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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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인간의 실존과 본질에 관한 명상
2006년 04월 06일 00시 00분  조회:4713  추천:70  작성자: 김관웅
(수필) 인간의 실존과 본질에 관한 명상

김관웅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온다.
코끼리부부한테서는 코가 길다란 새끼 코끼리가 나오고, 기린부부한테서는 목이 길다란 새끼 기린이 나온다. 백인부부한테서는 흰둥이 자식이 생겨나고, 흑인 부부한테서는 검둥이 자식이 생겨난다. 이는 만고불변의 유전학적인 법칙이다.

생물학적인 각도에서 볼 때 자연계나 인간계의 모든 물종이나 인종은 태여 나면서부터 본질이 주어지는 것이다. 본질이 존재에 선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물적 존재임과 동시에 문화적, 사회적 존재이다. 문화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문화적 및 사회적 본질에 대해 이상의 법칙을 가지고 론하는것은 언어도단이다.

문화대혁명 초기 북경의 하룡(賀龍)원수의 아들 같은 일부 고위급 간부 자제들로 무어진 <<련동(聯東)>>이란 홍위병조직에서는 <<룡은 룡을 낳고 봉황은 봉황을 낳고 쥐새끼는 나서부터 구멍을 팔 줄 안다(龍生龍, 鳳生鳳, 老鼠生來會打洞)>>라는 혈통론을 고취했다는 소문을 우리는 시골에서 전해 들었다. 솔직히 이에 반발하여 나는 반란파조직에 가담했었다.

우리들이 소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한 자루의 식칼을 가지고 혁명을 하다>>는 과문에 의하면 하룡원수도 젊은 시절에는 한낱 호남 상서지방의 무지렁이 장사군에 지나지 않았다.

어찌 자기들은 룡이고 봉이고 할 수 있는가?

문화대혁명 초기에 극성을 떨었던 이른바 <<성분론>>, <<혈통론>>은 바로 <<인간의 본질이 존재에 선행한다>>는 어거지주장의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후일 나는 중국력사를 공부하면서 봉건사회에 들어선후 중국농민봉기의 첫 두령이였던 진승이 밭두렁에 올라 서서 <<왕후장상에 어디 씨라도 있단 말인가?>>하고 소리쳤다는 말에 언제나 커다란 공명을 일으키군 했다.

개혁개방이후 서양의 문학사조를 접하면서 나는 잡다한 문학류파들중에서도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에 제일 큰 공명을 일으키군했다. 문화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는것은 실존주의철학의 전제적인 명제이다. 인간은 나서부터 천생적으로 자기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본질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의 각도에서 볼 때 인간은 한장의 백지장처럼 태여 난후 사회화하는 장구한 과정중에서 그 백지에 자기의 일생의 궤적을 그려 넣게 되고 따라서 점진적으로 자기의 본질을 형성해 가게 되는것이다.

인간은 태여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시시각각 변화, 발전하는 과정중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고정불변의 본질이 없으며 그가 처하고 있는 구체적인 력사적 조건과 그속에서 그가 처한 구체적 상황속에서의 그때 그때의 그 인간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유로운 선택이 그때 그때의 그 인간의 본질을 결정한다. 이런 까닭에 오직 죽어서 관속에 들어간 뒤에야 그 사람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그 어떤 본질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하나의 력사로 존재할 뿐이다.

일제식민지 시대를 살아왔던 리광수나 홍란파 같은 조선 현대문화의 거물급 명사들의 영욕이 점철된 애족과 매족의 전후의 변절과정을 돌이켜 보노라니 더욱 <<인간의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고, 인간은 그때 그때의 생존상황에 따라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좇아 자신의 본질을 선택하게 된다>>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 철학의 명제를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된다.

금년(2002년) 3.1절을 계기로 하여 발표된 일제시기의 708명의의 친일파 명단과 요즘 인터넷의 문학 홈페지에 오른 전광(오성륜)의 흑(黑)과 백(白)처럼 선명한 일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실존주의철학을 립증하는 증거이기라고 한 것 같다. 사실 영웅과 비겁쟁이도 인간의 선택하기 나름이다. 전광은 그야말로 오랫동안 일제와 중국의 반동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전설적인 영웅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일셍의 마지막의 선택에 의해 그는 비겁한 변절자와 일제의 주구로 전락했다. 좋은 시작보다 좋은 결말이 더 아름다움을 반증(反證)하는 좋은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한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한번이나 두번 혹은 세네번의 옳바른 인생선택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으나 한평생 그 어느 중대한 선택마저도 죄다 옳바르고 떳떳하게 할 수있겠는가 하는것을 나는 요즘 자꾸만 생각해 본다. 그것은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임을 뼈저리게 느끼군 하는 것이 요즘의 나의 심경이다.

그래서 윤동주님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스치는 바람에도 괴로워 한 것>> 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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