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가 아까부터 나를 힐끔거린다. 세면도구를 침대밑에 밀어넣고 생필품과 식품이 놓여있는 탁자우를 정리하는 내내 어머니는 미간을 약간 찌프린채 내쪽에만 신경을 쓰고있다. 내가 머리를 돌리면 제꺽 눈길을 피하면서 아닌보살을 하다가 내가 안보는것 같으면 또 흘낏거린다.
“왜 그러십니까? 왜 자꾸 절 봅니까?”
나는 눈섭을 쭝긋하며 짜증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저……저…… 누구……시우?”
머뭇거리며 나를 쳐다보는 어머니의 눈길이 덩둘하다.
“어머니 아들입니다. 둘째 아들 영수. 모르시겠어요?”
“아~ 영수. 알지. 내가 왜 모를라구?”
머리를 끄덕끄덕하는 어머니의 동공은 텅 비여있다. 어머니는 허허로운 눈길로 사위를 휘휘 둘러보더니 탁자우에 손을 뻗어 바나나 한개를 집어든다. 껍질을 벗겨 뭉텅 뭉텅 목이 메여지게 떼여먹는다. 거퍼 열개를 세기도전에 마지막조각까지 입에 밀어넣고는 또 한개를 집어든다.
“천천히 드세요. 누가 빼앗기라도 합니까?”
나는 컵에 물을 따라 건네드렸다.
“우리 둘째는 안온다우? 에미 볼러 병원에.”
어머니는 물을 꿀꺽 들이켜더니 못마땅한 눈길로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제가 둘째라니깐요. 둘째 아들 영수.”
나는 어머니의 눈을 쳐다보며 마디마디 힘을 주어 말했다.
“오~ 둘째 아들 영수.”
어머니는 또 머리를 끄덕끄덕하고는 아까처럼 뭉텅뭉텅 바나나를 떼여먹는다.
후~
저도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어머니가 치매라니?
어제 아침식사를 할 때였다.
어머니가 갑자기 민우를 향해 눈을 지릅뜨셨다.
“넌 누구냐? 왜 우리 집에 왔냐? ”
“네?”
민우는 밥을 씹다말고 눈만 슴벅거렸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애가 놀라게.”
안해가 어머니를 할깃거리며 민우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왜라니? 너 얼른 제 집에 가!”
어머니는 안해를 찔 흘겨보며 민우에게 밥풀이 묻은 숟가락을 흔들어댔다. 급기야 민우가 울음보를 터뜨리면서 입안에서 밥알이 튕겨나왔다. 안해는 제꺽 민우를 그러안으며 어머니를 향해 눈을 치떴다. 어머니가 숟가락을 던지고 방으로 휭하니 들어가는것을 보면서 나는“아차”싶었다. 며칠전에도 갑자기 나를 빤히 쳐다보며 “누구시우?”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던것이다. 그냥 넘길 일이 아니였다.
나는 어머니와 따지려드는 안해를 달래서 출근시키고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왔다. 의사가 인지능력 정밀검사며 혈액검사, 에마라이검사를 시키고 결과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들어갔다. 검사결과를 적은 종이들을 휘릭휘릭 넘기며 대충 훑어보던 의사가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덤덤하게“로년성치맵니다.”하고 내뱉는 순간 나는 멍해지고말았다.
어머니가 로인 100명중에 5명 꼴로 걸린다는 치매라니?
그제야 그동안 어머니가 보이신 반상적인 행동들에 리해가 갔다. 1년전부터 드문히 자주 쓰는 생필품을 두는 곳도 잊어버리고 오후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아침인줄로 착각하셨다. 그러다가 서너달전부터는 한달에 한번 꼴로 돈이며 물건들이 잃어졌다고 괜히 이 사람 저 사람 의심하면서 주변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셨고 걸핏하면 버럭버럭 화를 내며 누구라없이 욕을 해댔다. 안해는 “로인네가 점점 성격이 괴퍅해진다”며 못마땅해하였고 나는 나대로 사람이 늙으면 의례 기억력이 감퇴되고 성격도 변하나보다고 여겼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런것들이 다 치매증상이였던것이다.
서둘러 입원수속을 하고 생필품을 준비하는 동안 어머니는 신뒤축을 잘잘 끌고 어린애처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딱히 볼것도 없으면서 내내 사위를 두리번거리기만 하셨다. 낯선 환경에 대한 불안감에서였다. 그렇게 아침부터 정신줄을 놓으셨던 어머니는 오후에 잠간 눈을 붙이고나서야 올똘한 정신으로 돌아왔었다.
어머니가 오늘 아침식사를 할 때까지도 멀쩡하시길래 오늘은 괜찮나싶었는데 내가 세수하고 들어오는 사이에 또 정신줄을 놓고 지금 나를 못알아보는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있을려니 가끔 가다 꼭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해서 자기 머리를 툭툭 치며 “이걸 어째? 이걸 어째?”하고 넉두리를 하던 어머니의 모습이며 옷을 반반하게 차려입고 출입문앞까지 왔다가도 한참을 멍하니 서있다가 “어딜 가려고 했지?”하고 락담하며 다시 방에 들어가던 어머니 모습들이 선히 떠오른다. 다른 가족들이 집에 있는 동안에도 가끔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집에 혼자 남았을 때는 정신이 맑았다 흐렸다를 얼마나 반복하셨을가싶다. 그때 어머니는 깜빡깜빡하는 자신의 기억때문에 얼마나 혼란스럽고 막막하셨을가? 자식이 되여서 그것도 모르고 “사람이 늙으면 저렇게 되는구나”하고 여겼던것을 보면 내가 어머니에 대해 여간 무심한것이 아니였다. 병치료라도 잘하여 속죄하고싶은데 치료는 병의 진행속도를 늦출수만 있을뿐 완치할수 없는 병이란다.
후~ 어머니는 이제 어느만큼 더 망가져야 하는것일가?
한숨이 나간다……
2
요즘 들어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이고 정신이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한참씩이나 시계를 들여다보다 창밖을 내다보다 하면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헛갈려 하셨다. 아침에 유치원에 가는 민우에게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을 활짝 펴고 웃으면서 “이쁜 손자~ 빠이빠이”를 하시고도 저녁밥상에 앉으면 이 사람 저 사람 얼굴을 번갈아보며 “누구들인데 내 집에 있수? 우리 둘째 오면 당장 쫓겨날줄 아시우.”하고 눈살을 꼿꼿이 세웠다. 그런가 하면 낮에 티비를 보다말고 갑자기 일어나서는 “도적이 오는구나.”하며 돈지갑의 돈을 탈탈 털어내서 베개속에 숨기기도 하고 낮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에미가 좋아하는 생선국을 끓여야지.”하며 랭장고에서 얼려둔 잉어를 꺼내 그대로 냄비에 집어넣기도 하셨다. 그런 어머니의 뒤를 따라다니며 일일이 수습을 하다보면 가슴 한구석으로부터 말못할 슬픔같은것이 꾸역꾸역 올리밀었다.
오늘도 울화 비슷한 슬픈 감정을 추스리며 어머니가 벌려놓은것들을 수습할 동안 어머니는 티비를 보다말고 쏘파에 기댄채 잠이 들어있었다. 약간 벌려진 입귀로 침이 흘러나와 허옇게 줄을 긋고 있었고 가릉가릉 코를 골며 잠들어있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픈 사람같지 않게 평화로와보였다. 아마 주무시는 동안에는 어머니는 건강한 모습으로 생활하는 온전한 자신을 꿈꾸고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갑삭하게 마른 어머니를 들어서 방안의 침대에 눕히고 거실로 나와 카펫우에 벌렁 누워버렸다. 나도 쉬고싶었다.
어머니가 치매확진을 받은 다음부터 우리 집의 생활질서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나는 주근을 야근으로 바꾸고 안해와 둘이서 교대로 어머니를 돌보았다. 그러다보니 출근시간이 아니여도 몸은 늘 긴장상태에 있어야 했고 간혹 짬시간을 타내 쉴뿐이였다. 요즘엔 대중할수 없는 어머니의 정신상태때문에 쉴 여가가 마땅치 않아 몸이 뻐근했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동안 잠간이라도 눈을 붙이면 정신이 날것 같았다.
눈을 감고 온갖 잡생각을 지우며 잠이 들가 말가 할 때였다. “삐이익~”하고 열쇠 트는 소리가 들리더니 “덜컹”하며 출입문이 열렸다. 문쪽을 보니 안해가 문을 반쯤 연채 막 열쇠를 뽑고있었다.
“뭐 이런게 다 있어? 에이, 재수없어!”
안해는 문을 닫고 들어서면서부터 투덜거렸다.
“왜 그러는데?”
나는 부스스 일어나 앉으며 독오른 고추같이 댕댕하게 굳어진 안해의 얼굴에 눈길을 주었다.
“아, 글쎄! 호구부를 안고쳐주잖아요.”
“호구부에서 뭘 고치는데?”
난데없는 소리에 나는 의아해났다. 안해는 대충 신발을 벗어던지고 종종걸음으로 걸어 쏘파에 털썩 들어앉았다. 화를 낼 때면 의례 그러하듯이 쌕쌕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민우요. 민우이름 고치려고 공안국 호적과에 다녀왔어요. 아까 호구부를 가지고 입학등록하러 학교에 갔더니 호구부에 있는 이름 그대로 박민우라고 적어야 한다더라구요. 학적은 호구부를 기준으로 한다면서. 그래서 입학등록도 안하고 그 걸음으로 공안국에 갔더니 이름은 얼마든지 고칠수 있는데 성씨는 못고친대요. 애가 만 18살이 되여서 동의를 하면 그때 고칠수 있다나 뭐라나. 무슨 법이 이래요?”
안해는 단숨에 기관총 쏘듯이 내뱉고는 발딱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나이가 들어도 일이 제 생각대로 안 되면 막 그물에 걸려나온 고등어같이 팔딱거리는 모습은 여전했다. 나는 안해가 사라진 방문쪽을 향해 실없는 웃음 한점을 흘리고 다시 카펫우에 벌렁 누워버렸다.
박민우라?
그제서야 민우녀석이 호적에 있는 이름은 최민우가 아닌 박민우였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최민우라고 몇년동안을 부르다보니 깜빡 잊고 살았던것이다. 애이름때문에 안달을 떠는 안해의 마음을 알것 같았다. 8월말이면 소학교에 입학하는 녀석에게 갑자기 선생님이 “박민우”하고 부르면 자기 이름이 최민우인줄 알고 있는 녀석이 어리둥절해질게 뻔했다. 함께 유치원에 다니던 애들이 “넌 왜 갑자기 박민우가 됐어?”하고 캐여묻기라도 하면 녀석은 대답이 궁해질것이였다. 녀석이 상처를 받을것을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짠한데 안해의 마음이야 오죽하랴 싶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부러 애를 속이려고 그랬던것은 아니였다. 나와 안해는 민우에게 친아빠가 따로 있다는 사실을 민우가 부모의 마음과 처지를 리해할수 있을만큼 컸을 때 이야기해주려고 작정했던것뿐이였다. 이제는 입학때문에 호적문제가 튀여나왔으니 그냥 얼버무릴수도 없는 상황이 되고말았다. 당장은 민우에게 자기의 이름이 박민우라는 사실을 될수 있는 한 상처를 덜 받게 하면서 알려주고 받아들이게 하는것이 우선인데 그걸 어떻게 하느냐가 문제이다.
후~
또 한숨이 나온다.
어머니가 아프다는것을 알고나서 한숨은 그동안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출구를 찾기라도 했듯이 시도때도 없이 습관처럼 흘러나온다. 그렇게라도 한숨을 토해나면 조금은 숨을 쉴것 같기도 하다.
헌데 정말로 요즘 같아서는 사는게 너무 힘들다. 어디선가 예기치 못했던 문제들이 불쑥불쑥 튀여나와 나를 한번씩 흔들어놓고 간다. 그때마다 괜찮은척 씩 웃어보이지만 파도가 바다가의 모래를 핥고가듯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가고있었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걸가?...... 어머니는 어떡하고 민우는 어떡하지?......그리고 주성이는?......
눈을 감고있어도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머리속을 휘젓고다닌다. 생각을 말자 생각을 말자 하고 되뇌이는 사이 내 몸은 점점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며 나는 까무룩한 잠속으로 서서히 서서히 빠져들고있었다……
3
다행이였다.
주성이가 왔을 때 어머니는 마침 정신이 맑아있었다.
“저……할머니, 잘……지내셨어요?”
주성이는 문가에 선채 머뭇거리며 어머니를 향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음?”
그제서야 티비에만 집중하고있던 어머니가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내며 머리를 돌렸다. 다음 순간 어머니는 아픈 로인네같지 않게 벌떡 일어나서 엎어질듯이 허겁지겁 문께로 다가왔다.
“이게……이게……주성이가? 내 손주 주성이가?”
주성이의 손을 와락 부여잡은 어머니의 뿌연 눈에 눈물이 고이는가싶더니 주루룩 흘러내렸다. 이제 이마에 여드름이 몇개씩 돋아있고 코밑수염까지 가뭇가뭇한 주성이는 동그랗던 얼굴이 약간 길어지긴 했지만 눈매며 입귀에 어릴 때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네……할머니가 아픈것은 ……괜찮으신가요?”
주성이는 당황했는지 잡힌 손을 빼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럼, 그럼. 우리 주성이가 언제 이렇게 컸냐? 이 할미는 손주가 이렇게 크는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넉두리를 하며 주성이를 쏘파께로 잡아끌었다.
“세상에? 어쩜 이리도 잘 컸냐? 쯧쯧~ 청년이 다 되였구나. 열두살적까진 할미 뒤를 곧잘 따라다니던 꼬맹이였는데……그동안 어떻게 한번을 안다녀가냐?......어이구, 어찌 혈육의 연을 끊으려고…… 니 에민 독하기두 하네라.”
어머니는 주성이의 손을 싹싹 어루만지시며 눈물을 멈추지 않는데 주성이는 다소 어색한 표정으로 사위를 두리번거리고있었다.
“어머니, 그만 하세요. 애가 어쩌다 왔는데 좋은 말들을 해줘야지 않습니까?”
나는 어머니에게 티슈를 건네주었다.
“그래, 그래야지. 몇년만에 보는 내 새낀데. 내가 너 보러 가겠다고 전화를 할 때마다 네 에미가 너한테 상처가 된다고 기를 쓰고 말리더니……네가 어른이 되면 제 피줄을 찾아 오겠지 하는 요행으로 하루하루를 참고 견뎠는데 이렇게 보는구나. 어이구, 우리 주성이~”
어머니는 한손으로 우묵하게 들어간 눈확을 꾹꾹 눌러닦고 다른 손으로 주성이의 얼굴을 쓰다듬기도 하고 등을 툭툭 두드려주기도 하면서 어쩔줄을 모른다. 주성이는 부자연스럽게 어머니에게 몸을 맡긴채 피끗 내 얼굴을 쳐다보고는 눈을 내리깔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주성이가 인터폰으로 “주성입니다”라고 한마디를 한 외에 나한테 반토막의 말도 건네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터폰으로 한 말은 내가 아니고 다른 그 누가 물었어도 대답했어야 할 말인것을 보면 결국 나한테는 입도 뻥긋하지 않은 셈이였다. 갈라져있은 시간동안만큼이나 주성이와 나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골이 패워져있는 모양이였다.
“자식,이젠 아빠 키를 넘어서네. 어른이 다 됐구나. 어디 아픈데는 없니? 공부는 잘하고 있고?”
나는 일부러 목소리톤을 높이며 주성이의 어깨를 툭 쳤다.
“네. 아버지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버지?
나는 멈칫했다. 주성이의 입에서 내가 익숙했던 “아빠”란 호칭대신 “아버지”란 낱말이 생경스럽게 튀여나오고있었다. 열두살적에 엄마를 따라가며 “아빠, 나 아빠마음 알아요.”하던 주성이가 지금은 과연 어느만큼이나 내 마음을 알고있을가?
여전히 코물눈물범벅이 된채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늘어놓는 어머니와 불편한 자세로 가끔 가다 어색하게 씨익 웃어주면서 건성으로 대답하는 주성이를 번갈아보며 난 마음이 착잡해졌다.
정말 어른이 되면 녀석은 다시 찾아올가?
나는 차가 떠나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차창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주성이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열일곱살짜리 애치고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우수가 비낀 눈빛이였다. 그 눈빛으로 녀석은 나에게“엄마를 원망하지 마세요. 제가 어른이 되면 찾아뵐게요.”하고 말하고는 훌쩍 떠나가버렸다.
문득 주성이에게만큼은 난 영원히 나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에게 맑은 눈빛을 주지 못한 리유만으로도 나쁜 사람으로 락인받기엔 충분했다. 그럼에도 내가 주성이에게 아빠로 인정받고싶은것은 단지 미련이나 욕심때문일가?
후~
나는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끝내는 묻지 못했던 말 한마디를 허공에 던졌다.
주성아, 넌 만 열여덟살이 되면 성씨를 고칠거니?
하고.
4
“엄마, 나 로봇인형 살거야!”
민우가 장난감을 놀다 말고 저만치 던져버렸다.
“안돼. 너 지난주에도 하나 샀잖아. 갖고놀것이 있는데도 자꾸 사는것은 돈랑비야.”
안해가 옷을 개이다 말고 민우를 쳐다보았다.
“그래도 사줘요. 우리 돈 많잖아요. 내가 전번날 돈을 이~렇게 많이 갖다줬는데.”
민우는 두팔을 벌려 커다란 원을 그려보였다.
“안돼. 그것은 민우가 대학교 갈 때 쓸 학비야. 그러니 누구도 쓰면 안되는거야.”
안해는 민우의 눈을 들여다보며 또박또박 일러주었다.
“힝! 엄마, 미워! 아빠가 날 쓰라고 준 돈인데……”
민우가 발딱 일어나더니 방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 저 녀석이……”
안해가 발딱 일어섰다. 그 서슬에 무릎에 놓였던 옷들이 떨어지며 흩어졌다.
“관둬. 애하고 뭘 따지려고.”
나는 안해한테 휙 손을 저어보였다. 안해는 민우가 들어간 방문쪽을 꼬나보며 신경질적으로 발을 탕 구르고는 탈싹 주저앉았다.
“아니, 6년만에 고깟걸 들려보내면서 애한테 뭐라고 했길래 맨날 제돈이라고 저러냐구요?”
안해가 옷을 탁탁 털며 화를 냈다.
“아직 어려서 그럴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역시 민우가 고까운것은 어쩔수 없었다.
생각외로 민우는 자기의 이름이 “박민우”라는것을 잘 받아들였다. 처음에는 “왜죠?”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는가싶더니 친아빠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도, 엄마가 친아빠와 리혼을 하고 나와 결혼했다는 사실도 ,이름이 “최민우”가 아니고 “박민우”여야 하는 사실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들어주었다. 며칠동안은 가끔가다 시무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인츰 언제 그랬냐싶게 웃고 떠들어댔다. 담임선생님한테도 사정이야기를 한터여서 학교생활도 무난하게 하고있었고 나와도 예전처럼 “아빠, 아빠”하며 같이 놀아달라고 응석을 부렸다. 마침 꾸준히 약을 복용한 덕에 어머니의 병세도 잠간 주춤하는 상태여서 나와 안해는 한숨을 돌릴수 있었다.
그렇게 두어달은 무난히 지났을가 할 때였다. 느닷없이 전화 한통 없던 친아빠가 련락을 해왔다. 그동안 한국에서 일하다가 귀국했다며 애를 보고싶다고 하였다. 애를 임신했을 때 딴 녀자랑 놀아나고 출산하기 바쁘게 리혼을 제기하고도 무슨 렴치인가고 안해는 전화에 대고 악을 바락바락 썼다. 하지만 친아빠란 사람은 끈질기게 전화질을 해댔고 나중에는 학교에 가서 애를 데려갈거라는 협박 비슷한 말에 안해는 결국 민우를 만나게 해주고말았다. 처음에는 눈이 올롱해서 자기를 데리러 온 사촌누나란 사람의 뒤를 쭈볏쭈볏 따라나서던 민우는 한주일에 한번씩 서너번을 다녀오더니 아빠가 어떻고 할머니가 어떻고 하며 그쪽에 가서 놀던 이야기를 신나게 주어대기 시작했다. 민우가 그럴 때마다 안해는 내 눈치를 살피며 “민우야, 우리 이제 공부할가?”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겉으로는 무심한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심히 불편했다. 세살 때부터 꼬박 4년을 키워온 민우가 갑자기 나타나 선물꾸레미들을 안겨주는 사람을 아빠라고 따라주는것을 보면서 여간 허망한게 아니였다.
나와 안해, 민우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민우가 덜컥 돈꾸레미를 안고왔던것이다. 은행카드나 저축통장도 아니고 현금으로 애의 책가방에 들어있는 돈을 꺼내며 난 어이가 없어 입만 벌어졌다. 큰 일을 한듯이 시뚝해진 민우는“엄마, 이거 아빠가 주는 양육비래요. 내가 쓰는거래요.”라고 말하고는 코노래를 부르며 새로 산 장난감을 논다고 방으로 쪼르르 들어가버렸다.
“뭐? 양육비?! 6년만에 보내는게 이거래?”
돈소리를 들을 때부터 언짢은 기색이던 안해는 코웃음을 치며 돈뭉치를 집어 쏘파후에 훌 던져버렸다.
“아니, 달랑 만원을 애한테 들려보내놓고 양육비라뇨? 6년에 만원이 말이 돼요? 유치원비도 달마다 600원을 웃도는데 만원으로 뭘 할수 있다고 양육비니 뭐니 해요? 여태 안줬으면 입도 뻥긋하지 말것이지 그걸 던져놓고 애한테 생색을 낼려구요? 나중에 난 양육비 줬으니까 아빠구실을 한거다 할려구요?나 원, 기가 막혀서!”
안해는 량옆구리에 두 손을 짚은채 왔다갔다 하며 당금 싸우기라도 할듯이 쌕쌕거렸다. 나역시 똥 씹은 기분이였다. 돈으로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것은 아니지만 이건 기본이 안되였다. 거지에게 적선하는것도 아니고 외국에서 돈을 못벌어온것도 아니면서 자기 자식에게 하는 짓치고는 너무 졸렬했다.
어른들의 기분이 어떤지 전혀 알길이 없는 민우는 그날 이후로 맨날 새것을 사달라고 타령이였다. 오늘은 장난감을 사달라, 래일은 학용품을 사달라 게임기를 사달라 하면서 필요하지 않는 비싼것들을 사내라고 성화였다. 그리고는 그 뒤끝에 꼭 “아빠가 돈을 엄청 많이 줬는데”하면서 안해의 속을 뒤집었다.
오늘도 서로 앵돌아지면서 마무리된 안해와 민우의 실랑이를 보면서 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를 하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젠 괜찮지 않은것이 아닌가?
이제 실오리바람이 스쳐도 난 외줄우에서 떨어질것같은 불안감이 발끝으로부터 몸 전체에 서서히 퍼지고있었다.
그리고 난 외줄타기를 할 때 평형을 잡아주는 장대기같은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느닷없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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