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마을뒤산 바위동굴에 큰 구렁이가 살고있었습니다.
길이가 열발 남짓하고 몸뚱이가 절구통만큼 굵다란 놈이였지요.
구렁이는 해마다 아가씨를 하나 잡아먹고나서야 한해동안 동
굴안에서 고스란히 잠을 잤습니다.
그러다보니 마을사람들은 해마다 봄이면 아가씨를 하나 골라 구렁이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그래야 한해를 무사히 보낼수 있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구렁이는 마을로 내려와 그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 집들을 마구 무너뜨리고 마을의 촌장어른을 죽여버렸습니다.
한해 또 한해...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얼마나 많은 아가씨들이 죽었는지 모릅니다.
엄마들은 아기가 긴 울음을 울면 입버릇처럼 “울지 마, 구렁이가 온다.” 하고 으름장을 놓군 했습니다.
아이들이 장난이 좀 심하면 어른들은 꾸짖는다는것이 “구렁이가 눈이 멀었나? 이런 장난꾸러기나 잡아갈게지.” 하고 푸념을 하기도 했습니다.
구렁이는 동굴안에서 자면서도 마을에서 하는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말들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내보냈었는데 오랜 세월 심심찮게 들어오다나니 나중에는 구렁이의 귀에 그만 못이 되여 박히고말았습니다.
(올해부터는 아가씨 말고 아이나 잡아먹어볼가? 아이고기가 더 만만할거야. 아가씨고기는 너무 먹어서 이젠 지겨우니까 입맛을 바꿔봐야지. 그러면 눈이 멀었다는 말도 안 들을거구...)
이런 생각을 한 구렁이는 마을의 촌장어른을 불러
“올해부터는 아가씨 대신 제일 장난꾸러기인 아이를 하나 골라 바치게.
알았어?” 하고 을러멨습니다.
그리하여 마을사람들에게 골치 아픈 일이 새로 생겨났습니다.
구렁이에게 아가씨를 골라 바칠 때에는 나이가 제일 많은 아가씨를 뽑으면 그만이였습니다. 태여난 해를 따져보고 달을 따져보고 날을 따져보고 그래도 안되면 태여난 시간까지 따져보면 아퀴를 짓기가 어렵지가 않았지요.
그런데 마을에서 제일 장난꾸러기인 아이를 뽑자니 하늘의 별따기와 같이 어려웠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제 아이만은 착하고 얌전하고 말을 잘 듣는다고들 하였습니다.
“구렁이가 눈이 멀었나? 이런 장난꾸러기나 잡아갈게지.” 하고 푸념하던 사람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니 제 피와 제 살과 같은 자식을 구렁이밥으로 선뜻이 내놓으려는 부모는 하나도 없었던것이지요.
구렁이에게 아이 하나를 바쳐야 할 날은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때에 바치지 못하는 날이면 구렁이가 마을로 내려와 그 기다란 꼬리를 휘둘러 마을의 모든 집을 마구 무너뜨리고 마을의 촌장어른을 죽여버릴것입니다.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온 마을사람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숨이 한줌만해서 쩔쩔매고있을 때 한 아이가 불쑥 나섰습니다.
“제가 구렁이한테로 가겠어요.”
똥돌이라고 부르는 아이였습니다.
똥돌이는 형제 하나 없는 외아들입니다. 똥돌이 부모는 아기를 여럿 낳았으나 다 죽이고 똥돌이 하나만 살려냈지요. 귀한 자식 이름 천하게 지어주면 장수한다는 말을 믿고 똥돌이라고 이름을 지어주어서인지 참말로 똥돌이는 똥무지에 구을면서도 아무 탈 없이 잘 자라주었습니다.
그런데 죽으러 가겠다고 나선것입니다.
똥돌이 어머니는 펄쩍 뛰였습니다.
“얘야, 안된다 안돼. 니가 어쩌면 온 마을 애들중 제일 장난꾸러기 애란 말이냐? 넌 애비없이 자랐지만 에미한테 곰살궂고 에미의 일손도 잘 거들지 않았느냐? 구렁이한테 가면 죽는다는걸 니 어찌 모르느냐?”
“죄송합니다만 어머니, 제 자식을 아까와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고 장난꾸러기든 아니든 누구 하나 나서지 않는다면 온 마을의 집이 무너지고 마을의 촌장어른도 아버지처럼 죽게 될거예요.”
똥돌이는 제 목숨보다 마을을 먼저 생각하고 남을 먼저 생각한것입니다.
똥돌이 어머니는 더는 아들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의 남편도 일찍 마을의 촌장 으로서 아가씨를 골라 바치는 일이 늦어져서 결국 구렁이에게 죽고말았던것입니다.
“그럼 똥돌이가 구렁이한테로 가는것으로 하자.”
마을의 촌장어른이 이내 아퀴를 지었습니다.
“저, 그런데요...”
똥돌이가 마을의 촌장어른에게 뭘 말하려고 했습니다.
“걱정 말아라.”
마을의 촌장어른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는듯 똥돌이의 말을 가로챘습니다.
“온 마을사람들이 너의 어머니를 잘 보살펴드릴거다.”
“그게 아니고…”
“그럼?...구렁이한테... 가지 않겠다는 말이야 아니겠지?”
촌장어른은 똥돌이의 마음이 바뀔가봐 걱정되였던것입니다.
“그럼요. 한입으로 두말하지 않겠으니 걱정 마세요.”
마을뒤산 바위동굴안에서 구렁이는 눈을 감고 졸면서도 똥돌이와 마을의 촌장 어른이 주고받는 말을 다 듣고있었습니다.
“똥돌이라는 고놈 옹골차기도 하네. 속이 땅땅 여문것만큼 고기맛도 좋을거야. 고놈 빨리 먹고싶다. 마을의 촌장어른은 속이 텅 비였어. 제가 살아날 생각밖엔 없군...”
구렁이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마을의 촌장어른은
“빨리 말해라. 하고싶은 말이 뭐냐?” 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였습니다.
“별거 아니고요, 아이들이 있는 집집을 돌아다니면서 아이들 수자만큼 소쿠리에다 감자를 받아주세요.”
바위동굴속의 구렁이는 눈을 번쩍 뜨고 귀를 - 있으나마나 보이지도 않는 귀지만 - 쫑긋 세웠습니다.
“뭘 하려구 그러냐?”
마을의 촌장어른은 웬 영문인지 몰라 캐여물었습니다.
“제가 워낙 감자를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죽기전에 감자를 실컷 구워먹으려고 그래요. 그럼 구렁이님도 배가 더 부를게 아니겠어요? 아가씨를 잡아먹던 큰 배인데 작은 아이가 들어가면 더 썰썰할수도 있으니까요.”
바위동굴속 구렁이는 고놈의 생각이 기특하다는듯 고개를 끄덕이였습니다.
마을의 촌장어른은 아이들이 있는 집을 돌아다니면서 한 아이에 감자 한알씩 모두 스물하나의 감자를 소쿠리에 받아 똥돌이에게 주었습니다.
“또 한가지 부탁이 있어요.”
“뭔데? 어서 말해라. 할수 있는거면 다 들어주마.”
구렁이는 다시 귀를 쫑긋 세웠습니다.
“제가 혼자 구렁이님한테 갈테니까 누구도 시끄럽게 따라오지 못하게 해주세요.”
“오냐오냐, 꼭 그렇게 해주마.”
마을의 촌장어른은 고개까지 힘껏 끄덕여보였습니다.
똥돌이의 말을 들은 구렁이는
“고놈, 정말 듣기 좋은 말만 하고있네. 마을사람들이 몰려와 울고불고할 땐 정말 귀찮았었지.” 하고 중얼거리며 흐뭇해했습니다.
이튿날아침, 똥돌이는 까무러친 어머니를 이웃집 할머니에게 맡겨두고 마을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바위동굴께로 혼자 갔습니다.
똥돌이는 감자를 담은 소쿠리를 내려놓고
“구렁이님, 마을에서 제일 장난꾸러기인 제가 구렁이님의 한끼 밥이 되려고 왔어요.” 하고 웨쳤습니다.
“그래그래, 어디 보자.”
구렁이는 바위동굴밖으로 커다란 대가리를 내밀고 기다란 혀를 날름거리며 작은 눈으로 똥돌이를 여겨보았습니다. 조그마한 녀석이 눈물코물도 없이 동굴앞에 서있습니다.
“암, 참새는 작아도 고기가 별맛이라 하던가? 너도 작은것만큼 고기가 참 맛좋을거야. 아가씨들은 눈물코물 범벅이여서 먹기가 더러웠었는데 넌 깨끗해서 그대로 삼킨다 해도 비린내조차 안 나겠구나. 좀 아쉬운건 배가 찰것 같지 않을것뿐이지.”
“구렁이님, 그래서 여기에 감자 스물하나를 갖고 왔어요.”
“그거야 네가 구워먹을 감자가 아니냐?”
“옳아요. 그러나 이 감자는 그저 감자가 아니라 마을에 있는 스물 하나의 아이와도 같습니다. 제가 이 감자를 구워먹고나서 구렁이님 배속으로 들어가면 구렁이님은 온 마을의 아이들을 다 먹은것으로 되잖겠어요?”
“옳거니! 그래, 그렇지. 네가 작아서 배 한구석도 차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네 말을 듣고보니 아직 먹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른것 같구나.”
“그렇지요? 그러니 제가 이 감자를 얼른 구워먹을테니까 구렁이님은 좀 기다려주세요.”
“오냐. 난 아가씨를 하나 잡아먹고 한해동안 줄곧 잠만 자다나니 사실은 한해동안 줄곧 굶고있은거나 다름없단다. 지금 배가 몹시 고프지만 네 마음이 기특해서 좀 참고있을테니까 얼른 서둘러라.”
똥돌이는 나무삭정이를 주어다 수북이 쌓아놓고 그우에 감자도 놓고 주먹만한 돌멩이도 많이 주어놓았습니다.
“감자만 놓을거지 돌멩이는 왜 놔? 돌멩이도 구워먹을 셈이냐?”
“구렁이님두, 돌멩이를 어떻게 구워먹어요? 불을 지펴 돌멩이를 달궈야 감자가 빨리 구워지거든요.”
“알았다. 빨리 불을 지펴 굽기나 해라.”
구렁이는 짜증스레 말했습니다.
“예예, 시장하겠지만 좀 참아주세요.”
똥돌이는 얼른 부시돌을 쳐 불을 지펴놓았습니다. 나무삭정이가 활활 타올랐습니다.
이윽고 감자가 굽히는 고소한 냄새가 났습니다.
똥돌이는 부지깽이로 익은 감자를 하나하나 파내서 껍질을 발라 감자를 먹는 한편 불덩이를 모아서 돌멩이를 따갑게 달궈놓았습니다.
“그 구운 감자냄새가 참 고소하다. 나도 먹고싶구나.”
구렁이의 날름거리는 기다란 혀에서 침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구렁이님두, 고기만 먹고 사시는분이 감자가 먹고싶다니요? 하지만 제가 감자를 다 먹은 다음 구렁이님이 저를 잡수시면 구렁이님도 감자를 먹은 셈이 되겠군요.”
“그래그래, 그렇지! 감자가 아직 몇개 남았느냐? 난 배가 고파 죽겠다. 빨리빨리 먹어치워.”
“예, 거의 다 먹었어요. 이제 네댓개만 더 먹으면 돼요.”
똥돌이는 마지막 한개의 감자까지 꿀떡 삼키고 일어나서 불룩한 배를 두드렸습니다.
“야, 배가 부르구나!”
“이놈아, 넌 배가 불러도 난 배가 고파 미치겠다. 얼른 내 입으로 들어오지 못할가?!”
“네, 당장 달음박질해 들어가겠어요.”
똥돌이는 주먹을 쥐고 뛰여가는체하다가 뚝 멈춰섰습니다.
“왜 그래?”
구렁이는 작은 눈을 부릅뜨고 쏘아보았습니다.
“저... 구렁이님이 혀를 날름거리시기에 뛰여들다가 걸릴가봐서요. 혀를 좀 입안으로 거두어들이면 얼른 뛰여들어가겠는데... 그리고 눈을 뚝 부릅뜨고 보니까 무서워지네요. 제발 제가 마음놓고 구렁이님 배속으로 들어갈수 있게 잠간동안이라도 눈을 꼭 감고계셨으면 고맙겠어요.”
“알았다. 눈을 감아줄테니까 빨리 뛰여들기나 해라.”
구렁이는 눈을 감고 입을 쫙 벌렸습니다. 혀도 입바닥에 사려서 목구멍이 훤히 들여다보이였습니다.
바로 이때, 이때였습니다. 참으로 눈 깜짝할 새였습니다.
똥돌이는 번개같이 소쿠리에다 불에 달군 돌멩이를 담아가지고 구렁이한테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서 곧바로 환히 들여다보이는 구렁이목구멍안에 가슴속의 분노까지 함께 확 쏟아넣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구렁이는 아이가 입안에 들어오는줄로 알고 그것을 꿀떡 삼켜버렸습니다.
“앗, 따가와! 이 애가?”
눈을 번쩍 뜬 구렁이는 아이가 소쿠리를 든채 코앞에 서있는것을 보고서야 속은 줄 알았습니다.
“아, 살려줘. 제발!”
구렁이는 이리 꿈틀 저리 꿈틀 몸부림을 쳤습니다. 분노에 달궈진 돌멩이가 구렁이의 배속에서 뿌지직뿌지직 타들어가고있었던것이지요.
“너 같은 놈은 일찍 죽어 없어져야 했던거야! 오늘은 끝장인줄 알아라!”
똥돌이의 야무진 목소리가 바위동굴속에서 메아리쳤습니다.
구렁이는 죽겠다고 뒹굴었습니다. 꼬리가 동굴의 이쪽벽에 쾅 부딪치고 저쪽 벽에 쾅 부딪치군 했습니다.
바위돌이 부서져 여기저기 날리고 살이 찢겨져 바위돌에 붙었습니다.
드디여 바위동굴이 와르르 무너져내려 구렁이가 그속에 묻히고 뻘건 피가 내물처럼 좔좔 흘러내렸습니다.
그 뻘건 피는 구렁이의 피가 아니였습니다. 몇백년동안 구렁이에게 억울하게 죽은 숱한 아가씨들의 피눈물이였지요.
똥돌이는 휘파람을 휘휘 불며 마을로 내려왔습니다.
“똥돌이가 살아서 돌아오다니?”
“아니, 저건 똥돌이의 귀신일거야. 귀신이다!”
똥돌이가 구렁이에게 잡혀먹힌줄로만 알고있던 마을사람들은 똥돌이를 보자마자 귀신이라고 모두들 도망을 쳤습니다.
다만 까무러쳤던 똥돌이 어머니만은 달랐습니다.
“어디 보자, 내 아들이 살아오다니?”
똥돌이 어머니는 신도 신을 새 없이 달려가 똥돌이를 품안에 꼬옥 끌어안았습니다.
얼마뒤 마을사람들은 바위돌에 깔려죽은 구렁이를 제눈으로 보고나서야 똥돌이가 구렁이를 죽이고 살아왔다는것을 알게 되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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