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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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이야기(2)
2013년 02월 18일 14시 00분  조회:1372  추천:0  작성자: 김훈
  거미이야기(2)

김훈


"어휴…"

그제야 엄마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땅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저녁에 아버지한테 엄마가 뱀 말을 하니 아버지는 하품 문 소리로"새끼가진 놈 쉽게 안 당해"라고 말하곤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 녀인의 집에 갔다온 이튿날 아침, 나는 학교정문앞에서 어김없이 그 녀인을 만났습니다. 그 날따라 녀인은 차에서 내려 나한테 다가왔습니다.

"그날 죄송해요"

"간다는 말 한마디없이 나온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어디가서 잠간 이야기나 나눌까요?"

"그러지요."

"저의 차안으로 가시죠."

"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하시죠. 바깥 공기가 훨씬 좋은데요."

돈을 주면서 앉으라해도 그 녀인의 차엔 앉을수 없다는게 그때 나의 오기였습니다.

"청들 일이 하나 있는데 자주 우리 집에 와줄수 없겠나요?"

천만에 말씀. 모르고 한번이지 난 다시는 안가요!

"청소부로 와달라는게 아니얘요."

청소부가 아니면 뭐로? 보모로? 아니면…

"그저 같은 학부모신분으로 자주 놀러오면 고맙겠어요."

같은 학부모?

"다른 뜻은 아니구요. 북경에서 같은 조선족 학부모를 만난다는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난 그런 반갑다는 마음을 가져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얘요.

"사실 애 공부 때문에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는 북경에서 홀로 보낸다는게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겠어요."

외롭다?! 하긴 그렇겠지. 허구헌날 하는 일없이 궁궐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느라면 외롭기도 하겠지. 그러나 난 외로울새도 없는 사람이지. 하긴 가끔 남편의 품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이야.

"그저 자주 놀러와서 말동무를 해주면 파출부로 일하면서 받는 보수보다 더 드리겠어요."

술을 마시면서 말로 안주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나보고 외로움을 달래는 말동무가 돼달라구? 웃기네 정말. 이봐요, 아무리 돈 있고 잘산다고 해서 사람 그렇게 보면 못써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세상 비웃어도 가난만은 비웃지 말라고.

"저의 말을 혹시 다른 뜻으로 오해하고 계신지…"

나는 녀인의 말을 가차없이 잘라버렸습니다.

"말동무를 찾으시려면 구연단에나 가보세요. 구연단 배우들은 말이 변설이니까요."

그러곤 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나는 내 두빰으로 뜨거운것이 흘러내리고 있는것을 뒤늦게야 감촉했습니다. 나는 울고 있었던것입니다.

그 뒤로도 그 녀인은 학교정문앞에서 나를 만나면 그냥 예전과 다름없이 목례를 보냈습니다. 나도 그저 목례로 답례했습니다.

어느덧 락엽이 지는 마가을이 왔습니다. 북경에서 두번째 맞는 마가을입니다. 올해 북경의 마가을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의 청승맞은 울음소리를 시 중심에서도 자주 들을수 있습니다. 북경석간에는 실린 글은 북경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나타난것은 북경의 쓰레기 처리장에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냥 로천에 방치되여 있기때문이라고 해석하고있습니다. 까마귀는 썩은것을 먹기 좋아하기에 조류중에서 "청소부"로 불리우는 익조라고 하지만 도심에서 까마귀소리를 듣는다는것이 희한스러우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께름직합니다. 섬찍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날 아침 아이를 자전거뒤에 앉히고 거리로 나오니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가던 한 늙은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침을 역정스레 세번 내뱉으며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 할아버지가 왜 저래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까마귀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침을 아무데나 뱉으면 돼요?"

"글쎄 말이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맘때면 남편은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전화를 두번 쳤지만 신호음만 갈뿐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녀동생 집으로 전화를 하니 마침 동생이 받았습니다.

"나 언니다…"

"언니 막 전화를 하려던 참이얘요. 언니 빨리 집에 와야겠어요."

녀동생의 다급한 소리에 몸이 오싹해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니?"

"아저씨가 뇌익혈로 쓰러졌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무작정 그 길로 역전에 가서 그날 연길행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기차표를 끊고나니 아들이 걱정되였습니다. 늙은 량주만 사는 주인집에 맡길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애를 데리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막상 급한 목을 당하니 그래도 먼저 떠오르는것이 그 녀인이였습니다. 지난번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는 그 녀인의 청을 몰인정하게 거절해버린것이 못내 후회되였습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고려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내가 체면불구하고 그 녀인의 집으로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자 그 녀인은 두말없이 내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허리를 여러번 꺽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곱씹었습니다. 정말 고맙게만 느껴지는 녀인이였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말을 할수 없었고 두눈도 뜰수 없었습니다. 곁에서 하는 말은 알아듣는지 가끔씩 고개를 약간씩 움직였습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여윈 남편의 몸을 만지며 나는 울고울었습니다. 남편은 낮에는 출근하고 밤이면 아이의 학비를 버느라고 가정교사로 나갔습니다. 쉬는 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집에 가 보니 랭장고에는 먹다남은 김치와 고추장밖에 없었고 방한구석엔 빈 라면상자들이 쌓여있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때시걱을 그냥 라면으로 에때운 모양입니다. 남편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 혼신을 다 바쳤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며칠 누워있다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이는 세상을 떠나면서 입가에 애써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그 미소는 아들이 떠올리게 한것입니다. 그날 나는 녀동생의 휴대폰으로 북경에 있는 그 녀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나는 아들보고 지금 곧 전화에 대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요?"

아들이 물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운명직전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할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먼곳으로 출장 가시게 됐는데 네가 치는 피아노소리를 록음해 가지고 가려고 그런다."

"아버지 곁에 있나요?"

"출장준비를 하느라고 잠간 어딜 나가셨다. 어서 네가 가장 잘 치는 곡을 몇곡 치거라."

"어머니, 아버지보고 출장갔다 돌아오실 때 북경에 꼭 들르라고 전해주세요. 아버지 보고싶어요."

아들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남편의 귀전에 바싹 가져다 댔습니다. 남편의 얼굴표정은 변함없이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남편의 눈귀가 촉촉이 젖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남편은 아들이 치는 피아노소리를 듣고있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의 입가에는 알릴락말릴락하게 흐뭇한 미소가 실렸습니다. 남편은 그 미소를 지닌채 떠나갔습니다. 남편은 조명이 황홀한 무대에 피아노연주가로 당당하게 나선 어엿한 아들의 모습을 두눈에 담은채 떠나갔을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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