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곤난을 느끼셨다구요?”
시릴것같은 흰도자기같은 매끄러운 얼굴을 한 녀자가 눈을 깜박이며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얼굴과 달리 녀자의 눈길은 부드러웠다. 나는 녀자의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병원대신 절 찾은 이유는요?”
차분차분 귀가에 달라붙는 그녀의 물음은 대답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럼에도 듣는 사람은 대답을 하고싶어진다는것이 이상한 일이였다.
“흰 가운이 싫어서요.”
나의 눈길은 녀자의 핑크색 가디건에 꽂혀있었다.
“무조건 흰색이 싫으세요?”
녀자는 빨간 펜으로 하늘색차트우에 뭔가를 적고있었다.
“아뇨. 흰 가운이 싫을뿐이예요. 호흡곤난을 느끼는것은 제가 숨을 쉬기 싫은것때문이구요. 아프지는 않아요.”
“네에~”
녀자의 입가에 얄포롬히 웃음이 번지고있었다.
“숨을 쉬기 싫어진것이 언제부터였죠?”
녀자는 그윽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고 난 그 눈길속에서 숨통이 꽉 막혀오던 순간을 떠올리고있었다.
어느날 갑자기
그날 점심 사무실에는 나와 그녀만 남게 되였다.
그녀는 전날 술을 마신탓에 위가 쓰려서 점심을 안먹는거라고 했고 나는 오후까지 마무리해야 할 자료가 잘 되지 않아서 도시락을 시켜먹고 컴퓨터에 매달려있었다. 마침 추위가 한풀 꺾이고 막 봄으로 치닫고 있는 2월인지라 먼지가 앉아 부연 창문으로 겨울해볕이 따스하게 비쳐들고있었고 스팀에서는 열기가 화끈거려 사무실안은 훈훈하다못해 덥기까지 하였다. 나는 잠간 키보드를 두드리다말고 식곤증이 몰려와서 사무상에 머리를 박고 눈을 붙였다. 전신이 노긋노긋해지며 막 잠속에 빠지려할 때였다.
“드르릉~”
난데없는 경운기발동이 걸리는듯한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손님접대용쏘파에 몸을 늘어뜨리고 자고있는 그녀가 눈에 잡혀들어왔다. 머리에는 책더미를 고이고 쏘파등걸이에 다리를 걸친 그녀의 잠자는 자세는 극히 자유로와보였고 그럼에도 뭐가 불편한지 그녀의 조각같은 고운 코로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게 흘러나오고있었다. 상큼하게 이쁜 녀자와 코골이, 어찌해도 련결될수 없는 자칫하면 틀리게 사용했다고 오해받을지도 모르는 단어조합이였다. “쌕쌕”도 아니고 “가릉가릉”도 아닌 “드르릉”이라고 형용할수밖에 없는 그녀의 코골이는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고있었다.
허참, 무슨 여자가 코를 요란하게 고냐? 하긴 엊저녁에 술을 취토록 마셨다니까……
혼자말로 중얼거리다말고 난 급기야 손으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사무실에 머물렀거나 다녀간 갖가지 사람들이 흘렸을 각각의 샴프냄새와 비누냄새며 화장품냄새, 누군가의 몸속으로 흘러들어가고 남은 커피냄새와 담배냄새며 내가 금방 먹은 도시락음식냄새, 그리고 그녀의 입속에서 풍겨나오는 숙취의 특유의 냄새들이 섞인 혼잡한 공기에 냄새식별에 약한 코가 괜스레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고있었다. 다음순간 느닷없이 구정물을 뒤집어쓴듯한 불쾌감과 불결함이 쫙 몸속으로 흩어지며 솜털이 오소소 일어서는듯한 느낌에 나는 몸을 움찔했다.
숨을 쉬기가 왜 이렇게 께름직하지?
하는 생각에 이어서 사무실에 있는 공기가 그녀의 코를 거쳐 그녀의 몸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배출되여서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에 흩어지고 그것이 다시 내 코를 거쳐 내 몸속으로 들어올것이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남의 몸에 들어갔던것이 내 몸에 들어온다—생각만 해도 불결했다. 숨을 쉴 때마다 산소를 흡수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배웠지만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분자조합이 다르다고 해서 그 공기가 그 공기가 아니라고 할수는 없을것이였다. 화학적으로 성분이 어떻든 내가 마시는 공기는 그녀가 뱉어낸것이였고 그녀가 마시는것은 내가 뱉어낸것이였다. 께름직한 느낌 하나때문에 지식적인 인식이나 리해따윈 필요치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있는 공간에 숨을 쉬는 다른 누가 있다는 사실이 싫어졌다. 나는 코를 틀어막은 손바닥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그리고 숨을 딱 멈추었다.
1초, 2 초, 3초…….9초……
눈알이 튀여나올것 같았다.
11초, 12초, 13초……
혀바닥이 바짝바짝 마르며 혀뿌리가 목구멍으로 끌려들어가고있었다.
후우~
겨우 20초를 참고 나는 손을 떼고 말았다. 그러자 조잡한 냄새들이 푹 배인 공기가 거침없이 내 코로 흘러들었다.
우욱~
토악질이 날려고 했다. 나는 급히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와버렸다. 아무도 없었다. 길게 숨을 들이켰다. 차가운 공기가 흘러들며 가슴이 시원해났다. 하지만 난 그것이 누구도 없다는 사실때문임을 알고있었다.
암튼 난 그날부터 숨을 쉬기가 싫어졌다. 혼자가 아닌 다른 누가 있는 공간에서말이다.
그것이 꼭 반년전의 일이였고 난 반년동안을 래일은 숨쉬기가 괜찮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매일을 살았지만 래일이 오늘로 될 때에는 여전히 숨을 쉬기가 싫었다. 결국 난 오늘 핑크색 가디건을 걸치고있는 이 녀자를 만나보기로 했던것이다.
“지금도 숨을 쉬기 싫으세요?”
녀자는 주의깊게 내 표정을 살피고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다른 사람의 몸속으로 흘러들었던 공기를 마셔야 한다는 생각때문이세요?”
녀자는 내 얼굴에서 답안을 찾고있었다.
“불결해요. 남이 께작께작 씹었던 음식을 다시 먹는것처럼.”
나는 약간 얼굴을 찌프렸다.
“혹시……혹시 그날 한 사무실에 있었던 그녀가 싫었던것은 아닐가요?”
그녀라?
대학교후배였던 그녀가 별로 싫은적은 없었던것 같았다. 그냥 어느날에부턴가 웃는 모습이 별로 탐탁치가 않을뿐이였다.
그녀와 웃음
1년전이였다.
예나다름없이 늦장을 부리는 애를 닥달하여 유치원에 데려가고 바쁜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니 다들 웅성거리고있었다.
“고급직함평의를 한대요. 이번엔 명액이 셋이라면서요.”
“그렇다니까. 지금 각 과의 과장들과 국의 령도들이 회의을 한대잖아. 그 문제로.”
“늘 그랬듯이 년령순으로 하는거겠지. 저절로 자기 나의 따져보면 누가 될지 짐작이 가잖아?”
“안그럴지도 모르죠. 맨날 기구개혁을 한다는데 그것도 개혁이 되여야지 않겠어요? 년초에 직원회의를 하면서 올해부턴 모든것을 업무능력순으로 한다고 국의 결정을 발표했잖아요.”
“글쎄, 말이 그렇지 정말 그대로 되겠어? 더구나 직함평의는 로임과 관계되는 민감한 문젠데. 까딱 잘못하면 민심 잃기 일쑤거든.”
“이렇게 따지고 저렇게 따져도 아무래도 난 아닐거니까 신경쓸 일도 없네 뭐.”
별로 따져보지 않아도 대화의 요점은 우리 단위에 고급직함평의명액이 떨어졌다는것과 그 명액을 누가 가지는가 하는것이 초점임을 알수가 있었다. 업무능력이면 몰라도 나이를 따지면 아직은 내 차례가 아닌것 같아 나 역시 이 사람 저 사람 둘러보다 말고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아버렸다.
“사민이는 누구나 인정하는 실력자인데 노력 좀 해보지 그래?”
이미 고급직함을 갖고있는 나이 지긋한 동료가 나를 보며 하는 말이였다.
“제가요? 아직은 멀었어요. 선배님들에 비하면.”
살짝 미소를 보이면서도 머리속으로 빠르게 수판알을 튕겼다. 학력도 대학본과에 연구생함수공부도 했고 15년동안 사업을 하면서 받은 증서도 꽤 많다. 환경보호국이라는 좀은 남다른 일터때문에 한창 친환경이다, 록색환경이다 하고 부르짖는 시점에서 시대템포에만 잘 맞추면 연구과제를 잡고 연구성과를 내는것은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였다. 학교때부터 글을 쓴다고 끄적거렸던 탓에 경험총화나 론문작성도 나한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한창 뭔가 하고싶은 나이여서 이런 저런 활동에도 많이 참여했고 성과도 어지간히 이루고있는 상태였다. 밀리는것은 나이뿐이였다. 견줘봐도 되겠다는 생각에 공연히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애꿎은 책갈피만 부지런히 펼쳐대고있는데 문이 열렸고 문이 열리면서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화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싱싱한 모습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에 그냥 봐도 담배냄새가 꽉 배여있을것 같이 답답한 얼굴을 한 과장이 코등에 걸린 안경테를 추슬러올리며 얼굴에 묘한 웃음을 담고 따라들어왔다.
“자~주목! 과장님이 중대한 발표를 하신대요~”
그녀는 목소리를 길게 뽑으며 주의를 끌었다. 그것이 굳이 그녀가 할 일은 아니였는데말이다.
“다들 들어서 알겠지만 고급직함평의명액이 내려왔어요. 세명인데 토론을 거쳐 우리 업무과에 한명을 돌리기로 했고 이번엔 그동안의 업무성적에 따라 점수를 매기고 제일 높은 점수를 가진 사람으로 정하기로 했어요. 년초에 직원회의때 모든걸 업무능력순으로 한다고 공포했었죠? 그걸 집행하는겁니다. 이제 실력을 겨루는 세상인줄 알죠? 국영단위지만 우리 국에서도 앞으로 쭉 이렇게 갈거니까 다들 알아서 합시다. 이틀내로 그동안의 증서나 경험자료, 론문, 연구성과들을 정리해서 제출하도록 해요. 알았죠?”
과장은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말들을 공식적으로 빠르게 뱉어냈다. 다들 “뭐야?”하는 눈빛으로 과장을 바라보기만 할뿐 잠자코 있었다.
“그럼 알아들은걸로 알고.”
과장은 몸을 돌려 나가다말고 “잘 준비해봐요. 이제껏 잘해왔으니까.”하며 옆에 선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그녀는 과장을 향해 화려하게 웃었다.
뭐가 웃을 일이라고?
난 그녀의 웃음이 눈에 거슬렸다. 화려한 그녀의 웃음이 그 어떤 기분나쁜 뉘앙스를 풍긴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던것이다.
그녀가 웃는것이 싫다는 생각을 한것은 그날부터였다. 그후부터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보면 나는 리유없이 화가 났고 공연히 심통이 뒤틀렸다.
“그럼 그녀의 웃음이 싫을뿐이지 그녀가 싫은것은 아니라는 얘기죠?”
난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그럼 왜설가요?”
녀자는 빨간 펜으로 하늘색차트를 툭툭 두드리며 날 바라봤다. 답안을 찾고싶은 사람은 나인데 녀자는 되려 나한테 답안을 묻고있었다. 나는 코를 발름거렸다. 상큼한 말리꽃향이 코끝으로 흘러들고있었다.
“……냄새……냄새가 싫어요.”
녀자는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내 입을 바라보고있을뿐이였다.
코 그리고 냄새
아참~
난 슬그머니 벽쪽으로 돌아누웠다.
“왜 등을 돌리구 그래?”
남편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자기쪽으로 돌리려고 했다. 나는 목덜미에 빳빳이 힘을 주며 벽쪽을 고집하고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남편은 상반신을 일으키며 얼굴을 내 얼굴에 밀착시켜왔다.
우욱~
나는 손으로 입과 코를 막으며 발딱 몸을 일으켰다.
“뭐야! 이건 또?!”
남편의 목소리엔 많이 화가 나있었다.
“내가 그렇게 구토가 나도록 싫다는거야? 응?”
등뒤에서 남편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고있었다. 나는 손을 내리고 조용히 숨을 가다듬었다.
흐읍~
다음 순간 숨을 쉬고싶지 않았다. 술냄새와 공기청정제냄새, 조리법을 알수 없는 음식냄새까지 섞인 냄새가 코로 흘러들며 숨이 콱 막히게 하고있었다. 나는 급기야 다시 손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입을 반쯤 벌리고 숨을 들이켰다.
“당신 이상하다. 언젠가부터 내가 술만 마시면 등을 돌리더라? 이젠 구역질까지 나는거야? 난 뭐 그런 당신이 좋은줄 알어?”
남편은 베개를 들고 휭하니 거실로 나가버렸다. 나는 주위에서 맴도는 공기를 몰아낼 양으로 팔을 휘휘 내저었다. 그래도 코로 숨을 쉴 생각은 없었다. 공기속에는 남편이 뿌리고간 조잡한 냄새들이 흩어져있을것이였다. 나는 이불속에 옹송그리고 누웠다. 정말 내가 많이 잘못한걸가?
나는 남편이 갖고다니는 냄새가 싫었을뿐이였다. 싫은것을 싫은 티를 낸것뿐이였다. 굳이 잘못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 코때문이였다. 내 코가 열리고있었다. 숨을 쉬기 싫다는 생각을 가졌던 그 시각 이후로 농후한 냄새에만 반응하던 민감하지 못했던 내 코가 열릴줄은 나도 생각못했던 일이였다. 여태 모르고 살았던 미세한 냄새들—상긋한 과일향기와 은은한 꽃향기, 풋고추의 상큼하면서도 매콤한 냄새, 반찬이 냄비안에서 익어가는 맛갈스러운 냄새, , 밥솥안에서 밥이 조금씩 쉬여가는 시큼한 냄새, 건조한 공기중에 떠도는 매캐한 먼지냄새, 속옷에 묻어나는 분비물들의 큼큼한 냄새, 부동한 사람들의 체취……뭐라 이름할수 없는 다양한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풍겨나와 쉴새없이 내 코를 자극하고있었다. 열린 코는 나한테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주고있었다. 썩어가는 과일도 싱그러운 향기를 풍길수 있고 꽃향기라고 해서 다 향기로운것도 아니고 남자들의 몸에서 담배냄새만 나는것도 아니라는것과 이쁘고 화려한 그녀한테서는 화장품냄새가 진동하고 담배진이 뼈속까지 배여있을것 같은 과장이 스쳐지날 때에는 은은한 메론향기가 풍긴다는것을. 그런것들때문에 난 곤혹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차라리 코가 다시 막혀버리면 어떨가?
하고.
문제될것도 없었다. 코가 처음 열린것도 아니였다. 처음으로 코가 열렸던것은 8년전이였다.
2003년의 겨울의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출근을 하려고 만원이 된 공공뻐스에 올랐었다. 의자등받이를 짚고 선 내 주위로 사람들이 밀려가고 밀려오고 했고 발을 옮겨디딜 자리가 없는데도 차장은 자꾸만 뒤로 들어가라고 했다. 사람들사이에 끼여서 휘청거리다가 어느 순간 머리가 아찔해났다. 냄새-참을수 없는 냄새가 코를 찌르고있었다. 담배냄새같기도 하고 마늘냄새같기도 한 너무 진한 냄새를 난 무엇이라 딱히 구분해낼수가 없었다. 얼굴을 찌프리고 주위를 둘러봐도 냄새의 근원지조차 알수가 없었고 내 주위가 온통 그 냄새로 차있는듯 숨이 가빠왔다. 나는 서둘러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여 착용했다. 그제야 조금은 냄새가 덜해진것 같았고 숨을 쉴수가 있을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다니는 알지도 못할 누군가를 향해 속으로 욕을 퍼부었었다. 허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뻐스에 앉을 때마다 그 참을수 없는 냄새는 어김없이 나의 코를 비집고 들어왔고 굳이 뻐스안이 아니더라도 내 앞으로 스쳐지나는 사람만 있어도 난 그 냄새를 맡아내였다. 급기야 나는 그것이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체취임을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후에 임신을 확인하게 되였고 남편은 배속의 애가 나 대신 냄새를 맡아주는것이라고 했다.
그때가 마침 사스가 만연되던 시기였다. 처음에는 어디에서 한둘이 확진되였소 어쨌소 하다가 인심이 황황해지기 시작했고 뉴스마다 마스크를 건 사람들이 화면을 채우고있었고 도시와 도시사이의 도로중간에도 림시검사소가 설치되고 열만 나면 병원에서는 발열치료중심으로 보냈다. 저마다 사스예방에 좋다는 약들을 복용하고 외출할 때에는 전문용마스크를 끼고 시장에서 소독수가 매진될 정도로 실내소독에 신경을 썼지만 하루에도 수백명씩 감염이 되고 수십명씩 죽어나간다는 소식이 흉흉하게 퍼지고있던 시절이였다. 광동지역에서 뱀과 같은 야생동물을 포식한데서 발병된것이라 했고 학교나 단위마다 아침 저녁으로 체온을 체크하고 사람마다 체온검사기록부를 지니고 다니는 긴장된 상태에서 가짜마스크가 소비자들의 주머니를 턴다는 기사도 가담가담 섞이고있어 어디 가나 사스에 대한 이야기뿐이였다. 그럼에도 난 발병지점이 먼 사스보다 눈앞의 체취들에 더 집착하며 마스크를 착용하였던것을 보면 그때에도 어딘가 막힌 구석이 있는 사람이였던것만은 분명하다. 이러구러 여름을 잡아 기온이 높아지면서 사스의 감염률이 떨어지고 완치률이 제고되면서 사스에 대한 공포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고 나 또한 출산을 하고나서 언제 그랬냐는듯이 코는 다시 막혀버렸었다. 그렇게 막혀버린 코가 지금 갑자기 열린다니 어정쩡하기만 할뿐이였다.
코가 열린 탓이라고 말하면 남편은 자기한테서 등 돌리는 나를 묵인할수 있을가? 배속에 대신 냄새 맡아줄 생명도 없는데 코가 열렸다는 말을 믿을가?
확신도 없는 일을 가지고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기도 싫었다. 차라리 입을 다물고있는 편이 낫겠지 하고 궁시렁거리고있는데 티비소리에 섞여 “드르릉”하는 코고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남편은 술만 마시면 코를 골며 자는 버릇이 있었다. 나는 살금살금 거실로 나갔다. 남편은 티비를 켠채 이불을 두 팔과 두 다리새에 끼고 자고있었다. 나는 옷걸이에서 남편의 셔츠를 내려 코에 갖다댔다. 진한 음식냄새에 섞인 옅은 향수냄새가 코속으로 흘러들었다. 나는 셔츠를 다시 옷걸이에 걸어두고 티비를 끄고 침실에 들어왔다. 숨을 쉴 때마다 아까의 향수냄새가 코끝에서 맴돌고있었다. 그리고 구역질나게 하는 역한 냄새들이.
……이제 래일이면 이 냄새들도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겠지?..... 이 냄새들을 내가 다 마시는것은 아닐가? 몰라, 혹시 그 냄새들이 내 몸속에서 섞여서 부글부글 괴이다가 코로, 입으로, 땀구멍으로 ,털구멍으로…… 구멍이라고 이름지어진 모든 구멍으로 뿜겨나오며 내 체취로 되는것은 아닌지?...... 혹 자고 일어나면 다시 코가 막히지는 않을가?......
이러루한 생각을 하며 내가 잠속에 빠져버렸던 그 밤은 5월의 어느날이였다. 그 밤을 자고도 더 무수한 밤을 자고도 내 코는 막혀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앉아있는 지금까지도.
“남편이 갖고 들어오는 냄새때문에 늘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어요?”
녀자는 상체를 약간 앞으로 내밀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말리향이 좀 더 진하게 코끝으로 날아들고있었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거의 그랬죠. 코때문에.”
나는 애꿎은 코를 식지로 살짝 긁었다. 녀자는 뭔가 생각하는듯하더니 물었다.
“남편이 싫으신건가요?”
“아뇨. 갖고다니는 냄새가 싫을 따름이죠.”
녀자가 잠간 미간을 찌프렸다.
녀자는 남자의 냄새가 싫었던적이 없었을가?
난 그게 궁금했다. 목구멍으로 막 튀여나올려고 하는 말을 나는 심호흡과 함께 삼켜버렸다. 난 그런 사람이였다. 항상 하고싶은 말도 배속으로 삼키기에 익숙한.
“요즘 들어 호흡곤난을 느낀적은 언제죠?”
생각할것도 없었다. 한주일전이였다. 그 일이 아니였더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을것이였다. 처음에 물었더면 언녕 녀자와 나의 대화는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녀자는 이제야 묻고있었다. 그것이 녀자의 직업의 특성이라면 특성이겠다. 어쩐지 알면서도 녀자한테 옭아드는 느낌이였다. 내가 굳이 호흡곤난을 핑게로 녀자한테 이것저것 털어놓는것을 보면.
빨간 봉투
쓱싹쓱싹.
손을 마주 비비자 오물조물 비누거품이 일어났다. 아무래도 한국제품은 중국제품보다 질이 한수 위였다. 중국산 세수비누는 몇번 쓴후로는 미끌거리기만 할뿐 거품이 잘 일지 않는데 한국산 손씻기비누는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도 처음같이 거품이 잘도 일어난다. 비누란 대개 거품이 일어야 때가 지는듯한 거뿐한 느낌이 든다. 꾹 누르면 나오는 액체용보다 굳이 거추장스러운 손비누를 고집하는것을 보면 나도 엔간히 막힌게 아니다. 하긴 난 두루 막힌 구석이 많았다. 컴퓨터타자때문에 펜을 사용해야 할 일이 극히 적은데도 굳이 만년필을 소지하고 다니고 전화번호도 핸드폰에 저장할 대신 꼬박꼬박 전화번호다이얼에 적는것을 보면 말이다.
그렇다고 숨통까지 막히라는 법은 없잖은가?
안그래도 말문이 잘 트이지 못한 나다. 어릴적엔 재잘재잘 말도 잘했다는데 커가면서 필요한 말외엔 애교나 수다라는것을 떨줄도 모르는 사람이 되여버렸다는것이 엄마가 나에 대한 유일한 불만이다. 남들이 모녀간이 오손도손 이야기도 주고받고 시끌시끌 떠들면서 장을 보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앞에서 “엄마, 빨리요.”하며 건성건성 걸어가는 나에게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군 하였다. 엄마한테 난 “도무지 살가운데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야속한 딸년”이였다. 동료들한테는 착하기는 한데 말문이 무겁다못해 차가운 사람이였고 친구들한테는 영 속내를 알수 없는 미지수같은 존재였고 남편한테는 들을수만 있는 벙어리같은 막막한 녀자였다. 가끔 가다 두루 “순수하다”, “올곧다”는 평을 받긴 하지만 약삭바른 놈이 잘 먹고 잘 사는 지금 세상에 그런 말들이 칭찬이 아님을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럼에도 난 그냥 성격탓이라고 고집하고싶었다. 대개 개성이 변하게 되는 열두어살난 소녀때 어른들이 흘리는 말의 뜻을 대충이라도 알게 되는 그때에 나는 너무 일찍 말때문에 사람이 힘들어질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즈음 있는 일 없는 일을 재미삼아 입에 달고사는 수다스러운 할머니를 친척들은 외면하고있었고 젊을적 씨름 좀 했다고 떠들며 하늘이 낮다고 큰소리만 치고 다니는 아버지를 동네사람들은 뒤에서 “허풍떨기는?”하며 비웃었었다. 어린 아이인 내가 뭘 안다고 어떤 사람은 “니네 할머니는 왜 남의 흉만 본다니?”하고 나한테 못마땅한 눈길을 보내였고 “니네 아버지가 우리 딸애가 너보다 공부 못한다고 했다며? 말 그렇게 하는게 아니라고 전해라.”라고 공연히 나한테 침을 놓았다. 내가 뭘 안다고 저러냐고 억울했지만 그들이 그러는 리유를 조금은 알것 같았고 생김생김이 아버지가 할머니를 닮고 내가 아버지를 꼭 빼닮은 시점에서 난 아버지나 할머니처럼 입때문에 함부로 남의 미움을 사는 일은 없어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되였다. 지금 생각해도 열두어살난 계집애가 그런 결심을 한것을 보면 나도 남다른 구석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였다. 아무튼 가난한 살림때문에 위축감과 렬등감까지 느끼며 내 입에서 말은 서서히 줄어들어갔고 어른이 될 무렵 난 말대신 수걱수걱 일만 하면서 사는데 습관이 되여버렸다. 보고도 못본척, 듣고도 못들은척, 할 말이 있어도 없는척 하면서 눈, 귀, 입을 막고 살았는데 이제 코까지 막혀버릴려고 한다니 아무리 속없고 궁리 없는 나로서도 기가 막힐 일이다. 생리의 수요로라도 최저한 숨은 쉬여야 살게 아닌가? 내가 호흡을 필요로 하는 생물체인이상.
위의 생각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투덜투덜거리며 손바닥안에 차고넘치는 비누거품을 손등에까지 칠하여 몇번을 더 싹싹 비비고 맑은 물에 헹구고나니 손의 느낌이 가뜬하다. 손을 쳐들어 눈앞 가까이까지 대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말쑥하기만 하다. 요즘 들어 어디서 또 불쑥 튀여나온 신종플루때문에 공연히 2003년의 사스가 련상되며 은근슬쩍 신경이 긴장해지고있는터라 손씻기에 부지런해진것은 당연한 일이지 내 호흡과 무관한것이였다.
더 씻을가?
머리를 기우뚱거려봐도 더 씻을 생각은 없다. 그런것을 봐선 결백증인것 같지는 않다. 결백증환자는 손이 문드러질 때까지 하루에도 수십번씩이나 씻는다고 하지 않는가? 결백증환자도 아닌 내가 왜 숨을 마음껏 쉴수가 없는지 참 모를 일이다. 그렇게 고개만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하며 위생실을 빠져나오다가 딱 맞닥드린 사람이 그녀였다. 진한 화장품냄새가 코를 덮쳤다.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혔다. 코가 열린 불편함이란 이러루한것들이였다.
“여기 있었구나. 한참을 찾았는데. 언니 뭐해?”
그녀는 알수 없는 묘한 웃음을 짓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기분 나쁘게 하는 저 웃음.
손을 씻은 가뜬한 느낌이 한방에 날려가고있었다.
“왜?”
나는 손에 묻은 물을 털며 시답지 않게 흘낏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아무 일없이 나와 말을 섞을 일이 없는 그녀였다.
“과장님이 찾으셔. 좀 엄숙한 표정이였는데. 언니 혹시 뭐 잘못한것이 있어?”
그녀의 얼굴에는 잘코사니야 하는 표정이 어려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언니”라고 꼬박꼬박 불러주는 그녀를 볼 때면 난 그 호칭이 뭘 뜻하는지 나름대로 궁금했다. 나는 대답도 않고 과장실을 향해 스적스적 걸어갔다. 머리속으로 재빨리 요즘 들어 한 일들을 점검하였다. 잘못한것은 없는것 같았다.
뭐가 문제지?
짚이는데가 없었다. 일 하나는 자신있었다.
“여기요.”
손가락을 매만지며 엉거주춤 서있는 내앞으로 과장이 내민것은 봉투였다. 눈에 익은 빨간색봉투.
전날 “언니, 과장님의 아들이 대학입학통지서 받았대. 지금 령도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연회상 못차리는걸 알지? 절로 알아서 료량껏 해.”하고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도 이미 했을 말을 큰 비밀이나 알려주는것처럼 귀에 대고 속살거렸고 고민고민하다가 퇴근전에 이번달 업무회보서류에 빨간봉투를 슬그머니 끼여넣었었다. 아무리 세상물정에 어둡다지만 코밑치성이 통한다는 리치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알게 되는 세상에 나도 한결같이 나몰라라 할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그렇게 세상은 알게모르게 물들어가면서 둥글게 살게 되여있었다.
헌데 그 봉투를 다시 내밀다니?
나는 손을 내밀어 그걸 쥐지도 못하고 다시 되밀어놓지도 못하고 어정쩡해서 면도자욱이 퍼렇게 남아있는 과장의 얼굴만 머룽머룽 쳐다보았다.
“성의는 고맙지만 이건 아니죠. 한 과실에서 이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 뭐가 되겠어요? 더구나 오래지 않으면 인사변동이 있을것인데 남들이 오해하기 쉽죠. 고급직함평의때도 그랬듯이 뭐든지 실적으로 합니다. 사민씨는 실적 좋으니까 지금처럼 계속 열심히만 해요. 이런것은 저나 사민씨에게나 다 안좋은 일입니다. 다시 번복하지 말기를.”
과장은 빨간봉투를 툭툭 두드리고 다시 내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아니……아니 , 그런 뜻이 아닌데……그냥 아드님입학축하로……”
나는 죄라도 지은듯이 더듬거렸다.
“축하는 감사해요. 이건 없던걸로 합시다.”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봉투를 내 손에 쥐여주고는 나가달라는 뜻으로 손을 휙 저었다. 극히 부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사무상우에 놓인 봉투를 쥐고 나오면서 얼른 구겨서 호주머니에 넣는 순간 기분이 시궁창으로 떨어지고있었다. 다음 순간 가슴속 어딘가로부터 알수없는 감정의 덩어리가 욱 하고 치밀어오르며 목구멍을 콱 막아버리고말았다. 그때로부터 난 한주일 내내 가슴이 무엇에 눌리우기라도 하듯 침침하고 답답했던것이다.
내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녀자는 눈을 깔고 한참이나 미동도 않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똑똑 책상을 두드렸다.
“무엇때문일가요? 자꾸만 숨통이 막히는게.”
녀자는 길게 심호흡을 하더니 입을 쭝긋하고 나를 바라봤다.
“본인은 무엇때문이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알면 굳이 녀자에게 물을가?
나는 입을 다문채 녀자만 바라봤다. 녀자의 표정은 안온하고 부드러웠다. 아무래도 녀자는 매끄러운 얼굴과 표정이 별로 안어울렸다.
“날숨을 쉬세요. 길게 날숨을요.”
“날숨을요?”
녀자가 확고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뭐든지 뱉어낸다는 생각으로 날숨을 쉬세요. 들이키려고만 하니까 힘든거예요. 들숨은 날숨을 위한거라 생각하시고 날숨에만 집착하세요. 내 몸에 쌓였던 로페물들이 날숨을 통해서 나간다는 느낌으로요. 이젠 좋든 궂든 뱉으세요……”
뱉어?
녀자는 나한테 아직도 뱉어내야 할것들이 더 남아있다고 생각하고있는것일가?
머리속 한가득 피여오르는 물안개를 느끼며 녀자의 핑크색 가디건에 한번쯤 더 눈길을 주고 말리꽃향기를 한번쯤 더 들이키고나서 “심리상담실”을 나설 때쯤 전화벨이 울렸다.
“언니, 나야. 급해서 그러는데 서류 찾아서 팩스로 보내줘……”
날숨
어디 있지?
사무상우에 쌓여있는 서류들을 아무리 뒤적여도 그녀가 쉽게 찾을수 있다던 서류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덥석 국제전화를 건다는것도 말이 아니였다. 이건 아니다싶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사무상서랍을 잡아당겼다. 열렸다. 차곡차곡 들어있는 책들과 노트들을 하나씩 꺼내놓으며 찾아보았다. 웬 종이장 하나가 책과 함께 묻어나왔다.
뭐지?
사무상우에 올려놓으려다 말고 멈칫했다.
“고급직함신청서”복사본이였다.
뭘 이런걸 다?
고급직함평의가 끝난지도 1년이 지난 마당에 굳이 이것까지 챙겨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을가싶었다.
얜 뭘로 그때 점수가 그렇게 높았을가?
나이에 걸맞지 않은 호기심으로 쭉 훑어보다말고 눈이 커졌다. “거둔 성과”란에 내가 모르는 항목이 적혀있었다.
무슨 과제연구담당자와 론문수상자라니?
분명 내가 담당하였던 연구과제였고 그녀가 전근되여오기전부터 실행중이던 그 연구과제담당자중에는 그녀가 없었다. 당연히 론문발표와 수상도 있을리 없었다. 헌데 분명히 연구과제이름과 론문제목까지 번듯하게 적혀있지 않는가? 갑자기 론문제목이 눈에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보았던 제목이지?
머리를 갸우뚱거리다말고 머리를 치는것이 있었다.
동성동명이인.
그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였다. 그녀와 친하게 지내던 그녀의 고향선배녀자가 나와 같이 연구과제를 완성하였었고 몇년전에 이미 다른 시가지로 전근이 되여있었다.
아하~
두사람 몫의 성과가 한사람의것으로 되였으니 당연히 점수가 높을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의문의 덩어리들이 이제야 풀리는것 같았다. 나와 실적이 비슷해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압도적인 점수로 고급직함을 평의받게 된것이며 앙바틈하게 생긴 과장이 자기보다 한뼘이나 키가 큰 그녀와 부쩍 가까와져 이런저런 명목으로 그녀를 공식석상에 배동하고 참가하는것이며 그녀가 과장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는것이며 며칠전에는 아무리해도 그녀의 연구과제와는 별로 관련이 되지 않는 해외세미나에까지 그녀가 파견되여 간것이며 ……
들숨대신 길게 날숨을 쉬였다. 날숨과 함께 한숨을 토해내며. 나는 컴퓨터 키보드기밑에 아무렇게나 놓여져있는 서류를 찾아들고 그녀한테 팩스로 보내면서 한장 첨가했다.
--대학축하금 얼마?
꼭 대답을 듣고싶은것은 아니였다. 그녀가 대답을 해줄지도 미결이였다. 하지만 그냥 묻고싶었을뿐이였다. 녀자가 가르쳐준 날숨의 방식의 하나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후.
“삐삐~”
하는 소리와 함께 팩스 한장이 건너왔다.
--하나. 언니니까 말하는거야!( 참고:큰걸루야)
하나라? 것두 큰것으로?
두께조차 만져지지 않던 얄팍했던 내 빨간봉투가 떠올랐다. 그녀와 난 개념부터가 달랐다. 내가 말하는 하나는 그냥 100이였다면 그녀가 말하는 하나는 1000이나 10000도 될수 있었다. 큰것이라잖는가?
두장짜리가 들어간 얄팍한 내 빨간봉투는 되돌려올수밖에 없는 운명이였다.
다시 길게 날숨을 토해냈다. 이상하게도 들숨을 짧게 쉬여도 날숨은 마음먹기에 따라 길게 잘도 나왔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갑갑했던 가슴이 조금씩 열리고있었다. 아마도 밖으로 뱉어내야 할게 너무 많았던것이고 그것들이 체외로 배출되는 순간 숨통이 트이는 모양이였다.
나는 사무실을 벗어나 터덜터덜 1층으로 내려왔다. 대청을 벗어나려다말고 접수실에 얼핏 눈길을 주었다. 청결공아줌마가 머리를 수굿한채 뭣인가에 열중하고있었다. 나는 발길을 돌려 접수실로 향했다.
문기척을 느꼈는지 아니면 내 체취를 느꼈는지 청결공아줌마가 머리를 들며 히죽 웃고는 다시 머리를 수굿하고 손을 움직이기에 바빴다. 상우에 길이가 한메터는 실히 될것 같은 커다란 십자수천이 펼쳐져 있었고 그옆에 수십종의 색실뭉테기가 불룩하게 들어있는 돛천가방이 놓여있었다.
“무슨 수를 놓는데요?”
묵묵부답이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았다. 뭐지?
들여보다말고내눈이커졌다. 하필이면“최후의만찬”이라니?
다시아줌마를쳐다보았다.
“이그림이뭔지아세요?”
역시묵묵부답이다. 워낙대답을바라지않은물음이였다. 나와아줌마사이의대화는이루어질수가없었다. 아줌마는벙어리였으니까. 문득아줌마의왼손켠에놓여있는성경전서가눈에띄였다.
아하~
가는신음소리가내입에서흘러나왔다. 그러든말든아줌마는나한테눈길조차돌리지않는다. 나는멍청하니굳어져아줌마를멀거니바라보고만섰다.
아줌마는청소가끝난여가에틈틈이성경전서를읽으면서뭘생각하고있었을가? 종일4층이나되는청사복도청소와화장실청소를하면서받는월급700원으로소학교2학년에다니는딸의공부뒤바라지를하는아줌마, 아줌마의남편도벙어리라고했던가. 아줌마는늘무뚝뚝한표정이였지만그표정속에불만같은것은숨어있지않았다. 듣지도못하고말하지도못하면서오직수화로만, 간혹가다가핸드폰메시지로다른사람과의소통을하여가면서아줌마는늘누구를위해기도를하고있었을가?
아름다운꽃송이도있고웨딩드레스도있고귀여운강아지도있고멋진풍경화도있는데하필이면다빈치의명화“최후의만찬”을수놓이하고싶은것은그냥우연은아니였을것이였다. 예수와그의제자열두사람, 모두13사람의얼굴과각이한표정들을갖가지색실로수를놓아나타내야만하는어마어마한작업을아줌마는끈질기게하고있다니?...... 아줌마는그얼굴들중에배신자인유다의얼굴이있다는것도 모든것을알면서도침착한표정을짓고있는예수가무슨생각을하고있는것까지도알고있었을가? 아줌마는자기가그13인의내심을저색실로하나의십자수우에다나타낼수있을거라고자신하고있는것일가?...... 색실을꿴바늘로쉴새없이천을찌르며아줌마는자기의날숨까지도토해내고있는것이아닐가?
접수실을나오며나는다시날숨을길게토해냈다. 한결가볍게.
들을수도있고말할수도있는내가숨통이막혀살아야할리유는어디에도없었다.
나는전화번호를꾹꾹눌렀다. 발송신호가가는사이은은한말리꽃향기가솔솔풍겨오고있었다.
“저기요, 아까상담받았던숨막히던여자입니다…… 날숨, 쉬겠습니다. 뱉겠습니다……남편이갖고다니던말리꽃향기여전히싫어요.……다시남편한테서말리꽃향기맡을일은없을겁니다……전란초향기좋아한다고남편한테이야기할거니깐요. 제가날숨쉬는방식은이런것이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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