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룡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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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작과 도박(강룡운)
2008년 02월 24일 15시 55분  조회:3483  추천:142  작성자: 강룡운

수필

마작과 도박

강룡운


《사해(辞海)》라는 사전을 펼쳐보면 마작은 마장(麻将)이라 하고 작패(雀牌)라고도 하는데 일종의 도박놀음(博戏)이라고 풀이하고있다.

한어에서 마작(麻雀)은 참새를 뜻하는 낱말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마작이 이 놀음의 공식적인 명칭으로 되였을까?

마작의 어원은 이 놀음의 모체가 되는 마조(马吊)라는 놀이에서부터 온것인데 처음엔 종이로 만든 지패(纸牌)를 가지고 놀던것이 후에는 물소의 뼈에 대나무로 안을 댄 골패(骨牌)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 골패를 섞을 때면 마치 대나무숲에서 시끄럽게 지저귀는 참새떼와 같은 소리가 난다고 해서 마작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되였다는것이다. 지금도 일본에서 마작놀이로 돈벌이를 하는 놀이방의 간판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참새 “작(雀)”자가 씌여진 외글자 한자간판들이 눈확에 안겨온다.

마작도 일종의 문화이다. 로신과 진독수와 더불어 중국 신문화운동의 선구자의 한 사람이였던  호적(胡适)선생은 일찍 여러 나라 국민들의 특수한 기호를 살펴보고 영국의 국기(国技)는 크리켓(cricket板球)이고 미국의 국기는 야구이고 일본의 국기는 스모(相扑)라고 하면서 중국의 국기는 마작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지금 우리 나라 13억 인구중 10억이 마작을 논다는 조금은 과장된 얘기가 나도는걸 보면 국기라는 말이 과연 적중한 용어인것 같기도 하다.

해방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마작이 많이 류행되였다고 한다. 흔히는 관가에서 한자리 한다 하는 벼슬아치나 부자들의 전용물이였고 상류사회의 교제도구인 동시에 도박도구였다. 해방후 당과 정부에서는  도박에 물젖은 사람들의 악습을 고치게 하기 위해 1953년 이전에는 마작놀이를 금지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1954년 이후에 당에서 로동과 휴식을 결부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창도하면서부터 마작에 대한 금기(禁忌)도 풀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방이나 부대의 구락부 등 장소에 오락도구로서의 마작이 다시 나타나게 되였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으로 마작을 만져본것도 바로 그 시기였던것 같다. 우리 집에는 토지개혁때 부자집을 청산하고 나누어준 네모난 정사각형 마작상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그걸 밥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내가 초중을 다닐 무렵, 아버지 직장친구들이 우리집에 와서 그 네모상에 마주 앉아 속칭 “조선마장”이라는 놀음을 노는걸 몇번 목격하였는데 나는 그들의 곁에 앉아 호기심에 찬 눈길로 눈여겨 보았지만 그때는 그 게임의 룰(rule, 규칙, 규정)을 도무지 터득할수가 없었다. 그때 아버지 친구들은 성냥개비를 나누어 가지고 한판이 끝날 때마다 몇 개비씩 주고 받았고 놀음을 다 마치면 서로 성냥개비를 헤여보면서 누가 더 잘하고 못하는가를 따져보았고 술 한잔 나누며 환담을 하다가 헤여지기가 일쑤였다. 말하자면 휴식의 한때를 보내는 오락이였을뿐 돈내기를 하는 도박은 아니였다.

그러다가 반우파투쟁이며 대약진이며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자주 자취를 감추는듯 했던 마작이 다시 나의 눈앞에 나타난것은 대동란이 결속된 1976년의 마가을이였다. 내가 근무하던 안도방직공장에는 자치주 여러분야에서 지도일군으로 일하다가 문화대혁명때 농촌에 쫓겨나가 몇년간 “재교육”을 받고 안도방직공장에 배치되여온 간부들이 많았는데 문화대혁명이 결속되자 그들은 휴일이면 모여앉아 또다시 마작을 놀기 시작했다. 동란의 년대에 “주자파(走资派)”의 감투를 쓰고 혼쭐이 난 그들인지라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 백주대낮에도 창문에 커텐이나 모포를 치고 마작판을 벌리였는데 나는 한달가량 남몰래 그들을 쫓아다니며 견학을 하고 실습을 하여 차츰 그 대오의 일원으로 되여버렸다. 이 놀음이 어찌나 재밌던지 금방 배웠을 때 나는 몇번이나 밤을 지새운적도 있었다. 내가 마작을 배운걸 보고 배워달라고 조르는 친구들이 많아지자 나는 아예 내가 배운 리론과 실전경험을 결부하여 이른바 《조선마장 입문(入门)》이라는 “교과서”를 집필했었는데 그것이 수사본으로 전해지면서 꽤나 인기가 있었다. 그때도 마작은 그저 일종의 오락이였으며 플라스틱쪼각으로 만든 가짜 “돈”으로 성냥개비를 대체하여 서로 주고받으면서 옛날 우리 아버지네처럼 승부를 겨루었을뿐 돈내기를 하는 도박은 아니였다.

그런데 최근 도시와 농촌 어디라 없이 도처에서 펼쳐지는 마작판을 살펴보면 진짜 돈이 오고가는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옛날엔 성냥개비나 플라스틱쪼각으로 만든 가짜 ”돈”을 주고받으면서도  재미있게 놀수 있었건만 지금은 어디서나 거의 다 돈내기를 하고있다. 심지어  정년이 되여 직장에서 물러난 늙은이들마저 적어도 “10전내기” 마작을 놀고있는데 기실 “10전내기”도 필경은 돈내기이므로 제창할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이것도 도박이라고 마구 몽둥이를 휘둘러서도 안될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로 하여금 보다 “책임성”있게 게임에 참여함으로써 좀 더  재미있게 놀려고 10전짜리 잔돈이나마  주고받는것이지 결코 돈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기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어둑시그레한 구석의 “밀실”이나 “별장”같은 곳에서 개별적인 도박군들이 법망의 감시를 피해 다니면서 몇 천원 지어 몇 만원이 오고가는 도박판을 벌이고있다고 한다.

그러면 오락과 도박의 구별점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고 보아야 하는가? 나는 그 구별점이 바로 마작을 노는 목적성과 출발점에 있다고 본다.

휴식할줄 모르는 사람은 일할줄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혁명의 성지 연안의 움집에서 중국혁명을 승리에로 이끌기 위해 불후의 혁명적경전저서들을 집필하던 나날에 모택동주석께서도 머리를 좀 쉬우려고 가끔 신변의 일군들과 어울려 마작을 놀았다는 일화가 있다. 마작은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인들의 하나의 발명품이며 그속엔 중국의 문화가 녹아있고 중국인들의 지혜가 배여있다. 가령 모주석께서 마작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였다면 마작에서 유래된 “청일색(清一色)”과 같은 그런 생동한 언어들을 그처럼 지혜롭게 구사할수 있었겠는가!

마작을 배우고 노는게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재미로 여가를 보내거나 오락으로 친구나 동료들끼리 친분을 다지거나 일터에서 물러난 로인들이 소일거리로 마작을 논다면 그건 구태여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도박은 금물이다. 그저 재미삼아 노는 오락이 아니고 서로 남의 돈주머니를 겨냥해서 노는 마작이라면 그건 분명 도박이다.

바늘도적이 소도적이 된다는 속담이 있다. “10전내기’하던 사람이 결코 “10원내기”, “100원내기”를 안 한다는 법은 없다. 목적성과 출발점이 변하고 오고가는 돈의 량적변화가 질적변화를 초래한다면 오늘저녁 놀이군이 래일아침에 도박군으로 될수도 있다는게 오늘 우리가 몸 담그고있는 현실이다. 누구나 경각(警觉)의 탕개를 단단히 조이지 않으면 자신도 걷잡을수 없이 천길 나락에 굴러 떨어질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람은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가 하고픈 일을 무엇이나 다 하면서 살아갈수는 없다. 국가의 법규에 위배되고 사회의 도덕적기준에 어긋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면 아무리 하고픈 일이라도 억제하고 자제할줄 알아야 한다.

마작은 즐기면서도 도박은 절대 하지 않는것, 이것도 역시 자기자신을 스스로 단속할줄 아는 자제력이 수요된다. 그리고 “완물상지(玩物丧志)”라는 말이 있듯이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고 놀음에 지나치게 빠져들면 가슴속에 품었던 큰뜻도 상실하기 십상이라는 고훈(古训)도 명심해야 할바이다.

세상 만사가 다 마작처럼 이중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어떤 일에서나 그것의 적극적인 일면은 리용하고 소극적인 일면은 극복해 나갈줄 아는것이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참다운 삶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2008년 2월 22일 《연변일보》B2《해란강》1307기에 일부 삭제된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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