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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오브듀티 시리즈는 GTA와 함께 전 세계 가장 많이 팔리는 게임 투톱 중 하나다.
1990년대 당시, FPS 장르는 게임기술의 집약체로 통했다. [둠], [퀘이크], [언리얼], [하프라이프] 등 시대를 풍미한 게임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하지만 FPS 열풍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화려한 그래픽에 최고의 기술력을 갖췄지만, 스토리와 연출력은 여전히 80년대 수준에서 멈춰 있었다. 람보 같은 영웅이 되어 악당들을 신나게 때려 부수면 그걸로 게임 끝! 폭력과 파괴의 쾌감 외에 어떠한 경험도 전해 주지 못했다. [콜 오브 듀티]는 FPS가 가진 한계를 깼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한 병사가 총알세례를 뚫고 적진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에서 FPS는 구시대의 껍질을 벗었다. [콜 오브 듀티]는 영화보다 더 실감나는 경험을 제공했다. 게임은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하며 21세기 최고의 액션게임으로 올랐다. [콜 오브 듀티]는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다.
게임사에서 가장 볼만한 라이벌전을 고르라면 [메달 오브 아너]와 [콜 오브 듀티]의 FPS 전쟁을 빼놓을 수 없다. EA와 엑티비전의 패권다툼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두 게임의 경쟁으로 마니아 성향의 FPS는 대중적인 장르로 성장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승부는 막상막하였다. 결국 후발주자인 [콜 오브 듀티]가 [메달 오브 아너]를 꺾고 승기 잡았다. 콜옵의 승리비결은 철저한 내부 경쟁시스템에 있다.
[콜 오브 듀티]는 특이하게도 한 브랜드에서 두 개의 시리즈로 나뉜다. 시리즈 창시자 인피니티 워드의 [콜 오브 듀티]와 트레이아크의 [콜 오브 듀티]로 나뉘어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이들은 [콜 오브 듀티]란 한 울타리 안에서 서로 경쟁하며 수많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다. 인피니티 워드가 [모던 워페어]로 흥행기록을 세웠다면, 다음해 트라이아크의 [블랙옵스]가 그 기록을 갈아치웠다. 마치 씨줄과 날줄이 되어 시리즈 전체를 단단하게 키웠다. 그러므로 [콜 오브 듀티]는 두 개의 게임으로 설명해야 한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든 양대산맥. 인피니티워드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 트레이아크는 [블랙옵스] 시리즈로 유명하다.
“회사에 입사할 당시 전 블리자드에게도 합격통보를 받았습니다. 꿈에 그리던 블리자드로 갈까, 아니면 20명 남짓의 작은 회사를 택할까 고민했었죠. 하지만 회사 사람들의 눈에는 남들과 다른 뭔가가 있었죠. 그래서 이곳에서 시작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인피니티워드 한국인 개발자 오태훈(디스이즈게임 인터뷰 중)
블리자드, 락스타, 밸브가 90년대 3대 스타개발사라면, 인피니티워드, 베데스다(엘더스크롤 시리즈), 라이엇게임즈(리그 오브 레전드)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3대 흥행메이커다. 이 중에서도 인피니티워드의 존재감은 단연 독보적이다. [모던 워페어] 시리즈로 메가 히트를 기록했고, 국내 유저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아이러니 하게도 인피니티워드는 [메달 오브 아너]의 개발자들이 나와 만든 게임사다.
영화 라이언일병구하기(왼쪽), 메달오브아너(오른쪽). 메달오브아너는 오마하해변 전투를 완벽히 재연해 놀라움을 주었다.
당시 EA는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일병 구하기]에 영감을 받아 2차 세계대전 배경의 게임을 기획했다. 그들은 2015 INC라는 작은 회사를 고용해 게임개발을 맡겼다. 말이 고용이지만 사실 하청이나 마찬가지였다. 2015팀은 PC용 [메달 오브 아너: 얼라이드 어썰트]를 완성시켰다. 게임 오프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라이언일병 구하기]의 그 유명한 오마하 해변 전투를 영화보다 실감나게 그렸으니 말이다. [메달 오브 아너]는 게임에 영화적 연출기법을 도입했다. 적을 쏘아 맞추는 슈팅게임에서 벗어나, 주변 환경과 하나가 되어 새로운 스릴과 경험을 제공했다. 마치 영화 속 장면을 직접 체험하는 듯 한 재미였다. [메달 오브 아너]는 당시 최고의 기대작으로 통했던 액티비전의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을 제치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당연히 EA도 만족했다. 2015팀에 대한 대우도 그만큼 각별해 졌다.
그러나 2015팀은 EA의 그늘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EA와 결별을 택한 그들은 인피니티워드라는 새 회사를 차리고 스스로 자립했다.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고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90년 대 말 EA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잇 올(Eat All)이란 별명이 붙을 만큼 EA는 수많은 개발사들을 돈으로 사들여 규모를 키웠다. 오리진, 맥시스, 웨스트우드 등 당대 최고의 개발사들이 EA 산하로 들어갔다. 좋은 말로 안 되면 적대적 인수까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EA를 스스로 걷어차고 나왔으니,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 했다.
하지만 그들의 결정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이후 EA로 들어간 개발사들은 대기업 조직문화에 갇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반대로 인피니티워드는 [콜 오브 듀티]로 승승장구하며 EA마저 굴복시켰다. 재미있는 건, 이때 EA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끝까지 자기 색깔을 유지한 개발사들은 지금 대부분 잘나간다는 것이다. 과거 밸브와 락스타도 EA의 인수제안을 거절했고, 인피니티워드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콜 오브 듀티]는 태생부터 저항과 혁신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게임이다.
EA에서 독립한 인피니티워드는 액티비전의 지원을 받고 차기작 개발에 주력했다. 유일한 경쟁자는 그들 자신이 만든 [메달 오브 아너]다. 워낙 훌륭한 작품이라 그대로 만들었다간 아류작 취급 받을게 뻔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이란 배경과 영화적 연출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바꾸기로 했다. 가장 큰 변화는 탈 영웅주의다. 기존 FPS는 대부분 영웅이 등장했다. 강력한 영웅의 시점에서 적들을 무자비하게 도륙 내는 게 FPS의 공통법칙이었다. 그나마 대부분이 미국식 영웅주의였다. [메달 오브 아너]도 결국 미국식 전쟁영웅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제목부터가 ‘명예훈장’이 아닌가).
영웅이 아닌 병사의 시각으로 전쟁을 바라본 [콜 오브 듀티]. 2차 세계대전의 치열한 생과사를 경험할 수 있다.
2003년 발매된 [콜 오브 듀티]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 영국, 소련의 이름 없는 병사들이 주인공이다. 플레이어는 일개 사병의 신분으로 전장에 나가야 한다. 가질 수 있는 무기도 단 두 가지. 게임이 시작되면 101 공수부대원이 되어 총살세례가 빗발치는 적기지 한가운데로 낙하해야 한다. 특히 총 한 자루 없이 전장으로 내몰려야 하는 스탈린그라드 전투 장면은 이 게임의 ‘백미’다.
[콜 오브 듀티]의 성공요인은 디테일에 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대원들끼리 나누는 잡담 등 소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묘사했다. 게임은 전장의 한 가운데서 병사들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까지 담아냈다. 적의 총탄에 만신창이가 되어 신음하는 전우들, 아군의 시체에 몸을 숨기며 겁에 질려 있는 동료들, 그들의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 또한 사지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병사들의 비애를 생생히 담아냈다. 시종일관 게이머를 광폭한 전장으로 몰아붙이지만 화면은 그런 병사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보듯 담담하게 그려냈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병사들간의 협동플레이가 중요하다. 적진으로 혼자 돌진하는 건 자살 행위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캐릭터와 서로 의지하며 힘을 합쳐야 한다.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왼쪽)와 [콜 오브 듀티](오른쪽)의 스탈린그라드 전투. 총 한 자루 없이 맨몸으로 전장에 내몰리는 소련군 병사들.
인터페이스도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인다. 게임에서 체력게이지를 과감히 삭제했다. 적에게 받은 충격을 시각으로만 표현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체력이 회복되게 만들었다. 때문에 게임이 시작되면 무조건 앞으로 돌진하기 보다 숨을 곳부터 찾아야 한다. 자동체력회복 기능은 이후 수많은 게임에 도입되면서, FPS게임으로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콜 오브 듀티]는 발매되자마자 100만장 이상 팔리며 히트게임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유나이티드 오펜시브], [파이니스트 아워] 같은 확장팩이 연달아 발매되어 브랜드 인지도 차곡차곡 쌓았다.
2005년, 인피니티워드는 [콜 오브 듀티2]를 발매하면서 대박행진을 이었다. 2편은 배경을 넓혀 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장을 꼼꼼히 아울렀다. 동부전선에선 스나이퍼 병사가 되어 독일군 장군을 암살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북아프리카 전선에선 영국군으로 참전해 그 유명한 롬멜 전차부대와 맞서야 한다.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오마하 해변 전투는 [메달 오브 아너]에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해 완벽한 리얼리티로 리메이크 됐다. 물론 그래픽적인 발전은 말할 나위도 없다. 2편은 전 세계 2백만 장 이상 팔리며 라이벌 [메달 오브 아너]를 완전히 따돌렸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전쟁게임 하면 [콜 오브 듀티]를 첫손가락에 꼽기 시작했다.
[콜 오브 듀티2]는 [메달 오브 아너]에서 표현하지 못한 오마하 해변 전투의 디테일 한 부분까지 완벽히 구현했다.
2편의 성공으로 [콜 오브 듀티]는 FPS 대표브랜드로 각인됐다. 인피니티워드는 더 이상 눈치 보면서 게임을 개발하는 무명의 회사가 아니었다. 또,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우후죽순 쏟아지는 2차 세계대전 게임들에 싫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새로운 [콜옵]이 싹트고 있었다.
인피니티워드는 콜옵 차기작으로 현대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물건을 팔아야 할 액티비전 입장은 달랐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은 잘 팔리는 소재였다. 미국이 승리한 전투기 때문이다. 흥행보증 수표를 남겨두고 검증도 안 된 현대전을 다룬다는 건 위험백배다. 인피니티워드는 차기작 프로젝트를 철저히 비밀에 부쳤고, 액티비전의 의심도 깊어졌다. 양사의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참다 못한 액티비전은 인피니티워드 대타로 기용한 트레이아크를 시켜서 [콜 오브 듀티3] 개발했다. 이를 계기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인피니티워드는 콜옵3를 정식 차기작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액티비전의 반대를 무릅써가며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던 현대전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전으로 돌아온 [콜 오브 듀티4: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새로운 전환점 역할을 했다.
2007년 발매된 [콜 오브 듀티4: 모던워페어]는 인피니티워드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첨단무기가 오고 가는 현대전의 전장은 달랐다. 개발자의 상상력에 의지한 가상의 전장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단연 돋보이는 부분은 스토리다. 지금까지 시리즈가 전장의 연출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모던 워페어는 인물간의 갈등과 복잡한 세계정세 등 흥미로운 스토리가 추가됐다. 한 중동국가의 대통령이 테러조직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이를 진압하려는 미국 특수부대의 활약을 다루었다. 겉보기엔 미국식 영웅주의로 보이지만 인물간의 암투와 다양한 사건들은 웬만한 첩보영화를 능가할 할 만큼 치밀하다. 막강한 현대무기들이 게임의 스케일을 키웠다. 반경 수백 킬로를 불바다로 만드는 핵폭탄의 위력은 2차 세계대전의 전투를 어린아이 장난 수준으로 만들었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은 기상천외한 무기들로 현대전의 묘미를 느낄 있다.
그래픽 또한 진일보했다. 첫 장면, 특수부대가 폭우 속에서 화물선에 침투하는 미션은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마치 화면에 빨려 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디테일의 힘은 이번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비록 플레이타임은 짧지만, 게임을 하는 동안만은 현실이 게임인지 게임이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강하게 몰입시켰다. 모던 워페어에 이르러 콜옵 시리즈는 ‘잘나가는 게임]의 단계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잘 팔리는 게임’이란 수식어를 얻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1,300만장 이상이 판매됐고, 2009년 발매된 [모던 워페어2]는 2,000만장을 돌파했다. 인피니티워드는 세계 최고의 게임사 반열에 올랐다. 게임출시를 그렇게 반대했던 액티비전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특수부대가 폭우 속에서 화물선에 침투하는 미션은 게이머들에게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주었다.
“NO RUSSIAN 미션이 논란이 될 줄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지는 몰랐습니다. 폭력을 표현하고자 만든 게 아니라, 적의 악랄함을 강조하려는 의도였죠.”- 인피니티워드 한국인 개발자 오태훈(디스이즈게임 인터뷰 중)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그 인기만큼 논란도 많았다. 1편의 핵폭발 장면으로 충격을 주더니, 2편은 민간인 학살장면을 넣어 또 한 번 경악시켰다. 플레이어가 테러집단의 일원이 되어 러시아 공항의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미션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러시아와 미국이 전쟁에 휘말린다는 내용인데, 문제는 학살장면이 너무나 디테일하게 묘사됐다는 점이다. 노러시안(NO RUSSIAN) 미션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 매스컴과 사회단체의 비난세례를 받았고, 팬들마저 ‘이건 좀 심했다’며 고개를 저었다. 미국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최근 총기난사사건의 악몽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모던 워페어2] 노러시안 미션. 테러집단이 러시아 공항에서 민간인을 향해 총을 난사하는 장면은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에서도 이런 반응인데 러시아는 오죽하랴. 러시아 정부는 게임판매를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미 팔린 물량까지 전량 회수했다. 결국 액티비전은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고 러시아 미션이 삭제된 버전을 다시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모던 워페어2]는 발매 5일 만에 6천 억 원을 벌어들이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솔직히 노러시안 미션은 안 넣어도 되는 장면이었다.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굳이 넣고야 마는 인피니티워드의 고집에 액티비전도 손을 들었다. 결국 이런 사건들이 누적되어 양사는 돌이킬 수 없는 갈등을 겪게 된다.
액티비전에게 인피니티워드는 ‘말 안 듣는 우등생’과 같은 존재였다. 게임을 잘 만드니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놔두자니 어디로 튈지 몰라 불안했다. 두 회사의 불안한 동거는 결국 대형 사고를 불러왔다. 2010년, 인피니티워드 창립자 제이슨 웨스트와 빈스 잠펠라는 액티비전을 고소했다. 액티비전이 자신들의 전화기와 이메일을 불법해킹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통보를 했다는 이유다. 이들은 회사를 나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고, 이에 인피니티워드의 핵심개발자 대다수가 리스폰 엔터테인먼트로 이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액티비전도 발끈했다.
액티비전은 이들이 EA와 공모해 핵심개발진과 기술을 빼돌렸다며 맞고소했다. 액티비전은 소속 개발사가 허락 없이 다른 회사랑 접촉하는 것을 엄격히 금했다. 고소에 맞고소,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었다. 액티비전과 EA의 갈등도 첨예했다. 액티비전 바비 코틱 대표는 “EA가 개발사를 사들이면 전부 EA의 일률적인 문화로 통합된다. 유능한 개발자는 EA에서 일하길 원하지 않는다.”고 도발했다. 그러자 EA 제프 브라운 부사장은 “액티비전과 개발자들과의 관계는 소송 서류에 잘 드러나 있다. 액티비전의 대표 프랜차이즈가 그들의 오만함 때문에 망가지고 있다”고 비꼬았다. 액티비전의 독선 때문에 [콜 오브 듀티]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놓고 조종한 것이다. 결국 두 공룡간의 싸움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양사 합의로 싱겁게 마무리됐다.
인피니티워드는 핵심개발자가 대부분 빠진 채로 차기작 준비에 들어갔다. 2011년 발매된 [모던 워페어3]는 시리즈의 아성에 걸맞게 사상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2,200만장이 판매되어 전작의 기록을 또 한번 경신했다. 하지만 게임의 평가는 흥행과 반비례했다. 전편과 차이가 없는 그래픽과 부실하게 구성된 스테이지, 개연성 떨어지는 스토리는 유저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매체들은 극찬을 쏟아냈지만 유저들의 평가는 달랐다. 일부에선 돈에 눈이 먼 액티비전이 전작보다 못한 게임을 내놓고 판매에 급급하다고 비난했다. 전작인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가 워낙 잘 나와서, 그에 비교해 실망스럽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핵심 개발자들의 이탈로 반 토막 난 채로 만들어진 [모던 워페어3]. 흥행은 성공했지만 게임성은 여러 모로 실망스럽다는 평가다.
여하튼 인피니티워드가 만든 모던 워페어 시리즈는 3편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2013년 인피니티워드는 새 시리즈 [콜 오브 듀티: 고스트]를 발매했지만 전성기 시절에 비해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고스트는 발매 하루 만에 1,880만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지만, 이번에도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 비평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게임(Game of The Year)에서 후보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콜옵 시리즈는 한번도 게임대상 후보에서 제외된 적이 없었다).
‘욕하면서도 하는 게임’이란 말이 어울리는 표현이다. 인피니티의 콜옵이 전에 없던 혹평을 받는 이유는 그보다 더 뛰어난 [콜 오브 듀티]가 버티고 때문이다. 과거 인피니티워드의 그늘에 가렸던 트레이아크가 새로운 콜옵을 들고 나온 것이다.
2013년 발매된 콜오브듀티 고스트, 달라진 게 없는 게임성과 미국이 남미 국가들과 싸운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콜옵 팬들의 비난을 받았다.
[콜 오브 듀티]를 논할 때 트레이아크라는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인피니티워드가 시리즈의 기틀을 다졌다면, 트레이아크는 그 위에 벽돌을 쌓고 지붕을 올린 개발사다. 두 회사의 경쟁은 흡사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연상시킨다. 인피니티워드가 재빠른 걸음으로 한참 앞서나간 토끼라면, 트레이아크는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며 묵묵히 게임을 만든 거북이다. 결국 ‘토끼와 거북이’의 결과처럼 인피니티워드는 핵심개발자의 공백으로 힘이 빠졌다면, 트레이아크는 여전히 시리즈를 지탱하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부터 소개할 [콜옵]은 앞서 게임들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혁신적이고 쿨한 인피니티식 [콜옵] 대신, 진지한 역사와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또 다른 [콜옵]이다.
[콜 오브 듀티] 첫 확장팩 유나이티드 오펜시브. 인피니티워드가 아닌 트레이아크에서 만들었다.
1996년 설립된 트레이아크는 액티비전에 인수되어 개발인생을 시작했다. 그들에게 내려진 첫 미션은 [콜 오브 듀티]의 확장팩 개발이다. 당시 액티비전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피니티워드를 믿지 못했다. 물론 인피니티도 액티비전의 요구 따위는 ‘지나가는 개가 짖는가 보다’라는 식으로 무시하기 일쑤였다. 사사건건 의견차이가 났다. 돈을 벌어야 하는 액티비전은 시리즈를 계속 우려먹을 확장팩이 필요했다. 트레이아크는 그런 액티비전의 요구에 맞춰 캐스팅 됐다. 축구로 따지면 인피니티워드가 주전선수라면, 트레이아크는 벤치의 대기선수라 할 수 있다. 물론 인피니티워드는 무분별한 시리즈 남발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여하튼 트레이아크는 [콜 오브 듀티]의 첫 확장팩 [유나이티드 오펜시브]를 만들어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인피니티워드가 콜옵2을 내놓자, 같은 해 트레이아크는 2편의 확장팩 [빅레드원]을 만들었다. [빅레드원]은 나름 좋은 평을 받았지만 판매율에선 원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당연히 트레이아크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곱지 않았다. 정식 넘버링도 아닌, 확장팩만 뽑아내고 있으니 우습게 볼만도 하다. 한때 제왕의 자리에 있던 [메달 오브 아너]가 확장팩 남발로 망가지지 않았던가? 그러던 중 트레이아크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정식 넘버링 타이틀인 [콜 오브 듀티3] 개발을 맡게 된 것이다.
2006년 발매된 [콜 오브 듀티3]는 그 해 11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전작보다 못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건드린 작품이 시리즈 정식 넘버링 타이틀이란 게 문제였다. 확장팩은 원작과 비슷하게만 만들어도 성공이다. 그러나 정식 넘버링 타이틀은 차원이 다르다. 퀄리티는 기본이고, 무언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콜 오브 듀티3]는 너무나 밋밋했다. 그래픽도 그냥 저냥 볼만한 수준. 사람들은 더 이상 2차 세계대전 구닥다리 전투에서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콜옵 시리즈는 더 이상 볼게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콜 오브 듀티3]는 실패했다. 시리즈 전체의 기대감을 떨어드렸다는 점에서 진정한 실패작이다. 액티비전도 자신들이 오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4편은 다시 인피니티워드가 개발했다.
[콜 오브 듀티3]. 잘 만든 게임이지만 정식 넘버링 타이틀을 붙이기엔 너무 밋밋한 작품이다.
인피니티워드는 보란 듯이 [모던 워페어]로 성공했다. 마치 위기 때마다 나타나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처럼, 바닥에 떨어진 콜옵의 명성을 제 궤도에 올려놨다. 트레이아크는 콜옵을 망쳤다는 이유로 온갖 수모를 감당해야 했다. 이들에게 개발을 맡기지 말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더 아픈 건 인피니티워드의 모욕이었다. 평소 개방적인 인피니티는 다른 팀이 콜옵 프랜차이즈에 손대는 걸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확장팩에 국한된 일이고, 정식 넘버링 타이틀은 달랐다. 자신들이 창조한 브랜드를 다른 개발사, 그것도 한참 아래인 업체에게 빼앗겼다는 것은 자존심 강한 그들로썬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인피니티워드는 [모던 워페어]에서 대놓고 트레이아크를 조롱했다. 엔딩 크래닛에 나오는 랩 가사에 “이 게임이야 말로 세 번째 작품이다. 이 바보들아!”라는 내용을 넣었고, 실행파일을 ‘CALL3.EXE’로 만들었다. 트레이아크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것이다. 그러나 트레이아크는 입 한번 뻥긋하지 못했다. 아직은 그들을 꺾을만한 [실력]이 없기 때문이다. 트레이아크의 입장에서 [모던 워페어]는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넘사벽’이었다. 그들은 다시 벤치신세로 강등되었다.
2008년 트레이아크는 또 다른 차기작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를 내놓았다. 일 년 전 [모던 워페어]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그에 따른 부담도 남달랐다. 트레이아크는 인피니티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색깔을 연구했다. 해답은 바로 전쟁에 이었다. 그들은 전쟁의 분위기를 바꿔보기로 했다. 인피니티워드는 전장의 겉모습에 치중했다면, 트레이아크는 그 이면의 모습에 포커스를 맞췄다.
전쟁, 그 이면의 광기까지 담아낸 [월드 앳 워]. 트레이아크는 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전쟁의 영감을 얻었다.
시리즈 5편 격인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는 정식넘버링을 달지 않고 발매됐다. 게임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전쟁과 소련과 독일의 독소전쟁을 다뤘다. 주인공은 연합군의 병사가 되어 2차 세계대전 마지막 전쟁에 참전해야 된다. 그런데 게임은 첫 장면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일본군이 미군포로를 일본도로 참수하는 장면은 충격 그 자체였다. 화염방사기에 의해 온 몸에 불이 붙어 죽고, 기관총에 맞아 팔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대검으로 적군의 온몸을 난자하는 등 끔찍한 장면들이 여과 없이 표현됐다. 시종일관 침침하고 어둡게 묘사된 전장의 분위기는 [모던 워페어]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다.
게임은 전쟁의 개념까지 바꾸었다. 모든 등장인물은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의 입장에서 전쟁에 참여한다. 게임 속 일본군은 잔인하고 악랄하지만, 미군 또한 똑같은 방식으로 일본군을 살해한다. 베를린 시가전에서 소련군이 독일군 포로들에게 가하는 가혹행위는 선악의 개념마저 모호하게 한다. 마지막 부분, 일본군이 항복하는 척하면서 다가와, 자폭하는 장면은 안타까움과 함께 분노를 일으킨다. 참혹함을 넘어 전쟁의 ‘광기’까지 담아냈다.
[월드 앳 워]의 첫 장면(왼쪽)과 마지막 장면(오른쪽). 일본군이 미군포로를 고문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소련군이 베를린 궁을 점령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그런 점에서 [월드 앳 워]는 여러모로 불편한 게임이다. 당장 일본 유저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일본군을 너무 악랄하게 표현했다며 일본에선 발매조차 거부됐다. 여기에 한국판 번역에서는 일본군을 ‘쪽바리’로 번역해 논란을 빚었다. 인트로 영상에 히틀러 목소리가 들린다며 독일에선 삭제를 요구했다. 게임의 결말은 소련군 병사가 베를린 궁에 소련국기를 거는 장면에서 끝난다. 2차 세계대전의 모든 전투가 종결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전쟁은 끝난 게 아니었다. ‘냉전’이라는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블랙옵스 타이틀 화면, 냉전과 베트남전을 다룬 이 게임은 또 다른 양상의 전쟁터로 인도한다.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트레이아크는 새로운 전장으로 눈을 돌렸다. 시리즈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는 [콜 오브 듀티: 블랙옵스]가 세상에 나왔다. 사실 [블랙옵스]는 애초에 성공과는 거리가 먼 게임이었다. 흥행요소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우선 냉전이란 배경 자체가 마이너스다. 독일, 일본 같은 강력한 적도 없고 미국이 승리한 전쟁도 아니기 때문이다(오죽하면 [모던 워페어]에선 러시아가 미국을 침략한다는 억지설정까지 끼워 넣었을까).
한술 더 떠 베트남전이라는 무리수까지 보탰다. 당시 베트남전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될 소재다. [맨 오브 밸러], [배틀필드: 베트남] 등 베트남전을 다룬 게임이 나왔지만 대부분 망했다. 아무리 전쟁게임에 열광하는 미국인들도 자신들이 패배한 전쟁은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게임은 [지옥의 묵시록], [디어헌터] 등의 영화들을 오마주하며 베트남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다. 시리즈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대담한 실험이었다.
하지만 냉혹한 게임판은 한가로이 실험이나 할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한해 수백 개의 타이틀이 발매되는 FPS 시장은 더더욱 치열하다. 콜옵의 약점을 노린 자객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라이벌 EA가 먼저 칼을 빼들었다. [블랙옵스] 출시 한 달 전에 [메달 오브 아너] 신작을 내놓은 것이다. 강력한 흥행파워를 가진 [모던 워페어]는 피해가고, 상대적으로 약체로 평가되는 [블랙옵스]를 노린 것이다. 영악한 EA는 노이즈 마케팅으로 이슈까지 선점했다. 탈레반으로 미군을 살상한다는 자극적인 설정은 그 자체가 자극적인 뉴스였다. 탈레반 설정은 [모던 워페어2]의 ‘노러시안’ 미션보다 더한 논란을 일으키며 연일 매스컴에 올랐다. 대부분 비난 일색이지만, 마케팅 효과는 컸다.
[콜 오브 듀티]를 바싹 긴장시켰던 [메달 오브 아너] 리부트. 발매 당시 탈라반 미션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모았다.
콜옵 진영으로썬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상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탈레반이란 최근 핫 한 카드를 내놨는데, 그에 비해 냉전과 베트남전은 너무 구태의연했다. 잘못하면 게임 하나만 망가지는 게 아니라 시리즈 전체가 한꺼번에 끝장날 수 있었다. 액티비전 입장에선 속이 탈 노릇이었다. 그래도 트레이아크는 묵묵히 자기 길을 걸었다. 모든 것을 걸고 승부수를 띄워보기로 했다. 2010년 11월, [콜 오브 듀티]의 7번째 작품 [블랙옵스]를 발매됐다. 결론적으로 [블랙옵스]는 초대박을 쳤다. 발매 첫날 560만장이 팔리며 4,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6주 만에 마의 고지인 1조 원 매출을 돌파했다. [메달 오브 아너]는 일찌감치 KO시키고, 절대강자 [모던 워페어2]까지 눌러버렸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열광시킨 [블랙옵스]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베를린이 무너졌을 때, 우리의 지도자들은 우리에게 어떤 보답을 주었나? 열광적인 환영은 고사하고 의심과 박해만 받지 않았던가! 결국 우리는 바로 여기…! 이 끔찍한 곳에 버려지고 말았다.”- 블랙옵스 등장인물 레즈노프의 대사(게임 속 한 장면)
“베를린 궁에 소련깃발을 꽂은 그 병사는 전쟁이 끝난 후 어떻게 됐을까?” 게임은 이런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 블랙옵스의 배경은 2차 대전의 이후의 냉전시대다. 쿠바사태, 베트남전 등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작가적 상상력을 더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창조했다. ‘존 에프 케네디’, ‘피델 카스트로’ 등 실존인물들이 등장해 사실감을 더했다. 플레이어는 베트남, 쿠바, 북극, 라오스, 홍콩 등 세계를 곳곳을 돌아다니며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워야 한다.
이 게임은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을 움직이는 거대한 음모에서 출발한다. [월드 앳 워] 마지막 장면에서 베를린 궁에 최초로 소련깃발을 꽂은 레즈노프는 전쟁이 끝난 후 소련 정부에 의해 숙청된다. 또 한 명의 주인공 메이슨은 미국의 특수요원으로 쿠바사태를 일으킨 카스트로를 암살하려다 실패해 소련의 한 강제수용소로 압송된다. 시베리아의 수용소에서 만난 이들은 탈출에 성공하고, 베트남전에서 다시 만난다. 게임은 냉전시대의 전장 한가운데서, 주인공의 심리변화를 디테일하게 묘사했다. 한편의 스릴러물을 보듯 긴박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 충격적 반전은 플레이어의 대퇴부를 얼얼하게 만든다. 어둡고 잔혹한 표현은 더욱 강화됐다. 무엇보다 대단한 건 현대사를 관통하는 묵직한 주제의식이다.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들이 비극적 운명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믿고 있는 역사와 정의에 대해 다시 한번 의문을 던진다. 전쟁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지만 결국 각자의 조국에서 버림 받은 인물들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또 다른 고난이 시작된다. 이러한 주제의식은 2012년 발매된 [블랙옵스2]에도 이어진다.
블랙옵스는 미국이 패배한 전쟁, 베트남전을 다뤘다는 점에서 시리즈의 전환점을 이뤘다. 영화 [디어 헌터]의 러시안룰렛 신을 오마주한 장면도 나온다.
[블랙옵스2]는 냉전시대 이후 초강대국이 된 미국을 겨냥한다. 이미 국가 이상의 권력을 가진 CIA와 그들에게 대항하는 세력들의 치열한 전쟁을 다루었다.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성장한 1980년대부터 2025년 가상의 미래까지, 플레이어는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며 퍼즐조각 맞추듯 이야기를 풀어간다. [블랙옵스2]는 플레이어의 선택에 따라 엔딩이 달라진다. 엔딩 중에는 유투브에 올라온 동영상 하나가 미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폭동으로 백악관이 불타는 장면도 나온다.
[블랙옵스2]는 독일, 일본, 소련이 무너지고 최후의 승자가 된 미국이 과연 21세기 진정한 정의인가를 인물들의 삶과 죽음을 통해 보여준다. 20세기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의해 가족을 잃고 복수를 다짐하는 테러리스트 ‘라울 메넨데스’, 그는 단순한 선악의 개념을 넘어 제법 설득력 있는 악당캐릭터로 등장한다. 이렇듯 [블랙옵스2]는 미국식 정의에 의해 자행된 또 다른 이름의 전쟁 서사시다.
[블랙옵스2]는 전작의 흥행을 능가하며 트레이아크를 [콜옵]시리즈의 새로운 주인자리에 앉혔다. 이미 반쪽이 된 인피니티워드 대신 트레이아크는 여전히 시리즈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어느 누구도 트레이아크의 게임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토를 다는 사람은 없다.
[블랙옵스2], 1980년부터 2025년 가상의 미래까지를 배경으로 세계 최강대국이 된 미국의 전쟁을 다뤘다. 로봇이 등장하는 근 미래 전투를 경험할 수 있다.
[콜 오브 듀티]의 진짜 주인공은 ‘전쟁’이다. 게임은 시리즈를 이어오면서 20세기 전쟁사를 완성했다. 우리는 게임을 하면서 다양한 전쟁의 모습을 보았다. 오마하 해변의 지독한 총알세례를 뚫고, 북아프리카 전선을 가르는 탱크의 굉음을 들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잔학상을 보았고, 똑같은 방식으로 베를린 시가전에서 독일군을 학살했다. 베트남전을 통해 냉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났고, 시베리아 수용소를 탈출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영화나 소설도 아닌 오직 게임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전쟁에 대한 보고서다.
[콜 오브 듀티2]에선 ‘전쟁을 하는 건 정치인이지 병사들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영웅이 아닌 병사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전장. 선악의 명분보다 삶과 죽음의 문제로 바라보는 전장. 결국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이다. 독일도, 일본도, 소련도, 심지어 미국까지, 게임에선 진정한 승자는 아니었다. 이것이 [콜 오브 듀티]가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디지털 세대에게 남기고자 하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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