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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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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천지의 구름을 타고 댓글:  조회:681  추천:4  2024-05-21
   1993년 7월18일, 장백산 천지를 구경하러 간다니 가슴이 얼마나 들먹였는지 모른다. 천년림에 차고 넘치는 신선한 여름의 숨결에 사로 잡힌 마음은 굽이굽이 휘돌아 오르는 산길에서 더욱 부풀어 올랐다.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앞서 마음부터 달리던 동경의 성지 장백산기슭에 도착했다. 고산의 찬기류와 만나 하얀 증기가 피여 오르는 온천은 금황색, 진남색, 은홍색, 비취색으로 물들인 암석과 자갈에서 무수한 기포들이 톡톡 터졌다. 백두신령이 령을 내려 메돼지들과 싸워 상처를 입은 사슴들에게 치료해 주었다는 끓으며 솟아 오르는 온천에서 닭알을 하나씩 먹고 달문을 열고 내려오는 은하수 폭포를 보았다.    폭포가 휘뿌리는 물보라에 칠색무지개가 어리는 것은 변강을 지킨 룡암과 백화의 장렬한 기백과 고매한 넋이 피어 오르기 때문이라 한다. 백룡이 가나래치는 락수소리, 세상에 태여나는 천지의 목소리, 바위에서 떨어져 부셔지는 아픔을 달래며 수십리를 울려 퍼진다. 그 락수의 충격에 폭포 밑 석관이 20여미터 길이나 패여 들어갔다는 못에서 다시 튕겨 오르는 몰보라가 주변의 바위들을 씻어 내린다.     폭포소리는 우렁차다. 온몸을 폭포 물보라에 몸을 적시며 산정의 천지를 바라고 허위단심 비탈길을 톺았다. 그때만 하여도 사람들이 폭포 옆 돌밭으로 올라간 다음 둬 키로미터로 걸어가면 천지물 옆으로 가볼 수 있었다. 나는 폭포수가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심장이 멈춰서는 것 같고 숨이 차 중간에서 반시간 가량 숨들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다 올라가 보이지도 않았다.    나와 심장병환자 류씨만 헐떡 거리며 앉아 있었다. 다시 신들메를 조이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두 시간도 넘게 오르며 걸었다. 심장이 터질세라 헐떡 거리던 거친 숨결도 지친 마음도 어느덧 간데없이 사라지고 “아~ 천지여!”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짙푸른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천지의 물에 손을 넣었다가 너무 손이 차거워 냉큼 꺼냈다. 사변에는 커다란 하얀 벼랑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아득히 멀어져 보이는 천지는 출렁거리는 바다와 같았다. 너무나 웅장하고 품위있는 아름다운 공중호수였다.    옛날, 석달 열흘 동안 옥장천의 샘물을 마신 백장수가 백두산 산마루에 올라가서 삽으로 땅을 파헤치는데 삽이 얼마나 컸던지 한삽을 파내서 던지면 하나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일어섰다. 그가 열여섯 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던졌더니 열여섯개 기봉이 생겨났고 움푹하게 패운 밑바닥에서는 맑은 지하수가 강물처럼 솟구쳐 올라와 웅뎅이를 꽉 채워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천지로 되였다 한다.    하늘의 옥경이라는 호수에 오륙백 높이를 이르는 절벽으로 된 하얀 화구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수정궁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니 하늘 거울에 나의 얼굴을 비쳐본다. 천지의 물을 두손으로 담아 마셔본다. 어찌나 차거운지 잇몸까지 짜릿하다. 손에 천지물을 담아 뿌려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던져 넣었는지 천지 물속에 동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천지물을 물병에 정히 담아 려행가방에 넣었다.     천지의 어귀 물속에서 볼록한 봉우리가 솟아나 있었다. 나는 우리 민족복장을 바꾸어 입고 그 봉우리 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일분 후에 나온 사진을 보니 치마폭을 쪽 펴고 앉은 사진속의 나는 마치 그 넓고 웅장한 천지물 위에 동동 떠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오래전부터 동경해 마지 않았던 이 땅의 성산 장백산에 올라 찍은 사진은 꿈속에 랑만의 풍경이였다.    천지의 주변에 련산련봉들은 만년설을 머리에 떠이고 있었지만 가슴에는 난쟁이 파랭이, 불로초, 각시투구꽃, 두메냉이, 왕백산화를 키우고 있다. 새뿔곰취의 샛노란 자세, 비로용담의 보라빛의 고귀한 용모,야생화들의  보일듯 말듯한 아름다운 미소는 보는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정을 전해준다. 차고 더움(寒暖)의 차가 현저하고 저압의 전후 변동이 심해도 인내심을 키우는 곤층들은 강한 자외선을 피해 작은 돌사이거나 풀뿌리 사이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그들이야 말로 일변화, 시변화 되는 바람과 기온을 달갑게 받으며 환경에 적응하여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연하게 생명을 뽐내는 자연의 섭리, 그 위대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십여센치도 안되는 야생화와 파란 풀들이 한데 어울려져 있는 풍경들은 천지의 팔굽사이에 푹신한 피부를 만들고 있다. 나는 천지의 언덕 넓다란 잔디밭에 누워본다. 나의 피부와 천지 산등성 피부가 밀착되는 순간 천지의 산정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 그 희열감을 오래도록 감수한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덮고 무한한 기쁨속에서 무게있는 시간을 보냈다. "와—포근하다." 잔디풀과 꽃들의 위에 누워 있는 그 행복감은 이루다 형언할 수 없었다. 천지의 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내가 누운 천지 피부 뒤면은 눈으로 싸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량면, 한면은 십여센치미터 되는 풀과 꽃으로 덮인 여름의 풍경이고 뒤면은 겨울을 방불케 하는 엄동설한이였다. 자연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했다.    이튿날, 천지의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 기상대가 있는 천문봉에 올랐다. 마침내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거대한 아침해가 뜬다. 림해의 해돋이는 말그대로 절경이다. 수집은 듯 얼굴을 붉히던 햇님이 반 공중에 떠오르며 금빛 햇살로 나의 몸을 감싼다. 하늘은 어디에 갔는지 없고 엄청나게 큰 진붉은 둥근 해만 나한테 다가왔다. 마치 몇 메터 앞에서 마주 오는 것 같았다. 차츰 나는 햇님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어린애들처럼 두팔을 높이 쳐들고 환성을 올렸다. “오, 우주의 위대한 왕자여!” ”와--- “ 나는 천문봉 곡대기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함성을 질렀다.    햇님은 진붉은 색으로부터 주황색으로, 또 주황색으로부터 노란색으로 변했다. 햇빛을 맞이하는 천지도 변화무쌍하다. 천지만이 가진 절대경의 아름다움, 천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 천지만이 향수할 수 있는 우주공간의 진풍경이였다. 나의 몸은 마치 햇님가슴에 폭 안기는 느낌이였다.  대지를 덮는 듯한 태양의 신성하고 장엄한 모습은 영원히 나의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차츰 멀어져 가는 해님은 천지의 푸른 물결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런데 성산신령의 조화인가? 갑자기 흑룡이 날아 올랐는지 바람이 휙하고 몰아치더니만 하늘도 급시에 어두어진다. 거센 바람에 당장이라도 바람개비처럼 날려 벼랑에 떨어질 것 같아 몸을 비틀거렸다. “안되겠다, 납짝 엎드려야지.”하고 중얼거리며 차디찬 땅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엎드려 박힌 돌이라도 잡자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한 바퀴 뒹굴어 돌이 있는 곳에 와서 돌을 꼭 잡고 바람과 기싸움을 했다. 바람은 이상하게 서쪽에서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룡이 꼬리질 하는 듯이 꼬부랑 거리며 날아 다니며 바다 바람을 몰아다 심술굳게 천지를 괴롭힌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변화된다는 변덕 많은 백두산 날씨를 실감하였다.    이윽고 해맑은 하늘에서 구름떼가 달려온다. 한뜸 몇 미터 앞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마음은 구름속으로 둥둥 떠다닌다. 천지물속에 떨어질가 두렵다.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린다. 구름은 “쉬~ 쉬~”하며 소리를 낸다. 과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듯, 무아에서 다시 자아를 찾으라고 계시를 주는 듯하다    구름속에서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내가 만약 이대로 떠나간다면 어떨까? 살면서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남겼는가? 머리속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한참 지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느새 천지는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지반봉, 백운봉, 옥주봉, 마천우, 제운봉, 백두봉들이 끄떡없이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백 바위들은 하얀 달 같고 하얀 닭과도 같고 사자와 맹호 같기도 하였다.    병풍처럼 빙 둘러싼 바위의 품은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도 같았다. 기상대에서 내려 오면서 바다처럼 펼처진 림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 림해속에서 수도 없이 많은 다종다양한 식물들, 야생동물들이 한데 어울리며 살겠지. 더불어 살아 가면서도 서로 갈등을 빚고 찡내는 우리네 인생현장을 검토해 보게 된다.    우리를 실은 찌프차는 똬리를 편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내리였다. 흑룡이 빠져나갔다는 흑풍구에 도착했다. 흑풍구라고 쓴 계단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니  아닌게 아니라 얼굴을 찢을 듯 바람이 매서웠다. 화벽구로 몰려온 바람이 흑풍구에 집중되여 고속력으로 빠져나온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옷자락이 펄럭인다. 몸이 통채로 날리가 봐 두려웠다. 무서워서 철사슬을 거머쥐고 서지도 못하고 앉아서 사진 한장 겨우 남기고 굴러 떨어지 듯 서둘러 내려왔다.     멀지 않은 산아래 숲속에 하늘나라 칠선녀가 목욕하고 갔다는 소천지가 보였다. 머리 위에 낮게 떠있던 해님은 점점 멀어지고 쪼각 구름이 가끔씩 내려다 보고 웃고 있었다. 흰 벗나무 숲속으로 걷는 심정은 현언할 길 없이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순수한 대자연과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의 극치였다. 진주 같은 이슬을 털며 파란 풀 위에 나의 발자국을 천천히 찍어갔다.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추억의 거리를 새기는 듯,    천지는 들어오는 물줄기 없어도 나가는 물길이 있고 소천지는 들어오는 물줄기 있어도 나가는 물길이 없다고 했다. 전설에 의하면 백두산 속 한 초가집에서 유복자로 태여난 복수라는 젊은이가 흉악하기 그지없어 해를 끼치는 룡을 처치하기 위하여 어릴적부터 힘을 키우고 무예를 닦았다. 용맹무쌍한 힘장사로 된 복수는 룡과 생사판가리 싸움을 벌렸다. 마침내 룡이 기진맥진해 늘어지자 머리 우에 높이 쳐들었다가 천길절벽 밑으로 힘껏 내리 던지였는데 룡이 부딪치면서 벼랑이 두쪼각이 났다. 복수는 바위를 쑥 뽑아내여 룡의 대가리를 지지놀러 놓았는데 그 바위가 바로 지금의 소천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라고 한다. 복수가 바위를 뽑아낸 자리에 물이 가득 고였는데 오늘의 소천지로 되였다고 한다. 소천지에는 들어오는 물줄기만 있고 나가는 물길이 없지만 바위 밑에 깔려있는 룡이 물을 마시기 때문에 물은 시종 붇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설은 전설이로 되 참 재미있다.    계곡의 물은 급류를 이루며 즐겁게 노래부르고 오랜 세월을 헌신해온 조상나무의 그루터기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지면에서 푹 꺼져들어간 절벽 아래 지하삼림은 정말 신기하였다. 또 다른 세상에서 있는 우리가 그 속의 신비함에 궁금해진다. 낮은 계곡에서도 무성하기만한 수목들의 자태가 가슴을 뭉클하 게 한다. 나락에 떨어져도 변함없이 자기의 삶을 착실히 살아 나가는 지하림해가 다시 보였다. 쳐다보면 하늘, 낮은데 굽어보니 골짜기들이 더욱 깊어 보인다.    백두림해를 따라다가 내려오니 내두산이 보였다. 한쌍의 봉우리가 백두녀신의 젖무덤이라고 내두산이라 이름을 지었고 내두산 기슭을 흐르는 물은 백두녀신의 젖이라고 하여 내두하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내두산 주위에 있는 7개의 산봉우리는 괴물들과 싸워이겨 백두산야를 만고 밀림으로 변화시킨 백두 녀신의 일곱 아들의 묘소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일명 칠성봉이라고 한다.    엄마의 봉긋한 가슴 위에 내두와 같은 산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아름드리 종황색 미인송이 쭉쭉 뻗어져 있다. 미인송은 백두의 토질에 천지의 젖을 먹고 자란 백두의 전기를 뿜는 수목의 거두이다. 수림속의 음이온이 코속으로 스며들며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미인송 수림 속으로 걷노라니 문득 영화 “림해설원”에 나오는 양장영의 영상이 떠올랐다. 동년 시절에 본 림해설원의 영웅적 전사들이 토비들을 족치며 넘나들던 이 길을 걷게된 나 자신이 저절로 멋져 보였다.    림간에 지어 놓은 고풍스러운 귀틀 집에서 토닭에 굵직한 황계를 넣어 끓인 닭고기국 냄새가 위를 흥분시켰다. 귀틀 집 남쪽 수림 속에서 장백산 실오리 젖줄기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내물에 머리를 감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건너 달맞이꽃이 마주보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천지의 물줄기가 낳은 만물은 서로 인연이 되여 살아가면서 천만년을 자기들만의 세상을 해석하며 번성하였으리라.       
5    황산례찬 댓글:  조회:526  추천:0  2024-04-15
   황산의 아름다움은 자연의 아름다움이요, 인문의 아름다움이요, 자연과 인문이 융합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황산은 립체의 그림이고 음향과 색채로 이루어진 시이고 사람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는 노래이다.    2009년4월 양주에 전국 모델 양성반에 갔다가 혼자 황산을 가본적이 있다. 아침 일찍이 일어나 나는 강소성 양주에서 절강성 항주를 지나 안회성 황산까지 대형뻐스와 기차를 번갈아 타면서 저녘에 황산 아래 마을에 도착하여 밤을 지냈다. 하루에 3개 성을 지나면서 수많은 도시와 현성들을 보면서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지역마다 다르게 건설된 도시를 보면서 아—이런 곳은 많이 발전했구나 하며 감탄하기도 했다. 아득히 길다란 장강대교를 지날 때 나는 웅위롭고 장엄한 넓은 장강을 보며 격동되였다. 중화민족의 자랑인 장강의 기세가 당당하고 용왕매진하는 것이 세계인들의 찬미와 감탄을 자아냈겠구나 하며 눈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오래도록 보고 또 보았다. 정말 가관이였다.     새벽에 푸름해 황산에 오르느라 떠났다. 나는 황산풍경구 입구에서 벌써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양주 소서호의 아름다운 4월 풍경을 찍은 몇 백장의 사진과 세개 성마다 지나며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다 날려 보내고 허탈한 마음으로 차에 앉아 황산 아래까지 도착하였다.    나의 발로 황산을 밟는 그 마음은 황홀하고 자랑스러웠다. 모든 괴롭던 일들은 어디론가 다 사라지고 상쾌했다. 산어구에 들어서니 가파로은 계단길이 나타났다. 몇십도 각으로 된 가파로운 산길을 톺아오르기 시작했다. 한 미터좌우로 넓은 계단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어찌나 가파로운지 아찔해 났다. 난간을 잡았는데도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높이 천여미터, 이천여 계단을 오르 내려야 하니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높은 산을 톺고 내리고 또 다른 산을 톺아 오르며 고개마다 펼쳐진 기괴한 산의 자연조각들을 보며 소리치며 흥분했다. 마치 천상을 향해 오르는 것 같았다. 아래를 보면 만길 낭떠러지이였다. 봉우리가 기이하고 바위도 기이하고 소나무도 기이하다. 구름아기들은 산 아래에서 감돌고 저 건너 산속에는 안개가 산허리를 감돌며 수영을 하고 있었다.     한 산봉오리에는 체육장 같은 넓다란 노오란 민둥산이 있었다. 말 그대로 황산이였다. 난 그 산꼭대기에 드러누워 파아란 하늘 쳐다보았다. 햇님은 아주 가까이에서 나를 반기고 있었다. 나와 무슨 말을 하려는 걸가. 나는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손오공과 같았다. 아- 얼마나 멋있고 황홀하느냐.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황산은 나를 보고 활짝 웃고 있었다. 힘겹게 산을 돞아 올라와야만 이런 경관을 볼 수 있다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발에 물퉁이 치고 신은 삐죽히 입을 열려 있어도 나는 넋을 잃고 황산의 신과 넉두리 했다. 위대한 자연의 조물주여!     멀리 기이한 산들을 보았다. 원숭이가 운하를 바라 보는 사자봉, 연화봉을 넘어 물고기가 거북이를 업고 있는 오어봉, 하늘 개 달을 보자 사자가 공을 빼앗는다는 보월제봉, 선녀가 거문고를 타는 선녀봉, 신선이 길을 가르친다는 바위봉, 평탄한 암석 우에 우뚝 서있는 작으마한 바위돌은 암석과 바위돌 사이 간격이 아주 작은 비래석은 정말 하늘에서 날아온 것 같았다. 복숭아 같은 선도석,  다람쥐가 하늘 도시를 뛰여넘는 천도봉, 길 떠난 련인을 기다리는 처녀바위, 골팽이 바위도 있고 독수리가 닭을 잡는 바위도 있었다. 신선이 길을 가르친다는 선인지로봉은 그야말로 장관이였다. 이루다 말할 수 없는 경관들이 나의 마음을 격동시켰다.    ‘사랑의 계곡’이라고 하는 비취계곡은 말 그대로 비취빛 물빛을 자랑했다. 계곡은 6키로미터 걸쳐 깊숙히 뻗어 있는데 폭포와 담이 어울려 위대한 정경을 이뤘다. 사랑하는 련인이 만나 거닐었다는 계곡을 보면서 나도 사랑하는 련인과 같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조물주의 놀라운 창조 삼라만상, 그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이 조각한 아름다운 풍경은 정말 입으로 다 말할 수 없었다. 대자연의 위대함을 깨닫게 하는 황산이다. 그래서 명나라 때 지질학자이자 려행가 서하객(徐霞客)은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더는 산이 없구나’고 했고 ‘오악(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을 보고 나면 다른 산이 보이지 않고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오악이 보이지 않는다’고 노래하였겠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사진기를 잃어버렸으니 기념으로 남길 수도 없고 수려한 풍경에 혼자서 소리칠 수도 없이 누구하고도 공유 못하여 속으로 끙끙 거리며 아쉬워 했다.    드디어 황산송인데 도착했다. 나는 부랴부랴 근처에서 돈 25원을 주고 사진을 찍고 커다랗게 사진틀에 넣어 가졌다. 그것마저 없으면 황산 려행에 대한 기록이 없을 것 같았다. 황산송은 황산풍경구 옥빙루의 청사석 옆에 우뚝 솟아 있었다. 해발 1670미터에 산꼭대기에 있다. 나무의 높이는 9.91미터, 둘레의 길이는 2.05미터이다. 땅에서부터 가지까지 2.54미터이고 가지의 중측에서 두 가지로 뻗어나간 길이는7.6미터였다. 어떻게 보면 두 손을 벌려 손님을 맞이하는 것 같아 《영빈송》이라 부른다. 높다란 노란 민둥산 바위 사이에서 하늘를 떠이고 있는《영빈송》은 생장방식이 특이하였다. 흙 하나 없고 수분이 머물 수 없는 암석틈에서 자란 푸른 소나무는 아채기가 다 한쪽 방향으로 향했다. 우뚝 솟은 소나무는 암록색으로 꿋꿋하게 사지를 뻣고 있었다. 얼마나 굉장한가.  800여년을 이 자리를 지키며 넋을 키운 소나무는 생존을 위하여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주어진 삶에 도전을 해야만 하는 소나무이였고 생명의 한계를 깨뜨려 돌파한 엄청난 기적을 창조한 소나무이였다.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강인한 근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의 끈기에 탐복을 했다. 벼랑에서 뿌리내린 강인하고 꿋꿋히 굽히지 않는 정신은 세계를 향하여 황산송의 정신과 풍채를 자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비록 황산의 위대한 자연풍경과 소나무를 카메라에 담지 못했지만 황산소나무의 정신을 내 삶의 좌우명으로 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황산의 모습은 오전의 모습과 달리 또 다른 모습으로 태여나고 있었다. 한시도 같지 않는 모습을 재연하는 황산의 아름다움은 세세대대로 전하며 생의 리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나는 황산 하루려행 손오공이 된 것 같아 기쁘기만 했다.
4    내 청춘이 비껴있는 풍경 댓글:  조회:638  추천:4  2024-03-09
   올해도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강떼질 쓰는 듯 싶다. 겨울이 유달리 지리하여 새봄을 기다리는 마음마저 조바심치는데 “기다려, 아직은 아니야!'하며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가슴으로 들으면 바야흐로 다가오는 봄의 숨결이 지척에서 들린다. 들에서도 산에서도 들리고 보이고 느껴진다. 봄이 오는소리, 아직 꽃샘추위가 매정하지만 가까이서 들린다. 봄이 오는 반가운 그 소리…    그처럼 부드럽고 따뜻해도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 있는 봄이 오는 소리, 부르하통하에 굳어져 버렸던 얼음장이 튀는 소리. 은근한 정경을 도심에서 사는 이들은 마음을 쓰지 않으면 미리들을 수도 보아낼 수도 없다. 봄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혹독한 떵떵언 땅속에 동면하던 조그마한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여나와 꿈틀꿈틀 거릴 봄은 내 마음속에 언녕 들어섰다.    동장군이 싫어싫어 물러간 수천리를 예돌아온 봄은 계절의 선물, 나무가지에 움튼 새싹으로 봄날을 장식하기 시작한다. 물결처럼 흘러가는 나날을 애석하게 보내며 돌이킬 수 없이 지나간 젊은 날을 그리노라면 새삼스럽게 봄날에 대한 애착심이 짙게 된다.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 창가에 등을 비비는 아침햇살을 마주하고 산등성에 걸린 대자연의 풍경을 내다보며 인생마당의 풍경을 련상하게 된다.   그 풍경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있다. 솔솔 바람이 불다 쏴쏴 큰 바람이 불기도 한다. 상념에 젖어드는 보슬비도 내리고 가슴속을 허비는 비도 내린다. 비바람과 더불어 파도같이 거세차게 마음의 오물도 싹 씻어 버린다. 그 풍경의 색조들은 한편 화려하고 한편 암울하기도 하다.   철새같은 사람들이 철따라 오가며 노래하고 여름이 되면 매미같은 인연들이 다녀와서 울고 간다. 인생 사계절에서 내가 누리는 여름의 풍경선은 얼마나 긴 걸가? 내가 말하는 풍경의 화려함은 얼마나 지속될가. 풍경속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 같은 젊음이 진한 향기를 풍기고 진하고 끈끈한 생명을 실감하게 해준다. 아울러 쏟아지는 해살속에서 다시 싹이트고 줄기가 뻗어 희망을 딛고 일어 선다.   그 풍경은 바로 라디오에서 나오는 멜로디와 그에 실린 목소리이다. 우리 집 라디오는 45년 전에 내가 13살에 떠난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다. 내 기억속에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있은 것 같다. 그때는 라디오가 있는 집은 부자로 생각할 정도로 마을에 희소했다. 아버지는 새벽 일찍 일어나 비자루를 들고 집마당과 동네 골목길마저 깨끗이 쓸어 놓고는 집에 들어와서 라디오방송을 듣는 것이 하루일과의 시작이다. 앞마당이 깨끗하면 동네분들은 누구 아버지가 집에 있구나고 했다. 라디오 방송소리가 들려오면 꿀잠에 빠졌던 나는 “아버지가 집에 계시는구나!”며 아버지의 존재를 확인하군 했다. 경찰관이였던 아버지는 늘 공무로 출장이 많았었다.    “여기는 연변인민방송국입니다”하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정하게 들리게 되며는 또 무슨 소식이 있을가 하고 궁금해 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하든지 상관없이 조용하기만 하면 들을 수 있는 시사와 노래, 그리고 련속방송극은 우리집의 일상 생활에서 하루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였다.    아버지가 우리곁을 떠났지만 작은 책궤 위에 덩실하게 앉아 았는 라디오가 아버지의 화신처럼 우리를 굳건히 지켜 주었다. 나는 종이꽃을 이쁘게 만들어 라디오옆에 놓고 늘 올려다 보았다. 아버지를 잃고 슬프고 외로울 때 나는 라디오를 틀어놓고 책상앞에서 손으로 턱을 고이고 방송을 들어가며 프로에 따라서 웃고 울곤했다.    아침뉴스 시간이 되면 꼭 시사를 듣는데 집식구들 중 누구도 잡담하는 사람이 없다. 묵묵히 듣고 자기나름대로 생각하며 자기 할일을 했다. 매주일가가 울려나오면 모두 흥얼흥얼 따라 부르며 신명나 했다. 아침부터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만끽하며 더없이 즐거워 했다. 70년대초 중학교 다닐 때도 나는 제일 먼저 매주일가를 배워서 반급 애들에게 배워 주었다. 영화 한번 보기 힘들었던 그 세월에 라디오방송극은 우리에게 있어서 유일한 문화생활이였다. 어디에 갔다가도 그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서 라디오를 틀어놓군 하였다. 살며 힘들 때 인생살이에서 좌절을 할때 듣고 싶은 것은 인생의 이런저런 형상들이 재현되는 방송극이다. 극속의 주인공들이 어떻게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고 어떻게 성공하는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냐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지식청년으로 산골에 내려갔을 때나 산골 우전국에서 근무할 때도 라디오방송은 나의 유일한 인생반려였다. 비록 산골에 갇혀 있는 나에게 라디오방송은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매체였고 사회를 알고 도전하고 미래를 지향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정신량식을 공급해주는 유일한 통로였다.    라디오방송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은 책이 없고 책을 마음대로 사서 볼 수 없는 그 시기에 무지했던 나에게 지식의 바다를 펼쳐주고 시야를 넓혀 주었다. 그래서 그 힘든 세월에 고난을 이겨내고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 주고 버팀목이 되여준 라디오방송에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다. 젊었을 때에는 라디오방송극의 성우들은 나의 우상이였다. 그토록 심통하게 말할 수 있는 성우들을 한번만 만나봤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더불어 나누어 주는 모든 가락의 화음이 이미 70년이 지났다. 70년 세월을 건너온 나무에도 봄이왔다. 가지마다 파란잎을 갖고 있어 청춘이 다시 피여난다. 이를 두고 고목봉춘이라고 하는 것인지, 젊은이의 청춘은 기쁨으로 가득차 있어서 흥겹지만 늙은 청춘도 기쁨과 슬픔을 아울러지닌 겹겹의 청춘이다. 과거라는 재부가 호수에 가득찬 물결과 같이 출렁이여서 오늘이 있는 것이다. 세찬바람이 휘몰아쳐도 웅장하고 우렁찬 목소리가 길게 퍼져나온다. 그 목소리는 우리의 신금을 울리고 우리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청춘을 청춘답게 느끼고 지나온 모든 력사의 기록을 회상하며 과거를 잊지 않고 되새기는 것도 새청춘을 맞이하는 뒷받침이 되리라. 청춘이 가고나면 다시는 청춘이 없다고 슬퍼할 일이 아니다. 몇십번 청춘이 가도 또 오는 청춘은 세월의 언덕에 새기는 청춘으로서 대를 이어 간직할 것이다.    인생의 화폭은 노력이라는 붓으로 그려진다. 그 풍경은 영원히 청춘을 맞이할 것이고 희망에 넘쳐있을 것이다. 또 보는이, 듣는 이들은 봄을 구가하고 싶어질 것이다.    잠시나마 자연과 같이 호흡을 하며 명상에 젖어 있다가 깨여난 거리의 률동을 느끼며서 둘러 아침밥을 짓기 시작한다. 인생의 진풍경은 이렇게 사소한 일상으로 한 획 한 획 그려지는 것이다. 인생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월은 가고 또 오는 사이에 내 생명의 나무에 하나 또 하나의 년륜이 늘어가도 내 청춘시절의 어설픈 랑만과 아픔을 먹고 성숙한 내 청춘은 추억의 저 언덕우에서 색 바랠 줄 모르는 푸름으로 나를 꼬드긴다. 나는 내 기억속의 청춘을 재발견하며 내 인생의 여름을 한껏 무성하게 가꾸리라 가슴을 불태운다.   2017년 4기  
3    3.8부녀절 댓글:  조회:893  추천:0  2024-03-06
   아침에 일어나 카텐을 제치고 창문을 여니 바깥의 신선한 공기는 피부에 머물던 미지근한 공기를 내 쫓고 새롭게 자리잡는다. 신선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오늘이 3.8절이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 3.8국제로동부녀절은 1908년 세계 녀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지정한 날이다.    나는 한해의 시작을 1월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늘 3.8절로부터 한해를 시작하군 하였다. 3.8절까지 지난해 총결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3월이 되기전부터 녀성들은 3.8절기념을 고대기다린다. 연변사람들이 3.8국제부녀절에 대한 기념활동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거이 몇십년으로 이어져왔다.    지금부터 반세기 지난 1975년 열여덟살 나이에 나는 지식청년으로 두메산꼴 용화공사 고령촌으로 하향을 하였다. 나어린 농촌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지만 그런날들 중 19살때의 3.8절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녀대장직을 맡은지 얼마 안되여 첫 3.8절을 맞이하였다. 부녀절 전날, 나는 생산대에서 준 약간의 경비를 가지고 우수녀성, 우수어머니, 우수시어머니, 우수며느리들에게 드릴 상품과 저녁오락회 기념품을 구매하러 차를 타고 현성에 갔었다. 백화상점에서 세수수건, 비누곽, 치솔, 치약, 작은 그릇, 등 상품을 차곡차곡 사서 준비하였다.    어쩌다 집에 돌아온 나는 모녀간이 만나 그동안에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새벽에 쪽잠이 든것이 그만 아침 여섯시 반 차시간이 다 되여서야 일어나게 되였다. 아침밥도 챙기지 못한채 상품보따리를 들고 허둥지둥 줄달음쳐 뻐스역으로 갔다. 그런데 뻐스는 날 놀리기라도 하듯이 날봐라 하고 앞으로 사라져버렸다. 하루에 한번 밖에 없는 뻐스마저 놓쳤으니 오늘 3.8절을 어떻게 한담? 아침 뻐스를 타면 생산대 마을까지 오전 여덟시면 도착하겠는데. 점심부터 활동하기로 했는데 부녀대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건가?  조금만 더 일찍 서둘렀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걸 하며 나는 선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러댔다. 부녀대장이 되여 처음으로 조직하는 3.8절인데 이런 랑패가 어디 있을가?    현성에서 생산대마을까지 60리길이나 되는데 어떻게 간단 말인가? 아니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나는 가야 한다. 생산대 녀성들이 애타게 기다리겠는데. 60리길, 한시간에 십리길을 걸으면 점심 12반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용기가 없이 무슨 일을 해냐랴. 그래 걸어가자.    나는 상품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배짱있게 걷기 시작하였다. 내가 하향한 생산대 마을은 험한 산꼴에 있는지라 두개의 큰 산령을 넘어야 한다. 험한 산간지 령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파로운지 숨이차 헉헉거리면서도 고생끝에 맛볼 그 기쁨에 포근히 취하는 마음이였다. 산과 들에는 아직 흰눈이 덮여있었다. 가끔 쌀쌀한 바람이 불면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아직은 겨울 한기가 지나지 않은 때라 온몸이 우스스 떨려났다.    갑자기 길에 웬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순간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을 때엔 지난 생각도 해보고 코노래도 흘얼거리면서 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는데 웬 낯선 사람이 뒤를 따르니 식은땀이 쭉 등골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사람일가? 좋은 사람일가? 나쁜 사람일가? 보따리를 팽개쳐버리고 줄달음을 칠가? 온갖 생각들이 감돌면서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지나 나는 드디여 랭정해졌다. 이럴수록 마음을 가다듬어야지.    나는 엎드리며 길옆에서 각이 삐죽이 나온 돌멩이 하나 주어들었다. 만약 저 사람이 나한테 덥쳐든다면 이것으로 머리를 냅다칠 것이다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뒤 돌아보니 그 사람은 다른 길로 가고 없었다. 괜히 제 방귀에 놀라 뛰였구나 하며 픽 웃었다. 다음은 신덕령이다. 나의 속옷은 어느새 땀에 푹 젖었고 묵직한 보따리는 막 쥐여뿌리고 싶도록 밉살스러웠다. 발바닥 여러곳에는 물집이 생겨 신경을 콕콕 찔러 대는데 어찌나 아픈지 오호호 하며 소리내며 걸었다. 배에서도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질렀다. 령이 어찌나 높고 긴지 아무리 걸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생산대 부녀들은 아침차에 올 부녀대장이 오지 못하니 꼭 무슨 일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난리가 났다. 집체호 생활호장님이신 정아주머니께서는 "우리 부녀대장은 무슨 방법을 대서라고 꼭 올것이니 우리는 원 계획대로 명절준비를 잘 해놓고 기다리자"고 부녀들을 호소하였다. 모두들 싸래기 입쌀을 떡가루 내고 가마에 찌면서 정성들여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뽀얀 쪼각달 송편은 부녀대장송편, 큼직한 송편은 권할머니송편, 별난 모양의 송편은 처녀애들 송편하면서 즐거움에 젖어 송편을 빚었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부녀들은 부녀대장이 오지 않을가 몇번씩 밖으로 들락날락했다.    신덕령을 넘자 나는 기진맥진해 한걸음도 딛기 어려웠다. 하지만 생산대녀성들이 애타게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쉴 사이가 없었다. 나는 다시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나머지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음질 쳤다. 땀 절반, 눈물 절반이 흘러 얼굴을 젖시였다. 열한시반을 넘기자 웃음소리로 들끓던 그녀들의 소리는 차츰 가라앉고 모두들 마음을 졸이기 시작하였다. 부녀대장이 안오면 어쩝니까?    열두시 반, 나는 물집투성이인 발을 질질 끌며 마침내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어구에서 진작 목을 쭉 빼들고 동구밖을 바라보고 있던 처녀애들이 “부녀대장이 왔어요!”하며 소리를 치면서 달려오자 집안에 있던 모든 녀성들이 달려나와 나를 에워싸고 “힘들어 어떻게 왔냐?”  “부녀대장이 이렇게 올줄 알았다.”  “ 이렇게 어린나이에 그 험한 산길을 혼자 다녀오다니..쯧쯧” 하며 너도 나도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였고 가슴아파하며 기뻐하였다. 순간 나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녀들인가. 이렇게 나를 믿고 따르는 그녀들, 그리고 항상 농사 일선에서 힘이 되여주시였던 그녀들에 대한 감동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그날 3.8절 기념활동은 그 어느때보다 즐겁고 의미깊에 보냈다.    땡땡 내리쬐는 폭양에도 수건 한장 달랑 머리에 쓰고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연신 손등으로 훔치며 기음을 매던 그녀들, 아무리 힘들어도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우스개를 피우면서 밭머리에서 배를 끌어안고 웃던 그녀들, 힘들때 서로 다독이며 베풀고 힘이 되여주고 흙과 땀의 결실에 웃음 지으며 돈독한 인정을 쌓아가면서 사는 그녀들이 좋았다. 그녀들은 비록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손이 거칠고 손마디마다 단단한 옹이 박혀있었지만 그녀들의 몸에서는 녀성들의 강직하고 근로한 정신이 빛발쳤다. 나는 그런  녀성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그녀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성들로 간주하여 왔다.    서로 부대끼며 살던 세월, 그 간고하고 고난한 시기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믿으면서 살던 시대, 바로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무한한 동력이 되여 나를 앞으로 힘껏 밀어주었다. 생산대 할머니로부터 처녀애들에 이르기까지 찾아볼 수 없는 신뢰와 인정을 밑바탕으로 농사를 지으며 집체호에서 열심히 살아갔던 세월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그토록 힘들어도 모든 것을 이겨내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밑걸음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비록 반세기를 다 지난 오늘에도 녀성들이 3.8부녀절을 고대 기다리는 마음은 모두 모여앉아 지난날의 추억을 끌어내여 즐거움에 젖어 행복을 맛보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 힘들었던 일들을 미련없이 다 지우고 보다 낳은 미래에 대한 갈망일 것인 것 같다. 또한 다가오는 봄빛에 희망이 묻어나는 단꿈을 꾸는 것이라 하겠다
2    산다는 것 댓글:  조회:1309  추천:1  2016-12-23
   어느덧 한해가 다 지나가고 있다. 격변하는 시대라 그에 발맞춰 가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뛰다보니 어느새 일년이 다 지나가 버렸다.    사람은 가끔 스스로 뒤돌아 보며 정리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디까지 걸어왔으며 어느곳에 어떤 자세로 서 있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자기의 삶을 지배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을 년말이면 항상 달고 다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만 일년 내내 어수선하고 흐트러지던 발걸음을 다잡고 곧바르게 걸어가면서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외롭움과 고독, 원망과 분노, 슬품과 괴로움을 하나둘씩 가슴속에서 부리우고 희망과 행복을 향해 자아계발을 해야 한다.    새벽별을 안고 자신을 읽다보면 나 자신이 자기 인생의 예술가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다는 것은 일분일초가 지나갈 때마다 인생의 백지장에 그리는 자화상이다. 그 예술작품이 아름답고 고상하고 품위 있는 작품이 되려면 내가 매일 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어떤일을 하던 관계없다. 그러나 하는 일에 충성을 다 했느냐? 그 일을 하는데 얼마만큼 정열을 쏟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진다.    모든 일에 대한 진심, 사람에 대한 진심에는 아름다움이 담겨져 있다. 그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자체만은 똑 같다. 남에게 신금을 울릴 수 있는 가장 감동적인 것은 모든 일에 대한 진심이다.    세상에는 욕심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다. 새해가 되면 삶의 터전을 잘  닦으려는 욕심이 더 커진다. 시대의 변화가 발바른 변화를 바란다. 바로 행동에 들어가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앉은 자세에서 그저 말로만  할 것인가 아니면 직접 행동에 옮기는가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진다. 잡초에 파뭍혀버린 오솔길에서 삶의 무상함을 볼 수 있듯이 항상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켜 내가 할 일에 정력을 몰붓다 보면 가치가 있는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라태함과 싸워야 한다. 고독을 이겨내야 한다. 뿌옇게 보이는 눈을 싹싹 비벼닦고 세상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눈빛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도전을 해야 한다. 늘 새로운 의식으로 세상과 같이해야 한다. 그러면 산길에서 따뜻한 서정시를 들을 수 있고 도시에서도 향토맛을 느낄 수 있다.    지난해에 꼴지가 되였다 해도 주저할 게 없다. 꼴지는 나로 하여금 새로 시작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사회와 자연과 남들과의 조화로운 만남 속에서 진정으로 살아 있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진정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                                                                          길림신문 2016-12-22
1    문학의 꿈 댓글:  조회:834  추천:0  2015-09-17
                                                           누가 나에게 경찰직을 하던 사람이 무슨 시를 쓸 줄 아느냐  한다면 나는 노력하는 사람과 탐구하는 자에게는 못할 일이 없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어떤시를 쓰는가고 묻는다면 이미지 돌담을 쌓는다고 할 것이다.   우주와 산천, 그리고 심리세계를 누비며 구미에 맞는 돌, 좋은 돌들을 찾아 기초로부터 차곡차곡 쌓아볼 것이다. 아직 기초나 겨우 쌓는 처지이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졌다. 때묻고 거친 돌들을 싹싹 문질러 닦고 터밭의 모서리거나 오솔길 주변을 두루두루 살피면서 머리를 내민 돌들을 주어 보아야 하고 모양도 다르고 소리도 다른 돌들을 캐내려고 쉼없이 발걸음 재촉해야  한다.     신선한 시어들을 모아 매끈한 돌담을 쌓는 것이 나의 문학의 꿈이다. 그 고된꿈을 실현하기 위해 필을 들어 하나하나씩 실천에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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