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단상
밤알만큼 큰 거미가 처마밑에 거미줄을 치고 있는줄을 나는 엄마 말을 듣고 알았습니다. 그 때 나는 엄마 배속에 있었습니다.
《징그럽게도 큰 거미네.》
엄마 말을 알아들었는지 거미가 거미줄을 치던 것을 그만두고 처마밑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엄마가 거미줄을 거둬내려고 비자루를 찾아쥐니 마루에 앉아 잎담배를 썰던 아버지가 칼에 묻은 잎담배진을 긁어내며 말했습니다.
《관둬. 새끼가진 거미야.》
《가뜩이나 궁상맞은 집에 거미줄까지 있으면 보기 좋겠나요?》
《그것두 새끼밴 녀자가 있는 집이라고 일부러 찾아와서 새끼 나을 자리를 만드는게야.》
그 말에 엄마는 비자루를 내려놓았습니다.
그 녀인을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납니다. 북경의 서쪽 제2순환도로변에는 중국에서 최고음악학부인 중앙음악대학이 있습니다. 내가 매일 아침 중앙음악대학 소학교반에서 통학생으로 피아노를 배우는 아들을 학교문까지 데려다주고 저녁에 마중할 때면 그 녀인은 마치도 약속이나 한 듯 그 시간에 어김없이 나타납니다.
내가 아무데나 내버려도 주어갈 사람이 없을 정도로 녹슨 자전거에 아들을 싣고 학교 정문에 도착하면 같은 시간에 맞은편에서 색갈이 노란 고급승용차 한 대가 소리없이 미끌어져 와서는 정문앞에 멈추어 섭니다. 바로 그 녀인의 자가용입니다. 차문이 열리면 귀공주차림을 한 녀자애가 튕기듯 나옵니다. 그 녀인의 딸인데 우리애와 한반에서 피아노를 배웁니다. 그 녀인은 운전석에 앉은 그 자세로 자기 딸한테 눈이 시도록 하얀 장갑이 끼워진 손을 정답게 들어주고는 나를 향해 가볍게 목례를 보냅니다. 고운 입 가장자리를 약간 끌어올리면서 웃는듯마는듯한 미소를 살짝 달면서 아미를 숙이는 그 순간 내 허리가 어쩔수 없이 굽혀집니다. 그 녀인처럼 가볍게 목례로 답례하려고 몇십번이고 별렀지만 정작 그 녀인의 목례를 받는 순간 왜서 내 쪽이 웃어른이나 선생을 대하듯 어쩔수 없이 허리가 굽혀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같은 학부모 처지에 나이도 비슷하고 같은 조선족인데 그 녀인이 몰고 다니는 고급승용차나 그 녀인의 화려한 옷차림에 질려서인지 아니면 범접할수 없는 그 도고한 모습에 주눅이 들었는지…
그 녀인은 같은 녀자가 보기에도 곱구나 하고 다시 한 번 뒤돌아 볼 정도로 미인입니다. 고운 입, 고운 눈, 고운 코, 고운 얼굴형, 그것도 고운 모든것이 맞춤하게 자리를 잡은 그런 미인입니다. 구태여 묘사할 것 없이 그 녀인은 북경의 호화스런 백화점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그런 귀부인형입니다. 아이를 봐선 나와 비슷한 30대 초반이겠지만 얼굴이나 옷차림새를 봐선 2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 녀인의 딸이 친딸이 아니라 남편의 전처 소생이 아니면 혹시 양딸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녀인은 젊고도 화사합니다.
딸애를 내려놓은 그 녀인의 자가용이 가볍게 미끄러지듯 떠나갈 때면 낡은 자전거 손잡이를 쥔채 그 녀인의 차를 눈바램하는 내가 한결 초라해 보입니다. 세상 팔자 다 나름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내 팔자가 앞으로 넘어져도 코 깰 그런 팔자가 아니지만 그 녀인은 팔자 좋기로 뒤로 넘어져도 떡함지에 넘어질 그럴 팔자인가 봅니다. 녀자 팔자는 어떤 남편을 만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하긴 그렇습니다.
북경에는 자식공부 시발을 하려고 직장을 버리고 남편곁을 떠나 온 녀인들이 수천명 된다고 합니다. 내 경우처럼 대개 어릴적부터 전공해야 할 예술, 체육분야를 지망한 어린 학생들의 부모들입니다. 해마다 음악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배출하는 중국음악대학은 음악에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입니다. 음악은 아마 천부적인 것을 떠날 수 없는 예술이여서 그런지 이 대학에는 소학교반부터 중학교반, 고중반, 본과전업반에 이르기까지 구전하게 갖추어져 있습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려고 해도 전국의 수십만에 이르는 지망자들과 경쟁을 해야 합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비유할만치 경쟁이 치렬합니다. 소학교반에 들어가서 다시 중학교반으로 그다음에 고중반, 본과전업반까지 올라가려면 역시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본과전업반까지 내처 올라간 사람은 그야말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승천하여 별처럼 빛나는 사람은 몇이 안됩니다. 중도에 별찌처럼 빛 한 번 발산해 보지도 못하고 어둠속에 영영 자취를 감춘 음악지망생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속담을 빈다면 이런 지망생들은 《십년공부 나미아미타불》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모들은 《십년 공부 나미아미타불》이란 속담보다도 《공 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을 더 선호합니다. 그러면서《개천에 룡이 난다》는 속담을 희망사항으로 삼습니다. 하여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개천에서 난 룡》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저없이 모든 것을 바칩니다. 돈도 가정도 지어는 자기의 삶까지도…
공부하는 자식을 동반한 부모들 중 조선족들도 꽤나 된다고 합니다. 이들 대부분이 학교와 가까운 곳에 집을 세맡고 있습니다. 대체로 집에서 부쳐오는 돈으로 아이 공부에 드는 비용과 북경에서의 생활비를 해결하는 녀인들이 대부분인데 이런 부류는 대개 사업을 하거나 돈 만들줄 아는 말하자면 시체말로 잘 나가는 남편을 가진 녀성들이지만 나처럼 그런 남편을 가지지 못한 녀인들은 북경에 와서 이런 일 저런 일 닥치는대로 하면서 아이공부에 드는 비용을 해결합니다.
나의 남편은 연길 시교의 자그마한 소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칩니다. 몇푼 안되는 남편의 로임에 매달려 사는 내 경우에는 애초부터 자식을 피아노공부를 시킬 엄두마저도 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자리를 보고 발을 펴라는 말이 있지만 저의 남편은 무작정 오기를 부렸습니다. 그 오기가 뭔지 압니까? 남편은 우리 애가 태여나자마자 이런 맹세를 했습니다.
《장차 우리 애한테 피아노공부를 시켜 꼭 유명한 피아노연주가가 되게 하겠소.》
소학교에서 음악교원으로 있으면서 그저 발풍금이나 손풍금만 만지는 남편이 어릴적에 가진 꿈이 바로 피아노연주가가 되는것이였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 꿈을 실현하지 못했습니다. 집안의 경제사정도 경제사정이지만 그럴 기회가 차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식을 피아노연주가로 키우자면 우선 피아노가 있어야 합니다. 만원에 가까운 피아노를 장만하기 위해 우리 내외는 1년동안 한국의 막노동판에서 피땀을 흘렸습니다. 우리 내외의 꿈이 자식을 피아노공부시키는것이라고 하니 한국의 한 친척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한 때 한국에 이런 말이 류행이였어요. 〈빨리 후닥닥 망하려면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고 서서히 망하려면 자식에게 피아노를 가르쳐라〉. 이 말이 무슨 뜻인줄 모르시겠죠. ?인즉 국회의원 선거를 몇번 치르고 나면 입후보자의 가산이 거들이 나고 자식에게 피아노공부를 시키면 피아노를 장만하는 비용에다 수업비용에 가정교사비용, 거기에 가끔씩은 찔러주어야 하는 뒷돈에 이르기까지 한도 끝도없이 드는 비용에 가산이 날려간다는 거예요. 가산을 날리는게 피아노공부얘요.》
그러나 친척의 충고는 자식에게 꼭 피아노공부를 시키겠다는 남편의 꿈을 깨지 못했습니다.
지난밤에 심하게 바람이 불어쳤습니다. 처마밑에 늘여져있던 거미줄이 바람에 가뭇없이 사라졌습니다.
《애써 쳐놓은건데 하루밤 사이에 흔적마저 없어졌군요. 거미마저 날려간게 아닐까요?》
인젠 엄마는 거미의 운명에 대해 각별히 관심을 가집니다.
《새끼가진 놈은 쉽게 자리를 뜨지않아. 이제 해가 나면 어디선가 기여나와 또 줄을 칠거야.》
아버지가 무심하게 내뱉는 말입니다. 아버지 예견이 맞았습니다. 저녁무렵 일밭에서 돌아온 엄마는 처마밑에 다시 쳐진 거미줄을 보고 탄성을 뽑았습니다.
《어머머, 거미가 또 줄을 쳤네. 이악스럽기두 해라.》
《새끼가진 놈은 다 저렇게 이악스러운거야.》
아버지는 언제보나 명언같은 말만 합니다.
자식가진 사람은 다 이악스럽게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우리 내외는 1년동안 한국에서 뼈빠지게 고생해서 벌어온 돈으로 우선 집 장만을 하고 피아노를 샀습니다. 남은 돈 3만원은 한푼도 쓰지않고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로 저금했습니다. 그러나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만해도 한해에 2만원을 웃도는줄 우리는 타산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남편은 과외시간에 손풍금을 배우려는 애들의 가정교사로 나섰고 나는 나대로 북경에서 시간제 파출부로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이제와서야 가산을 날리는게 피아노공부라고 한국의 친척이 한 그 말이 실감이 갑니다.
북경에서 살아가는 생활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나는 아이를 학교문까지 데려다주고는 시간제 파출부 일을 시작합니다. 주로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인데 한시간에 5원입니다. 한집에 가서 청소하고 빨래하는데 평균 2시간정도 걸리는데 하루 바삐 돌아쳐도 네집 정도밖에 못합니다. 다른 파출부에 비해 나는 그래도 상대적으로 고정된 주인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것은 한족 파출부들은 대체로 신을 신은채 긴 장대걸레로 바닥을 닦아내지만 나는 자기집 구들을 닦듯이 바닥에서 벌벌 기여다니며 손걸레로 깨끗이 청소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허리가 끊어질듯이 아프고 손이 퉁퉁 붓지만 나는 제집처럼 간주하고 깨끗하게 청소를 합니다. 그렇게 하지않으면 나는 다른 파출부한테 밀려나게 됩니다. 파출부 일도 경쟁이 심한 업종입니다. 외지에서 온 처녀애들도 많은데다가 더군다나 요즘 정리해고자들까지 파출부로 나서고 있기 때문에 그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으려면 혼신을 다 몰붓는다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내가 고정적으로 가서 청소하는 집들은 대체로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사는 집입니다. 하나는 늙은 량주나 로인 한분이 사는 집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수입이 넉넉한 사람들이 사는 집입니다. 로인들은 집안청소하기에 힘이 부쳐서 파출부를 부르고 수입이 넉넉한 사람들은 집안청소를 할 짬이 없어서 파출부를 수요합니다.
하루 종일 이집저집 돌면서 닦고 빨고 하고나면 퉁퉁 부은 손으로 자전거 손잡이를 잡기도 힘듭니다. 부은 손을 내려다보면 신혼의 화촉을 밝히던 첫날밤 남편이 내 손을 어루만지며 한 말이 서글퍼진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폅니다.
《손가락이 남보다 유별나게 길구만. 이런 손을 가진 사람은 피아노치기가 제격이라더군. 내가 이런 손을 가졌더면 꼭 피아노공부를 택했을거요. 나는 한뉘 땅만 허비던 농군의 유전자를 이어받아서인지 손이 몽톡하게 닳아버린 몽당 비자루같지 않소. 훗후후…》
그러면서 남편은 훗날 태여날 우리 2세가 내 손을 닮으면 꼭 피아노공부를 시키겠다고 하면서 내 손가락 하나하나에 차례로 뜨거운 입술을 가져다 댔습니다. 남편의 말대로 피아노를 칠 손을 가진 나였지만 피아노는 한 번도 쳐보지 못하고 그 손으로 저금소에서 주판알만 튕기다가 결국에는 자식의 피아노공부 때문에 주판마저 버리고 걸레를 쥔 신세가 돼버렸습니다. 조금은 비참한 기분이 들지만 걸레를 쥐든 쓰레기를 줏던간에 그것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달갑게 받아들여지는것이 부모의 마음이라고 생각해 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돈 있는 부모나 없는 부모나 자식 생각하는 마음이야 같겠지만 자가용을 몰고 다니는 그 녀인 정도면 부모구실을 해도 얼마나 편하게 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치밀면서 그 녀인의 팔자가 부러워납니다. 부러움은 질투를 부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질투할 자격도 못되는 신세면 욕이라도 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합니다. 내 경우가 바로 그렇습니다. 어떤 때는 자가용을 몰고 내 시야에서 사라지는 그 녀인을 《팔자좋은 년》이라고 혼자말로 꺼리낌없이 말합니다.
늦봄에 이어 여름이 꼬리를 물던 계절입니다.
그날은 일요일이였습니다. 파출부에게는 일요일이 따로 없습니다. 오히려 일요일은 벌이가 가장 좋은 날입니다. 나는 직업소개소의 소개로 시간제 청소부로 일할 한 별장을 찾아갔습니다. 도심에서 그리 멀지않는 곳에 자리잡은 별장구역이였는데 별장은 유럽풍으로 지은 차고가 달린 2층 양옥이였습니다. 어림짐작으로도 인민페로 2백만원을 웃도는 호화형 별장이였습니다. 직업소개소에서 알려준 주소대로 한 별장의 초인종을 누르니 한어로 누군가고 묻는 말이 문옆에 달린 인터폰으로 울려나왔습니다. 파출부라고 하니 문이 열렸습니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20대 처녀애였습니다. 처녀애는 자기는 집주인의 딸에게 피아노를 배워주는 가정교사라고 했습니다. 그는 집주인이 지금 병원으로 갔다고 하면서 먼저 청소를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집안은 호텔에 들어선 착각을 줄 정도로 호화스러웠습니다. 어디라할것없이 알른알른하게 윤기도는 것이 어디서부터 청소를 시작해야 할지 망설여졌습니다. 처녀애가 화장실부터 하라고 했습니다. 화장실만도 웃층과 아래층에 각기 하나씩 있다고 했습니다. 처녀애가 웃층으로 올라가서 얼마안되여 웃층에서 피아노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무슨 곡인지는 몰라도 우리 애가 요즘 자주 치는 곡이였습니다. 불쑥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아들은 지금쯤 웃통을 벗어버린채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있을것입니다.
우리가 세맡은 집은 집주인이 창고삼아 쓰려고 집곁에 붙여 지은 무허가 집입니다. 단칸방에 침대 하나와 가지고 온 피아노를 놓으면 돌아서기도 불편한 정도로 비좁은 집입니다. 벽돌 한 장 두께로 된 집이여서 겨울에는 솜옷을 그냥 입어야 할 정도이고 여름에는 시루속처럼 숨막히게 덥습니다. 북경의 겨울은 그리 춥지않아 그런대로 지낼수 있는데 여름은 찌는듯한 더위에 꼼짝않고 앉아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립니다. 그런 집이지만 방세가 한달에 3백원입니다. 북경의 세집값은 연길에 비하면 살인가격입니다. 층집인 경우 2순환도로 주변이면 주방과 화장실이 달린 단칸방도 한달에 방세가 적어도 천원입니다. 나의 경우엔 그런 집은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여름이 오기전에 나는 고물장수한테서 20원을 주고 덜컹거리며 돌아가는 자그마한 선풍기 하나를 샀습니다. 우리가 세맡은 집은 다른 집보다 여름의 더위가 먼저 옵니다. 그래서 선풍기도 다른 집보다 한달 먼저 돌립니다. 지금쯤 아들애는 선풍기를 켜놓고 열심히 피아노를 치고 있을 것입니다.
화려하게 장식된 별장에서 들려오는 피아노소리를 듣노라니 마치도 웃층에서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들인것같은 착각이 옵니다. 순간의 그 착각이 깨지면서 부지중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과 함께 사람구실 부모구실은 돈이 시킨다는 선인들의 말을 떠오릅니다. 아, 돈이 뭐길래…
내가 아래층의 화장실 청소를 끝냈을 때 집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인사 하려고 거실에 나온 나는 거실 쏘파에 몸을 깊숙이 묻고 커피를 마시는 집주인을 보고는 두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바로 그 녀인이였습니다. 그 녀인도 나를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나는 저도모르게 학교정문에서 그 녀인을 만날 때처럼 또 허리를 굽혔습니다. 녀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목례로 답례했습니다. 잠간 어색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내가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이 집이…》
《그래요. 저의 집이예요. 그런데 이렇게 만날줄은…》
나는 손에 쥔 걸레를 만지면서 몸둘바를 몰랐습니다.
《앉으시죠.》
《괜찮아요. 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는데…》
《일은 나중에 하시고 잠간 앉아 얘기나 나누자요.》
나는 쏘파모서리에 조심스레 앉았다.
《이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괜찮아요. 집이 참 좋군요.》
《빛갈뿐이예요.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
《그럼 콜라 드시겠어요?》
《괜찮아요.》
나는 송구스러워서 그저 괜찮아요만을 곱씹었다. 녀인은 랭장고에서 콜라 한병을 꺼내 병마개를 따서 나의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파출부로 일한지 오래됐나요?》
《북경에 와서부터 했으니 인젠 해수로도 2년이 돼요.》
《그럼 파출부로 일하면서 아이를 피아노공부 시키고 있다는 얘긴가요? 피아노공부에 드는 돈이 엄청나겠는데…》
《집에서 애아버지가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는 보내오고 저는 생활비와 세집값을 해결하는 셈이지요.》
《그 돈만해도 꽤나 들겠는데 파출부 일을 해서 그 돈이 마련되나요?》
《한시간에 5원씩이니까 하루에 여러집을 다니며 10시간정도 하면 세집값과 생활비 정도는 나오죠.》
《힘드시겠는데요?》
《힘들어도 할수 없지요.》
《애아버지는 무슨 사업을 하시는 분이신가요?》
《음악선생이얘요.》
《로임만 가지고는 피아노공부에 드는 학비를 대기 힘드실텐데요.》
《그런대로 두루두루 맞춰가고 있어요.》
이때 웃층에서 그 녀인의 딸애가 내려왔습니다. 이미 나하고 면목이 있어 그 애가 먼저 인사했습니다. 그러곤 녀인보고 물었습니다.
《왔다는 청소부는 어느 방에 있나요?》
이말에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그 애 몰래 쏘파밑에 밀어넣었습니다. 아들과 한반인 녀인의 딸앞에서 청소부신분으로 나설수 없었습니다. 눈썰미 빠른 녀인이 내 마음을 인차 짚어냈습니다.
《아직 안 온 모양이다.》
《피아노선생이 아까 문을 열어주었는데요.》
《아마 볼 일이 있어 잠간 밖에 나간 모양이구나.》
녀인이 내 사정을 봐주느라고 그렇게 말했지만 그 순간 내 자존심은 여지없이 허물어져 내렸습니다. 곤혹한 당근질을 당하는 느낌이였습니다.
《청소부는 왜 찾느냐?》
녀인이 딸에게 물었습니다.
《방금 조심하지않아 꽃병의 물을 쏟쳤는데 바닥을 닦아야겠어요.》
《그만한 일은 너 절로 하려무나.》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쥐겠나요?》
《지금 애들은 다 저래요.》
녀인은 몸둘바를 모르는 나에게 어이없는 웃음을 적당히 지어보이고는 딸과 함께 이층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더는 그 자리에 있을수 없었습니다. 하여 조용히 문을 열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피아노치던 손으로 걸레를 쥘수 없다던 그 녀인의 딸이 한 말이 가슴을 아프게 자극해 왔습니다.
나의 아들도 피아노를 치지만 그러나 그 애는 짬만 나면 날 도와 팔소매를 걷어붙이고 방 청소도 하고 설걷이도 합니다. 양말이나 속옷같은건 자기 절로 씻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손도 살아가는 사정에 따라 귀천이 따로 있는 모양입니다. 걸레 한 번 쥐어서는 안되는 손이 귀한 손이라면 우리 애처럼 걸레나 행주를 쥐는 손은 천한 손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애 손도 세상 귀한 손입니다. 귀한 자식 귀하게 키우라는 말처럼 귀하게 키우지는 못해도 우리 애는 지금 귀염성있게 자라고 있습니다.
북경으로 떠나 오던 날 남편은 역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넌 이 손을 그저 손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베토벤의 손이 세상 사람들의 심금을 휘여잡은 운명교향악을 울리게 했다면 너의 이 손은 장차 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이다.》
인생의 새로운 악장을 울릴 손, 내 아들의 손은 바로 그런 손입니다.
《어머머머, 저걸 어쩌나…》
엄마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뽑았습니다. 엄마는 지붕에서 내려온 뱀 한 마리가 혀를 날름거리며 거미를 노리고 있는 것을 보았던것입니다.
《우쉬우쉬…》
엄마는 두 팔을 내저으면서 밭에서 새를 쫓을 때 내던 소리를 냈습니다. 새를 쫓는 소리로 뱀을 쫓자니 참으로 코막고 답답합니다. 엄마가 발을 동동 구르며 열심히 새를 쫓는 소리를 질러대니 거미를 노리던 뱀이 스르르 지붕너머로 사라졌습니다.
《어휴…》
그제야 엄마는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면서 땅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았습니다.
저녁에 아버지한테 엄마가 뱀 말을 하니 아버지는 하품 문 소리로《새끼가진 놈 쉽게 안 당해》라고 말하곤 잠에 곯아떨어졌습니다.
그 녀인의 집에 갔다온 이튿날 아침, 나는 학교정문앞에서 어김없이 그 녀인을 만났습니다. 그 날따라 녀인은 차에서 내려 나한테 다가왔습니다.
《그날 죄송해요》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나온 제가 오히려 죄송해요.》
《어디가서 잠간 이야기나 나눌까요?》
《그러지요.》
《저의 차안으로 가시죠.》
《할 이야기가 있으면 그냥 여기서 하시죠. 바깥 공기가 훨씬 좋은데요.》
돈을 주면서 앉으라해도 그 녀인의 차엔 앉을수 없다는게 그 때 나의 오기였습니다.
《청들 일이 하나 있는데 자주 우리 집에 와줄수 없겠나요?》
천만에 말씀. 모르고 한 번이지 난 다시는 안가요!
《청소부로 와달라는게 아니얘요.》
청소부가 아니면 뭐로? 보모로? 아니면…
《그저 같은 학부모신분으로 자주 놀러오면 고맙겠어요.》
같은 학부모?
《다른 뜻은 아니구요. 북경에서 같은 조선족 학부모를 만난다는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요.》
난 그런 반갑다는 마음을 가져볼 여유가 없는 사람이얘요.
《사실 애 공부 때문에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는 북경에서 홀로 보낸다는게 얼마나 외로운지 모르겠어요.》
외롭다?! 하긴 그렇겠지. 허구헌날 하는 일없이 궁궐같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느라면 외롭기도 하겠지. 그러나 난 외로울새도 없는 사람이지. 하긴 가끔 남편의 품이 생각날 때도 있지만 그건 외로움이 아니라 그리움이야.
《그저 자주 놀러와서 말동무를 해주면 파출부로 일하면서 받는 보수보다 더 드리겠어요.》
술을 마시면서 말로 안주한다는 말이 있다더니 나보고 외로움을 달래는 말동무가 돼달라구? 웃기네 정말. 이봐요, 아무리 돈 있고 잘산다고 해서 사람 그렇게 보면 못써요.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세상 비웃어도 가난만은 비웃지 말라고.
《저의 말을 혹시 다른 뜻으로 오해하고 계신지…》
나는 녀인의 말을 가차없이 잘라버렸습니다.
《말동무를 찾으시려면 구연단에나 가보세요. 구연단 배우들은 말이 변설이니까요.》
그러곤 나는 자리를 떴습니다.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나는 내 두빰으로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고 있는 것을 뒤늦게야 감촉했습니다. 나는 울고 있었던것입니다.
그 뒤로도 그 녀인은 학교정문앞에서 나를 만나면 그냥 예전과 다름없이 목례를 보냈습니다. 나도 그저 목례로 답례했습니다.
어느덧 락엽이 지는 마가을이 왔습니다. 북경에서 두 번째 맞는 마가을입니다. 올해 북경의 마가을엔 어디서 날아왔는지 까마귀의 청승맞은 울음소리를 시 중심에서도 자주 들을수 있습니다. 북경석간에는 실린 글은 북경에 까마귀가 떼를 지어 나타난 것은 북경의 쓰레기 처리장에 처리되지 못한 쓰레기들이 그냥 로천에 방치되여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까마귀는 썩은 것을 먹기좋아하기에 조류중에서 《청소부》로 불리우는 익조라고 하지만 도심에서 까마귀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희한스러우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께름직합니다. 섬찍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날 아침 아이를 자전거뒤에 앉히고 거리로 나오니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길가던 한 늙은이가 그 소리를 듣더니 침을 역정스레 세 번 내뱉으며 뭐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저 할아버지가 왜 저래요?》
아이가 물었습니다.
《까마귀소리를 듣고 기분 나쁘다고 그러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침을 아무데나 뱉으면 돼요?》
《글쎄 말이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맘때면 남편은 출근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입니다. 전화를 두 번 쳤지만 신호음만 갈뿐 받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녀동생 집으로 전화를 하니 마침 동생이 받았습니다.
《나 언니다…》
《언니 막 전화를 하려던 참이얘요. 언니 빨리 집에 와야겠어요.》
녀동생의 다급한 소리에 몸이 오싹해났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니?》
《아저씨가 뇌익혈로 쓰러졌어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나는 무작정 그 길로 역전에 가서 그날 연길행 기차표를 끊었습니다. 기차표를 끊고나니 아들이 걱정되였습니다. 늙은 량주만 사는 주인집에 맡길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부하는 애를 데리고 갈수도 없었습니다. 막상 급한 목을 당하니 그래도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 녀인이였습니다. 지난번에 자주 놀러오라고 하는 그 녀인의 청을 몰인정하게 거절해버린 것이 못내 후회되였습니다. 체면이고 자존심이고 고려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내가 체면불구하고 그 녀인의 집으로 찾아가 사정이야기를 하자 그 녀인은 두말없이 내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허리를 여러번 꺽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곱씹었습니다. 정말 고맙게만 느껴지는 녀인이였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말을 할수 없었고 두눈도 뜰수 없었습니다. 곁에서 하는 말은 알아듣는지 가끔씩 고개를 약간씩 움직였습니다.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나 보일 정도로 여윈 남편의 몸을 만지며 나는 울고 울었습니다. 남편은 낮에는 출근하고 밤이면 아이의 학비를 버느라고 가정교사로 나갔습니다. 쉬는 날이 따로 없었습니다. 집에 가 보니 랭장고에는 먹다남은 김치와 고추장밖에 없었고 방한구석엔 빈 라면상자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때시걱을 그냥 라면으로 에때운 모양입니다. 남편은 자식의 출세를 위해 혼신을 다 바쳤습니다.
남편은 조용히 병상에 며칠 누워있다가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그이는 세상을 떠나면서 입가에 애써 흐뭇한 미소를 떠올렸습니다. 그 미소는 아들이 떠올리게 한것입니다. 그날 나는 녀동생의 휴대폰으로 북경에 있는 그 녀인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애가 학교에서 돌아와 있었습니다. 나는 아들보고 지금 곧 전화에 대고 피아노를 쳐보라고 했습니다.
《왜 그래요?》
아들이 물었습니다. 나는 남편이 운명직전이라는 말을 아들에게 할수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먼곳으로 출장 가시게 됐는데 네가 치는 피아노소리를 록음해 가지고 가려고 그런다.》
《아버지 곁에 있나요?》
《출장준비를 하느라고 잠간 어딜 나가셨다. 어서 네가 가장 잘 치는 곡을 몇곡 치거라.》
《어머니, 아버지보고 출장갔다 돌아오실 때 북경에 꼭 들르라고 전해주세요. 아버지 보고싶어요.》
아들은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휴대폰을 남편의 귀전에 바싹 가져다 댔습니다. 남편의 얼굴표정은 변함없이 조용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지나 남편의 눈귀가 촉촉이 젖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남편은 아들이 치는 피아노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남편의 입가에는 알릴락말릴락하게 흐뭇한 미소가 실렸습니다. 남편은 그 미소를 지닌채 떠나갔습니다. 남편은 조명이 황홀한 무대에 피아노연주가로 당당하게 나선 어엿한 아들의 모습을 두눈에 담은채 떠나갔을것입니다.
《여보!》
엄마가 새된 소리로 아버지를 불렀습니다.
《간 떨어지겠다. 왜 그래?》
《저기 저…》
엄마는 말을 이어대지 못하고 그저 손으로 지붕우를 가리켰습니다. 지붕우로 뱀이 기여오르고 있었습니다.
《저 뱀이 어쨌다는거야?》
《저 뱀이 거미를…》
엄마의 말에 아버지는 제꺽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지붕우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는 막 지붕뒤로 넘어가려는 뱀의 꼬리를 잡아쥐더니 몇번 휘둘러대다가 지붕우에 얹어놓은 나무토막에다 뱀대가리를 내리 깠습니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뱀 껍질을 발가내고는 뱀의 밸을 쭉 ?어냈습니다.
《거미가 살아있나요?》
엄마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엄마앞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아버지 손에는 거미 크기만한 시커먼 것이 놓여있었습니다.
《이게 거미얘요?》
《잘봐, 이게 뭔가?》
《거미가 아니군요. 대체 뭐얘요?》
《담배진이야. 내가 잎담배를 썰면서 칼에 붙은 담배진을 긁어낸 것을 거미가 죄다 모아가지고 거미줄에 달아맨 모양이야. 그것을 뱀이 거민가 하고 덮친거지. 내가 뱀을 잡지 않아도 담배진을 삼킨 뱀은 꼭 죽게돼 있어. 그러고 보면 거민 참 영특한 놈이야.》
《거민 어디 갔을가요?》
《어디 숨어있겠지. 래일이면 또 줄을 칠거야.》
남편장례를 치르고 나는 집을 팔았습니다. 남편잃고 집까지 판 나에게는 이제는 아들밖에 없습니다. 아들을 피아노연주가로 키우는 것이 바로 남편의 생전 소원을 풀어드리는 길이고 내 생애의 유일한 희망사항입니다. 북경에 도착하자 바람으로 나는 그 녀인의 집을 찾아가 인사드렸습니다.
《그동안 우리 애를 보살피느라고 얼마나 고생 많았겠어요.》
《무슨 말씀 이렇게 하세요. 오히려 우리가 덕을 받는데요.》
《덕이라니요?》
《애가 어찌나 어른스러운지 어른을 축소해 놓은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지경이얘요. 자기 옷을 절로 씻는 것은 둘째치고 설걷이까지 어쩌면 그렇게 잘해요. 우리 애도 인젠 그 본을 받아 자기 옷은 자기가 씻고 방 청소도 절로 해요. 부러워요. 부모교양 잘 시켰더군요.》
녀인은 내 아들의 자랑을 잔뜩 늘여놓더니 내가 마음의 안정을 찾을 때까지 아이를 그냥 자기 집에 맡기라고 했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지만 애가 곁에 없으면 마음이 더 괴로울 것 같아요.》
《그러시다면 아예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는게 어때요?》
《네?!》
너무나 생각밖이였습니다.
《달리 생각하지 마세요. 사실 저나 우리 애나 다 외로운 몸이얘요. 저라는게 아래층에서 밤낮 텔레비죤앞에 붙어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애는 애대로 웃층에서 피아노만 치다나니 집안 분위기라는게 말이 아니얘요. 너무 침침하다 할까요. 그런데 그 집 아드님이 와 있으면서부터 우리 애 얼굴이 밝아지고 집안 분위기도 명랑해졌어요. 저들끼리 웃고 떠들고 장난치는걸 보니 우리 애가 동심을 도로 찾은 것 같아요. 저도 가정같은 분위기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돼요.》
그러면 녀인은 우리 애가 오기전에는 그런 가정분위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긴 옛날부터 집안 화기는 돈이나 재산에는 관계없이 사람나름에 간다고 했습니다. 나의 할머니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고대광실에 사는 놀부네 집은 하루종일 가도 웃음소리를 들을수 없지만 째지게 가난한 흥부네 집은 종일 웃고 울고 떠드는 소리가 그칠새 없었단다. 그러니까 흥부네 집이 진짜 사람 살아가는 집이지.》
우리 집은 화기애애한 집이였습니다. 그러나 인젠 가정의 기둥이였던 남편을 잃고 화기가 돌던 집마저 없어진 지금에와서 내앞에서 외로움을 하소연하면서 가정분위기를 운운하는 녀인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미안해요. 사실 가정얘기는 꺼내지 말아야 하는데…》
녀인도 굳어져가는 내 얼굴표정에서 뭔가 읽었는 모양입니다.
《다른 뜻은 아니구요, 편히 여기서 며칠 있으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한 말이얘요.》
《고마워요.》
그동안 내 아들을 보살펴준 녀인의 성의를 뿌리칠수 없어 나는 그날 녀인의 집에 묵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녀자와 녀자가 서로 만나면 그것도 다 같이 외로운 사람끼리 만나면 인차 허물없는 사이가 돼버립니다. 내가 여태껏 궁금하던 것을 녀인에게 물었습니다.
《애 아버지는 뭘 하시는 분이얘요?》
녀인은 내가 묻는 말에 인차 대답을 하지않고 입가에 허거픈 웃음을 떠올렸습니다.
《혹시 묻지 말아야 할걸 물은게 아니얘요?》
《아니얘요. 뭐 비밀도 아닌 일인데. 애 아버지는 홍콩에 있는데 사업하는 분이얘요.》
《그럼 자주 못오시겠네요.》
《일년에 네댓번은 와요.》
《홍콩엔 자주 가나요?》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갈 생각도 없구요.》
그러곤 녀인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였습니다. 녀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한 감각으로 나는 그 가벼운 한숨에 그 어떤 말못할 사연이 실려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술 한잔 할까요?》
《전 술을 전혀 몰라요.》
《오늘 한잔 마셔보세요. 약한 술이니까요.》
녀인은 고급스러워 보이는 술병 하나와 잔 두 개를 가져왔습니다.
《오래된 포도주인데 맛이 괜찮을거얘요.》
녀인이 잔에다 술을 따르고는 나한테 한잔 권했습니다.
《자주 술을 하나요?》
술잔을 받으며 내가 물었습니다.
《가끔씩은 해요. 이런저런 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을 때면 혼자서 둬잔 정도는 해요.》
술맛은 달콤하면서도 약간 시큼한 맛이 있었습니다. 녀인은 단숨에 한잔을 굽냈습니다. 이번엔 내가 녀인의 잔에 술을 따랐습니다.
《오늘은 함께 술을 마시는 분이 있으니 기분이 좋네요. 잠이 오지않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으면 별로 제가 이 세상에서 따돌림당한 사람같이 여겨져요. 밤하늘을 쳐다보면 숱한 별들이 깜박이면서 내려다보고 있는데 유독 나만이 별들한테까지도 외면당한것같이 보여져요.》
《언제부터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자식을 위해 뭐나 다 포기한뒤로부터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그런데 저한텐 모든 것을 포기했다는 그 말이 실감적으로 안겨오지 않는데요.》
그러면서 나는 호화스럽게 장식된 방안을 쭉 둘러봤습니다.
《그 말뜻을 알만해요. 이런 주택에서 돈 걱정없이 사는 제가 모든 것을 포기했다니 곧이 들리지 않는단 말씀이지요. 어느 영화에선가 황제가 이런 말을 한 것으로 기억돼요. 〈임금의 자리는 사실 외로운 자리〉라고요. 호화로운 이 주택도 자식을 위해 제가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의 하나이지요. 말하자면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한 대가로 외로운 공간을 마련한셈이죠.》
사람은 만족을 모른다고 합니다. 나처럼 단간방 세집에 있는 사람에게 궁궐같은 별장을 한낱 외로운 공간이라고 말하는 녀인은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 사람인가 봅니다. 돈 잘 버는 사업가인 남편에 호화스런 주택, 그리고 귀여운 딸을 가진 녀인이 뭐가 부족해서 외롭다고 하는지 또 자식을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나는 아들의 출세를 위해 직장을 버렸고 나중엔 남편을 잃었고 집마저 팔았습니다. 대체 자식을 위해 녀인이 포기한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비참한 내 처지에 비하면 녀인의 하소연은 어디까지나 배부른 흥타령에 불과합니다. 마치도 굶주려 뼈만 앙상한 사람앞에서 비대한 몸을 드러내보이며 살까기를 하지 못해 근심하는 그런 식입니다. 하긴 가진 자는 가진 자로서의 번뇌가 있고 없는 자는 없는 자로서의 고통이 있다하지만 가진 자의 번뇌는 없는 자의 고통에 비하면 어디까지나 사치스러운것입니다. 례하면 외롭다는 것은 나의 경우에는 너무나 사치스러운것입니다. 세상 아득바득 살아가느라면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습니다. 외롭다는 것은 세상 살아가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사치병일 뿐입니다.
누군가 부자들은 가난까지도 탐낸다고 했습니다. 녀인이 돈을 줄테니까 말동무만 해달라고 청을 든 것은 다름이 아니라 돈으로 사치스런 그 하소연을 고스란히 들어주고 스트레스를 풀 상대를 사는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녀인의 집에 있을수 없었습니다.
이튿날 나는 아들의 데리고 그 녀인의 집을 나왔습니다. 하루라도 더 있다간 내가 되려 그 사치스런 병에 옮을가봐 겁났습니다.
엄마는 가끔 파리나 모기를 잡아선 거미줄에 걸어놓았습니다. 거미의 먹이로 말입니다. 그걸 보고 아버지가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부질없는 짓 하지마. 거민 죽은걸 안 먹어. 더군다나 새끼가진 놈은 말이야. 거미란 놈은 사냥물을 잡아먹어도 즐기면서 먹는 놈이야. 날아다니던 파리가 거미줄에 걸리면 거미란 놈은 먼저 그 주변을 슬슬 돌다가 먼저 거미줄로 파리의 날개를 묶어놓지. 파리가 벗어나려고 날개를 파닥거리면 거미는 서두르지않고 거미줄로 한겹 두겹 파리를 옥매지. 나중에 파리가 옴짝달싹 못하게 될 때까지 지키고 있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파리를 천천히 요기 하는거야.》
《악착하기 그지없군요.》
《새끼가진 놈치고 악착하지 않은 놈 봤어?》
아이의 학비를 대기 위해 나는 집 판 돈으로 자그마한 간이 음식점을 인수해 가지고 양고기 산적점을 차렸습니다. 북경사람들은 특히는 젊은층들은 퇴근하거나 혹은 나들이 가다가도 길가에서 양고기뀀을 둬어개씩 선자리에서 먹고 갑니다. 소수민족의 음식중 그래도 조선족의 랭면과 위글족의 양고기뀀, 만족과 몽고족의 양고기신선로가 북경에서 인기가 있습니다. 양고기뀀과 랭면을 주메뉴로 했는데 예상밖으로 경기가 좋았습니다. 하루 순수입이 적어서 3백원을 오르내렸습니다.
그 녀인도 딸과 함께 가끔 찾아왔습니다. 자그마한 양고기산적점앞에 녀인이 몰고온 고급승용차가 주차하니 주변의 음식점 주인들은 사뭇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녀인의 딸은 양고기뀀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녀인은 양고기가 비만을 초래한다고 하면서 랭면만 청했습니다.
《무척 힘들지요?》
올 때마다 녀인은 나한테 인사말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도 파출부로 일하기 보다는 기분이 나요. 남의 집 일을 해주는게 아니고 내 가게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일이 고달파도 마음만은 편해요.》
《가게가 작아도 손님이 끓는 것을 보니 나도 가게 하나 차려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세상 못할것이 음식장사라는 말이 있잖아요. 하도 막부득한 경우니 하는거지요. 그집같은 경우야 가게보다는 큰 사업을 벌려야지요.》
《저의 뜻은 그런 뜻이 아니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기에도 좋고 부럽기도 해요. 나 절로 한 번 뭔가 해볼 욕심도 생기고요.》
부자들의 눈에는 생존을 위해 아글타글 살아가는 궁한 모습도 부럽고 탐나는 모양입니다.
《벌어다 준 돈을 쓰기보다 자기가 번 돈을 쓰기가 더 기분날 것 같아요.》
또 배부른 흥타령입니다.
《언젠가 이런 꿈을 꾼적이 있어요. 제가 고무풍선을 쥐고 훨훨 날아다니며 황홀하기 그지없는 별천지를 유람하는데 갑자기 고무풍선의 김이 빠지면서 내가 천길 벼랑아래로 곤두박히는게 아니겠어요. 천당에서 갑자기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런 기분이였어요. 하긴 천당에나 지옥에 가본적은 없지만 어쨌든 말로 형용못할 그런 무서움과 절망감을 감수했어요. 깨고보니 꿈인게 얼마나 다행이였는지 몰라요. 그 꿈을 꾼뒤론 남들의 부러운 눈길을 받으며 훨훨 날아다니기보다는 그래도 편하게 자기 발로 땅을 밟으며 걸어가는 것이 더 안정감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가진 사람은 꿈을 꾸어도 별천지우로 훨훨 날아 다니는 꿈만 꾸는 모양입니다. 하루 일에 지치고 나면 잠자리에 들기바쁘게 곯아떨어지는 나에겐 별로 꿈이 없습니다. 간혹 가다 저 세상에 간 남편이 보이는 꿈을 꿀 뿐입니다. 꿈에 본 남편은 언제나 웃는 모습입니다. 꿈에 웃는 남편을 보고는 나는 꿈을 깨고는 웁니다. 꿈에 웃고 현실에 우는 것이 나의 서러움입니다. 그러나 울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인젠 나도 울음을 속으로 삼킬줄 압니다. 울고만 있어서는 밥이 차례지지 않고 아이 공부에 드는 학비가 마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일합니다. 악착스럽다 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 녀인이 자주 찾아와 배부른 흥타령을 해도 인젠 기분이 나쁘거나 그 말이 귀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아마 내 삶이 고달파서 그런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사람 살아가는것도 사람 나름에 달렸기에 굳이 내가 사는 세계로 남이 사는 세계를 저울질하지 말고 또 넘보지도 말자고 이미 마음가짐새를 가진 탓인지도 모릅니다. 남이 사는 세계에 신경을 쓰면 자연히 부러워나고 질투가 나고 그럴수록 자신이 초라해 보입니다. 하필이면 남이 사는 세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와서 나는 녀인의 말을 나하고는 별개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의 언어로 담담하게 받아들일수 있습니다. 그저 그 녀인이 자주 찾아오는 것이 반가울 뿐입니다.
가게를 차린후 한해 겨울을 보내고 나는 아들이 편하게 피아노공부를 하라고 작은 방 두 개가 달린 세집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한달에 집세값이 1500원이지만 가게에서 나오는 돈으로 피아노공부에 드는 비용과 집세값을 감당할수 있었습니다.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계절이 왔습니다. 그날 밤 11시가 다 되여 내가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그 녀인의 딸이 눈물범벅인 얼굴을 해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어서 가서 우리 어머니를 살려주세요…》
《무슨 일이냐?》
《차사고 났어요…》
그 애는 무작정 내 손을 끌었습니다. 그 애를 따라 간 곳은 3순환도로 북쪽에 있는 자그마한 병원이였습니다. 녀인은 의식을 잃은채 응급실 병상에 누워있었습니다. 담당의사가 나를 보고 친척인가고 물었습니다. 나는 친구라고 대답했습니다. 담당의사가 나를 데리고 의사사무실로 갔습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차사고로 받은 상처는 그리 중하지 않습니다. 손목이 부러지고 이마가 터졌습니다. 그런데 차사고로 류산이 되어 출혈이 심합니다.》
《류산?!》
《임신 3개월이더군요. 환자의 남편한테 인차 련락을 취해주기 바랍니다.》
《홍콩에 있다던데…》
《그럼 전화로 먼저 련락부터 해주십시오.》
《전화번호를 모르는데요…》
《이거 야단났는데. 환자의 딸도 아버지 전화번호를 모르더군요. 친한 친굽니까?》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았습니다.
《먼저 가서 보증금을 무십시오.》
내가 수금하는 창구에 가서 담당의사가 써준 것을 내미니 우선 보증금으로 만원을 내라고 했습니다. 밤중에 저금소가 문을 닫았으니 이튿날 내면 안되는가 하니 절대 안된다는 답이 나왔습니다. 먼저 환자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하니 이미 환자는 살려놨으니 방법을 대서 보증금을 얻어오라는것이였습니다. 돈이 없으면 병치료도 받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은 턱도없이 모자랐습니다. 하는수없어 나는 가게 주변에 있는 음식점 주인들한테서 돈을 변통해 가지고 병원에 가서 보증금을 물었습니다. 그러곤 울고있는 그 녀인의 딸을 겨우 달래가지고 나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녀인의 딸을 잠재운후 나는 다시 병원으로 가서 녀인의 곁을 지켰습니다.
새벽녘이 되어 녀인은 의식을 차렸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사고를 당했나요?》
《전 지금 살고싶은 마음이 아니얘요…》
녀인은 눈물을 짰습니다.
《마음을 진정하셔야 치료를 잘 받을수 있어요. 애는 우리집에 데려 갔으니 시름을 놓으세요.》
나는 아침저녁으로 애들한테 밥을 지어 먹이고 학교로 데리고 가고 데리고 오는 외에 밤낮으로 녀인의 병시중을 들었습니다. 가게 일은 복무원 아가씨한테 맡겨버렸습니다. 며칠 치료를 받은 후 녀인은 응급실에서 골과병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의사의 말로는 녀인이 만약 인적이 드믄 곳에서 사고를 당했더라면 류산으로 인한 대출혈로 생명을 잃을번 했답니다. 시내안에서 사고를 당했고 또 인차 병원으로 호송된 것이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봄기운이 완연하게 돌던 날 나는 녀인을 부축하여 병원 뜰로 나왔습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기분좋게 얼굴에 맞혀왔습니다.
《벌써 완연한 봄이군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녀인은 한숨을 달면서 말을 받았습니다.
《전 오래전부터 봄을 의식하지 못한채 살아왔어요. 인생의 봄은 둘째치고 계절의 봄마저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왔으니 비참하기 짝이 없지요.》
그날 녀인은 나한테 그늘에 가리운 생애의 구석진 곳을 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녀인은 원래 현급 가무단의 무용배우였었습니다. 원 남편은 국영기업소 보위과에서 근무했는데 의처증이 심한 사람이였답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나의 할머니가 들려준 이야깁니다. 의처증이 심한 한 사람이 나젊은 색시를 집에 두고 밖에 나갈 때마다 마당에 아주 보드라운 모래를 한벌 쭉 깔아놓고 가는 비로 쓸어놓았답니다. 색시가 나가거나 혹은 누가 들어오면 발자국이 찍히라고 말입니다. 녀인의 원 남편은 마당에 모래를 펴놓는 사람보다 더 의처증이 심한 사람이였답니다. 사람을 시켜 녀인의 뒤를 따르게 한다던가 녀인이 집에 있는 날이면 출근했다가도 느닷없어 집에 뛰여들어 온다던가 하는 것은 보통 일이고 부부합방시에도 기분을 내면 누굴 상상하면서 기분을 내는가 하고 윽박지르고 마지못해 응하면 이게 어디 사람이냐 시체냐 하면서 쥐여팼답니다.
《이런저런 수모는 그런대로 체념적으로 받아들였지만 권총 총신을 내 입안에 마구 쑤셔넣고는 눈이 맞은 남자를 대지 않으면 쏜다고 할 땐 정말 환장할 지경이였어요. 한번은 장밤 저를 개처럼 두들겨 패고는 그것도 성차지 않아 사형수를 사형하듯이 저를 꿇어 앉히고는 권총을 내 뒤통수에 가져다 대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섯까지 세기전에 이실직고 하지않으면 방아쇠를 당긴다고 하면서 안전장치까지 푸는게 아니겠어요. 전 그 때 제정신이 아니였어요. 실신하기 직전이였지요. 다섯까지 셀 때까지 제가 말이 없으니 정말 쏜다고 하면서 방아쇠를 당기는게 아니겠어요. 장탄하지 않은 총에서 격침소리가 찰깍하고 울리는 순간 저는 총에 맞은 사형수처럼 앞으로 꼬꾸라졌어요. 사실 전 그 때 영영 그 사람곁에서 떠나갔어요.》
그 일이 있은후 녀인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답니다. 원 남편이 울고불고 치고박고 얼리고 닥치고 했지만 녀인은 강경하게 리혼을 주장해 마침내 자유로운 몸이 되었답니다. 홍콩에서 사업한다는 남편은 그 후에 만난 사람이랍니다.
《아이를 데리고 무작정 북경에 들어와 한 나이트클럽에서 전속 무용수로 있을 때 사귄 사람인데 나이는 50살을 넘긴 홍콩인이얘요. 원 부인과는 리혼했다고 했어요. 자식은 딸 둘밖에 없는데 원 부인이 맡아 기르고 그 분은 부양비만 댄다고 했어요. 저와 결합할 때 그 사람의 요구는 단 한가지밖에 없었어요. 그 요구가 바로 아들 하나 낳아달라는것이였어요. 말하자면 제가 씨받이가 된셈이지요. 그러나 전 딸의 장래를 위해 달갑게 받아들였어요. 자식을 위해선 전 모든 것을 바칠 각오를 했던거얘요. 그 분도 저와 딸한테는 잘해주었어요. 제가 아들을 낳으면 홍콩의 재산을 정리해가지고 북경에 와서 살겠다던 그 분이 얼마전에 회사가 부도난 충격을 못이겨 심장마비로 돌아갈줄이야…》
녀인은 땅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는 한참 멀거니 먼곳을 응시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제가 살던 별장도 그 분의 이름으로 되어있었는데 며칠전 경매에 부쳐졌어요. 제가 몰고 다니던 승용차까지도요. 전 인젠 중 잃고 절까지 빼앗긴 신세가 돼버렸어요. 너무나 기막혀서 술을 마신후 마지막으로 차를 몰아본다고 차를 가지고 나왔다가 그만 사고를 당한거얘요. 언젠가 제가 고무풍선을 쥐고 날아다니다가 천길벼랑에 떨어진 꿈을 꾼 얘기를 한적이 있지요. 이제와서 보면 그 꿈이 내 운명에 대한 징후적인것이였어요. 그 꿈대로 전 천길나락에 떨어졌어요.》
녀인의 신세에 한껏 동정이 갔습니다. 남편잃고 집까지 팔아버린 내 신세와 비슷했습니다. 다름 점이라면 지금의 상태에서 녀인에게는 나처럼 역경을 헤치고 나갈 용기가 없는 그것입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잖아요.》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도 않고 설사 그 구멍을 발견했다고 해도 솟아날 용기가 없어요.》
《그 용기는 모성애가 줄거얘요.》
《그럴까요…》
새끼거미들이 어미거미 몸에 까맣게 달라붙어 어미거미의 살을 뜯어먹고 있습니다. 어미거미는 미동도 하지않고 달갑게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에그 쯧쯧쯧…》
그 광경을 지켜보며 엄마는 연신 혀를 찼습니다.
《부모신세도 저 거미와 다를게 없어.》
저으기 감개에 젖은 아버지의 목소립니다. 그 말에 엄마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녀인은 당분간 자기 딸을 맡아달라고 나한테 부탁하고는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둬달 소식마저 없다가 하루는 녀인이 역시 화사한 모습으로 내앞에 나타났습니다. 옷차림새도 종전과같이 귀부인차림입니다. 녀인은 내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나한테 큰절을 올리겠다는 것을 내가 굳이 말렸습니다.
《여러모로 고맙구요, 그보다도 저한테 좋은 조언해주신 그 은혜 평생 잊지않을거얘요.》
내가 해준 조언이 뭔지 나로선 기억마저 없습니다.
《세상 모질게 살아갈 용기를 모성애가 줄것이라는 그 말뜻을 제가 뒤늦게나마 터득했어요. 감사해요. 모성애앞에서는 범도 자리를 피한다는 조상들의 말을 내 경우에 비추어 다시 풀이한다면 모성애만 가지면 뭐든지 달갑게 받아들일수 있고 무슨 일이든지 해낼수 있어요.》
녀인은 그 사이 심수에 새집을 장만했다고 하면서 그날로 딸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심수에 외국인이 꾸리는 피아노학원이 있다고 합니다. 교학수준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녀인은 무슨 일자리를 찾았는지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옷차림을 보아선 상당히 수입이 높은 직업같습니다. 그 직업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내 삶이 남의 손가락질을 받는 구질구질한 삶이 될지라도 아이만은 꼭 피아노연주가로 키우겠어요.》
아이를 꼭 피아노연주가로 키우겠다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어쩔수없이 저 세상에 가 있는 남편을 떠올렸습니다. 남편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였습니다.
어미거미의 살을 다 파먹은 새끼거미들이 어디로 제마끔 흩어져 가버렸는지 거미줄엔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만 매달려서 바람부는대로 거미줄과 함께 흔들립니다.
엄만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를 거미줄에서 떼여내서앞마당에 묻어주었습니다. 그날 밤 엄마는 밤새껏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지르면서 모지름을 쓰다가 나를 낳았습니다. 그러곤 대출혈로 20리 떨어진 공사병원으로 소수레에 실려가던중 숨을 거뒀습니다. 그 뒤로 아버진 거미줄만 보면 죄다 거둬냈습니다. 남의 집에 쳐진 거미줄까지도 말입니다. 하여 아버진《거미줄》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간혹가다 아버지의 친한 친구들이 《거미줄》이라고 아버지 별명을 부르면 아버진 꼭 이렇게 규정해줍니다.
《이봐, 거미줄이 아니고 거미야.》
지금도 나는 거미줄에 데룽데룽 달린 빈 깝대기만 남은 어미거미를 그려보면서 아버지한테서 들은 거미이야기에 담긴 그 뜻을 다시다시 음미해봅니다. 언젠가는 내 아들한테도 거미이야기를 해줄 생각입니다. 어미거미는 영특하고 이악스럽고 악착한 미물이지만 그 최후만은 아주 처절하고도 장렬하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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