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곳에 하늘바위산이 높이높이 솟아있습니다. 깎아세운듯한 바위가 하늘을 찌르고있어서 그렇게 지어진 이름이랍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하늘바위 밑동에는 바가지 모양같이 옴폭 패인 곳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돌바가지라 부르고 그 돌바가지우의 바위벽에는 누가 썼는지 ‘하늘바위샘물’이란 글귀가 또렷이 새겨져있답니다.
하늘바위 밑동 돌바가지,
말라버린 돌바가지라고
생각지 말아라.
바위품에 가만히
귀를 대보면
세찬 숨소리
쏴- 철썩, 쏴- 처절썩.
한결같은 믿음
한가슴에 지니고
주먹으로 쾅, 쾅, 쾅
바위돌 세번 치면
찰랑찰랑 솟아오르리
맑디맑은 한바가지
하늘바위샘물...
세월과 더불어 이 시는 한입 두입 읊어지고 전설같은 이야기는 마치도 눈덩이를 굴리듯 보태어지고 둥그러졌습니다.
한 총각이 하늘바위샘물을 마시고 외적을 한 주먹에 열놈씩 쓸어눕힌 천하장사가 되였다느니, 한 엄마가 숨진 아이에게 하늘바위샘물을 먹이고 다 죽은 애를 살려냈다느니, 한 늙은이가 하늘바위샘물을 욕심스레 너무 마시고 그만 아기로 돼버렸다느니... 그야말로 듣는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해주었습니다.
달래동 마을에는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서 하늘바위샘물전설을 구수하게 들으며 자란 돌쇠란 소년이 살고있었습니다.
돌쇠에게는 순이란 짝꿍이 있습니다. ‘너는 엄마, 나는 아빠’ 하며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소꿉동무였습니다.
어느 해인가, 달래동 마을에 몹쓸 돌림병이 퍼졌는데 순이는 열이 나 몹시 앓더니 갑자기 두 눈이 멀어버리고말았습니다.
“눈멀어 사느니 죽기보다 할가...”
“죽는다는 말 말아. 내가 있잖아.”
돌쇠는 어깨를 들먹이는 순이를 달래주었습니다.
“니가 뭐길래?”
“난 니 신랑이잖아.”
“그땐 내 눈이 말짱했었거든...”
“눈이 말짱해도 내 각시, 눈이 멀어도 내 각시, 넌 아무 때든 내 각시가 될거야.”
“싫어, 난 죽고 말테야.”
“제발 죽지는 마. 내가 널 다시 찾을 때까지는...”
순이와 이런 얘기가 있은 이튿날, 돌쇠는 마을에서 없어졌습니다. 할아버지가 밭으로 나가실 때 물을 담던 호리병박을 허리춤에 차고, 하늘바위산을 찾아 먼길을 떠난 것입니다.
돌쇠는 하늘바위산이 있다는 동쪽을 향해 고개를 넘고 또 넘었습니다. 그렇게 열두 고개를 넘으면 높디높은 하늘바위산이 있답니다.
돌쇠는 밤이면 큰 나무에 기대여 쪽잠을 자고, 낮이면 앞을 바라보며 걸음을 재우쳤습니다.
돌쇠는 배가 고프면 산나물을 뜯어먹고, 목이 마르면 호리병박의 물을 한모금씩 마셨습니다.
열두 고개를 다 넘고 돌쇠는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고말았습니다.
시간은 얼마나 흘렀는지...
정신을 차린 돌쇠는 일어나서 하늘바위를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무덤같은 산봉이 여기저기 있을뿐, 깎아세운듯한 하늘바위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길을 잃은게 아닐가?’
돌쇠는 울고싶은 마음이었습니다.
이때였습니다.
이름 모를 작은 산새 한마리가 돌쇠에게 포르르 날아왔습니다.
“혼자서 어디로 가는거니?”
작은 산새가 물었습니다.
돌쇠는 작은 산새에게 남모르는 가슴속 사연을 얘기했습니다.
“그런 일이었구나. 내가 길잡이를 서줄가? 하늘바위로 가는 길을 알고있거든.”
“그럼 오죽이나 좋겠니.”
“그런데 아직도 멀리 걸어야 해.”
“하늘끝이라도 따라 갈거야.”
그리하여 작은 산새가 포르르 포르르 앞에서 길잡이를 서고 돌쇠는 작은 산새의 꽁무니를 부지런히 좇았습니다.
또 얼마나 오래 걸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돌쇠는 걷는다기보다 기어가는것 같았습니다.
작은 산새는 얼마쯤 날고는, 뒤떨어진 돌쇠가 따라오면 또 얼마쯤 날곤 했습니다.
“작은 산새야, 아직도 멀었니?”
“응, 아직도 멀기는 하나, 걸은것만큼 가까워졌어.”
돌쇠는 발바닥이 터져 쓰리고 다리가 팅팅 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조금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집을 떠난지 딱 석달 열흘만에 돌쇠는 마침내 하늘바위밑에 이르렀습니다.
아, 하늘우에 깎아세운듯한 바위! 누가 만든 예술작품일가?
여름인데도 꼭대기에 눈이 하얗게 쌓여있는 하늘바위는, 돌쇠의 어린 마음에도 더없이 어마어마하고 또한 거룩해 보였습니다 .
“세상에 이런 산이 있다니?”
“그래, 이 산 저 산 해도 천하명산은 여기야.”
작은 산새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돌쇠는 눈을 크게 뜨고 ‘하늘바위샘물’이란 글귀를 찾아보았습니다. 깎아세운듯한 바위벽에는 이끼만 파랗게 덮여있을뿐이었습니다. 세월과 더불어 글귀가 이끼에 가리워 졌는지 한글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늘바위 밑동의 돌바가지만은 한눈에 알아볼수 있었습니다. 물 한방울도 없어 바짝 말라버린 돌바가지였습니다.
돌바가지 옆 여기저기에는 ‘거짓말’, ‘허튼 소리’, ‘속았다’, ‘믿지 말라’, ‘내가 돌바가지에 오줌을 싸고 가노라’ 따위 락서만 지저분하게 갈겨져있었습니다.
‘내가 잘못 온게 아닐가? 아니,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는데...’
돌쇠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눈을 꼭 감았습니다. 그러자 하늘바위산이 마치도 흰 두루마기를 걸친 할아버지처럼 보여졌습니다.
돌쇠는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쳐 불렀습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메아리가 쩌렁쩌렁 돌쇠의 귀에 울려왔습니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든 돌쇠는 얼른 하늘바위에 다가가 귀를 붙이고 숨을 죽이었습니다.
“쏴- 철썩! 쏴- 처절썩!”
하늘바위속에서는 분명 바다가 설레는듯한 물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위속에 물이 있다니? 바다같은 물이 차있다니?... 몇천몇만년 모여졌기에 이처럼 출렁거리는걸가? ... 아무리 바다같이 물이 많다해도, 바위를 뚫고 방울방울 솟구쳐야 하는 샘물이기에 또한 그처럼 신비한 효험이 있는게 아닐가? ...’
돌쇠는 하늘바위속 샘물 한 호리병박이면 순이의 멀어버린 눈을 환히 보이게 해줄것 같았고, 늙으신 할아버지도 젊어지시게 해드릴것 같았고, 돌림병에 시달리고있는 달래동 마을 사람들의 병도 뚝 뗄것만 같았습니다.
“바위님, 하늘바위님, 맑디맑은 샘물 한 돌바가지만 주옵소서!”
돌쇠는 이렇게 두손 모아 빌고나서, 주먹으로 바위를 쾅 쳤습니다. 돌쇠의 주먹은 터져서 피가 방울방울 돋아났습니다.
그러나 돌쇠는 아픈줄도 모르고 쾅 쾅 두번 세번 바위를 치고 또 쳤습니다.
피는 줄줄 흘러내려 돌바가지를 적시였습니다.
그러자 이게 웬 일이겠습니까?
하늘바위산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돌바가지에는 맑디맑은 샘물이 퐁 퐁 퐁 솟구쳐 올라 넘칠듯 찰랑거렸습니다.
“야, 샘물이 솟아났구나!”
작은 산새은 팔짝팔짝 모두뜀을 하며 기뻐했습니다.
돌쇠는 얼른 허리춤의 호리병박을 풀어, 물속에 넣었습니다. 병목을 넘어가는 물소리가 꼬르륵 꼬르륵 났습니다. 삽시간에 큼직한 돌바가지안의 물은 자그마한 호리병박속으로 거의 빨려 들어가고 밑바닥에 조금 남았습니다.
“작은 산새야, 어서 목을 축여.”
“너도 어서.”
돌쇠는 작은 산새와 함께 나머지 샘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하늘바위샘물은 참으로 신비한 효험이 있는 약수였습니다. 샘물을 마시자마자 돌쇠의 터진 주먹은 가신듯 아물고 온몸에는 날것만 같은 힘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하늘바위샘물이 든 호리병박을 몸에 지니고 한달음에 달래동 마을로 돌아가기는, 문제가 없을것 같았습니다.
“작은 산새야, 내 팔도 너의 날개와 같았으면 좋겠다. 눈 깜짝할새에 집으로 돌아가게.”
“그럼 너도 나처럼 팔을 저어봐.”
돌쇠는 얼결에 작은 산새의 말대로 두 팔을 저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닌게아니라 돌쇠도 작은 산새처럼 하늘을 날수 있었습니다.
“작은 산새야, 나와 같이 우리 달래동 마을로 가서 함께 살자꾸나.”
“...... ”
그러나 이슥하도록 대답이 없어 뒤를 돌아보았더니, 따라오려니 생각한 작은 산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마워, 작은 산새야. 언제나 너를 잊지 않으마...”
돌쇠의 눈에는 이슬같은 눈물이 반짝였습니다.
돌쇠는 석달 열흘 걸어왔던 먼길을 하루새에 날아서 달래동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어귀 느티나무아래에는 돌쇠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짚고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그 동안 10년은 더 늙어버린것 같았습니다.
“할아버지, 제가 왔어요.”
돌쇠 할아버지는 한참만에야 손자를 알아보고 발을 탕 굴렀습니다.
“이녀석아, 어데 갔다 이제야 오느냐? 이 할아비는 속이 타서 재만 남았다.”
“할아버지, 이것은 하늘바위샘물이에요. 어서 한모금 마셔보세요. 꼭 젊어지실 거예요.”
돌쇠는 할아버지의 꾸중에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벙긋 웃으며 호리병박을 내밀었습니다.
‘얘가 머리가 돈게 아닐가?’
돌쇠 할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은 무척이나 목이 마르기도 했으므로 호리병박을 받아 물 한모금 마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수가?
돌쇠 할아버지는, 새우등처럼 굽었던 허리가 쭉 펴지고 흰머리가 검은머리 되고 밭고랑 같은 이마의 주름살도 마치 다리미로 다린듯 반반해져, 대뜸 젊은이 같아 보였습니다.
돌쇠는 너무 기뻐서 얼른 할아버지의 손에서 호리병박을 채가지고 순이네 집으로 뛰어갔습니다. 돌쇠의 각시가 될 순이가 하늘바위샘물을 한모금 마시고 멀었던 눈을 번쩍 뜬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돌림병에 시달리던 달래동 마을 이웃들도 호리병박의 하늘바위샘물을 한모금씩 나누어 마시고 모두 무병장수 했다지 뭡니까.
그리하여 달래동 마을은 장수동 마을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답니다.
세월과 더불어 돌쇠의 이야기는 또 전설처럼 세세대대 전해졌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하늘바위산아래 후손들이 자동차를 타고 그곳에 가서, 전기드릴로 하늘바위에 구멍을 뚫고, 그 약수를 개발하였습니다.
플라스틱병에 넣어 ‘하늘바위샘물표’란 이름을 붙인 이 샘물은 여러가지 광물질이 풍부한데다 티끌만치도 오염되지 않아 비싼 값으로 온 세상에 널리 팔리고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처럼 신비한 효험을 봤다는 사람은 없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