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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섭“콩나물동시비”를 말한다
강 길
언젠가 나는 “이런저런 동시를 보고 한마디”란 글을 써서 조글로 사이트에 올렸다. 네트즌의 반영은 한 사람인가 시원하게 잘 썼다고 호응하고 반대하거나 부동한 의견은 오르지 않았다.
최문섭의 동시 “콩나물”은 내가 비평한 동시중의 한수이다.
노란/음표들이/ 실눈을 뜨고 /줄지어 서있다// 하얀 /동요가 /시루안에 빼곡이 /차고 넘친다
보다싶이 2련 8행으로 된 동시다.
우리가 작곡가를 보고 콩나물대가리를 그린다고 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음표가 콩나물대가리를 닮았기때문이다. 그러니 콩나물을 보고 음표를 련상할수도 있겠다.
그런데 콩나물이 줄지어 서있다? 마치도 소학생들이 운동장에 줄지어 서있는듯이? 최문섭이 무슨 콩나물시루를 보고 이 동시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물을 먹고 무더기로 자라올라오는 콩나물은 보았지만 줄지어선 콩나물은 보지 못했다.
그리고 시루안에 금도 아니고 은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똥도 아닌 동요가 빼곡이 차고 넘친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콩나물대가리=음표 음표=동요 고로 콩나물=동요 이는 최문섭의 사유방식이다.
콩나물대가리가 음표를 닮았다 해서 콩나물=동요라고 한것은 억지가 아닐수 없다. 최문섭의 론리가 성립된다면 시루안에 동요뿐만 아니라 한국노래, 조선노래,중국노래,일본노래도 가득 차있다고 해도 무방할것이다. 그렇다면 동요가 차있다는 주장이 독특한 시적발견으로도 될수 없을것이다.
동요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다.
최문섭이 시루속의 콩나물을 보면서 노래소리도 들었다는것은 환각일뿐이다. 콩나물은 우리 민족만 키워먹는것이 아니고 한족 등 다른 민족들도 키워먹는다. 하얀 동요든 노란 동요든 검은 동요든 시루안에 동요가 차고 넘친다는것은 얼토당토 않는 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전성호는 "아동문학연구문집" (202쪽)에서 최문섭의 "콩나물"에 대해 "이 동시에서 콩나물의 하얀 줄기를 시각적인 감수로부터 청각적인 감수로 전이시켜 동요라고 명명한 시인의 이 비약은 콩나물자체를 음표에 비기는 세속적인 관습과 이어지고있는데 독자들에게 생동감을 안겨주면서 역시 신묘한 착상이고 자연스러운 전개이며 발견이라 인정된다." 하고 김만석은 "중국조선족동시발전과정과 2000년대중국조선족동시"란 글에서 최문섭의 "콩나물"에 대해 "여기서 원관념 '콩나물'을 보조관념 '음표'로 둔갑시키고 그 다음 회화적인 시루안에 빼곡한 콩나물의 정적인 형상을 '하얀 동요가 차고 넘친다'고 청각적인 형상으로 엉뚱한 승화를 시킨 여기에서 이 동시의 매력적 형상이 한결 돋보인다"고 하였는데 전성호의 "이 비약"이나 김만석의 "엉뚱한 승화"는 모두 생활론리를 떠난데서 비롯된것이다
연변작가협회아동문학창작위원회,연변조선문독서사, 연변청소년문화진흥회는 최문섭 별세 1주기를 맞아 4월 20일부터 1개월간 연길공원 동시동네에서 “콩나물”을 비롯한 14수의 동시로 “고 최문섭 동시화전”을 열었다고 한다. “콩나물”은 최문섭의 대표작이 될수 없다.
또한 연변작가협회의 위탁을 받고 지난해 연길공원 동시동네에 최문섭의 “콩나물”동시비를 세우게 된다고 했었는데 올해 최문섭 별세 2주기로 밀어놓았다고 한다.
동시 “콩나물”은 2003년에 출판된 최문섭동시집 “물수제비”에 수록된 작품이다. 최문섭이 그 “콩나물”을 책의 뒤표지에까지 박아놓은것을 보면 스스로 인정한 최문섭의 대표작인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콩나물”을 강길- 나는 작품이 아니라고 호된 비평을 한것이다.그러나 아직까지 누구도 내가 볼수 있도록 나의 관점을 반박한 글을 어디에도 올린 사람은 없다. 하지만 조직적으로 “콩나물” 동시화전을 펼쳤거나 “콩나물”동시비를 세우고있다.
이런 조직적행동이 옳바르게 진행된 행사인지 세번 다시 생각해보기 바란다.
돌에 새겨놓것은 마사버릴수는 있어도 지워버릴수는 없다.
어느 학교의 “반디불”동요비에는 “살금살금 뛰여라“ 쯤으로 되여야 할것을 “살금살금 기여라”로 새겨놓았을것이다. 연변사전이나 조선사전이나 한국사전이나 어느 사전을 뒤져보아도 “기다”의 뜻풀이는 “배를 바닥에 붙이고 움직여 나아가다”로 되여있다.
그러니 기여서 어떻게 공중에 날아다니는 반디불을 잡을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옳바른 단어사용 교육도 책임져야 한다. 하나의 단어도 이럴진대 전반 시적착상이 엉망인 동시를 돌에 새겨 “콩나물”동시비를 버젓이 세운다는것은 바람직한 일이 못된다.
연길공원 동시동네에는 김례삼,채택룡, 윤동주,윤정석 네분의 동시비가 세워진걸로 나는 알고있다. “고개길”, “병아리”, “앵코타기”는 모두 연변에서 세월과 더불어 생명력을 이어온 명동요이다. 그속에 최문섭의 “콩나물”동시비가 세워진다면 연길공원 동시동네가 잡동사니동네로 되고말것이다.
동시비는 돈만 있으면 세워지는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동시에 대한 긍정일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우리 문단의 력사적기념비로 살아 남아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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