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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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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보이니(2)
2013년 08월 11일 19시 24분  조회:1586  추천:2  작성자: 김영해
5
“저 녀자가 벙어리 청소부야?”
나를 마주 향하고 앉은 녀자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날 눈빗질하고있었다.
나를 등지고 앉았던 박선생이 머리를 피끗 돌려 날 보며 씩 웃어주고는 녀자를 향해 머리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다고 대답하는 모양이였다.
“말을 알아들어?!”
녀자가 눈을 커다랗게 뜨더니 얼른 손으로 입을 가렸다. 박선생이 손으로 자기의 귀를 가리키기도 하고 녀자의 입을 가리키기도 하면서 한참을 부산스럽더니 녀자가 입을 막았던 손을 내리고 날 보며 게면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마도 듣지는 못하는데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고 말을 하는거라고 박선생이 이야기를 해준 모양이였다. 나는 녀자를 향해 입귀를 들어올리며 머리를 까댁거려보였다. 박선생의 손이 티비를 가리켜보이고 녀자의 눈길이 티비와 나를 엇갈아보며 경이로운 표정을 짓고있었다. 박선생의 갸냘픈 등은 열심히 들썩이고있었고 박선생의 손짓에 따라 녀자의 눈길은 내 몸이며 핸드폰, 십자수 심지어 구석에 놓은 청소도구들에까지 골고루 미치며 얼굴표정이 다양하게 변해가고있었다. 그 와중에도 손은 시종 입을 가리고있는것을 봐선 아무래도 박선생과 여전히 말을 하고있음이 분명했고 그 말의 내용의 중심대상은 나일것임에 불보듯 뻔했다. 둘이 그러는 모양을 나는 무표정하게 지켜보다말고 크게 하품을 하고 졸린듯이 책상에 엎드려버렸다. 그리고 눈을 감아버렸다. 순간 , 그 간단할래야 더 간단할수 없는 그 일관된 동작 하나로 인해 난 혼자가 되고말았다. 눈을 감는다는것—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외부세계와의 차단이였다. 나는 눈으로 세상을 봤고 눈으로 사람의 말을 들었고 말을 배웠으니 눈은 내가 세상을 내것으로 인식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였다. 이제 눈을 감았으니 워낙 고요하기만 했던 내 세상은 평화롭기까지 하다. 박선생은 나를 등지고 앉지 않아도 될것이고 녀자는 손으로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될것이고 그들은 내 쪽을 마음껏 힐끗거리며 소리내여 웃어도 될것이였다. 내 몸에 붙은 눈을 감아버리는 동작으로 나는 그들한테 불편했던 나라는 존재를 그들에게서 온전히 제거시킬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경이롭게 느껴졌다. 왜 그동안 피로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기를 쓰고 남의 말을 듣고 살았을가? 그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는 내 눈을 항상 경계하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을가?
문득 어디선가 들어두었던 “말을 알아듣는 벙어리가 더 무섭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그 말대로라면 말을 듣고 하기까지 하는 나는 더 무서운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정상인들의 세계에서 정상인이 아니면서도 입을 통해서 넘나드는 온갖 비리가 섞이는 말들을 빤히 쳐다보고 사는 나는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답지 않은 불편한 존재였다. 하지만 장애인의 세계에서는 역시 수화가 아니여도 얼마든지 말하고 들을수 있는 온전한 장애인도 아닌 이방인이였다. 종국적으로 난 어디에도 속할수 없는 어눌한 내 발음처럼 어리버리한 처지였다. 그러고보니 아들애의 말처럼 온전히 수화에만 골몰하면서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면 난 적어도 확실한 장애인으로 될게 아닌가?
말을 버리는 일, 아들애때문이 아니라도 한번 고민해볼만한 일이였다.
아주 이전에 병으로 잃었던 말을 , 피나는 노력으로 어눌하게나마 되찾았던 말을 이제 버릴지 말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것이였다.
 
 
6
“현이 애비가 공부를 끝낼려면 아직도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하니?”
엄마가 입술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천천히 말을 하고있었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내 눈을 보며 최저한 속도를 늦추어 말을 하는것이 엄마가 나에 대한 배려였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난 항상 엄마의 목소리는 잔잔한 보슬비처럼 차분하고 부드러울거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어릴 때 들어두었던 엄마의 목소리는 이미 기억에 없지만 말이다.
“네. 이제 1년만 더 공부하면 된대요.”
나도 최대한 입모양에 주의를 하며 말을 했다. 내 발음이 정확해야 엄마가 덜 가슴아파할거니까.
“그렇구나. 현이 애비의 공부가 빨리 끝나야 너도 덜 고생할텐데. 네가 어렸을 적에 내가 좀만 더 신경을 썼어도……”
엄마는 몸을 돌렸다. 촉촉한 엄마의 눈에서 난 엄마의 슬픔을 읽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엄마는 자신을 원망하군 했었다.
내가 여섯살 때 아버지는 인민공사의 제방뚝을 수축하는 공사현장에 반년째 집단주숙을 하며 가있었고 엄마는 혼자서 중풍으로 앓아누운 할머니를 돌보며 생산대일을 하고있었다. 나는 집에서 할머니의 물심부름을 하며 혼자서 놀다가 점심 때가 되면 가마목에 준비해둔 점심밥을 할머니와 함께 차려먹군 했었다. 농군들이 제일 바쁜 모내기철에 코물을 훌쩍이며 감기에 걸린 나에게 엄마는 촌위생소에서 얻어온 약을 먹이는것이 고작이였고 그렇게 거의 한달을 시름시름 감기를 앓다가 어느날 밤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입술이 새까맣게 질려 정신이 혼미해진채로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뇌막염이 진행된 상태였다. 의사는 엄마에게 감기로 인한 바이러스가 척추를 통해 뇌에 침입한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했다. 응급치료를 거쳐 생명을 보전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난 청력을 잃고말았던것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고요함때문에 난 밤에 잠을 자다가도, 아침에 눈을 떠서도, 밥을 먹다가도, 장난감을 놀다가도 안들린다고 시도때도없이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렸고 그때마다 엄마는 눈물로 얼굴을 씻군 했었다. 내가 차차 듣지 못한다는 현실에 적응이 되여가면서 안정을 찾아갈 무렵 난 이미 내 눈앞에서 수많은 입들이 하나같이 벙긋벙긋 하는 모습들때문에 곤혹스러워하고있었다. 엄마는 하루 아침사이에 청각장애인으로 된 내가 잴잴 번지던 말조차 안할가봐 틈만 나면 나를 마주앉혀놓고 수없이 같은 말들을 반복하면서 입모양을 보고 말을 따라하게끔 가르쳐줬고 학교 갈 나이가 되자 롱아학교에 보냈었다. 난 롱아학교에서 수화를 배웠고 입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방법을 배웠을뿐만아니라 글자를 익히고 지식들을 배웠다. 그리고 거기에서 영미를 만났고 우린 친구가 되였던것이다. 하지만 같은 롱아라고 해서 같은 운명인것은 아니였다. 부모가 국영공장의 로동자였던 영미는 어른이 되여서도 부모의 그늘아래에서 유족하다고는 할수 없지만 배고픈 걱정을 안하고 살고있었고 부모가 농민이였던 나는 생계조차 문제였다. 내가 롱아학교를 졸업할 즈음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만만찮은 내 교육비와 아버지의 병원비를 감당하느라고 엄마는 빚더미에 눌려 허리가 휘여져 숨이 가빴었다. 그런 엄마에게 난 무엇을 더 부담시킬수가 없었고 일찌감치 나랑 처지가 엇비슷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해버렸다. 결혼을 했댔자 다리를 살룩살룩 저는 장애를 가진 남편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시원찮았던 탓에 형편이 좋아진것은 아니였지만 청소부일이라도 하면서 먹고 살수 있다면 난 만족이였다.
2년전부터 남편은 장춘에 있는 기독교신학교에 재학중이였다. 그 학교를 졸업하면 전도사가 되고 전도사가 되면 매달 월급을 준다고 했다. 나를 만나기전부터 남편은 기독교신자였고 어쩌다가 교회에서 추천을 받아 그 학교에 가게 된것이였다. 남편의 말대로라면 그것은 신앙일뿐이지 먹고 살기 위한것이 아니라지만 어떻든간에 나에겐 남편이 졸업을 하면 수입이 보장된다는것이 제일 기쁜 일이였다. 나는 기독교를 신앙하는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의식과 믿음은 존중을 받아 마땅하다는것이 내 견해라면 견해였다. 어쩜 이것이 엄마가 장애인인 나를 교육받게 한 나쁜 점이라면 나쁜 점이겠다. 장애인이라면 남보다 지력이 뒤쳐지든지 의식이 뒤쳐지든지 뭔가 조금은 뒤져서 정상인들의 동정을 유발시킬수 있어야 하고 가난하면 가난때문에 주접이 들줄도 알아야 하는건데 전혀 그렇지 않은 나때문에 주위의 정상인들은 피곤할것이니까말이다. 다만 날 한껏 작아지게 하는것은 아들애뿐이였다. 나때문에 아들애가 마음의 장애를 갖게 하는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런데 아들애가 이제 나한테서 등을 돌리고 저만치로 도망치려고 하지 않는가? 그것도 내가 벙어리라서, 말을 하는 벙어리라서 말이다.
 
 
7
나는 뚫어져라 길건너편의 신호등만 바라보며 껌벅이는 수자를 세고있었다.
“……다섯, 넷, 셋, 둘, 하나.”
신호등이 파란 색으로 바뀌는 찰나 나는 급히 횡단보도에 내려섰다. 하지만 두발작만에 화들짝 놀라며 멈춰서고말았다. 난데없이 승용차 하나가 내 코앞을 휙 스쳐지난것이였다.
가슴이 활랑이며 등골에서 식은땀이 쫙 흘러내렸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급히 발걸음을 옮기려던 나는 누군가에게 팔이 홱 나꿔채이며 횡단보도밖으로 밀쳐졌다. 얼결에 휘청이다가 몸을 가누고서보니 웬 우악진 40대의 남자 하나가 눈앞에 떡 버티고서있었다.
뭐야?
나는 씩씩거리며 눈에 힘을 주고 남자를 째려봤다.
“죽고싶어?! 왜 차가 오는데 뛰여들어?”
남자는 50여메터밖에 서있는 검은색 승용차 하나를 가리켜보이며 눈을 부라렸다.
아……
나는 그제야 남자가 내 앞에 서있는 까닭을 눈치챘다. 금방 내가 치일번 했던 승용차였다.
“신호등이 켜졌길래……”
나는 어눌하게 내뱉으며 맞은켠 신호등을 가리켜보였다.
“경적을 울렸잖아?!”
손바닥을 탁탁 앞을 향해  치는 동작을 해보이는 남자의 목의 힘줄이 지렁이같이 살아나고있었다. 남자는 나를 향해 삿대질까지 해가며 뭐라고 더 말했으나 갑작스런 일에 정신줄을 놓아버린 나는 이젠 한마디도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남자의 입만이 물속에서 숨쉬는 금붕어입처럼 뻥긋거리고있을뿐이였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린채 숨이 한줌만해서 불이 뚝뚝 떨어질것 같은 남자의 눈길을 피해 코앞에서 쉴새없이 나불거리는 남자의 입만 멍하니 바라보며 남자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신호등……붉은 신호등……우회전……교통규칙……”
남자는 대개 이러루한 단어들을 내뱉고있었다. 아마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도 직진하던 차가 우회전은 할수 있다는 교통규칙도 모르냐고 나한테 호통치는 모양이였다. 나도 그쯤의 상식은 알고있었다. 다만 오늘은 길건느기게 급해서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살펴보지 않았을 뿐이였다. 하학하면 내가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가던 아들애가 혼자 집에 갔다는데 내 마음이 급할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놈의 경적은 원체 난 듣지를 못했다. 하지만 난 내가 귀를 못듣고 말을 못하는 벙어리라고 설명할 마음이 없었다. 하긴 내 눈의 집중력만 안떨어지면 어지간히 알아듣고 말할수 있지 않은가!
“……혼자 죽어!”
끝으로 이 네음절을 입술에 힘을 주어 또박또박 내뱉고난 남자는 발을 탕 구르며 나를 한번 더 노려본후 몸을 돌려 가버렸다. 쫙 줄이 선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의 커다란 등짝이 승용차안으로 사라지길 기다려 나는 침을 탁 뱉았다.
니나 죽어.
나는 코바람을 힝힝거리다말고 갑자기 눈물이 쑥 빠져나왔다. 나한텐 경적소리를 듣지 못한 죄밖에 없었다. 길건너편의 신호등을 확인하고 서있어야 했던 나는 우회전하는 차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나도 차에 치여 죽고싶어서 그런것은 아닌데  나만 몰아부치는 남자가 미웠다. 혹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면 그 남자는 하던 욕설을 멈추었을가?
그러기는커녕 병신 주제에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녀?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으로 보였다.
손등으로 눈물을 쓱 닦아버리며 길 건너편에 눈길을 주니 그새 붉은색으로 바뀌였던 신호등이 또 깜박이며 막 푸른 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우회전하는 차가 없나 살펴보고서야 횡단보도에 내려섰다.
오늘은 참 안좋은 날이다.
이제 소리를 보기가  참 지겹다~
 
 
8
 
인공와우수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박선생을 바라봤다.
“그래, 인공와우수술. 들어봤지? 보통 벙어리들은 말을 못들으니까 글자를 모르고 글자를 모르니까 인식이 훨씬 떨어지잖아. 근데 현이엄마는 글자를 아니까 그냥 벙어리들이랑은 달라. 현이엄마는 들을수만 있다면 우리랑 별로 다를게 없을것 같은데 말이야. 인공와우수술을 해볼 생각은 안해봤어?”
“아니요.”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공와우수술에 대해 못들어본것은 아니였다. 그것은 귀 뒤쪽의 머리를 박박 밀고 살을 길게 찢어내고 머리 뼈를 들어내고 그 작은 달팽이관에 전선을 삽입하고 뇌가 눌리지 않도록 뼈를 얇게 갈아낸 후 자성을 띤 보청기를 뼈에 부착한 후에 다시 덮는 수술이였다. 내가 어릴적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였지만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지금은 청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수술이였다. 하지만 복잡하고 힘든 수술보다는 수술전 검사부터 시작해서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은 나한테 있어서는 천문수자에 가까왔다. 한쪽 귀만 수술한다쳐도 거의 인민페 17만원에 가까운데 한달 월급이 800원인 나에게 있어서 그 돈은 죽을 때까지도 만져볼수 없는 돈이였다. 나는 아예 인공와우수술에 대해서 엄마한테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었다. 그런 수술이 있는 줄을 알면 가난때문에 딸에게 소리를 찾아주지 못하는 엄마의 마음은 더 갈가리 찢어질것이였다. 늙고 힘없는 엄마에게는 먼 옛날처럼 한번 장애인이 되면 쭉 죽을 때까지 장애인으로 사는것인줄 아는게 더 마음 편한 일일것이라고 난 생각했던것이다. 그리고 나도 잊고 살았었다. 소리를 들을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경제적인 요인때문에 소리를 찾을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더 비참해질것 같았고 가슴속에 워낙 얼마 남지 않은 행복감마저도 사라질것 같았기때문이였다. 자기의 무능력을 승인하며 산다는것은 어지간한 용기로 할수 있는것이 아니였다.
헌데 그 인공와우수술을 해보란다. 것두 난 여느 벙어리와 다른 글자를 아는 벙어리니까.
인공와우수술—
실은 나도 하고 싶다.
나도 이제 소리를 듣고 싶다. 한번도 들은적이 없는 아들애와 남편의 목소리, 너무 어릴 때 들어서 이젠 기억에 없는 부드러울것 같은 엄마의 목소리, 도대체 어떤 소리일지 궁금한 내 목소리, 책에서 글줄로만 읽어봤던 새들의 지저귐 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온갖 미세한 자연의 소리들과 눈으로 보기만 했던 이름도 모를 악기들이 내는 소리며 인공적인 소리, 고막이 파렬된것 같은 거대한 굉음까지도 듣고싶다. 그 미묘한 소리들과 잡다할것 같은 소리들속에서 사랑하는 아들애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가려듣고 함께 웃어주고 싶고 잠자리속에서 아들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등을 다독여 잠재워주고싶고  숨죽여 우는 아들애의 울음소리를 듣고 꼭 그러안고 달래주고싶다. 소리를 들을수만 있다면 소리들과 관련된 모든 일들을 하기전 다시는 고열때문에 괴로와하는 아들애를 옆에 두고도 잠에 곯아떨어지는 일이 없을것이고 차가 오는 줄도 모르고 길을 건느는 일도 없을것이고 아들애가 목이 터지게 부르는 줄도 모르고 잰걸음을 치는 일과 같은 슬프기만 한 일들이 없을것이였다. 또한 나는 다시는 누군가가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것이 겁나지 않을것이고 난 눈을 감고도 원하는 모든 소리와 말을 들을수 있을것이고 못듣는것때문에 겪었던 모든 불편한 일들을 피할수 있을것이였다.
헌데……
헌데……
난 인공와우수술을 할수가 없다. 난 여전히 들을수가 없다. 전혀.
 
9
 
누군가 팔굽을 툭툭 건드렸다.
머리를 돌려보니 어느새 들어왔는지 아들애가 제법 묵직해보이는 비닐가방을 들고 내 옆에 다소곳이 서있다.
--뭔데?
난 수화를 했다. 아들애가 말을 하지 말라고 한 날 이후로 나는 아들애앞에서 쭉 수화를 해왔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준거야.”
아들애가 말을 하며 비닐가방을 들어 내 책상우에 올려놓았다. 열어보니 공책이며 필통, 연필, 다이어리같은 학용품들이다.
--왜 준거야?
“래일이 장애인들을 도와주는 날이래.”
장애인돕기?
난 가슴이 덜컥했다. 조심스레 아들애의 기색을 살폈다.
--너 괜찮아? 기분이 안 나빠?
“아니. 뭐가 기분 나빠? 엄마, 아빠가 장애인인거 맞잖아.”
--아니, 넌 엄마, 아빠가 장애인인걸 싫어하지 않나 해서.
“아니야. 싫어한게 아니라 속상했어. 친구들이 엄마를 놀려주니까 속상했던거지 엄마,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싫거나 부끄러웠던것은 아니야.”
아들애가 입술에 힘을 주며 또박또박 말하고 있었다. 아들애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선생님이 말해줬어. 장애인들을 놀려주거나 괴롭히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구. 장애인들도 여느 사람들처럼 자기 부모와 자식을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간다고 했어. 그래서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야 하는거라구.”
--그래? 선생님이 그런걸 다 얘기해줬어? 참 고맙구나.
늘 고마운 선생님이였다. 조학금이 내려오면 아들애부터 챙겨주고 아들애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면 어쩌나 하고 유념해주시는 선생님이였다.
“이전에도 늘 얘기해줬는데 우리들이 어려서 잘 알아듣지 못한거야. 근데 이젠 나도 다 알아들을수 있어. 컸거든. 그리고 엄마, 수화를 하든 말을 하든 엄마 맘대로 해. 나 이제 정말 컸어. 나중에 내가 더 크면 엄마 귀를 수술해서 들을수 있게 할거야. 몹시 아플 때 수술같은거 하면 금방 낫잖아. 그러니 답답하더라도 그때까지만 기다려 줘. 알았지?”
“현이야~”
나는 아들애의 이름을 부르며 아들애를 꼭 그러안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열한살짜리가 이렇게 속깊은 궁리를 하고 있을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인공와우수술이 뭔지도 모르면서도 막연하게나마 엄마 귀를 수술해서 듣게 해주겠다는 아들애가 있는데 이제 내게 뭐가 더 필요하단말인가?
 
 
나는 오랜만에 아들애의 손을 잡고 백화점으로 갔다. 귀여운 동물그림이 있는 십자수라도 한점 해서 아들애의 교실에 걸어주고싶은 마음에서였다.
십자수를 파는 매대에 이르기도전에 멀리서부터 이전에 안보이던 커다란 풍경화그림 한폭이 눈에 띄였다. 나무잎이 노랗게 빨갛게 물들어있는 가을풍경이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거의 4메터 길이에 1메터 남짓한 너비를 가진 크기였다. 액자까지 맞춰넣어서 그저 보기에도 화백들이 그린 유화못지 않은 운치를 갖고있었다. 그리고 나를 놀라게 한것은 그 옆에 붙은 가격표였다.
만원?
입이 딱 벌어졌다.
만원짜리 십자수라니? 내가 가끔 몇백원씩 받고 팔던 조그마한 십자수에 비하면 엄청난것이였다.
문득 저런것 17점이면 내 귀가 들릴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저도모르게 내 입귀에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이제 난 소리를 보지 않고 들을수 있는 길이 생긴것이 아닌가? 실날같은 희망이라도 좋았다. 언젠가는 나를 듣게 해준다는 아들애의 약속이 내 마음의 드팀목이라면 뭔가 내 손으로 할수 있다는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 뿌듯한 일이였다. 꼭 이루어낼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목표가 생긴다는것, 어두운 턴넬을 지나갈 먼 곳의 한점의 불빛이 보인다는것은 어찌해도 좋은 일이였다.그리고 이제 남편도 1년만 되면 졸업을 하고 돌아올것이고 남편과 함께 손을 맞들고 벌면 행복은 한발작씩 내게로 다가올 것이였다. 워낙 행복이란 노력하는 사람만이 느낄수 있는거니까.
금방 받은 한달 월급을 탈탈 털어 제일 큰 크기의 십자수천과 두가방도 더 되는 색실뭉테기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
한껏 따스해진 봄바람이 살살 볼을 만지며 내 머리카락을 기분좋게 날려주고있었고 길가의 관상용나무들에서 파아란 잎사귀들이 파르르 파르르 떨며 웃고있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는 무수히 많은 달팽이관들이 팽글팽글 돌아가고있었다. 또 그리고 문득 꽉 닫힌 내 귀로 슬슬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살랑살랑 바람이 스치는 소리며 조잘조잘 시내물이 흐르는 소리며 삣쬬롱하는 새소리들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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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라주
날자:2014-01-03 10:59:02
소설을 보고 장애인들의 서글픈 인생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많이 써주십시요 추천합니다
Total :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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