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딸라배》의 허물보기
강 길
들어가는 말
《아동문학연구소》 편집으로 된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 2》에는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신헌재의 아동문학연구 《김영의 〈딸라배〉에 담긴 가족 파탄과 민족적 비애상 표현 고》가 실렸다.
이는 한국인이 중국조선족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으로서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딸라배》에 대한 그의 분석은 작자의 주관적 의도에 따른 《겉핥기》에 그쳤을 뿐 작자가 설정한 환경과 인물이기는 하지만 작자 자신도 좌우지 할 수 없는 (그럴 수밖에 없는) 《속 보기》는 하지 못했다.
일찍 아동소설 《딸라배》에 대해 김만석은 《〈딸라배〉가 성공한 비결》이란 문장을 《별나라》(1998-5, 총 72)에 내고 나는 한 세미나에서 김만석과 다른 나의 관점을 밝힌바 있다.
김만석은 김만석 편저로 된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 1》에 《딸라배》를 실음으로써 자기 주장에 변함이 없음을 나타냈다.
도서출판 시와사람에서 펴낸《김만석아동문학연구》에도 《〈딸라배〉가 성공한 비결》이 실렸다.
신헌재의《딸라배》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김만석의 관점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물론 나의 관점과는 하늘땅 차이라고나 할까.
구경 어느 관점이 옳고 어느 관점이 그르냐는 오직 논쟁 속에서 갈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딸라배》에 대한 나의 관점을 아래에 밝히려 한다.
첫째. 사건의 발단- 생활논리를 떠난 《딸라배》
《이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은 소학교 6학년인 오빠 철이와 유치원생인 일곱 살짜리 누이동생인 분이, 단 두 사람뿐이다... 이 남매를 동정적으로 보는 전지적 3인칭 시점의 화자가 이 두 남매의 부모를 소개하고 그들의 문제 상황을 소개하는데, 그 소개되는 부모의 문제야말로 바로 이 작품의 갈등을 낳는 전원지가 되는 셈이다.》1)
신헌재의 이 견해에 좇아 내가 찾은 이 작품의 《전원지》는 다음과 같다.
1. 《4년 전》《한국으로 떠나간 어머니》는 《일 년에 전화 한두 번 오면 고작...그나마 아버지가 현성에 가 전화를 받을 뿐》이라는 것.
2. 《요즘 아버지의 기색이 이상... 몇 달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돌아와서부터 매일 술주정하며 어머니를 욕하니... 철이는 어딘가 모르게 위협을 느끼였》다는 것.
3. 오늘 어머니의 편지가 왔는데 《편지를 받자마자 아버지는 〈쌍년, 누가 까짓 딸라를 보내라 했어?!〉하고 욕하면서 현성으로 급히 떠났》고 분이가 《아버지를 따라 현성에 가 어머니한테 전화하자고 막 발버둥 치니깐》 아버지는 분이에게 《100딸라》를 줬으며 《아버지가 맏아매 하고 그러는데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라는 것.
이것이 바로 《화자》가 소개한 《부모의 문제》이며 철이와 분이의 사유의 바탕이 되는 사실이다. 철이에게 2는 체험이고 3은 들은 것이라면 분이에게 3은 체험이고 2도 역시 체험이 아닐 수 없다. 《위협》이란 전화로 한 어머니의 이혼제기에 따른 철이의 심리상태이다. 그 《위협》의 인식 깊이는 나이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분이도 그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 《아버지가 맏아매 하고 그러는데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 치자고 나도 가자는데》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알수 있다. 《엄마에게 전화치자고》 했다는 행위는 어머니의 이혼제기는 물론 재혼에 대한 분이의 반대태도를 말해줄 뿐이다. 이런 분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오빠를 만나면 울음이 앞서면서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가 우선이겠지 어떻게 《오빠, 요거 봐꽁!》하고 《100딸라》를 자랑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분이는 사람들만 만나면 부질없이 달러를 내흔들며 ‘봐꽁, 봐꽁, 울 엄마 보냈거든’하고 종알대였어요.》했는데 이는 분이의 감정에 대한 무시가 아닐 수 없다.
신헌재는 《가정의 파탄상황을 눈치 채고 있는 철이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분이와의 대조적인 인물설정》2)이라 했는데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 치자고 나도 가자는데》, 이처럼 현실을 인식하고 행동적인 분이가 어떻게 《철부지》일수 있겠는가? 신헌재의 관점대로 분이가 진정《철부지》라면 뒤에서의 《딸라배야, 딸라배야. 나는 네가 싫고, 엄마가 좋다야》라는 인식변화는 더구나 성립될 수 없다.
철이로 말하면 《위협》은 철이의 현재 의식을 가늠할 수 있는 관건적인 단어이다. (《위협》-위력으로 으르고 협박함-은 《위험》-위태함, 안전하지 못함-을 잘못 쓴것이다- 필자 주)
철이가 분이의 손을 쥐고 맏아매를 찾아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웬일인지 측은한 눈길로 그들을 보며 다가와 정답게 머리만 쓰다듬어 주고는 한숨만 쉬는 것이였어요.》라고 한 것은 그들도 분이 어머니가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를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면 아버지가 《몇 달 전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돌아와서부터 매일 술주정하며 어머니를 욕하니... 철이는 어딘가 모르게 위협을 느끼였》다는 것은 무엇을 말한 것인가? 《쌍년, 이혼하겠다구? 이혼해 달라구? 못해. 아니 해. 누굴 좋아하라구!》 이러루한 말밖에는 되지 않을것이다. 철이가 느끼고 있다는 《위협》은 어머니의 이혼제기에 따른 가정파탄일수 밖에 없다. 아버지의 성격으로 보아 온 동네가 다 알고도 남을 부모의 이혼문제가 철이에게 《어딘가 모르게》라고 표현해야 할 일이 아니며 그것조차《몇 달 전...부터 매일 술주정하며 어머니를 욕》했다는 아버지이니 《요즘...기색이 이상》해졌을 수도 없다. 그리고 《아버지가 맏아매 하고 그러는데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라고 알려준 분이의 말을 듣고 《거짓부리!》라고 한 철이의 말은 철이가 할 말이 못된다. 이혼과 재혼은 연계된 문제이며 이혼의 가능성을 알았다면 재혼의 가능성도 예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제 계모가 들어오면〉 하고 아버지의 재혼문제까지도 생각한 철이므로) 그것을 부정할 이유도 없거니와 《청천벽력》일 수도 없다. 철이가 《씨, 맏아매 찾아가 똑똑히 물어보자!》라고 했는데 철이에게 뭐가 똑똑하지 못한 것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철이를 《강변》으로 가게 한 것은 분이의 말이 못미더워서가 아니라 작자가 인물의 성격논리를 떠나 무턱대고 철이를 죽이려고 한 주관적 의도의 표현에 불과하다.
작품 서두의 배경묘사에 대한 신헌재나 김만석의 관점 역시 《속보기》가 아니라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낙엽》과 《편지장》은 오늘 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왔다는 것을 끌어내지 위해 필요할 뿐이지 인물의 내심세계를 잘 보여주기 위해 장치된 것은 아니다. 《일 년에 전화 한두 번 오면 고작...그나마 아버지가 현성에 가 전화를 받을 뿐》인 철이에게 우선 어머니의 전화가 자주 오고 자기도 직접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면 소원이겠지 《날리는 낙엽들을 바라보》며 《어머니한테서 편지가 이처럼 많이 날아왔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혹시 《일 년에 전화 한두 번》이 아니라 《일 년에 편지 한두 번》 오는 것으로 되였다면 몰라도. 이는 등이 가려운데 배를 긁어준 것과 다름없다.
더욱이는 편지로 남편에게 결혼한다는 것을 알릴 여자가 있을까? 중국 혼인법에 따르면 이혼하지 않고 재혼하는 것은 《중혼죄》에 속한다. 가만히 시집가는 어머니는 있을 수 있어도 편지로 시집간다고 알릴 어머니는 있을 수 없다. 《일 년에 전화 한두 번 오면 고작》이라는 어머니라면 편지를 할 당연성은 더구나 없다. 편지 속에 100딸라를 몇 장 넣어보냈소, 아버지가 한장을 분이에게 주었소, 분이는 그것으로 딸라배를 만들었소, 철이는 딸라 돈을 건지려다고 물에 빠져 죽었소, 이러루한 작자의 설계에 맞춰져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일 년에 전화 한두 번 오면 고작》은 그럴 수 있어도《그나마 ...현성에 가 전화를 받을 뿐 》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는가 상상해 보라. 상식적이면서도 관건적인 문제에서부터 진실성을 상실한 이런 작품을 어떻게 작자가 《소설의 이야기를 생활의 논리에 맞게 짜고 들었다》3)(김만석)고 할 수 있겠는가?
《딸라배》는 사건의 발단부터 있을 수 없는 일을 가지고 이야기를 꾸미여 나갔기에 진실성이 없다. 억지투성이다. 신헌재나 김만석은 작자의 주관의도에 따른 분석을 했을 뿐 생활논리와 인물성격논리에 따른 분석은 하지 못했다.
둘째.사건의발전-인물성격을떠난《딸라배》
이 작품에서 철이가 《강변》으로 가야 할 이유가 없음에도 억지로 등 밀어 그리로 가게 한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혹은 똑똑히 알려고 맏아매를 찾아갈 수 있다 치더라도) 더 문제로 되는 것은 분이가 딸라로 《딸라배》를 만든 것이 합리적인가 하는 그것이다.
사람의 의식은 환경과 교육을 떠날 수 없다. 분이는 유치원생이다. 그리고 두만강을 낀 농촌마을의 아이다. 나는 한번 반나절이나 버스를 타고 연길에서 훈춘을 걸쳐 두만강을 낀 경신촌의 김영 집에 놀러 간적이 있는데 《딸라배》는 작자가 자기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쓴 작품인 것 같다. 작품에는 교대되지 않았지만 분이 어머니는 우선 버스를 타고 집을 떠나 기차도 갈아타고 배편으로 혹은 비행기 편으로 한국에 갔을 것이다. 그러니 분이는 엄마가 타고 떠난 버스를 타고 엄마를 찾아갈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혹은 새처럼 날아서 찾아갈 환상적 생각을 할 수도 있겠으나 《오빠, 저기가 조선이냐?》라고 묻는 지리상식도 없는 깜깜부지의 머리에 어떻게 《강을 넘어 곧게 엄마한테 못가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두만강은 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이란다. 또 조선에 가면 북조선과 남조선 국경이 있단다. 국경을 어떻게 함부로 넘나드니?》 라고 한 철이의 말은 쇠귀에 경 읽기로서 유치원생이 근본 이해할 수 없다. 땅위로 걸어갈 수 없다니 분이는 《여기서 배를 타고 갈수 없나?》라고 묻고 철이가 《될 수 있어. 두만강을 따라 방천을 지나면 바다야》라고 대답하니 《야- 좋다! 나는 배를 만들래!》하더니 《오빠, 봐꽁, 딸라배!》라고 제법 《딸라배》란 이름까지 짓는다. 분이에게 《방천》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바다》란 분이에게 어떻게 어머니에게로 갈수 있는 도경이 되는지? 작품에는 분이가 딸라로 《딸라배》를 만든 계기가 주어지지 않았다. 분이더러 생뚱같이 《딸라배》를 만들게 했을 뿐이다. 그것조차 처음에는 배를 타고 엄마한테 가고 싶어 《딸라배》를 만들었다면 현실(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를 떠난 《딸라를 많이많이 벌어가지고 오자고 안 오는 거야》라는 철이의 말에 《딸라배야 딸라배야 나는 네가 싫고 엄마가 좋다야》라고 노래까지 스스로 지어 부른다. 유치원생이 상징적의미를 담고 있는 노래를 지어 부를 수 있을까? 이는 작자의 사유이지 결코 유치원생 분이의 사유가 아니다. 이렇게 세부처리가 틀리면 합리성이 구성되지 않아 작품의 비진실성을 낳게 되는 것이다.
《작자는 주인공 두 남매를 두만강 변 모래밭으로 몰고 간다... 이곳은 바로 조선과 중국의 국경선이기도 한 두만강이다... 왜 사람은 넘나들 수 없는가 하고 안타깝게 만드는 곳이기도 하다.》4) (신헌재)
신헌재는 자기가 상식적으로 아는 《조선》, 《북조선》,《남조선》,《국경선》, 《국경》... 이런 이데올로기 개념을 《철부지》 분이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다 조선사람인데두?!》, 《새들은 마음대로 넘나드는데》,《새는 일없구? 사람은 안되구?! 누가 그렇게 만들었지?!》, 《어른들은 참 바보야.》 유치원생이 이런 질문과 인식을 할수 있겠는가?
《철이는 100딸라의 가치를 너무나 잘 아는 것으로 규정해놓았다. 즉 〈자전거 두 대를
살 수 있는 돈〉, 〈유치원전자풍금을 살 수 있는 돈〉그런 돈 가치를 너무나 잘 아는 철이로 취급되었다. 그래서 철이는 몇 번이고 딸라를 자기가 보관하자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철이는 엄마가 딸라를 벌어가지고 올 걸 바라는데 분이는 딸라보다 엄마가 좋다면서 그렇게 가치가 〈큰〉 100딸라로 〈딸라배〉를 만들어 두만강에 띄워 보낸다. 이처럼 철이와 분이의 성격충돌로 이야기는 소설의 절정에 치달아 오르게 된다.》5) (김만석)
《울 유치원 전자풍금도 살수 있대...》는 분이의 말로서 철이 뿐만 아니라 분이도 《100딸라》의 가치를 모르지는 않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철이와 분이의 성격충돌》이란 《딸라를 버느라고 안 오지. 딸라를 많이많이 벌어가지고 오자고 안 오는 거야》와 《딸라배야. 딸라배야. 나는 네가 싫고 엄마가 좋다야》로 표현된 것을 말한 것인데 이는 말도 되지 않는 성격충돌이 아닐 수 없다. 《위협》을 느끼었다는 철이가 어떻게 어머니가 《딸라를 버느라고 안 오지. 딸라를 많이많이 벌어가지고 오자고 안 오는 거야》라고 현실을 떠난 인식을 할 수 있겠고 《어머니는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를 알고 있는 분이가 어떻게 《딸라배야. 딸라배야. 나는 네가 싫고 엄마가 좋다야》란 인식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동소설가 김영은 이 소설에서 성격의 논리에 맞게 이야기를 짜면서 주인공의 비극적 운명을 예술적으로 처리하는데 성공하였다.》6) (김만석)고 한 것은 인물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틀린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김만석은 《이 소설이 성공한 비결은 소설적이야기를 생활의 논리에 충실하면서 면밀히 짜고 든데 있을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죽게 되는 당위성을 성격의 논리에 밀착시킨데 있다고 본다.》7) 고 해놓고는 《물론, 철이가 물에 뛰여들게 된 원인은 100딸라의 ‘중요성’에서 찾아야 할뿐만 아니라 그의 성격에서도 마땅히 찾아야 한다. 이 점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파고들지 못한것은 미흡한 점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8) 라고 자가당착- 앞뒤가 어긋나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소설에서는 인물성격논리에 맞게 이야기를 펼쳐가야 하며 그 이야기의 세부들은 진실하게 그려져야 한다. 그런데 《딸라배》는 그렇지 못하다. 이야기는 인물성격논리에 맞지 않게 엮어졌기에 이야기와 성격의 통일을 이루지 못하였다. 소학교 6학년생인 철이는 《위협》을 느끼었다 하면서도 조금도 현실을 파악하지 못한 《바보》같은 인물로 그려지고 유치원생 분이는 《요거 봐꽁?!》 하던 《철부지》가 몇 시간 사이에 《난 딸라가 싫단 말야!》라고 상징적의미를 창조한 《어른》같은 인물로 그려졌다. 인물의 인식이 꼭 나이와 정비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생활에서 유치원생은 《보고 싶은 엄마를 못 오게 만드는 원흉이 바로 그 달러 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9) (신헌재)《딸라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소학교 6학년생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100딸라》를 건지려다 물에 빠져죽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곧이들을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이처럼 《딸라배》는 철이와 분이의 성격충돌이 아니라 철이와 분이의 성격논리를 위반한 모순을 안고 있는 작품인 것이다.
셋째. 주제- 누가 철이를 죽였는가
《딸라배》는 생활논리와 인물성격논리에 맞지 않게 씌어 진 작품이기에 그 주제에 대해서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 신헌재나 김만석은 도랑물에서 고래를 잡은 듯 얼마나 황당한 주제를 발굴해 냈는지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김만석의 관점은 어머니의 머리에 《배금주의가 팽창》되였기에 철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배금주의》란 돈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는 주의를 말한다. 이 작품에서 《4년 전 …철이와 분이를 끌어안고 남 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너희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떠난다고 하시면서 돌아올 때까지 꼭 기다리라고 》했다는 어머니가 4-5년간 딸러를 얼마나 벌었는가? 집에 딸러를 보냈는가 말았는가 하는것은 문제도 되지 않고있다. 《한국에서 시집간대》가 가령 돈 많은 한국 영감한테 시집간대 로나 되었다면 몰라도 《 '5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달러 돈만 부쳐 왔다는》10) (신헌재) 어머니에게 《배금주의》모자를 씌워서 맞겠는가?
실생활에서 부모 중 한 사람이 한국에 돈 벌러 갔다면 집에 남은 다른 한쪽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상년, 누가 까짓 달러를 보내라 했어?!》라고 했다는 아버지의 욕이, 오늘 어머니가 편지 봉투 속에 딸을 주라고 100딸라 몇 장을 넣어보냈다는 것을 두고 한 말이기는 하지만 신헌재처럼 어머니는《 '5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고 달러 돈만 부쳐 왔다》고 상상하지 않을수 밖에 없다. 그럼 《딸라에 대하여 지대한 염오감을 느끼는 아버지》11)(김만석) 는 4-5년간 아내가 보낸 달러를 어디에 썼단 말인가? 《몇 달 전》부터 《매일 술주정》하고 분이에게 《100딸라》도 돈 1원 주듯 주었으니 어떻게 써버렸겠는가 하는 것은 이렇게 저렇게 상상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작품 속의 아버지는 생활력도 보이지 않고 머리도 단순한 인물로 그려졌는데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기나 하겠는가? 현성에 가서 뭘 하려는 건가? 진짜로 《인젠 안 온대. 한국에서 시집간대》라는 어머니라면 전화를 받아주겠는가? 아니면 비행기라도 잡아타고 한국으로 아내 찾으러 날아갈 셈이란 말인가? 실제로 이런 남편이라면 아이들 보고 산다면 몰라도 어느 여자가 그냥 붙어 살자 하겠는가?
《어떤 이들은 아버지가 분이한테 100딸라(인민폐 800원좌우, 당시 입쌀을 산다면 400키로그람 쯤은 살수 있는 가치- 필자 주)를 준 것이 진실하지 못하다고 하는데 이런 분들은 아버지의 성격을 도외시하지 않았는가 짐작된다.》12) 라고 한 김만석의 견해에 따르면 이것(급히 현성으로 떠난 것)을 나무람 하는 것도 아버지의 성격을 도외시한 것으로 풀이할지는 몰라도 생활논리를 떠난 성격은 진실성이 있을 수 없다.
김만석은 《분이가〈엄마〉를 부르는 여기서 독자들은 우리의 주인공 철이가 〈엄마〉 때문에 죽는구나 하고 저저마다 스스로 느끼게끔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13)라고 감탄했는데 김만석 자신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말이 돼도 《저저마다》라니? 그것도 《스스로 느끼게끔 되는 것》이라니? 《스스로》그렇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나더러 굳이 누구 때문인가 고 말하라면 엄마 때문이라기보다는 주정뱅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 같고 아버지 때문이라기보다는 생활논리와 인물성격논리에 맞지 않게 작품을 쓴 작자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신헌재의 주제파악은 더욱 엉뚱하다. 김만석이 어머니에게 《배금주의》란 모자를 씌웠다면 신헌재는 《금전만능》이란 자대로 맞지도 않는 옷을 지어 입혔다. 그리고 《달러를 제거시켜야만》 《가정의 파탄》을 《해소할 수 있》단다. 《가정의 파탄》은 꼭 외국에 돈벌러간 가정에서만 생기는 현상이 아니고 중국 국내의 일반 가정에서도 생기고 있는 현상이기도 한데 딸라가 아닌 인민폐도《제거시켜야만》《가정의 파탄》을 《해소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보다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달러배를 주우러 강물로 뛰어드는 철이의 행위는 자본주의에 현혹된 현대의 세태를 상징하는 것》이란다. 《달러를 주우려다 결국 실패하고 물에 빠져 죽고 만다는 이 작품의 귀결은 또한 자본주의에 현혹되어 자멸해가는 이 시대의 실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장면》14)이란다.
노무송출, 외화벌이는 중국의 개혁개방의 산물로 연변만 놓고 보아도 한국행 돈벌이는 연변의 국민경제 발전에 커다란 몫을 담당하고 있다. 노무송출은 오늘도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사기, 위장결혼, 가정파탄 등 부산물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외화벌이가 곧 가정파탄을 낳고 노무송출로 중국은 자본주의에 현혹되어 기필코 자멸해 갈 것이라는 신헌재의 황당한 관점은 중국 공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망언이 아닐 수 없다.
나오는 말
김영은 농업에 종사하는 한편 글 농사도 지어 아동소설집 《'딱곰'과 그의 벗들》을 펴내는 등 성과가 있는 작가이다.
《김영아동소설연구모임》에서 나는 《딸라배》와 《금목걸이》두 편에 한해서 김만석과 다른 나의 관점을 밝힌바 있다. 김영의 앞으로의 창작에 도움이 되겠는가 해서였다.
《리영식아동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고 김만석이 《〈딸라배〉가 성공한 비결》이란 평론을 쓰기도 한 작품에 대해 내가 《〈딸라배〉의 허물보기》를 했으니 김영이 어떻게 받아 들었겠는가 하는 것은 알 수 없다.
《밝히지 않으면 안될 사실》이란 《조사보고》는 이에 대해
《김만석 교수는 " '딸라배'가 성공한 비결" 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때 강길은 농민작가 김영의 앞에서 " '딸라배'는 패작"이라면서 김영을 내리 깠다. "농민작가 김영은 분개해서 직방 강길의 관점을 반박하였다"고 그 번 회의 참석자들이 공동히 말하였다... 강길이 아무리 김영의 아동소설을 내리 깠지만 김영의 아동소설 '딸라배'는 이번 '중국조선족아동문학총서' 제1권( 나온 책을 보니 총서가 대계로 고쳐졌음- 필자 주)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동소설로서 한국에 선참 소개되는 영광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15)라고 쓰고 있다.
《딸라배》가 제1권에 나간다는 것만 빼고는 이 글이 얼마만큼이나 사실인가 하는 것은 글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알만한 것은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기실 이것은 강길에 대한 모독일 뿐만 아니라 김영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딸라배》에 대한 강길의 관점이 김만석과 같지 않다 하여 《김영은 분개해서 직방 강길의 관점을 반박했다》? 소설편집에게서 《딸라배》를 새까맣게 수개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 강길이, 편집들이 탈고시간의 촉박으로 작자와 의논 없이 작품을 마구 수개해 발표하는 현상에 대해 언급했을 때 김영은 자기 작품이 나온 것을 보니 토 몇 개만 고쳐졌더라고 밝혔을 뿐이다.
《그번 회의 참석자들이 공동히 말하였다》? 연변인민출판사 작은 회의실에서 있은
《김영아동소설연구모임》에는 30명좌우의 사람이 참석했었는데 그 한 사람 한사람을다
찾아 다녔거나 모아놓고 조사했다는 말이 된다. 소설가 우광훈이 연변작가협회를 대표하여 자리를 같이 했고 마지막 초대 발언 시, 논쟁하는 것은 좋은 일이며 탐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의 말을 했었는데 그도 《공동히 말하였다》에 속하지 않을 수없겠다.
《밝히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이란 이른바 《조사보고》가 누구의 창작품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밝히지 않으면 안 될 사실》을 밝힌다는 사람이 담이 작기로 쥐새끼만도 못하여 제 이름 석자도 밝히지 못하고 《한동문 문아동》이란 가명을 썼으니 자기 글에 대해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 밖에 뭐가 더 있겠는가? 그런데도 당시 연변작가협회 주석님은 그 《조사보고》를 받아 보았다면서 마치도 무슨《보배》라도 얻은 듯한 들뜬 기분이었으니?.......
가짜 상품 생산과 그것을 팔아주는 시장은 문단에도 없지 않아 있는 것 같다.
전성호가 《아동문학연구소》이론조 조장이요, 또한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편집부 성원이라서 나는 그에게 《〈딸라배〉의 허물보기》를 주었다. 물론 편집부에 원고를 투고한 셈이다. 한국 신헌재의 평론을 봤느냐고 물었더니 보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버젓이 이름만 걸어놓고 있는 거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이 지나서 전 씨가 전화로 하는 말이, 《딸라배》를 부정한 평론이면 김만석이 싣지 않겠다고 했단다. 김만석이 내 평론을 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전 씨는 자기에게 그대로 있다고 대답했다.
진정한 학자라면 자기와 부동한 관점의 존재를 무서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학술문제는 탐구와 논쟁을 거쳐《진리》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문제일 뿐 자존심의 대결이 아니다. 또한 어느 관점을 받아주는 시장이 있다하여 곧 그 관점이 《진리》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작품에 대한 논쟁은 자유로워야 하고 활발하게 벌려져야 누구나 새로운 깨우침을 얻을수 있고 문학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릇된 관점을 고친다는 것은 탐구와 학자적 태도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김만석은 1998년에《〈딸라배〉가 성공한 비결》 이란 평론에서 《이 소설은 주인공 철이의 비극적 운명을 우리의 아동소설에서 처음으로 대담하게 취급했다는데 그 문학사적의의를 가지게 된다.》16) 라고 주장했지만 1999년 《20세기중국조선족 아동문학선집1》에 실린 《중국조선족아동문학에서의 단편소설에 대하여》에서는 《김영의 '딸라배'에서는 새로운 시기의 인간비극을 우리의 아동소설에서 대담히 취급》17)하였다고 주장을 바꾸고있다. 새로운 탐구를 거쳐 《처음》이 아님을 깨달은 것 같다.
이는 《딸라배》에 대한 김만석의 전면적인 관점 변화는 아니지만 그만큼이라도 스스로 자기 관점을 부정한다는 것은 용기 있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2006년에 펴낸 전성호의 《아동문학연구문집》을 펼쳐보면 《아동문학연구에서의 김만석의 시각고찰》이란 문장에, 김만석이 《김영의 아동소설 '딸라배'를 평한 글에서도 그 서두부분에서 '이 소설은 주인공 철이의 비극적 운명을 우리의 아동소설에서 처음으로 대담하게 취급했다는데 그 문학사적의의를 가지게 된다.'(p.179)고 함으로써 우선 문학사적자리매김으로부터 시작하여 의론을 펼쳐나갔다.》18)고 오발하고 있다.
눈 먼 망아지 워낭소리 듣고 따라간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생겨나지 않았는가 싶다. 폭넓은 문학사적고찰은 말고라도 무게 있는 책 한권 쯤 참답게 읽어보았더라도 이런 웃음거리는 없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주해:
1).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2》 p. 204
2). 동상 p. 205
3). 《별나라》(1998-5, 총 72) p. 110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1
4).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2》 p. 204
5). 《별나라》(1998-5, 총 72) p. 111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1
6). 《별나라》(1998-5, 총 72) p. 110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1
7). 《별나라》(1998-5, 총 72) p. 109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79
8). 《별나라》(1998-5, 총 72) p. 112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2
9).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2》 p. 214
10). 동상 p. 205
11). 《별나라》(1998-5, 총 72) p. 111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1
12). 《별나라》(1998-5, 총 72) p. 111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1
13). 《별나라》(1998-5, 총 72) p. 111-112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82
14). 《중국조선족아동문학대계2》 p. 214
15). 《밝히지 않으면 안될 사실》 p. 7
16). 《별나라》(1998-5, 총 72) p. 109
《김만석 아동문학연구》 p. 179
17).《20세기중국조선족아동문학선집1》 p.6
18). 《아동문학연구문집》전성호 지음 p.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