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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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록) 총명스러움과 바보스러움
2005년 12월 15일 00시 00분  조회:7970  추천:37  작성자: 김관웅
•수상록•

총명스러움과 바보스러움

김관웅


18세기, 청나라시절의 유명한 서화가 정판교(鄭板橋,1693--1765)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한 사람이 총명스러워진다는것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바보스러워진다는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총명스러움으로부터 바보스러움에로 넘어간다는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다.(聰明難, 糊塗亦難, 由聰明轉入糊塗更難.)>>

요즘 나는 늘 내 자신을 두고 이 말의 숨은 뜻을 음미하고 있다.
소학교 공부부터 시작하여 박사공부까지 했으니 얼마간은 총명스러워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총명스러움은 어디까지나 학문령역에서의 지식과 정보량의 확장으로 해석할수 있는것이지 개인적나 사화적인 대인관계를 원활하게 처리하고 자기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능란하게 보호하는 삶의 지혜와 예술 같은 대총명은 아니다. 한마디로 장강의 물처럼 웅숭깊은 대총명이 아니라 접시에 담은 물처럼 옅디옅은 소총명이다.

장강의 물은 소리없이 묵묵히 흘러가지만 소오줌 줄기만 실개천이 더 촐랑대듯이 대총명의 소유자들보다는 소총명의 소유자들이 오히려 자아표현, 자아홍보에 더 신경을 쓰고 남들앞에서 시뚝하고 으시대고 쩍하면 교육자의 립장에 자기를 내세워 남들을 훈계하기 좋아하는 고약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나는 요즘 내가 바로 소오줌 줄기만한 실개천처럼 촐랑대는 소총명의 소유자임을 절감하게 되였다.

그것은 두 젊은 문학도와 나 사이에서 일어난 크지도 작지도 않은 트러블로부터였다.
약 한달전의 일이다. 한번은 내가 문단의 한 모임에서 한 젊은 문학도를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켜 보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비난한적(그때 나는 선의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있다.

며칠이 지나서 나는 그 나 젊은 문학도로부터 항의에 가까운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나는 겉으로 사과를 했을 뿐 속으로는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었다. 오히려 <<지금은 왜 다들 칭찬만 좋아하고 선의적인 비판은 용납하는 아량들을 가지지 못했을까?>>하고 자기가 아닌 남을 탓했던것이다.

이 일이 있은지 한달도 채 안되는 며칠전의 일이다. 역시 남을 훈계하기 좋아하는 버릇이 또 사건의 발단으로 되였다. 나는 평소에 이 젊은 문학도에 대해 비상한 관심과 배려를 돌려 왔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터였다. 그것은 공식적인 사제간은 아니지만 내가 문학에 대해 직접 가르쳐 준적 있고 작품에 대해서도 다듬어도 주고 적극 내 홈페지를 통해 홍보해 준적도 있었으니 나는 훈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왔다. 몇편의 시와 글들이 지면에 발표된 후에 살펴본 그의 태도들에서 나는 반드시 교정(校正)을 하여 주어야 한다고, 내 딴에는 비뚤게 자라나는 곁가지들을 전지(剪枝)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나는 내 소신대로 그를 소위 <<교육>>하느라고 좀 이상한 방법(즉 갑자기 랭대를 하고 무시를 해버리는 등)을 취해보았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빗나갔다. 자존심이 하늘만한 그는 나의 소위 <<교정>>과 <<전지>>를 접수하기는커녕 강렬한 반발을 하여 왔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거듭 류사한 일이 생기고 나서야 나는 타인들에게도 물론 마땅히 교정이나 전지를 해야 할 결함들도 있겠지만 우선 나에게 마땅히 교정하고 전지를 해야 할 결함들이 훨씬 더 많음을 어렴풋하게 나마 깨닫기 시작하였다. 먼저 학생노릇을 하고 후에 선생노릇을 하라고 누군가 말한바가 있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가? 이것이 직업병인지 나 개인적인 인격적인 약점인지는 잘 몰라도 나는 언제나 남들앞에서, 특히는 젊은이들앞에서 선생노릇만 하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것도 태도나 방법을 강구하지 않고 무턱대고 훈계만 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칭찬하여 젊은이들의 전정(前程)을 그르치는 봉살(捧殺)도 나쁘지만 자라나는 젊은이들을 움을 마구 따버리고 자존심을 마구 짓밟아 버리는 매살(罵殺) 역시 지극히 바람직하지 못한것이다.

이번 두 사건을 통하여 남을 교정만 하고 전지만 하려고 무모하게 접어들었던 내가 젊은이들로부터 교정을 받았고 전지를 당했던것이다. 아무튼 두 젊은이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그러면 이제 나에게 남은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총명스러움으로부터 바보스러움에로 넘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로자도 << 큰 지혜를 지닌 사람은 바보처럼 보인다(大智若愚)>>고 하지 않았던가. 한 인간이 큰 지혜, 큰 총명을 지닌다는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총명스러움으로부터 바보스러움에로 전환한다는것은 인격의 질적인 비약이요, 고차원에로의 승화이다.

이것이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나는 마음을 지어 먹고서라도 꼭 이룩해 내고야 말것이다. 그 결심의 징표로서 나는 내 아호(雅號)를 바보라고 정식으로 확정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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