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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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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귀두야, 안녕?-김영해
2019년 07월 18일 10시 33분  조회:863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김영해 
 
귀두야, 안녕?
 
 
 
교실출입문에는 언제나 자물쇠가 달랑 잠겨져있었다.
 
“참, 연미는 오늘도 늦을려나?”
 
명복이는 궁시렁거리며 바지호주머니를 뒤적거려 열쇠를 꺼내 자물쇠구멍에 밀어넣고 삑 돌렸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는 이내 열렸다. 명복이는 열쇠를 뽑고 자물쇠를 벗겨 문손잡이에 건후 문을 밀고 들어섰다. 교실 정중앙에 책걸상 두벌이 나란히 놓여져있다보니 널직하다 못해 운동장처럼 휑하였다. 교실 뒤벽에 붙어있는 칠판에는 “개학을 맞으며”라는 주제로 벽보가 꾸며져있었다. 명복이가 재간껏 그림을 그리고 연미가 또박또박 분필글씨를 쓴것이였다. 교실에 들어설 때마다 명복이는 그 벽보가 선참으로 눈에 띄워 기분이 좋았다. 제딴에도 그림은 괜찮게 그리는것 같으니까 화가나 디자이너가 되려는 꿈을 가져도 무방하겠다고 생각하고있는터였다.
 
명복이는 벽보에 눈길을 주며 씩 웃고는 책가방을 걸상에 놓고 물통을 집어들었다. 수도칸에 가서 물 한통을 받아든 명복이는 약간 다리를 벌린채 엉기적거리며 걸었다. 사타구니에 기저귀라도 찬것처럼 모양새가 영 꼴불견이였다.
 
아- 쪽 팔려. 이게 뭔 꼴이야?
 
연미가 봤으면 꼭 뭐라고 놀려줬을것 같아 명복이는 주위를 힐끗거렸다. 다행히 복도는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명복이는 교실에 이르러 밀걸레를 씻어 교실바닥을 쓱쓱 밀다말고는 주춤 서버렸다. 약간 미간을 찌프리고 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계속해서 밀걸레질을 했다. 그렇게 한참을 쉬여가며 청소를 끝낸 명복이는 역시나 엉기적거리는 걸음새로 물통의 물을 버리고 자기 자리에 앉았다. 칠판이 정면으로 보이고 벽쪽으로나 창문쪽으로도 거리가 알맞은 적당한 자리였다. 추울 때면 해가 비치는 창문쪽으로 조금 드텨앉고 해빛에 머리가 따갑거나 눈이 새물거릴 때면 벽쪽으로 조금 드텨앉으면서 늘 그 자리에서 뱅뱅 돌기에 한참 좋은 자리였다. 명복이는 책가방을 열고 조선어문교과서를 꺼내 뒤적거렸다. 교과서의 과문은 하나같이 따분하고 재미가 없었다. 명복이는 머리를 들어 교실앞쪽을 쳐다봤다. 오성붉은기가 칠판우의 정면에 붙어있고 그옆에 시계가 걸려있다.
 
일곱시 이십분.
 
연미는 아직도 오지 않고있다. 
 
이 계집애가 또 늦잠을 자나봐?
 
명복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가끔 가다 머리가 새둥지가 된채로 뛰여오거나 얼굴에 베개자국이 남아있는채로 상학종소리와 함께 교실에 들어서는 연미의 우습강스러운 꼴이 생각났던것이다. 엊저녁에도 컴퓨터로 늦게까지 음악프로그램을 본다고 했으니까 아마 눈곱도 못 떼고 헐레벌떡 뛰여올지도 모를 일이였다.
 
계집애가 엉뎅이에 뿔이 난겨-
 
명복이는 외할머니의 말투를 흉내내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만 보면 눈이 반짝거리는 연미였다. 이제 자기도 크면 가수를 할거라나 뭐라나 하는 연미가 명복이의 눈에는 영 한심해보였다. 
 
명복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다말고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반쯤 열고 복도를 내다봤다. 복도 저쪽 끝에서 팔에 붉은 완장을 건 한족애 두얼이 뭐라고 쑤얼거리는게 보였다. 
 
칫- 니들이 맨날 그래봤자 문명반은 우리인걸.
 
명복이는 “6학년”이라고 씌여진 학급패말아래에 걸린 삼각형의 류동홍기를 쳐다보며 “흥”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류동홍기는 뿌리를 내린 명복이의 자리처럼 3학년때 거기에 걸린뒤로 내리는 일이 없었다. 학급패말이 몇번을 바뀌는 동안에도 여전했다. 그러고보니 명복이와 연미만 남은것도 3학년때부터였다. 1학년때에는 10여명이 되던 학생들이 새로운 학기가 시작될 때마다 하나둘 적어지기 시작하더니 3학년에 올라오면서 달랑 두명만 남아버리고만것이였다. 그러고나서 오구작작 떠들 일도, 여기저기에 연필밥이며 종이뭉테기를 널어놓을 일도 없어지고말았고 규률도 위생도 맨날 만점이였다. 그래서 류동홍기따위는 시시해질려고 하는 명복이였다. 옆의 한족반에서 흘러나오는 랑랑한 글소리를 들으며 교실문을 닫고 도로 자리에 와 앉았다. 과문랑독이라도 해야 할것 같아 다시 조선어문교과서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1과부터 차례로 읽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교실에 명복이가 과문을 읽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10분쯤 지났을가. 
 
3과를 읽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박선생님이 들어섰다.
 
“랑독을 하는구나. 연미는 아직 안왔어?”
 
박선생님은 하이힐을 딸깍거리며 책상앞까지 걸어와 명복이의 머리를 살짝 어루만져주었다. 그 서슬에 향긋한 냄새가 명복이의 코를 비집고 들어왔다. 명복이는 코를 벌름거리며 벌씬 웃었다.
 
“안 왔어요. 연미는 매일 늦는걸요.”
 
“그러게 말이다.”
 
박선생님은 입을 쭝긋해보이고는 창곁에 놓인 사무상우에 핸드빽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명복이는 박선생님이 서랍에서 분을 꺼내 토닥토닥 얼굴에 바르는 모습을 멀거니 바라봤다. 올해 51살인 박선생님은 나이대에 걸맞게 약간 부푼듯한 몸매였다. 넙적하면서 윤택 나는 얼굴에 적당히 큰 눈이며 코, 입이 안성맞춤하게 자리잡고있어 꽤 유복해보이는 모습이였다. 더군다나 몇년전부터는 얼굴색도 밝아지고 짜증내는 일도 별로 없었다. 늘 웃고다녀서 성격 좋은 선생님이시구나 생각하고있었다. 시내에 집이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통근뻐스를 타고 다니며 출퇴근시간이 일정했고 아침마다 교실에 들어서면 손거울을 꺼내들고 분과 립스틱을 바르는것이 첫 일과였다. 매일 아침마다 화장을 하는 모습을 보며 명복이는 엄마가 반나마 쓰고 남긴 로션병을 떠올리군 했다. 이젠 류통기한이 지났을법도 한데 뚜껑을 열 때마다 은은한 향기가 풍겨 그것을 버릴수가 없었다.
 
선생님은 점점 예뻐지네.
 
명복이는 마술을 부리듯이 박선생님의 얼굴이 화사해지고 륜곽이 또렷해지는것을 지켜보며 입을 짭짭 다셨다.
 
화장을 끝낸 박선생님은 “상학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과문을 읽고있어.”하고는 경쾌한 걸음으로 교실을 나가버렸다.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들이랑 드라마이야기도 하고 자질구레한 집이야기도 하면서 아침시간을 때우는 박선생님이였다. 퇴직이 멀지 않았는지라 작년부터 굳이 교수안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것때문에 박선생님은 다른 선생님들보다 더 한가한 편이였다. 30여년을 꼬박 해온 일이라 교수안을 쓰는것이 식은 죽 먹기였지만 고작 두명뿐인 학생을 놓고 교학연구를 한다거나 새로운 교수방법을 적용한다는것은 어쩜 화사첨족 같은 일이였다. 협동학습이나 층차학습은 운운할 여지도 없는지라 최대한 명복이와 연미가 알아듣기 쉽게 교재내용을 가르쳐주는것이 보다 실용적이였다. 교재연구는 수업을 하면서 교수참고서며 사전들을 주르륵 펼쳐놓고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책을 들여다보며 하는것으로도 충분했고 하나를 가르치면 반개도 잘 리해하지 못하는 명복이나 연미에게 공부는 늘 피동적이였고 교재내용을 초월한 의문따위는 없었다. 따라서 박선생님에겐 수업시간 40분외의 시간마저 교수준비나 교학연구에 할애할 필요성은 썩 오래전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명복이가 과문 둬편을 더 읽었을무렵 상학종소리는 울렸고 이어서 박선생님도 교실에 돌아오셨다.
 
수입과 세률에 따라 바쳐야 할 세금액을 계산하는 수학시간이 끝나고 두번째시간은 조선어문시간이였다. 
 
뭘 쓰지?
 
명복이는 작문책을 펼쳐놓은채 뒤더수기만 썩썩 긁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동년시절에 있었던 잊을수 없는 일중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거나 몹시 후회되던 일, 심각한 계시를 받은 일을 화제로 작문을 지으라는 요구였다. 글감 고르는것부터가 어려운 일이였다. 명복이에겐 매일매일이 똑같아보였다. 아침잠이 적으신 외할머니가 푸르스름해서 일어나 지어놓으신 아침밥을 먹고 거의 일등으로 등교하여서 청소를 하고 연미랑 같이 공부를 하고 하학하여 집으로 돌아와 역시나 외할머니랑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잠을 자는게 전부였다. 길에 나다니는 사람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농촌마을에 감동이나 계시를 받을만한 일을 저질러주는 사람도 없었고, 명복이가 잊을수 없을만치 후회되는 일을 저지를 상대도 없었다. 명복이가 잴잴 말을 번질 때부터 마을엔 손군들을 데리고 사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이 태반이였고 그 애들이 학교에 붙을 나이가 되면 시내에 전탁생으로 보내지거나 로인들과 함께 이사를 가버렸다. 그렇게 비여버린 집들엔 어데선가 이사를 온 한족사람들이 들어서 살았다. 그런 탓에 지금도 한족반은 학생수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온 동네 소학교에 다니는 조선족애는 명복이와 연미 둘뿐이였다. 말이 온 동네지 실은 온 향진이였다. 마을이 여라문개나 되는 향진에 소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진중심학교가 하나뿐이고 소학부의 조선족반은 명복이네 반뿐이였다. 이제 여름에 명복이와 연미까지 초중에 진학하면 소학부의 조선족반은 없어질것이였다. 어른이고 애고 주위에 함께 울고웃으며 일을 만들어갈 사람이 없는데 잊을수 없는 일을 적으라니 명복이는 난감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선생님, 못 쓰겠어요. 글감이 없어요.”
 
명복이는 책상에 엎드리며 빤히 박선생님을 쳐다봤다.
 
“음?”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박선생님이 움찔하며 명복이를 바라봤다.
 
“애두 참, 소학교 6년을 다녔는데 집에서 있은 일이나 학교에서 있은 일가운데서 글짓기요구에 맞는 글감을 못 찾겠어?”
 
박선생님은 리해할수 없다는듯이 명복이를 향해 혀를 찼다.
 
“집엔 엄마 아빠도 없고, 학교에 오면 연미밖에 없는데 뭘요…”
 
명복이는 억울하다는듯이 툴툴거렸다.
 
“하긴… 근데 언제는 뭐 글감이 있어서 썼냐? 정 쓸것이 없으면 교과서의 과문들을 본따서 생활속에서 일어날수 있는 일들을 상상해서 써봐. 응?”
 
박선생님은 명복이에게 눈을 껌뻑해보이고는 다시 핸드폰을 꾹꾹 눌렀다. 아마도 게임하거나 채팅하는 눈치였다.
 
“네-”
 
명복이는 한숨을 풀 내쉬고는 엎드린 자세 그대로 작문책에 커다랗게 “잊을수 없는 일”이라고 제목을 썼다.
 
이모가 새해 선물로 노트북을 사줘서 감동받았다고 쓸가?…
 
명복이는 방그레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노트북을 사주면 자기는 연미처럼 음악프로를 보거나 게임만 하지 않고 여러가지 프로그램조작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공부에 유익한 자료도 찾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누군가가 이모일수는 없다는걸 알고있었다. 시내 복장회사에 출근하는 이모는 늘 바빴고 명복이만 보면 “넌 애물단지야. 이제 키도 할머니를 넘어서는데 할머니를 잘 도와드려.”하며 눈을 할기죽거렸다. 늘 까부장해서 눈치를 주는 이모가 무서웠다. 이모한테 뭘 사달라거나 용돈을 달라고 칭얼거려본적이 없었다. 그런 이모가 노트북을 사준다는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였다.
 
이모는 안되겠고… 연미랑 싸워서 후회된다고 쓸가? 아참, 연미가 왜 아직도 안 오지?
 
명복이는 벌떡 일어나서 목을 빼들고 창밖을 내다봤다. 멀리 보이는 길어구에도 연미의 그림자는 없었다.
 
“선생님, 연미가 왜 안 와요?”
 
“응? 어머, 내 정신 좀 봐. 전화를 한다는게 깜빡 잊고.”
 
박선생님은 창밖을 내다보며 핸드폰을 귀에 갖다댔다. 
 
“전화를 안 받는데… 아픈가?”
 
박선생님은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귀에 댄채 교실밖으로 나갔다.
 
계집애가 영 자고있는지도 모르지. 히히… 아, 맞다. 그 일…
 
명복이는 실실 웃으며 작문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5학년때쯤인가, 연미의 바지엉뎅이가 젖어있어서 오줌싸개라고 놀려줬던 일이 생각났던것이다. 
 
그날 점심에 청소를 하다말고 명복이는 칠판을 닦는 연미의 바지엉뎅이가 손바닥만큼이나 젖어있는것을 발견하였다. 늘 덤벙이면서 여기저기 물을 흘리고 다니는 연미인지라 또 수도칸에 물앉기라도 했나싶어 명복이는 “너 바지에 오줌 싼거지? 오줌싸개-”하고 놀려대기 시작했다. 연미는 홱 돌아서서 “내가 왜 오줌을 싸? 니가 쌌지?”하며 손걸레를 명복이쪽에 던졌다. 명복이는 걸레를 피해 교실뒤켠으로 뛰여가며 “키를 쓰고 울 집에 소금 빌러 오너라.”하고 익살맞게 목청을 뽑았다. 연미는 애가 나서 “아니야, 안 쌌어.”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명복이는 박장대소를 하며 “바보- 바지가 젖었는데.”하고 연미의 엉뎅이를 손가락질해댔다. 그제서야 바지엉뎅이를 만져보던 연미는 손바닥에 벌겋게 피가 묻어나자 “와-”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피를 본 명복이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어쩔줄을 몰라 당황해하는데 마침 박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피가 묻은 연미의 손과 젖어버린 바지엉뎅이를 번갈아보시던 박선생님은 연미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셔서 옷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아무것도 모른채 어정쩡해진 명복이에게 박선생님은 “연미는 이제 녀자가 되여가는거야. 너도 크면 알게 될거다. 놀려주지마.”하고 오금을 박고는 교실밖으로 내보냈다. 명복이가 창문으로 들여다보니 박선생님이 울고있는 연미의 등을 토닥이며 뭔가를 차근차근 이야기해주고있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연미는 한달에 한번꼴로 두어날씩은 체육시간을 안 본다고 교실에 엎드려있었고 명복이는 그때마다 “칫, 녀자가 되는게 머 어때서?”하면서 입을 비쭉거렸다. 아직도 연미가 녀자가 된다는게 뭔지 모르겠고 왜 그때 바지엉뎅이에 피가 묻었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연미를 놀려준게 후회될 일이라면 후회될 일이였다.
 
작문을 다 쓰고 다시 읽어보려는데 하학종소리가 울리는지라 명복이는 주섬주섬 책상우를 정리하고 교실밖으로 나갔다. 다음 시간은 체육시간이였던것이다. 체육시간은 한족반 애들이랑 같이 보게 되여 있었다. 3학년때부터 체육시간외에 영어, 음악, 미술 시간도 한족반 애들과 같이 시간을 보는데 그때마다 한족반 교실의 맨 뒤줄에 앉아야 했다. 처음엔 무엇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한족애들이 발언하고 소조토론하는것이 재미있어보였다. 명복이와 연미도 한족애들과 소조편성을 해주었지만 어쨌거나 언어가 딸리는편이여서 애들은 토론이나 발표에 잘 끼여주지 않았다. 이젠 한족애들과 대화도 마음대로 할수 있고 점심시간이면 같이 놀수도 있었다. 가끔 가다 모순이 생겨 “니네 조선족애들은…”하며 한족애들이 똘똘 뭉쳐 한편이 될 때는 속수무책이였다. 그래서 명복이는 언제나 한편이 되여주는 연미와 딱친구였고 한족애들과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 그래도 체육시간만은 함께 운동하고 유희도 할수 있어서 연미랑 둘이 하기보다 엄청 재미있었다. 그런 체육시간도 오늘은 별로였다. 연미가 없어서가 아니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명복이는 혼자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휴식시간에 전화를 해봐도 연미의 전화는 꺼져있었다. 감기에 걸려 코물을 질질 흘려도 자리를 비우는 법이 없었는데 별일이였다. 자리를 비우지 않기는 명복이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가다가 아플 때도 있지만 서로가 혼자면 얼마나 심심할가싶어서 꼬박꼬박 학교에 나오기로 무언의 약속이 되여있었던것이다. 닭알볶음과 민들레무침으로 도시락을 후딱 비운 명복이는 교실에서 뚜벅뚜벅 걸어다니다가 박선생님의 사무상에 다가갔다. 밀어넣어진 의자를 끌어당겨 엉뎅이를 붙이고 앉았다. 거죽이 베로도천으로 된 방석이 포근했다. 명복이는 사무상우에 턱을 고이고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부터 잔뜩 흐려있던 하늘은 더 우중충해있었다. 당금이라도 검은 구름장들이 아래로 무작정 떨어질것만 같아 가슴이 갑갑해났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마을로 통한 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 보였다. 명복이는 팔베개를 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박선생님은 인차 돌아오시지 않을것이였다. 요즘 들어 틈만 나면 작은 칼을 들고 민들레 캐러 나가셨다. 학교가 마을과 동떨어진 산기슭에 자리잡고있는지라 봄에 달래가 발그스름한 싹을 올리밀기 시작해서부터 여름이 짙어질 때까지 녀선생님들은 점심시간이면 달래며 민들레, 산나물들을 캐는데 열을 올리셨다. 명복이가 하교를 할 때면 선생님들은 록색나물로 저녁반찬을 만든다며 좋아들 하셨다. 어제도 비닐주머니에 골똑 민들레를 캐신 박선생님이 오후 상학종소리가 울릴무렵에야 돌아오셨다. 명복이는 잠간 눈을 감고 자려고 했지만 잠들수가 없었다. 가끔 가다 사타구니가 찡찡 아파나서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프러졌다. 하필이면 체육시간에 대렬훈련을 하다보니 엉기적거리며 겨우 따라다닌 명복이였다. 자유활동시간에 축구를 하자는 한족애들을 물리치고 교실에 들어왔지만 사타구니는 여전히 아팠다.
 
괜찮은건가?… 이제 며칠이 됐지?
 
명복이는 눈을 끔뻑거리며 날자를 세여봤다.
 
꼭 사흘전이였다.
 
그날 오후시간이 끝나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학교운동장에서 한족애들이랑 축구를 한 명복이는 저녁에 숙제를 끝내기 바쁘게 인츰 잠에 곯아떨어졌다. 한밤중에 소변을 보려고 일어났던 명복이는 깜짝 놀랐다. 오줌을 누는데 고추가 찡찡 아프길래 집안에 들어와서 전등을 켜고 살펴봤더니 고추의 껍질이 우로 댕댕 말려올라가 있는게 아닌가!
 
명복이는 덴겁하여 외할머니를 흔들어깨웠다.
 
“할머니, 내 고추가 왜 이래요?”
 
명복이는 눈을 비비며 엉거주춤 일어나앉는 외할머니앞으로 벌거벗은 아래도리를 쑥 내밀었다.
 
“멀 그러냐?”
 
잠기가 채 가시지 않은 외할머니는 눈을 슴뻑거리며 명복이를 쳐다봤다.
 
“이것 봐요. 고추가 왜 이렇게 됐어요? 껍질이 올라갔어요.”
 
명복이는 외할머니의 얼굴앞에 바투 다가선채 손가락으로 자기의 고추를 가리켰다. 그제서야 외할머니는 명복이의 고추를 들여다봤다.
 
“남자들은 크면 원래 이렇게 되는거여. 내사 사내녀석을 못 길러봤으니까 모르긴 하지만서두. 그 껍질이란게 올라가야 정상이란 소리는 들었구만 멀 그래. 그냥 자. 별일 없으면 절루 내려오겠지.”
 
외할머니는 명복이의 볼기짝을 찰싹 두들겨주고는 도로 자리에 누워버렸다. 명복이는 손으로 껍질을 살살 아래로 내리밀었다. 하지만 고추는 성난듯이 꼿꼿하게 서있고 껍질은 밀려내려오지 않았다. 다칠 때마다 쿡쿡 아파났다.
 
외할머니 말처럼 절루 내려올가? 남자들은 크면 왜 고추껍질이 올라가는데?…
 
명복이는 두손을 허리에 짚고 걱정스레 고추를 노려보다말고 어쩔수없이 팬티를 끌어올려 입고는 전등을 껐다. 외할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남자들은 크면 수염도 나는걸 보면 고추의 껍질도 우로 말려올라갈수도 있지 않는가. 헌데 엄마와 이모, 딸 둘만 키운 외할머니가 남자애들의 성장에 대해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달리 뭘 어찌할수도 없는 명복이였다. 
 
그렇게 외할머니의 말을 믿고 고추의 껍질이 절로 내려오거나 혹은 사타구니의 아픔이 사라지길 기다렸지만 사흘이 지난 아침까지도 고추는 그대로였다. 오줌을 눌 때마다 조금씩 아파서 물도 적게 마시지만 통증은 가끔 가다 은은하게 전해졌다.
 
아… 아빠라도 있으면 물어볼텐데…
 
명복이는 다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으며 한숨을 훌 내쉬였다. 명복이는 요즘 따라 아빠가 무척 그리웠다. 명복이는 엄마나 아빠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엄마는 명복이가 여섯살 때에 한국에 갔다고 하셨는데 여태 귀국한적이 없었다. 처음엔 한달에 한번씩 전화가 오다가 차츰 두어달에 한번씩으로 줄더니 이젠 일년에 고작 두세번 정도 전화가 온다. 전화가 올적마다 “나중에 가면 그동안 못해준거 다 보상해줄게.”하며 울먹이는 엄마였지만 명복이는 이젠 “엄마”라는 말조차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여섯살 때 엄마랑 찍은 사진을 닳도록 들여다보며 엄마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명복이의 얼굴은 여섯살 때의 얼굴이 아니였다. 동그랗던 얼굴이 기름해졌고 이마에 여드름이 줄느런히 돋아있는가 하면 코밑도 가뭇가뭇해서 엄마가 알아볼수 있을지 걱정이였다. 그래도 엄마는 목소리라도 들을수 있었지만 아빠의 소식은 그 어디에서도 들을수가 없었다. 외할머니는 아빠를 입에 올리는 법이 없었고 함께 사는 동안 명복이를 보러 오는 친가집식구들은 없었다. 명복이가 외가집만 있기라도 하듯이 기껏해야 이모네가 다녀가고 외할머니의 친척들이 다녀가는게 다였다. 
 
 
2학년땐가, “나의 가족”을 소개하는 글을 쓰라는 숙제가 있어서 외할머니에게 아빠에 대해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는 “아빤 먼데 갔단다. 너무 멀어서 언제 올지 모르거든. 그러니까 외할미의 말을 잘 들으면서 쑥쑥 커야 되는거다.”고 하셨다. 그때 외할머니의 표정이 무서우리만치 어두워서 겁을 덜컥 먹은 명복이는 그후부터 아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친구들이 아빠가 어디 갔냐고 물으면 “먼데 가셨대.”하고 얼버무렸다. 이젠 친구도 연미밖에 남지 않았으니 묻는 사람도 없었다. 아빠가 한국에 가고 할머니랑 같이 살고있는 연미에겐 외가집이 없었고 연미네 엄마도 아주 멀리 갔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둘은 가끔 수업을 하다가도 박선생님이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잠간 눈을 감고 조는 사이면 멍하니 앉아 창밖만 바라보고있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명복이는 먼데 가신 아빠를, 연미는 먼데 가신 엄마를 머리속에 그리고있었던것이다. 
 
지금도 명복이는 창밖을 내다보며 기억에도 없는 아빠의 얼굴을 머리속으로 그렸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그대로 엎드려 소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명복이는 오후 수업이 끝나자 곧장 집으로 와버렸다. 엉기적거리며 평소의 두배나 되는 시간을 소요하여 집에 도착할무렵 고추는 더 아파났다. 명복이가 잔뜩 울상이 되여 집에 들어서보니 외할머니가 민들레를 다듬고있었다. 
 
“왔냐? 연미가 학교 못 갔지? 어유, 그 불쌍한것이 죽다 살았네라.”
 
“네? 연미가요? 왜요?”
 
외할머니의 밑도 끝도 없이 중뿔난 소리에 명복이는 두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글쎄, 가스중독이란다. 엊저녁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석탄이 잘 타지 않았나보지. 니네 박선생님이 연미 찾으러 왔다가 발견하고 구급차를 불렀다니까. 아까 촌장이 시내에서 내려올 때에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더라.”
 
“와… 어떻게 그런 일이…”
 
명복이는 입을 커다랗게 벌린채 그 자리에 굳어져버렸다. 연미에게 전화를 한다고 나가신 박선생님이 안 보이시길래 민들레나 캐고있을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였던것이다. 하긴 학교에 있었다면 하교할 때 들려서 교실문 잘 잠그라고 당부를 하고 가시는 분인데 오후 내내 안 보이시길래 이상하게 생각했다.
 
“큰일날번했던거지. 하루밤새에 연미랑 할미랑 다 죽을번했잖냐. 그러길래 농촌에서는 석탄보다는 나무로 불을 지펴야 하는건데. 쯧쯧-”
 
외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깨끗하게 다듬은 민들레를 놋대야에 보기 좋게 담아놓으셨다.
 
그러니까 연미가 학교에 못 왔지. 맹탕 학교를 빼먹을 계집애가 아닌데.
 
명복이는 서둘러 책가방을 벗어놓고 슬그머니 뒤로 돌아서서 바지와 팬티를 끌어내렸다. 얼른 고추를 살펴봤다.
 
헌데!
 
댕댕 말려올라간 껍질이 시멀겋게 부어있지 않는가! 툭 다치기라도 하면 당금이라도 터질듯이 팽팽하게 부은 그것은 마치 고추중간에 양파링과자를 걸어놓은것 같았다.
 
“할머니, 내 고추가 떨어지는것 아니예요?”
 
명복이는 외할머니를 향해 덴겁한 소리를 지르다말고 급기야 커다란 눈에서 눈물을 뚝뚝 떨궜다.
 
“왜? 아직도 그놈의 고추가 아프냐?”
 
외할머니는 일손을 멈추고 명복이쪽으로 다가앉았다 .
 
“할미가 좀 보자… 어유- 곪은것 아냐? 이놈의 고추가 말썽이네… 걱정말아. 랠은 할미랑 시내병원에 가보자. 안 그래도 민들레를 이모 집에 갖다주려 했는데 잘됐네라. 뚝 그쳐. 사내녀석이-”
 
외할머니는 “어구구”하며 허리를 짚고 몸을 일으키고는 명복이의 팬티며 바지를 살살 끄당겨 입혀줬다. 그리고 명복이를 꼭 가슴에 끄당겨 안아주었다. 외할머니보다 한뼘이나 더 큰 명복이는 할머니의 몸에서 나는 시크무레한 냄새를 맡으며 곱다라니 안겨있었다. 어쨌거나 명복이는 아직 아이일뿐이였다.
 
 
이튿날 아침, 명복이와 외할머니는 첫 뻐스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창밖으로 파랗게 살이 오르기 시작한 산들이 언뜻언뜻 스쳐지나갔지만 명복이는 전혀 흥이 나지 않았다. 시내에 이르러 길 량켠에 화사하게 핀 복숭아꽃들이 눈에 띄워서야 입가에 조금씩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역에 이르러 뻐스에서 내리니 이모가 기다리고있었다. 연두색코드에 흰 바지를 받쳐입은 이모는 길가에 핀 복숭아꽃처럼 화사했다.
 
“이모, 안녕하셨어요?”
 
명복이는 입속으로 낮게 웅얼거리며 이모를 향해 히죽 웃었다.
 
“어- 그래.”
 
이모는 명복이를 쓰윽 쓸어보고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민들레를 넣은 비닐주머니를 받아들며 미간을 찌프렸다.
 
“엄만 또 멀 이런걸 갖고오셨어요? 병원 오신다며…”
 
“좋은거잖냐. 요즘엔 시내에서 파는 민들레도 비료를 친다더라.”
 
외할머니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이모가 회사에 잠간 말미를 맡은것이여서 셋은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갔다.
 
병원에 이르러 진찰권을 끊으면서 이모는 “니는 아플데가 없어서 별데 다 아프니?”하며 명복이의 사타구니쪽을 힐끗 쳐다봤다. 명복이는 순간적으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주춤주춤 외할머니의 뒤로 숨어들었다. 
 
비뇨외과진찰실앞에 이르니 몇사람이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있었다. 명복이는 진찰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고추에 무슨 병은 생긴건 아닌지, 무슨 수술이라도 해야 하는건 아닌지 걱정하며 긴장을 하고있었다. 
 
드디여 명복이의 차례가 되여 진찰실에 들어서니 50대쯤 되여보이는 남자가 흰 의사가운을 입고 점잖게 앉아있었다.
 
“누가, 어디 아픈데요?”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조선말을 들으며 긴장되였던 마음이 다소 풀렸다. 뭐라고 말할가 막 입을 벌리려는데 “얘가요, 제 조칸데요, 고추가 아프대요.” 하며 이모가 명복이를 의사앞으로 쑥 내밀었다. 얼떨결에 의사가 마주한 테블앞에 선 명복이는 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녀석, 부끄러워하긴. 자- 내가 좀 봐두 괜찮겠어? 이쪽으로 와.”
 
의사는 싱글 웃으며 명복이를 자기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명복이는 머뭇거리며 테블을 돌아 의사앞에 가서 멈춰섰다. 의사는 조심스레 바지를 끌어내려 명복이의 고추를 찬찬히 들여다보고는 도로 바지를 올려주었다.
 
“생식기에 염증이 왔어요. 큰 문제는 없어요. 일단은 고름부터 빼야 하니까 처치비를 물고 오세요.”
 
이모가 얼른 의사가 떼여주는 처방전을 들고 돈 물러 나가버리자 명복이는 또 쭈밋거리며 외할머니곁에 붙어섰다.
 
“근데 쟈가 고추껍질이 까올라져 올라간건 괜찮수? 그것땜에 염증이 오고 아픈거 아니유?”
 
외할머니가 의사를 보며 진물이 누르끼레 나온 눈을 슴벅거렸다.
 
“할머니, 그건 포피라고 하는겁니다. 남자애들이 사춘기에 이르면 생식기가 발달해지면서 귀두와 포피가 떨어지게 되여있는겁니다. 크는 과정에 꼭 겪는거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평소에 자주 씻어주면서 위생청결을 잘해주면 별문제가 없습니다. 자연포경이 안되면 간단한 시술로도 해결할수 있으니까 걱정 안하셔두 됩니다.”
 
포피? 귀두?
 
처음 듣는 단어에 명복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 무슨 말인지… 암튼 의사선생이 괜찮다니까 괜찮은거겠쥬.”
 
외할머니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명복이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모가 수금도장을 팍팍 찍은 종이딱지를 가져오자 의사는 명복이를 데리고 옆칸에 딸린 외과처치실로 들어갔다.
 
“왜 아빠랑 안 왔니? 다들 아빠랑 오던데.”
 
“아빠요… 먼데 갔어요. 엄마도 한국 가고. 외할머니랑 사는데…”
 
낮은 소리로 대답하는 명복이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리고있었다.
 
“무섭니? 괜찮아. 사내녀석이 이런것도 못 참으면 어떡하니?”
 
의사는 명복이더러 바지를 내리게 하고 핀센트로 약솜을 집어 고추를 살살 소독하였다.
 
“자식, 고추가 잘 생겼네. 자, 봐라. 요렇게 댕댕 말려올라간 놈은 포피고 여기 성이 나면 머리를 쳐드는 놈이 귀두야. 남자애가 어른이 될려면 이렇게 포피와 귀두가 떨어져있어야 하거든. 눈까풀이 자유로이 움직이며 눈동자를 가리거나 드러내는것처럼 포피도 자유롭게 움직여서 필요에 따라서 귀두를 덮거나 드러내야 하는거란다. 지금 포피가 막 귀두랑 떨어질려고 이러는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
 
의사가 곪은 곳을 살짝 터치고 고름을 쥐여짜는것이 아팠지만 명복이는 “아”하고 낮다랗게 신음소리를 뱉어내며 참았다. 웬지 의사앞에서 의젓한 남자애가 되고싶었던것이다.
 
처치가 끝나고나서 의사는 명복이에게 포피를 우로 끄당겨서 고추를 씻는 방법을 자상히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녀자라서 모르니까 너 혼자서 매일마다 씻어야 돼. 할수 있지?”
 
다짐을 받는듯한 의사의 말에 명복이는 힘있게 머리를 끄덕였다. 이 의사가 시키는것이라면 고추씻기가 아니라 무슨 수술이라는것도 할수 있을것 같았다.
 
다시 진찰실에 들어가서 의사는 외할머니에게도 명복이의 고추를 잘 씻어주라고 말씀하셨고 연고를 처방해주면서 다음부터는 아프면 참지 말고 제때에 병원에 오라고 거듭 당부했다. 
 
“사내들의 명줄과도 같은건데 잘 건사를 해야죠.”하는 롱담 섞인 의사의 말을 뒤로 하며 외할머니랑 진찰실에서 나오는 명복이의 마음은 구름이 걷힌듯이 가벼웠다. 
 
계단을 내려 병원로비에 이른 명복이는 슬며시 외할머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할머니, 저… 연미를 보고 가도 돼요?”
 
“누군데? 시간이 바빠죽겠는데 얘는?”
 
저만치 앞서서 콩콩거리며 쫓기듯이 걷던 이모가 발걸음을 딱 멈추고 홱 돌아섰다. 
 
“제 친구가…”
 
명복이는 우물거리며 힐끗 외할머니의 눈치를 봤다.
 
“어유, 깜빡 잊었구나. 올 때부터 그 생각을 하고있었던건데. 거 있잖냐? 우물집 상철이네 딸애, 그 녀자가 낳은 계집애를 말하는거다.”
 
외할머니는 앞이마를 철썩 치더니 이모를 향해 목소리를 죽였다.
 
“아… 누군가 신고해서 녀자가 도로 북조선으로 돌아갔다는 그 집? 근데 애가 왜요?”
 
명복이는 뭔 소린가싶어 눈이 둥그래서 두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어제 가스중독이 와서 병원에 실려왔네라. 넌 얼른 회사에 가봐라. 나랑 명복이가 보구 갈게.”
 
“그럼, 그렇게 해요. 요즘 회사일이 바빠서 자리를 오래 비울수 없어요. 명복이도 이모가 한가할 때 놀러 오도록 해.”
 
이모는 명복이와 외할머니에게 손을 저어보이고는 쌩 바람을 일구며 로비를 빠져나갔다. 외할머니가 연미 할머니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를 않아서 촌장과 통화를 하고 둘은 물어서 병실로 갔다.
 
막 문을 열고 병실에 들어가려는데 “명복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돌아다보니 박선생님이 손에 보온병을 들고 걸어오셨다. 명복이가 얼른 박선생님을 향해 경례를 올리는데 외할머니가 성큼 나서서 박선생님의 손을 잡으며“어구, 선생님이구려. 선생님덕에 연미랑 할미랑 살았다더구만.”하고 부산을 떨었다.
 
“뭘요, 명복이가 아프다더니 의사는 보였어요?”
 
박선생님은 손으로 명복이의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역시나 향긋한 냄새에 명복이는 습관처럼 코를 벌름거렸다.
 
“보였수다. 괜찮다누만. 녀석 고…”
 
“할머니!”
 
명복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할머니의 말을 가로챘다. 외할머니가 엉겁결에 말을 끊고 명복이를 쳐다보는데 박선생님은 히죽 웃더니 “명복이가 쑥스러운가봐요. 저도 명복이까지 등교하지 못한다니까 아예 청가를 맡고 여기로 왔어요. 얼른 들어가요.”하며 앞장서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제서야 명복이와 외할머니도 뒤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 박선생님은 “명복이네가 보러 왔어요.”하며 보온병을 탁자우에 놓았다.
 
연미와 나란히 누워 점적주사를 맞고있던 연미 할머니가 줄레줄레 들어서는 그들을 보며 얼굴에 엷은 웃음을 띠였다. 
 
“어떻게 왔수? 바쁜 걸음을 하셨네.”
 
기운이 하나도 없어보이는 연미 할머니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바람에 날려갈듯 가벼웠다.
 
“어유- 다행이요. 동갑이나 연미에게 박선생님은 정말 귀인이요. 큰일날번했잖구머요? 나도 이 녀석이 좀 아프다길래 왔던 걸음에 들렸소.”
 
외할머니가 연미 할머니의 침대가에 걸터앉는바람에 명복이는 문어구에 선채 발로 바닥만 긁었다.
 
박선생님은 명복이한테 침대곁에 있던 나무의자를 내여주고는 대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명복이는 의자에 앉아 병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천정에 일광등 하나가 달려있고 출입문 왼쪽에 나란히 걸어놓은 “환자수칙”과 “문병주의사항”이 하얀 벽에 붙어있을뿐 나머지 공간은 텅텅 비여있었다. 연미와 연미 할머니가 차지한 침대 두개가 좌우 량쪽벽에 붙어있고 침대머리에 탁자가 나란히 놓여있으며 그사이에 한메터 남짓한 통로가 있었다. 이불이며 침대시트까지 하얀 간소한 공간에 얼굴이 하얀 연미가 점적주사바늘을 손등에 꽂은채 새근거리며 자고있었다. 명복이는 주사액이 똑똑 떨어져 혈관으로 흘러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말고 “연미, 저 불쌍한것을 하마트면 잃을번했다니까.”하는 소리에 할머니들쪽에 눈길을 돌렸다. 외할머니는 연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있었고 연미 할머니의 움푹 패인 우묵한 눈에서 홀쪽하니 여윈 볼을 타고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있었다.
 
“정신이 드니까 연미가 무사한지부터 물었지 뭐유. 제 에미가 젖먹이를 떼여놓고 울면서 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한데… 나중에라도 쟤 엄마를 만나면 내가 뭐라고 하겠소.”
 
“연미나 우리 명복이나 불쌍하긴 매 한가지요. 상철이는 한국에 가서도 연미 에밀 못 만났다우? 한국 갈 때는 그럴 희망이라도 품고 간다드만.”
 
외할머니는 명복이쪽에 측은한 눈길을 주며 눈굽을 찍었다.
 
“그랬으면 언녕 돌아왔겠지. 그냥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잡고있는거짐. 상철이와 쟤 에미 사이가 각별했잖소.”
 
“울 명숙이도 언제 올려는지… 명복이가 이젠 저리 커가는데. 자식들은 끝까지 애물단지요. 후-”
 
두 할머니는 마주보며 한숨을 깊게 토해냈다.
 
자고있는 연미를 차마 깨우지 못하고 병실을 나오는 명복이의 마음은 썩 가볍지가 않았다. 후유증이 생길가봐 며칠은 입원치료를 해야 한다니까 한주일정도는 혼자 공부할걸 생각하니 더구나 어깨가 축 처졌다. 게다가 왜선지 외할머니의 얼굴도 어두워보여서 말없이 뒤를 따라 스적스적 걷기만 하였다. 뻐스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할머니는 별로 말씀이 없으셨다. 이따금씩 명복이의 볼을 만지다, 머리를 쓰다듬다 하시면서 명복이를 정깊게 바라볼뿐이였다.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나서 외할머니는 또 민들레를 캔다고 나가셨고 명복이는 방안에서 뒹굴며 티비를 보다가 낮잠을 잤다.
 
한잠을 푹 자고 깨여나니 외할머니가 돌아와서 저녁밥을 짓고계셨다. 구들목에 놓인 민들레바구니에는 민들레가 얼마 들어있지 않았다.
 
저녁를 먹고나서 명복이는 의사가 처치를 하고 내려놓은 고추포피를 우로 잡아당겨 귀두와 포피를 깨끗이 씻고 연고를 발랐다. 포피가 내려와있고 고름도 빠졌는지라 별로 아프지가 않아서 저절로 입이 벙그레졌다. 
 
명복이가 막 잠자리에 들려는데 외할머니가 명복이를 자기앞에 불러앉혔다.
 
“이젠 너에게 알려주어야 할것 같아서 그런다. 네가 아직 어린것 같지만 어쩔수 없다. 연미 할미를 보니까 사람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겠더구나. 그래서 말인데… 마음 단단히 먹구 들어라. 할미가 종일 생각해보구 어렵게 결정을 내린거니까.”
 
아빠 일을 알려주려는가?
 
순간적인 생각에 명복이는 바싹 긴장되였다. 막 가슴이 콩닥거리고 입술이 말라들고있었다.
 
“네 아빠 영복이는… 네가 세살 때 감옥에 갔네라.”
 
“네?!”
 
명복이는 순간적으로 흠칫 몸을 떨었다. 먼데 갔다고 해서 이름도 모르는 먼 나라에 가서 실종이 된것은 아닌지, 아니면 자기를 버리고 중국 어딘가에 가서 어떤 아줌마랑 살고있는것은 아닌지, 그것도 아니면 병이나 사고로 하늘나라에 간것은 아닌지 하고 상상을 해왔었던것인데 감옥이라니?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였다.
 
“니네 아빤 어려서 어머니가 세상 뜨고 가족은 아버지랑 남동생이 있었단다. 그런데 그 동생, 그러니까 니 삼촌이 니가 한돐이 될가말가 할 때에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여버렸지 뭐냐. 그걸 살려보겠다고 니 아빠가 별짓을 다하면서 돈을 벌었거든… 그러다가 그만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간거야. 죄가 중해서 무기징역을 받았다누나.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된단다… 니 할아버지는 화김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돌아가셨고 니 삼촌도 더는 병원비를 이어댈수가 없어서 호흡기를 떼였다드라. 그 후사들을 다 니 엄마가 치렀네라. 니 엄만 자기 할 도린 다 한거다. 그러고 그동안 진 빚을 갚으려고 한국으로 간거고. 니 엄마에 대해선 니 이모한테서 들어도 될거니까 나중에 이야기하는걸루 하고… 암튼 니는 할미 말을 잘 들으며 건강하게 커야 되구 이 할미랑 의지해서 살아야 된다는것만 알문 되는거다.”
 
명복이는 한동안 멍멍해서 외할머니만 빤히 쳐다보았다. 아빠가 감옥에 갔고 무기징역을 받아서 평생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는것만 머리속에 들어올뿐이였다. 그외에 할아버지나 삼촌, 엄마의 얘기는 뭐가 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명복이의 머리속은 이미 아빠얘기로도 충격을 먹고있었으니 그럴법도 했다. 
 
그날밤 명복이는 내내 쇠살창을 사이 둔 사이로 아빠와 헤여지는 악몽에 시달렸다. 
 
 
그 다음날부터 명복이는 한동안 우울하게 보냈다. 공부를 하다가, 티비를 보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멍해질 때가 많았고 어떤 날엔 까닭없이 이불속에 숨어 펑펑 울었고 어떤 날엔 한족애들과 걸고들어 싸움을 하는가 하면 어떤 날엔 축구를 한답시고 기진맥진할 때까지 종일 운동장에서 뛰여다녔었다. 그러다가 연미가 학교에 나오자 다시 말동무가 생기고 같이 놀기도 하면서 서서히 웃음을 되찾고 명랑해졌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알려주지 않은 사실도 있음을 명복이는 감감 모르고있었다. 명복이의 아빠가 지은 죄는 인신매매이며  그중의 한사람이 연미의 엄마였다는 사실, 그리고 엄마는 한국에서 한국사람이랑 재혼해서 살고있다는 사실도.
 
어쩜 그 전부의 사실을 알았더라면 명복이는 다시 연미랑 웃고웃으며 학교에 다닐수 없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명복이는 그런 사실들을 모른채 성장통을 겪으면서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스스로 알아가고있었고 매일마다 커가고있었다.
 
 
그로부터 한달이 지난뒤의 어느날 아침이였다.
 
명복이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며 휘휘호호 휘파람을 불었다. 씨엉씨엉 걷는 걸음새에서부터 힘이 넘치고있었다. 
 
명복이가 아침에 일어나니 고추가 성을 내고 곧추 서있었고 귀두가 쑤욱 머리를 내민채 포피는 우로 건뜻 말려올라가있었다. 손으로 귀두와 포피를 살살 만져봐도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귀두를 살살 만질 때마다 이상야릇한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명복이가 살그머니 포피를 잡아당겨 귀두를 덮어놓아도 포피는 다시 우로 건뜻 말려올라갔다. 아마 눈까풀처럼 자유로와진 모양이였다. 혹시라도 무슨 수술이란것을 하게 될가봐 아침저녁을 열심히 고추를 씻은 명복이고보면 한시름 놓고 기뻐해야 할 일이 분명했다. 
 
더군다나 지금, 명복이는 몸도 마음도 훌쩍 커있었다. 외할머니한테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은 뒤로 귀두도 꿈틀꿈틀 밖으로 나오려 하는걸 봐선 남자로 되여가는거니까 아빠나 엄마가 없어도 이젠 살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명복이였다. 열네살인 지금까지도 아빠나 엄마가 없이 외할머니의 손에서도 잘 자라왔지 않는가 하는 자부심에 신심도 생겼다. 명복이는 아직 꿈도 확실치 않지만 앞으로 뭘하든 잘 살아갈것이라고 마음을 굳혔다. 열심히 하면 화가나 디자이너도 될수 있을것 같고 다른 그 무엇도 될수 있을것 같았다. 그리고 그 마음은 오늘 아침 귀두의 로출로 확신이 되여버리고말았던것이다. 아마 한사람을 조금 크게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면 충분하다는 말도 이러한데서 비롯된것인지. 암튼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기분이 좋아진 명복이였다.
 
명복이가 흥얼거리며 막 골목길에서 벗어나서 학교로 올라가는 큰길에 접어드는데 옆골목으로부터 연미가 뛰쳐나왔다. 
 
“너 어제 그 음악프로 봤어? 노래하는거 죽이지?”
 
연미는 신이 나서 안무동작까지 보여줬다.
 
“너두 참, 가수가 되면 한국 갈려고 그러지? 엄마 만나려고.”
 
“어?! 어떻게 알았어? 울 엄마에 대해 알어?”
 
명복이는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어른들이 말하는걸 엿들었어. 니가 병원에서 잠만 자고있을 때…”
 
“아… 그랬구나. 실은 나도 안지 얼마 안되는데. 내가 음력설때 아빠한테 집에 오라고 울며불며 야단을 치니까 아빠가 할수없이 사정을 알려준거야. 근데 니 아빠 소식은 알어? 작년엔가, 니네 외할머니와 우리 할머니가 이야기하는것을 살짝 엿듣긴 했는데… 듣고도 그냥 잠을 자는척하면서 누워있느라고 엉뎅이가 다 델번했었거든. 히힛-”
 
연미는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크득크득 웃었다. 계집애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맨날 웃고 다니는 연미를 보며 명복이는 별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슬픔 같은것은 꼬물만큼도 찾아볼수가 없는것을 봐선 연미는 아직 철부지였다. 적어도 명복이의 생각으론 그랬다.
 
“알어. 하지만 괜찮어. 난 이제 어른이 되여가고있으니까.”
 
명복이는 목소리에 힘을 넣어 또박또박 말했다.
 
“그래?”
 
연미는 눈을 깜빡이며 명복이를 쳐보다가 깔깔 웃으며 저만치 앞으로 뛰여갔다.
 
명복이는 앞서 뛰여가는 연미를 따라잡으려 성큼성큼 뛰여갔다.
 
앞서거니뒤서거니 뛰여가는 연미와 명복이의 등뒤로 아침해살이 무더기로 쏟아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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