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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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하로동선(夏爐冬扇)의 뜻을 되새기면서
2006년 02월 08일 00시 00분  조회:3485  추천:60  작성자: 김관웅
☆수필☆
하로동선(夏爐冬扇)의 뜻을 되새기면서

김 관 웅


우리 집 식탁 유리 밑에는 염량세태를 표현한 무명씨의 시 한수가 깔려있다.

가을이 오니 비단 부채를 거둬 두는구나
무슨 일로 가인이 감정을 중히 여기겠는가
세상의 일들을 자세히 살펴 보시라
누구인들 덥고 차거움을 따르지 않는가.
(秋來紈扇合收藏, 何事佳人重感傷.
請把世事仔細看, 大都誰不逐炎凉.)

또 하로동선(夏爐冬煽)이라는 성구가 있는데, 여름날의 화로(火爐)요 겨울철의 부채란 말이다. 더운 여름날엔 화로가 필요 없다. 오히려 성가신 존재다. 그래서 헛간 한 구석에 내 팽개쳐 있지만, 추운 겨울이 오면 떨면서 헛간에 들어가 먼지 묻은 화로를 정성껏 닦고 불을 지핀다. 부채도 추운 겨울에는 쓸모가 없다. 방 한 귀퉁이나 농짝 밑 같은 구석진 곳에 버려진 듯 있다가, 정작 무더운 여름철이 오면 주섬주섬 찾아 더위를 식히는 것이다.

《명심보감(明心寶鑑)》에는 다음과 같은 경구가 있다.

《가난하게 살면 시끄러운 저자거리에서도 서로 아는 사람이 없고, 부유하게 살면 깊은 산속 먼 곳에서도 친한 사람이 있느니라》

가난하게 살면 그 떠들썩한 시장거리에 살아도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없다. 먹을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유하면 심산벽곡에 숨어 지내도 사람들이 찾아온다. 밥 한 끼라도 얻어먹을게 있고 돈 한 푼이라도 얻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쉐익스피어의 희곡《아테네의 타이몬》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고대 희랍 아테네의 귀족 타이몬이 부자였을 때는 그의 집에 식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지만 가세가 기울어지자 전에는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다니던 친구들조차 발길을 딱 끊는다. 돈 냄새만 맡으면 달려들고 먹을알이 없으면 뿔뿔이 날아가버리는 파리떼 같은 추악한 인간들이 혐오스럽고 리익만 쫓는 인간이 세상이 싫어서 타이몬은 멀리 해변의 수림 속에 숨어살게 된다. 그러다가 수림 속에서 황금단지를 발견하자 또 숱한 사람들이 몰려든다.

타이몬은 돈이란 이 요물이 인간의 마음을 이렇게 요사스럽게 만든다는 점을 깨닫고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황금이여!
누렇고 번쩍 번쩍 번쩍하는 빛을 뿌리는
귀중한 황금이여!
이것이 조금만 있어도
검은 것이 희게 변할 수 있고,
추한 것이 곱게 보일 수도 있고,
틀린 것이 옳은 것으로 될 수도 있고
비천한 것이 존귀한 것으로,
로인이 소년으로,
겁쟁이가 용사로
변할 수도 있노라.

맑스는 《자본론》에서 이 대사는 《화폐의 본질을 절묘하게 묘사했다》고 칭찬한바 있다.

이처럼 요사한 인간의 본성은 동양이라고 다르지는 않다. 역시 고대 희랍시기와 비슷한 시절이였던 한나라시기에 적공(翟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정위(최고재판소 소장)가 되자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러다가 그가 관직에서 쫓겨나자 손님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져 문 앞에 새 그물을 칠 정도였다고 한다. 후에 다시 정위가 되자 또 손님이 몰려들었다. 이렇게 천박한 사람들에게 정나미가 뚝 떨어진 그는 문 앞에 다음과 같이 크게 써 붙였다.

《한번 죽었다가 한번 살아나니 이에 교제할 때의 정분을 알게 되였고,, 한번 가난했다가 한번 부유해져서야 비로소 교제할 때의 사람의 태도를 알았으며, 한번 귀하게 되고 한번 천하게 되여서야 교제의 참된 정이 드러나게 되였다.》

세상인심이란 이렇게 사람의 재산의 빈부나 권세의 유무에 따라 표변하는 것이다. 자고로부터 어려운 사람을 돕고 부족한 사람을 이끌어주는 따뜻한 정도 있지만, 더우면 모이고 추우면 흩어지는 것도 세상인심이다. 그래서 염량세태(炎凉世態)라 말하는 것이다.

젖을 뗄 때의 아기들을 보라. 엄마들이 젖꼭지에 개나 돼지의 쓸개를 발라 놓으면 아기들은 젖꼭지를 물었다가도 뱉아버린다. 그야말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다가서고 자기에게 불리하면 물러서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자연스러운 본성중의 하나라고도 할 수도 있다.

어른들이 사는 세상의 인정이란 것도 하로동선(夏爐冬扇)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자기에게 유리하면 빌붙어 아첨하고 불리하면 멀리하거나 배척하는 간사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의 마음을 아기들이 젖꼭지가 달면 빨고 쓰면 뱉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이라고나 할런지?

오늘이라고 인간들의 이런 본성이 변한 것은 아님을 이번 설을 쇠면서 실감할 수 있었다. 날 샌 은혜는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들만 이러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이런 인간의 하로동선의 본성에서 별로 자유로운 인간이 아님을 설을 쇠면서 심심하게 느꼈다. 부모 형제와 스승, 동료, 친구 등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관심과 도움을 받으면서 오늘 만큼 성장했지만 내가 그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또 갚으면서 살아왔는가? 그러기에 남들이 나한테 어떻게 처사하는가를 따질 수가 없었다.

하로동선(夏爐冬扇)이라는 성구의 뜻을 되새기면서 나 자신은 구경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되돌아보는 음력설이였다.

2006년 2월 4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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