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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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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추억의 둑덕길에서
2016년 02월 15일 16시 17분  조회:894  추천:0  작성자: shijun
                           추억의 둑덕길에서
 
                                   한 세 준
 
   해종일 빛과 열을 쏟아주던 해가 진한듯 머뭇거리는 황혼의 둔덕길이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추색이 산야를 물들이였는데 알알이 잘 여문 곡식들이 황금빛으로 설레이면서 한해의 풍요로움을 자랑하더니 어느새 농부들의 바쁜 일손으로 수확을 끝낸 빈논벌 두렁위에 잡초만 가을바람에 멋대로 춤춘다.
   푸름을 자랑하던 나무잎새들도 속절없이 색바래여 락엽귀근의 섭리를 말해주는듯 소슬한 바람에 실려 이리저리 흩날린다. 가을은 모두가 떠나가는 계절인가, 느닷없이 허전해지는 마음을 보듬을겸하여 나는 둔덕길옆에 등이 굽어 볼모양없는 참나무에 잠시 기대앉으면 쓸쓸하게 스러져가는 가을풍경에 마음도 싸늘해지는듯, 그래도 서천을 곱게 물들이기 시작한 락조가 아직도 포근함을 안겨주는듯싶다. 저도 모르게 추억의 쪽대문이 열리며 이왕지사가 주마등같이 떠오른다.
   …해마다 봄이 오면 겨우내 잠자던 이 들녘에도 한해 농사차비를 서두르는 농부들의 손길에 논판들이 일변해간다. 신록이 차차 우거지지 시작하는 초여름 모내기준 비를 끝낸 논배미마다 풍년수가 찰찰 넘친다. 물에 잘익은 흙으로 잘 감아놓은 논두렁은 마치 손으로 잘 발라놓은 부뚜막처럼 지극한 정성이 한눈에 안겨온다. 그래서 채 굳기전에 마구 논두렁을 걸어다니기가 송구스러울 정도이다.
    반듯하게 써레질한 논판에 뒤동산의 풍경이 거꾸로 잠겨있어 숲속에서 우는 뻐구기, 꾀꼬리, 산비둘기같은 온갖 새들의 노래소리가가 마치 논판에 비낀 산그림 자속에서 울려오는 느낌이다. 그리고 푸른벼모가 옮겨지기를 조용히 기다리는 논판은 마치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는 시집갈 처녀처럼 안존한 자세로 아름다운 락조를 머금고 조용히 어둠을 받아들인다.
    호도거리농사라 고양이 손도 빌려쓴다는 모내기가 시작되면 일손이 딸리는 집들에서는 모내기방조군들을 청해들인다. 시내에서 온 친척, 친우들중에서 농사에 생뜨 들이 많지만 그래도 논판은 시끌벅적해져서 한결 일할멋이 난다. 마을에서 서로 품 앗이를 하기도 한다. 남정네들은 새벽이슬을 걷어차며 정성껏 자래운 모를 날라다 논 판에 펴놓고 아낙네들은 설겆이도 그냥 밀려둔채 달려나와 찬물속에 발을 잠그고 잽 싼솜씨로 모를 꽂아나가느라 해저무는줄 모른다.
   큰가마밥을 먹다가 호도거리농사에 단맛을 들인 농민들은 누가 시켜서 저리 극성인것이 아니다. 그 무슨 술수나 묘수가 통하지 않는 농토란 지극정성을 쏟아붓는만큼 풍작의 희열을 안겨준다는것을 너무 잘알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일을 해도 맥드는줄 모르고 일손을 재우친다. 이제야 일하며 사는 재미를 체감하게 된것이다.
   새참하는 때는 더구나 향촌의 분위기가 짙어간다. 논밭머리에 실실이 늘어진 수양버들밑에 거적을 펴놓고 끼리끼리 둘러앉아 웃으꽃을 피워가며 새참에 진미를 돋군다. 남정네들은 “빤챈주”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 시원 들큰한 막걸리를 돌리다가 지나가는 이웃들도 불러들여 인정을 나눈다
    마을에 새각씨들도 따로 둘러앉아 된장에 상추쌈을 볼이 미여지게 먹어대면서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 깔깔대는 소리가 밥에 반찬거리로 되고있다. 진수성찬이 별거든가? 배고플때 먹는 쌍추쌈도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수성찬보다 더 맛있다. 옛날 늙 은이들이“이밥이 뼈밥”이라 하였는데 논농사가 힘든것은 사실이니 속이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하루종일 억차게 일해나갈수 있다.
   이렇게 제농사를 제열정을 다내여 하다보니 예전에 한달씩 묵여가며 하던 모내기를 일주일 넘기지 않고 깔끔하게 해낸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모내기를 끝내면 한해농사는  절반 지어놓은 셈이다. 한여름이 되여 잡풀 한포기 없는 말끔한 논판에서 오롯이 자란 벼포기들이 키돋움을 하는것을 보노라면 열병식에 나선 의병대들의 모습마냥 질서정연하고 중의머리처럼 빡빡 깎아놓은 논두렁은 풍년수를 잘 가두고있다.
   풍작의 가을이 오면 벼한대 흘릴세라 논판을 깨끗이 거두어낸다. 알뜰살뜰 가을 걷이를 한 논판에는 벼그루터기만 질서정연하게 자리매김을 할뿐 그 어떤 아쉬움도 남지 않는다. 그런 정경은 눈물겨웁기도 하다. 물도랑옆에 두그루의 버드나무는 사이 좋게 이웃하고 저녁노을을 한몸에 받아안고 서있는 모습도 그렇게 정겨울수 없다. 그 모습은 마치“올농사도 그럭저럭 다 마무리되였네그려!”하며 흐뭇해하는 두 로농들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메마른 숲속에는 방금 저녁세수를 하고 나선 청순한 시골처녀의 얼굴처럼 희고 발그스레한 가을들국화가 듬성듬성 피여있다. 초가을 해지는것에 조바심치며 성급하게 울어대던 풀벌레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지 오랜 앞내가 둔덕 우에 억새풀이 설레임이 각별하게 안겨온다. 그야말로 마지막까지 계절의 대단원을 장식해주는 들꽃이 아닌가싶다.
   억새꽃이 석양을 바래주며 너울거릴때가 가장 가관이다. 억새풀들은 척박하다고 내버려진 자투리 땅에서도 열심히 뿌리를 내리고 씩씩하게, 모질게 자라면서 늦가을 산야를 하얗게 물들인다.  표표하게 나붓기는 억새풀의 은백색 양자를 바라보노라면 여한없는 한생의 마지막 빛남이 무엇인지 알것같으면서 추억의 쪽대문에 문고리가 되여준다.억새는 가을단풍과 함께 가을의 들녘을 아름답게 장식하면서도 단풍이 다 스러져 버린후에도 이 가을을 지켜주는 마지막 파수군으로서 비록 향기는 없어도 늦가을까지 쓸쓸히 피는 향기짙은 들국화를 동무하여 피는 대표적인 가을꽃이다. 그나마도 이런 억새의 정취와 들국화의 마지막 향기로 이 가을을 보내는 작별이 비록 인정이 아닌 계절과의 작별이라고 어쩐지 허전함은 여전하다.
   석양을 등지고 너울대는 저 억새꽃의 담백한 흰물결을 보노라면 옛농가의 긴 빨래줄에 걸려 펄럭이던 하얀 무명필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벼짚을 태워 만든 잿물에 씻고 바래고 또다시 바래서 널어놓은 하얀 무명필에 백의민족녀성들의 깨끗한 마음과 정성이 오롯이 슴배여있다.
   아직도 홍두깨 다듬이질을 하여 옷으로, 시집가는 딸의 첫날이불을 짓기까지 많은 손길이 수요된다. 달밝은 밤 마을길에 굼닐면 불밝은 창홍지를 울리며 밤을 새는 다듬이질소리가 방불히 들리는것같아 본능처럼 귀를 기울여본다. 고부간, 동서간, 혹은 새며느리와 올케간에 마주앉아 맞다듬이질을 하는 소리는 그처럼 가락맞고 절주있는 그윽한 울림으로 가을공기를 가르며 잔잔히 울려퍼진다. 자지러지듯 빠르게, 그 러다가 뚝 멈출듯이 느리다가  다시 크게 작게 이어지는 그 애잔한 리듬속에 우리 녀인들의 희로애락을 담아 혼연일체로 시집살이 애환과 갈등을 조화시키는 소리이다.
   그러나 향촌의 이런 풍경들은 아득한 전설처럼 흘러가버렸다. 개혁개방의 춘풍이 좋은 세월을 실어와서 이젠 먹을걱정, 입을걱정은 거의 사라지고 해마다 더 좋아지리라는 풋풋한 꿈을 안고 뿌리박은 이 터전에서 억척스레 농사짓던 사람들이 허파에 돈바람이 들면서 돈따라 친구따라 도시로, 한국 등 외국으로 가노라고 아무 미련도 없이 내버린 이 마을에 이젠 백발이 성성하고 이빠진 성쌓고 남은 돌이 된 할배할매들만 남았는데 농토가 다 팔리여 마을마저 길가에 떨어진 락엽처럼 어느 바람에 산지사방으로 흩날려갈지 오리무중인 처지에 놓여있다. 향촌의 소야곡같이 귀맛좋게 들리던 다듬이질소리는 전설처럼 되여버리고 길손을 보고 한족집에 발바리가 콩콩거리는 소리가 귀전을 어지럽힌다.
   백여년 개척사를 기록하고 있는 유서깊은 이 늪득마을도 인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듯싶다. 기름진 문전옥답, 뒤동산과수원에 향촌풍경에는 너무 이색적인 호화별장들과 고충아빠트단지들이 들어서서 도무지 눈에 설기만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만 일년새에 후딱 변해버린 고향땅, 농토를 잃은 향촌마을이란 상상할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듯 열심히들 살아가던 그날의 돈독하던 삶도 이제 다 사라져버린 이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버티는듯 해마다 피고지는 동구밖에 억새꽃도 언제까지 피고지 며 살풍경에 이채를 띨것인가…
  “그래, 억새풀아, 이제 고희를 맞은 나도 언제가는 락엽처럼 그 어디에 날아갈지 모르니 너도 지금처럼 해마다 제멋에 자라고 피여서 나붓길수 있을소냐? ”너의 가상한 모습이 더구나 나를 울리는구나. 하늘이 준 명이 진할때까지 너처럼 최선을 다해 보는거다. 설레이는 억새풀아, 어디에 가서든 새뿌리를 내리고 잘살라고 축복하는듯한 너의 설레임에 내 마음도 끝없이 설레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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