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머리에 구름을 두른 천산산맥이 바라다 보이는 도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의 수도 알마티다. 옛 소련 시절부터 현지 고려인의 한글 교육과 전통문화 보급에 힘써 온 원로시인 양원식씨가 자택 앞에서 괴한의 피습을 받아 비명에 숨졌다. 당시 74세. 2006년 5월의 일이다.
시인은 알마티에서 한글판을 발행하는 고려일보 주필을 지냈다. 1923년 연해주에서 ‘선봉’이란 이름으로 창간돼 레닌기치란 이름을 거쳐 오늘에 이른 고려일보는 그때까지 시인의 일터였다. 그가 생존해 활동하고 있던 2005년, 필자는 시인의 안내로 고려일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후리후리한 키에 따뜻한 정감이 남달랐던 그는 그러나 역사의 물결에 휩쓸린 영원한 경계인이었다.
그가 쓴 시에 그의 조국은 세 개, 즉 조선과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라고 기록돼 있다. 북한 출신으로 한국전쟁 중임에도 모스크바 영화학교로 유학했을 만큼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는 당시 동료 학생들과 함께 평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망명자의 길을 걸었다. 그의 재능은 청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고려인 시인의 표본으로 남았으나, 원인도 습격자도 밝혀지지 않은 채 비운의 생애를 마감했다.
◆고려인 문학·음악 등에 큰 영향=‘북한이 버린 천재 작곡가’ 또는 ‘카자흐스탄의 윤이상’이란 호칭을 가진 정추는 어떤가. 그는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를 지냈으며 모스크바 유학 중 다시 소련으로 망명했다. 세계 3대 음악원 중 하나인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대학 최초로 졸업 작품 만점을 받았고, 소련의 세계 최초 우주비행 성공 기념행사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2010년 필자가 알마티에서 만난 그는 여러 차례 살해 위험을 넘겼다고 술회했다. 남북한에서 모두 외면당한 이 불우한 작곡가는 올 6월 90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카자흐스탄 음악계의 거장으로 살았다.
문학평론가이자 문필가였던 정상진(필명:정률)도 있다. 북한 정권 수립에 일조하고 문화선전성 제1부상을 지냈으나 결국에는 축출돼 말년을 알마티에서 보냈다. 그의 『아무르만에서 부르는 백조의 노래』는 ‘북한과 소련의 문학·예술인들 회상기’란 부제가 붙어 있으며, 국내에서도 출간돼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정추 선생이 별세한 이틀 뒤에 역시 90세의 천수를 누리고 그 뒤를 따라갔다.
알마티에는 이들 외에도 한진·리진·연성용·라브렌티 송 등 그 지역에서 소중하게 인정받는 문인이 많다. 소련 국적 고려인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는 소설 『켄타우로스 마을』 『다람쥐』 등을 쓴 아나톨리 김이다. 『해바라기 꽃잎 바람에 날리다』의 작가 미하일 박도 문명이 높다. 이제 후대 5·6세대에까지 이른 이 고려인 사회는 그 인구가 50만 명을 넘었다.
이 모두 바람 거세고 구름 높이 흘러가는 땅, 중앙아시아 대륙에서의 일이다. 북한은 물론 이들을 한민족의 울타리로 끌어안아야 할 한국에서조차 그 동안 아무런 손길도 건네지 않았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비극 여러 편이 무슨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역사 과정을, 강 건너 불 보듯 바라만 보면서 지나온 세월이었다. 그것은 남북한 이념과 체제의 갈등, 그리고 분단시대 곤고한 삶의 역정, 그 실상을 이국에서 증거한 형국이었다.
◆조선족 문학의 개화=19세기 후반부터 한민족은 구(舊)소련 지역으로 이주해 고려인 집단을, 중국으로 이주해 조선족 집단을 형성했다. 이들의 문단 구성 초창기, 구소련에 조명희(1894~1938)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안수길(1911~77)이 있었다. 중국 내부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가 된 조선족은 20세기 이후부터 문학 활동을 전개해 문학동인 단체 북향회를 발족하고 ‘북향’이라는 문예지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향토문인으로 작가 김창걸과 시인 리욱 등을 배출했다.
이 무렵 중국으로 건너간 강경애가 거기서 작품을 썼고, 최서해는 거기서 얻은 체험을 국내로 돌아와 작품화했다. 중국 조선족 문학을 대표할만한 작가로 꼽히는 『격정시대』의 김학철은 항일투사였던 자전적 기록을 소설에 담았고, 그와 같은 작품의 내용은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한 전형이 됐다. 현재 수많은 한글 문학이 창작되고 있는 중국 동북3성의 조선족 거주민은 200만 명을 넘는다.
북한과의 연접성을 위주로 기술한 만큼, 동포 60만 명이 넘는 일본이나 200만 명이 넘는 미국의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을 상술하지 못해 안타깝다. 특히 일본의 조총련계를 중심으로 한 ‘문학예술가동맹’의 문학적 축적은 보다 자세한 논의가 필요하다. 어쨌거나 김달수·김석범·이회성·양석일·이양지·유미리·현월·가네시로 가즈키 등이 이룩한 재일 조선인 문학, 김용익·김은국·노라 옥자 켈러·차학경·이창래·수잔 최·캐시 송 등이 이룩한 재미 한인 문학의 빛나는 성과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문학의 영역 확장=이들이 한민족 문학사의 텃밭에 핀 귀한 꽃무리라면, 이들을 잘 가꾸고 그 명맥을 이어가도록 할 막중한 책임은 ‘한국문학’에 있다. 그 책임의식으로 남북한 문학, 납·월북 문인 문제를 디아스포라적 차원에서 살펴볼 때 덧붙여 언급해야 할 문제가 있다. 이 한민족 문화권의 논리와 의미망 가운데로, 해방 이래 한국문학과 궤(軌)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던 북한문학을 초치하는 일이다. 북한문학에 대결 구도의 인식으로 접근해서는 접점이나 소통의 전망을 마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 여기에 한민족 문화권의 운동범주를 원용할 수 있겠다. 이는 남북한 문학을 포함해 재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 재중국 조선족 문학, 재일 조선인 문학, 재미 한인 문학 등 재외 한글 문학의 전체적인 구도 속에서 남북한 문학의 지위를 자리매김 해 나가자는 논리이다. 그리하여 남북한 문학이 보다 자유롭게 만나고 그 효력의 대외적 확산을 도모하며 통일 이후에 개화(開化)할 새로운 민족문학의 장래를 예비하자는 것이다.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비핵화 논쟁의 당사국들이 벌이는 6자회담을, 문학의 이름으로 옮겨놓은 구도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 ‘힘’의 충돌이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6자회담이란 정치적 이슈가 등장하기 전부터 남북한과 네 지역의 디아스포라 문학을 합하여 ‘2+4시스템’으로 불러왔다. 이 길은 남북한 문학, 더 넓게는 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의 교류와 연대를 내다보는 새 통로이며, 정치나 국토 통합에 우선하는 문화통합의 추동력이 될 수 있다.
김종회(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김종회=1955년 경남 고성 출생. 88년 ‘문학사상’으로 평론가 데뷔. 평론집 『위기의 시대와 문학』 『문학과 예술혼』 『디아스포라를 넘어서』 등. 김환태평론문학상·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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