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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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우리 삶에 대한 성찰과 지혜
2011년 01월 26일 10시 14분  조회:1326  추천:28  작성자: 김호웅

                       우리 삶에 대한 성찰과 지혜
              - 2010년 연변일보 CJ문학상, 해란강문학상 심사평

                                              김호웅(연변대학 교수, 문학박사)

   

    올해 심사는 장정일, 최국철, 김호웅이 맡았고 엄격한 심사와 충분한 론의를 거쳐 CJ문학상으로 채복숙의 <<고슴도치>>, 해란강문학상으로 김학송의 장시 <<혼의 노래>>, 김철호의 서정시 <<물은 칼이다>>, 리성비의 서정시 <<두만강>>, 현영애의 수필 <<항아리 이야기>>, 주향숙의 수필 <<봄은 슬프다>>를 선정했다.    
    이 번 수상작들을 통틀어 살펴보면 우리 현대문명의 빛과 그늘을 깊이 있게 성찰하면서 서로 밀접하게 련계되는 두 가지 주제를 표현하고있다.
    수상작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현대문명의 명암(明暗)을 짚어보고 거침없이 무너지는 조선족공동체의 운명을 두고 혹은 만가풍의 구슬픈 음조로, 혹은 민요풍의 경쾌한 가락으로, 혹은 사시적인 화폭으로 노래하고있다.
    주향숙의 수필 <<봄은 슬프다>>는 한 폭의 의미심장한 스케치요, 한 수의 구슬픈 만가(輓歌)이다. 봄이 찾아왔건만 정든 이웃들이 다 떠나간 마을은 텅 비고 사래 긴 밭이랑들만 무심히 누워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늙은이가 하릴없이 망연히 서있는데 그의 옆에는 삭아버린 수레 한 채가 있고 소는 보이지 않고 빈 말뚝만 서있다. 이처럼 이 수필은 조선족 농촌마을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을 화룡점정(畵龍點睛)식의 필치로 묘파함으로써 읽는이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준다. 
    주향숙의 수필은 무너지는 우리 농촌사회에 대한 만가라면 리성비의 서정시 <<두만강>>은 두만강이라는 시적 화폭 속에 아름다운 전설과 전통사회 속으로 우리 독자들을 이끌어간다. 두 내외는 전설속에 묻힌 장고(長鼓)를 꺼내놓고 농악놀이 때 입던 옷가지들을 구김살 펴서 입고 조상들이 탔던 배와 그물을 점검하고 두둥실 뜨는 푸른 바다에서 한껏 장고를 울린다. 시는 안늙은이와 바깥늙은이의 대화체로 친밀감을 살리면서 경쾌한 향수의 가락을 뽑아내고있다. 그리고 “구멍 난 고기그물 별빛이 걸리게 떠봄세”와 같은 시구는 모진 세파에도 시들줄 모르는 우리민족의 꿈과 희망을 암시하고 있어 한결 밝은 시적 분위기를 창출하고있다.
    민족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긍지를 안고 민족혼의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찬미한 시인은 김학송이다. 장시 <<혼의 노래>>는 백여 년의 우리 조선족 이민사, 투쟁사, 건설사를 시적 화폭으로 창조하면서 민족의 혼을 살려 “천년만년 우리 노래”를 불러야 할 당위성과 의지를 힘 있게 노래하고있다. 일부 시적 이미지들이 상투적이고 시인의 시의식이 너무 로출된 한계도 갖고있지만 우리 모두가 풍전등화처럼 흔들리고있는 민족사회의 현실을 극복해야 할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있다고 생각할 때 이런 투철한 력사의식과 현실비판의식을 내재한 장쾌한 랑송시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요청된다고 하겠다. “우린 지금 선인들의 유산을 저당 잡히고/ 피둥피둥 살지고있는지도 모른다// 우린 지금 자기의 둥지 털어 불 때며/ 따듯한 겨울을 노래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너와 나 하나하나가 고향집 기둥이요 연목가지인데”. 이 얼마나 날카로운 아이러니이며 심통한 은유인가! 이 시가 국내외 여러 사이트에 올라 많은 독자들의 공감과 절찬을 받은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다음으로 수상작들은 물질적인 풍요와 더불어 사치와 탐욕이 들끓고 기계문명에 의해 우리의 소중한것들이 소실되어가는 현실속에서 전통문화의 가치와 우리 모두의 바람직한 삶을 지향하고있다.
    현영애의 <<항아리의 이야기>>는 현대식 아파트로 이사를 할 때 시어머님이 물려준 항아리를 가지고 갈가, 아니면 버릴가 하고 고민하는 행복한 중년주부의 고민을 수필적인 모멘트로 다루고있다. 말하자면 작자는 “울퉁불퉁하고 조금 기울어진듯 비틀어진 자세, 유약도 골고루 칠해지지 않아 해빛이 얼룩덜룩 비치는, 겉모양은 투박하다는 말은 맞을지 몰라도 절대로 우아하지 않은 조그마한 항아리 하나”를 두고 고민한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항아리, 그것은 시어머님이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다. 그래서 이 항아리를 새집에 가지고갔다면 그저 효도를 다룬 평범한 작품이 되고말았을것이다. 하지만 이 수수한 항아리를 베란다의 한구석에 놓고 그것이 그냥 아가리를 벌린 채 덩그렇게 놓여있는것이 안쓰러워 무심히 갈꽃 몇 잎을 꺾어 넣었더니 집안에 이채를 돋구어주는 디자인 포인트 1번지가 되었단다. 이 집을 방문한 손님들이 환성을 지른다고 했고 작자는 다음과 같은 철리적인 의론을 전개함으로써 이 수필의 품위를 결정적으로 높여주었다.
    “그러하리라. 아파트 집집마다 인터리어를 하고 이 인터리어들이 아무리 개성을 살려 독특하게 설계되고 남다르게 꾸며졌다 하여도 결국은 현대화란 시스템의 굴레에 묶여 진행되는 우리 삶의 한 편린인것을. 어느 집에 들어가 보나 거기서 거기일것이다. 그리고 집안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는 전자제품이나 가구들도 상가나 백화점에서 들여온것이니 누구의 눈엔들 한번쯤 뜨이지 않았겠는가. 거기에는 나만의 삶이 묻어날 수 없는것이다. 그런데 이 번쩍번쩍 광채가 나는 럭셔리한 세계에 수십년전 물건인 투박한 항아리 하나가 그것도 자연의 작품인 하얀 갈꽃 몇 잎 담고 자리를 버티고 앉았으니 어찌 눈에 확 들지 않겠는가.”
    현영애의 수필에서는 현대문명의 틈바구니속에서도 여전히 빛 뿌리는 전통적인것의 가치를 새롭게 발굴하고있다면 김철호의 서정시 <<물은 칼이다>>는 단순한 영물시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물은 칼이다”라는 참신한 은유를 통해 민중의 무서운 힘을 노래하고있다. 물은 쉽게 부수어지고 가장 밑으로, 가장 아래로 도망을 칠수도 있지만 모여 한 몸이 되면 칼이 되고 바람을 만나 키를 돋우면, 또는 저항에 기우뚱 몸을 흔들면 칼이 된다고 했으며 칼은 하늘아래 모두를 베일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있다고 했다. 여기서 “물”은 가장 취약하면서도 일단 모이면 거대한 힘을 가질수 있는 민중을 지칭한다고 해도 대과(大過)는 없을 것이다. 이 시는 이러한 민중의 힘을 모르는 부패한 권력의 무지와 횡포를 은근히 비웃고있다.
    김철호 서정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채복숙의 수필 <<고슴도치>>는 관습적상징의 틀을 깨고 참신한 개인적상징을 창출해 읽는이들에게 깊은 철리를 선물한다. 작자는 서로 찔리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는 적정 간격, 즉 고슴도치형 현대인간들의 “수양과 례의, 그리고 그에 걸맞는 직업적인 혹은 도덕적인 미소”에 회의와 반발을 느낀다. 그러면서 “찌르기도 하고 찔리기도 하면서 사는 그런 화끈함이 부럽다”고 했다. 개인적 상징을 통해 가식과 허위로 가득 찬 현대문명, 인정과 신뢰가 메말라가는 현대인의 삶에 일침(一針)을 놓은 깔끔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모두어 수상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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