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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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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졸혼(29) 김장혁
2022년 07월 27일 11시 54분  조회:1269  추천:0  작성자: 김장혁


   대하소설 
                졸혼
                                     김장혁
 
            39. 숨박곡질
 
      암흑이 두텁께 지지누르는 령길에 풀냄새가 코를 간지른다. 어데선가 부엉이 우는 처량한 소리가 귀청을 아프게 한다. 찔리개들이 수림에 뒤덮인 산마루 여기저기서 찌르륵거린다.
    풒밭 언덕에 오토바이 한대가 맥없이 쓰러져 잠시나마 달콤하게 쿨쿨 자고 있다. 오토바이 바퀴에는 싯누런 진흙이 더덕더덕 발려 있었다.
       쑥냄새가 물씬 풍기며 신음하는 푸른 언덕에서 나영은 정호의 팔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아물거리는 별을 세고 있다. 오늘도 뭇별은 처량하게 바르르 떨며 눈이 시리게 빛나고 있었다.
      정호와 나영은 온 밤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달리다나니 엉망진창이 되게 지쳤다. 한밤중에 그들은 끝내 지역 법망을 벗어났다고 여기고 잠간 눈을 붙이기로 하였다. 뭇별이 반짝이는 하늘을 지붕으로 삼고 풀벌레들이 찌르륵거리는 풀밭언덕을 구들로 삼고 어둠을 이불로 삼고 힌들 들누워버렸다.
      정호는 경계에 찬 눈길로 주위동정을 살폈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자기 옆에서 모로 누워 두 다리를 오그리고 곤하게 자는 나영을 보고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자기를 따라 풍찬로숙하며 도망치는 가녀린 나영의 두다리를 내려다보노라니 코마루가 시큼해났다.
    정호는 자기 외투를 벗어 조용히 나영의 허리를 스르르 덮어주었다.
      (그저 평범한 직원에 색시로 살았더라면 무슨 이런 고행을 겪겠소? 모두 내가 널 해쳤어. 미안해. 죄송해. )
     자는 나영은 봄바람에 웃는듯한 아름다운 녀자였다. 항상 눈웃음을 살살 짓던 녀자, 한창 싱싱한  복숭아 같은 녀자였다.한입 통채로 떼먹어도 비릿내 나지 않을 것만 같은 색시였다.
     실로 녀자는 잠을 잘 때 제일 이뻤다. 실로  저으기 수줍음을 타며 넘실거리는 수양버드나무 아래 서서 누군가를 가만히 기다리는듯한 숫처녀의 교태, 하늘을 날아게 만들듯 한 고 표정 사람 죽인다. 금방울 은방울 굴리는듯한 청아한 목소리, 나영은 참말로 청순한 녀자, 정호를 뇌쇄시킬 정도로 매력있는 녀자였다.
     정호는 순정이나 영희처럼 눈만 뜨면 앙칼진 목소리로 잔소리하는 녀자는 진짜 짜증났다. 그런 녀자와 살면 살수록 남자들은 수명이 감소된다. 그러나 나영은 남편과 애, 직업마저 다 버리고 목숨을 걸고  자기를 따라왔지만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먹거리나 잠자리 변변찮아도 잔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이런 녀자야 말로 진짜 좋은 녀자, 고운 녀자이다.
     나영은 자꾸 잡소리를 쳤다.
“빨리 달아나라!”
“경찰이 온다!”
“개새끼들이 오기만 해라. 도끼싼장해놓겠다.”
“빨리, 빨리! 강도 온다!”
나영은 온종일 경찰들한테 쫓기우다나니 아마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나영이, 나영이. 깨나오.”
“예~”
나영은 와닥닥 놀라 발딱 일어났다.
“경찰이 왔습니까?”
“아니, 꿈을 꿨소?”
“예- 한창 강도한테 쫓기웠어요.”
나영은 정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우린 언제까지 이렇게 경찰들과 숨박곡질하면서 살아야 하는가요?”
정호는 나영을 품에 꼭 끌어안아주었다.
“이제 인차 숨박꼭질이 끝날 거요.”
정호는 나영의 걀죽한 볼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넘어 쓸어넘겨주었다. 달빛에 휘날리는 검은 머리카락, 공포에 젖은 이마는 당황한 가운데 무한한 정과 한을 머금은듯하였다. 밤하늘 높이 흐르는 구름 속으로 스며드는 맑은 음성에 달빛에 꿈을 잡는 눈매가 항상 새물새물 눈웃음을 지어 퍽 매력적이였다. 그러나 오늘은  달빛 아래 그 눈매에  눈웃음보다도 공포와 고통이 어려보였다.
정호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미안하오. 날 따라 고생시켜서. 한가지만은 믿어주오. 내가 그대를 내 심장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걸.”
“믿어요. 믿지 않으면 그대를 따라 험산준령까지 왔겠는가요?”
“그래. 서로 굳게 믿고 살자. 이제부터 널 곱절로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나영은 머리를  정호 품 속에 더 깊게 파묻으면서 어깨를 들먹였다.
“절대 미안해하지 마세요. 다 제가 최국장님이 좋아서 따라 나선게 아닌가요?”
“날 믿어다오. 꼭 나영을 지켜줄게. 이 목숨 다할 때까지 널 지켜줄게. 행복하게 만들어줄게.”
그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신심 가득히 말했다.
“이제 이 고개를 넘으면 저승사자년도 우릴 찾지 못할게오. 그년이 어떻게 우리 이런 곳에 오리라 생각했겠소?”
나영은 얼굴을 떼더니 정호를 쳐다보았다. 어둠 속이여서 어떤 표정인지는 똑똑히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부드럽고 정겨운 말은 그녀의 표정을 너무나도 빤히 읽을 수 있게 하였다.
 “최국장님, 전 자꾸 경찰들한테 쫓기우는  악몽을 꿉니다. 우린 언제든지 붙잡힐 수 있잖아요? 붙잡혀 자유를 구속받기 전에 나머지 인생을 즐기면 어때요?”
정호는 기다리기라도 한듯 기뻐했다.
“그래. 즐겨야지.”
“저는 모든 걸 최국장님께 주고 싶어요. 마음도 몸도 모든 걸 말이예요.”
“그래?”
나영은 나직이 말했다.
“네. 바로 여기서 말이예요. 절 처음 사무실에서 만났던 때처럼  뜨겁게 즐겁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 말소리는 그녀가 해설원시절 하던 해설사처럼 발음이 너무나도 똑똑했다.
   정호는 너무나도 기뻐 나영을 안고 일어나 한바퀴 빙 돌려주었다.
“추격”이란 일본 영화의 남녀 주인공들이면 어디 이들 같겠는가. 그들이 어찌 정호와 나영처럼 야외 풀밭에서 랑만적이고 로맨틱한 랑만을 즐겼겠는가. 
      하늘에 붕- 뜨는 기분에 잠겨 어둠 속을 헤집고 뭇별들이 반짝이는 어둠을 꿰뚫고 구중천에 날아올라간다.
숨박곡질하며 추격당하던 모든 고통과 공포, 스트레스가 한 순간에 어둠과 함께 산산히 부서져 사라진다. 
      찬란한 아침햇살이 은침을 주어다 주옥알을 주어 주옥목걸이를 꿰는 순간순간 희열을 씹어삼킨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동산마루가 희붐히 밝아오는 하늘과 구불구불한 경계선을 맥없이 허물고 있었다. 그들의 자유를 지꿎게 얽동이고 내리누르던 어둠은 물러가고 아침 햇살이 몇가닥의 금침을 대지에 내리 꽂는다. 찬란한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영은 정호의 팔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고 더럭 겁났다.
그녀는 옆에서 코를 드렁드렁 구르는 정호의 몸을 가볍게 흔들었다.
“최국장님, 국장님,”
정호는 벌떡 일어나 앉으며 물었다.
“어째?”
나영은 곤기 풀린 쌍까풀 청포도눈을 치켜뜨고 주위를 살피면서 종알거렸다.
“좀 쉬였는가요?”
“그래. 잠간 눈을 붙였지.”
정호는 팅팅 부은 우멍눈을 손으로 부비였다. 기실 그는 자는척하며 무시로 실눈을 살며시 뜨고 나영의 일거일동을 살폈다. 그녀가 고행을 겪으면서 변심할가봐 겁났던 것이다. 제일 가까운 친구가 제일 두려운 적이 될 수도 있었다.
나영은 정호를 마주 바라보았다.
“자리를 뜨는게 옳지 않는가요?”
“그래. 이 자린 너무 오래 있을 곳이 못돼.”
쫓기는 몸들인지라 풍찬로숙하면서 련 며칠 야반도주해야만 했었다.
정호는 배낭을 메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잠간만.”
나영은 일어나 정호 품에 얼굴을 묻었다.
정호는 나영을 꽉 껴안아주었다.
“모든게 풀릴게야. 우린 꼭 저승사자들을 떼버리고 자유세상에 갈 거야.”
나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우린 꼭 행복한 앞날을 맞이할 거예요.”
“어서 가자.”
정호는 오토바이쪽으로 발걸음을 뗐다.
“잠간만.”
그때 나영이 정호 팔을 잡았다.
정호는 몸을 돌리며 나영에게 눈길을 돌렸다.
(혹시 마음이 변했는가.)
순간 정호는 경계심이 부쩍 동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주 상냥한 표정을 지었다.
“뭐? 할 말이라도 있나?”
“예. ”
나영은 정호 품 속에서 머리를 떼고 물었다.
“우리 지금 어디까지 왔는가요?”
정호는 손목시계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타성에 들어섰소.”
나영은 저으기 놀랐다.
“혹시 로씨야로 도망가는 건 아니죠?”
“가면 안돼?”
“거긴 강도가 욱실거린다던데요. 그런 델 가서 어떻게 살아요?”
“로씨야 갔다가 맞갓잖으면 일본으로나 한국으로나 가버리지.”
그윽한 정이 담긴 눈길로 번대머리 아래 우멍눈을 올리다 응시했다.
“려권도 없는데.”
정호는 배낭을 끌러 열어보였다.
숱한 가짜려권이 드러났다.
“근심하지도 마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도망가야 하는가요? 도대체 최종목적지는 어딘가요?”
정호는 한숨을 후- 내쉬였다.
“우리 목적지는 자유롭게 사는 세상이야. 썩어빠진 낡은 도덕관념의 거미줄에 묶이지 않고 사람의 잠재본능과 성자유를 본연 그대로 펼 수 있는 데로 가는 거야.  개성해방과 성해방을 맘껏 하고 소리치면서 살 수 있는 세상이 최종목적지야.”
나영은 허구픈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멀고도 먼 추상적인 목적지군요. 저는 최국장을 따라와 꿈을 꾸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지구촌 어디에 있는가요? 굴레 벗은 말처럼 살려는 거군요. 너무나도 허무한 꿈 같은 자유세상이군요.”
“우린 꿈대로 리상세계에 가서 맘껏 살자.”
정호는 말수가 적었다. 그런데 이쁜 아가씨들 앞에서는 쉴새 없이 횡설수설했다.
숱한 수사일군들한테 쫓기우는 오늘 새벽에도 그는 나영한테 강의하듯 하였다.
“들어보오. 지금 내 숱한 친구들이 날 비도덕적이라고 하면서 날 왕따로 만들었소. 뭣 때문이겠소. 그들은 내가  형수이자 처제 되는 영희를 가로채 애까지 낳게 했다고 날 세상 못쓸 놈이라고 하오.”
“그거야 그렇죠.”
나영은 솔직히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녀자 없어도 어떻게 처제를 다칩니까? 친구 안해를 다치면야 친구들이  최국장을 량심없는 놈이라고 하기야 마련이죠.”
정호는 답답해 가슴까지 탕탕 쳤다.
“내 말 좀 듣소. 이건 모두 오해요. 오해.”
나영은 오토바이 쪽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오해라니요?”
정호는 나무가지를 꺾어쥐더니 오토바이 바퀴에 묻은 진흙을  긁어버리며 뒷말을 이었다.
“들어보오. 사실 순정과 영희는 둘 다 내 제자였소.”
“그게야 진작 알죠.”
“자, 오토바이에 앉소.”
정호는 나영이 오토바이 뒷좌석에 앉기를 기다려 배낭을 메고 오토바이에 올라 탔다.
부르릉, 브르릉.
오토바이는 가벼운 엔진소리를 내면서 강가로 내리달렸다.
“잠간!”
“어째?”
“세워요!”
“소변 보겠소? 금방 세웠을 때 눌게지. 여긴 오래 있을 곳이 못되오.”
“세워요.”
정호는 두덜거리면서도 별수 없이 오토바이를 멈춰세웠다.
나영은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무릎을 털썩 꿇고 물앉아 한숨을 호 내쉬였다.
“맥이 풀려 더 못 가겠어요.”
정호는 그저 억지로 가자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느꼈다.
나영은 가녀린 어깨를 들먹였다.
“아들애랑 어떻게 보내는지? 아들애 생각하면 죽을 것만 같아요.”
정호도 무릎을 털썩 꿇고 나영의 두 어깨를 꼭 끌어안고 다독여주었다.
“나영은 지금 도망치는게 옳소. 생각해보오. 나영이 탐오범으로 감옥에 들어가면 아들애가 어떻게 되겠소? 머리를 들고 학교에나 다니겠소? 아예 아들애 시선에서 사라지면 적어도 애한텐 범죄자 엄마란 딱지는 붙진 않을게오. 집에 애비 있으니깐. 아들애를 건사하겠지. 너무 근심하지 마오. 우리 목적지에 가서 안착되면 아들애를 가만히 데려가잔 말이오. 난 나영의 아들애를 내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하면서 키워주겠소.”
나영은 정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상해 아들에 손자까지 찾아내가지구서두 내 아들을 잘 키워줄가?)
그러나 최국장 말을 믿는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영은 후회했다.
(애까지 버리고 이게 무슨 개고생이냐?)
진짜 녀자들 마음이란 갈대와 같다고나 할가. 이래서 녀자들은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두가지 생각을 한다고 하지 않는가.
정호는 숱한 녀자들을 다뤄보았기에 녀자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들애 이름이 뭐지?”
“성림이.”
나영은 나직이 애 이름을 불렀다.
정호는 가슴을 치며 다짐했다.
“하늘땅에 맹세하오. 이제부터 성림인 내 친아들이오. 내 만약 제 아들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천벌을 면치 못할 것이오. 하느님이여, 우리 성림을 보우해주옵소서.”
순간 그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정호를 활 밀어버리고 땅을 치면서 대성통곡쳤다.
“아이고, 성림아! 엄마 나쁜 엄마야! 널 버리고 어디로 도망가!”
당황해난 정호는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우멍눈으로 주위 동정을 살폈다.
어데선가 오토바이 소린지 들리는 것 같았다.
“나영이, 어서 여기서 도망치기오. 경찰들이 오는 것 같소.”
화닥닥 놀란 나영은 황급히 오토바이 뒤좌석에 올라탔다.
정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고 오토바이를 몰고 터덜터덜한 호박길을 달렸다.
“모두 날 처제를 다쳤다고 욕하지만 내 말 들어보오. 난 예술대학에서 무용교원 할 때 벌써 영희를 사랑했고 량성관계까지 발생했단 말이오.”
나영은 뒤에서 코웃음쳤다.
“픽, 미성년인 영희 언니를 재꼈다는 걸 온 문화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몇인가요? 흥!”
“로실히 말해 그 땐 난 진짜 순정보다 영희를 더 사랑했소. 그래서 영희하구 가만히 자주 살았소.”
“무용강당에서 영희 언니를 재꼈다더군요.”
“그래. 이제야 속일게 없지.”
턱!
오토바이가 돌부리에 부딪쳐 삐둘거리며 하마트면 힌들 넘어질 번했다.
“오토바이나 잘 모쇼.”
“근심하지 마오.”
“그런데 왜 순정언니하구 살았는가요?”
“그때 부시장이였던 순정의 아빠가 날 사위를 삼으려고 욕심냈지.”
늙은 너구리는 또 거짓말로 나영을 미혹시키고 있었다. 그런줄도 모르고 나영은 아주 흥미진진해 곧이듣고 있었다,
“나도 생각해보니 시장네 무남독녀 순정과 결혼하면 전도개척에 나을 것 같더란 말이오.”
“그래서 영희를 헌 신짝 버리듯이 차 버렸겠구만요.”
“아니오. 난 사랑하는 영희를 아까운대로 문걸한테 소개해줬단 말이오. 사랑하는 녀자를 친구한테 줘 보낼 때 내 심정인들 오죽했겠소. 진짜 칼로 심장을 찌르는 것만  같았소. 그렇게 아까운 영희를 문걸한테 줬는데 내 량심없단 말이오? 친구들도 너무 하지 않고 뭐요?”
“그때까진 글쎄 그렇다 치고. 영희언니 결혼한 후에도 자꾸 데리구 살아 임신까지 시킨 건 아니지요. 그러니깐. 친구들이 모두 최국장을 량심없고 친구 의리도 없는 서문경 같다구 하지.”
“그만, 그만. 너까지 왜 이래?”
정호는 오해를 풀려다가 오히려 나영의 조롱을 받았다.
그들은 어느새 산에서 다 내려와 강을 따라 제방뚝으로 달렸다. 량쪽에 버드나무 우거지고 모래불뚝이여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기 제창 좋았다.
그들이 한창 말을 주고 받으면서 달릴 때였다. 제방뚝 옆길에서 오토바이 한대가 씽 달려 제방뚝에 날아올라왔다.
오토바이에는 한 사람뿐이였다.
“서랏!”
오토바이가 씽 날아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마나!”
나영은 정호 허리를 꽉 껴안으며 비명을 질렀다.
삑-
정호가 급히 오토바이를 급정거했다.
여겨보니 다행히 경찰은 아니였다.
복면까지 한 날강도가 시퍼런 비수를 빼들고 앞길을 막았다.
웬 일일가?
그 강도놈은 정호와 나영을 여겨보더니 천천히 비수를 내리고 뒤로 주춤 물러섰다. 그러나 강도놈은 생각이 바뀌였는지 인차 비수를 되쳐들었다.
“미녀와 배낭만 두고 갓!”
한어를 답새기는 걸 보아 한족 같았다. 그런데 퍽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정호는 랭소하며 오토바이에서 내렸다.
    정호는 나영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나영은 질겁해 뒤로 비실비실 물러나다가 한아름 되는 버드나무 뒤에 달려가 숨어버렸다. 그녀는 정호의 솜씨를 믿었다. 하지만 타향이라 겁나 손에 땀을 그러쥐고 이쪽을 바라보았다.
     “죽어봐라!”
날강도는 비수를 빼들고 씽 덮쳐들었다.
“가만!”
정호는 손사래치면서 뒤로 물러섰다.
“호한! 배낭을 줄게. 제발 아가씨만은 다치지 마오.”
“그럼 그렇겠지.”
날강도는 비수를 거두면서 정호가 벗는 배낭을 건너다 보았다.
“배낭을 버렷!”
정호는 배낭을 벗어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날강도는 탐욕에 찬 눈길로 배낭을 뚫어지게 쏘아보면서 고함쳤다.
“돌아서 갓!”
“예, 예. 옜소. 가지고 가오.”
(저 놈 또 당했어.)
버드나무 뒤에서 나영은 미국에서 정호가 흑인 강도를  순식간에 때려부시던 장면을 피뜩 련상했다.
     날강도가 다가와 허리를 굽히고 배낭을 쥐려고 했다.
     찰나, 정호가 홱 돌아서며  발길을 날렸다. 면바로 날강도 손목을 탁 걷어찼다.
     비수가 저만치 날아가 제방뚝에 떨어졌다.
     쟁강!
정호는 재차 주먹으로 엉거주춤 서 있는 그 놈의 아랫배를 꿍 들이쳤다.
 “억!”
비명소리와 함께 날강도는 배낭을 툭 떨어뜨리고 배를 부둥켜안았다.
“얏, 핫!”
정호는 날아올라가면서 무릎으로 날강도 턱주가리를 올리걷어찼다.
“으악!”
뒈지는 소리.
날강도는 손도 못 쓰고 털썩 무릎을 꿇고 푹 꼬끄라졌다.
“죽어랏!”
정호는 풀쩍 뛰여오르면서 두 발로 짓밟아버리려고 했다.
“가만! 살려주쇼!"
조선말로 애걸하는 소리에 정호는 고양이처럼 그놈 옆에 날아내렸다.
"얏, 핫!"
정호는 기합소리를 지르며 오른주먹으로 땅바닥을 질렀다.
"뚱!"
땅바닥의 넙죽한 돌이 산산히 박산났다.
강도나 나영이나 눈이 뒤짚힐 정도로 휘둥그래졌다.
"최선생님! 냅니다. 살려주십시오!”
아가리 장마당이 된 그 놈은 황급히 연신 조선말로 고함쳤다.
“누구냐?”
정호는 그 놈 날강도의 낯을 가린 복면보를 훌 벗겼다.
“아니, 이게!”
그 날강도는 제자 허병칠이 아닌가.
정호는 아연실색했다.
“이게 허부장 아니냐? 어떻게 돼 여기까지 와 이런 짓 해?”
정호는 허병칠이 정희를 살해하고 도망친 것을 대개 짐작하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했다.
허병칠은 부러진 이빨을 뱉어버리고 아가리 피를 쓱쓱 닦으면서 일어나 앉았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죽이십시오.”
“이놈아, 아무렴 날 뻔히 보고서도 시퍼런 비수를 휘둘러?”
정호는 불어댔다.
“내 이젠 늙었어. 허나 네 같은 강도 놈은 둘이 달려들어도 적수가 아니야.”
정호는 유명한 바레리나였지만 태권도 6단과 유도 4단 사범이기도 했다. 평소에 사생들이나 동료들 앞에서 전혀 솜씨를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생들이나 동료들이나 그의 솜씨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나영이 이젠 두번째로 정호의 솜씨를 직접 목격했을뿐이다.
(진짜 무서운 놈이야!)
나영은 또 감탄했다.
“선생님, 저는 이젠 살 길이 없습니다.”
“웬 말이냐?”
“정희하구 하영이 짜고 들어 날 물어먹었습니다. 정희란 년은 글쎄 나보고 돈 60만원을 가져오라잖겠습니까? 돈 가져오지 않으면 이전에 하영을 데리고 논 걸 대학교 당위에 몽땅 고발하겠다고 하잖겠습니까?”
"건 이전에 병원에 와서 내게 한 소리구. 하영도 그랬는가?"
"예. 나보고 돈 50만원 가져오랍디다. 안그러면  대학교에 고발하겠답디다." 
정호는 나영을 오라고 손짓해 부르면서 병칠한테 물었다.
“이전에 내 뭐랬니? 정희하구 하영의 입을 틀어막으라고 했잖았니?"
"가져다 줬는데두 쓸데 없습니다. 꼭 항아리만한 욕심독에 돈을 꼴똑 챙기려고 듭디다."
"그래서? 강도로 됐느냐?”
허병칠은 제방뚝에 펑덩 들어앉았다.
“내 어데 가서 불시에 100만원 가져 옵니까? 집을 팔자고 하니 녀편네 정신나갔다고 딱 잡아떼지. 선생님, 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습니다. 정희하구 하영한테 돈 가져가지 않으면 끝장납니다.”
정호는 무릎을 꿇고 앉으면서 병칠의 수염이 더부룩한 병칠의 볼을 매만졌다.
“이놈아, 정희는 왜 죽였어?”
정호는 이렇게 말하려다가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꿀꺽 삼켜버렸다.
나영은 다가와 적개심과 조소를 입귀로 흘리면서 허병칠을 쏘아보았다.
“얘, 그래도 어찌 길러준 개 발뒤축 무니? 응? 임마, 널 대학교 학생부장으로 키워준 선생님한테 비수를 휘두르다니? 흥!”
허병칠은 자포자기하는 투로 토설했다.
“최선생님도 량심없습니다. 사제간에 어찌 하영을 가무단 부단장으로 임명하는 대가로 70만원이나 요구합니까? 내 하영을 데리고 논 일을 정희란 년이 어떻게 압니까? 하영이 말했을 순 없구. 십중팔구는 최선생님이 말했겠지. 아닙니까?!”
정호는 병칠이 정희를 살해했다고 이젠 확정하게 됐다.
(이놈은 이젠 살인마, 강도로 다 됐구나.)
“그래서 내게 칼을 휘둘렀니?”
“예. 어째, 금방 달려들었다가 선생님인 걸 보고 그만둘가 했댔습니다.  도둑놈은 살려줘도 정을 버린 놈은 살려두지 않는다고. 흥! 날 배신했는데 최선생님이 다 뭡니까? 이틀이나 굶어서 이젠 죽게 됐는데.”
“그래? 이 배은망덕한 놈아.”
정호는 경계심을 회복하면서 일어났다.
허병칠은 정신나간듯이 게두두벌거렸다.
“욕하겠으면 욕하고. 공안국에 잡아가겠으면 잡아가구. 여기서 죽이겠으면 죽이고 마음대로 하십시오. 아무래도 죽을 바엔 선생님 손에 죽는게 낫지.”
정호는 어떻게 병칠을 리용해 먹을가고 속궁리를 번개처럼 굴렸다.
그는 피뜩 묘수가 떠올랐다.
“나영이, 배낭에서 과자를 가져오오.”
나영은 아직도 겁나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자기 배낭에서 과자 한 봉지를 꺼냈다.
“한봉지 더 꺼내오.”
나영은 허병칠을 아니꼬운 눈길로 흘끔 곁눈질하면서 도도거렸다.
“이젠 두봉지 밖에 없는데요. 다 주고 우린 뭘 먹고 살아요? 흥!”
정호는 자비를 베푸는 척했다.
“잔말 말고 가져오라는데두. 그래도 사제간인데 굶어죽게 내버려 둘 순 없잖소?”
나영은 울며 겨자먹기로 한봉지만 남기고 다 꺼내다 주었다.
정호는 과자봉지를 병칠한테 내밀었다.
“옛다, 먹어라. 참 불쌍하구나. 어쩜 허부장이 이런 신세 됐느냐? 다 내 잘 못이야. 내 잘 가르치지 못한 때문이야.”
허병칠은 과자봉지를 받아쥐자마자 게걸스레 과자를 입 안에 처넣고 우물우물 씹어 삼켰다.
정호는 웃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돈지갑을 꺼내 병칠한테 통채로 주었다. 지갑에는 백원짜리 댓장 들어 있었다.
“옛다, 써라. 굶고 다니진 말라. 이제라도 강도질 하지 말고 가서 자수해라.”
병칠은 넙적 받아 웃호주머니에 걷어넣었다.
“지갑까지 다 주고 우린 어떻게 관광해요?”
정호는 반쯤 돌아서서 손목시계를 조절했다.
나영이 볼라니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것이였다.

     최국장, 정희는 십중팔구 허별칠이 살해했소. 정희와 하영 돈 백만원 가져오라고 그를 협박했다고 살해한 혐의 있소.
                                                    신고자 최정호.
 
     정호는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후 인차 삭제해버렸다.
     순식간에 모든 걸 끝냈다.
     나영은 정호 뜻밖의 행위에 섬찍해났다. 
    (진짜 음험하구나. 금방 제자라고 생각는척하구. 어쩜 저승사자년한테 고발해?)
    허병칠은 눈치채지도 못하고 정호 눈치를 흘끔거렸다.
    정호는 손목시계를 끌러냈다.
    "옛다. 가져라."
    “걸 다 줘요? 발뒤축 무는 개놈인데.”
정호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야. 그래도 허나새나 사제간이 아니오. 이 놈도 막다른 골목에 드니  별수 없어 그랬겠지. 스승인데 바다처럼 넓은 흉금으로 용서해야지.”
정호는 병칠한테 다가가 보석손목시계를 내밀었다.
“스승으로선 마지막으로 줄게 이것 밖에 없구나. 바쁠 때 팔아서 써라. 이제 보니 바뗄이 거의 나갔구나. 이제 태양열을 받으면 자동으로 켜질 수 있다."
         
병칠은 보석이 반짝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너니 넙쩍 엎드려 절까지 했다.
“선생님, 구명은혜 백골난망입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치자 허병칠은 엉덩이 먼지를 툭툭 털며 일어나더니 제방뚝에 가서 비수까지 찾아들고 오토바이 쪽으로 다가갔다. 그 놈은 제방뚝에 벗겨진 복면보까지 주어 챙기더니 오토바이를 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꼬리빳빳해 도망쳤다.
“헤이, 어쩜 허부장이 날강도까지 됐어? 죄악이야, 죄악이야.”
정호가 도리머리를 저으며 먼지 새뽀얗게 일구면서 달아나는 혀병칠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놈아! 다신 내 앞에 나타나지 말라! 천벌맞을게야!”
나영은 울상을 지었다.
"잘도 한다."
"왜 또 이래?"
나영은 눈이 새똥그래졌다.
"이보십시오. 최혜영 국장한텐 왜 메시지 보냈습니까? 그럼 그 저승사자년이 우리 위치를 알게 아닙니까?"
"허허허.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면서."
정호는 오토바이 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가면서 나영을 힐끔 돌아보더니 득의양양해 말했다.
"문자메시지가 우릴 구할 거야."
나영은 도리머리를 홰홰 저었다.
"허병칠이 정희를 죽인걸 제보했다고 최국장이 우릴 놔줄 거 같아요? 오산입니다. 오산. 최국장도 어리석을 때 있구만요."
"아니야. 하나는 우린 죽기 전까지 정의롭게 산 것으로 되지."
"감옥에 끌려가 죽은 담에 정의용사란 비석이나 세워주겠구만."
"더 중요한 다른 건 말이야. 그 메시지  최국장이 보면 내 보낸 걸 알 거 아니야?"
"그럼, 우리 지금 도주위치 다 폭로됐지. 헛, 참. 기막힌 량반이라구."
정호는 헬멧을 바로잡아쓰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제부터 허병칠이 내 대신 시계를 차고 달아다니게 되지. 그럼 최국장은 허병칠을 우리로 알고 추격할게 아니냐? 허병칠이 나포되면 우린 정부를 위해 살인범을 나포해 립공속죄한게 되지. 또 우린 수사일군들이 허병칠을 추격하는 새 유유히 법망을 벗어날 수 있지."
"만약 저 놈이 손목시계를 팔아먹으면 허사잖아요?"
"팔면 더 좋지. 손목시계를 산 면목도 모를 놈이 또 우리 대신 아무데나 도망다니게 되지. 허병칠은 나포되면 우릴 불게지만 시계 산 놈은 우릴 본 적도 없잖아? 경찰들은 또 그 놈을 추적할게구. 그럼 우린 숱한 시간을 벌어 멀리 멀리 도망칠 수 있지.ㅇㅎㅎㅎ."
"호호호. 참 묘수구만요."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기지."
정호는 엄지와 식지를 딱 튕겼다.
"건데 그 좋은 시계 아깝습니다."
"저 배낭엔 더 좋은 시계 가득해."
"그래요?"
"음. 어디 두고보자. 이번 숨박곡질에서 누가 이기는가?"
"당연히  최국장님의 영명한 령도하에 우리 이기지. 호호호."
"가자! 사랑하는 나영이."
"최국장 만세!"
나영은 정호를 와락 끌어안아 들어올렸다.
    그들은 한바탕 웃고 떠들며 오토바이를 타고 허병칠이 사라진 반대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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