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 대한 별칭이 몇 개 있다. 청년작가, 중견작가, 원로 작가 등등. 지금까지 글을 써오면서 나한테 가장 많이 차려진 별칭이 청년작가이다. 그 시절 글도 많이 썼고 상도 많이 탔다. 청년작가 생애에서 벅찼던 날은 제3차 전국청년작가대표대회에 참석한 날이였고청년작가 생애는 1994년 북경에 전근하면서 마무리됐다.
지난달 29일에 있은 북경 청년작가 모임에서 청년작가시절의 감각을 되살렸다. 청년작가들의 말씀을 경청하면서 나의 작가 생애에서 그래도 청춘시절이 태여난 보람을 자랑한 시절이였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청년작가가 되기도 쉽지 않거니와 중견작가로 자리매김을 하기란 더욱 쉽지 않다. 청년작가시절을 마무리하고 한동안 필을 놓다가 다시 녹 쓴 필을 갈 때 문학을 다시 시작하는 고초도 겪었다.
청년작가시절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던 문우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청년작가로 등단했다가 이런저런 리유로 필을 놓은 문우들이 꽤나 있다. 소설가로 등단했다가 학자로 변신을 한 문우들이 있는 가 하면 문학지 편집으로 정년을 맞은 문우들도 있고 유명을 달리한 문우들도 있다.
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청년작가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나의 바람은 딱 하나다. 청년작가시절을 빛내면서 제발 "중도하차"하지 말고 계속 중견작가, 나중엔 원로작가의 별칭까지 받기를 기원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 앞자리 가운데에 앉힐 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벌써 이런 자리에 앉게 되였나? 고향에 있을 때 행사 때마다 선배작가, 원로작가 분들의 좌석배치까지 신경을 써왔던 시절이 별로 어제 같은데 오늘은 내가 그 자리에 앉으니 폭삭 늙어버린 느낌이다.
어제 읽은 기사로 세월의 무정함을 다소 달랠 수 있었다. 년세가 106세인 할머니가 지금도 무용수로 여생을 빛내간다는 기사다. 그 분이 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기자를 꾸짖은 말씀이다.
"나는 늙었다(old)와 '나이(age)'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늙었을 때 느끼는 기분을 나는 전혀 느끼지 않는다, 지금도 내 상태는 어렸을 때와 같다. 나는 늙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 조금 더 오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몇 가지를 배웠을 뿐."
최고령 무용수로 지금도 무대에 서고 있고 안무도 하시는 분의 존함은 호주의 아일린 크레이머 할머니이다. "늙었다"와 "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분을 내가 할머니라고 했으니 그 분의 꾸지람을 받을 것 같다. 그냥 현역 무용수라고 하면 그 분의 칭찬을 받을 것 같다.
"좋은 장소에 가면 좋은 기를 받는다" 말이 있다. 청춘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청춘들의 기를 듬뿍 받아 활력을 찾은 기분 좋은 하루였다. 현역 무용수의 말씀대로 내 사전에서 "늙었다"와 "나이"라는 단어는 삭제해야겠다. 대신 "청춘 만세!"라는 단어를 추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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