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근한 로동 희망찬 생활
-삼합3대 리방길가정을 찾아서
록음이 짙은 6월 중순의 어느날, 기자는 양어장에 과수원까지 가지고있다는 연길현 삼합공사 삼합3대 사원 리방길가정을 찾았다.
“뭐 해놓은 일도 없는데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셨습니까?” 삼합대대마을에서 약 2리가량 떨어져 있는 양어장에서 리방길사원은 기자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 양어장을 언제 만들었습니까?”
기자의 물음에 그는 양어장을 만들던 일을 이야기 하였다.
리방길사원은 논물이 고여 늪을 이룬 7무가량 되는 이곳에 눈독을 들인지는 오래였다. 그는 양어장을 만들자고 생산대지도부에 수차 제기했으나 생산대에서는 일손을 뺄새 없어 손을 대지 못하고있었다. 그러던중 금년에 생산대에서 사원호도거리책임제를 실지하자 리방길사원은 대부금 1,100원을 맡아서 양어장을 꾸리였다. 그는 늪을 손질하고 한마리에 5전 5리씩 하는 새끼고기 1만마리를 사다가 늪에 넣었다. 그리고 정년퇴직간부 김호섭과 함께 아침저녁으로 양어장에 나가 물오리가 해치는가고 살펴보았으며 늪가의 풀을 말끔히 베여주었다.
“가을에 가서 수입을 얼마나 올릴수 있겠습니까?”
“가을에 물고기 6-7천근을 잡을것 같습니다. 현수리국에서 고기 1근에 일원씩 처리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수입이 6-7천원이 되겠지요.” 퍼그나 커보니는 이 양어장에서 한뽐씩 잘되는 물고기들이 살진 몸뚱이를 물우에 솟구쳤다가는 다시 물속으로 들어갔다. 흐뭇한 마음으로 고기들에 눈을 팔고있는 나를 보고 리방길사원은 7월에는 양어장곁에 막을 짓고 나와있으면서 양어장을 관리하겠다고 한마디 보태였다.
우리는 그가 가꾸었다는 과수원으로 발길을 옮기였다.
집남쪽비탈에 돌을 쌓아 다락밭을 만들고 거기에 과일나무를 심은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야!”하고 감탄이 나왔다.
그는 7년전부터 돌각담을 쌓고 다락밭을 만든 다음 거기에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때 어떤 사람들은 이게 어느때라고 함부로 덤벼치느냐 하며 그를 극구 말리였다.
그러나 그는 불모의 땅에 과일나무를 심는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하며 아침전, 점심 그리고 달밤을 타서 널려있는 돌들을 주어모아 돌각담을 쌓고 다락밭을 만들고 거기에 과일나무 165대를 심고 거름을 주며 알뜰히 가꾸었다. 스산하던 산비탈은 그의 노력에 의해 마침내 푸르른 과원으로 변모되였다. 먼저 심은 과일나무들에는 과일이 맺히고있었다.
“리동무네는 전문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도 논 1헥타르에 밭 6무를 도맡았습니다. 농사일이 바쁠 때면 외지에 나간 아들들이 집에 돌아와서 농사일을 돕지요. 우리들은 금년에 벼모내기를 6월 5일에 끝냈습니다. 지금 논의 벼도 밭의 농작물도 잘 자라고있습니다.”
리방길사원네 양어장, 과수원을 돌아보고 진짜 신근한 로동으로 가정살림을 꾸려가는 그들 가정이 더없이 부러웠다.
“가정에서는 정말 맡은 포전도 잘 다루고 가정부업도 통이 크게 벌렸습니다.”
“네, 이전엔 아무리 재간이 있어도 발휘하지 못하였지만 지금은 시름놓고 가정살림을 부유해지게 할수 있지요.”
이렇게 말하는 리방길사원의 얼굴에는 자랑과 긍지, 자부심이 함뿍 담겨있었다.
≪연변일보≫ 1982.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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