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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사회와 소수자의 목소리
4. 정체성의 분열과 동화의 비애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석화의 시「연변 ․ 12 ― 아침에 부르는 처용가」는 신라시대의「처용가(處容歌)」를 재치 있게 패러디하고 있다.
아침 일어나보니/ 머리카락 서너 오리 베개 위에 떨어져 있다/ 이젠 내 두피와 영영 작별한 저것들을/ 지금도 내것이라고 우길수 있을가/ 지난겨울 둘러보았던/ 충남 부여의 고란사와 낙화암과 백마강이 떠오르고/ 삼천궁녀 꽃같은 치맛자락이 베개 위에 얼른거린다/ 백제는 이미 망해 간 곳이 없고/ 그를 이긴 신라도 사라졌으니/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을 뿐이다/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있던 저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져 갈것인가/ “원래는 내 해인데/ 앗아가니 어찌 하리요."/ 체조하는 달밤도 아닌데/ 「처용가」한 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이 시를 두고 “인생무상”의 시적주제를 표현했다고 볼수도 있겠으나,『연변』련작시의 총적주제와의 내적인 련관성을 념두에 두고 시 전체를 차분히 읽어나가면 시인 자신의 무상한 인생에 대한 달관의 태도와 함께 많은것을 잃고있는 조선족공동체의 현실적위기와 시인의 우환의식을 보여준다고 해도 대과(大過)는 없을 것이다. 백제, 신라는 더 말할것 없고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다고 했다. 또 어디 그뿐인가.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 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져 갈것인가” 라고 개탄을 했으니 “시인의 머리카락 서너 오리”는 하나의 보조관념으로서 그것은 우리 겨레의 력사요, 영광이며 우리 겨레의 피붙이요, 가장 소중한 민족적 정체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소실되었고 우리 기억에서조차도 지워지고 있다고 했다. 시인은 이러한 현실앞에서 오히려 해학과 익살을 부려 체념을 하고있는것 같지만, 분명 우리 모두에게 깊은 사색을 던져주고있다.
석화 시인이 절묘한 용전(用典) 또는 패러디를 통해 민족적 정체성의 분열과 조선족공동체의 붕괴위기를 꼬집고있다면, 박옥남은 생동하는 성격창조를 통해 민족적정체성 상실의 비극을 다룬다. 장손은 가문의 대통을 잇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막중한 책임을 안고있다. 하지만 단편소설「장손」의 주인공은 한족학교에 다녔고 조선음식보다 한족음식을 좋아하며 신수는 멀쩡하지만 일하기는 싫어한다. 계집을 좋아하고 여러 번 장가를 들다가 나중에는 중국여인의 품에서 죽어간다. 그런데 여인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문상객들도 장밤 마작만 놀아댄다. “장손”의 렵총은 큰처남이 가져갔고 목이 긴 구두는 둘째처남이 가져가는데 오토바이의 “주권”을 두고 막내처남과 “형수”가 옥신각신 다툰다. 청승맞은 새납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개처럼 죽어가고 뜯겨가는 장손의 모습,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퇴색한 사진액자 하나가 허접쓰레기 같은 옷가지에 휘말려 나뒹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주어들고 보니 설날아침이면 차례상에 모셨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정사진이었다. 유물을 정리한답시며 여기저기 마구 뒤지는 통에 한데 끼여 나온 게 분명했다. 솜두루마기를 입은 할아버지와 앞가리마를 곧게 내여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붙인 한 할머니가 똑같은 시선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렸을 땐 차례제를 지내면서도 무섭다고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사진이었다. 그러다 후에 철이 들면서 차차 익숙해져 다시 정을 가지고 대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유일한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이곳에 흘려져 있을 줄이야.
조상의 영정(影幀)마저 챙기지 못하고 개처럼 죽어가는 모습인데, 이를 소설적인 허구로만 볼 수 있을까? 피땀으로 일군 땅을 지키지 못하는 조선족공동체의 현실, 우리의 말과 글, 민족교육의 터전마저 지키지 못하는 현실, “장손”은 결코 허구적인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이 소설은 시종일관 “사촌동생”의 시점으로 모든 인물과 사건을 관찰, 묘사, 서술하면서 절제된 평가와 의론을 통해 냉철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갈피갈피에 펼쳐지는 조선족과 한족 문화에 대한 대비적 서술에도 작가 특유의 혜안과 재치가 엿보인다.
5. 맺는 말
다문화주의사회는 전통적으로 공약(公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다름과 평등”이라는 가치의 조화를 추구하는 사회이다. “다름”을 리유로 차별하지 않으며 “평등”을 리유로 동화를 강조하지 않는 사회, 다시 말하면 사회구성원이 제 각각의 개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향유하되 평등한 권리와 의무를 공유하는 사회가 다문화사회인 것이다.
우리는 조선족을 연변의 사과배에 곧잘 비유다. 연변의 사과배가 연변의 돌배나무 유전인자와 북청 배나무 유전인자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듯이 조선족은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정체성과 한민족으로서의 문화적 정체성이 하나로 결합된 이중적인 정체성 또는 이중적 문화신분을 갖고있는 특수한 민족공동체이다. 이제 조선족은 더는 발길이 닿는 대로 떠도는 나그네도, 물결 따라 바람 따라 떠도는 부평초도 아니며 아무런 경계 없이 날아다니는 박쥐도 아니다. 조선족이 어제도, 오늘도, 래일도 대대손손 살아가야 할 곳은 중국이다. 석화 시인이「연변 ․ 7 ―사과배」라는 시에서 노래한바와 같이 조선족이라는 이 사과배나무, “우리만의 『식물도감』에/ 우리만의 이름으로 또박또박 적혀있는/ ― "연변사과배/ 사과만이 아닌/ 배만이 아닌/ 달콤하고 시원한 새 이름으로/ 한 알의 과일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문화를 공유한다고 해서 그것은 1 : 1의 관계는 아니다. 모든 나무의 생명력은 땅속에 뻗어있는 그 나무의 뿌리에 있다. 또 나무가 말라 죽고 있는 까닭은 그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말라 죽어가고있기때문이다. 생물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줄기나 잎보다도 뿌리가 중요하듯이 문화의 줄기나 잎보다도 뿌리가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족은 자기의 민족적정체성을 고이 간직하고 자기의 말과 글을 지키며 중국의 주류민족의 장점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선의적인 경쟁을 해서 자립할수 있는 민족으로 거듭나야 할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기의 민족적정체성을 잃고 주류민족에게 동화되여 버린다면 이보다 더 큰 비극은 없을 줄로 안다. 다문화주의 담론에 있어서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 2009년 3월 25일
다문화사회와 소수자의 목소리 글싣는 순서
1. 들어가는 말
2. 이민열조와 주변부 문화의 붕괴위기
3.경계의 공간과 숙명적인 공존
4.정체성의 분열과 동화의 비애
5.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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