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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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자식사랑
2007년 02월 21일 12시 25분  조회:2562  추천:100  작성자: 강룡운
요즘 나는 인터넷을 통해 프랑스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막둥이하고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눈다.컴퓨터카메라에 잡힌 화면을 아들애에게 발송해 서로 얼굴을 마주보기도 하고 자판을 두들겨 문자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부자간의 인터넷대화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안해는 저녁 일곱시가 넘도록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다는 아들의 대답을 읽고 안달을 한다.

"여보,그 애판테 잘 부탁하세요.끼니는 거르지 말고 꼭꼭 챙겨먹으라고..."

나는 프랑스와 중국의 시차가 7시간,그러므로 현재 이 시각이 바로 그곳의 점심때임을 안해에게 상기시키면서도 자식의 건강을 늘 걱정하고있는 안해의 마음을 헤아려 그의 당부를 곧이곧대로 아들한테 전했다.

"엄마왈:아무리 바빠도 아침엔 우유 한컵,하루에 적어도 닭알 하나 그리고 토마토나 사과 한개씩은 명심해서 사먹어라..."

그러자 아들애가 발송해오는 대답이 재미있었다.

"엄마,또 뭘 먹으람다?엄마는 인터넷에서도 바가지를 잘 긁으시네...ㅎㅎㅎ..."

그 애가 갓 프랑스에 갔을 때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전화를 걸어오거나 나한테 이메일을 보내왔었는데 지난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노트북을 샀다면서 요즘은 전화나 이메일외에도 메신저라는 통신서비스를 자주 리용하고있다.
막둥이를 그 먼곳으로 떠나보내고 여태껏 아들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고있던 안해는 요즘 처음으로 컴퓨터화면에서 그새 퍼그나 여위여진 아들의 몰골을 찬찬히 들여다보고난 그 이후로는 하루도 근심이 잦을 날이 없다.

몇해전 그 애를 대학에 보낼 때만 해도 안해의 자식사랑은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지나칠정도였는데 지금은 그래도 많이 나아진편이다.그때 있었던 에피소드 한토막이다.애가 막 학교로 출발해야 할 그 시점에 나는 출장을 떠나야 했으므로 안해에게 아이를 학교에까지 데려다주고 챙겨줄것이 있으면 더 챙겨주고 오라고 부탁했다.그런데 내가 신강 우룸치에서 뻐스를 타고 투루판으로 달리고있는 도중 핸드폰이 울렸다.

글쎄 대학이라고 찾아와보니 한개 침실에 쌍층침대 세개,학생 여섯명이 한방에서 비좁게 생활해야 하는가 하면 또 제각기 밥그릇을 들고다니면서 식당밥을 사먹어야 하는게 통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것이였다.차라리 이 학교를 때려치우고 집이 가까운 연변대학에 입학시켜 집에서 먹고 자면서 학교에 다니게 하는게 아무래도 마음 놓일것 같다는 안해의 전화였다.

자식이 낯설은 고장에서 고생하는게 안스러워 대학생이 된 아들조차 계속 옆에 끼고 살고싶어하는 안해의 그 어쩔수 없는 모성애! 나는 하도 어처구니 없어서 신강 회의가 끝나는대로 서둘러 북경에 도착할테니 그때까지는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내가 부랴부랴 학교에 달려가보니 옛날 우리가 공부하던 대학교 기숙사와 별반 다를것 없이 한칸에 쌍층침대 세개가 놓여있었고 졸업생들이 떠나간후 방학동안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인지 화장실냄새가 불쾌할 정도로 코를 자극했다.안해는 이렇게 어설프고 불결한 환경에 그만 실망하였을것이고 마음이 흔들렸을것이다.기숙사를 호텔식으로 운영하므로 이부자리 등 침구를 갖고오지 않아도 된다고 한 입학통지서를 보았을 때 안해는 아마 대학교기숙사를 호텔방 수준으로 착각하고있었을수도 있다.그래서 입학등록을 마치고 침실에 들어서면서부터 모든것이 눈에 거슬리고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물론 대학에 가면 집에 있을 때처럼 독방을 차지하고 하루세끼 엄마가 지어주는 더운 밥을 먹을수 없다는것쯤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겠지만 이처럼 어수선한 곳에다가 막상 애지중지 키워오던 막둥이를 홀로 남겨두고 에미 혼자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니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서 그런 황당한 생각까지 하게 되였을것이다.안해는 이미 마음속으로 애를 데리고 돌아가기로 작심하고있었다.그는 다음해 다시 시험을 보게 되면 외지 대학은 아예 생각지도 말고 연변대학만 지망하면 얼마든지 붙을수 있다면서 아이를 설득시키려 했고 나는 아무때든 부모곁을 떠나가야 할 자식이므로 지금부터라도 고생을 좀 시키는게 유일무이한 정확한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때 그 아슬아슬하던 순간을 다시 돌이킬 때마다 어머니의 모성애란 모성의 일종 본능적인 사랑이여서랄가,자칫하면 도를 넘어서기 십상이고 지나치면 리성을 잃을수도 있으므로 자식들의 성장에 오히려 역작용을 할수도 있음을 뼈속깊이 깨닫게 되엿고 또 자식들의 건실하고 옳바른 성장을 위해서는 어머니의 감성적인 "모성애"는 물론 없어서는 안되지만 아버지의 보다 리성적인 "부성애"도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것임을 다시 한번 새삼스럽게 터득하게 되였다.

그때 아들애는 다음해에 시험을 한번 더 쳐보라는 어머니의 주장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입시준비라는 그 지긋지긋한 "인간지옥"으로는 다시 되돌아가기 싫다면서 재수를 완강히 거부했다.그래서 결국 그 학교 그 학급 그 "6인침실"에서 4년간의 학업을 마치게 되였고 거기서 키운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 또다시 멀리 해외류학의 길에 나섰다.

비록 국내에 있을때보다 몇만리 더 멀리 떨어져있긴 하지만 지금은 정보화시대라 맘대로 전화를 할수 있고 이메일도 수시로 주고받을수 있으며 요즘엔 또 메신저 서비스를 리용해 얼굴도 서로 볼수 있게 되였으니 내가 대학다니던 그 옛날과는 완전히 천지개벽 딴 세상이 돼버렸다.

나는 지금도 집을 떠나 외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아이들때문에 매일같이 속을 끓이는 안해를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머리속에 어머니의 옛모습을 떠올리군 한다.

내가 대학입시준비에 신경이 날카로와져 자주 밤잠을 설치던 그 시절,대학입시가 바로 한참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철이라서 그 가난했던 오막살이 초가집에서는 밤이면 밤마다 무더위도 무색하리만치 빈대들마저 극성스레 사람을 못살게 굴었다.어머니는 내가 빈대들에게 시달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가 걱정되여 낮이면 미리 당콩잎을 따다 두셨다가 저녁이면 나의 잠자리둘레에 놓아주셨고 내가 잠든후면 조용히 전등을 켜고 당콩잎 보슴털에 발목이 잡힌 빈대들들 잡아주셨다.

이렇게 애면글면 길러낸 아들들이지만 정작 키워놓고보면 저마다 어머니곁을 떠나가서 보고싶어도 맘대로 볼수 없었으니 어찌 속이 타지 아니하고 애간장이 말라들지 않으셨겠는가.한해 두해도 아닌 그 지지리도 힘겨운 나날에 어머니가 날마다 손꼽아 기다리는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다름아닌 자식들의 편지였다.

그런데 자식들한테서 막상 편지가 부쳐와도 어머니는 언제나 눈뜬 소경 신세였다.워낙 그 시절 많은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 역시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분이였으니 아버지가 형님한테서 온 편지를 들고 집에 돌아오셔도 그 편지를 속시원히 읽어보지 못하고 그저 아버지 눈치를 보아가며 조금이라도 편지내용을 더 알고싶어 이것저것 꼬치꼬치 물으셨고 아버지께서 여차여차하게 얘기해주셔도 어머니는 글모르는 당신한테만 무언가를 감추지 않나하여 어떤 때는 아버지손에서 편지를 앗아다가 나더러 아버지 몰래 가만히 읽어달라고 하셨다.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글을 모르는게 너무도 한스럽고 안타까우셨던지 서리 내린 하얀 머리카락만 썩썩 긁적이시였는데 나의 눈에는 그것이 마치 어머니의 하나의 버릇처럼 비쳐지고 각인되여 지금도 나의 머리속 깊은곳에는 그 모습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아마 내가 북경에서 공부할 때도 어머니는 매일 같이 나의 편지를 손꼽아 기다렸으리라.이러는 어머니이신줄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공부에 몰두한답시고 어머니를 잊고 있을 때가 더 많았고 편지를 자주 하지도 않았으며 편지를 한다 해도 번마다 "부친님전 상서"였을뿐 "모친님전 상서"는 한번도 없었다.

지금 나는 내곁에서 거의 날마다 나더러 두 아이한테서 이메일이라도 오지 않았나 확인해보라고 졸라대는 안해를 보면서 자주 이런 생각을 하군 한다.

(오늘 이렇게 좋은 여건하에서도 나의 안해가 이처럼 아이들때문에 속을 끓이고 있는데 옛날 우리 어머니는 그 허구한 세월 자식들이 보구싶어 얼마나 속을 태우셨으며 또 그 많은 아픔과 슬픔을 어떻게 혼자서 묵묵히 참고 견디셨을가...)

사람은 누구나 부모님에게 평생을 두고 다 갚을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고 산다.부모가 자식을 백번 생각할 때 자식이 부모를 한번만 생각해도 효자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그 백분의 일의 효자,효녀 노릇이라도 제대로 하면서 살고있는지?

우리 집에는 큰아들애가 어머니한테 선물로 보내준 <<모심>>표 전기밥솥이 있다.그애가 이 전기밥솥을 어머니께 선물할 때는 아마 "모심"(어머니마음)이란 그 브랜드가 각별히 맘에 들어 선택했을지도 모른다.나의 안해는 마치 "모심"을 읽어낸 자식의 "효심"이라도 한아름 받아안은듯 이 선물을 받은지 어언 몇년이 지났건만 여태껏 소중히 모시고 있을뿐 쓰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고있다.어쩌면 그 언젠가 애들이 모두 자기 곁에 돌아와 옛날처럼 함께 살게 되면 이 전기밥솥으로 따뜻한 밥을 지어먹으면서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게 될 그날을 은근히 학수고대하고있는건 아닌지?세상은 넓고 아이들이 할 일은 많고 많은데 안해는 아직도 자식들을 곁에 끼고 살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모심"이란 무엇일가.그것은 바로 우리들을 키워준 어머니의 그 따스한 젖줄기와도 같고 또한 우리들을 키워준 어머니의 그 따뜻한 밥과도 같은 그런 자양분 덩어리가 아닐가."어머니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그리워지는 사랑의 보금자리이며 우리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마음의 고향이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지고 세대가 끊임없이 교체된다고 해도,나의 할머니가 그랬고 나의 어머니가 그랬고 또 나의 안해가 지금 여전히 그러하듯이 자식사랑 "어머니 마음"만은 세월과 더불어 마냥 변함없이 영원할것이다.


2004년 12월 17일 연변일보 7면 해란강 제122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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