청년으로 산골에 내려갔을 때나 산골 우전국에서 근무할 때도 라디오방송은 나의 유일한 인생반려였다. 비록 산골에 갇혀 있는 나에게 라디오방송은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매체였고 사회를 알고 도전하고 미래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정신량식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라디오방송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책이 없고 책을 마음대로 사서 볼 수 없는 그 시기에 무지했던 나에게 지식의 바다를 펼쳐주고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그 힘든 세월에 고난을 이겨내고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버팀목이 되여준 라디오방송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젊었을 때에는 라디오방송극의 성우들은 나의 우상이였다. 그토록 심통하게 말할 수 있는 성우들을 한번만 만나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더불어 나누어 주는 모든 가락의 화음이 이미 70년이 지났다. 70년 세월을 건너온 나무에도 봄이왔다. 가지마다 파란잎을 갖고 있어 청춘이 다시 피여난다. 이를 두고 고목봉춘이라고 하는 것인지, 젊은이의 청춘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어서 흥겹지만 늙은 청춘도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지닌 겹겹의 청춘이다. 과거라는 재부가 호수에 가득찬 물결과 같이 출렁이여서 오늘이 있는 것이다. 세찬바람이 휘몰아쳐도 웅장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길게 퍼져나온다. 그 목소리는 우리의 신금을 울리고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청춘을 청춘답게 느끼고 지나온 모든 력사의 기록을 회상하며 과거를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도 새청춘을 맞이하는 뒷받침이 되리라. 청춘이 가고나면 다시는 청춘이 없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몇십번 청춘이 가도 또 오는 청춘은 세월의 언덕에 새기는 청춘으로서 대를 이어 간직할 것이다.
   인생의 화폭은 노력이라는 붓으로 그려진다. 그 풍경은 영원히 청춘을 맞이할 것이고 희망에 넘쳐있을 것이다. 또 보는이, 듣는 이들은 봄을 구가하고 싶어질 것이다.
   잠시나마 자연과 같이 호흡을 하며 명상에 젖어 있다가 깨여난 거리의 률동을 느끼며서 둘러 아침밥을 짓기 시작한다. 인생의 진풍경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으로 한 획 한 획 그려지는 것이다. 인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은 가고 또 오는 사이에 내 생명의 나무에 하나 또 하나의 년륜이 늘어가도 내 청춘시절의 어설픈 랑만과 아픔을 먹고 성숙한 내 청춘은 추억의 저 언덕우에서 색 바랠 줄 모르는 푸름으로 나를 꼬드긴다. 나는 내 기억속의 청춘을 재발견하며 내 인생의 여름을 한껏 무성하게 가꾸리라 가슴을 불태운다.
 
2017년 4기 <<송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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