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카테고리 : 단상
병아리가 죽었다. 징후적인것이였다. 그가 죽기를 각오한 날에 병아리가 죽었다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예고같았다. 두다리를 쭉 뻗고 굳어진 병아리를 내려다보면서 그는 자기의 죽은 모습도 이런 꼴이겠다고 생각을 해봤다. 처참하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허거픈 웃음이 나갔다.
병아리는 아이것이였다. 봄철이면 병아리를 파는 사람들이 북경의 거리거리를 누비고 다닌다. 사람들은 생명체인 병아리를 아이들 장난감으로 팔고 산다. 병아리들은 애들 손에서 장난감으로 몇일 주물리다가 나중에는 죽어간다.
며칠전 그도 아이한테 병아리 한 마리를 사주었다. 다섯 살난 아이는 잘 때면 꼭 병아리를 넣은 자그마한 함을 베개머리에 놓고서야 잠에 들었다. 아이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텔레비죤수상기앞에 붙어앉아 시간을 보낸다. 병아리를 사준후로는 아이는 텔레비죤수상기앞을 떠나 병아리와 무슨 말을 쉴새없이 조잘거리며 놀았다. 아이는 병아리한테 리나라는 이름까지 달아주었다. 언젠가 아이는 에미한테 녀동생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에미는 아이가 소학교에 가면 녀동생 하나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 때 아이는 동생이 만들어지면 이름을 리나라고 지어야 한다고 했다. 에미가 가출해버리자 아이는 녀동생을 만들 수 없다고 며칠 울었다. 녀동생이 생기면 지어줄 이름을 아이는 병아리한테 지어주었다. 그러고보면 병아리는 아이한테는 녀동생 맞잡이였다.
그런 병아리가 죽었다. 병아리의 죽음을 아이한테 보일수 없었다. 아이가 깨나기전에 그는 병아리를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러곤 담판석상에 나설 때 입던 멋진 명표 양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그는 죽음도 일종 인생의 마지막 담판이라고 생각했다.
1915년 독일 잠수함에 의해 격침당한 루지테이니어호와 함께 수장된 미국의 연극 감독인 프로우먼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왜 죽음을 두려워하는가? 두려워할 것 없다. 죽음은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다.》
그는 프로우먼의 그 말에서 죽음을 택할 용기를 얻었고 또 그 말로 자기의 죽음을 정당화하려고 했다. 하긴 《자살은 참회의 기회를 남겨놓지 않기 때문에 살인의 최악의 행태》라고 영국의 시인 콜린즈가 말했지만 그러나 독일의 철학가이며 시인인 니체는 《자살하려는 생각은 커다란 위안으로서 자살로하여 사람은 수많은 괴로운 밤을 성공적으로 지낸다》라고 했다. 또한 무덤은 망각의 대안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것에 대한 망각을 위해 그는 망각의 그 대안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모험이라는 죽음을 맞이할 곳을 그는 북경 석가장간 고속도로우로 세워진 인도교로 택했다. 한것은 그로하여금 망각의 대안으로 가는 길을 택하게 한 빌딩이 바로 그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변에 8층으로 된 빌딩은 그가 자금을 모아 짓다가 만것이다. 인민페로 거의 4천여만원이 들어갔다. 채 완공되지 못하고 콩크리트구조물만 엉성하니 솟아 창문구멍들만 훵하게 보이는 것이 어찌보면 마치도 구멍이 숭숭 뚫린 벌집같아 보였다.
인도교아래로 지나간 고속도로에는 차량들이 시속 백키로 속도로 오가고 있다. 이제 그가 인도교우에서 몸을 날리면 차에 치인 그의 몸뚱이가 날아오를 것이다. 언젠가 그는 텔레비죤에서 사람이 차에 치여 죽는 장면을 보았다. 교통규칙을 어기고 차도를 횡단하던 사람이 시속 백키로의 속도로 달려오는 차와 충돌하는 순간 사람 몸체가 신기하게도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눈 깜짝할 새도 없이 그 사람이 생의 모든 번뇌를 잊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흐르는 차량을 내려다보면서 그는 약간은 후회했다. 가급적이면 생을 마감할 장소를 경관이 좋고 조용한 곳으로 택했더라면 더 좋았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어쩔수없이 한 장소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 곳은 기암과 운해로 소문난 황산이였다. 6년전 신혼려행때 그는 안해와 함께 황산에 갔었다. 운해와 일출이 장관인 황산에서 잊혀지지 않는 곳이 한 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련심쇄(連心鎖)》라고 이름지어진 곳이다. 주변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벽가에 유람객들의 안전을 위해 쇠사슬을 늘였는데 이상하게도 그 쇠사슬에 는 각양각색의 자물쇠가 빈틈없이 매달려 있었다. 근처엔 자물쇠만 파는 사람까지 있었다. 영문을 물으니 그 대답이 이러하다.
옛날 옛적, 서로 사랑하는 처녀, 총각이 이승에서는 결합할수 없어 저승에 가서라도 영원히 함께 살자고 둘의 마음을 련결한다는 뜻에서 《련심쇄》를 절벽가에 걸어놓고는 함께 절벽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생명까지 바친 두 련인을 기리는 마음에서 또 변치않는 사랑을 다짐하는 뜻에서 지금도 황산을 찾은 부부들이나 련인들은 꼭 이곳을 찾아와 자물쇠를 사서는 쇠사슬에 달아놓는다고 한다. 그날 그도 안해와 함께 자물쇠 하나를 사서 쇠사슬에 달아놓았다.
《사랑을 위하여 절벽아래로 뛰여내릴 용기가 있나요?》
안해가 묻는 말에 그는 가슴을 치며 대답했다.
《암, 절벽이 아니라 칼산 불바다라도 서슴치 않지.》
그날 안해는 장담하는 그의 가슴에 행복에 겨운 얼굴을 묻었다. 그 뒤로 4년이 지나서 안해는 가출하면서 그에게 쌀쌀하게 이런 말을 남겼다.
《언젠가 당신은 사랑을 위해선 칼산 불바다라도 서슴치않고 뛰여들겠다고 했지요. 그러나 사랑의 무덤을 판 당신에게는 그럴 기회마저 없어졌어요. 돈이라면 덫에라도 스스로 몸을 내던질 당신이 이제 뛰여들 곳이란 비렬한 배신으로 파놓은 함정밖에 없어요. 비록 당신 손을 거쳐간 녀자들이 많지만 그러나 당신하고 함께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함정에 뛰여들 녀자는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둬요.》
그는 후- 한숨을 내쉬고는 담배 한 대 꺼내 물었다. 마지막으로 피우는 담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걸탐스레 담배를 빨아댔다. 내뿜은 담배연기가 흩어지지않고 얼굴에 덮씌운다. 매운 담배연기에 쐬인 눈에서 찔끔 눈물이 났다. 이제 담배를 다 태운후 가야할 마지막 길을 혼자 간다는게 외로웠다. 그의 손을 거쳐간 녀자들이 적어도 한 개 소대 인원수만큼은 되지만 안해의 말대로 그와 함께 마지막 길을 가려는 녀자는 하나도 없다. 그녀들이 그 무슨 변신을 위한 사랑이요, 극치의 사랑이요, 신세대 감각의 사랑이요 뭐요를 운운하면서 그와 사랑유희를 벌렸지만 결국 그녀들의 탐낸 것은 돈이였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3천궁녀가 꽃다운 젊음을 락화처럼 내던진 한국의 락화암을 떠올렸다. 몇해전 사업고찰차로 한국에 갔을 때 그는 부여에 가서 락화암을 구경했다. 락화암은 옛도읍지인 부여의 북쪽을 에워싼 부소산 북쪽 낭떠러지에 있었는데 그 아래로 백마강이 흐르고 있었다. 7백년 백제왕조가 무너지던 날 3천궁녀가 바람에 지는 꽃잎처럼 몸을 던졌다는 락화암에서 그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3천 궁녀의 충절에 머리가 깊이 숙여졌다.
락화암을 다녀와서 그는 회사 직원들에게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한 백제의 3천 궁녀들처럼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는 회사 사무실마다에 3천 궁녀들을 련상케하는 락화암사진을 크게 확대하여 걸도록 했다. 락화암에서 배운 《꿈꾸는 백마강》 노래는 당연히 그의 18번이 되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잃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락화암 그늘아래 울어나보자 ……》
력사의 흥망성쇄와 더불어 락화처럼 떨어져 강물에 실려간 3천궁녀의 넋을 기리는 이 노래를 그는 평소에는 깊은 사색에 잠긴듯한 표정을 지은채 진지하게 불렀다. 그 모습을 보면 력사에 조예가 깊고 또 애잔한 정서를 가진 학자를 방불케했다. 그러나 회사가 파산을 선고하던 날 그는 홀로 사무실에 남아서 술병나발을 불면서 장밤 이 노래를 미친듯이 불렀다. 그 때의 모습은 단발마적인 괴성을 지르는 짐승같은 몰골이였다. 회사와 운명을 같이 하겠다던 직원들은 자기가 챙길 것은 다 챙겨가지고 죄다 떠나갔다. 그의 손을 거쳐간 녀자들중 그래도 진정으로 사랑을 느끼게 했던 비서실장 최양도 허리를 깊이 굽혀 작별인사를 드리고는 말없이 그의 곁을 떠나갔다. 그마저 떠나가자 그는 사무실의 컴퓨터며 전화며 팩스 등 사무용품들을 죄다 방바닥에 메치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뽑았다.
《백제의 의자왕이 스스로 목숨을 끊지못하고 욕되게 포로가 되었지만 그를 모시던 3천 궁녀들은 그래도 충절을 지켜 백마강에 락엽처럼 떨어졌다. 언젠가는 회사와 운명을 함께 하겠다던 너들이 아니냐. 기른 개보다도 못한 년놈들아!》
그와 운명을 같이 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처절한 고독과 외로움을 씹으면서 그는 생의 허무와 인간의 잔인함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락화암이 력사의 흥망성쇄와 3천 궁녀들의 충절의 상징으로 솟아있다면 이제 그가 생을 마감하게 될 고속도로는 그의 생애의 마지막장에 어떤 종지부로 남을까? 파산으로 이미 예고된 죽음, 아니면 스스로 무덤을 판 자의 종말, 그렇지 않으면 일루의 희망마저 포기한 비겁한 자의 최후?
죽어도 훌륭히 죽어야 하지만 그런 죽음을 가질수 없는 것이 그의 마지막 한이였다. 이딸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는《훌륭한 죽음은 전 생애의 명예가 된다》고 했다. 전 생애의 명예가 될만한 훌륭한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세상에 수없이 많고 많지만 그는 그래도 그중에서 론개의 죽음을 첫손에 꼽았다. 락화암에서 몸을 던진 3천 궁녀의 충절을 위한 죽음보다 자기 나라를 침략한 원쑤인 왜장의 목을 끌어안고 함께 깊은 물에 떨어진 론개의 죽음은 더 비장하고 장렬한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국에 갔을 때 그는 진주에도 들렸었다. 진주의 옛성인 진주성을 감돌아 흐르는 남강에 촉석루가 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의(豊臣秀吉) 조선반도 침공 1592년. 삼대 격전지의 하나인 진주성 공략에 위훈을 떨친 왜장 게다니 무라 (毛谷村)의 승전을 축하하는 주연이 남강가의 촉석루에서 벌어졌는데 주연이 무르익어 가자 기생인 론개가 촉석루밑 남강가에 절벽을 이루고 있는 바위우로 게다니 무라를 유인해 가서 목을 끌어안고 깊은 강물에 떨어졌다. 한낱 기생인 론개의 놀라운 소행에 일본 군사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한다.
천추에 길이 전해질 론개의 훌륭한 죽음을 떠올리고 나니 자기가 택한 죽음은 사람들에게 비겁한 자살로 인정받을것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비참해졌다. 혼자 비겁한 죽음을 택한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였다. 사실 그와 함께 죽어야 할 사람이 하나 있었다. 북경 모 은행의 지점장으로 있던 자인데 그의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간 장본인이다. 빌딩을 짓는데 드는 자금을 해결하기 위하여 그는 그자한테 뭐나 다 해줬다. 돈은 물론 녀자까지. 물욕과 색욕이 강한 그자의 욕심을 채워주려고 저금구자를 따로 앉히고 돈을 수없어 부어넣었고 여러개 호텔에 호화스런 방을 몇 개 맡아두고 열심히 녀자들을 알선해 주었다. 그 자가 한족 녀자는 신물이 났다고 해서 주로 조선족 녀자들을 알선해 주었는데 그 중에는 유흥업소에 나가는 아가씨들도 있었고 조금은 알려진 연예인도 있었다. 나중엔 신선한 감각을 주는 녀대생을 요구하자 거금을 써가며 녀대생을 설득시켜 그자의 방에 밀어넣기도 했다. 말하자면 사업에 필요한 돈을 얻어쓰기 위하여 비루하기 짝이 없는 《뚜쟁이》노릇까지 한셈이다. 안해의 말대로 그는 돈이라면 덫에라고 몸을 던질 사람이였다. 그 대가로 얻어낸 대부금으로 빌딩을 짓기 시작했는데 빌딩 벽체가 거의 다 올라갈 무렵 생각밖에도 그자가 공금횡령, 수뢰죄로 법망에 걸려들었다. 그자의 손을 통해 나간 은행 돈을 회수하기 위하여 채 짓지못한 빌딩은 경매에 부쳐졌고 그 바람에 몇해동안 무역업과 음식업을 하면서 축적한 자금과 빌려쓴 사채까지 도합 천여만원이 그냥 날아나버렸다. 빌딩이 완공되고 운행에 들어갈 때까지 사정봐달라고 손이야 발이야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더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죽어야만 했다. 생각같아서는 그자의 목을 끌어안고 함께 고속도로에 뛰여내리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한것은 그자가 이미 철장에 갇힌 몸이였으니까. 그자는 가야할 길을 이미 갔다.
어차피 죽을 목숨인데 어처구니없는 생각만 떠올리면서 시간 끌것 없다. 그는 인도교 란간곁으로 다가갔다. 고속도로로 차량들이 아까보다는 좀 뜸하게 오가고 있었다. 그는 뼈도 추스리지 못하게 깔아뭉갤 육중한 트럭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 트럭이 나타나지않고 승용차들만 시야에 들어왔다. 승용차에 치였다가 죽지않고 병신만 되면 그는 이중 지옥에 떨어진거나 다를바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트럭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고속도로로 달려오던 자그마한 트럭에서 직경에 한메터가량되는 둥근모양의 광주리 하나가 떨어졌다. 도로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던 광주리가 뚜껑이 열리더니 그안에서 노란 물체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첫눈에 무슨 과일인가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 노란 물체들은 움직이는 생명체였다.
병아리였다. 달려오던 차들이 끼익하고 귀청을 아프게 긁는 소리를 내면서 급정거했다. 노란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를 질러대면서 고속도로에서 이리 몰렸다가 저리 몰리면서 우왕좌왕한다. 순식간에 고속도로에는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멈추어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그러나 병아리떼는 자리를 내주지 않고 한곳에 몰려서 삐약삐약 소리만 질러댄다.
참으로 재미나는 광경이다. 병아리마저 몸보신에 좋다고 고아먹던 인간들이 살아 움직이는 병아리앞에서는 어쩌지 못하고 제발 길을 내달라고 경적만 울려대는 것이 희한했다. 인간이 병아리앞에서 그렇게 약할줄은 몰랐다. 병아리지만 그것이 엄연한 생명체이기에 인간은 차마 그것을 깔아뭉갤 수 없었던 것이다. 병아리와 인간이 대치하고 있는 희한한 광경을 지켜보면서 그는 대학시절에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
독일군 탱크가 굴러온다. 수류탄을 안고 탱크로 돌진하다가 쓰러지는 군인, 탱크는 쓰러진 군인을 깔아뭉개면서 그냥 오만하게 굴러온다. 무적의 거물앞에 마음의 방선까지 무너져내린 군인들이 무기를 내던지고 도망친다. 탱크는 도망가는 군인들을 화력으로 쏘아눕히지 않고 뒤쫓아가면서 한사람 한사람씩 깔아뭉갠다.
정신없이 도망치는 군인들. 한 녀위생병이 부상당한 병사를 부축해 가면서 남자군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나 남자군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도망치기에 여념이 없다.
탱크가 부상병을 부축해 가는 녀위생병을 발견하고는 머리를 돌려 천천히 굴러온다. 공포에 질린 녀위생병의 두눈이 클로즈업된다. 도망갈데 없는 쥐를 놓고 양공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탱크는 이리저리 피하는 녀위생병을 희롱하듯 녀위생병의 앞길을 막다가도 길을 내주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속력을 내여 녀위생병의 등뒤까지 와서는 멈춰섰다가 천천히 뒤를 따라간다. 깔아뭉개기보다는 혼비백산한 녀위생병의 혼을 완전히 빼는 것이 더 재미나는 모양이다.
나중에 녀위생병은 끝내 쓰러진다. 뒤를 따라오던 탱크가 멈춰선다. 뛰는 사냥물을 잡는 것이 사냥군에게는 더 자극적이고 운치있듯이 탱크는 녀위생병이 다시 일어나 뛰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녀위생병은 부축해온 부상병의 입가에 자기의 입술을 가져대 대고는 간신히 일어나 탱크를 향해 마주선다. 한참이나 탱크를 노려보던 녀위생병은 입가에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면서 웃옷을 벗는다. 그는 웃옷을 벗어서는 부상병의 몸우에 덮어준다. 그러곤 내의까지 벗어버린다. 다치면 터질듯한 녀인의 젖가슴이 드러난다.
젖가슴을 드러낸 녀인과 탱크가 한참 대치하고 있다가 나중에 머리를 돌린 것이 탱크였다. 탱크는 녀인이 서 있는 반대 방향으로 휘청대듯이 굴러간다. 멀어져가는 탱크를 지켜보던 녀인이 젖가슴을 싸쥐며 오열을 터뜨린다…
그 때 영화감상이 끝난후 열띤 토론이 벌어졌는데 왜서 남자군인들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던 탱크가 젖가슴을 드러낸 녀인앞에서는 머리를 돌렸는가가 화제로 올랐다.
적이지만 이성앞에서는 남성이 약하다는 설이 나왔고 또 전쟁은 남성들 사이의 자존심과 용기의 결투이기에 결투장에서 녀인은 상대가 되지않기 때문이라는 설도 나왔다. 이밖에도 녀위생병과 부상병은 련인같은데 사랑의 힘앞에서 악마가자리를 피했다는 견해도 나왔다. 나중에 그가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내 생각엔 탱크의 머리를 돌리게 한 것은 이성이나 사랑의 힘이 아니고 녀위생병 자체가 생명체이고 더욱이는 생명을 낳아 키우는 모체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그의 견해에 많은 사람들이 동감을 표시했다.
그는 고속도로에서 차량들과 대치하고 있는 병아리를 향해 박수를 쳤다. 생명의 존엄, 생명의 경외감, 생명의 의미 등 엄숙한 화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 것이 병아리였기 때문이다. 교통경찰까지 출동해서야 병아리와 차량들과의 대치가 막을 내렸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종이 한장을 꺼내 그것을 일별했다.
《내 시신을 거두어주는 분에게;
일가친척 하나도 없는 혈혈단신인 몸이니 거적에 싸서 조용히 화장터로 직행하면 됩니다. 화장비용은 양복 안주머니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막힌 웃음이 나왔다. 그는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고속도로에 던졌다. 고속도로에 눈꽃마냥 내려앉는 종이쪼각을 차량들이 깔아뭉개며 지나간다. 그는 그 종이쪼각들이 분해된 자기의 령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인도교에는 령혼이 떠나버린 인간의 허울만 남아 있다. 이제 그 허울속에 새로운 령혼이 깃들기를 그는 두손 모아 빌었다.
인도교에서 내려온 그는 길 옆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두 늙은이곁에 가서 걸음을 멈췄다. 장훈을 받은 뚱뚱한 늙은이가 한수 물려달라고 사정하고 있었고 장훈을 부른 버쩍 마른 늙은이가 배포유한 자세로 앉아 장기수를 물려줄수 없다고 고개만 가로젓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노라니 유태인들속에서 전해내려오는 《마지막 한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이야기가 이러하다. 한 박물관에 사람과 악마가 장기를 두고 있는 그림이 붙어있었는데 악마가 인간에게 마지막 한수를 걸고 있는 그 그림의 제목이 《마지막 한수》였다. 그 그림을 보던 장기 고수가 크게 고함질렀다.
《악마가 인간에게 마지막 한수를 걸고 있다니 이럴수가 있나 말이야. 악마에게만 마지막 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있단말이야. 악마를 이길수 있는 마지막 한수는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속한것이야.》
역경속에서도 항상 최후의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교훈적인 뜻이 담긴 이야기다.
《로인님 한수 물려달라고 사정하지 말고 마지막 한수를 잘 써보십시오. 아직 기회가 있습니다.》
그는 장훈을 받은 늙은이에게 이렇게 권고하고는 자리를 떴다. 사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였다. 한 것은 죽음을 포기한 그에게도 마지막 한수를 쓸 기회가 아직 남아있으니까.
2000년 구정 북경에서 완고
* 본 단편소설은 장백산 계열소설상 수상작(2000년) 입니다.-조글로문학 편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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