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가던 강아지 아아와 고양이 양양이는 골목길 모퉁이에서 맞부딪쳐 그만 둘 다 넘어지고말았습니다.
아아는 손바닥에 생채기가 생기고 양양이는 무릎에 퍼런 멍이 들었습니다.
“눈이 멀었니?”
아아는 일어서면서 발끈 화를 냈습니다.
“네가 눈이 멀었어!”
양양이도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아아와 양양이는 목에 피대를 세워가지고 “네가 눈이 멀었다!”, “네가 눈이 멀었어!”, “너다!”, “너야!” 하며 아옹다옹 다투다가 지나가던 사람들이 말려서야 그만두었습니다.
그러나 제가끔 제 집으로 돌아간 아아와 양양이는 온밤 꿈에서까지도 “네가 눈이 멀었다!”, “네가 눈이 멀었어!”, “너다!”, “너야!” 하며 옥신각신하였지요.
이튿날, 꼬꼬수탉이 꼬끼오- 하고 새날을 알리는 나팔을 불자 붉은 해님이 동산 우에 둥실 솟아올라 온 세상이 환해졌습니다.
아아는 기지개를 켜면서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이죠? 눈은 떠도 캄캄, 감아도 캄캄, 눈앞은 밤처럼 새까맣기만 합니다.
하품을 하면서 눈을 뜬 양양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눈은 있으나마나 뜨나마나 하였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였지요. 아아와 양양이는 하루밤새에 눈이 멀고말았던것이랍니다.
“내 눈이 보이지 않아요.”
아아는 눈이 안 보인다고 눈을 쥐여뜯으며 엉엉 울었습니다.
“내 눈이 보이지 않아요.”
양양이도 눈이 안 보인다고 눈을 비비며 앙앙 울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속이 타고 바빠맞은것은 그 두집의 엄마와 아빠였습니다.
몸이 천냥이라면 눈이 팔백냥이 된다고 합니다. 눈은 그만큼 누구에게나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멀쩡하던 자식의 눈이 갑작스레 멀어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 * * * * * * * *
아아의 엄마아빠는 집까지 다 팔아가지고 우주비행선을 타고 세상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별나라의 새별눈병원으로 갔습니다.
“의사선생님, 우리 애의 눈이 갑자기 멀어버렸어요. 다시 볼수 있게 고쳐주세요.”
“근심 마십시오. 우리 병원은 고치지 못하는 눈병이라곤 하나도 없습니다. 설사 눈이 곯아빠졌다 하더라도 별을 바꿔넣으면 항상 새별처럼 반짝이는 눈이 된답니다.”
이마가 닭알처럼 쭉 벗어진 의사선생님이 자신만만해서 하는 말이였지요.
(이젠 내 눈이 낫겠구나.)
아아는 못내 기뻐서 저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꽃이 피여났습니다.
그런데 새별만능기계로 아아의 눈을 찬찬히 검사하고난 의사선생님은 대머리를 살살 긁으며 중얼거렸습니다.
“참 모를 일이야. 눈엔 아무런 이상도 없잖아?”
그러다가 음- 하고 알았다는듯 아아의 이마를 톡 튕기며 말을 이었습니다.
“이 애는 꾀병을 하고있어요. 보면서도 보이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집으로 데리고 가십시오.”
“뭐, 뭐라구요?”
아아는 너무도 억울하여 갑자기 눈물을 좌르르 쏟고말았습니다.
* * * * * * * * *
“오늘 내리는 비는 왜 이리 뜨스할가?”
엄마아빠와 함께 높고높은 구름산에 올라 하느님께 치성을 드리고있던 양양이는 그 눈물을 비물인줄로 알고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무슨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있니?”
“한맘한뜻으로 하느님께 빌고빌어야 눈이 보인다고 하잖아?”
양양이의 엄마아빠가 양양이를 나무랐습니다.
“예, 알았어요.”
양양이는 또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싹싹 비비였습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께 비나이다. 멀어버린 저의 눈에 해살 한오리를 뽑아다 넣어주옵소서. 별빛 한오리를 뽑아다 넣어주옵소서. 다시다시 밝은 세상 보게 하여주옵소서...”
양양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의학보다는 팔자를 더 잘 믿고있는 양양이의 엄마아빠는 점쟁이할미를 찾아갔었습니다.
점쟁이할미는 양양이의 나이와 태여난 시간을 물어보고나서 입속으로 중얼중얼하더니 양양이는 날을 잘못 받고 태여난 아이기에 그런 화를 입었다는고 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니 구름산에 올라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 빌어야 눈이 보일것이라고 눈이 보이는 그날이면 양양이가 다시 태여나게 되는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점쟁이할미의 말을 곧이듣고 구름산에 오른지 하루가 지났습니다. 이틀이 지났습니다. 사흘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보이겠지.”, “오늘은 보이겠지.” 하고 되뇌이며 손이 닳도록 -하느님께 빌고빌었으나 정성이 모자라서인지 나흘이 지나고 닷새가 지나도 눈은 그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갖고 갔던 쌀도 다 떨어져서 굶고있느라니 배에서는 밥을 달라고 꼬르륵꼬르륵 잇달아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보지 못하고는 살아도 굶고는 못살겠어요.”
양양이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고 졸랐습니다.
엄마아빠는 하는수 없이 양양이를 데리고 구름산을 내렸습니다.
* * * * * * * * *
별나라에 갔다가 고향에 돌아온 아아네는 세집살이를 했습니다.
엄마아빠가 돈벌이를 나가면 아아는 혼자 방안에 꾹 박혀있었습니다. 워낙 바깥에서 뛰놀기 좋아했던 아아는 이렇게 눈이 멀어 사느니 죽기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밥맛도 잃어져 먹는둥마는둥했습니다.
양양이도 만날 집안에 꾹 박혀있었습니다. 그러나 밥만은 잘 먹고 잠도 잘 잤습니다.
어느날이였습니다.
혼자 집을 지키고있던 아아는 죽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빨래줄에 목 매 죽을가? 아니, 주검을 찾지 못하게 강에 빠져 죽어야지...)
아아는 이렇게 생각하고 집을 나와 더듬더듬 길을 걸었습니다. 하늘에는 해가 떴으련만 해가 보이지 않고 거리의 집들도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오리의 바람만 살랑살랑 불어와 달아오른 아아의 이마를 조금씩 식혀줄뿐입니다.
아아의 눈앞에는 잊혀지지 않는 갖가지 일들이 언뜻언뜻 스쳐갔습니다. 재미있던 일… 괴로왔던 일...
아, 이 길이 아니였을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마주오는 자전거와 부딪쳐 넘어졌을 때 “눈이 멀었니?” 하고 남부터 탓했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습니다.
(그 애야 나처럼 눈은 멀지 않았겠지?...)
이제 생각하니 남에게 못할 말을 던진 그때의 자기가 미워졌습니다.
이때 양양이도 이 길을 더듬더듬 걸어오고있었습니다. 밥을 먹고 낮잠만 콜콜 자던 양양이는 오늘따라 웬 일인지 잠이 오지 않아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마치도 누가 부르기라도 하는듯 바깥으로 나왔던것이지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등을 밀어줍니다. 한걸음 두걸음... 그러나 지금 자기가 어디로 가고있는지 몰랐습니다.
양양이도 자기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마주오는 자전거와 부딪쳐 넘어졌을 때 “네가 눈이 멀었어!” 하고 남에게 못할 말을 던진 그 일이 문득 생각나 저도 몰래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땐 내가 왜 그리도 매정했을가?...)
이런 생각을 굴리며 더듬더듬 걷던 양양이는 뭔가에 탁 이마를 부딪고 흠칫 놀랐습니다. 얼결에 “아차!” 하는 소리가 입에서 튀여나왔습니다.
그때 앞에서 누군가
“미안해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제야 양양이는 자기가 전선
대거나 돌담에 부딪친게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미안해요! 참으로 미안해요!”
양양이도 얼른 사과를 했습니다.
순간 양양이는 눈앞이 밝아졌습니다.
아아도 갑자기 눈앞이 환해졌습니다.
“아, 보인다!”
아아와 양양이는 둘 다 똑같이 기쁨의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시 눈을 뜬 아아가 맨처음 본것은 언젠가 골목길 모퉁이에서 “네가 눈이 멀었다!”, “네가 눈이 멀었어!”, “너다!”, “너야!” 하며 아옹다옹 다투었던 그 양양이였습니다.
양양이의 눈에 맨처음 다시 보인것도 언젠가 꿈에서까지도 “네가 눈이 멀었다!”, “네가 눈이 멀었어!”, “너다!”, “너야!” 하며 옥신각신 다투었던 그 아아였습니다.
“미안해, 참 미안했어...”
아아는 그때에 하지 못한 사과까지 했습니다.
“미안해, 참 미안했어...”
양양이도 그때에 하지 못한 사과까지 했습니다.
뒤이어 그들은 벙그레 방그레 웃어버렸습니다.
높은 하늘에서는 해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정경을 굽어보고있었습니다.
땅우에서는 발이 없이도 잘 가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그들의 고운 목소리를 멀리멀리 날라갔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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