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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서 이룰수 있는 변두리의 찬란함
-“윤동주문학상 백일장” 수상식 축사
김 관 웅 연변대학 교수
저는 연변대학 한국학학원의 교수 김관웅입니다. “제9회 윤동주문학상 백일장 시상식” 주최측의 부탁을 받고 축사를 드리게 된 것은 커다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윤동주님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한민족의 시단에서 가장 독자들의 사랑은 받는 걸출한 민족시인의 한 분입니다. 윤동주님도 저 자신이나 여기 앉아계신 학생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디아스포라, 즉 조선반도로부터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서 중국에 건너온 조선이민들의 후예입니다. 다 아시다 시피 윤동주님은 우리 연변의 룡정 명동촌에서 출생하셨고 윤동주님의 묘소도 고향 룡정 동산 교회공동묘지에 있습니다. 윤동주님은 명실공히 우리 연변이 낳은 걸출한 시인입니다. 저는 윤동주님 같은 한 고향 대선배를 모시고 있는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20세를 전후하여 10여년 전개된 윤동주님의 시창작은 청년기의 고독감과 정신적 방황, 조국을 잃음으로써 삶의 현장을 박탈당한 민족적 정체성의 상실이 그 원천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서울에서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에 쓰여진 시들은 일제말기의 암흑기를 살아간 역사감각을 지닌 독특한 자아성찰의 시세계를 보여줍니다.〈서시〉,〈자화상〉,〈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등이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작품들입니다. 윤동주님의 시는 한마디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민족적인 량지와 량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면서”, “죽을 때까지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순수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내면의 의지를 노래하였습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윤동주님을 가장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진 암흑기의 가장 걸출한 민족시인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분명히 윤동주님이 살았던 그 암흑한 시대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국조선족은 오늘날 커다란 시련과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특히 국외 로무송출과 국내 대도시진출로 인한 민족의 이동으로 우리연변의 조선족인구가 나날이 감소되고 조선족학교가 줄어들고 조선족마을이 줄어들고 한족학교로 가는 조선족학생들이 늘어남으로 하여 우리글과 말을 잃어가고 있는 후세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 연변의 조선족 민족교육을 비롯한 조선족문화는 말 그대로 “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로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청년이 죽으면 민족이 죽는다”고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의 격변기에 “윤동주문학상 백일장”이 거의 9회에 걸쳐서 성공리에 치러졌다는 것은 참으로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천이 마르지 않으면 강줄기는 마르지 않는 법입니다. 뿌리가 죽지 않으면 나무줄기와 가지는 죽지 않는 법입니다. 강의 원천이 깊은 산속에 있고 나무의 뿌리가 깊은 땅속에 있듯이 중국조선족문화의 원천은 연변을 위수로 한 동북의 여러 산재지역의 시골과 소도시들에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중소학교 교육은 중국조선족문화의 원천이요, 중국조선족문화의 뿌리입니다. 중국조선족의 중소학교 교육에서도 그 핵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교육에 있습니다. 중소학교의 교육이 살면 중국조선족문화의 줄기와 가지도 자연히 싱싱하게 살아나게 되는 법입니다. 저는 9회째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윤동주문학상 백일장”은 우리 중국조선족 민족교육에 있어서 말 그대로 가물에 단비 같은 존재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10년 가까운 동안에 “윤동주문학상 백일장”은 윤동주님의 민족애와 민족정신을 따라 배우고 우리 모두의 령혼을 정화시키고 아울러 우리 민족의 희망인 중학생들로 하여금 윤동주님을 본보기로 삼아 투철한 민족의식을 지니고 우리글과 말과 글을 지키고 민족의 얼을 지키고 빛내여 가도록 인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왔습니다.
윤동주님은 또 중국조선족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또 용기와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분이기도 합니다. 북간도의 산간 오지에서 명동촌에서 태여나서 자란 윤동주님의 시비가 한국의 명문대인 연세대 교정에 우뚝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저 같은 이순(耳順)의 나이에 접어드는 늙은 사람도 갑자기 온몸에 힘이 솟구치는 감을 느꼈습니다. 한국 연세대의 초청으로 연세대를 방문한 “윤동주문학상 백일장”의 젊은 당선자들이 윤동주님의 시비를 보고는 아마도 저보다는 열배이상으로 커다란 감명을 받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은 조선반도문화에서나 중국문화에서나 모두 변두리와 경계에서 살고있는 디아스포라입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은 디아스포라로 사는 과정을 통하여 수많은 내면적 갈등을 축적해왔으며 그것은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다면적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치고 바이링규알(bilingual), 즉 두 개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국조선족치고 피해의식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의 구성원들은 항상 자신이 지켜야 할 내면적인 규범과 삶의 외부적 환경 사이의 극심한 대립이나 모순과 타협하기 어려운 갈등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의 매개 구성원들은 이러한 갈등을 어려서부터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신분적으로 체험하면서 자라나게 마련입니다.
북간도라는 이 디아스포라에서 살던 윤동주의 유년시절, 청년시절의 삶 자체가 이러한 갈등의 소산이였던 것입니다. 윤동주님은 자신의 이러한 내심적인 갈등을 훌륭하게 문학적으로 승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인적 체험을 력사적 국면의 경험으로 확장시킴으로써 한 시대의 삶과 의식을 노래하는 동시에 특정한 사회, 문화적 상황속에서의 체험을 인간의 항구한 문제들에 관련지음으로써 보편적인 공감대에 도달하였던 것입니다.
디아스포라인 유대인들속에서 수많은 천재들이 배출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리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예수로부터 칼 맑스, 지그문트 프로이드,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춈스키나, 스필버그에 이르기까지 이들 유태민족에게서만 집약적으로 천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바로 이네들의 특수한 디아스포라적인 체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언제나 변두리에서 살아오면서도 언제나 변두리의 찬란함을 만방에 과시하여 오게 된 것입니다. 변두리를 언제나 중심으로 바꾸어 놓곤 하였습니다.
우리 연변도 바로 이런 디아스포라의 땅입니다. 이 땅에서 윤동주님이 태여 나고 송몽규 같은 분이나 문익환 목사님 같은 분이 배출되게 된 것 역시 우연한 현상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먼 옛날로 소급해 올라가면 우리가 살고 있는 두만강 류역은 비록 동북아세아에서의 만황지지(蠻荒之地)였지만 중국을 270여 년 동안이나 통치했던 청나라 황실 조상의 발상지이고, 조선반도를 500년 동안이나 통치했던 조선조 왕실 조상의 발상지이기도 합니다. 천자가 나시고 국왕이 나신 고장입니다. 우리 연변 땅은 말 그대로 개천에서 룡이 나온 “흥룡지지(興龍之地)”입니다.
학생 여러분, 우리 연변의 미래, 중국조선족의 미래는 바로 여기 앉아계신 여러분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학생 여러분, 여러분들은 비록 산간 오지이고 변두리인 연변 땅에 살지만 기가 죽어서는 안 됩니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그 큰 꿈을 이룩하기 위해 하여 백배의 노력을 경주하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들은 기필코 윤동주님처럼 변두리의 찬란함을 세상에 과시하는 그런 거룩한 공업(功業)을 이룩하시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8년 5월 25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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