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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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노아의 방주》는 어디에?
2009년 05월 08일 08시 33분  조회:1623  추천:35  작성자: 김훈


2000년 2월 14일

일기도 인젠 별로 쓸것이 없다. 그렇다고 처녀시절부터 써온 일기를 끊을수도 없고.

오늘은 련인절이다. 련인절이라고 하지만 날씨는 내 마음처럼 흐렸다. 나이 40고개를 넘긴 사람이 련인절을 실감한다는게 말도 안되는 얘기지만 어느 날보다 더 서글퍼지는게 이상하다.

련인절도 모르고 흘러보낸 청춘이 서글퍼서일가 아니면 장미꽃을 들고 다니는 청춘들의 모습에 시샘이 나서일까…

집에 들어서면 오늘도 적막강산이다. 어깨가 축처진 외로운 내 그림자만 끌고 집에 들어서니 날 맞아준건 출근하면서 치우지 않은 아침상이다. 이 량반 또 점심에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다. 보나마나 로인활동실에 가서 마작을 주무르면서 빵 하나에 음료수 한병으로 점심을 에때운것 같다. 퇴직도 안한 사람이 왜 로인들 축에 끼는지…

장미꽃 한송이 받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내 인생 가엾기만 하다. 저녁밥 휘딱 먹고 또 어델 나가려는걸 불러세운 것이 이제보면 잘못이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아세요?》

《14일이지.》

《14일이 무슨 날이에요?》

《누구 생일인가?》

할말이 없다. 그래도 한때는 글깨나 쓰면서 문학이 어떻고 인간이 어떻고 하던 사람이 련인절도 모르다니 사람 웃긴다.

내가 왜 오늘따라 감상적일까, 그만두자. 자학적인 기분만 드니까. 어서 삭막한 이 공간 벗어나야지. 다른 한 삶의 공간을 가지고 있는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새삼스럽게 든다.

사막의 오아시스: 미안해요. 기다리게 해서. 방주님.

노아의 방주: 좀은 기다렸습니다. 오늘따라

사막의 오아시스: 왜죠?

노아의 방주: 오늘은 좀은 특별한 날이여서.

사막의 오아시스: 우리에게도 특별한 날인가요?

노아의 방주: 당연하죠. 오늘은 우리의 명절 밸런파인데이!

사막의 오아시스: 밸런파인데이?

노아의 방주: 련인절을 밸런파인데이라고도 합니다. 축복드리 고 싶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고마워요.

노아의 방주: 자 그럼 촛불을 켜겠습니다. 음악은 뭘로 할가 요? 외국 음악?

사막의 오아시스: 그래도 전 연변음악이 좋아요. 김지엽이 부 른 《타향의 달밤》.

노아의 방주: 하필이면 《타향의 달밤》입니까? 련인절 분위 기에 맞는 노래들이 많지 않습니까? 례하면 《오늘만 너 하고 나 둘만》이라던가 《사랑이 머무는 날》이라던가…

사막의 오아시스: 전 언제나 타향에 머물면서 고향을 그리듯 이 마냥 뭔가 그리는 기분이거든요.

노아의 방주: 그럼 《타향의 달밤》이 오늘의 분위기 음악입

니다. 음악이 울립니다. 듣고 계시죠?

사막의 오아시스: 네.

노아의 방주: 변변치 않은 선물이지만 받아주시면 고맙겠습 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뭔가요?

노아의 방주: 장미꽃 한송이만 마련했습니다. 《백년해로》란 뜻에서 백송이를 선물하려다가 《백년해로》라는건 너무 많이 들어온 말이고 또 로인들이나 하는 소리같아서 그만 두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한송이는요?

노아의 방주: 오직 너 하나만이!

사막의 오아시스: 고마워요…

노아의 방주: 술 한잔 붓겠습니다. 영원할 오늘을 위하여!

……

……

노아의 방주: 잔 들지않고 지금 뭘하시는겁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울고싶은 마음이얘요…

노아의 방주: 오늘은 모든 번뇌를 다 버리고 둘만의 사랑을 확인하는 날입니다. 기분 내야지 않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잔을 들겠어요. 삶의 이 공간을 위하여, 그 리고 이 공간을 마련해준 방주님에게 언제나 행운만 가득 하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자!

노아의 방주: 화제를 바꿔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그러죠.

노아의 방주: 좀은 재미나는 이야긴데 신문에서 봤습니다. 부 부로 만나 살아가면서 시기시기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다 르답니다. 례하면 처음 만났을 때의 평가가 다르고 련애 할 때가 다르고 결혼후에 다르고 또 결혼후 10년이 다 르고…

사막의 오아시스: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네요.

노아의 방주: 남자가 녀자에 대한 평갑니다. 첫 만남에서 련 애상대자에게 내린 평가는 《정말 이쁩니다. 꿀벌도 꽃인 가 착각하고 날아들겠습니다.》 련애를 시작하면 《행복의 녀신, 미의 천사여!》 이런 평가가 내려지고 결혼후 1년이 면 《뭐나 다 좋은데 가끔가다 앵돌아지는게 흠이야》, 결 혼후 5년이면 《바가지를 긁을줄밖에 모르는 녀자》, 결혼 후 10년이면 《이런 녀잘줄 내가 몰랐어. 내가 눈이 멀었 지》, 결혼후 20년이면 《성깔부려 그렇지 그래도 가정은 잘 지키는 녀자야》, 결혼 30년이면 《마누라 없인 난 못살 아》, 상처한후에는 《세상에서 둘도없는 녀자야, 나 이제 어떻게 살아》, 이렇게 탄식한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재미있는 얘긴데요.

노아의 방주: 남자에 대한 녀자들의 평가도 역시 시기시기에 다를것이라고 봅니다. 남자에 대한 평가 한 번 내려보시 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여태껏 남자 한사람밖에 모르고 살아왔으 니 평가를 내릴수 없군요.

노아의 방주: 그 사람에 대한 평가라도?

사막의 오아시스: 평가하고싶은 생각 꼬물만치도 없어요.

노아의 방주: 미안합니다. 별로 아픈 상처 건드린 것 같군요. 자. 그럼 우리 자리를 옮겨볼까요? 노래방 어떨가요?

사막의 오아시스: 오늘 그 어디에 가봤댔자 죄다 젊은이들의 세상이겠으니 그냥 산책이나 하지요.

노아의 방주: 밸런파인데이 밤, 련인하고 함께 걷는 밤거리, 오늘따라 명멸하는 불빛도 축복의 꽃보라로 보이는군요.

사막의 오아시스: 오래만에 별을 보는군요. 하늘의 별을 쳐다 볼 여유도 없이 살아온 인생 비참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 네요.

노아의 방주: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그러니 가끔씩은 하늘을 쳐다볼 여유를 가지십시오. 그러 면 달도 따고 별도 따고, 노래마따나 뽕도 따고 님도 따 고 하하하…

사막의 오아시스: 호호호…

노아의 방주: 노래 부르고 싶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노래를요?

노아의 방주: 《모스크바 교외의 밤》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18번이얘요.

노아의 방주: 그렇습니까. 역시 저의 18번입니다. 《깊이 잠든 화원은 고요해》

사막의 오아시스: 《산들바람 속삭이네》

노아의 방주: 《아름다워라 이 맘 이끄는》

사막의 오아시스: 《황홀한 이 밤이여》

노아의 방주: 별로 20년전으로 돌아간 기분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도 그래요. 그 때의 그 기분으로 그냥 살 아갈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노아의 방주: 그 기분을 다시 살리는겁니다. 20년전 《개구리 합창단》이 합창하는 논판에서 밝은 달이 뿌려주는 은가 루를 한몸에 받으며 걷던 논뚝길…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도 그 때 농촌에 있었나요?

노아의 방주: 《광활한 천지엔 할 일이 많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식청년이셨군요. 전 귀향청년이였어요.

노아의 방주: 천생배필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점 세 개는 무슨 뜻입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아이참 것도 몰라요? 전 인젠 나갈께요. 주 말에 다시 만나요. 8282!

노아의 방주:8282!

2000년 3월 25일

주말과부라는 말이 있다. 외국에서 나온 말이다. 외국에선 대체로 주말에 볼만한 체육경기가 벌어진단다. 남자들이 체육경기를 구경하러 가고 나면 홀로 집에 남은 마누라를 주말과부라고 한다나. 주말과부란 말은 나한테는 너무나 사치스럽다. 주말이 아니라 일주일 과부, 아니 한달 과부, 그것도 아니다. 일년내내 과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남은 주말에 가족동반으로 외식하고 또 어디로 구경가고 나들이가고 하는데 홀로 밥상에 마주앉아 아침에 남은 묵은밥이나 긁어먹는 신세, 사는게 다 귀찮아진다.

애가 있을 땐 그래도 말동무라도 있어 괜찮았지. 어서 방학이 됐으면 좋겠다. 애라도 오면 무덤같은 이 공간이 사람 사는 공간으로 변하겠는데…

알다 모를 일. 돈도 없는 사람 저녁마다 내내 술이다. 남의 술 얻어먹으면 드믄드믄 사는 멋도 있어야겠는데 술 산다고 나한테 돈 내라는 말은 없다. 《작은 금고》라도 있는지. 있을리 만무하지. 문화관이란 워낙 로임마저도 자주 체불하는 단위니까. 술먹을 돈을 대줄 사람은 없은것이고. 좌우간 얼굴 하나는 두껍다. 어쩌면 그렇게 매일이다시피 남의 술을 얻어먹기만 할가. 알콜중독자의 일화가 생각난다. 한 알콜중독자가 술 한잔 얻어먹으려고 점심때나 저녁때면 식당앞에서 서성거리면서 그 누굴 기다리는척 하다가 풋면목이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척 들어앉아 술 한잔 얻어마신단다. 그 량반 그런 신세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신세가 됐으면 갈 만치 다 간 사람이지…

어쩐지 내가 오늘 술 마시고 싶다. 옛날 시인묵객들은 자기 그림자와 벗해서 권커니 작커니 하면서 시상을 무르익혔다는데 난 술 마시며 뭘 달랠가? 외로운 마음?

사막의 오아시스: 오늘 술 한잔 했어요.

노아의 방주: 즐거운 주말인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울적해서 혼자 마신거얘요.

노아의 방주: 울적해서 마신 술은 몸에 해롭다고 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은 술 마셔요?

노아의 방주: 가끔씩은 입에 댑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즐기는 편이세요?

노아의 방주: 술을 즐긴다기보다 그 분위기를 즐긴다고 할가 요?

사막의 오아시스: 제가 지내본 사람중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 어도 매일이다시피 술 마시는 사람이 있더군요.

노아의 방주: 행복한 분이군요.

사막의 오아시스: 행복하다니요?

노아의 방주: 호주머니에 돈 한푼 없어도 술좌석을 마련해 주 는 분이 있다는 얘기가 아닙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남자 체면으로는 그냥 남의 술 얻어먹기가 마음 편하지 않을텐데요.

노아의 방주: 남성세계의 술문화에 대해 녀성들이 리해가 가 지않는 부문이 많을겁니다. 남자들은 남이 사는 술을 얻어 먹는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저 함께 그 분위기에 어울 린다고 합니다. 돈 한푼 없어도 마냥 친구들과 술자리에 어 울린다는 그 분은 대인관계가 좋은 분인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 세월에 대인관계란 그 어떤 목적을 념 두에 두고 이루어지는 인간관계가 아니겠어요. 말하자면 승 진이라던가, 명이나 리를 위한것이라던가.

노아의 방주: 글쎄요. 저의 경우엔 술자리에 어울릴때는 그저 그 자리의 분위기가 좋아서 어울리는겁니다. 목적, 의도적 으로 술자리를 마련한다던가 술자리에 참석한다면 그건 진 정한 의미에서의 남자들 술자리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그저 즐긴다는거얘요?

노아의 방주: 대화하는겁니다. 지금 인간 사이에 대화할 기회 가 아주 적습니다. 술자리도 일종 대화의 장소이라고 저는 봅니다. 스트레스를 풀고 친구의 우정을 다시 확인하고 그 렇지 않으면 피곤한 세상에서 날카로워진 신경을 알콜로 잠시나마 둔화시킨다던가…

사막의 오아시스: 진짜 그런 술자리면 저도 끼우고 싶네요. 스 트레스도 풀고 겸사해서 다믄 술 마시는 그 시간이라도 현 실을 망각에 부치고…

노아의 방주: 그러나 아까 말했지만 울적해서 혼자 드는 술은 몸에 해로울 뿐만아니라 스트레스를 더 받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런가봐요.

노아의 방주: 좋은 주말에 왜 술이 화제가 됐습니까? 다른 화 제를 바꿔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좋아요.

노아의 방주: 오아시스님은 지금 현실의 모든 번뇌를 훌훌 털 고 아무곳이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어쩜 그렇게도 제 맘을…

노아의 방주: 얼굴에 씌여져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제 얼굴 보이나요?

노아의 방주: 한번 그려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기대되는데요.

노아의 방주: 총적으로 지적이면서도 어딘가 우수가 깔린 그 런 모습인것 같습니다. 남들처럼 미용원을 나들면서 얼굴을 만질 그런 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기 얼굴에 꽤나 신경을 쓰시는 분, 그리고…

사막의 오아시스: 얼굴 모습만 그려보세요.

노아의 방주: 살결은 힐것으로 보입니다. 얼굴형은 약간 둥근 것 같고 둥근 얼굴에 비해 눈은 좀 가는 편인데 눈빛만은 날카로울것 같고 그 눈빛에 알맞게 코는 오뚝하게 솟은 편이고 입은 꼭 다물린 작은 입입니다. 어때요? 제가 그려 본 형상이?

사막의 오아시스: 몰라요.

노아의 방주: 어디까지나 저의 상상입니다. 상상이 빗나갔으면 사과하겠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얘요.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 해요. 저 를 좋게 상상해 주셔서…

노아의 방주: 저의 모습 한번 그려줄수 없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언어표달 능력으로는 방주님을 그릴수 없어요. 대체적으로 받은 인상을 말한다면 방주님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세상 편하게 사시는 편한 분같아요. 어때요? 제 인상이?

노아의 방주: 너무 과찬이십니다. 하긴 저도 피곤한 세상을 그 래도 마음 편하게 살자고 노력하는 사람이기는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게 마음대로 안됩니다. 범의 코 등의 밥알도 떼 먹는 세상이라고 합니다만 그렇다고 너무 아득바득하면 오 히려 자학적이 될수도 있지요. 그건 그렇고, 주말인데 이러 고만 있겠습니까. 남은 주말이면 어딘가 려행도 떠나고 둘 만의 세계를 마련한다는데 우리도 한번 려행 떠나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바라던 바예요. 어디로 갈까요?

노아의 방주: 미국이나 유럽은 너무 머니까 가까운 곳을 택하 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가급적이면 문화권이 비슷한 곳으로 택하지 요.

노아의 방주: 그럼 한 문화권이고 언어도 통하는 한국이 어떻 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좋아요.

노아의 방주: 그럼 한국에서도 관광1번지로 꼽히는 제주도로 갑시다. 어서 오세요. 대한항공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즐거운 려행이 되십시오. 호호호…

노아의 방주: 비행기로 날아오니 제주도도 정말 지척이군요. 우선 려장을 푸셔야지요. 방은 어떻게 쓰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아직은 각방을 쓰는게…

노아의 방주: 그럼 저는 하는수없이 초야권은 보류하겠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이참…

노아의 방주: 먼저 어디부터 구경할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아무곳이나…

노아의 방주: 제주도가 처음이여서 어디로 안내해야 할지 갈 피를 잡을수 없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이쯤으로도 만족이얘요. 진짜 제주도로 날아 가 본 기분이얘요.

노아의 방주: 언젠가는 한번 진짜로 제주도 관광을 떠났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날을 기대해 볼께요.

노아의 방주: 오늘의 주말 잘 보내셨는지?

사막의 오아시스: 즐거웠어요. 생각같아선 그냥 이 밤 새고싶 어요.

노아의 방주: 제주도에 가서도 각방을 썼으니까 그런대로 자 기 방으로 돌아갑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러죠…

노아의 방주: 좋은 꿈꾸십시오.

사막의 오아시스: 자기도…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세 점은 무슨 뜻이죠?

노아의 방주: 지난번에 제한테 주신 세 점의 수수께끼를 제가 고심고심끝에 종내 풀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이얘요?

노아의 방주: 남자들이 가장 꺼내기 힘든 말이 하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 한마디 꺼내면 상대방을 평생 책임져야 하 니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그 말이 뭔가요?

노아의 방주: 사랑해!

사막의 오아시스: 어머머...

2000년 5월 20일

요즘은 술 사줄 친구가 없는 모양. 집에 들어오면 텔레비죤을 독차지한다. 드라마나 영화같은건 아예 보지않고 체넬이란 체넬은 죄다 돌려가며 체육경기만 찾는다. 체육경기도 가장 야만스런 경기, 례하면 프로레슬링이라던가 권투라던가 그렇지 않으면 축구. 글 쓰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걸 알기 위해서라도 뉴스같은걸 보아야 하겠지만 그건 다 판에 박은 소리라고 곁눈도 주지 않는다.

글쓰는 모습 본지 오라다. 필을 놓은지 일년은 잘 된것 같다. 언젠가 왜 글을 쓰지않는가고 물으니 뭐 사회가 문단 전체를 타락시켰다나. 그럼 자기는? 소웃다 꾸러기 터질일이다. 남은 그래도 긴 글 짧은 글 줄줄 잘도 써내던데. 그러면 하는 말이 더 기막히다. 《그건 글이 아니라 락서야.》 언제 어떤 명작을 내놓으시려고 그러는지 어쨌든 《대단하신 분》이다. 필을 놓기전 마지막으로 썼다는게 쥐와 고양이가 어떠어떠했다는 시다. 뭐 고양이와 쥐가 동거를 시작했는데 나중엔 고양이가 도리어 쥐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아양을 떨더라 그런 내용인것 같다. 예전엔 하늘이 어떻고 태양이 어떻고 대지가 어떻고 어머니가 어떻고 고향이 어떻고 나아가서는 우주가 어떻고 하던 사람이 이제와선 쥐나 고양이만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다 억장이 막힌다.

이제는 날 정시도 못한다. 눈길이 마주치면 먼저 피해버린다. 안해를 당당하게 맞바라볼 용기마저도 없어졌으니 볼장을 다본 사람이다. 주눅이 든 사람하고 밖에 나가 바람피우는 사람이 안해의 눈길을 피한단다. 바람 피울 용기나 매너가 있는 량반이라면 그래도 남자로 봐주겠다.

누군가 사내다운 꼴기가 하나도 없고 말다툼할 용기마저 없고 《뼈》도 없고 《피》도 없고 《살》마저도 없는 그런 사람을 무지렁이라고 했다. 진짜 아주 무지렁이가 됐을가…

그런데 이상하다. 평소에 눈에 생기마저 없던 사람이 유독 가장 야만스런 권투경기를 볼때면 눈매가 사나와지고 주먹을 내두르며 흥분한다. 그때만은 사내라고 봐줄만하다. 어떤 땐 두눈에 살기가 내비친다. 그 눈을 보면 소름이 오싹 돋는다.

야망의 눈빛, 아니야.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눈이랄까…

노아의 방주: 오늘의 화제는 뭘로 잡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취미생활로 잡아볼까요?

노아의 방주: 좋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것은 저는 별다른 취미생활이 없습니다. 오아시스님은?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까지 취미생활이란건 상상도 못해봤어 요. 정서적 공감을 얻을수 있는 컴퓨터 채팅이 지금와선 나 의 취미생활일지도 모르죠.

노아의 방주: 우리 사이의 채팅, 말하자면 우리의 대화는 이미 취미생활을 벗어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린 분명 새로운 생활공간에서 새로운 생활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혹시 운동 즐기세요?

노아의 방주: 저는 별로인데 경기는 즐겨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남자들은 다 경기를 즐기는가봐요.

노아의 방주: 남자라면 즐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왜서요?

노아의 방주: 경기 자체가 곧 치열한 경쟁입니다. 남성사회도 치열한 경쟁사회입니다. 경쟁이 없으면 남자들의 존재가치 가 상실됩니다. 때문에 남자들은 격렬한 운동, 례하면 축구 나 권투, 레슬링같은 경기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사업에 서 압력을 많이 받거나 감정세계에서 스트레스가 많이 쌓 이는 남자일수록 격렬한 운동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격렬한 운동을 구경하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좋은 기 회이기 때문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런데 격렬한 경기를 보면서 크게 흥분하 는것이 스트레스 해소로 된다면 그 흥분이 세상을 의욕적 으로 살아가야 하겠다는 마음가짐에 충전이 되어야 할게 아니겠어요?

노아의 방주: 그렇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그런데 그 때의 흥분으로 그냥 끝나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더군요.

노아의 방주: 글쎄요. 그러나 흥분할수 있다는 자체가 아직도 경쟁사회에서 경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표시로 된다고 저 는 생각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남자들은 별종인가봐요…

노아의 방주: 무슨 뜻인지…

사막의 오아시스: 아뇨. 그냥 해보는 말이얘요.

노아의 방주: 사실 남자들은 별종입니다. 남자는 일생에서 4가 지를 추구해야 하는데 그것이 권력, 지위, 재부, 성애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성공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것입니다. 그런데 남성의 비극은 바로 이 네가지 추구를 완성하는 남 자가 아주 드물다는것입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더 큰 비 극은 이 네가지 추구를 완성할수 없는것을 번연히 알면서 도 열심히 추구하는 흉내라도 내야 하는것입니다. 이거 뭐 별로 제가 강의하는 것 같습니다. 따분한 얘기죠? 다른 화 제로 바꿔볼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오늘 별로 몸이 피곤하군요.

노아의 방주: 오늘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그런건 아니고…

노아의 방주: 까닭없이 기분이 언짢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럴땐 기분전환을 해야 합니다. 제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할까 요?

사막의 오아시스: 경청하고 있어요.

노아의 방주: 쥐 세 마리가 있었습니다. 세 마리 쥐는 서로 뒤 질세라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자랑했습니다. 이 런 자랑 저런 자랑 늘어놓다가 한 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무서운 고양이 있잖아, 난 방금 그 녀석 앞에 있는 고 기를 보란듯이 집어먹고 오는 길이야.》 그러니 다른 한 쥐 가 말했습니다. 《그 고양인 어제 나보고 데이트 한번 하자 고 청을 들었어.》 이말에 또 다른 한 쥐는 길게 하품을 하 면서 말했습니다. 《어, 졸려. 난 어제밤 그 녀석과 온밤을 샜어. 나 지금 또 그 녀석한테 가야해. 그 녀석 덜 만족됐 나봐.》 그러니 다른 쥐들은 입만 딱 벌리더랍니다. 하하 하… 어때요? 재미있죠?

사막의 오아시스: 쥐와 고양이 말만 나오면 저는 역겹기만 해 요.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전 그만 나갈께요.안녕!

2000년 6월 10일

녀자 나이 사십이면 보석에 눈을 뜬다는 말이 있다. 금, 은, 보석으로된 장신구에 무척 신경을 쓸 나이라는 뜻이다. 결혼할 그때는 결혼반지 교환을 모르는 세월이였으니 세월을 탓할만도 하지만 지금까지 반지 하나 없이 살아왔다면 누구나 곧이듣지 않을 것이다. 그게 언제던가, 보석반지 갖출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신세지만 구경이야 못하랴 싶어 보석 장신구를 진렬한 매대앞에서 서성거리는데 한다는 소리.

《뭘 볼게 있어. 여긴 경박한 허영 부리는 아낙네들이나 오는 곳이야.》

마누라 손에 금반지 하나 끼워주지 못할망정 뭐 경박한 허영? 어휴… 할 말 다 했어? 입 쓰겁지 않아?

지난해 내 생일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고작 데리고 갔다는 것이 랭면집. 랭면 두 그릇에 맥주 한병 시켜놓고 한다는 소리가 생일에 면을 먹으면 장수한다나. 그 뒤의 말이 화가 뒤짚어질 소리.

《모자라면 한 그릇 더 먹어. 오랜만에 30원 땄어.》

50전 내기 마작판에서 30원을 땄으면 그 수준에 하루 꼬박 앉아 놀았다는 얘기다. 퇴직도 안한 사람이 하는 일없이 로인활동실에 죽치고 앉아 마작쪽만 만지는것도 꼴불견인데 그런 판에서 요행 딴 돈으로 내 생일 축하로 몇원밖에 안되는 랭면을 샀다니 분김에 랭면 그릇 엎어놓고 나와버렸다.

래일은 내 생일. 생일 오는 것이 이젠 무섭다. 또 화가 뒤집혀질가바. 지금은 소학교에 다니는 애들도 생일날이면 식당에서 상을 차려 제 또래 친구들을 청한다는데.

차려진 명이라고 그런대로 살아왔는데 왜 요즘 자꾸 비참한 생각만 드는걸가…

노아의 방주: 생일 미리 축하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제 기억이 틀리진 않겠는데 래일이 생일이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 어떻게 저의 생일을…

노아의 방주: 잊으셨습니까? 언젠가 한번 우리가 생년월일을 따져 운세를 본적이 있지 않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기억도 좋으셔라.

노아의 방주: 생일선물 드려도 괜찮겠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선물까지…

노아의 방주: 며칠전 꽃가게에 들를 일이 있었습니다. 생일선 물로 꽃사러 한 사람이 왔는데 2만원짜리 꽃다발을 주문 하더군요. 2만원짜리 꽃다발이 대체 어떤 꽃들로 묶어질까 싶어 한참 서서 구경했는데 꽃이 전부다 외국산이였습니 다. 외국산 장미 한송이가 500원이더군요. 제가 그 꽃다발 을 주문한 사람이 누군가고 꽃가게 주인한테 물었더니 회 사 사장이라더군요. 그럼 그 비싼 꽃다발을 받을 분은 또 누군가고 했더니 요즘 데뷔한 노래가수라나요. 돈 많은 사 람은 나름대로 그런 값진 선물을 마련하겠지만 저는 또 나름대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돈 한푼 들이지않은 선물 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살수 없는것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사막의 오아시스: 뭔데요?

노아의 방주: 육안으로 볼수없는것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저의 마음입니다. 영원한 선물로 드립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고마워요…

노아의 방주: 다이야몬드반지나 목걸이, 값비싼 의상 뭐 그런 선물들이 많지만 제가 드리고싶은것은 마음뿐입니다. 워낙 가진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생일날을 기억해 주신것만으로도 감개 무량한데 돈 주고도 못사는 영원한 선물까지 주시니 무어 라고 지금의 심정 표달하기 어렵군요. 뭘로 보답할까요?

노아의 방주: 사랑하는 사이엔 보답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서 로 그냥 주는거지요.

사막의 오아시스: 저도 저의 모든것 그냥 드리겠습니다.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춤이나 출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네.

노아의 방주: 좋아하시는 춤곡은 어떤 곡입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무도장에 가본적이 없어서…

노아의 방주: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춤을 청하니까 춤을 아주 즐기는줄 알았어 요.

노아의 방주: 사실 기분 좋으니 해본 말입니다. 전 무도장 출 입도 못해보고 춤곡이 어떤 곡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 세월에 무도장 출입을 못해보고 춤곡 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 몇이 있겠어요. 언젠가 저의 친구에 게 무도장 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니까 그 친구가 하 는 말이 세상 헛살았다고 하더군요. 정말 세상 헛산걸까요?

노아의 방주: 그게 아니지요. 하긴 남들이 해보는것을 다 해보 고 향수할것을 다 향수하면서 사는 삶이 어찌보면 충족한 삶이겠지만 향수는 누리지 못했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자세 만 가지면 그 삶 역시 충족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경우를 보면 저는 나 자신의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남편의 삶과 자식의 삶을 살아주고 있는것같 아요.

노아의 방주: 누군가 이런 말을 한것 같습니다. 《녀인은 남 편을 내조해서 세계와 대화하고 자식을 키우며 미래를 설 계 한다.》

사막의 오아시스: 녀인의 삶은 오로지 남편과 자식을 위한 얽 매인 삶이라는 뜻인가요?

노아의 방주: 딱 그런 뜻은 아니고 녀인의 인생가치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인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녀성의 인생가치, 듣기엔 좋은 말인데 저의 경우엔 그것은 어떤 굴레같아요. 말하자면 녀성에게 강요된 그 어떤 의무같은것이라고 할까요.

노아의 방주: 이런 인생상담 자주 하시는 편입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 내놓고는 대화할 상대가 없어요. 방 주님은요?

노아의 방주: 저 역시 마찬가집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가정에서도요?

노아의 방주: 물론이죠. 지금 《랭전》 상태입니다. 《랭전》 상태에서는 대화가 안 먹힙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랭전은 전쟁을 유발한다더군요.

노아의 방주: 근대 국제관계사를 보니 랭전이 이전처럼 전쟁 을 부르는것이 아니라 화해로 이어지더군요. 타협과 리해, 양보와 신뢰가 랭전을 종식시키는 관건으로 되고 있더군요. 오늘 우리가 너무 거창한 화제를 다룬게 아닙니까?

사막의 오아시스: 글쎄요…

노아의 방주: 재미있는 화제로 바꿀까요?

사막의 오아시스: 그러죠.

노아의 방주: 하루는 부부사이에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말 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남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내대 장부는 어디에 내놓으나 당당한 영웅이야.》 그러니 녀자가 받는 말이 《당신이 영웅이라면 나는 미인이야. 똑똑히 알 아둬. 영웅도 미인관만은 넘지못해.》 그래서 남자가 《남 자는 강철이야》…

사막의 오아시스: 《녀자는 용광로. 강철을 녹이는 용광로. 》

노아의 방주: 이 이야길 들으셨군요.

사막의 오아시스: 듣진 못했는데 뻔한 리치가 아니얘요.

노아의 방주: 그럼 제가 남자의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남자 는 만리장성이야.》

사막의 오아시스: 《녀자는 맹강녀야. 만리장성도 맹강녀가 한 번 우니 무너졌어.》

노아의 방주: 《남자는 장강이야.》

사막의 오아시스: 《녀자는 바다야. 장강이 제멋대로 어딜 에 돌든간에 나중엔 꼭 내 품으로 흘러들게 돼있어.》

노아의 방주: 《나는 너!》

사막의 오아시스: 《너는 나!》

노아의 방주: 두손 들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많이 듣던 얘기얘요.

노아의 방주: 마지막 말은 제가 만들어낸겁니다. 《나는 너!》

사막의 오아시스: 마찬가지얘요. 저도 나름대로 응한거예요. 《너는 나!》

노아의 방주: 축배 한잔 들가요?

사막의 오아시스: 뭘 위해서?

노아의 방주: 《나는 너》를 위해!

사막의 오아시스: 좋아요. 《나도 너》를 위해!


2000년 8월 12일

춥다. 열이 난다. 갑갑하다. 귀찮다. 짜증난다. 허무하다. 서럽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 갱년기 증세란다. 녀자답게 살아본 기억도 없는데 벌써 볼장 다 봤는가… 갱년기에 들어선 녀자를 한족들은 《두부찌끼》라고 한다나. 남자들이 내린 너무나 잔혹한 평가다.

《당신 이제부터 주의해. 나 갈건 가고 올건 왔으니까 의사말대로 잘 협조해야 한다니까. 내가 신경질 써도 무조건 다 받아줘야 하고 내 기분도 맞춰줘야 하고.》

내 친구가 남편한테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니 이튿날부터 아주 곱상이더란다. 친구처럼 그러고 싶지않다. 내가 더 비참해지니까.

요즘은 조끔 달라진 점이 있다. 귀가시간이 빨라졌고 드믄드믄 집안청소도 한다. 평소 가무일에 손 하나 대지않던 사람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찾아서 할 때면 꼭 엉큼한 궁리가 있다. 아니나 다를가 어제밤 내 이불속으로 들어왔다. 구렁이가 기여들어오는것과 같은 기분이다. 부부관곌 한지 언제였던지 기억도 나지않는다. 이불을 몸에 감고 등을 돌릴가 하다가 그냥 몸을 맡겨버렸다. 아무런 감흥이 없다. 일방적일수 밖에 없다. 일을 끝내고 말없이 방을 나가는 뒤모습을 보면서 손에 잡히는대로 뭔가 내던지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일년전부터 각방을 쓰게 된 리유도 일방적으로 일을 끝낸 뒤 내뱉은 말 때문이다.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악이 받친다. 그날도 제기분에 들떠 한참 씨근덕거리다가 떨어져 나갔다. 담배 한 대 피워물면서 하는 말이 이랬다.

《싸늘한게 어디 산 사람이야? 송장이지.》

《그래 난 송장이다. 송장하고 그 짓거리한건 법에 걸려!》

그러곤 이불을 안고 아들이 대학가기전에 쓰던 방으로 건너갔다.

《노아의 방주》가 한 말처럼 남자는 일생에서 권력, 지위, 재부, 성애를 추구해야 한다는데 성애에서도 빵점만 맞는 락제생이다.

어휴, 내 신세…

사막의 오아시스: 보고싶어요.

노아의 방주: 저도.

사막의 오아시스: 방주님의 얼굴을 지금의 가상세계에서가 아 니라 현실에서 보고싶어요. 만나자요. 지금이라도.

노아의 방주: 만나면 우선 실망이 가고…

사막의 오아시스: 욕된 말이지만 혹시 방주님이 장애자라도 저는 실망하지 않을거얘요.

노아의 방주: 그 마음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만 현실에서의 만 남은 포기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왜서요?

노아의 방주: 만남으로해서 우리는 여태껏 함께 영위해온 생 활의 공간을 잃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공간이 아니 얘요. 이제와선 전 이 가상의 공간이 싫어졌어요. 현실적이 고 싶어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한사람이 세상 살아가면서 두 개의 생 활공간을 가진다는게 얼마나 쉽지 않다는점 리해하셔야 하 고 또 어렵게 구축한 생활공간을 버린다는게 얼마나 고통 스럽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는 가상의 공간을 포기할 각오가 돼있어 요.

노아의 방주: 우선 고정하십시오. 누군가 인간은 두 개의 얼굴 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진실한 모습, 다른 하 나는 가면으로 가리운 모습.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 가상의 공간에서 채팅하고 있는 우리 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요? 진실한 모습, 아니면 가면으로 가리운 모습?

노아의 방주: 딱 찍어 말하기 힘듭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는 어디까지나 진실한 모습이예요.

노아의 방주: 현실이 오히려 더 진실할것 같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얘요. 강요된 삶을 사는 저의 경우엔 현실은 탈바가지를 쓰고 가면극을 노는 그런 놀음판이라고 생각해요. 행복하지 않으면서도 남들한테 행복한듯한 모습 을 애써 보여주어야 하고 지어 잠자리에서도 상대방의 기 분을 의식해서 억지로라도 즐거웠다는 표정을 지어주어야 하고. 제가 이런 말까지 해야 하나요? 방주님은 저의 진솔 한 마음을 아직도 리해하지 못하고 있나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충분히 리해합니다. 충분히 리해하기 때문에 이 공간을 버리고 싶지않습니다. 바로 이 공간이 있 었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생활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가리 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지고 인간대 인간으로 허심탄회하게 인생상담도 나눌수 있었고 인간의 진실에 접근할수 있었습 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지금의 저의 마음 리해하시겠죠?

노아의 방주: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리해한다고.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제가 솔직한 고백을 할께요. 제가 왜서 저의 이름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달았는지 아세요? 오아시스는 사막의 생명이고 꿈이고 리상의 세계얘요. 사막 에서 목말라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오아시스를 찾아 헤매 듯이 현실 생활에서 모진 갈증을 느끼면서 사막같이 황페 한 불모의 땅에서 참된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 사람이 바로 저예요. 그래서 삶의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다는 뜻으 로 이름을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달았어요. 방주님은 제 가 찾은 오아시스얘요. 메마른 내 삶에 다시금 생기와 활력 을 안겨주고 누구한테 강요된 삶이 아닌 떳떳한 내 삶을 살도록 이끌어줄 분이 바로 방주님이얘요. 사랑해요…

노아의 방주: 그 사랑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우리 사랑합시다. 그리고 행복한 보금자리를 마련해 봅시다.

사막의 오아시스: …

노아의 방주: …

사막의 오아시스: 그럼 인젠 우리 이 공간에서 나가요.

노아의 방주: 아닙니다. 우린 영원히 이 공간에 있어야 합니 다.

사막의 오아시스: 왜서 이 가상의 공간에 남아있으려고 해요?

노아의 방주: 바로 이 공간에서만 우리의 사랑이 가능하기 때 문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이죠?

노아의 방주: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대화를 통해 련인이 되기 도 하고 지어는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까지 낳아 기르면서 부부생활까지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단 현실로 돌아가면 그것은 불륜입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저의 경우엔 불륜이 아니얘요. 사랑이얘요. 꼭 만나요. 만나지 않으면 전 미칠것만 같아요.

노아의 방주: 그냥 이렇게 나오시면 스스로 이 공간에 무덤을 하나 만들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 무덤이라니요?

노아의 방주: 사랑의 무덤.

사막의 오아시스: 무슨 뜻인가요?

노아의 방주: 현실은 무자비하면서도 또한 확실합니다. 우린 현실에서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기어코 만나시겠다면 저는 이 공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가상의 공간에 사랑 의 무덤 하나 만들어놓고…

사막의 오아시스: 그래요. 우리 함께 이 공간에서 사라지자요. 우리에겐 가상의 공간이 인젠 그 의미를 잃었어요. 좀 더 실제적이 되자요. 두손 모아 빌어요. 현실공간에서 만나요 네? 무작정 방주님의 뜻에 따르겠으니 꼭 만나요.

노아의 방주: 미숙아 꿈깨!

사막의 오아시스: 아니, 내 이름 어떻게 알아? 너 대체 누구 야?

노아의 방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널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야. 한마디 충고할게. 가상은 어디까지나 가상이고 현실은 어디 까지나 현실이야. 그걸 착각하지도 말고 두 공간을 애써 접 목하려고도 하지마. 가상공간에선 스트레스를 풀 정도면 돼. 우직하게 상아탑을 쌓을 궁리를 하지말고…

사막의 오아시스: 너, 너 대체 누구야?

노아의 방주: 내 말 끊지마. 례모없이. 미숙아 잘 들어둬. 녀자 가 성숙된 표징은 자기를 잘 아는것이야. 넌 지금 자기를 잘 몰라. 우선 자기를 잘 알아야 남을 리해할수 있어. 자꾸 번뇌나 고독, 삶의 고통을 하소연 하지말고 차분한 마음으 로 한번 자기 자신을 들여다 봐. 그러면 남도 리해해줄수 있고 살아온 삶이 비록 구질구질하다해도 쑥대밭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거야. 사람 사는게 다 그래. 욕망 대로 되는 일 별로 없어. 너무 기대도 하지말고. 기대가 크 면 실망만 클뿐이고 자학에 빠질뿐이야. 어서 이 공간에서 나가 남편 잠자리나 펴. 그게 현실이야.

사막의 오아시스: 당신…

 

※ 부언: 《코리아 야후》 공개대화방에 들어가면 지금도 이런 글이 그냥 떠오른다.

《사막의 오아시스는 노아의 방주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주님은 어디에 계시나요…》

2001년 2월 20일 북경에서 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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