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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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과 후퇴의 변증법 (김관웅)
2009년 01월 03일 14시 41분  조회:5662  추천:68  작성자: 김관웅


전진과 후퇴의 변증법



김관웅 연변대학 교수


  

  전쟁에서 전진과 후퇴는 흔히 변증법적인 통일을 이룬다. 전진을 위한 후퇴가 있고 후퇴를 위한 전진이 있을 수 있다. 성공적인 후퇴는 전진을 내포하고 또 그래서 전진을 위한 후퇴이다. 그러나 졸렬한 후퇴는 후퇴만을 위한 후퇴로서 전진이 내포되지 않은 후퇴이다. 

  전진을 위한 후퇴, 전진을 내포한 후퇴의 전례는 많고도 많지만 그 가장 전형적 사례가 중국공농홍군(中國工農紅軍)의 2만 5천리 장정(長征)1)이라고 할 수 있다. 강서성에서 섬서성까지 11개 성을 지나면서 무수한 전투를 치르고 설산과 초지를 지나면서 2만 5천리를 후퇴하였기에 중국공산당은 천하를 얻지 않았던가. 그러나 일방적인 후퇴는 오히려 자신을 죽음에로 몰아간다. 이자성(李自成)2) 농민봉기군의 패퇴가 그 단적인 실례이다. 오삼계(吳三桂, 1612-1678)3)가 산해관을 열어 준 이자성의 농민봉기군은 만족기병에 의해 한번 싸움에서 진 뒤로는 그냥 후퇴만 하다가 나중에는 얻었던 천하도 잃고 말았지 않았던가.   전진과 후퇴의 변증법은 전쟁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이 사는 일상생활과 대인관계에도 적용이 된다. 

  중국 청나라시기의 명재상이였던 장영(張英, 1637-1708)4)의 일화는 참으로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장영의 고향은 안휘성 동성(桐城)이였다. 그의 고향 동성 상부(相府)와 이웃집 사이에는 아주 비좁은 공지가 길게 뻗어 있었다. 이웃집에서 오랜 담장을 고쳐 쌓을 장영네 집쪽으로 몇 자 가량 더 내 쌓았다. 이 일로 두 이웃 사이에는 다툼이 벌어졌다. 장영이네 집사람들은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하고 있는 장영의 세력을 등대여 이웃집을 혼내주려고 장영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장영의 회답 편지에 다음의 시구가 적혀 있었다. 

천리 밖에서 편지를 띄운 건 애오라지 담장 때문
이웃집에 석자쯤 양보해도 무방하잖겠나                
만리장성은 지금도 여전히 서 있으나                      
오늘날 진시황은 어디에 있단 말이요?                  

千里修書只爲墻,
讓他三尺亦無妨.
萬里長城今猶在,
如今何有秦始皇?  


   
  장영네 집 식구들은 이 시를 보고는 느끼는 바가 많아서 자기네 집 담장을 수선할 때는 장영의 말대로 이웃집에 양보하여 자기 집 쪽으로 석자 들이 쌓았다고 한다. 이를 본 이웃집에서도 자기의 과욕을 뉘우치고 쌓았던 담장을 허물어서 자기 집 쪽으로 석자 들이 쌓았다. 그리하여 장영네 집과 이웃집 사이에는 동네 사람들이 다니기 편리한 여섯 자  남짓한  행길이 새로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고장 사람들은 이 행길을 “육척항(六尺巷)”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야말로 “한 걸음 물러서면 세상이 끝없이 넓어진다”는 고훈(古訓)이 딱 들어맞는 사례이다.

  이처럼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아름다운 일을 만들어간 미담은 서양에도 있다. 한번은 독일의 대작가 괴테(1749-1832)가 좁은 길을 걷고 있다가 자기와 늘 의견 상이로 인하여 논쟁을 벌이고 있는 한 문인을 만났다. 이 문인은 자기의 논적인 괴테를 보더니만 대뜸 얼굴이 돼지 간처럼 지지벌개져서 “나는 바보한테는 길을 피할 줄 모른다!”고 모욕적인 언사를 던졌다. 이에 괴테는 오히려 여유 있게 웃으면서 “나는 바보에게 길을 피해 줄줄 안다!”고 응수를 하면서 길 한쪽에 비켜서서 그 문인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한 걸음 물러 설줄 아는 괴테의 일화도 줄곧 미담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길을 피하는 일 같은 자질구레한 문제로 자기와 상대도 안 되는 인간하고 드잡이를 한다거나 심지어 결투까지 벌였다면 괴테의 품위에 많은 손상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퇴와 양보가 만능인 것은 아니다. 비록 우화이기는 하지만 동곽 선생처럼 늑대에게 그냥 양보만 한다면 그것은 결국에는 자기를 죽음에로 몰아넣는 것이다. 이를테면 19세기 초반의 러시아의 유명한 시인 푸슈킨(1799-1837)을 극도로 미워한 적수들은 그의 아내 나탈리아와 프랑스인인 근위사관 G.단테스가의 프랑스의 건달꾼  놀아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푸슈킨은 자기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단테스에게 결투를 걸었고 바로 결투에서 그는 가슴에  그는 총탄을 맞고 2일 후에 죽었다. 만일 푸슈킨의 건달꾼 단테스앞에서 비실비실 뒷걸음질을 쳤더라면 인격적 품위는 아마도 일락천장이 되었을 것이다. 푸슈킨은 비록 목숨을 잃기는 했지만 사람답게 살려는 패기를 세인들에게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후퇴해야 일과 후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선택임을 또한 잘 알아야 한다. 이는 사회상의 인간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집안에서의 부부 관계를 포함한 모든 대인관계에 통하는 일반적인 삶의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담장을 둘러 싼 자질구레한 길을 비켜주는 것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후퇴하거나 한번 양보하면 살아가는 공간이 끝없이 넓어지고 살아가는데 언제나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옛날 사람들은 “꽃나무를 많이 심고 가시나무를 적게 심으라”는 교훈적인 말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큰 시비나 큰 원칙적인 문제에서 한 걸음 후퇴하다가가는 필연적으로 인격적 품위를 잃게 됨을 우리는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인간은 골기가 없는 무골충이 되고 말며 늘 남들에게 죽어 대령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또 “나귀가 순해빠지면 누구나 타려고 하고 사람이 순해빠지기만 하면 남들이 짓밟는다”는 교훈적인 말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기에 이 세상의 모든 경구와 속담들은 다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모 그 어느 특정한 경우를 말한 상대적인 진리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전진과 후퇴의 변증법을 잘 터득하는 것이 마음 편안하게도 살며 또한 사람답게도 살 수 있는 길임은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8년 11월 17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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