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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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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소설

배란기(2)
2011년 09월 30일 19시 49분  조회:3307  추천:1  작성자: 김영해
4

절기로는 가을에 속하지만 사람들 의식속에는 언녕 초겨울로 각인되여있고 곧잘 첫눈이 내리기도 하는 11월은 명색이 가을일뿐이지 겨울임이 분명하다. 사람들은 그만큼 책에 씌여져있는것보다는 자기의 느낌에 충실할 때가 꽤 있다. 그래서 11월은 언제봐도 가을과 겨울 그 어느 절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달이여서 난 11월이 안스러울 때가 참 많다. 더구나 11월을 하루하루 겪어갈 즈음에는 더욱 그러하였다.
나는 오늘도 신문사의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유리창을 거쳐 흘러드는 한낮의 따스한 해볕을 만끽한채11월을 안스러워하며 그중의 하루의 시간을 쪼개고있었다.
말이 신문사지 사람들의 시선을 끌만큼한 뉴스거리가 거의 전무한 자그마한 산간도시라 매주 세번씩 출간되는 신문에는 거의 인터넷에서 퍼온 기사들이 도배를 하고 있었고 나까지 네명뿐인 편집 겸 기자들은 발 아프게 뛰여다니며 취재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신문이라서 볼만한 기사거리보다 광고가 차지하는 판면이 더 많은지라 개인운영인데도 별탈없이 월급을 타먹는데는 지장이 없었다. 그것은 나한테 참 감사한 일이였다.
나는 여기저기 널부러져있는 책이며 문건들을 정리하다말고 머리를 들어 주위를 흘낏거렸다. 맞은켠에서는 마우스에서 손을 떼지 않은채 컴퓨터의 모니터에만 눈을 박고 있었고 왼켠에서는 손거울을 쳐든채 얼굴에 분솔을 토닥거리고 있었고 오른켠에서는 안경을 추슬리며 책에다 줄을 좍좍 긋고있었다. 모두들 자기의 일에만 전념하고있었다. 나는 의자등받이 가까이로 허리를 밀착하며 슬그머니 뒤등으로 손을 올려 브래지어단추를 풀어놓았다. 금시 팽팽하던 가슴이 느슨해지며 숨이 활 나왔다.
며칠전부터 가슴이 부풀어오르면서 유두가 팽팽하게 긴장되기 시작했다. 아래배에 지긋이 통증이 오기도 했고 체온이 떨어지며 오슬오슬 추워지기도 했다. 부풀어오른 가슴은 브래지어속에서 다치기도 무섭게 한껏 팽대되여 통증을 호소하고있었고 속옷이 많아진 분비물로 하여 기분나쁘게 달라붙으며 끈적거려왔다. 배란기증상이였다.
다음달 예정생리일로부터 꼭 14일째는 배란일이다. 아기를 만들수 있는 란자가 란소에서 배란되는 날인것이다. 배란일을 기준으로 배란일전 3일과 배란후2일까지 도합 6일좌우는 임신가능한 시간이였다. 남들은 배란기가 언제인지도 모르고 배란기증상도 느끼지 못한다는데 나는 윤이를 낳기 썩 전부터 배란기를 정확하게 계산해낼줄을 알았고 배란기때가 되면 민감하게 배란기증상을 보이군 했다. 이런저런 불편함때문에 공연히 귀찮아지는 배란기는 윤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제외하고는 어김없이 달마다 찾아왔다. 기껏해서 한번에 한개가 배출되는 란자, 많아야 두개까지 가능하다는 란자가 왜 매달마다 배란이 되여야 하는지 나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출산하는데 필요한 란자는 평생에 한두개정도인데도말이다. 윤이가 있는 지금 배란이 안된대도 별 서운할것이 없을것 같은데 매달 나타나는 배란기증상은 내가 아직도 생육기능을 갖춘 녀자임을 꼬박꼬박 일러주고있다.
사정만 하면 언제고 정자들이 줄을 지어 배출된다는 남자에 비해 녀자는 참 린색하다는 생각을 하며 난 달력을 살폈다. 잉태할것도 아닌데 매달 배란기증상을 느낄 때마다 배란일을 계산해보는것이 습관이 되여버린것이 우습기도 했다.
내가 혼자서 속으로 킬킬 웃음을 던지며 배란일을 계산하는 바로 그때, 노크소리와 함께 사무실문이 벌컥 열리며 커다란 꽃바구니가 누군가의 팔에 안겨 들어왔다. 약속이라도 하듯이 눈길들은 일제히 꽃바구니에 꽂혔다. 꽃바구니뒤에서 열여덟살쯤 되여보이는 말쑥한 남자애의 얼굴이 불쑥 나오며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누가 김선자씨예요?”
“네? 전데요.”
나는 어정쩡해서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꽃바구니에 꽂혔던 눈길이 어느새 나에게로 집중되여있었다.
“선자씨한테 온 꽃인가보네. 누가 보낸거지?”
“좋겠다~ 오늘 무슨 날이지? 무슨 명절이라도 되는가?”
“선자씨, 그거 혹 애인이 보낸거 아니야? 애인있었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가운데서 나는 내앞으로 내밀어지는 접수카드에 싸인을 하고 아름넘치게 꽃바구니를 받아들었다. 꽃바구니에 비닐로 된 하트와 함께 명함장만한 카드가 한장 달려있었다.

--생일 축하해!!! 명년 내 생일엔 토끼같은 딸애 하나 안겨주는게 어때? 저녁파티는 기대해도 좋음!!!
--남편으로부터

“아참, 안하던 짓을 하면서 ……”
나는 낮게 궁시렁거리며 픽 입귀로 웃음을 흘렸다.
“제 생일이라고 남편이 보낸거예요.”
나는 게면쩍게 웃으며 빨간 장미로 꽉 찬 꽃바구니를 사무상 한켠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남편 맞아? 아니 선자씨는 뭐 잘하는것이 있다고 생일에 남편이 꽃을 보내고 그래?”
“다들 선자씨 본받으라구. 오죽 남편한테 잘했으면 꽃을 보내겠어? 아줌마들은 돈벌어오라고 바가지 긁을줄밖에 모르니까 생일이 아니라 환갑이라도 꽃 한송이 못받을거라구.”
“오늘 뉘네 집 남편들은 다 혼나게 생겼어. 저렇게 꽃을 보내는 센스도 없고 뭐야?”
“저거 애인 보낸것인지도 몰라. 선자언니 저녁에 집 못가져가면 애인 보낸것인줄 알거니까 그리 알어.”
다들 꽃을 받은것이 자기라도 되듯이 들떠서 한참을 찧고 빻고 하였다. 그러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내 신경은 카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축하만 할것이지 딸타령은 무슨 딸타령……”
나는 꽃바구니에서 카드를 떼여 명함장캐스에 건사하면서 궁시렁거렸다.
윤이가 선코를 떼는 바람에 둘째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한참은 집안이 시끄러울것 같았다. 가뜩이나 애들을 좋아하는 남편이 안그래도 언젠가부터 대여섯살 된 녀자애들이 부모들앞에서 재롱을 떠는것을 보면 “우리도 저런 딸애 있었으면 좋겠지?”하고 은근히 부러워하며 내 눈치만 보던 판이였던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힝힝 코바람을 일구며 못들은척 외면을 했지만 이번만은 어쩐지 남편이 집요하게 밀어붙일것 같은 예감이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괜스레 죄없는 윤이가 괘씸스러웠고 둘째를 낳고 온 세상에 자랑하고 다니는 희영이마저 못마땅했다.
“호~”
슬그머니 한숨을 내쉬고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액정에 희영이의 번호가 뜨고 있었다. 범이 제 흉 보면 온다더니만 하는 생각으로 풀럭 웃음이 나왔다.
“생일 축하해~ 오늘 기분 어때? 윤이 아빠가 잘해주지?”
“띠”하는 전화련결음이 떨어지기 바쁘게 희영이는 인사말도 없이 저혼자 짝짜그르르 끓어댔다.
“그래! 잘해준다. 고마와!”
“야, 뉴스 하나 있는데. 이건 기쁜 소식이라고 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암튼 특대뉴스—미금이가 넷째 임신했대!”
“뭐야? 동창모임때도 그런 말 없었잖아?”
미금이가 딸 셋을 두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나는 눈이 휘둥그래지고말았다.
“임신한지 금방 한달이 됐대. 나두 어제 밥 먹자고 전화했다가 입덧 한다는 소릴 듣고 알았어. 미금이 남편이 아들을 원한다나 봐. 아들 낳을 때까지 계속 낳을거라는데?”
“아니, 사람이 애낳이기계도 아니구. 지금 세월에 아들딸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는데 왜 그런다니?”
“누가 아니? 맨날 자식은 하늘이 내려주는 선물이라고 그러더니만 선물 되게 많이 받고싶은 모양인거지.”
선물?
희영이의 말에 난 알쏭달쏭해서 미간을 찌프리였다.
희영이와 통화를 하는 내내 머리속에는 얌전히 구석쪽만 지키고앉았던 미금이의 소심한 얼굴이 정지된 화면처럼 떠있었다.
남편이 아들을 원해서 넷째까지 임신했다는 미금이. 그럼 윤이때문에, 남편때문에 내가 또 애를 하나 더 낳는것쯤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것이 아닌가?
갑자기 오슬오슬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내가 애를 밸수 있는 건강한 자궁을 갖고있다는것을 확인시켜주는 배란기증상. 오늘따라 더 기분나쁘게 느껴지는 배란기증상이였다.
난 웬지 싫었다. 배란기증상이.

5

문어구 량켠에 갈라져놓여있는 인공석 두개는 울퉁불퉁하게 바위를 닮았을뿐이지 바위의 견고함과 웅장함이라든지 기대고싶을만큼한 믿음직함은 하나도 구비하지 못하고있었다. 울창한 숲이라든가 밋밋한 산등성이마저 없이 시내 한복판의 건물문어구에 서있는다는 그 자체부터가 인공석에게는 더없이 어정쩡한 일일지도 몰랐다. 혹 산에라도 서있었으면 날려가는 흙먼지나 지나가는 풀씨가 내려앉아 이끼가 낀다든지 풀싹들이 돋아난다든지 하는 일들이 시간이 어지간히 지난후면 일어날터이고 그러면 조금은 바위를 닮아갈수도 있을것이였는데 말이다. 하지만 카페문어구에 놓여져있는 인공석은 그냥 카페외곽에 별 희귀하지도 않은 이색적인 색채를 억지로 보태주고있는 존재일뿐이였다. 인공석 하나에는 의뭉스러움이나 신비로움을 떠올리기에는 그 필체라든지 모양새가 너무다 단조롭고 딱딱한 <>가 슴슴하게 새겨져있고 다른 인공석에는 “이름을 뭐라고 지을가고 고민하다가 그냥 고민 그대로 ‘?’로 했습니다.”하는 글귀가 고민한 흔적은 하나도 묻어나지 않고 지꿎은 애들 락서같이 중문으로 무질서하게 씌여져있었다.
두 인공석사이에 있는 붉은색 주단을 깐 계단 두어개를 밟고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물소리가 제법 조잘조잘 들려오고있었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조잘거림은 아무런 거부감도 없이 자연스레 귀에 흘러들고있었다. 참 좋았다. 물소리가. 홀중앙에 커다랗게 인공못을 만들어 물을 가두어놓고 인공석이며 인공수를 심은후 거기에 계단 여러개를 만들어 물이 끝없이 이어흐르게 하여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물흐름소리였다. 이 카페에서 본 인공품중에서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것이였다. 그 물소리는 지금 겨울이라는것을 잊게 하고있었다.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한번 왔던 기억을 더듬어 찾아온것을 보면 그 물소리때문에 내가 “?”카페를 찾은것인지도 몰랐다.
어깨에서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추스리며 홀안을 휘휘 둘러봐도 내가 알만한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전화를 넣을가 하다가 금방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인공못쪽으로 스적스적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와올수록 물소리가 더 또렷이 들렸다. 마치 쉴새없는 윤이의 재잘거림같이 조잘조잘하고.
“청승맞게 이따위걸 구경하고 섰니? 다 가짜잖아. 그것도 어설픈.”
귀속으로 흘러드는 물소리를 차단하며 어깨를 쳐온 사람은 상민이였다. 희영이에게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는 윤상민. 어제 갑자기 전화를 걸어온 상민이는 취재하러 여기에 온다며 돌아가기전에 잠간 만나자고 했고 난 “?”카페를 찍었었다. 상민이는 여전히 나이에 걸맞지 않게 코를 달아맨채 싱글거리고 있었다. 단추를 열어놓은 암회색코드의 앞섶으로 드러나보이는 남색쟈켓과 거기에 시원한 하늘색셔츠와 남색넥타이까지 매치한 상민이는 어딘가 깔끔하면서도 카리스마있어보였다.
“가짜도 가짜나름이겠지. 난 이게 좋은데 뭘. 물소리가.”
“감상적인것인 여전하시구려.”
히쭉 웃으며 앞서가는 상민이의 뒤모습이 슬퍼보인다는 생각이 든것은 아주 잠간이였다. 그냥 아주 잠간.
“취재는 잘 됐니?”
“응. 점심대접까지 받고 금방 일어섰던 참이야. 그 다음 코스로 이렇게 막 니 대접을 받으려고 여기 이른거고.”
소탈하게 웃고있는 상민이의 눈빛은 밝지가 않았다.
“그랬구나.”
그다음 난 할 말이 없었다.
희영이의 말처럼 학교때는 가깝게 보내면서 다른 애들이 혹시 련애를 하는것은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로 도서관에도 같이 가고 등산이나 오락실에도 같이 다니였고 졸업하고 결혼을 금방 했을 때까지도 곧잘 만나서 맥주를 기울이였다는 사실이 먼 옛날같이 느껴지며 7년이란 세월이 만들어낸 공백때문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 모르고있었다. 분명 낯설지 않은 사람이고 7년전까지만 해도 친했던 친구인데 이럴수가 있을가고 의심이 갈 정도로 난 상민이가 처음 만난 사람처럼 어색해지고 있었다.
어느새 상민이도 마냥 싱글거리기만 하던 입을 한일자로 꾹 다물고있었다. 내 잔과 자기의 잔에 차례로 맥주를 따르고 한참이나 맥주잔을 뚫어지게 바라보고있는 상민이의 얼굴에서 난 아무것도 읽어낼수가 없었다. 상민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내 귀는 기어코 조잘거리는 물소리를 듣는데 열중하고있었다. 그 물소리를 차단하며 들려올 상민이의 말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궁금하지 않다고 하기보다는 별로 듣고싶은것이 아니라고 표현함이 더 적절할지도 몰랐다. 상민이의 말소리대신 난 내 귀속에 온통 겨울과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물소리로만 채우고싶어 굳이 이 곳을 택했는지도 몰랐다.
“네가 여기 살고있을줄은 몰랐어. 갑자기 련락이 안되길래 출국이라도 했나보다고 생각하고있었지. 방송국에서도 달랑 사직서만 받았다면서 사직리유를 모르더라. 에이~ 못된 자식!”
상민이의 입이 열리고있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상민이는 내게 내가 듣고싶지 않은 말들을 하고있었다.
“네가 무슨 소설이나 영화속의 주인공도 아니면서 그렇게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리니? 죽었다는 소식은 없으니까 잘 살고있겠지 하면서도 한동안 허전하고 불안하고 그렇더라. 난 우리가 성별과는 상관없이 부담없이 사귈수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었어. 적어도 어디서 뭘 하고있는지는 알고 살아가는 친구. 그런데 이게 뭐니? 어디서 뭘 하고있는지도 모르다가 7년만에 동창만회하면서 만나구. 허참~”
상민이는 단숨에 맥주를 쭉 들이켰다. 빈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상민이의 손에 힘이 실려있었다. 나는 제꺽 맥주병을 들어 상민이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그러게……미안하게 됐어. 야아~ 친구라면서 그만큼은 봐줄수 있잖니? 사라져버린 7년만큼은. 응?”
나는 몸을 약간 앞으로 기울이고 어울리지도 않게 방긋 웃으며 상민이를 쳐다봤다.
“이룬~”
상민이는 기가 막히는지 피씩 웃었다.
“난 지금 진지하게 이야기하고있는거라구. 분위기파악을 못하고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애교냐?”
상민이는 손을 들어 내 이마를 툭 튕겼다.
“암튼 봐줘. 나도 그럴 사정이 있었어.”
저도몰래 나의 목소리의 톤이 낮아지고있었다. 그만큼 난 당당하지 못했다.
“사정? 그래, 사정이 있었겠지. 당연히 사정이 있어야 하는거니까. 누군들 사정이 없겠니……”
상민이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참, 너 결혼한지 한참 됐다며? 몇년째야? 너라면 모범남편이 될것 같은데.”
난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난 상민이나 다른 친구들한테 비여버린 7년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것이 정말 싫었다. 될수만 있다면 그냥 없었던 일처럼 대충 뭉때리고 지나가고싶었다.
“응……5년 됐다.”
“벌써 그렇게 됐네. 그새 제 노릇 다 했구나 뭘. 애는 있겠지? 너 닮은 애라면 아들이든 딸이든 다 이쁠것 같아. 애가 몇살이지?”
나는 토마토를 홀랑 집어 입안에 넣었다. 달큰한 맛이 입안에 퍼지며 무거웠던 기분이 밝아지려 하고있었다.
“어......아니, 그보다는 내가 정말로 정말로 궁금한게 있는데......”
상민이는 말끝을 흐리며 흘끔 내 눈치를 살폈다.
궁금한것이라?
이럴 때는 궁금한게 뭐냐고 묻는게 상례인데 난 쉽게 그 말이 나가지 않아 상민이를 흘깃 쳐다보고는 맥주잔만 만지작거렸다.침을 꿀꺽 삼켰다. 입안에 남아있던 토마토의 상큼한 맛이 목구멍너머로 사라지고있었다.
나도 상민이에 대해 궁금한것이 한둘이 아니지만 여직 아무것도 안묻고있은것은 상민이의 궁금증을 자극할가봐서였다. 그런데 상민이가 먼저 궁금증을 못참고 서두르고있었다.
“뭐냐면.....저......”
상민이는 뜸을 들이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있었다.
“그렇게 물어보기 힘들면 물어보지 말지 그러니?”
나는 눈을 내리깐채 탁자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아무래도 물어야 할것 같아서 그래……7년동안 문득 문득 내 머리속을 헤집고 다니던 생각들이였으니까……”
또 그 7년이라는 소리였다. 피하고싶을수록 새록새록 나타나며 7년동안의 기억을 떠올리는 더는 듣고싶지 않은 소리였다. 저도모르게 깍지가 끼여진 내 손은 턱밑에 고여지고있었다.
“물을게. 너 7년전 갑자기 사라진게 혹시 나때문이니?”
머리속에서 웅~ 하고 벌집이 터지고있었다. 상민이 때문이였을가? 아니, 아닌데. 나때문? 남편때문? 아니면 누구때문이였지? 정말 누구때문이였지? 갑자기 누구때문에 내가 7년이란 시간을 내가 익숙한 사람과 일들속에서 비여버렸는지 알수가 없어졌다.
“아니, 너때문이 아니야……그냥 사정이……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뿐이야.”
나는 약간 불깃해진 상민이의 얼굴을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7년전 너의 생일날…… 우리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은거니?”
나를 바라보는 상민이의 눈은 의뭉스러운 빛으로 가득차있었다. 그 눈빛을 바라보고있노라니 까마득하게 잊혀진줄 알았던 7년전의 그날 일들이 기억속 어느 켠에선가 슬슬 깨여나 머리속을 무질서하게 휘젓고다니기 시작했다.
“일이라니?”
나는 일부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민이를 쳐다봤다.
“아침에 눈을 뜨고보니 호텔방에 누워있더라구. 별란 주사까지 다 한다구 쿡쿡 웃었지 뭐야. 남의 생일에 내가 왜 이 모양이 된거냐구…… 헌데 한달뒤 네가 없어진후로 뜨끔했어. 일을 친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호텔까지 같이 가준 사람이 너인것은 기억이 나니까……”
거기서 상민이의 말끝은 점점 흐려지고있었다. 웅얼웅얼 입속으로 들어가버리고있었다.
“그날은 니가 집에 안들어간다고 해서 호텔을 잡아줬던것뿐이야. 니가 정말 엄청 많이 취했거든.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나는 모양이구나. 니가 술을 마시면 그 정도인줄은 몰랐는데. 실망이다, 흐흥~”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코방귀까지 뀌였다.
“그럼 뭣때문에……”
상민이는 집요했다.
“그러게말이다. 나도 니가 불쑥 물으니까 갑자기 왜서 그랬는지 생각이 안나. 그런걸 보면 이제 다 지나가버린 별 중요하지 않은 일인거겠지. 아참, 아무래도 나도 잘 정리해봐야겠네. 왜선가를.그런거 있잖니? 당했을 때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고 큰 일일것 같던 일들이 시간이 흐른후면 공기중에 떠있는 먼지립자같이 아무 상관없는 일이였다는걸 깨닫는 경우말이야. 아마 그런것쯤 되는 일이였나봐.”
고개를 기웃거리며 머리를 툭툭 쳐보이는 나를 상민이는 미심쩍은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생각안나는게 아니고 말하기 싫은거겠지……길지도 짧지도 않은 7년 세월이 흐른 사이에 너하고 나사이에 뭐가 남은것 같은데……뭐지?......어색함? 거리감?......”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상민이에게 난 그런것이 아니라고 말할수가 없었다. 정말로 지금 낯설고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상민이에게서 난 상민이가 느낀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있었다.


그날 겨우 맥주 두어병을 비우고 헤여질무렵, 상민이가 “우리 여전히 친구인거 지?”하고 묻는 말에 난 그저 씩 웃어주고 말았다. 상민이가 던진 물음표에 난 감탄표가 아니라 점 하나 찍어주는것조차 어렵게 느껴지고있다는것때문에 상민이에게 한없이 미안해야 할것 같았다. 언제 어느때부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할 말이 궁해질 때 똑 부러진 대답대신 어정쩡한 웃음을 지어낼수 있는 자신에게 감사하며 난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어디로 사라져야 하지? 이젠 정말 갈데가 없는데 하고 걱정을 하고있었다.
한편 내 귀에는 여전히 조잘거리는 인공적인 물소리가 들려왔고 내 눈에는 “?”가 새겨진 어설픈 인공석이 비껴들고있었다.

6

“엄마, 저 사람들이 뭐하는거죠?”
뻐스역을 향해 재우치던 발걸음을 멈추고 윤이의 손짓을 따라 눈길을 돌린 곳에서는 밭갈이가 한창이였다.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쟁기를 끄는 소를 몰고 지나간 뒤로 검은 흙들이 굼실굼실 일어서며 밭이랑을 만들고있었고 그 밭이랑우로 나무지팡이를 짚은 아줌마가 발자국을 쿡쿡 찍으며 걸어가면 그 뒤로 작은 바구니를 팔에 건 다른 아줌마가 종자를 뚝뚝 떨구고는 발로 흙을 툭툭 차서 묻어버리고있었다. 절기로 봐선 이맘때쯤이면 콩파종이 한창일것이였다.
“응, 씨를 뿌리는거야.”
“씨를 뿌려? 씨를 뿌린다는게 무슨 말인데요?”
씨뿌리는 모습을 지금 두눈으로 빤히 보고있으면서도 윤이의 눈엔 그것이 무슨 일인지 리해가 안되는 모양이였다.
“씨를 뿌린다는 말은 종자를 땅에 심는다는 말이야. 저 사람들처럼 땅을 갈아엎고 땅속에 콩을 심으면 콩이 자라고 다 자란후엔 꽃이 피고 콩이 열리게 되는거야.”
“콩을 심으면 콩이 나와요? 콩이 나오면 콩인데 거기에 무슨 콩이 또 열려요?”
윤이는 입을 쫑긋한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어왔다.
“그러니까 그게……”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윤이의 입으로 다시 듣고보니 내가 한 말이 참 한심했다. 콩을 심어서 콩이 자라고 또 콩이 열린다니?
다 같이 “콩”이라고 불렀음에도 그 콩들의 의미는 달랐으니 노오란 콩알만 보아온 윤이에게는 이상한 소리로 들렸을것이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수밖에 없었던 나는 씨앗으로 된 콩과 그 콩에서 싹이 나와서 자란 콩과 그 콩에 열린 콩을 다 콩이라고 불러왔을 뿐 콩씨앗이라든지, 콩포기라든지, 콩열매라고 구분하여 불러본적이 없고 그렇게 구분하는것이 맞는지도 몰랐다. 이제껏 낟알이였을 때나 밭에 서있는 퍼런 곡식이였을 때나 그냥 콩이면 콩, 옥수수면 옥수수라고 불러왔고 누구도 밭에 서있는 곡식을 가리키는지 뒤주의 낟알을 가리키는지 헛갈려하지 않았고 그래서 구분할 필요가 없는것인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콩은 말이야. 콩알을 심어서 나온 콩은 콩이 아니고…….아니, 콩이 맞는데……”
“윤이야, 엄마 말 못알아듣겠지? 애가 알아듣게 말하지 못하겠으면 그냥 둬. 애를 헛갈리게 하지 말고.”
내 입을 빤히 쳐다보는 윤이의 볼을 톡톡 건드리며 남편은 낑낑 갑자르는 내 말허리를 겅중 잘랐다. 나는 머쓱해서 남편을 찔 흘겨보았다.
“윤이야, 넌 저기 가서 아주머니하고 콩종자 몇알 달라고 해. 아빠가 집에 가서 심어줄게.”
남편은 윤이의 엉뎅이를 툭툭 두드려주며 씨뿌리는 아줌마쪽을 가리켜보였다.
“정말?!”
윤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남편이 머리를 끄덕이기 바쁘게 윤이는 좋아라고 밭갈이하는 쪽으로 뛰여갔다.
“정말 심을려고요?”
“그럼, 베란다에 작은 나무상자 하나 얻어놓고 심으면 되잖아. 시간 맞춰서 시골에 내려와서 볼수 없는거니까 제 집에서 자라는것을 보면 힘들게 말을 안해줘도 저절로 알게 될거야. 아무리 도시에서 산다고 어떻게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지도 몰라서야 되겠어? 그게 자연의 섭리인데.”
씨뿌리는 일 하나를 가지고도 남편은 거창하게 들먹였다. 자연의 섭리까지. 하긴 틀린 말은 아니였다. 씨뿌리기가 없이 세상만물이 번식하고 이어간다는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니까. 갑자기 난 궁금한것이 생겨버렸다. 꼭 지금 물어보고싶은 궁금한것이.
“근데말이죠. 농부들은 종자 몇알쯤 없어지는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겠죠?”
“왜? 애가 달라는데 안줄가봐? 그 사람들한테 있는 낟알들은 다 종자일텐데 그깟 몇알에 신경을 쓰겠어?”
“그 사람들한테는 많은게 종자니까 몇알쯤 없어지는것은 아무 일 아닐테죠? 그 종자가 우리의 배속으로 들어가든, 다른 땅에서 싹을 틔우든 상관없을거죠, 아마?”
“허참, 그게 왜 궁금한데? 당신 왜 그래?”
남편은 투덜거리며 되돌아달려오는 윤이쪽을 향해 손을 저었고 윤이도 활짝 웃으며 꼭 쥔 주먹을 쳐들어보였다. 아마 그 손에 얻어가진 종자를 쥐였는 모양이였다.
한참후 차에 올라서도 부자간은 콩을 어떻게 심고 가꿀것인지 신나게 이야기하였고 윤이는 고개를 까댁거리며 헛갈리지 않고 말을 잘 알아듣고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윤이가 항상 의뭉스러워하고 혼란스러워하던 문제들은 어쩜 엄마인 내가 똑바로 설명을 해주지 못한 탓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처음부터 “윤이야, ‘참새야, 안녕?’하고 인사를 해봐.”하고 시켜주지 않았더면 지금도 강아지나 고양이, 새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하는 일이 없었을거고 처음부터 크리스마스에 선물은 엄마가 사준것이라고 했더면 지금도 눈만 내리면 산타할아버지가 오려나하고 눈빠지게 기다리는 일이 없었을것이고 아기문제도 처음부터 아기는 엄마가 낳는것이라고 했더면 아기를 사오라고 투정 부릴 일이 없었을것이였다.
윤이가 엉뚱하고 순진하고 어리궂게 노는것이 나때문일거라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내가 윤이의 엄마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면 어쨌을가 하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뭉클해왔다. 금시 눈가에 물기가 촉촉히 번져 나는 공연히 눈을 슴벅거리며 나오려는 눈물을 다시 눈속으로 거두어들이려고 애쓰다가 아예 스르르 눈을 감아버리고말았다. 감겨진 눈귀로 눈물 한방울이 꾹 배여나왔다.
차체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채 잠을 청해보지만 별 연고도 없이 삼검불같이 어수선해진 머리속은 잠이 들듯 말듯 뒤숭숭해지고있었다. 그러는 내 귀로 남편의 푸념이 꿈결처럼 들려오고있었다.
“어? 윤이가 졸고있네. 애가 피곤했나봐. 당신때문이야. 무슨 딸놈이 제 친정집에서 묵길 싫어해? 오늘같은 날은 아버님생신인데 저녁까지 즐겁게 해드리고 래일 천천히 와도 되는데말이야. 그럼 윤이도 이렇게 고생안해도 되는데. 왕복으로 차를 두어시간 타는게 애한테는 무리인거지.”
“난 당신이 왜 그렇게 집에 집착을 하는지 모르겠어. 오랜만에 친정에 갔다가도 웬간하면 점심밥만 먹고 그날로 돌아오고 설이라도 돼야 별수없이 하루밤을 자고는 아침밥술 떨어지게 바쁘게 뛰여오고.”
정말 그랬다.낳아주고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시는 친정집에 머무르는것보다 난 지금 내가 살고있는 집이 더 편했다. 엄마가 “남들은 엄마집에 오면 며칠씩이고 있는다는데 넌 왜 신발벗기가 무섭게 갈 궁리만 하니? 집에 꿀단지라도 묻었니?”하며 섭섭해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였고 남편이 리해하기 어려워하는것도 당연지사였다.그러는 엄마나 남편한테 변비때문에 재래식화장실에선 배변이 안된다고 궁상을 떨어보지만 시골태생인 나에게 그런 구실은 누가 들어도 억지인것이 뻔하였다.하지만 누가 뭐래도 난 내 집이 좋았다.청소하기 싫어서 윤이가 어질러놓은 장난감들속에 퍼더버리고 앉아있더라도, 한숨이라도 더 자는게 좋아서 세수도 안하고 푸수수한 모습으로 자다깨다 하며 종일 이불속에서 뒹굴고있더라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할 필요가 없는 집이 좋았다.
“당신 혹시 내가 좋아 그런거야? 한시라도 나랑 윤이랑 오붓하게 있고싶어서 그러는거지?”
남편은 내 팔굽을 툭툭 건드리며 히죽거렸다. 나는 감았던 눈을 떠서 웃음기가 잔뜩 어려있는 남편의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는 남편의 품에 안겨 잠들어버린 윤이의 얼굴에 눈길을 주었다. 꼭 깨물어주고싶도록 귀여운 얼굴이다.
“당신이 이러니까 내가 어디로 훌쩍 떠날수 없잖아. 나밖에 모르는 당신을 두고 걱정이 돼서 어디 가서 살수가 없을것 같아서 말이야. 봐아~ 한국출국비자 받아놓은지 반년도 다 돼가는데 여직 못떠나고 있잖아. 어차피 한번은 갔다와야 할건데 참 걱정이다. 나없으면 윤이에겐 맨날 김밥을 사먹이지 않으면 라면을 끓여먹이고 자기는 다이어트 합네하고 빵이나 물어뜯고있을거고.. 화장실전등은 24시간 켜고있을지도 모르고 배터리충전기는 다 나간 배터리를 바꿀때까지 전기코드에 꽂혀있을거고……”
남편 말대로 난 정말로 남편이 챙겨주는게 참 많은 녀자였다. 화장실을 리용하고나서 전등을 안끄는것은 이미 버릇이 되여버렸고 충전이 완료된 충전기가 전기코드에 꽂혀있는것을 뻔히 보고있으면서도 뽑을 궁리를 안했고 컴퓨터고 티비고 한꺼번에 켜놓고 별 거부감없이 컴퓨터와 티비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엇갈아 리용할수 있는 타입이였다.다시보면 살림할줄 모르고 궁리없는 한심한 녀자인것이 분명하지만 난 그것때문에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남편에게 미안하거나 하는 감정을 느끼지 않고 있는것을 보면 조금은 뻔뻔했다.그런 나를 투정 반, 놀림 반을 섞어가며 챙겨주는 남편과 “엄마 또 전등 안 껐구나.”하며 화장실전등을 꺼주는 윤이때문에 난 집이 좋았던것이 아닐가?
“밖에 나가면 남들 눈엔 뭐 하나 모자라는것없이 똑 부러지게 일잘하는 당신이 집에만 들어오면 왜 이렇게 철부지가 되여버리는지 모르겠어. 챙겨주는것은 당연히 내몫이고 다퉈도 져주는것도 내몫이고 애교떠는것도 내몫이잖아. 그리고……”
“그러니까 당신 똑바로 알아둬. 당신은 날 사랑해야 하는거라구. 나없인 당신 못살거야. 아마.”
귀따갑게 궁시렁거리다말고 남편은 즐거운듯이 크득크득 웃어댔다.
“아~ 녀석, 자고있는 모습을 보니 무지 귀엽네. 이 녀석이 있고나서 날 홀대하는 당신이 리해는 된다~. 어우, 귀여운 놈!”
남편은 자고있는 윤이의 볼을 살살 어루만져주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갑자기 커다란 의문부호 하나가 그려지고있었다.
지금 난 남편을 사랑하고 있기는 한걸가?
난 나혼자만 알고있는 단단한 껍질속에 자신을 꽁꽁 숨기고 살아오는데 이미 습관된 사람이였다. 언제 어디서 상처받았는지 아니면 상처도 없이 그랬는지 난 언젠가 썩 오래전부터 부모형제나 친구들한테 내 겉모습만 겉인듯 안인듯 보여주는데 습관이 되여있었다. 그래서 난 자기의 고민이며 사적인 비밀들을 나한테 털어놓는 몇 안되는 친한 친구들한테 항상 미안한 마음이였다. 친구를 멀리 했다고 서운해하는 희영이나 상민이앞에서도 난 껍질이 단단하긴 마찬가지였다. 나는 땅속에 일년 열두달이 아니라 몇십년을 묻어놓아도 싹이 틀 일이 없는 종자같은 존재였다. 하긴 휴면을 100여년씩 하는 종자도 있다고 하니 한알의 종자였으면 차라리 희귀종이였으련만 사람이였기에 난 불쌍한 존재였다. 속내야 어떻든 한결같이 밝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신이 내가 생각하기에도 질리니까. 어떠한 사물이든 시종일관하다는것은 따분하거나 불쌍한 존재임에 틀림없다.
웃는 얼굴로 지금도 속으로만 자신이 불쌍하다고 혼자 떠벌이고있는 내가 린색한 자기표현때문이였는지 아니면 정말 사랑하지 않아서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안하고 지금까지 살을 부비며 살아왔는지 알수가 없다. 어쩜 나는 내 감정따위는 무시한채로 남편이 이끄는대로 졸랑졸랑 여기까지 묻어왔던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런 날 사랑한다고 하는 남편, 내가 자기를 좋아할거라는 남편, 내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고 하는 남편때문에 난 지금 보슬보슬 내려 소담하게 부풀어오른 꽃망울을 촉촉히 적셔주는 봄비같은 잔잔한 감동이 가슴 밑바닥에서 솔솔 피여올라 가슴 벅차게 흘러퍼지며 가슴이 아련하다. 옷을 사이두고 맞붙은 팔뚝으로 전해오는 남편의 온기가 따뜻하다. 무릎우에 놓인 윤이의 다리가 꼭 껴안아주고싶도록 앙증맞다.


난 슬그머니 머리를 돌려 남편을 쳐다봤다. 자고있는 윤이를 무릎에 뉘이고 팔베개를 해준채 남편은 어느새 의자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미소어린 얼굴로 눈을 감고있었다. 나는 살풋이 고개를 기울여 남편의 어깨에 갖다댔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본적 있는 그런 모습으로 조용히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러면서 미금이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넷째를 임신했다는 미금이를.

7

진달래꽃이 막 흐드러지던 봄부터 미금을 만나려고 생각하고있었으면서도 이런저런 일로 미루기만 하다가 정작 미금이를 만난것은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일줄은 나도 몰랐다.
초인종소리에 미금이가 문을 열었고 “왔구나.”하는 미금이의 덜도 아니고 더도 아닌 담담한 인사를 받으며 미금이의 뒤를 따라 거실에 들어선 나는 생각지도 못한 풍경에 저도모르게 “어머~”하는 감탄사를 어눌하게 뱉어내고말았다. 미금이의 열다섯살난 큰 딸애가 아가의 기저귀를 갈아주고있었던것이다. 아이는 한손으로 아가의 두 발을 모아쥐고 다른 한손으로 어지러워진 기저귀를 집어치우고는 물티슈로 엉뎅이며 사타구니를 깐깐히 닦아주고 아기분까지 툭툭 쳐주고 새 기저귀를 갈아채웠다.
“너 참 딸애 신세 톡톡히 보겠는걸. 쟤가 완전히 엄마구실을 하잖아.”
“그러게. 우리 큰 애 저런거 잘 해. 셋째 키울 때부터 내가 바쁘면 잘 도와줬어. 자식 많이 두는 부모는 그런 멋이라도 있어야지.”
미금이는 담담히 웃어버렸다. 동창만회를 하고나서 거의 일년만에 보게 되는 미금이는 이젠 네 아이의 엄마로 되여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아름찬 네 아이의 엄마다.
“넌 정말 다산이야. 요즘 둘째 낳는 바람이 분다지만 너처럼 넷씩 낳았다는 소리는 여태 못들었다니까. 넌 민족의 영웅인거야.”
“글쎄다. 영웅이 될려고 그러는것은 아니였어. 애들 놓고 이런 소리 하는것은 아니지만 애 아빠가 원하니까 낳은거였어. 아들 낳을려다보니 자꾸 낳게 된거고 그러다보니 넷째까지 낳았네. 다행히 요놈이 아들인거고..”
안온한 미금이의 얼굴은 평화로와보였다.
“소원성취했네. 너희 부부도 웬간히 끈질긴게 아니야. 난 둘째낳기도 싫은데.”
머리를 절레절레 젓는 나를 미금이는 뜨악한 눈길로 바라봤다.
“애를 낳는데 싫다마다가 어디 있니? 자식은 선물이야. 하느님이 부부에게 내려주는 선물. 그 선물을 마다하면 죄받어.”
선물이란다. 희영이한테서 전해들은것처럼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미금이는 자식을 선물이라고 했다.
“나도 아기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라고쯤은 생각하고 있지만 자식을 선물이라고 하는데는 좀 납득이 안돼. 나한테는 선물이기보다는 내 생명의 전부를 다 바쳐서 사랑해야 할 존재같거든.”
그랬다. 난 윤이만큼은 내 전부를 바쳐서 사랑할수 있을것 같았다.
“아니, 가정에서 부부만큼 중요한것은 없어. 부부는 서로가 상대에게 1위로 되여야 하는거다. 부부가 없으면 자식은 존재할수 없는거지만 부부는 자식이 없어도 존재할수 있는거 아니니? 자식은 부부에게 내려진 선물일뿐이야. 강요해서도 안되고 거절해서도 안되는거야.”
남편이 1위란다. 그 남편을 위해서 자식 넷을 낳았다는 미금이. 정말 그럴수도 있는것일가?
“그래도 선택의 권리가 없는 애들인데…… 애를 낳았으면 책임지는것은 당연한 일이잖아. 남편이나 안해는 상대가 없이도 살수 있는거고. 그러니까 자식이 1위 아니니?”
어쩐지 내가 라렬한 근거는 짧은 구절만큼이나 무기력했다. 난 조금씩 흔들리고있었다.
“책임지지 말라는 말은 아니야. 너한테 차례진 선물 네가 버리면 안되는거니까. 내 말은 부모의 도리를 다 하는것은 옳지만 자식보다도 부부 서로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지. 선물은 단지 축복일뿐이야. 우리 주위에 그런 축복 못받는 사람들도 더러 있잖아. 그렇다고 그들이 부부의 인연을 깨고 헤여져야 하는것은 아니지. 자식의 인연보다 더 중요한것이 부부의 인연이니까. 그런 사람들은 그냥 자긴 아직 뭔가가 부족해서 선물을 못받은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언젠가는 받게 될거라고 믿으면 하느님의 역사로 이루어질수도 있는거니까.”
하아얀 치아사이로 잔잔히 흘러나오는 미금이의 말속에는 어떤 거부할수 없는 강력함이 깃들어있었다.
“글쎄, 그럴가? 요즘 자식이 없어도 잘 사는 부부들도 꽤 있긴 해. 일부러 자식을 안낳는 부부들도 있고……”
난 이미 미금이쪽으로 넘어가고있었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결과였다. 미금이를 만나려고 할 때부터 난 미금이의 의견에 동감하기로 작정을 하고 미금이가 날 설득시키길 은근슬쩍 바라고있으면서도 내 속내를 감싸주는 단단한 껍질때문에 아니라고 고집부리는척 했던것일지도 몰랐다. 난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였다. 미금이가 기독교신자라는것을 떠나서 네 아이의 엄마로 된 미금이의 말이라면 믿어도 될거라는 생각이 은근히 가슴밑바닥에 깔려있었던것 같았다. 윤이가 첫째라는 고집이 미금이의 확고한 믿음에 부딪쳐 조금씩 흔들려가고 부서져가면서 난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기때문에 윤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은연중 정당화하고싶었던것이였는지도 몰랐다.
“니 남편도 둘째아이를 원한다며? 네가 싫다고 거부하지 말아. 네가 남편을 사랑한다면 아기를 낳아. 너한테서 제일 중요한 남편이 원하는거니까.”


가슴에 십자를 그리는 미금이와 작별하며 속으로 저 애가 하느님이 나한테 둘째를 선물하라고 기도하는것은 아닐가고 걱정했던것은 부질없는 로파심때문이 아니였었다. 문득 순간적으로 머리속을 스치는 생각들이 늘 적중했던 탓이였다.

8

“쾅”
문이 닫기는 소리에 이어 남편과 윤이가 계단을 내려가는 발자국소리가 자박자박 들리다말고 집안에는 고요가 깃들었다.
일시에 구석구석에 숨어있던 적막들이 집안을 침침하게 감싸돌며 내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쌕쌕”이나 “쌔근쌔근”하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숨을 쉬는 내가 이때처럼 부담스러운적은 없다. 온 집안에 두텁게 드리워진 적막을 깨지 않으면 그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질려죽을것만 같아 난 공연히 부스럭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손을 움직이면 손이 움직이는 소리가, 발을 움직이면 발을 움직이는 소리가, 몸을 움직이면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단조롭게 들리다말고 움직임을 멈추는 즉시 소리는 사라져버렸다. 가슴이 무거운 돌멩이에라도 눌리운듯이 답답해났다.
티비를 켰다. 금시 방안에는 왁자지껄하는 소음으로 꽉 찼다. 화면을 보고있음에도 무슨 장면인지 , 소리를 듣고있음에도 무슨 말인지 내용을 하나도 파악하지 못한채 난 멍하니 티비에 눈길과 귀를 고정시키고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말고 나는 카펫우에 벌렁 누워버렸다. 머리밑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 물끄러미 천정을 쳐다보았다. 하얀 천정에 댕그라니 멋적게 달려있는 둥근 모양의 조명등 하나가 오늘따라 외로와보였다. 누군가가 스위치를 넣어주지 않으면 불도 밝히지 못하고 오도카니 달려있을 조명등은 태여날 때부터 그것이 숙명이였겠다는 생각이 거창하게 밀려들며 종족을 번식할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은 그에 비하면 훨씬 월등하고 행복한 존재일것 같았다. 그러다보니 뭔가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있어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란다로 향했다.
한달음에 달려가 벌컥 미닫이문을 열었다. 따스한 기운이 삽시에 얼굴을 덮쳤다. 창을 사이두고 쨍하니 비쳐드는 해볕때문에 베란다는 벌써 따뜻해져있었다. 그리고 해살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곳에 놓인 나무상자에서는 콩꼬투리를 단 콩 여섯포기가 곱다란히 서있었다. 콩잎은 이미 떨어져버린 상태이고 점차 갈색을 띠며 말라가기 시작하는 콩줄기에 콩알이 탱탱하게 들어찬 약간 갈색을 띤 콩꼬투리들이 줄을 지어 조롱조롱 달려있었다.
나는 콩꼬투리를 하나 뜯어내여 껍질을 발랐다. 조금 습기가 있는 껍질이 가운데 줄을 따라 두쪽으로 갈라지자 오통통한 아직 땅땅 마르지 않은 콩알 세알이 나란히 형체를 드러냈다. 콩을 심어서 콩이 자라고 꽃이 피여서 콩이 달린 콩은 심었던 콩과 닮아있었다. 다르다면 아직 채 마르지 않아 부풀어있는 형체와 조금 푸른빛이 감도는듯한 누른빛이라는것뿐이였다. 구분이 되든 안되든 심은 콩도 거둔 콩도 콩은 여전히 콩이였다. 이제 열매를 맺고 여물어가는 윤이의 나이수자와 같은 여섯포기의 콩을 보고있을려니 그 콩을 심고 키우느라고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행복해했을 윤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서 까칠하게 정나미가 떨어지는 나때문에 서운했던 마음을 윤이가 웃는 모습을 보며 지워갔을 남편의 얼굴도.
그러는 내 귀로 미금이가 도란거리던 소리가 들려오고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남편이 1위야.”하고.

미금이와 만났던 날, 나는 미금이네 집에서 나온지 반시간이 채 못되여 길가에서 핸드폰을 떨어뜨리며 그 자리에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상민이네도 자식이 없어. 상민이가 18살 때 정관수술을 받았다더라……어릴적 부모의 버림을 받은 상처때문이라는가봐……”
핸드폰으로 들려오던 미금이의 말이 귀전에서 울림이 되여 수없이 되풀이되고있었다. 내 귀속에도 머리속에도 온통 그 소리뿐이였고 귀를 막고있음에도 그 말들은 술렁거리며 내 두귀를 넘어서 공기속에 흩어져버렸는지 주위에는 온통 그 소리뿐이였다. 머리가 혼란스러운 속에 어디서부턴가 알지 못할 감정들이 일시에 밀려들며 가슴이 터질것 같은 느낌에 길길이 솟구치며 악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얼마동안이나 그러고있었을가?
쏟아지는 가을해볕에 등골이 따가와오고 지나가는 행인들의 이상해하는 눈총이 느껴질무렵에야 세차게 풀무질하던 가슴이 진정을 찾고있었고 무릎이 저려오며 장단지가 쥐가 오른것처럼 뻣뻣해났다. 나는 뻣뻣해진 다리를 끄당겨 펴고 장단지를 두드리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몇번이고 팔을 들었다 내렸다 하며 기계적인 동작을 되풀이하다가 택시를 잡아타고 뻐스역으로 향했다.
미터기도 보지 않고 운전기사가 부르는 액수대로 돈을 건네주고 멍때린 표정으로 매표구에서 표를 끊고 뻐스에 탑승했다. 제일 뒤구석에 자리를 찾아 앉아 의자등받이에 몸을 싣고 눈을 감아버렸다. 삽시에 피로감이 확 몰려들며 잠이 올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자려고 하니 영화가 시작되기전 거꾸로 시간을 헤아리며 번쩍거리는 스크린처럼 눈앞에서 윤이며 남편이며 미금이며 …….무수한 얼굴들이 엇바뀌여 정신을 해롱해롱하게 만들고있었다.
갑자기 머리가 욱신거리며 밀려드는 두통때문에 구토가 날것 같아 나는 급기야 눈을 뜨고말았다. 그러는 내 눈앞에 전단지 한장이 들이밀어졌다. 허술한 옷차림에 전단지가 들어있을 커다란 돛천멜가방을 멘 꾀죄죄해보이는 인상의 40대 녀인의 투박한 손에서 전단지를 받아 얼핏 눈길을 주었다. 전단지에는 조각처럼 아름다운 얼굴의 녀인이 포동포동한 아기를 안고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붉은색의 커다란 활자가 찍혀져있었다.
“아이를 원하십니까? 부부사랑병원에서 당신의 고민을 해결해드립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하필이면 상민이의 얼굴이 떠올랐고 머리가 지긋지긋해지며 굳이 전화를 해서 상민이의 사실로 부부의 인연이 중요함을 강조하려 한 미금이가 원망스러웠다. 한편 머리속에는 다시 해일이 일며 온갖 조잡한것들이 이리저리 밀려가고 밀려오면서 뒤죽박죽이 되고있었다. …..

나는 콩알을 발라낸 콩꼬투리를 버리고 콩알 세알을 화장대밑 서랍에 넣어두었다. 얼마간 있으면 땅땅 말라 심었던 콩알의 모습으로 남아있을것을 생각하면서 무거웠던 기분이 조금은 밝아진것 같은 느낌에 억지로 입귀를 들어올리며 미소라는것을 지어보았다. 화장대앞 거울에 비친 내 미소띤 얼굴은 무엇인가 비여버린듯 휑하였다. 그 얼굴에 로션을 뚝뚝 찍어바르고 화장대서랍에서 중지만큼한 작은 플라스틱병을 꺼내 그 속에 든 약간 흐릿하면서도 맑은 액체를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대충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9

“무정자증도 여러가지입니다. 선천적으로 고환의 발육이 불완전하거나 이상이 있을 경우 치료할수 없습니다. 정자는 고환에서 생산되는거니깐요. 쉽게 말하면 공장이 온전하지 못한데서 물품을 생산한다는것은 말이 안되는거죠. 하지만 후천적으로 고환에 병이 생기거나 수정관이 막히거나 수정관에 이상이 있어서 무정자증이 초래할 경우에는 확률은 높지 않지만 경중에 따라서 치료될수도 있습니다. 백프로 완치를 보장할수는 없지만 생육은 가능하게 될수도 있다는 얘기죠. 2년동안 남편몰래 남편한테 약을 복용시키셨다 그러셨죠? 아마 약효가 났나봅니다. 축하드립니다. 검사결과로 놓고보면 남편분의 경우엔 정자수가 적기는 하지만 기우에 따라서 생육할 가능성을 갖고있습니다. ”
도수높은 안경을 건 얼굴이 건조하게 말라보이는 녀의사의 말을 건성으로 받아듣는 내 눈앞으로 꼬리달린 올챙이를 닮은 수많은 정자들이 어둠속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헤여가고있었다. 그리고 난 그 올챙이같은 정자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귀를 풀럭이며 헛웃음을 만들어내고있었다.
“후훗~ ……훔친게 훔친게 아니라니?......”
녀의사의 안경밑의 눈이 커지는것을 힐끗 들여다보고 나는 돌따져 진료실을 나와버렸다. 긴 복도를 지나고 커다란 대청홀을 가로질러 나오면서 나는 오소소 한기를 느꼈다. 갑자기 가슴이 갑갑해졌다. 나는 뒤로 손을 올려 속옷밑으로 천천히 브래지어끈을 끌렀다. 가슴이 한결 느슨해지며 숨이 훌 나오고있었다. 어느새 또 배란기증상이 서서히 시작되고있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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