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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수도권의 〈촌놈〉들》로 시작한 계렬소설의 제6편이다.
우리말 속담에 하는 일없이 행운만 바라는 사람을 일컫는 속담이 많다.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바란다》, 《닭알가리를 쌓았다 무너뜨렸다 한다》, 《오뉴월 소불알 떨어지기만 기다린다》 등을 례들수 있다. 도저히 가망없는 일을 헛되이 탐내는 사람을 비웃어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는 누워서 홍시 떨어지기를 바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앉아서 물에 빠져 살겠다고 짚오래기라도 쥐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그런 《촌놈》을 그려볼까 한다.
내가 몸담고 있는 국제방송국 조선어부는 지난해부터 수도권지역 방송인 FM방송을 개시했다. FM방송의 일요일프로는 주로 노래가 위주인데 그중 노래곡목 알아마추기와 청취자 신청곡코너가 있다. 일요일 저녁 방송이 시작되면 방송근무자는 전화기 옆을 지키고 앉아 청취자들이 걸어오는 전화를 받기에 여념이 없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은 대개 방송되고 있는 노래곡목을 맞추고 노래를 신청해오는 청취자들이다.
그날도 프로담당자를 도와 내가 전화기옆을 지키고 있는데 첫 전화가 걸려왔다.
《중국국제방송국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지금 나가고 있는 노래곡목을 맞추려고 합니다.》
젊은 목소리지만 약간 어눌했다.
《예, 말씀하십시오.》
나는 필을 챙겨들었다.
《지금 나오는 노래는 한국의 가수 김종환이 작사, 작곡하고 직접 부른 노래 〈존재의 리유〉가 아닙니까?》
《네, 잘 맞추셨습니다. 성함은 어떻게 쓰십니까?》
《이 노래를 부른 가수와 이름이 같습니다.》
《아, 그럼 김종환씨. 직장은요?》
《아직 무직입니다.》
《전화번호 불러주시겠습니까?》
《호출기도 됩니까?》
《네.》
불러주는 대로 호출기번호를 적고 무슨 노래 신청하느냐고 물으니 김종환의 《존재의 리유》라고 했다.
《이 노래 신청하는 리유, 말하자면 그 누구와 함께 듣고 싶다던가 혹은 누구한테 선물한다던가…》
《아니, 그저 저 혼자 듣고싶어 그럽니다.》
《이 노래 무척 즐겨 부르시는가 보군요.》
《그저 듣기만 합니다.》
《저희 방송을 애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 이시간에 신청한 노래 보내드리겠으니 청취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메모한 글을 일요일프로 담당자에게 넘겼더니 어이없는 웃음부터 지었다.
《이분이 또 이 노래를 신청했군요. 이분은 벌써 다섯번째나 이 노래를 신청해 왔어요.》
《김종환의 지독한 팬인가 싶은데.》
《글쎄요…》
다섯번이나 그것도 똑같은 곡을 신청해왔다니 김종환이 부른 노래 《존재의 리유》 가사가 궁금했다. 김종환이 대체 뭘 노래했기에 한사람이 다섯번이나 신청을 했을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CD에 부착된 노래가사를 일별해봤다. 그 가사는 이러했다.
《언젠가는 너와 함께 하겠지 지금은 헤여져 있어도
네가 보고싶어도 참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다시 만날테니까
그리 오래 헤여지진 않아 너에게 나는 돌아갈거야
모든걸 포기하고 네게 가고 싶지만
조금만 참고 기다려줘
알 수 없는 또다른 미래가
나를 더욱더 힘들게 하지만
네가 있다는것이 나를 존재하게 해
네가 있어 나는 살수 있는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네게 달려갈테니
그때까지 기다릴수 있겠니
그래 다시 시작하는거야
…… 》
노래 가사를 보면 이 노래를 다섯번이나 신청해온 그 청취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힘든 인생도 달갑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모대기는 그런 사람같았다. 그후로도 그 청취자는 여러번 김종환의 《존재의 리유》를 신청해왔다. 그 노래만 여러번 내보낼 수 없어 다른 노래를 신청하라고 하니 다른 노래는 아는 것이 없다고 했다.
몇달이 지난후 방송국에서는 FM방송개시 한돐을 맞아 청취자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마련했다. 노래 《존재의 리유》를 여러번 신청한 김종환도 청취자 대표의 한사람으로 초청을 받았다.
김종환은 강마르나 단단하게 생긴 청년이였다. 키는 중키나 되고 나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얼굴은 해빛에 탔는지 아니면 원래 철색인지 가마잡잡했다. 별로 인상적으로 안겨오는 그런 얼굴은 아니였다. 그런대로 얼굴에서 인상적인 곳을 찾는다면 눈을 꼽아야 할것이다. 시원하게 생긴 눈이라던가 정기있는 눈이여서 인상적인 것이 아니라 언뜻 보면 눈을 감았는지 떴는지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가늘게 째진 눈이였다. 그런 눈을 초상묘사사전에서 뱁새눈이라고 했던것 같다. 자아소개를 할 때 김종환은 자기는 송화강변에서 자라다가 얼마전에 북경에 와서 잠시는 닥치는대로 막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김종환은 좌담회에서 조용히 앉아 남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나중에 사회자가 그에게 발언을 청하니 그는 그저 할말이 없다고 고개만 저었다. 곁에서 내가 한마디했다.
《알기로는 김종환청취자는 〈존재의 리유〉 노래를 적어도 열번은 넘게 신청해 왔는데 그 리유에 대해 말씀해주시지요.》
김종환은 잠깐 뭔가 궁리하는 것 같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노래 가사에 담긴 내용처럼 그 누구에 대한 그리움에서 신청한게 아닙니다. 전 련애도 못해본 사람입니다. 그저 노래를 부른 가수가 저의 이름과 같고 노래 제목 또한 좋아서 신청한겁니다.》
김종환은 입을 다물어버렸다. 좌담회가 끝날때까지 그는 다시 입을 열지않았다.
올해 초 광동성 담강시 서문현에서 16살나는 소년이 물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다가 기진맥진해 위험에 처했을 때 4명의 경찰이 수영을 모른다는 리유로 위험에 처한 소년을 구하지 않고 그저 보고만 있은 일이 발생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사경에 빠진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는 사람을 경악케 하는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물에 빠진 어린이가 병원으로 호송되여 응급치료를 받던중 병원의 간호원은 그 어린이 부모가 그 자리에 오지않았다고 어린이팔에 꽂았던 점적주사바늘을 빼버렸다. 실로 천인공노할 일이다.
이 일을 두고 보도매체들은 크게 대서특필했다. 방송칼럼을 맡은 나는 《황폐해지는 인간의 마음》이란 제목으로 칼럼을 써서 방송했다. 그 칼럼을 요약해서 옮기면 이러하다.
《……
맹자는 성선설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라면 인간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다 갖고 있다.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서 우물가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았을 때 누구라도 깜짝 놀라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가바 달려갈 것이다. 인간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악을 미워하는 마음, 선악을 판단하는 마음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맹자는 인간은 태여날때부터 인간에 대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인간이라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착한 마음을 가지고 인간을 어여삐 여겨야 하겠지만 사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서도 구할대신 구경만 하는 사람이나 또 목숨이 경각에 이른 사람을 치료할 대신 보증금을 물지않았다고 주사바늘을 빼버린 사람이나 다 인간으로 취급될 수 없다.
고대 희랍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한 마음을 인간에게 보여주는 위대함이라고 하면서 〈인간에게 그 위대함을 보여주지 않고 인간이 금수, 말하자면 짐승과 흡사한가만 보여주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맹자도 인간의 본성인 착한 마음을 버리면 황폐한 산과같이 된다고 하면서 이런 례를 들었다.
〈인간이 인의의 마음을 잃게되면 산의 나무가 도끼에 의해 몽땅 잘려나가는것과 마찬가지다. 나무가 몽땅 도끼에 잘려서 숲이 무성했던 산이 그 아름다움을 잃고 벌거숭이 황폐한 산이 되듯이 인간은 인의의 마음을 잃으면 인간의 아름다움이 없어진다.〉
맹자의 이 말에 비추어보면 위험에 처한 인간을 구하지 않고 구경만 한 사람이나 치료를 거절한 사람은 황폐한 민둥산처럼 인간이 가져야할 아름다움을 죄다 잃은 사람이다.
산이 민둥산이 되어 황폐해지면 그것은 산이 아니라 대자연의 무덤이다. 인간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마저 잃으면 불모의 땅인 사막같이 황폐해진 마음은 인간성이 매장된 무덤과 다름없다.
한마디로 황폐해진 자연보다 더 무서운 것이 황폐해지는 인간의 마음이다.
…… 》
이 칼럼이 방송에 나간 후 김종환이 전화를 걸어왔다.
《김선생님의 칼럼을 잘 들었습니다. 오늘 전화한것은 다름이 아니라 선생님을 한번 만났으면 하는데요. 시간을 내줄수 있겠습니까?》
방송인에게는 청취자는 황제다. 그들의 부름엔 무조건 응해야 한다.
《만날 장소를 어디로 정하겠습니까?》
《제가 방송국근처로 가지요.》
《그럼 지난번 좌담회를 한후 저녁식사를 하던 그 식당에서 만나는게 어떻겠습니까?》
《그러지요. 시간은 선생님이 정하십시오.》
우리는 퇴근후인 저녁 6시반으로 시간을 정했다. 약속시간보다 5분전에 지정한 식당에 가니 김종환은 이미 간단한 료리를 시켜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구면인지라 인사를 마치고 맥주잔을 들었다. 한컵 맥주를 굽내고는 김종환이 먼저 말을 꺼냈다.
《선생님, 선생님의 칼럼을 들으면서 인상깊은 말이 있는데 사람은 어릴때부터 인간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 맹자란 사람은 누굽니까?》
맹자도 모르는 인간이다. 어이없기도 하고 조금은 서글픈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 중학교 교과서에서 나온 사람같은데…》
《부끄러운 얘기지만 가정사정으로 전 중학교도 바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김종환은 뒤더수기를 긁었다.
《맹자는 중국 전국시대의 철학가인데 그의 철학에서 유명한 것이 〈성선설〉입니다.》
나하곤 나이차이가 많았지만 청취자이기에 나는 깍듯이 존대말을 썼다.
《선생님 말씀 낮추십시오. 그런데 〈성선설〉이 뭡니까?》
마음같아서는 야, 이놈 집에가서 교과서부터 참답게 뒤져봐라 하고 소리지르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구구히 설명을 해봤자 소귀에 경읽기다. 그러나 묻는 말에 대답을 주지 않을수 없었다.
《간단히 해석할 화제가 아닌데 간추려 말한다면 성선설이란 인간은 천성적으로 착하고 인간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하나의 학설이네.》
생각밖에도 김종환이 생각도 없이 대뜸 반기를 들고 나왔다.
《그건 내보기에도 틀린 말인것 같습니다. 지금 이 세상에 착한 사람 몇이 있습니까.》
김종환이 만약 순자의 성악설에 대해 알고 있었더라면 인간의 천성은 악하다고 하면서 맹자의 성선설을 반박했으련만 다행히 그는 맹자도 모르는 사람이였으니 순자야 더 말한나위가 있겠는가. 더군다나 그의 성악설에 대해서는.
《선생님은 칼럼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구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가져야 할 아름다움을 죄다 잃은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지금 그런 사람들이 많고도 많습니다. 얼마전 저도 그런 사람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북경의 옥연담공원엔 큰 호수가 있다. 이 호수는 겨울에도 얼음을 깨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워낙 이 호수는 수초가 많아 수영이 금지된 곳이지만 강이 없는 북경인데다가 호수가 시 중심지역에 위치해 있어 여름이나 겨울이나 수영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다. 그날 김종환은 수영하러 공원의 호수를 찾았다.
그날 호심으로 멀리 헤엄쳐 들어간 한 사람이 수초에 발이 감겨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같이 온듯한 한 녀인이 발을 동동 구르며 사람 구해달라고 수영하는 사람들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물에 빠진 사람을 바라볼뿐이였다.
이때 김종환이 호수가에 나타났던것이다. 김종환은 한켠에서 조용히 옷을 벗기 시작했다. 녀인이 이사람 저사람 돌아가며 손이야발이야 빌었지만 다들 한다는 소리가 이러했다.
《난 옅은 물에서 물장구나 치는 수준이여서…》
《난 수영배운지 며칠이 안돼서…》
더 한심한 사람이 있었다.
《이러지말고 빨리 110에 전화를 거오.》
110에 전화를 걸어 순라경찰을 불러봤댔자 경찰이 오는새면 물에 빠진 사람은 언녕 물귀신이 될것은 뻔한 일이다.
녀인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면서 말했다.
《제발 저 사람을 구해주세요. 구해주면 돈 만원을 사례금으로 드리겠어요.》
그러나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2만원을 드리겠어요》
그래도 물에 뛰여드는 사람이 없었다.
녀인이 3만원까지 불렀을 때는 김종환이 이미 옷을 다 벗고 호심을 향해 헤염쳐가고 있었다. 그날 김종환이 물에 빠진 사람을 호수가로 끌어내자 구급차가 뒤미처 도착했다. 물에 빠졌던 사내가 정신을 차리자 녀인이 김종환앞에 무릎을 꿇고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좋은 구경거리나 생긴듯 사람들이 몰려왔다.
《저 친구 오늘 북경석간 첫 자리를 차지하게 됐구만》
《꿩먹고 알 먹는다더니 저 친군 이름도 나고 돈도 벌게 됐구먼.》
《돈이라니?》
《저 녀인이 3만원을 내겠다고 했다니까.》
《3만원?! 저 친구 눈깜짝할새에 큰 돈 벌었구먼.》
《나도 수영재간이 있으면 한번에 큰 돈 잡을수 있었겠는데…》
《저 친구 오늘 운이 좋구먼.》
구경군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김종환은 개이치않고 그의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녀인을 부축하려고 다가가는데 갑자기 그 녀인이 발딱 일어나며 구경군들을 향해 독기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누가 3만원을 내겠다고 했어요? 주둥이들 잘 건사하세요.》
이 거동에 김종환도 저으기 놀라 엉거주춤 그 자리에 멈춰섰다. 구경군들은 더 재미나는 구경거리가 생겼다고 떠들어댔다.
《이봐요. 아주머니가 3만까지 부르는걸 우린 똑똑히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아주머니가 3만원을 부르니까 저 친구가 물에 뛰여든겁니다.》
김종환은 억이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결김에 그는 가래침을 그윽 끄어올려 땅바닥에 내뱉았다. 녀인이 입에 거품까지 물면서 쌍욕을 퍼부었다. 너무나 더러운 쌍욕이여서 이 글에 도저히 옮길수 없다. 녀인이 구경군들을 상대로 광기를 부릴 때 김종환은 구경군 속을 헤치고 나와 호수가에 있는 돌우에 앉아 담배를 붙혀물었다. 윗통을 드러낸 한 청년이 그한테 다가왔다.
《이보게 친구, 저런 년한테서는 일전도 곯지말고 받아내야 하네.》
김종환은 귀찮은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러나 그 청년은 물러가지 않고 그냥 지절댔다. 북경엔 이런 싱거운 자들이 많다.
《지금이 어느 땐가. 길가에서 돈을 주어 돈 임자한테 돌려줘도 사례금을 정정당당하게 받는 세월이라구. 신문에서 보지못했나. 돈임자가 사례금을 주겠다고 해놓고 주지않으니 법에 걸어 그 사례금을 받아냈다네. 자넨 목숨까지 구해준데다가 저 녀인이 사전에 3만원 주겠다고까지 했으니 무작정 받아내야 하네.》
김종환이 꿱 소리질렀다.
《썩 물러가지 못하겠어?》
조선족은 급할때나 욕할때면 먼저 입에서 튀여나오는것이 조선말이다.
그 서슬에 그 청년은 뒤로 몇발자국 물러섰다. 이윽고 그 청년이 내뱉는 말이 김종환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보아하니 앉을자리 설자리도 모르는 촌놈이군. 다 차려진 것도 찾아먹지도 못하는 녀석을 세상살다 첨 본다…》
김종환은 여기까지 말하곤 맥주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 그 말 듣고 가만있었소?》
내쪽에서 오히려 흥분했다.
《그저 물에 처넣어 물병아리로 만들었습니다.》
《잘했군. 나도 그런 상황이면 가만있지 않았을거야.》
《그런데 말입니다. 그날 저녁 조용히 혼자서 생각해보니 그 녀석의 말도 일리가 있는것 같습니다.》
《?》
《하긴 제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 들어간것은 선생님이 쓰신 칼럼에서 나오는 그 맹자라는 사람이 말한것처럼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걸어서 우물가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았을 때 누구라도 깜짝 놀라며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질가바 달려가는〉 그런 마음에서 취한 행동이라고 보아야겠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쩍하면 돈으로 사람을 저울질하기 좋아하더군요. 그날도 많은 사람들은 제가 돈을 보고 사람을 구한것으로 여기더군요. 돈을 내걸었던 그 녀인이 일단 사람을 구해놓으니 해까닥 뒤짚어져서 그런적이 없다고 광기를 쓰는것을 보니 저는 구해낸 사람을 도로 물에 처넣고 싶은 충동까지 일더군요.》
《사례금을 받았소?》
《이튿날 그 녀인이 저의 거처로 기자 한분과 함께 맥주 한상자와 과일 한상자를 가지고 왔더군요. 전 거절했습니다.》
《잘했군. 돈이나 물건으로는 인간의 생명을 구한 대가를 치룰수 없으니까.》
《하긴 그날 그들과 함께 온 기자도 그런 말을 하면서 기사를 크게 써서 보도하겠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해야지. 나도 막 쓰고 싶다니까. 그래 그 기자가 기사를 썼소?》
《아니, 쓸수 없다고 하더군요.》
《왜?》
《제가 돈을 요구했습니다.》
《뭐 돈?!》
《딱 만원만 요구했습니다. 애초에 3만원을 부른 사람의 사정 많이 봐준 거죠.》
정신문명건설의 모범으로 널리 소개될수 있는 이야기 주인공이 돈을 요구했다면 성격이 달라진다. 모범은 고사하고 보도기사로도 나가지 못한다. 사람 구하고 이름 한자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던가 혹은 인간으로서 응당 해야할 일을 했다고 하면서 사례금을 거절했다면 기사거리다. 그런데 사람 구하고 돈을 요구했다면 좋은 일하고도 도리어 질책을 받을수 있는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돈을 요구했으면 기사로 나갈수 없지…》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 선생님은 제가 돈을 요구했다고 실망하는 눈친데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돈으로 사람을 저울질하는 사람들하고는 역시 돈으로 자기가 치른 대가를 받아내야 합니다. 돈을 받지 않으면 그날 절 욕한 그 녀석의 말처럼 차려진것도 찾아먹지못하는 반편같은 사람으로 취급받을게 아닙니까. 그리고 저같은 떠돌이가 신문에 덩그렇게 실려봤댔자 봐줄 사람도 없는게고 또 사실 지금 전 돈이 필요합니다.》
나는 더 할말이 없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김종환이 깰때까지 나는 말없이 창밖만 내다봤다.
《오직 사람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제가 개입된 일이 나중에 가서 돈으로 결산된것이 제탓으로만 볼수 없지 않습니까?》
나는 대답대신 내가 칼럼에 인용했던 맹자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인간이 인의의 마음을 잃게되면 산의 나무가 도끼에 의해 몽땅 잘려나가는것과 마찬가지다. 나무가 몽땅 도끼에 잘려서 숲이 무성했던 산이 그 아름다움을 잃고 벌거숭이 황폐한 산이 되듯이 인간은 인의의 마음을 잃으면 인간의 아름다움이 없어진다.》
6월의 첫 일요일.
나는 북경에서 가까이 보내고 있는 몇몇 친구들과 함께 낚시하러 옥연담 공원으로 갔다. 올해 여름더위가 일찍이 닥치어 6월의 날씨가 가장 더운 7,8월의 날씨와 비슷했다. 낚시질이 허용이 된 못가에 낚싯줄을 드리우고 앉아 있노라니 찌는듯한 더위에 온몸이 물참봉이 되었다. 이런 날 낚시질은 향수가 아니라 고역이다. 호수물에 시원히 몸을 담그고 싶었다. 원체 낚시광이 아닌 나는 낚시질에 여념이 없는 친구들을 떠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수영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선 갈한 목부터 축이고 싶어 호수가에서 음료수를 팔고 있는 한 젊은이한테로 다가갔다. 음료수를 파는 그 젊은이는 더워선지 몸에 수영팬티만 걸쳤다. 온몸이 볕에 타서 감실감실했다.
《음료수 한병…》
젊은이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내눈을 의심했다. 김종환이였다.
《선생님…》
《여기서…》
《보다시피 음료수를 팔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한달 정도 됐습니다. 더우신데 물에 들어갑시다.》
김종환은 발가벗은 10살 되나마나한 어린이한테 음료수병을 담은 상자를 맡기고는 나와 함께 호수물에 들어섰다.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둘은 호수물에 목만 내민채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에 몇병정도 파나?》
《둬상자 정도나 될까요. 그저 음료수를 파는 흉내나 낼뿐입니다. 수영을 배우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수영이나 배워주고…》
《그럼 수영교련이 됐다는 얘긴데…》
《허가증도 없습니다. 이곳 자체가 수영이 금지된 곳이니까요.》
《그런데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걸보니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 모양이구만.》
《있는데 어쩔 방법이 없습니다. 올해같은 이 더위에 더워죽겠다고 아우성치며 밀려드는데 어떻게 막아내겠습니까.》
《수영배우겠다는 사람이 많은가?》
《별로 없습니다.》
《그럼 수입이 시원찮겠네?》
《음료수 팔고 수영배워주는것으로 입에 풀칠은 할만합니다.》
이때 아까 김종환이 음료수상자를 맡겼던 발가벗은 어린이가 김종환을 향해 소리쳤다.
《아저씨, 저기 한사람이 물에 빠진것 같아요.》
아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수심이 깊은 곳에서 한사람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김종환이 그 사람을 향해 헤염쳐갔다. 자유영이였는데 그 자세가 멋져보였고 속도 또한 빨랐다. 마치도 물우로 물매미가 미끄러져 가는것 같았다. 김종환은 물에 빠진 사람의 목을 뒤로 한팔로 감아쥐더니 힘들지않게 호수가로 헤엄쳐 나왔다. 물에 빠졌던 사람은 배가 크게 나온 중년이였다. 사람들이 몰려왔다.
중년 사나이는 별로 물을 먹지않았는지 몇번 구역질을 하더니 일어나 앉았다. 그는 한참 멍하니 앉아있다가 이윽고 옷을 주섬주섬 주어입었다. 옷을 다 입은 중년사나이는 호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손에 쥐우는대로 지폐를 꺼내 김종환에게 주면서 재삼 감사하다는 말을 곱씹었다.
김종환은 마치 꿔준 돈을 받는 사람마냥 유유한 표정으로 지폐를 받아 수영팬티에 달린 호주머니에 꾸겨넣는것이였다.
구경군들중 김종환이와 구면이듯한 한 청년이 김종환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늘 마수걸이가 괜찮군그래. 저녁에 한턱 내야겠군.》
김종환은 그저 씩 웃어보였다
나는 별로 못볼것을 본듯한 느낌이였다. 김종환이 음료수 한병을 들고 나한테로 다가왔다.
《오늘 같은 일이 자주 생기나?》
《가끔씩 생깁니다.》
《그럴때마다 자넨 돈을 받나?》
《달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주는걸 받을뿐입니다. 때론 텔레비죤이나 사진기같은 물건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수입이 아주 짭짤할것 같은데…》
《음료수 팔기보다는 낫지요.》
《물에 빠진 사람이 많을수록 좋겠구만》
나는 비꼬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김종환은 괴이치 않았다.
《사람마다 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식이 있잖습니까. 선생님은 배운 지식으로 살아가지만 저야 배운게라곤 수영밖에 없으니 그 재간으로 살아가는겁니다.》
《이제보니 자넨 물에 빠져 살겠다고 짚오래기라도 쥐려고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그런 사람이 된것같구만.》
《학수고대라는건 무슨 뜻입니까?》
학수고대란 단어의 뜻도 모르는 녀석이다.
《학처럼 목을 길게 빼들고 기다린다는 뜻이야.》
저도모르게 반말이 나갔다.
《저한테 그런 알아듣지 못할 고상한 말을 쓰지 마십시오. 먹물이 들지않는 저에겐 그런 얘기는 먹히지 않습니다. 보시다싶이 이곳은 수영장처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수상구조인원이 없는 곳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의무구조대원인 셈이지요. 사람을 구하는 수상구조전문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겁니다. 때문에 제가 하는 일도 수상구조전문호가 벌인 일종의 사업으로 리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장경제시대에 별의별 회사며 전문호가 소털같이 많다하지만 《수상구조전문호》란 말은 생전 처음 듣는 소리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사업중에서도 가장 신성한 사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금품을 노리고 하는것도 신성한 사업인가?》
《금품은 내가 생명을 구한 사례금일뿐입니다. 아니지요. 사례금인것이 아니라 저에게 주는 보수지요. 말하자면 선생님이 받는 로임과 같은겁니다.》
나는 입이 쓰거워나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종환이 한마디 덧붙였다.
《선생님은 선생님이 할수 있는 일이 따로 있고 또 할수 없는 일이 따로 있습니다. 만약 지금 한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할 때 선생님께서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사람을 구하러 선뜻이 물에 뛰여들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시는 일에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있다면 저는 나름대로 저의 재간에 알맞은 일을 하면서 자기 존재를 실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 나는 김종환의 말이 채 끝나기전에 자리를 떴다. 어쩐지 삭막한 기분이였다.
이튿날 출근해서 김종환이 하고 있는 일, 말하자면 《특수한 직업》에 대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후배 기자들에게 말했더니 생각밖에도 후배기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새로운 신생사물》이라고 흥분했다.
《신생사물 좋아하네. 생전 듣지못한 명칭을 내걸면 다 신생사물인가. 내보기엔 김종환이 하는 일은 인젠 인도주의적인 차원을 떠나서 영리를 목적으로한 일종의 장사거래에 불과하다고 보네.》
나의 이말은 후배기자들의 《집단폭격》을 받았다.
《선배님, 지금 선배님은 남을 위한 일, 말하자면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대공무사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시각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지금 시대에 다른 시각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다른 시각이라니?》
《례들면 김종환에 대한 시각입니다. 하긴 그를 60년대의 뢰봉식의 영웅, 구양해식의 영웅으로 볼수는 없지만 사경에 처한 생명을 구했다는 의미에서는 그도 역시 영웅입니다.》
《영웅이란 신성한 단어는 아무렇게나 붙이는게 아니야.》
《영웅에 대한 시각도 인젠 달라져야 합니다. 영웅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남이 해낼 수 없는 일을 해내는게 영웅이라고 봅니다.》
《금품을 받는 사람도 영웅이야?》
《생명을 구하고 받은 금품은 일종의 보수, 로임이라고 한 김종환이 말이 참 뜻있는 말입니다. 금품 자체가 나쁜것이 아닙니다. 금품은 어떤 경우엔 한사람에 대한 평가로 될수도 있습니다.》
《평가?》
《영웅으로 추대되는 사람한테 예전엔 증서나 주고 만민이 따라배워야 할 본보기로 내세웠지만 지금은 증서만 주는것이 아닙니다. 상금이라는것이 있지않습니까. 그것도 정부가 주는 상금, 그 상금도 돈입니다. 상금은 영웅에 대한 다른 한 방식의 평가라고 봐도 되지요. 그러니까 김종환이 사람을 구하고 받는 금품은 그에 대한 상금으로 봐야지요.》
《김종환처럼 스스로 취하는것도 상금인가?》
《정부가 인정해 주는것만이 상금이 아닙니다.》
《인간의 생명을 구했다는 점에서 그는 정신문명건설의 모범이고 그 보상으로 금품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그를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합법칙성을 투철하게 터득한 사람으로 봐야 할게 아니겠습니까.》
《그러고보면 김종환은 정신문명건설과 물질문명건설에서 새롭게 태여난 중국특색을 가진 모범으로 봐야겠구만. 하하하…》
《저는 김종환이 조선족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분합니다. 조선족중에 김종환처럼 남다른 생존방식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는것이 마치 신기루를 보는듯한 느낌입니다.》
후배기자들의 말에 나는 수긍이 가지는 않았지만 그러나 확실하게 세대차를 느꼈다…
그 뒤로 사경에 처한 사람을 뻔히 보면서도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천인공노할 일이 련속 보도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그중 두가지 일을 이 글에 올려본다.
《세 학생이 수영을 하다가 한 학생이 강 중심에서 기진맥진해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부근엔 몇 척의 배가 떠있었다. 같이 수영하던 두 학생이 한 배사공을 찾아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달라고 하니 그 배사공은 돈 10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우선 사람을 구하고 봐야 되지않겠느냐고 하니 그 배사공의 말이 돈을 손에 쥐여야 구해주겠다고 했다. 사람을 구한다음 돈 10원을 주겠다고 하니 외상은 안된다고 하면서 현금을 요구했다. 두 학생은 다른 한 배사공을 찾아갔다. 그도 역시 현금을 요구했다. 하는수없이 두 학생이 옷을 벗어놓은 곳까지 가서 호주머니 돈을 다 털어가지고 그 배사공을 찾아갔을 때는 이미 물에 빠진 친구는 자취를 감춘지 오랬다…》
《6월 22일 아침 6시 30분 200여명을 실은 려객선이 장강을 따라 내려오다가 사천성 합강현 수역에서 인위적인 책임사고로 뒤번져졌다. 200여명의 승객들이 세찬 강물속에서 생사판가리를 벌리고 있을 때 마침 한척의 배가 그 수역을 경과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했지만 배주인은 못본척 그냥 배를 몰아 지나쳐버렸다.》
이 두 기사를 보면서 어쩔수없이 이게 정말 인간이 사는 세상이냐고 나 자신에게 반문해봤다. 참담한 기분에 저도 모르게 떠올리게 된것이 김종환이였다. 만약 김종환이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무작정 물에 뛰여들었을것이다. 아, 김종환, 김종환 나 너를 다시 봐야겠구나…
보름이 지난 어느날 나는 북경석간 첫면에서 놀랍게도 김종환의 이름을 발견했다. 기사제목은 《견의용위인(見義勇爲人)》이였다. 우리말로 풀면 정의에 용감한 사람, 또는 의에 용감한 사람이다. 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옥연담 호수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영하고 있을 때 한 〈검은 손〉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벗어놓은 옷을 뒤지기 시작했다. 옷 임자들은 수영하느라 여념이 없을 때 그 〈검은 손〉을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호수가에서 음료수를 파는 김종환이였다. 〈검은 손〉이 돈지갑을 꺼내 가지고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김종환이 그 앞을 막아섰다. 〈검은 손〉은 소리내지 말라고 하면서 돈지갑의 돈을 반반씩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김종환은 쓴웃음만 지었다. 〈검은 손〉은 돈지갑채로 김종환에게 주며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김종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이번에 〈검은 손〉이 꺼낸 것은 비수였다. 김종환은 또 쓴웃음을 지었다. 일장 박투가 벌어졌다. 김종환은 비수에 손목을 찍히면서도 끝내 그 〈검은 손〉을 호수물에 처넣었다. 호수물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오는 그 〈검은 손〉을 결박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의 등뒤로 두 놈이 달려들며 김종환의 몸에 비수를 박았다. 칼을 맞은 김종환은 앞으로 넘어지면서 〈검은 손〉을 덮쳤다. 둘은 함께 호수물에 가라앉아 버렸다. 물재간이 없는 〈검은 손〉의 짝패는 물에 들어설 엄두도 못내고 있다가 사람들이 모여들자 줄행랑을 놓았다.
한참후에 물우에 떠오른것은 잔뜩 물을 먹고 지각을 잃은 〈검은 손〉이였다. 이어 떠오른 것은 등에 비수가 박힌 김종환이였다.
……
정의에 용감한 사나이 김종환은 다행히도 인차 응급치료를 받아 생명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나는 인차 이 기사를 쓴 기자를 전화로 찾아 김종환이 입원해 있는 병원을 알아냈다. 김종환이 응급치료를 받고있는 병원은 공군총병원이였다. 그길로 병원에 찾아갔다. 그러나 한창 응급치료중이여서 외부인 접촉을 금하고 있었다. 며칠후 비로소 나는 김종환을 만날수 있었다.
하얀 벽, 하얀 커튼, 하얀 침상, 모든것이 하얀 병실에서 유독 새까만 물체는 볕에 온몸이 가맣게 탄 김종환이였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김종환이 조금은 쌀쌀한 어조로 물었다.
《선생님은 오늘 기자신분으로 오신겁니까? 아니면 개인적인 신분으로 오신겁니까?》
《그건 왜 묻나? 아무 신분이면 어떻나?》
《혹시 기자신분으로 오셨다면 이방에서 나가주십시오.》
《왜 그러나?》
《전 기자가 싫습니다. 아니, 역겹습니다.》
《자네와 구면인 사람이 병문안 왔다고 생각하면 안되나? 게다가 같은 조선족이…》
《그럼 거기 앉으십시오.》
《좀 어떻나?》
《상처는 별로인데 기분은 억망입니다.》
《왜?》
《다 선생님들과 같은 기자덕분이지요…》
사연은 이러했다. 북경석간에 그 기사가 나간후 북경시 해당부문의 책임자가 찾아와 김종환을 〈정의에 용감한 투사〉로 천거하겠으니 서류작성에 협조해 달라고 했다. 김종환은 단마디로 거절했다.
《전 정의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저 내맘이 시키는대로 했을뿐입니다.》
그가 거절해도 그에게 〈정의에 용감한 투사〉라는 칭호를 수여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였다. 우선 그의 정의로운 행동에 대한 증인이 필요했다. 해당 일군이 당시 사건이 벌어진 옥연담공원 호수가에 가서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찾아 증인을 서달라고 하니 다들 그날의 광경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딴전을 부렸다고 한다. 지금 사람들은 좋은일이든 궂은일이든 증인으로 나서기 싫어한다. 증인으로 나서면 번거롭기만 하다는것이다. 그곳에서 해당 일군이 얻어들은 소리라면 김종환이 아무런 허가증도 영업증도 없이 음료수를 팔고 수영을 배워주며 돈을 버는 외지인이라는것 뿐이였다. 이어 김종환이 북경시에서 외지인에게 내주는 림시거주증마저 없는 사람이란것도 밝혀졌다. 북경에서 림시거주증을 내지않은 외지인은 거주조건이 부합되지않는 사람으로 취급되여 본적지로 송환된다. 그러니 김종환은 송환될 대상이다. 그 뿐만아니였다. 본적지에 가서 조사해본 결과 김종환이 소년시절 불량배들과 휩쓸려 다니다가 소년수용소에 반년 있었던 어두운 과거도 드러났다. 〈정의에 용감한 투사〉 칭호를 주자고 시작한 작업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투사칭호를 받지못하니 치료비도 자부담해야 했다. 긁어 부스럼이라더니 김종환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담배 한대 주시겠습니까?》
김종환이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여긴 금연인데…》
《속이 뒤집혀지는데 가릴게 있습니까?》
내가 권한 담배를 그는 걸탐스레 빨아댔다. 한숨을 쉬듯 후-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허거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보니 참, 제가 미련한 놈입니다. 그날 그 놈이 나한테 내미는 돈지갑을 고스란히 받아 임자한테 돌려주면 몸에 칼자국이 날 일도 없고 또 긁어 부스럼 낼 일도 없었겠는데… 지금와서 생각하면 제가 미련해도 한심하게 미련한 놈입니다.》
《아니야, 자넨 영웅이야.》
나의 이말에 김종환은 히스테리적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얼굴을 싸쥐고 황소울음을 터뜨리는것이였다. 나는 뭐라고 달랠수없어 그저 울고있는 그를 지켜만봤다.
한참후에 그는 울음을 그치고 두눈을 꼭 감은채 잠자코 있었다. 나는 가지고 온 취재용 록음기를 꺼내 록음테프를 끼워넣었다. 록음기에서 한국의 가수 김종환이 부른 《존재의 리유》가 울려나왔다.
《 ……
남자란 때로 그 무엇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때도 있는거야
너는 리해할수 리해할수 있겠지
정말 미안해 널 힘들게 해서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마
너의 곁에 항상 내가 있을테니까
우리의 미래를 위해 슬퍼도 조금만 참아줘
내가 이렇게 살아갈수 있는 리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야 널 사랑해
…… 》
며칠이 지난후 나는 김종환의 치료비를 대주려고 다시 병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김종환은 없었다. 간호원의 말로는 수술자리를 꿰맨 실을 뺀 그날로 김종환은 치료비를 물고 떠나갔다고 한다. 병원측에서 열흘정도 더 치료받고 출원하라고 말렸으나 김종환은 그냥 떠나갔단다.
그후로 나는 혹시나 김종환을 만날가싶어 시간만 나면 옥연담공원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김종환은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글을 시작하기 전날에도 행여나해서 옥연담공원을 찾아갔는데 김종환은 보지못하고 수영하다 익사한 어린이 시체만 보고 왔다. 어린이의 시체를 보면서 나는 김종환만 있어더라면 저 어린이는 익사체로 되지않았을거라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부르짖었다.
(어서 돌아와 종환아…)
2천년 7월 27일 북경에서
* 본 작품은 장백산 계열소설상 수상작(2000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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