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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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굴원과 어부
2005년 11월 22일 00시 00분  조회:4571  추천:46  작성자: 김관웅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는 성구는 참으로 지당한 말이다. 옛날 고서(古書)들을 읽다보면 오늘의 삶속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요즘은 겨울 방학기간이라 시간적인 여유가 좀 생겨서 중국의 고전들을 두루 섭렵하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노라니 현실의 문제들도 많이 련상된다.

요즘 주희(朱熹)의 『초사집주(楚辭集注)』를 펼치다가 그 유명한 「어부사(漁父辭)」를 다시 읽게 되었다.

초나라의 삼려대부(三閭大夫)를 지냈던 굴원(屈原)이 상강(湘江)이 흐르는 오지(奧地)로 추방을 당하여 호수 가에서 시나 읊조리면서 다녔는데 그 옷차림이 람루하고 안색이 초췌하여 꼴이 아니었다.

한 늙은 어부가 굴원을 보고
“그대는 초나라에서 큰 벼슬을 하던 분이 아니시오? 무슨 연고로 이 고장에 왔소?”
라고 물으니, 굴원이 이렇게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은 깨끗하고,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했는데 오로지 나만은 깨어 있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추방을 당한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어부가 입을 열었다.
“성인은 사물에 구애됨이 없기에 막히어 머무르지 않는 것이오. 세속과 더불어 옮아가며 변동하는 것이오. 그대는 왜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할 때 그 진흙을 파버리고 그 흙탕물을 퍼내지 않았소?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취했을 때 왜 그 술지게미를 먹지 않고 그 술을 마시지 않았소? 무슨 연고로 그렇게 생각을 깊게 하고 행동을 고상하게 하여 스스로 추방을 당했단 말이오?”

이에 굴원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듣건대, 새로 머리감은 사람은 반드시 관을 퉁겨 털어서 쓰고 새로 몸을 씻은 사람은 반드시 옷을 털어서 입는다고 하오. 어찌 자기의 결백한 몸이 지저분한 물건에 더럽혀 지게 할 수 있단 말이오? 그럴 것이면 오히려 깨끗한 강물에 몸을 던져 고기의 밥이 되는 게 낫소. 어찌 백설 같이 깨끗한 이 몸이 세속의 진창 위에서 뒹굴 수 있단 말이오?

어부는 빙긋이 웃으면서 노를 저어 가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강물이 맑으면 가히 내 갓끈을 씻을 수 있고요, 강물이 흐려지면 가히 내 발을 씻을 수 있다네”
어부는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노를 저어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청명(淸明)한 세상에서만 살수 있는 굴원보다는 청명(淸明)한 세상이나 혼탁(混濁)한 세상에서나 다 융통성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늙은 어부가 훨씬 살기 편했을 것이다. 그리고 굴원보다는 늙은 어부의 삶의 방식이 월등하게 지혜롭다고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설사 겉으로는 드러내고 칭찬을 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늙은 어부의 처세의 방법을 흠모하고 따르는 이들이 월등하게 많다.

세속의 더러운 진창 속에서 자기의 몸을 더럽힐 것이면 깨끗한 강물에 몸을 던져 고기밥이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굴원,

강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강물이 흐려지면 발을 씻으면서 세속과 더불어 옮아가며 변동하면서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늙은 어부,

너무나 대조적인 삶의 자세이고 처세방식이다.

이「어부사」를 읽으면서 나는 저도 모르게 김학철 옹과 정판룡 선생이 머릿속에 떠올렸다. 김학철은 굴원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았다면 정판룡 선생은 늙은 어부 같은 삶의 자세를 가지고 살았다.

내가 언젠가 김학철 옹을 네모반듯한 방정한 성격유형의 전형이고 정판룡선생은 둥굴둥굴한 융통성 있는 성격유형의 전형이라고 말한 적 있다.
너무나도 양극적이고 그래서 대조적인 성격유형이다.

김학철 옹의 일생은 우리들에게 정의를 위해서라면 '감히 황제라도 말잔등에서 끌어내리고(敢把皇帝拉下馬)" 정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하라고 가르친다.

반대로 정판룡 선생의 일생은 "시대의 변화를 아는 자가 준걸(識時務者爲俊杰)"이니 저 혼자 고고(孤高)하게 탁류(濁流)를 거슬러 오르려는 어리석은 짓을 벌리지 말라고,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전철을 밟지 말라고 가르친다.

지난 2004년 10월 7일에는 연변대학 캠퍼스의 산정 우에 "정판룡문학바"가 세워졌고, 12월 23에는 연길에서 "김학철문학국제학술심포지움"이 개최되었다.보다시피 김학철과 정판룡은 지금 중국조선족문단에서의 두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매김을 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어느 쪽이 바람직한 삶의 자세일까?
혹자는 이런 물음 자체를 흑백논리에 물젖은 발상이라고 공박을 해올 수도 있다.
실로 이 가치다원회의 시대에서 어느 쪽이 바람직하다고, 옳다고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내 개인의 생각을 밝힌다면, 비록 나 스스로도 굴원처럼 살 수 있겠는지 단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그래도 어쩐지 굴원 쪽에 마음이 더 간다.
다만 김학철옹에게 쏠리는 내 마음 섭공호룡(葉公好龍)이 아니기만을 바랄뿐이다


2005,1.10 배재대학교 국제교류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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