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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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이야기》(1)
2013년 02월 18일 13시 59분  조회:1518  추천:0  작성자: 김훈

단편소설

《거미이야기》(1)


김훈


밤알만큼 큰 거미가 처마밑에 거미줄을 치고 있는줄을 나는 엄마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때 나는 엄마 배속에 있었습니다.

"징그럽게도 큰 거미네."

엄마 말을 알아들었는지 거미가 거미줄을 치던것을 그만두고 처마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엄마가 거미줄을 거둬내려고 비자루를 찾아쥐니 마루에 앉아 잎담배를 썰던 아버지가 칼에 묻은 잎담배진을 긁어내며 말했습니다.

"관둬. 새끼가진 거미야."

"가뜩이나 궁상맞은 집에 거미줄까지 있으면 보기 좋겠나요?"

"그것두 새끼밴 녀자가 있는 집이라고 일부러 찾아와서 새끼 나을 자리를 만드는게야."

그 말에 엄마는 비자루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녀인을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납니다. 북경의 서쪽 제2순환도로변에는 중국에서 최고음악학부인 중앙음악대학이 있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 중앙음악대학 소학교반에서 통학생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아들을 학교문까지 데려다주고 저녁에 마중할 때면 그 녀인은 마치도 약속이나 한듯 그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내가 아무데나 내버려도 주어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녹쓴 자전거에 아들을 싣고 학교 정문에 도착하면 같은 시간에 맞은편에서 색갈이 노란 고급승용차 한 대가 소리없이 미끌어져 와서는 정문앞에 멈추어 섭니다. 바로 그 녀인의 자가용입니다. 차문이 열리면 귀공주차림을 한 녀자애가 튕기듯 나옵니다. 그 녀인의 딸인데 우리애와 한반에서 피아노를 배웁니다. 그 녀인은 운전석에 앉은 그 자세로 자기 딸한테 눈이 시도록 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을 정답게 들어주고는 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보냅니다. 고운 입 가장자리를 약간 끌어올리면서 웃는듯마는듯한 미소를 살짝 달면서 아미를 숙이는 그 순간 내 허리가 어쩔수 없이 굽혀집니다. 그 녀인처럼 가볍게 목례로 답례하려고 몇십번이고 별렀지만 정작 그 녀인의 목례를 받는 순간 왜서 내 쪽이 웃어른이나 선생을 대하듯 어쩔수없이 허리가 굽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학부모 처지에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조선족인데 그 녀인이 몰고다니는 고급승용차나 그 녀인의 화려한 옷차림에 질려서인지 아니면 범접할수 없는 그 도고한 모습에 주눅이 들었는지…

그 녀인은 같은 녀자가 보기에도 곱구나 하고 다시 한번 뒤돌아 볼 정도로 미인입니다. 고운 입, 고운 눈, 고운 코, 고운 얼굴형, 그것도 고운 모든것이 맞춤하게 자리를 잡은 그런 미인입니다. 구태여 묘사할것 없이 그 녀인은 북경의 호화스런 백화점에서 가끔 볼수 있는 그런 귀부인형입니다. 아이를 봐선 나와 비슷한 30대 초반이겠지만 얼굴이나 옷차림새를 봐선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녀인의 딸이 친딸이 아니라 남편의 전처 소생이 아니면 혹시 양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 녀인은 젊고도 화사합니다.

딸애를 내려놓은 그 녀인의 자가용이 가볍게 미끄러지듯 떠나갈 때면 낡은 자전거손잡이를 쥔채 그 녀인의 차를 눈바램하는 내가 한결 초라해 보입니다. 세상 팔자 다 나름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내 팔자가 앞으로 넘어져도 코 깰 그런 팔자가 아니지만 그 녀인은 팔자 좋기로 뒤로 넘어져도 떡함지에 넘어질 그럴 팔자인가 봅니다. 녀자 팔자는 어떤 남편을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북경에는 자식공부 시발을 하려고 직장을 버리고 남편곁을 떠나 온 녀인들이 수천명 된다고 합니다. 내 경우처럼 대개 어릴적부터 전공해야 할 예술, 체육분야를 지망한 어린 학생들의 부모들입니다. 해마다 음악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중국음악대학은 음악에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입니다. 음악은 아마 천부적인것을 떠날수 없는 예술이여서 그런지 이 대학에는 소학교반부터 중학교반, 고중반, 본과전업반에 이르기까지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려고 해도 전국의 수십만에 이르는 지망자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는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비유할만치 경쟁이 치렬합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서 다시 중학교반으로 그다음에 고중반, 본과전업반까지 올라가려면 역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본과전업반까지 내처 올라간 사람은 그야말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승천하여 별처럼 빛나는 사람은 몇이 안됩니다. 중도에 별찌처럼 빛 한번 발산해 보지도 못하고 어둠속에 영영 자취를 감춘 음악지망생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속담을 빈다면 이런 지망생들은 "십년공부 나미아미타불"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십년 공부 나미아미타불"이란 속담보다도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을 더 선호합니다. 그러면서"개천에 룡이 난다"는 속담을 희망사항으로 삼습니다. 하여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개천에서 난 룡"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저없이 모든것을 바칩니다. 돈도 가정도 지어는 자기의 삶까지도…

공부하는 자식을 동반한 부모들 중에 조선족들도 꽤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학교와 가까운 곳에 집을 세맡고있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아이 공부에 드는 비용과 북경에서의 생활비를 해결하는 녀인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부류는 대개 사업을 하거나 돈 만들줄 아는 말하자면 시체말로 잘 나가는 남편을 가진 녀성들이지만 나처럼 그런 남편을 가지지 못한 녀인들은 북경에 와서 이런 일 저런 일 닥치는대로 하면서 아이공부에 드는 비용을 해결합니다.

나의 남편은 연길 시교의 자그마한 소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칩니다. 몇푼 안되는 남편의 로임에 매달려 사는 내 경우에는 애초부터 자식을 피아노공부를 시킬 엄두마저도 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자리를 보고 발을 펴라는 말이 있지만 저의 남편은 무작정 오기를 부렸습니다. 그 오기가 뭔지 압니까? 남편은 우리 애가 태여나자마자 이런 맹세를 했습니다.

"장차 우리 애한테 피아노공부를 시켜 꼭 유명한 피아노연주가가 되게 하겠소."

소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그저 발풍금이나 손풍금만 만지는 남편이 어릴적에 가진 꿈이 바로 피아노연주가가 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집안의 경제사정도 경제사정이지만 그럴 기회가 차례지지 않았던것입니다. 자식을 피아노연주가로 키우자면 우선 피아노가 있어야 합니다. 만원에 가까운 피아노를 장만하기 위해 우리 내외는 1년동안 한국의 막로동판에서 피땀을 흘렸습니다. 우리 내외의 꿈이 자식을 피아노공부시키는것이라고 하니 한국의 한 친척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때 한국에 이런 말이 류행이였어요. '빨리 후닥닥 망하려면 국회의원에 립후보하고 서서히 망하려면 자식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라'. 이 말이 무슨 뜻인줄 모르시겠죠. 뜻인즉 국회의원 선거를 몇번 치르고 나면 립후보자의 가산이 거들이 나고 자식에게 피아노공부를 시키면 피아노를 장만하는 비용에다 수업비용에 가정교사비용, 거기에 가끔씩은 찔러주어야 하는 뒷돈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없이 드는 비용에 가산이 날려간다는 거예요. 가산을 날리는게 피아노공부얘요."

그러나 친척의 충고는 자식에게 꼭 피아노공부를 시키겠다는 남편의 꿈을 깨지 못했습니다.

지난밤에 심하게 바람이 불어쳤습니다. 처마밑에 늘여져있던 거미줄이 바람에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애써 쳐놓은건데 하루밤사이에 흔적마저 없어졌군요. 거미마저 날려간게 아닐까요?"

인젠 엄마는 거미의 운명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가집니다.

"새끼가진 놈은 쉽게 자리를 뜨지않아. 이제 해가 나면 어디선가 기여나와 또 줄을 칠거야."

아버지가 무심하게 내뱉는 말입니다. 아버지 예견이 맞았습니다. 저녁무렵 일밭에서 돌아온 엄마는 처마밑에 다시 쳐진 거미줄을 보고 탄성을 뽑았습니다.

"어머머, 거미가 또 줄을 쳤네. 이악스럽기두 해라."

"새끼가진 놈은 다 저렇게 이악스러운거야."

아버지는 언제보나 명언같은 말만 합니다.

자식가진 사람은 다 이악스럽게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 내외는 1년동안 한국에서 뼈빠지게 고생해서 벌어온 돈으로 우선 집 장만을 하고 피아노를 샀습니다. 남은 돈 3만원은 한푼도 쓰지 않고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로 저금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만해도 한해에 2만원을 웃도는줄 우리는 타산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남편은 과외시간에 손풍금을 배우려는 애들의 가정교사로 나섰고 나는 나대로 북경에서 시간제 파출부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제와서야 가산을 날리는게 피아노공부라고 한국의 친척이 한 그 말이 실감이 갑니다.

북경에서 살아가는 생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아이를 학교문까지 데려다주고는 시간제 파출부 일을 시작합니다. 주로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인데 한시간에 5원입니다. 한집에 가서 청소하고 빨래하는데 평균 2시간정도 걸리는데 하루 바삐 돌아쳐도 네집 정도밖에 못합니다. 다른 파출부에 비해 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고정된 주인집을 가지고있습니다. 한것은 한족 파출부들은 대체로 신을 신은채 긴 장대걸레로 바닥을 닦아내지만 나는 자기집 구들을 닦듯이 바닥에서 벌벌 기여다니며 손걸레로 깨끗이 청소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프고 손이 퉁퉁 붓지만 나는 제집처럼 간주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다른 파출부한테 밀려나게 됩니다. 파출부 일도 경쟁이 심한 업종입니다. 외지에서 온 처녀애들도 많은데다가 더군다나 요즘 정리해고자들까지 파출부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혼신을 다 몰붓는다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내가 고정적으로 가서 청소하는 집들은 대체로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집입니다. 하나는 늙은 량주나 로인 한분이 사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수입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는 집입니다. 로인들은 집안청소하기에 힘이 부쳐서 파출부를 부르고 수입이 넉넉한 사람들은 집안청소를 할 짬이 없어서 파출부를 수요합니다.

하루종일 이집저집 돌면서 닦고 빨고 하고나면 퉁퉁 부은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기도 힘듭니다. 부은 손을 내려다보면 신혼의 화촉을 밝히던 첫날밤 남편이 내 손을 어루만지며 한 말이 서글퍼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폅니다.

"손가락이 남보다 유별나게 길구만. 이런 손을 가진 사람은 피아노치기가 제격이라더군. 내가 이런 손을 가졌더면 꼭 피아노공부를 택했을거요. 나는 한뉘 땅만 허비던 농군의 유전자를 이어받아서인지 손이 몽톡하게 닳아버린 몽당 비자루같지 않소. 훗후후…"

그러면서 남편은 훗날 태여날 우리 2세가 내 손을 닮으면 꼭 피아노공부를 시키겠다고 하면서 내 손가락 하나하나에 차례로 뜨거운 입술을 가져다 댔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피아노를 칠 손을 가진 나였지만 피아노는 한번도 쳐보지 못하고 그 손으로 저금소에서 주판알만 튕기다가 결국에는 자식의 피아노공부 때문에 주판마저 버리고 걸레를 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조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지만 걸레를 쥐든 쓰레기를 줏던간에 그것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달갑게 받아들여지는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돈 있는 부모나 없는 부모나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야 같겠지만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그 녀인 정도면 부모구실을 해도 얼마나 편하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치밀면서 그 녀인의 팔자가 부러워납니다. 부러움은 질투를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질투할 자격도 못되는 신세면 욕이라도 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합니다. 내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자가용을 몰고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녀인을 "팔자좋은 년"이라고 혼자말로 꺼리낌없이 말합니다. 늦봄에 이어 여름이 꼬리를 물던 계절입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였습니다. 파출부에게는 일요일이 따로 없습니다. 오히려 일요일은 벌이가 가장 좋은 날입니다. 나는 직업소개소의 소개로 시간제 청소부로 일할 한 별장을 찾아갔습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않는 곳에 자리잡은 별장구역이였는데 별장은 유럽풍으로 지은 차고가 달린 2층 양옥이였습니다. 어림짐작으로도 인민페로 2백만원을 웃도는 호화형 별장이였습니다. 직업소개소에서 알려준 주소대로 한 별장의 초인종을 누르니 한어로 누군가고 묻는 말이 문옆에 달린 인터폰으로 울려나왔습니다. 파출부라고 하니 문이 열렸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20대 처녀애였습니다. 처녀애는 자기는 집주인의 딸에게 피아노를 배워주는 가정교사라고 했습니다. 그는 집주인이 지금 병원으로 갔다고 하면서 먼저 청소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집안은 호텔에 들어선 착각을 줄 정도로 호화스러웠습니다. 어디라할것없이 알른알른하게 윤기도는것이 어디서부터 청소를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처녀애가 화장실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화장실만도 웃층과 아래층에 각기 하나씩 있다고 했습니다. 처녀애가 웃층으로 올라가서 얼마안되여 웃층에서 피아노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곡인지는 몰라도 우리 애가 요즘 자주 치는 곡이였습니다. 불쑥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은 지금쯤 웃통을 벗어버린채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세맡은 집은 집주인이 창고삼아 쓰려고 집곁에 붙여 지은 무허가 집입니다. 단칸방에 침대 하나와 가지고 온 피아노를 놓으면 돌아서기도 불편한 정도로 비좁은 집입니다. 벽돌 한장 두께로 된 집이여서 겨울에는 솜옷을 그냥 입어야 할 정도이고 여름에는 시루속처럼 숨막히게 덥습니다. 북경의 겨울은 그리 춥지않아 그런대로 지낼수 있는데 여름은 찌는듯한 더위에 꼼짝않고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런 집이지만 방세가 한달에 3백원입니다. 북경의 세집값은 연길에 비하면 살인가격입니다. 층집인 경우 2순환도로 주변이면 주방과 화장실이 달린 단칸방도 한달에 방세가 적어도 천원입니다. 나의 경우엔 그런 집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여름이 오기전에 나는 고물장수한테서 20원을 주고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자그마한 선풍기 하나를 샀습니다. 우리가 세맡은 집은 다른 집보다 여름의 더위가 먼저 옵니다. 그래서 선풍기도 다른 집보다 한달 먼저 돌립니다. 지금쯤 아들애는 선풍기를 켜놓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있을것입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별장에서 들려오는 피아노소리를 듣노라니 마치도 웃층에서 피아노를 치는것이 아들인것같은 착각이 옵니다. 순간의 그 착각이 깨지면서 부지중 입에서 나오는것은 한숨과 함께 사람구실 부모구실은 돈이 시킨다는 선인들의 말을 떠오릅니다. 아, 돈이 뭐길래…

내가 아래층의 화장실 청소를 끝냈을 때 집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인사 하려고 거실에 나온 나는 거실 쏘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커피를 마시는 집주인을 보고는 두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바로 그 녀인이였습니다. 그 녀인도 나를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나는 저도모르게 학교정문에서 그 녀인을 만날 때처럼 또 허리를 굽혔습니다. 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목례로 답례했습니다. 잠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이 집이…"

"그래요. 저의 집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만날줄은…"

나는 손에 쥔 걸레를 만지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앉으시죠."

"괜찮아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일은 나중에 하시고 잠간 앉아 얘기나 나누자요."

나는 쏘파모서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이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괜찮아요. 집이 참 좋군요."

"빛갈뿐이예요.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

"그럼 콜라 드시겠어요?"

"괜찮아요."

나는 송구스러워서 그저 괜찮아요만을 곱씹었다. 녀인은 랭장고에서 콜라 한병을 꺼내 병마개를 따서 나의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파출부로 일한지 오래됐나요?"

"북경에 와서부터 했으니 인젠 해수로도 2년이 돼요."

"그럼 파출부로 일하면서 아이를 피아노공부 시키고 있다는 얘긴가요? 피아노공부에 드는 돈이 엄청나겠는데…"

"집에서 애아버지가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는 보내오고 저는 생활비와 세집값을 해결하는 셈이지요."

"그 돈만해도 꽤나 들겠는데 파출부 일을 해서 그 돈이 마련되나요?"

"한시간에 5원씩이니까 하루에 여러집을 다니며 10시간정도 하면 세집값과 생활비 정도는 나오죠."

"힘드시겠는데요?"

"힘들어도 할수 없지요."

"애아버지는 무슨 사업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음악선생이얘요."

"로임만 가지고는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를 대기 힘드실텐데요."

"그런대로 두루두루 맞춰가고 있어요."

이때 웃층에서 그 녀인의 딸애가 내려왔습니다. 이미 나하고 면목이 있어 그 애가 먼저 인사했습니다. 그러곤 녀인보고 물었습니다.

"왔다는 청소부는 어느 방에 있나요?"

이말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그 애 몰래 쏘파밑에 밀어넣었습니다. 아들과 한반인 녀인의 딸앞에서 청소부신분으로 나설수 없었습니다. 눈썰미 빠른 녀인이 내 마음을 인차 짚어냈습니다.

"아직 안 온 모양이다."

"피아노선생이 아까 문을 열어주었는데요."

"아마 볼 일이 있어 잠간 밖에 나간 모양이구나."

녀인이 내 사정을 봐주느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 순간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렸습니다. 곤혹한 당근질을 당하는 느낌이였습니다.

"청소부는 왜 찾느냐?"

녀인이 딸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조심하지 않아 꽃병의 물을 쏟쳤는데 바닥을 닦아야겠어요."

"그만한 일은 너 절로 하려무나."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쥐겠나요?"

"지금 애들은 다 저래요."

녀인은 몸둘바를 모르는 나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적당히 지어보이고는 딸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더는 그 자리에 있을수 없었습니다. 하여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쥘수 없다던 그 녀인의 딸이 한 말이 가슴을 아프게 자극해 왔습니다.

나의 아들도 피아노를 치지만 그러나 그 애는 짬만 나면 날 도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방 청소도 하고 설걷이도 합니다. 양말이나 속옷같은건 자기 절로 씻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손도 살아가는 사정에 따라 귀천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걸레 한번 쥐어서는 안되는 손이 귀한 손이라면 우리 애처럼 걸레나 행주를 쥐는 손은 천한 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애 손도 세상 귀한 손입니다. 귀한 자식 귀하게 키우라는 말처럼 귀하게 키우지는 못해도 우리 애는 지금 귀염성있게 자라고있습니다.

북경으로 떠나 오던 날 남편은 역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넌 이 손을 그저 손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베토벤의 손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휘여잡은 운명교향악을 울리게 했다면 너의 이 손은 장차 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이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 내 아들의 손은 바로 그런 손입니다.

"어머머머, 저걸 어쩌나…"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뽑았습니다. 엄마는 지붕에서 내려온 뱀 한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거미를 노리고 있는것을 보았던것입니다.

"우쉬우쉬…"

엄마는 두 팔을 내저으면서 밭에서 새를 쫓을 때 내던 소리를 냈습니다. 새를 쫓는 소리로 뱀을 쫓자니 참으로 코막고 답답합니다.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히 새를 쫓는 소리를 질러대니 거미를 노리던 뱀이 스르르 지붕너머로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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