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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끔 《또 하나의 나》를 들여다 봅니다. 《또 하나의 나》는 팔자가 한껏 늘어진 놈입니다. 이놈은 어항의 맑은 물 가운데 비죽이 솟아오른 조그마한 섬우에 웅크리고 앉아 물속에서 노닐고 있는 열대어를 멀거니 들여다 보면서 나처럼 그 어떤 명상을 떠올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곁에는 새파란 껍대기를 등에 인 애기손만큼한 자라가 그 뭣과 근사하게 생겼다는 대가리를 자랑차게 빼들고 이리기웃 저리기웃 하고 있습니다.
자라는 안해가 아침마다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사다가 넣은것입니다.
《여보, 자라는 왜 사왔소?》
《당신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 동무하라고.》
안해는 어항안에 있는 옛날 동전잎만큼한 풀개구리가 나 같다고 합니다.
… 그녀는 무릎우에 뛰여오른 파란 풀개구리를 손바닥우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날은 무척이나 더운 날이였습니다. 한낮의 땡볕은 그늘에 웅크리고 있는 동네집 개들의 혀를 한발이나 뽑아냈습니다. 그녀는 두발을 논도랑물에 잠그고 앉은채 손바닥우에 놓인 풀개구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곁에 앉은 나에게 엉뚱한 소리를 내뱉았습니다.
《 야, 이게 너 같다.》
그 땐 우린 서로 반말을 썼습니다.
《왜?》
《우리 집체호에 올 때 준 너의 첫 인상이 바로 이렇게 파랬다. 파란바지에 파란 웃옷, 거기다가 모자까지 파란모자를 쓰고. 그 땐 네 얼굴도 파리하다 못해 파란색이 돌더라.》
《그 땐 국방색과 파란색이 류행이였으니까.》
《같은 옷을 입어도 너는 남보다 더 파랗게 보이더구나. 얼굴이 하얘선지.》
우리 둘은 한동안 말없이 먼 산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녀가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야, 이 개구리가 암만 봐도 너 같다. 이것봐라. 시골을 떠나기 싫어하는 너처럼 이 손바닥에 보금자린가 하고 뛰여 달아날 궁리마저 안한다.》
그러면서 그녀는 풀개구리 궁둥이를 손가락으로 톡톡 다칩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풀개구리는 까딱 움직일념을 하지 않습니다. 한낮 더위에 질렸으면 시원한 도랑물에라도 뛰어 들련만…
《난들 시내로 가고 싶지 않아서 안가는줄 아니. 남들처럼 그런 운이 없어 그렇지.》
다른 애들은 추천받아 대학가고 공장에 들어가고 그런 행운이 차려지지 않은 애들은 하다못해 가짜 병 진단을 떼고 시내로 들어갔지만 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신세였습니다.
《정 방법이 없으면 그 누구처럼 간질병이 있는 것처럼 사람들앞에서 거품물고 자주 넘어져보렴. 호호호…》
《야, 너나 한 번 그래봐라. 꼴 좋겠다. 평생 시집가긴 다 틀렸지.》
《시집 못가면 이렇게 풀개구리랑 동무하며 같이 살면 되지.》
그 때 그녀가 무심결에 내뱉은 말이였지만 그녀가 날 풀개구리같다고 한 이상 나로서는 그 말을 거저 흘려보낼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 둘은 짬만 나면 풀개구리를 잡아서 가지고 놀았습니다. 풀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입을 풀개구리 궁둥이쪽에 바싹 가져다대고 입으로 딱! 하고 소리를 내면 풀개구리가 손바닥에서 폴짝 뛰여나갑니다. 우린 누구의 개구리가 더 멀리 뛰여나가는가에 따라 누가 먼저 시골을 떠나게 되는가를 내기했는데 그 날 승부가 결정되면 이긴 사람, 당연하게 풀개구리가 더 멀리 뛰여나간 풀개구리 임자가 시골을 떠나간다는 뜻에서 리별의 파티를 마련합니다. 그 때 유일하게 팔리고 있던 《손가락과자》를 한근을 사면 가상적인 리별파티는 시작됩니다. 그 당시 술이 귀해서 맹물로 술을 대신합니다.
창고처럼 휑뎅그렁한 집체호에서 둘만 남은 우리는 맹물에 《손가락과자》를 먹으면서 시골을 벗어나는 사람의 희열과 계속 시골에 남아있게 되는 사람의 비애를 맛봅니다. 비록 가상적인 분위기에 제멋에 놀고 있지만 그런대로 희열과 비애를 뒤섞느라면 언젠가는 시골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가 그것도 막연한 기대지만 마음에 위안이 돼줍니다.
솔직한 토로지만 그 때 그녀의 모습 - 손바닥우에 놓인 풀개구리 궁둥이에 입을 바싹 가져다대고 딱! 하고 소리내는 그 모습이 얼마나 황홀한 모습이였던지 지금도 적당하게 표현할 말을 찾을수 없습니다. 사실 그녀는 밉지도 곱지도 않은 얼굴형이지만 누구말마따나 산속에서 녀자를 보면 다 예뻐보이는격이여선지 아니면 내 눈이 눈이 아니고 쯤이여서인지…
나의 안해가 된 지금의 그녀는 예전의 그녀가 아닙니다. 어항안의 풀개구리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도 그 때 시각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외로운 섬에 웅크리고 앉아 눈만 데룩데룩 굴리고 있자니 오죽 외롭겠어요.》
안해의 말속에 가시가 들어 있는줄 번연히 알면서도 나는 정면으로 맞설 엄두를 못냅니다. 그래서 기껏 한다는 소리가 이러합니다.
《그런데 이봐. 하필이면 왜 파란 자라를 사왔어?》
그래도 사내의 체면을 지키느라고 반말을 내뱉을 용기만은 아직 가지고 있습니다.
《거무죽죽한것보다 파란색이 곱지 않아요?》
《아무색이든 자라는 기분 나빠.》
《왜요?》
《자라는 말이야. 한족들의 욕말에는 제 계집 남에게 떼운 얼간이 사내를 뜻한다니까. 더군다나 파란색 자라라 하면 한족들은 〈푸른 모자를 쓴 사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
《푸른 모자를 쓴 사내? 건 무슨 뜻이죠?》
《역시 제 계집 하나 건사못하는 바보를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이 자라를 녀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잘 사가던데요.》
《그건 말이야, 그런 사내꼴이 되지 말자고 미리 징계하는 뜻으로 사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자라는 기분 나쁜 련상만 준다니까.》
《당신 분석대로 그런 뜻에서 남자들이 푸른 자라를 사간다고 하면 제가 이 자라를 사오길 잘했네요.》
《뭐?》
안해는 말속에 숨긴 가시를 약간 내비칩니다. 그 가시가 퍼렇게 독을 쓰며 그 형체를 완연하게 들어내기전에 나는 놀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고 맙니다.
한해전만해도 나는 안해가 이런식으로 말속에 가시를 내비치기만 하면 지붕이 낮다하고 길길이 뛰였습니다.
《어따대고 하는 말버릇이야? 내가 요즘 집에서 잠간 쉬고 있는 것이 그렇게 원쑤같아 보여? 돼먹지못한 녀편네 허벅지 긁고 바가지 긁을줄밖에 모른다더니 …》
이런식으로 나오면 안해는 사흘이고 나흘이고 입에 자물쇠를 겁니다. 그러던 안해가 이제 와서는 박박 악을 씁니다.
《당신 지금 집에서 잠간 쉬고 있어요 아니면 곰처럼 동면하고 있어요? 동면이라도 했으면 잠에서 깨여날 봄철이나 있잖겠어요. 허구헌날 저 개구리처럼 웅크리고 앉아 당신 무슨 궁리를 하고 있어요? 정 할 일 없으면 거리에 나가서 구두라도 닦으세요. 남자라면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모습이라도 좀 보여달란 말이예요.》
《그만해둬. 나 이래도 언젠가는 솟는다니까 솟아.》
《당신에겐 지금 솟을 하늘이 없어요. 하늘만 쳐다보지말고 제발 땅에서 착실하게 기기라도 하세요.》
그러면 나는 목을 움츠린채 슬며시 자리를 뜹니다. 갈곳은 없지만 나는 집을 나섭니다. 이렇게 고약한 기분으로 문밖에 나오면 꼭 어김없이 떠올리게 되는 노래가락이 귀신경을 긁어댑니다.
가사가 아주 엉망인 노랩니다.
《청량리로 갈까요 홍도한테 갈까요 아니면 북망산으로 갈까요…》
언젠가 한국에 가서 돈깨나 벌어온 사촌동생이 혀꼬부라진 소리로 내뱉던 노랩니다. 그날 그 녀석은 그 녀석의 말마따나 서울의 사창가인 《588》과 거의 근사하다는 곳에서 폼 한 번 잡았더랬습니다.
《야, 양주 한병 더 가져와.》
《어느 양주로 드릴까요?》
《거 있지. 〈섹스 오케!〉》
그 녀석은 XO양주를 〈섹스 오케〉라고 했습니다.
《녀자는 반죽이 잘돼야 나중에 복에 겨운 소리가 거창하게 나오는 법이예요》
독한 술이 창자를 비틀어 짤때까지 곁에 붙어앉은 계집을 아주 주물럭반죽을 만들어놓고는 걸레짝처럼 늘어질 밀실로 자리를 옮기는게 바로 그 녀석의 주벽입니다.
《형님도 오늘 밤 멋진 사내 한 번 돼 보소. 그럼 이따 만나요.》
그녀석이 계집과 함께 밀실에 들어간뒤 나는 내곁에 앉은 계집애가 따라주는 술만 훌훌 입에 털어넣었습니다. 이자 갓 스믈이 됐을가말가한 가녀린 계집애가 새침한 표정으로 술을 따라주다가 나중에 한다는 말이 기막힙니다.
《사장님은 녀자 좋아 안하세요?》
이때면 나는 사장이 됩니다.
《뭐 녀자?》
《나 안 이뻐요?》
술기운이 오른 내눈엔 계집애의 얼굴이 륜곽밖에 잡히지 않습니다.
《이래봬도 전 여기선 잘 나가는데요.》
잘 나가는 년인데 왜 날름 잡숫지 않고 있나 하는건데 내 지금 기분이 얼마나 엉망이라고, 그러나 말만은 여유작작하게 나옵니다.
《나 그런 짓에 명 재촉할 사람이 아니야.》
그러곤 빈 술잔을 내밉니다.
《아이참 긴긴 밤 술시중이나 들다 말겠네. 인젠 그만 하세요. 기실 명 채촉하는건 술이얘요.》
《뭐야?》
빈 술잔이 술상우에 튀여오릅니다.
《술주는 세상에 술마시지 않고 뭘하라는거야? 어서 붓기나 해!》
계집애는 하는수없이 술을 따릅니다. 그러면 나도 내 체신을 찾습니다.
《너 한테 큰소리해서 안됐다. 자 너도 한잔해라. 너한테 솔직히 말해주는데 난 말이다 술마시고 그 짓은 둘째치고 니나노장단도 못치는 놈이야. 그건 그렇고 나 지금 기분이 말이 아니다.》
《좋아요. 그럼 우리 오늘 밤 취토록 마시자요.》
계집애는 절로 맥주컵에 양주를 가득 채우더니 건배를 해왔습니다.
《방금 사장님은 술주는 세상이니 술 마시자고 했죠. 좋아요. 술 마시지 않고는 못사는 세상, 자, 마이자요. 사장님도 기분 푸세요.》
쨍그랑! 오케! 《섹스오케》 또 한병!
《인생은 나그네 길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것…》
《꽃순이를 아시나요 어여쁜 꽃순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
《눈물을 보였나요 내가 울고 말았나요…》
《학창에서 공부하고 농촌에 돌아와 부지런히 일하여 첫수확을 거두었네…》
《그대의 옷자락에 매달려 눈물을 흘려야 했나요…》
술 한잔 노래 한곡, 네 술 한잔에 내 술 한잔, 가고 오는 술에 주고받는 노래, 이렇게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모릅니다. 계집애는 주로 사랑의 리별이라든가 그리움이라던가 아픔이라던가 하는 노래만 주어 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고 나는 나대로 기억에 떠오르는 노래면 죄다 뽑아버렸습니다.
《술 마이니 기분 고약하네요. 나 이래도 슬픈 녀자얘요 아저씨…》
계집애가 혀가 꼬부니 난 사장님에서 아저씨로 내려앉았습니다.
《나 역시 구질구질하게 살아온 놈이야…》
이렇게 신세타령이 시작되였습니다.
《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나중엔 내 신세 조져놓고는 훌쩍 밀항선을 탔어요…》
들어보나 마나 역시 구질구질한 사랑과 배신에 관한 넋두립니다. 그런 넋두린 보통 그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하소연이 그 넋두리의 말허리를 썩둑 자릅니다.
《너 내 신상서 한 번 보겠냐?》
《뭐요. 신상서?》
《그것도 몰라? 너 중학교나 나왔냐?》
《중퇴하고 말았죠.》
《그럼 글은 뜯어 볼 수 있겠구나.》
나는 호주머니를 뒤적여 자그마한 종이 한 장 꺼내 주었습니다.
《자 이걸 읽어봐.》
계집애는 그걸 받아 혀꼬부라진 소리로 읽어내려갑니다.
《 〈이력서:
동년시절 영향실조에 걸린 구루병환자
소년시절 반란에는 무조건 도리가 있다던 홍위병
청년시절 광활한 천지에서 지구를 다스리던 지식청년
중년시절 부모처자를 가진 정리해고자〉아니 이게 뭐예요?》
《내 력사이고 명함이다.》
재취직하러 이곳저곳 다니자니 명함이나 리력서같은 것이 필요해서 글깨나 쓴다는 동창생한테 부탁해서 만든 내 이력섭니다. 별로 적어넣을것이 없는 생이니만큼 간단하면 간단할수록 좋다는게 동창생의 주장이였습니다. 사실 적어 넣을것이 없는 것이 내 리력입니다. 한창 먹고 자랄 나이에 3년 자연재해를 만나 영양실조로 가슴이 새가슴처럼 쏙 튀여나온 구루병체질이 됐고 공부에 열중해야 할 소년시절에는 문화대혁명이 터져 《홍위병완장》을 낀 손에 몽둥이나 들고 다녔는가 하면 아침 아홉시 태양과도 같다는 청년시절에는 손에 쥔 호미로 밭이랑을 허비면서도 지구를 다스린다고 허풍이나 떨었습니다. 그 때 말을 빌면 청년시절은 《밭이랑을 타고 세계를 내다보던》 시절입니다. 운수가 사나웠던지 남들처럼 대학이나 군대에는 못가고 겨우 농촌을 벗어나 부모대신 뒤늦게야 공장에 들어가 시키는 일이나 해오면서 두루두루 세월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중년시절에 들어섰습니다. 별다른 의욕이 없이 정착된 생활을 누리려고 하니 정리해고바람이 터져 한달에 기본생활비만 타는 실직자가 돼버렸습니다. 생각하면 구질구질하기 짝이없는 삶입니다.
《이건 보고도 모를 글이구만요.》
계집애가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맞아, 너들 세대야 돈바람이 터진 세상에 나서 돈맛만 알고 커왔으니까 보고도 모를 글이지. 말해봤댔자 소귀에 경 읽는거고. 술이나 먹자.》
나는 실없는 소리를 했다싶어 제풀에 멋적어져 술잔만 홀짝이면서 그녀석이 나오기만 기다립니다. 생각같아서는 집에 가서 노그라지고 싶지만 술값, 팁값 결산 할 놈이 나와주지 않으면 인질이 된 비참한 기분으로 죽치고 앉아 기다려야 하는 신세입니다. 계집애는 하품을 짝짝 해대며 시계만 들여다 봅니다. 잠이 무겁게 내 눈두덩에도 실립니다.
《어허. 아가씨 재간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리 형님이 아주 녹초가 됐군그래.》
잠결에 아스라이 들리는 그 녀석의 목소립니다.
《제풀에 녹초가 된거죠. 전 지금까지 독수공방하는 신세예요. 이 아저씨 혹시 고자가 아니예요?》
이가 부득부득 갈릴 그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파고들어도 두 눈이 떠지질 않습니다.
(개쌍년…)
《문제가 심각한데. 그럼 이제라도 내가 형님대신 아가씨 신세 고쳐줄가?》
(개수작말아!)
《그럴 재간있어요?》
(정말 개같이 노네)
《하 이거 오늘 진짜 2차 하게 됐네. 1차에 기절직전까지 몰아갔으니 2차에는 초죽음을 만들어야겠군 하하하…》
(개새끼, 물개같은 새끼…)
그녀석이 계집애를 데리고 나가자 나는 채 못한 욕을 입가에 문채로 굳잠에 빠져버렸습니다.
어쩌다 술이 생겨 폭음만 하면 나는 하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합니다. 화장실 세면대에 얼굴을 처박고 눈물콧물 찔끔찔끔 짜면서 창자를 올리훑고 내리훑으며 창자를 청소합니다. 창자청소를 끝내고 얼굴을 들 때면 딩딩 부은 눈두덩이가 눈동자 절반을 덮어버린 핏기어린 두 눈이 나를 멍청한 눈빛으로 지켜봅니다. 눈을 비비고 대방을 찬찬히 뜯어보면 참으로 한심한 얼굴을 가진 녀석입니다.
손이 간적이 없는듯한 머리는 갈대처럼 선건 섰고 강풍이 쓸고 간 논밭의 벼처럼 이리저리 쓸어진건 쓸어진대로 있습니다. 부석부석하고 탄력을 잃은 얼굴은 땀구멍이 늘어날대로 늘어나 알곰알곰 얽은 곰보가 되기 직전입니다. 더 가관은 이발입니다. 담배연기에 얼마나 그슬렸는지 누렇다 못해 벌그스름한 색갈까지 내비칩니다. 얼굴을 얼기설기 지나간 주름선은 한창 주름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라잖으면 만고풍상을 겪어온 그런 얼굴로 변해버릴 것 같은 얼굴이 잔뜩 찌그러듭니다.
이렇게 나는 한참이나 나를 뜯어봅니다. 그럴 때면 덧없는 세월의 무정함보다 이름못할 인생의 허무가 찡하니 온몸을 엄습합니다. 누군가 지금의 중년시절은 자사자리한 청춘시절이나 새롭게 발기가 가능한 로년시절에 비해 가장 탐욕스런 시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얼굴은 중년으로서의 탐욕의 빛이 번뜩이는 그런 얼굴이 아니라 모든 것을 체념한듯한 멍청한 얼굴입니다.
사람은 스스로의 생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얼마라도 자기를 추잡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내 생을 멋지게 설계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자기를 추잡하게 만들려는 생각따윈 전혀 가져본적이 없습니다. 그저 운명에 이몸을 맡겼을 따름입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이름짓기보다 살아가는 그 생리에 따르느라고 헐떡거렸을 뿐입니다. 그런데 나의 얼굴은 아주 추잡하게 일그러진 모습입니다. 한마디로 중년답지 않은 초로의 로인상입니다. 그것도 신수 훤한 로인상이 아닌 찌든 상입니다.
《이 아저씨 혹시 고자 아니얘요?》
삭막한 기분에 어쩌다 떠올리게 되는것이 뭇사내들의 하수도가 돼버린 걸레같은 계집애가 냉갈령하게 악매하던 말입니다. 비위가 아주 뒤집혀져 버립니다.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하고 마음도 구겨진는것 같더니 그것도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것도 사실입니다. 나중엔 시체말대로 고개숙인 남자가 돼버렸습니다.
그래도 할일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놀던 초반에는 종일 먹고 자고 자고 일어나서는 또 먹고 이렇게 《돼지료법》을 했더니 그 놈만은 왕성하게 고개를 추켜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김치를 파느라고 파김치가 되여 돌아온 안해에게 나는 밤마다 열심히 왕성한 힘을 과시했습니다. 사내는 녀자에게 있어서는 《밤의 권력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밤마다 안해앞에서《밤의 권력자》로 군림합니다. 첨엔 안해는 놀랍다는 기색으로 받아들이더니 날이 감에 따라 점차 시들해 지고 나중에 가서는 아예 《노!》를 불렀습니다.
《당신 지금와서 열심히 하는건 그짓밖에 없어요.》
안해는 부부가 합환하는 신성한 사랑행위를 인제는 그 짓이라고 꺼리낌없이 매도합니다.
《그렇게 매도하면 벌받아.》
《아예 석녀가 되게 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싫어?》
《진저리날 지경이예요.》
《당신 갱년기 오는게 아니오?》
안해는 발딱 일어나더니 이불을 걷어안고 아이방으로 건너갔습니다. 그후론 다시는 내곁에 오지 않았습니다. 각방쓰고 사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밤의 권력자》는 그 권력을 상실했습니다. 아무 재간도 없는 권력자가 일단 그 권력을 상실하면 뭐가 남는지 아십니까?
《똥무지 큰것밖에 없어.》
이말은 정부기관에서 사무원으로 있던 중학교 동창생이 한 말입니다. 그 친구가 일보는 부서에는 아무 재간도 없이 다만 상급에 대한 아첨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한 책임자가 있었는데 정부기구 인원간소화 여론조사에는 재간없는 그 책임자가 당연히 조정대상으로 점찍혀지고 내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할 적임자로 평판이 났답니다. 그런데 조정대상 이름을 공포할 때 어이없게도 내 친구가 찍혔답니다. 역시 자그마한 권력이라도 막강합니다.
내 친구는 부서에서 연 송별파티에서 술을 권하는 그 책임자한테 조언 한마디 했답니다. 그 조언이 바로 똥무지 조언입니다.
《재간없는 당신이 일단 손에 쥔 권력만 내놓으면 남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뭔데?》
《당신이 나보다 나이를 더 먹었으니 똥무지 더 큰것밖에 없습니다.》
그날 나는 친구한테서 이말을 들으면서 쾌감까지 느꼈습니다. 기업소를 말아먹고 로동자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해고자로 추락시키고는 유유히 공문가방을 챙겨들고 다른 기업소의 책임자로 전근되여 간 우리 기업소 책임자도 언젠가는 큰 똥무지밖에 남지않은 페인으로 될것이라는 확신을 가지면서 한바탕 화풀이를 한 기분이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친구의 말이 별로 나까지 념두에 두고 한 말같이 느껴지는걸 어쩔수 없습니다. 권력도 별별 권력이 다 있듯이 내가 가지고 있던 《밤의 권력》도 권력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원초적인 힘, 본능의 힘, 생명의 힘, 이런 시각에서는 《밤의 권력》은 그 어느 권력에 비해 막강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 막강한 권력을 나는 잃었습니다.
어항안의 《또 하나의 나》는 요즈음에 와서는 아예 두눈을 감아버린채 하루 종일 웅크린 그 자세로 미동도 하지 않습니다. 예전엔 그래도 툭 튀여나온 눈을 디룩디룩 굴리면서 여기저기를 휘둘러보다가도 물속에 뛰여들어 열대어들과 장난도 치고 자라등에 폴깡 뛰여올라 짓궂은 장난질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고독을 즐기는 그런 모습입니다. 사실 녀석은 어디 갈 곳도 없고 또 갈래야 갈수 없는 놈입니다. 그 면에선 내 신세와 꼭 같습니다. 자라도 잘 내휘두르던 그 뭣과 같게 생겼다는 대가리를 깊숙히 껍질안으로 잔뜩 움츠러리고는 조용히 엎드려 있습니다. 그놈도 아마 점점 내 꼴이 되여가는가 봅니다.
《밤의 권력》까지 상실한 나는 더 비참한 인간이 되였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종일 트럼프나 화투장으로 운수패를 널기도 했고 나 같은 신세가 된 사람들이 벌인 트럼프판이나 마작판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한테는 내가 정리해고자가 되였다는것을 비밀로 부치고 있기 때문에 그냥 열심히 출근하는 아버지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언젠가 아이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 정리해고자란게 직업을 잃은 사람이란 말이죠. 말하자면 실업자란 거죠.》
《거이 비슷하다.》
《오늘 선생님이 부모들중 한분이라도 정리해고자가 된 학생은 손들어보라고 하니까 놀랍게도 거의 반수가 되는 애들이 손을 들지 않겠습니까. 기분없이 손을 드는 애들을 보니 난 그래도 열심히 직장 나가는 부모를 두어 행운이다는 생각이 들지않겠어요.》
아이의 이말에 나는 숨이 칵 막혔습니다.
이때 안해가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래서 애들 봐서라도 열심히 살아야 하는거얘요. 애들 볼 면목마저 없으면 그 사람 인생 다 끝난거얘요.》
안해의 말쐐기는 내 가슴을 가차없이 헤집고 들어와 박혔습니다. 그날 나는 나 같은 신세가 된 직장의 동료한테 찾아가 술나발을 불면서 기염을 토했습니다.
《나라의 국록을 타먹는것도 모자라서 공장까지 다 말아먹는 놈, 그런 놈이 바로 탐관오리야. 로동자들이 피땀으로 벌어놓은 돈으로 웃놈에게 아첨하고 자기 배를 기껏 불리고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가버리니 죽어나는건 우리뿐이지. 》
《그런 탐관오리는 옛날에도 효시감이야. 탐관오리를 보면 춘향전에 나오는 암행어사 리도령이 변학도 생일날에 쓴 시가 생각난다. 내 한 번 읊어볼가.》
내 동료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 읊어내려 갔습니다.
《〈금준미주는 천인혈이요
옥반가요는 만성고라
촉루락시에 민루락이요
가성고초에 원성고라〉》
《지금 우리 쓰는 말로 풀어서 읽어라.》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눈물 떨어질 때 백성들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래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더라〉》
《지금의 탐관오리들한테 그 시를 선물하면 좋겠구나.》
《암, 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지.》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우리들의 피요…》
《자 한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우리들이 고기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촛불눈물 떨어질 때 우리처자 울고있고…》
짤그랑!
《노래소리 높은 곳에 이 가는 소리 높더라…》
짤그랑 와장창 …
그날 술잔이 박살나고 술상이 뒤집혀졌고 사람은 인사불성이 돼버렸습니다. 술로 하는 화풀이는 그것으로 끝납니다. 술이 깨면 참담한 현실입니다.
나는 종일 집에서 놀다가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이 되면 출근차림으로 밖에 나가 발길 가는대로 이곳저곳 돌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퇴근길인 듯 집에 들어섭니다. 그러면 아이가 밥곽이 든 내 가방을 받으면서 반깁니다.
《피곤하시죠?》
고중에 다니는 사내애가 녀자애들 못지않게 정나미 나게 놉니다.
《어, 오늘은 좀 피곤하다.》
《어서 발 씻고 어머니 올 때까지 누워서 쉬세요.》
아이는 발씻을 물을 대야에 떠옵니다. 짐짓 피곤한 표정을 꾸미며 두발을 물에 담그면서 나는 아이 얼굴을 외면합니다. 아이를 바라볼 용기가 없습니다. 그 때가 내가 가장 초라해질 때입니다. 사람구실, 부모구실 돈이 시킨다는 말이 있지만 자식앞에서 내 체면유지는 뭐가 시키는지… 초라해질대로 초라해진 내 마음은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얘야, 너와 이 애비는 피는 통하지만 앞으로 네 삶만은 이 애비와 같아서는 안돼. 아니야 절대 같을수 없어!
아이가 방학이 되면 나는 출근길에 나서는것처럼 밥곽을 챙겨들고 문을 나섭니다. 창고에서 숨겨두었던 낚시대를 들고 시교근처에 있는 양어장으로 찾아갑니다. 거리상 차비를 팔것도 없고 주변에 버드나무가 둘러서 있어 공원의 호수가같은 분위기를 내는 곳이여서 내가 가기에는 적합한 곳입니다. 시인이나 철학가들이 즐겨 찾는 명상의 공간으로도 안성맞춤한 곳입니다. 그러나 내가 그곳을 자주 찾는 것은 다른 낚시터에 비해 우선 출입료금를 받지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시간이나 보낼 심산으로 양어장을 찾았지만 문제는 낚시를 던지기 바쁘게 고기가 물려 나오는것입니다. 낚은 고기는 시장가격보다 더 비싸게 돈을 물어야 합니다. 낚시꾼들더러 고기를 많이 낚게하기 위해 양어장주인은 고기에게 먹이를 적게 줍니다. 비싼 값으로 고기를 많이 팔아먹자는 양어장주인의 알량한 속셈이 들여다 보입니다. 낚시만 넣으면 고기가 덥석 물려나오는데 그런대로 그냥 고기를 낚아올리면 둬시간이면 몇십마리는 문제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척척 돈을 물고 개선장군이나 된 듯이 가슴을 내밀고 양어장을 떠나지만 난 그럴수 없습니다. 나에겐 매일 고기값을 물어줄 돈도 없거니와 남들처럼 료리용으로나 선물용으로 고기를 낚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저 시간만 보내면 됩니다.
그래서 고안해낸것이 《강태공낚시질》입니다. 미끼를 끼지않은 낚시를 물에 던져넣고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냅니다. 강태공은 낚시마저 없는 낚시줄만 물에 드리우고 나라의 흥망성쇄를 가늠해 보았다지만 사색마저도 고갈된 내 머리속에는 시간의 흐름을 알리는 초침소리만 째깍째깍 울리고 있습니다.
매일 양어장에 죽치고 앉아 고기를 한마리도 낚아 올리지 않으니 하루는 양어장주인이 내곁으로 왔습니다.
《아저씬 무슨 미끼를 쓰길래 고기를 한 마리도 낚지못합니까?》
그러면서 양어장주인은 내 낚시를 물에서 건져올립니다.
《어허. 미끼를 떼운걸 몰랐군.》
나는 짐짓 허거픈 웃음을 입가에 물면서 미끼통을 꺼냅니다.
《아저씬 무슨 미끼를 씁니까? 어디 좀 봅시다.》
미끼통에는 바짝 말라붙은 밥알밖에 없습니다.
《이런 미끼를 쓰니 고기가 물리겠습니까.》
《모르고 하는 소리. 큰고기를 낚는덴 밥알이 가장 좋은 미끼지.》
이럴 땐 나는 낚시에 이력이 튼 낚시광인것처럼 나옵니다.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런걸 미끼로 씁니까. 지금 고기들은 밥알을 먹지않습니다. 더군다나 큰고기를 낚으려면 미끼를 좋은걸로 써야 합니다. 좋기는 수입제가 좋지요.》
달도 외국의 달이 더 둥글어보인다더니 미끼도 수입제가 더 좋을 수밖에 없겠지요. 고기도 인젠 밥알을 먹지않는다니 맥드날도나 쏘세지를 먹겠지요. 그런걸 먹고 자란 고기를 수입제 미끼로 낚아서 맛나게 드시는 사람은 머리나 눈도 양코배기들처럼 노랗거나 파랗게 변해가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혹시 물에 빠지면 고기들은 수입제가 왔다고 구름같이 몰려오겠지요. 언제 한 번 저 먼바다에 가서 그런 사람들을 낚시미끼로 큰 바다상어를 낚아봤으면 여한이 없을것 같기도 하고…
《시간많은 량반이시네…》
양어장주인이 남기고 간 비꼬는 말이 내가 요행 얻은 상상의 날개를 꺽어버립니다.
《그래 맞다, 나 시간이 많다. 나도 언젠가는 큰고기를 낚을수있을거야. 암 낚고말고.》
비록 광적인 상상에 가깝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상상을 어쩌다 얻은 것으로해서 만족해합니다. 그러면서 아직도 그런 상상을 가질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을 놀랍게 발견합니다.
진짜 큰고기를 낚을 기회가 왔습니다. 그날은 양어장에서 낚시대회가 있었습니다. 《21세기를 대비하는 낚시대회》라고 거창하게 쓴 현수막이 크게 걸리고 숱한 유지인사들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모여들었습니다. 상품도 큼직한 것을 내걸었습니다. 가장 큰고기를 낚은 월척상엔 최신형 컴퓨터 내걸었고 등수에 들지 못한 사람은 고기를 얼마나 낚던간에 무료로 가져갈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강태공낚시》를 물에 던져 넣고 낚시대회를 구경했습니다. 낚시꾼속에는 온 가족을 데리고 온 정부관원들도 있었고 미모의 녀비서와 동행한 사장님들도 있었습니다. 큰 회의가 있을 때마다 심심찮게 텔레비죤 화면에 가끔 얼굴을 내비치는 70고령의 어르신네가 비서를 데리고 나왔는데 낚시하는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그 어르신네는 눈이 어두워서 미끼도 비서가 꿰주고 고기 물린것도 비서가 알려주고 낚시대도 비서가 거들어 들어주는데 비서만 곁에 없다면 손발을 후들후들 떨며 낚시대도 들어올리지 못하는 어르신네의 모습은 사람이 고기를 낚는지 아니면 고기가 사람을 낚는지 도무지 분간이 안갈 진풍경일것입니다.
내가 이리저리 눈을 널고 있는데 깔끔하게 양복차림을 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젊은 아가씨와 함께 나한테로 왔습니다.
《실례가 되겠는지 모르겠지만 저의 낚시대를 좀 봐줄수 없을까요? 전 사업이 바쁜 사람인데 저의 낚시대로 고기를 낚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낚은 고기는 고기회를 뜰 몇마리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가져도 됩니다.》
청탁도 아주 기분이 나는 청탁입니다. 나는 선선히 그 청탁을 받아들였습니다.
《낚시대도 수입제고 미끼도 수입제입니다. 고기가 잘 물릴것입니다.》
그러곤 사업이 바쁘다는 그 사람은 미모의 아가씨와 함께 버들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갔습니다. 푸른 잔디가 깔리고 버들숲이 사람들의 시선을 가려주는 아늑한 곳에서 미모의 아가씨와 벌이는 사업이 대체 무슨 사업일지 꽤나 궁금합니다. 들을라니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산해진미를 먹어도 사업이고 산천경개를 구경해도 사업이고 유흥가에서 놀아나도 사업이라더군요. 나도 한 번 그런 사업가가 되여봤으면 평생 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두꺼비 고니먹고 싶다는 어리석은 생각 그만 하시고 고기나 낚아요 풀개구리같은 사람아…
나는 수입제 낚시대에 수입제 미끼로 밥알을 먹지않는다는 고기를 낚아올리기 시작했습니다. 낚시대회를 위해 고기를 얼마나 굶겼는지 미처 미끼를 갈아댈새가 없습니다. 잠간새 고기구럭에 십여마리 잉어가 들어갔습니다. 더 낚을 재미가 없어 《강태공낚시》나 하려던차 낚시대가 휘청했습니다. 낚시대 끝이 꺽어질 듯이 후러든 것을 봐서는 큰놈입니다. 물밑에서 요동치는 고기를 따라 낚시줄을 당겼다 늦췄다 하면서 좋이 반시간을 허비하니 맥이 진한 고기가 허연 배를 드러내며 물우에 떠올랐습니다.
《저놈은 분명 월척입니다. 이 양어장엔 저만큼한 고기가 없습니다. 형씨는 월척상을 타게 됐습니다.》
나와 안면이 있는 낚시꾼이 부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월척상이면 최신형 컴퓨터입니다. 그러나 나는 낚시대회 참가자가 아니니 그건 내 소유가 될 수 없습니다. 월척을 낚았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버렸습니다.
숱한 낚시대회 참가자들이 몰려왔습니다. 버들숲으로 사업하러 들어갔던 낚시대 임자도 뛰여왔습니다. 낚시대 임자는 월척을 낚아준 나에게 감사의 뜻으로 수입제 낚시대를 주었고 낚은 고기도 다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난 꿩 먹고 알 먹게 되였습니다.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기 바쁘게 그 자리에서 월척에 대한 경매가 붙었습니다. 최신형 컴퓨터 한대 값이니 적어도 시세로는 만원을 웃돕니다. 낚시대 주인은 자기 회사에 컴퓨터가 있으니 컴퓨터가 수요되는 사람은 돈 5천원만 내고 월척을 사가라고 했습니다. 5천원으로 시작된 경매는 컴퓨터 값과 거의 가까운 9천원까지 치달아 올랐습니다. 나중에 한사람이 만원을 불러 월척을 자기 소유로 만들었습니다. 나는 별로 요지경을 보는듯한 환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더 요지경은 그뒤에 있었습니다. 낚시대회 시상식에서 월척상을 받는 사람은 월척을 만원에 사간 사람이 아니라 고기를 낚는지 고기가 사람을 낚는지 분간이 안가게 하던 고령의 그 어르신네였던것입니다. 월척을 고가로 사간 사람이 월척을 그 어르신네가 낚은 것으로 만들었던것입니다. 소웃다 영각할 일입니다. 뒤에서 쉬쉬하는 소리에는 그 사람은 낚시대회를 협찬한 컴퓨터회사 사장이랍니다. 그러니까 어르신네한테 컴퓨터를 그냥 주면 뢰물로 되니까 자연스럽게 낚시대회 상으로 드리면 명분도 서고 쌍방이 다 편안하다는거겠지요. 한마디로 돈이 권력에 아부했다고 할까요, 아니면 돈과 권력 사이에 벌어진 유희라고 할까요. …
하여튼 있는 자들의 세계는 요지경입니다. 월척을 경매에 부친 사람이나 그것을 고가로 사서 진상한 사람이나 또 그것을 자기가 낚은것처럼 뻔뻔스럽게 시상식에 나선 어르신네나 다 권력이던 돈이던 뭐든 있어야 하는 세상에서는 복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날 저녁 나는 물고기와 선물받은 수입제 낚시대를 시장에 가서 헐값으로 넘기고 받은 돈 3백원으로 아이가 그렇게 사고 싶어했던 영어학습용 록음기를 샀습니다. 그 월척이 내 소유가 되여 상으로 받은 컴퓨터를 아이한테 선물했으면 애비로서의 체면이 얼마나 섰겠습니까. 그런대로 나는 그날 가장 떳떳하게 집에 들어설수 있었습니다.
어디서 난 돈이냐고 안해가 추궁했지만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습니다. 그 돈의 래력을 알면 안해앞에서 내가 또 한번 왜소해 질가바 두려웠던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류행가에 이런 구절이 있는걸로 기억됩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지금의 내 처지가 바로 그렇습니다. 안해를 마주 대하면 우선 나는 못할짓이나 하다 선생한테 들킨 애들처럼 움츠러들면서 눈치만 슬슬 살핍니다. 그러곤 인차 왜소해져가는 나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남자는 젊은 시절에 안해앞에서 내노라고 범처럼 으르렁대다가도 기력이 빠지고 늙어가면 주인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개처럼 안해의 눈치만 슬슬 살핀다는 유머입니다. 기실 이건 유머가 아닙니다. 유머란 그 어떤 명분에 가려진 실제를 살짝 들어낼때 생기는 익살스러운 롱담이나 해학인데 이건 아주 남자들에 대한 가혹한 매도이고 중상입니다. 적나라한 매도와 중상은 유머가 될 수 없습니다. 주인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개같다는 비유는 쓰고 싶지 않지만 내가 안해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것만은 사실입니다. 안해에게 못할 짓을 해서 그러는것도 아니고 또 안해의 가슴에 못을 박을 죄되는 일을 저질러서 그러는것도 아닙니다.
내가 안해의 눈치를 살핀다는 것은 내가 안해의 존재를 그것도 나의 존재보다 더 위엄이 있는 그런 존재로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내가 언제부터 어떻게 되여 안해의 존재를 의식하게 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돈 때문일가? 그건 아닙니다. 안해는 로임에만 매달려 사는 나를 남들처럼 큰 돈 한 번 잡아보라고 닥달한적이 없습니다. 몇해전 나는 남들처럼 버젓이 살아보자고 안해와 상의도 없이 아글타글 모은 돈 만원에 친척들의 돈 만원을 보태여 한국행 초청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출국의 꿈은 꿈으로 깨지고 돈만 날리고 말았습니다. 집에 들어갈 면목이 없어진 나는 비수 한자루를 품고 사기친 놈을 정처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 때 나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 것은 안해였습니다.
《개도 안먹는 돈 때문에 괜히 당신 명 줄이겠어요 . 남의 돈 떼먹은 놈은 꼭 제명대로 못사니까 그만 찾아다녀요.》
《당신 볼 면목이 없구만. 그 돈을 어떻게 모은 돈인데…》
《돈이야 다시 벌면 되잖아요.》
《당신 지금 속으론 날 원망하고 있지?》
《아니요. 원망하기보다도 전 당신을 다시 보게돼요. 비록 돈은 날렸지만 고지식한 당신에게도 남들처럼 잘 살아보겠다는 그런 의욕이 있었다는게 놀랍고 또 남자답게 그 큰돈을 자기가 목적했던 일에 선뜻 내놓을 담량을 가지고 있었다는게 신기할 지경이얘요.》
이런 안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경외감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해는 어디까지나 녀자입니다. 장을 보다가 돈 10원을 도적맞혀도 며칠 속을 꿍꿍 앓는 그런 녀자입니다. 돈 날린 내앞에서 그렇게 대범하게 나왔지만 속은 나보다도 더 재가 된게 안해입니다. 돈을 날린뒤로 안해는 밤마다 잠꼬대를 했습니다. 중얼중얼 하는 그런 잠꼬대가 아니라 악을 박박 쓰는 고함이였습니다.
《벼락맞아 죽을 새끼야. 죽더라고 내 돈 내놓고 가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천벌을 맞을 뒈질 놈아 네가 내 돈 가지고 가면 어디 가겠냐. 지옥에 가도 내 꼭 따라가서 너를 기름가마에 넣어 튀기고 볶고 지지겠다…》
누구나 이런 잠꼬대를 들으면 묘골이 송연해 질것이지만 나는 안해가 잠꼬대를 할 때마다 안해의 손을 꼭 감싸쥐고 속으로 미안 미안을 거듭 했습니다. 안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경외감까지 가졌지만 그 때 난 지금처럼 안해의 눈치를 슬슬 살피지는 않았습니다.
어항안의 《또 하나의 나》가 너무도 미동하지 않아 나는 그 녀석을 어항안에서 꺼내 손바닥우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래도 녀석은 내리감은 눈을 뜨지 않습니다. 녀석의 궁둥이에 바싹 입을 가져다 대고 딱! 하고 소리를 냈더니 녀석은 눈까풀만 한 번 슬쩍 올렸다가는 도로 내려버립니다. 모든 것을 초탈한 모습이라기 보다 바로 운명을 앞둔 몰골입니다. 화김에 나는 녀석을 열대어가 헤염치는 물속에 처넣어버립니다. 녀석은 네각을 뻗은채 한참이나 시체처럼 물우에 둥둥 떠있습니다. 영 죽어버린게 아닌가 싶어 손을 가져가니 녀석은 그제야 맥없이 헤염쳐 섬으로 갑니다. 그 꼴을 자라가 대가리를 길게 빼들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보긴 뭘 봐?》
공연히 나는 자라에게 적의를 가집니다. 자라는 내 말을 알아들은 듯이 대가리를 움츠립니다.
누군가 안해의 사랑과 헌신만 요구하는 무기력한 남편은 안해를 외롭게 하고 밖으로 내몬다고 했습니다. 요즘와서 안해의 귀가 시간이 늦어지는 차수가 잦아졌습니다. 김치를 파는 녀자가 파티에 초청받아 갔었을수는 없고 동창회같은 모임도 자주 열리는게 아니니 안해가 대체 어디서 누구하고 무슨 일로 만나기에 귀가가 늦어지는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어떤 날은 술을 한잔했는지 량볼이 발가우리해가지고 들어옵니다. 녀자가 술을 입에 대기시작하면 가문이 망할 징조라고 조상들이 조언해 왔습니다만 현대 생활에서 녀자들도 가끔 술좌석에 얼굴을 보이는것이 아주 자연스런 일로 돼버린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런 현실이지만 설명절에도 술을 전혀 입에 대지않던 안해가 지금와서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온다는 것은 그대로 지나쳐 버릴수 없는 일입니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 맥주 한잔정도로 마셨겠지 하고 의혹을 삭여보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이런 의혹은 삭여보려고 하면 오히려 눈덩이를 굴리듯이 더 커만갑니다.
…음악이 잔잔하게 흐르는 조용한 다방입니다. 안해는 양복을 입은 한 사내와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사내는 얼핏봐서도 삶의 여유를 넉넉하게 가진 자입니다. 그 사내가 무시로 휴대폰으로 누구와 통화하는 모습을 안해는 조용히 그러나 부러운 눈길로 지켜봅니다. 그러다가도 사내가 무슨 말인가 하고 껄껄대면 안해는 약간 수줍음을 타면서 할기죽 눈을 흘깁니다. 그런 눈흘김을 소설에서는 눈을 곱게 흘긴다고 묘사합니다. 안해의 그런 눈흘김을 나는 오래만에 다시 봅니다. 생활에 찌들어서 그런 눈흘김을 나눌 여유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이제는 내가 그런 애교를 받을 대상이 아니여선지 안해는 최근년간 나한테 곱게 눈을 흘겨본적이 없습니다.
그 사내는 누런 금반지가 번쩍거리는 손으로 안해의 김치팔던 손을 덥석 쥐고는 손금을 봐줍니다. 안해는 손을 사내에게 맡기고는 사내의 말을 경청합니다. 사랑선에 잔금이 많은걸 보니 정이 많은 녀자군요. 그 정은 지금 제곬을 찾지못해 방황하고 있는데 언젠가 제곬을 찾게되면 걷잡을수 없이 흘러가게 되지요. 그 정곬을 찾아줄 사람은 멀다면 먼곳에 있고 가깝다면 지척에 있지요. 사내는 아마 이따위 소리를 떠벌리고 있겠지요. 그러나 안해는 귀가 솔깃해가지고 진지하게 듣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사내는 더 대담하게 안해의 손을 더 가까이 끌어와서는 이리 쓸고 저리 쓸며 마음껏 주물러대고 있습니다. 안해는 그런대로 손을 내맡기고 있습니다. 정말 더는 못봐줄 진풍경입니다.
《이놈 그 손 못놓을가?》
그 고함소리에 놀랜 것은 사내가 아니고 나 자신입니다. 제 방귀에 놀랜 격으로 나는 제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여납니다. 기분이 아주 엉망입니다. 나는 어쩔수없이 자라를 떠올립니다.
《자라는 말이야. 중국 사람들의 욕말에는 제 계집 남에게 떼운 얼간이 사내를 뜻한다니까. 더군다나 파란색 자라라 하면 중국인들은 〈푸른 모자를 쓴 사내〉를 떠올리기 십상이지.》
《푸른 모자를 쓴 사내? 건 무슨 뜻이죠?》
《역시 제 계집 하나 건사못하는 바보를 일컫는 말이지.》
《그런데 이 자라를 녀자들보다 남자들이 더 잘 사가던데요.》
《그건 말이야, 그런 사내꼴이 되지 말자고 미리 징계하는 뜻으로 사갈지도 모르지. 어쨌든 자라는 기분나쁜 련상만 준다니까.》
《당신 분석대로 그런 뜻에서 남자들이 푸른 자라를 사간다고 하면 제가 이 자라를 사오길 잘했네요.》
그 땐 그저 무심히 흘려보냈던 말인데 지금와선 그 말뜻을 기분나쁘게 음미해 보게됩니다. 특히 《제가 자라를 사오길 잘했네요》란 안해의 마지막 말이 그 어떤 징후적인 것을 암시하는 말로 가슴을 파고듭니다. 남자로 생겨 특히나 불혹의 나이를 넘긴 남자가 자기 안해한테 삭일 수 없는 의혹을 가진다는 그 자체가 가장 비참한 일입니다. 요절난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가요.
나는 안해한테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안해가 없는 새에 안해의 가방을 뒤져보기도 했고 지어는 안해의 화장품까지도 눈여겨봅니다. 그럴수록 안해의 얼굴화장이 점점 더 짙어간다는 느낌마저 듭니다. 안해의 전화번호책에 새로운 전화번호가 적혀있으면 그 전화번호에 전화도 걸어봅니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녀자이면 나는 전화를 그냥 놓아버립니다. 남자목소리가 나오면 나는 연극을 놉니다.
《여긴 꽃가게인데 누가 꽃배달을 부탁했는데…》
《꽃배달?》
《한 녀자가 꽃배달을 부탁했는데…》
《이봐요. 전화 잘못걸었수다. 여긴 녀자한테 꽃을 선물받을 사람이 없수다.》
《미안하지만 거기가 어디지요?》
《여긴 고추파는 가겝니다.》
상대방이 전화를 끊어버리면 나도 어이가 없어 웃고 맙니다. 어이없는 짓거리를 한 나자신이 초라하다못해 가련해 보입니다.
《사내라면 사내답게 당당한 가짐을 가져. 치사하게 녀편네 뒤나 캐고 다니지 말고. 우리 나이에 의처증을 가진다는건 구제불능의 사내가 된다는걸 의미해.》
이말은 언젠가 내가 나같이 정리해고자 신세가 된 친구한테 한 말입니다. 그 친구는 안해를 한국으로 돈벌러 보내기 위해 가짜리혼까지 해준 바보입니다.
《가짜 리혼까지 해줄 정도로 안해를 믿었으면 끝까지 믿어줘야지》
《아니야. 가짜가 진짜로 될것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그런 예감마저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신세에 가짜 리혼은 왜 해줘?》
《무능한 놈 나중엔 녀편네까지 팔아먹는다더니 내가 아마 인젠 네 말대로 진짜 구제불능이 됐는가 봐.…》
구제불능, 나도 인젠 그 꼴이 돼가고 있지 않는가 싶어집니다.
어느 월간지에 이런 글이 실린적이 있습니다.
《지금 조선족 녀성들이 방황하고 있다. 남자들의 무능이 녀자들을 방황하게 한다. 사실 방황해야 할 사람은 남자들이다. 인생로정에서의 방황은 때로는 값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남자들은 방황할 용기라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의심될 지경이다.》
사내가 구제불능이 되면 녀자는 외로워지고 그 외로움이 짙어가면 녀자는 방황합니다. 남자의 방황보다 더 무서운 것이 녀자의 방황이라고 합니다. 나의 할머니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사내란 기력이 있을 땐 처자식 다 버리고 제멋에 좋아 별별 짓 다하며 돌아다니다가 기력이 빠지면 제발 날 죽여줍쇼하고 처자식곁으로 기신기신 찾아들지만 계집은 안 그래. 한 번 마음 독하게 먹으면 다신 제자리에 돌아오지 않는 법이야.》
나는 지금 인적이 끊어진 강뚝아래에 홀로 드러누워 가을 하늘의 별을 헤고 있습니다.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너와 나 둘…)
집체호를 떠나 시내로 올라오기 전날밤 나와 지금의 안해는 이렇게 하늘의 별을 ?습니다. 그날밤은 내 일생에서 가장 황홀한 밤이였습니다. 나는 남자로 안해는 녀자로 다시 태여난 밤이였습니다.
《이제부터 넌 내꺼야.》
《너도 내꺼야.》
《저 별도 우리꺼야.》
《저 하늘도 다 우리꺼야.》
《이 땅도 다 우리꺼야.》
그러나 지금와선 그 어느것도 내것이 아닙니다. 별도 싸늘하게 내려다보다가 구름속에 숨어버립니다. 하늘도 얼굴을 가려버립니다. 땅도 선뜩한 랭기로 내 잔 등을 올리밉니다. 모든 것이 날 외면하는 이 밤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적막한 밤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별무리가 다시 차가운 빛을 내리드리우기 시작할 무렵 나는 가까운 곳에서 나는 인기척을 느낍니다.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와 신음에 가까운 생경한 교성… 누군가 황홀한 밤의 교성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 교성곡은 유연한 벌을 가로지르며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게 흐르다가 급한 여울목을 만나 룡트림하며 내달리는 성깔 사나운 흐름으로 변해버립니다. 나중에 그 흐름은 쾅쾅 사정없이 바위를 두들기며 천길 낭떠러지에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돼버립니다. 하여튼 젊음은 기운찹니다. 젊음의 폭포가가 어찌나 기운차게 두드려대는지 《어마나 어마나》 하던 소리가 《엄마 엄마》로 변해버립니다. .
기막힌 황홀경을 맛보도록 낳아 길러준 어머니가 고맙다고 꺼이꺼이 소리를 내뱉는지 아니면 도로 어머니 배속으로 들어가고 싶도록 못견디겠다고 소리소리 질러대는건지…
(싸가지없는 년…)
공연히 욕이 나갑니다. 조용한 나의 명상의 공간을 교성곡으로 뒤죽박죽 휘저어 놓은 것이 괘씸하기도 합니다. 엄마 찾던 소리가 뚝 끊어지더니 한참후에 흐느낌 소리가 이어집니다. 녀자들은 너무 황홀해도 눈물이 나오는가 봅니다.
《왜 울어?》
생각밖에도 나이가 꽤나 들었음직한 석쉼한 목소립니다.
《나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목소리 임자도 교성을 내지를 때와는 달리 생경한 처녀애 목소리가 아닙니다.
《이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되려 마음이 편해.》
《내 운명 비참하지요?》
교성곡에 이어 운명곡이 시작됩니다.
《아니야. 기실 스스로 비참한 운명을 마련한것은 그 사람이야.》
《내가 별로 그 사람을 비참하게 만든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 사람한테 죄스럽다는 생각이 드나?》
《글쎄요…》
《그런 생각 가질 필요가 없어. 당신 그 사람한테 여태껏 뭐가 돼왔는가 생각해봐. 술주정 부릴 땐 매를 맞아주는 주정받이가 돼주고 마작놀겠다고 돈 내놓으라 하면 피를 팔아서라도 돈을 만들어주고…》
《그만하세요. 내 명이 기구해서 그렇죠…》
《명탓만 해서는 안돼. 이제라도 새로운 생을 시작해야지. 무능하기 짝이 없는 그 사람의 무능이 당신으로 하여금 생을 바꾸게 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거요.》
남자의 무능이 녀자의 생을 바꾸어 놓는다는 얘깁니다.
《생을 바꾼다구요?》
《암. 우린 오늘 이미 새로운 생을 시작하지 않았소. 난 지금와서 가출해버린 그 녀자를 원망하고 싶지 않소. 오히려 감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요. 그 녀자의 가출로해서 난 나자신이 녀자하나 건사못하는 무능한 인간임을 알게 되였고 내 나름대로의 새 생을 시작해야겠다는 의욕을 가지게 된게 아니오. 그러니 당신도 그런 의미에서는 그 사람한테 감사를 드려야 하지.]
《이제와서 다시 생을 시작해도 늦지 않을까요?》
《암. 난 오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요.》
《어마나 또요…》
거창한 교성곡이 다시 연주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교성곡을 더는 숨죽이고 듣고만 있을수 없어 도둑 고양이마냥 자취소리를 내지않고 자리를 뜹니다. 새 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허청이며 강뚝길을 걸어가는 내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습니다…
어항 속의 《또 하나의 나》는 종내 생을 마감했습니다. 꼴불견으로 네각을 뻗지않고 웅크린채로 조용히 숨을 거둔 녀석은 쪼고만 삶의 공간에서 질식사 한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자연의 품에서 태여났다가 지독한 인간들의 만들어준 적막한 삶의 공간에서 관상용으로 되어오던 녀석은 가엷게도 죽음의 대가로 자기의 귀소인 자연의 품을 도로 찾았습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질식할것만같은 숨막히는 삶의 공간에서 언녕 뛰쳐나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 대자연의 혜택을 누려야 했을 녀석이지만 녀석은 인간들에 의해 강요된 삶앞에서 모든 것을 체념해버리고 허무와 고독만 즐기다가 요절되였습니다. 청년시절 안해의 동정과 사랑을 얻어낸 나의 상징물, 중년시절 별볼일없는 나의 형상물로 돼왔던 [또 하나의 나]를 나는 시교에 있는 논밭머리에 묻어주었습니다. 녀석을 묻으면서 나는 어이없게도 별로 나를 묻어버리는것 같은 기막힌 환각에 순간을 사로잡혔습니다.
《으흐흐, 아하하하…》
나는 앙천대소로 그 환각을 떨쳐버렸습니다. 하늘은 무심하게 나를 내려다 보고 있지만 나는 유심하게 하늘을 쳐다봅니다. 언제보나 그 하늘이지만 오늘따라 그 하늘이 높아보입니다.
나는 언제나 기분나쁜 련상만주는 자라를 돌맹이 내던지듯 늪속에 던져버렸습니다. 《또 하나의 나》를 묻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는 별로 무덤속에서 나오는 기분이였습니다…
1999년 2월 7일 북경에서 탈고
* 본 작품은 2000년도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수상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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