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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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문화 (김관웅)
2008년 04월 18일 12시 39분  조회:5693  추천:101  작성자: 김관웅

[강연고]

민족과 문화

김관웅 연변대학 교수



모국의 동포 여러분,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우리말에는 운명(運命)이라는 낱말이 있습니다. 중국어에서는 그 순서가 달라서 명운(命運)이라고 합니다. 운명이든지 명운이든지 모두 명(命)과 운(運)이라는 두 가지 뜻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그 뜻은 같습니다. 선천적으로 정해진  명(命)과 후천적으로 차례지거나 쟁취하여 얻어지는 운(運)이라는 두 요소가 합쳐져서 운명의 뜻이 됩니다. 아무튼 인간에게는 누구에나 선천적으로 타고난 명(命)이 있습니다. 그 명(命)은 하늘이 정했다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정해진 존재라고 해서 사람들은 흔히 명(命)을 천명(天命)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남자나 여자라는 성적인 정체성도 천명이요, 조선민족이요 일본민족이요 하는 민족적 정체성도 역시 천명(天命)입이다. 한 인간이 부정모혈(父精母血)이 합쳐서 하나의 생명체로 만들어져서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열달 동안 자라다가 자기의 주체적 선택이 없이 남자 혹은 여자로 태어나면서 동시에 조선민족 혹은 중국민족, 일본민족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민족적 신분은 한 인간의 주체적인 선택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숙명적으로 타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석학이신 이어령 선생은 민족은 옷처럼 추우면 입고 더우면 벗어던지는 그러한 편의적인 존재가 아니라 잘리면 병신이 되는 손과 발 같은 소중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한 인간과 자기가 속한 민족과의 만남은 운명적인 것입니다. 손오공이 한번 곤두박질하면 10만 8천리를 날아가도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듯이 한 인간이 아무리 발버둥이질을 쳐도 영원히 자기가 만난 숙명적인 민족과의 그 억만 겁의 인연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입니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가 아무리 가난하고 못생겼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어머니가 아니라면서 못 본 체 할 수 없듯이, 자기가 나서 자란 고향이 아무리 두메벽촌이라고 해도 자기의 고향이 아니라고 부인할 수 없듯이, 자기가 속한 민족이 크고 강한 민족이 아니라 약소한 민족이라고 해서 자기 민족을 배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민족이란 이렇게 소중한 것이기에 우리민족의 선열들은 자기의 목숨을 바쳐서 민족과 나라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마저 초개같이 던졌던 것입니다.
  옛날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박제상이
  『내 차라리 계림의 개, 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로 부귀를 누리지 않겠다』라고
  한 것은 애족애국의 충정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박제상은 왜왕이 높은 벼슬과 많은 제물을 준다는 것도 물리치고 달게 죽음을 맞았으니 그것은
『차라리 내 나라의 귀신이 되리라』함에서였다.
 
안중근 의사(義士)가 할빈 역두에서 이등박문을 총으로 사살하고 여순 감옥에서 단두대에 오른 것은 민족의 존엄을 수호하고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함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이 자기의 소원을 세 번을 물어도 모두『대한의 독립』이라고 하면서 민족의 통일을 위해 서슴없이 3.8선을 건넌 것은 분단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민족은 바로 이런 선열들의 애국충정에 떠받들려서 단군성조가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신 이래 반만년의 역사의 대장정을 하여오면서 지금도 세계민족의 수풀 속에서 한 그루의 거목으로 우뚝 서있습니다.
 
우리 중국조선족은 모국에서는 먹고 살아갈 수가 없어서 살길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온 이주민의 후손들입니다. 마치도 집이 너무 가난하여 내버려진 기아처럼 중국 땅에서 150년 동안이나 타향살이를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중국조선족은 언제 한 번도 못난 모국이 못났다고, 조상이 못나서 고생을 한다고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국의 국권회복을 위하여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은 바로 우리 연변 땅에서 벌여졌고, 우리의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이 독립군의 주요한 멤버이었습니다. 북간도의 산과 언덕마다에는 산골짜기마다에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고 북간도의 산골짜기마다에는 애국지사들의 선혈이 붉게 물어들어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상님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붉은 피를 흘려 싸우고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이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몸에도 애국애족의 붉은 피가 맥맥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동포 여러분!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고 단군성조가 물으신다면 저는 서슴치 않고
  『저의 소원은 이 목숨이 다할 때까지 단군성조님의 자손으로 살고 싶습니다』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 다음 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이 몸이 죽어 백골이 진토될 때까지 배달의 얼을 간직하고 살고 싶습니다』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내 육신이 살아있고 내 정신 무지러지지 않는 한 중국에서 중국의 우수한 국민으로서 우리 민족문화를 지키면서 올곧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동포여러분,
저 김관웅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습니다. 저는 과거의 60평생을 이 소원을 위해 살아왔고, 현재에도 이 소원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이 소원을 이룩하려고 살 것입니다. 어려서 모국을 떠나 이국타향에서 60평생을 살아오지만 단군성조님의 자손으로 한민족의 얼을 간직하고 살다가 죽는 일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우리 200만 중국조선족동포들과 함께 이렇게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소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의 조상들이 개척한 중국 동북 땅에서 중국의 우수한 국민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세계화의 바람이 거세차게 불어치고 있습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은 바야흐로 국경이 없고 민족의 계선이 없는 대동세계가 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인류가 네요, 내요 없이 한집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의 희망이요, 이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멀고먼 장래의 일이요 현실의 일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세계화의 진전이 빨라질수록 그만큼 세계 각지에서 민족주의가 거세차게 일어나가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짙은 피를 함께 나누고 유구한 역사를 공유한 민족공동체는 일시적인 정치나 경제적 사정에 의해 산생된 이데올로기나 제도보다도 더 상대적인 불변성을 갖고 있는 까닭입니다. 정치적 사정에서 70여년이나 합쳐졌던 매머드 같이 거대했던 CCCP - 소베트 사회주의연방공화국은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한 세기 이상이나 인류사회를 석권했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제도는 지금 어디로 갔습니까? 혈통의 조국을 부정하고 사상의 조국을 운운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지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과 단결과 국제적 연대성만을 주장하던 인터내셔널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철학도 변하고 정치 ․ 경제도 변하지만 민족의 혈통은 영구적”이라는 김구 선생이  60년 전의 지론은 오늘날의 세계 인류사회의 현실이 진리임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일찍 어느 민족 안에서나 종교로 혹은 학설로, 혹은 경제, 정치적 이해관계의 충돌로  여러 파벌로 동족상잔의 피비린 싸움을 하지 않은 없거니와 세월이 흘러가면 그것은 구름처럼 바람처럼 흘러지나가는 일시적인 것입니다. 중국에는 수천년 동안 내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않았고, 200백년의 역사 밖에 안 되는 미국에서도 동족 간의 남북전쟁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그러한 동족상잔의 혈투는 잠간이었고 더 긴 것은 동족간의 사랑과 화해였습니다. 그것은 민족은 필경 비바람이 지나간 뒤의 나무와 풀의 모양으로 뿌리와 가지를 서로 걸고 한 수풀을 이루어 살고 있습니다.
 
역사의 긴 흐름에서 본다면 한반도에서의 남과 북 사이에 있었던 동족상잔의 전쟁과 반목, 질시, 대결이라는 것도 결국은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우리들은 요즘 남북의 정상회담을 통한 화해와 평화의 무드에서 보아낼 수 있잖습니까! 이 모양으로 모든 사상도 가고 신앙도 변합니다. 그러나 혈통과 문화로 뭉쳐진 민족만은 영원히 성쇠흥망의 공동운명의 유대에 얽힌 한 몸으로 이 땅위에 남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은  헤어진지가 너무 오랍니다. 헤어진지가 오래면 합쳐지는 법입니다. 남과 북이 민족의 대단합을 이룩하고 국가의 통일을 실현하는 날이면 우리민족의 힘은 더 커지고 더욱 당당하게 세계 민족의  수림 속에서 한그루의 거목으로 우뚝 서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해외동포들은 삼천리금수강산이 보다 강대해지고 번영창성해지기를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동포 여러분, 
오늘날의 인류사회를 “세계주의 와 민족주의”라는 이 이중변주곡을 연주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한 연주가가 바이올린을 켜든지 오보에를 불든지 팀파니를 치든지 이 오케스트라에서 자기 특유의 개성을 갖고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악기들과 하모니를 이루어야 하듯이 한 민족도 이 세계에서 자기 민족문화의 독특한 개성을 갖고 독특한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민족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현실의 진리는 민족마다 최선의 민족국가를 이룩하고, 최선의 문화를 낳아 길러서 다른 민족과 서로 바꾸고 서로 돕는 일입니다. 이것은 제가 믿고 있는 세계주의와 민족주의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민족과 국가의 통일이 한반도에서 실현되고 나아가서는 아세아의 평화,  세계의 평화가 실현을 위해 우리민족이 힘을 보탤 수 있기를 원합니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단군성조의 이상이 바로 이것라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 중국조성족의 지성인들은 연변조선족문화의 문지기, 파수꾼이 되기를 원했거니와 그것은 우리민족의 문화를 지키는 일에서 존귀비천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은 나 한 사람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 200백만 중국조선족은 비록 중국 땅에서 150년 동안이나 살아오면서도 단군성조의 자손으로 살아오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꾸리고 신문사 , 방송국, 잡지사를 운영하면서 한 세기 반 동안이나 한민족의 말과 글을 비롯한 우리민족의 문화를 고스란히 지켜왔습니다. 문화는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는 무력보다 강합니다. 
 
한때는 중국에 군림하면서 천하를 호령하였던 몽골족이나 여진족은 모두 중국문화에 동화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네들의 민족문화가 빈약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호메트와 칭키스칸의 대조를 통해 이 점을  분명히 보아낼 수 있습니다. 마호메트는 젊어서는 돈 많은 미망인의 머슴으로 지내다가 그녀와 결혼하였는데 문맹이었습니다. 40세에 유태인과 기독교인을 만나서 성경을 공부하게 되었고, 천지청조의 유일신 알라를 알게 되였습니다. 그로부터 힌트를 받아 자신을 알라의 사도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코란(KORAN)》《수나(SUNNA)》는 마호메트가 스스로 편찬한 것입니다. 마호메트가 창시한 이슬람교는 온 유럽북부와 북부아프리카, 인도 국경까지 제압하였고, 오늘에는 중앙아시아는 물론 인도북부, 인도네시아, 말레시아까지 확고한 자리를 잡았습니다. 칭키스칸은 인류사상 최대의 제국을 세웠으나 오늘에는 위축되어 가련한 그 흔적만 조금 남았습니다. 정신문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택동은 칭키스칸을 영웅이라고 인정하면서 “활 당겨 수리개밖에 쏠 줄 몰랐다(只識彎弓射大雕)”고 평가를 했었습니다. 모호메트와 칭키스칸은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민족문화는 민족의 의식입니다.
민족문화는 민족의 정신입니다.
민족문화는 민족의 혼불입니다.
민족문화는 민족의 얼입니다.
 
한 민족의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입니다. 민족문화가 없는 민족은 얼이 없는 인간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무력이 강하고 아무리 잘  산다고 해도 민족문화가 빈약한 민족은 힘이 없는 민족입니다. 민족문화가 강하고 뿌리 깊어야만 강한 민족으로 될 수 있습니다. 민족문화가 살아야만 그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동포 여러분,
지금 중국조선족에게 위협으로 닥쳐오는 것은 무력의 약화도, 경제력의 결핍도 아닙니다. 지금 중국조선족에게 위협으로 닥쳐오는 것은 문화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거세찬 도시화, 세계화의 바람 앞에서, 이민족의 망망대해 속에서 우리 중국조선족의 가정이 흔들리고, 집거지가 흔들리고 따라서 우리 중국조선족의 교육, 우리의 문화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중국 조선족사회가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면 동북아지역은 귀한 문화자산을 잃게 될 것이며, 또한 한반도의 입장에서는 21세기 역사발전을 위한  가장 중요한 대륙진출의 교두보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조선족문화는 한반도문화의 뿌리에 중국문화의 가지를 접목하여 새로 만들러진 이중문화 구조를 가진 독특한 민족공동체로서 한중 관계의 발전에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발전을 기반으로 하여 조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을 국가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에서도 조선족공동체는 앞으로 전개될 21세기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중요한 매개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디아스포라로서의 중국조선족의 새로운 역사시기에 가지고 있는 중요한 기능이고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오래 동안 지켜온 중국조선족 특유의 문화를 계승 ․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것은 비단 중국조선족 자신의 일일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중국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국조선족이 자기의 민족문화를 지키고 발전시키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성원하는 것은 여기 계시는 분들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동포 여러분, 
지금 중국조선족문화건설은 잠시 어려움에 봉착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조선족문화는 반만년의 유구하고 찬란한 역사를 갖고 있는 배달민족의 문화의 뿌리에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동양문명의 본거지인 중국문화라는 거목에서 가지를 잘라다가 접목시켜 만들어진 특수한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중국조선족문화건설의 미래는 그 전망이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중국조선족은 앞으로도 독특한 자기 문화를 지켜나가면서 당당하게 중국 땅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조선조의 건국서사시《용비어천가》중의 시구를 빌어서 저의 웅변을 가름하고자 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움직이므로  꽃도 좋고 열매도 많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그치므로 냇물에 이르러 바다로 가나니
(根深之木, 風亦不扤, 有灼其華, 有賁其實.
源遠之水, 旱亦不竭, 流斯爲川, 于海必達.)

감사합니다.

                           2007년 10월 18일 중국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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