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탱이의 歸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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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의 변신은 무죄...
2014년 01월 15일 14시 24분  조회:3991  추천:0  작성자: 단비
19년 된 아파트의 변신 행복이가득한집 405호, 건강한 생활이 시작되는 곳
 

누구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기를 원한다지만, 편리한 아파트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아파트 인테리어로는 잘 선택하지 않는 용기 있는 발상을 통해 19년 세월을 멋지게 극복한 디자이너 박선영 씨의 신혼집을 소개한다. 현관, 거실, 주방, 침실, 욕실에 이르는 각 공간별 세러피와 함께 조도, 가구, 컬러, 수납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참신한 아이디어가 가득하다.

현관의 동선을 바꾸면서 삼각형 면적만큼 거실 면적이 줄었다. 대신 문 한편에 거실 TV장과 이어지는 선반을 달아 출근할 때 가방을 놓아두고 신발을 신거나 열쇠 등을 올리기 좋다.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배달 음식 광고 전단지만큼 자주 눈에 띄는 것이 내부 수리 공사 안내문이다. 요즘 집을 장만하거나 이사를 하면서 레노베이션을 하는 경우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다. 디자이너에게 일임하거나 스스로 하거나 상관없이 인테리어를 하는 데는 상당한 예산과 노력이 투입되게 마련이지만, 그 만족도는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획일적 스타일에, 누군가는 공간의 기능 면에 불만을 토로한다.

이쯤에서 ‘아파트 테라피’의 창시자 맥스웰 길링험 라이언의 주장 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아파트를 그저 ‘밋밋한 하얀 상자’가 아닌 하나의 ‘생명체’로 여기며, 아파트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것 이야말로 우리 삶을 치유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무언가를 구입하고 꾸밈으로써 주거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짓는 오류를 반복하는지도 모른다. 더 얇은 TV, 더 푹신한 소파, 더 넓은 수납장 등을 채워 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다른 삶의 패턴을 공간에 반영하는 일인데 말이다.

거실 전면에 짜 넣은 자작나무 책장은 넉넉한 수납은 물론 간접 조명 박스로 디자인적 묘미를 살려 아트월 기능까지 한다.

박선영 씨의 신혼집 레노베이션은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본질적 화두에서 시작했다. 그리고 인테리어라는 미명하에 불필요한 작업을 하는 건 아닌지, 자신에게 되물으며 디자인을 잡아나갔다.

베란다를 꼭 없애야 할까?
건축을 전공하고 영국의 포스트&파트너스, 삼우건축, 황두진 건축연구소를 거쳐 현재 삼성 물산 건축 설계팀에 근무하는 박선영 씨는 신혼집으로 아파트의 편의성을 선택했다. 저마다 다른 취향과 생활 패턴이 공간 디자인에 충분히 반영된다면 아파트 역시 사는 이의 개성을 담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그는 다소 낡았더라도 벽과 천장 등 골조가 튼튼한 오래된 아파트를 찾았다. 지은 지 20년 정도 된 아파트는 복도나 현관보다 각 부실의 비율이 넉넉했고, 베란다를 확장하지 않아 그가 구상하던 아이디어를 접목하기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그가 생각하는 주거의 가장 핵심 기능은 ‘힐링’. 그 방법으로 기존 아파트에서 가장 쓸모없는 공간으로 전락한, 그래서 대부분 확장해버린 베란다를 다시 부활했다. “안전성, 편리성 등 아파트의 장점을 그대로 살리면서 마치 개인 주택처럼 개성을 담아내는 방법이 무얼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레노베이션을 하더라도 구조상 크게 바뀔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아파트의 한계를 먼저 인정하니 힘줄 곳이 딱 두 군데, 침실과 거실로 정해지더라고요. 평소 혈액 순환이 잘되지 않아 반신욕을 즐겨 했는데, 안방 베란다를 아예 욕조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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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에 욕조를 매입해 힐링 공간으로 완성한 안방 침실. 돌을 밟는 느낌을 주고 싶어 폴리싱 타일을 시공했는데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침대 헤드보드 벽면은 전통적 느낌을 더하기 위해 팥죽색으로 마감했다.

베란다 욕조는 창덕궁 연경당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것. 좁은 툇마루를 돌아 나가면 연못과 자연이 펼쳐지는 모습을 재현했다. 베란다 전체에 벽돌을 쌓은 뒤 방수제를 입히고, 큰 타일과 조각 타일을 이중으로 마감한 뒤 욕조를 매입. 욕조 높이만큼 자작나무 패널로 단을 만들고 욕조와 단 사이에 한식 창을 달았다. 물이 닿는 공간이기 때문에 한식 창호는 종이 대신 종이 느낌을 내는 아크릴 섬유판을 넣어 제작했고, 자작나무에는 방수 페인트를 발라 마감했다. 창살이 퍼지듯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계단은 평소 턱 걸터앉는 쉼터요, 단 아래는 수납장으로 활용하니 아주 실용적이다.

“베란다 욕조에 몸을 폭 담그고 있으면 마치 산 중턱에 와 있는 듯 청아한 바람이 솔솔 들어와요. 바로 앞에 산이 있어 경치도 좋죠. 거실 베란다 역시 확장하는 대신 테이블과 의자를 두었더니 차 한잔 마시는 여유를 즐길 수 있고요.”

이처럼 힐링에 테마를 둔 박선영 씨가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조도다. 과도하게 밝은 빛은 눈을 피로하게 하고 심리적으로 산만하게 만든다는 것. 아이가 태어나면 쓸 방, 드레스룸, 주방 등 꼭 필요한 곳에만 스포트라이트 조명등을 시공하고, 전체적으로 간접 조명을 시공해 마음을 안정시키는 은은한 빛을 조성하니 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기분이다.

풍수는 고루하다고?
집 안으로 강물이 흐른다고 상상해보자. 현관문을 지나 곧장 방으로 빠르게 흘러 들어가거나 혹은 막힌 벽에 부딪쳐 구석에 멈춘 채 소용돌이를 일으킨다면? 가장 이상적인 물의 흐름은 물살이 벽과 가구 사이로 구불구불한 곡류를 그리며 최대한 집 전체로 흐르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공간이든 그 안의 에너지가 완전히 순환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하는 박선영 씨는 ‘풍수’를 공간 설계의 중요한 요소로 고려했다.

“음양오행상 나무가 많으면 좋다고 해서 나무 소재를 많이 사용했어요. 안방 베란다 욕조, 거실 전면의 책장, 작은 방의 장식장 등 모두 자작나무로 마감했죠.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 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현관의 동선도 45도 틀었고요. 이는 결과적으로 공간 활용에도 플러스 요인이 되었지요.”

기존 집은 현관에 들어서면 화장실 문이 정면에 보이고 신발장, 복도, 거실이 모두 열려 있는 구조였다. 이처럼 공간이 분리되지 않으면 거실에 앉아 있어도 현관에 서 있는 것 같고, 그마저도 복도는 죽은 공간이 된다. 이때는 흐르는 동선을 끊는 것이 방법. 현관 정면으로 붙박이장을 짜 넣고, 거실을 향해 비스듬히 중문을 달았더니 일단 현관이 번잡하지 않아 좋단다. 구조를 이렇게 바꾸지 않았다면 그저 현관 앞 복도였을 가벽에는 앤티크 뷰로를 놓았는데, 간편하게 노트북을 올려 컴퓨터 책상으로 활용하기도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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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 태어날 아기 방은 연한 블루 톤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이렇게 컬러를 배치하는 것으로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

파란 중문 안쪽으로 자리한 욕실. 민트 컬러로 포인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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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컬러의 보색인 오렌지색 타일로 포인트를 준 주방.

식탁은 거실 베란다에 배치해 차를 마시는 등 활용도를 높였다.

컬러는 집에 정서적 에너지를 더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관건은 무채색과 원색의 비율. 베이스로 피부 톤을 정리하고 입술과 눈에만 강한 포인트를 주는 메이크업 공식처럼 공간 컬러링도 무채색과 원색을 8:2 비율로 사용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여닫이문이나 문턱 등 동선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기존 문을 모두 떼어낸 뒤 방과 욕실에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했는데, 그 결과 문을 모두 열어두면 어떤 공간에 있든지 실제 면적보다 넓게 느껴진다고. 몰딩, 걸레받이, 문턱 등 군더더기를 제거하고 화이트 컬러로 마감해 시각적으로 확장된 듯한 효과도 얻었다.

또한 컬러는 집에 정서적 에너지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 집은 무채색과 원색을 8:2의 비율로 사용했다. 베이스로 피부 톤을 정리하고 입술과 눈에 강한 포인트를 주는 메이크업 공식처럼 공간도 8:2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 거실은 베란다에 원색 의자를 두고, 침실은 헤드보드 벽면만 팥죽색으로 마감하고, 전체적으로 문을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주는 식이다.

“보라색인데 조금 더 전통 느낌이 나는 색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팥죽색을 골랐어요. 침실 헤드보드 벽과 연결되는 안방 화장실 벽은 팥죽색으로, 천장은 팥죽색과 어울리는 회색으로 칠했죠. 파란색, 보라색은 특히 감정을 차분하게 하고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데 침실, 서재, 아이 방 등 조용한 분위기로 꾸며야 하는 곳에 어울려요.”

건축 요소를 인테리어로 접목한다면?
박선영 씨가 건축을 전공한 뒤 네덜란드 유학을 결심한 것은 실용과 디자인을 접목한 그들의 건축을 경험하기 위해서였다. 나무 하나도 계산해서 심는 나라 네덜란드. 땅을 개간하고, 세계적 건축물을 완성하는 데 걸린 2백 년이라는 시간 동안 철저한 계획을 바탕으로 보다 실험적이면서 디테일한 디자인을 완성하기까지, 그들의 건축 설계 과정을 경험하고 나니 오히려 ‘디자인’에 대한 갈망이 보다 현실적으로 정리되었단다. “건축 요소들을 인테리어로 변형, 적용하는 재미가 컸어요. 건축에 ‘매싱한다’는 말이 있어요. 쉽게 말해 덩어리감을 표현한다는 뜻인데, 프로그램이 다 똑같을 때 매싱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달라지는 모습을 반복해서 연습하죠. 인테리어로 매싱을 적용해 공간감을 더한 곳이 바로 천장이에요. 안방 계단 위쪽, 덩어리로 푹 들어간 사선 공간은 안방을 한결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요소입니다. 안방 천장 레벨과 거실 천장 레벨은 마치 뒤집힌 듯 정반대 모습이죠. 안방은 넓은 부위를 가벽으로 덧댄 뒤 조금만 오픈하고, 거실은 완전히 오픈했다가 책장 위쪽만 가벽으로 막아 변화를 주는 등 전체적으로 공간에 리듬감을 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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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침실을 바라본 모습. 베란다 앞 수납장 겸 쪽마루에 엎드려 책 읽는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이다. 시공은 엔데코 민영희 실장이 맡았다. 거실 소파는 치에레 제품으로 디사모빌리에서 구입.

창경궁 연경당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안방 베란다의 욕조. 그린과 블루 컬러로 싱그러움을 더한 이 욕조에서 앞산을 바라보며 반신욕을 즐긴다. 공동 주택이기에 방수를 3중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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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죽은 공간이 되었을 현관 옆 복도 벽면에 뷰로를 두고 컴퓨터 책상으로 활용한다. 가끔 맨발 등산을 즐기는 박선영 씨는 집에서도 부실별로 다른 촉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소재가 서로 다른 바닥재를 시공했다. 거실은 테카의 블랙 헤링본 원목 마루를 시공하고, 안방과 주방은 냉난방에 효과적인 타일, 방은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강마루를 시공했다.

신발장을 바꿔 45도로 틀어 배치한 현관.

획일적 구조에서 오는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축 요소를 공간 곳곳에 적용한 박선영 씨. 거실 소파 맞은편 TV 수납장은 현관 밖 모서리 선반과 같은 레벨로 이어져 수평적 확장감을 더한다. 건축적 미감에 집중하느라 실용성은 간과하지 않았을까 염려된다면 천만의 말씀. 샤워 후 몸을 말리고 옷을 입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중문을 달아 전실을 확보하고, 욕실은 모두 건식으로 완성. 건식 욕실은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편할뿐더러, 레노베이션할 때 타일을 해체하지 않고 덧방 공사가 가능해(욕실과 거실이 높이가 같아져도 무방하기 때문) 비용도 절감된다. 공간 곳곳에 수납장도 짱짱하게 배치해 수납공간도 한층 여유롭다.

“집을 고치면서 제가 조금 강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초안은 지금보다 패턴이 과했고 색깔도 훨씬 많이 썼죠. 그런데 이 집을 다시 판다고 생각했을 때, 보편적인 미감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 디자인을 수정하거나 무언가 결정해야 할 때는 늘 단열, 결로, 난방 등 주거의 기본 부분에 질문을 던졌고, 또 10년 이상 살 집이기에 여백도 필요했고요. 욕심과 절제의 과정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기본’을 되물었더니 실용과 디자인이 적절히 버무려진 집이 완성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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