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라지오텔레비신문은 새해 첫기부터 “화술강좌”란을 설치하고 연변인민방송국 방송부 주임인 서방흥선생의 작품을 륙속 싣게 된다.
기자는 시대발전과 현실언어생활의 혼란, 새 세대들이 “말할줄 아는 벙어리”가 되여가는 현실을 감안하고 12월 13일 일요일에 한창 “우리말공부교재”를 집필하고있는 서방흥선생과 그의 사무실에서 마주앉았다.
서방흥-하면 청중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다. 이미 방송지도(교수급) 직함을 가진 서방흥선생은 마이크앞에 앉아 27년간 웅글지고 박력있고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로 연변방송의 같지않은 쟝르의 방송풍격을 창조했으며 또한 방송원후대양성사업, 사회언어규범화발전을 위해 정열을 쏟아왔다. 시대발전변화에 따르는 매 시기 그의 방송은 청중들의 좋은 평을 받아왔고 이미 발표한 “방송원입문”저서와 30여편의 론문은 우리말 방송과 사회언어생활제고에 큰 기여를 하였다.
서방흥선생과 한동안 한담이 흐르다가 저도 모르게 화술에 대해 말이 오가게 되였다.
기자: 오래동안 방송사업을 하면서 별반 어려운점은 없지요?
서방흥: 어떻게 말씀드릴가요? 오랜기간 방송을 해왔지만 첫발을 떼던 그 시기가 어려웠고 지금 고봉에 오르는 이때가 또한 어려운것 같습니다. 모든 사업이 그러하겠지만 방송사업은 그 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이 느낄수 있는 어려움이 따로 있는데야 어찌겠습니까? 기본으로 되는것은 방송질 제고에서 봉착하는 난관입니다. 방송이야 어디 자기가 잘한다해서 잘하는겁니까? 청중들의 “심판’에 맡길수 밖에 없는거지요.
기자: 방송생애에 대해 더듬어본적이 있습니까?
서방흥: 예. 있구말구요. 방송생애에 대해 저는 어디까지나 랑만적입니다. 청중들이 저한테 “붉은 패쪽”을 내들기전까지는 마이크앞을 떠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입니다. 허나 돌변하는 시대에 경험과 실력에만 의탁하고 하냥 한본새로 방송한다면 형세에 뒤진것이고 저의 방송생애도 마무리짓는거지요. 시대의 발전변화에 맞는 방송풍격을 새롭게 하기 위해선 열심히 뛰여야지요. 지금은 편집, 기자가 써준 원고를 읽을 때가 아니라 머리로 말할 때니깐요. 청중의 사랑받는 벗으로 되기 위해서는 열심히 공부하고 끈질기게 노력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한테는 방송후대들을 참답게 이끌어가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방송원사업은 끝까지 두려움과 맞서 분투하는 성스러운 삶이 아닐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기도 합니다.
기자: 그러니까 서선생은 얼마나 다망하십니까? 그런데도 사회언어발전을 위해 그렇게 많은 사업을 펼치고있습니다. 이번 “화술강좌”도 그렇고요. 어떤 의도에서 사회활동을 하게 되였는지요?
서방흥: 좋은 물음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얘기는 마음속 말입니다. 우리 방송은 그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방송원의 매 한마디의 말은 직접 선전효과에 영향주고있습니다. 현재 사회언어생활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한어의 섞임, 외래어의 사용, 비표준발음의 란발… 이뿐만아니라 말을 더듬고 곱씹고 군더더기를 넣는 사람, 어쨌든 자기의 생각을 조리있게 표달못하고있습니다. 전직화술일군들까지도 발음규범을 지키지 못해 틀린 발음이 나갈 때도 있으니 정말 가슴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사회언어생활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을 두고 많은 생각을 굴렸습니다. 비록 아직까지 우리말을 옳바르게 이끌어나가기 위해 강유력한 조직적인 조치가 따라가지 못하고 학교교육에서 글공부가 위주인데다 발음법은 나왔으나 그것을 잘 지키지 못하는 원인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것은 “반드시 우리말을 잘 해야 한다”는 명확한 인식이 자리잡지 못한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직면한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성음전달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없이 말이 전파되고 컴퓨터로 말이 글로 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말잘하는것을 순교제의 질과 효과를 높이기 위한것으로만 볼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품위와 인격을 인정받을수 있는가를 가늠하는 척도로, 나아가 민족의 자질, 민족언어의 발전과 전도에 관계되는것으로 인식해야 할것입니다. 방송원이라면 하나의 비규범적인 발음도 민족앞에 죄진다는 높이에서 자책감을 느껴야 할것입니다.
제가 제일 근심되는것은 우리의 후대들입니다. 그들을 위해 좀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할수 없을가 하는 마음에서 사회활동을 벌리기 시작했습니다.
기자: 사회활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서방흥: 예, 화술의 연구 발전을 위해 “연변화술연구회”를 세웠습니다. 이 연구회의 주요책임을 맡고있는 저는 여러차례 주내 범위에서 화술콩클을 벌렸고 대학, 사범학교, 여러 중소학교에 가서 화술강의와 지도를 했습니다. 허나 몇사람의 힘으로야 감당하기 어렵지요. 비록 그 힘이 미약하지만 사회에 좀이라도 도움이 될수 있는한 저는 우리 민족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계속 뛸것입니다.
기자: 귀중한 말씀 많이 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 민족을 위해 계속 뛰여주시겠다니 그보다 더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금후 타산은 어떠합니까?
서방흥: 우리의 방송사업은 한창 생존을 위한 개혁단계에 있습니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내리막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원이라면 앞으로 방송실에서 청중들과 직접 대화하며 봉사방송을 하고싶은 마음이 있구요. “우리말공부교재” 같은걸 꾸며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부탁한가지 있습니다. 이제 곧 독자들과 대면하게 되는 저의 “화술강좌”를 두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편폭의 제한도 있고 또 많은 부분의 내용이 질제표달 훈련과정을 서술한것으로서 독자들의 편리, 훈련에서도 실효를 위해 의문되거나 알고싶은것, 리해되지 않거나 어려운것이 있으면 직접 저와 문의할수 있도록 매 편마다 저의 자문전화를 밝혀주었으면 합니다. 독자층이 학생들이 많을것으로 보아지는데 문의만 하면 부담없이 열심히 책임지고 가르쳐줄것입니다.
서방흥선생과의 담화가 끝났다. 그 무엇인가 가슴을 "탕" 치는 충격이 일었다. 서방흥, 그는 민족의 화술, 민족의 얼을 살려가려는 웅심을 지닌 방송화술계의 스타, 우리 민족의 자랑, 이런 분들이 있으므로 하여 우리의 언어가 이어지고 발전되고 우리의 문화가 꽃펴가고있는것이 아닌가?
기자는 본 직업을 그렇게도 사랑하는 마음, 자기를 대하는 옳바른 자세, 방송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고있는 그의 모습과 우리 말의 발전, 전도를 두고 후대양성사업에 모든것을 바쳐 뛰고 또 뛰는 그의 정력적인 사업에서 우리 민족언어의 밝은 앞날을 기대해 볼수 있었다.
서방흥선생의 이 모든것을 위해 몇달간의 로임을 모아 록음기를사다 화술을 전공하라고 고무해 주던 안해의 진정어린 애틋한 마음, 귀중한 목소리를 위해 술, 담배를 떼라고 진심으로 충고하던 딸 서홍의 부탁, 어디가나 아버지를 알고있다며 자호감으로 기뻐하는 아들 만승의 흡족한 모습, 이 모든것이 서방흥선생이 방송에서 끈질긴 노력을 기하도록 밑거름이 되였고 또한 방송개성의 창조에서 정신적 기둥이 되였을것이다.
그 어떤 힘이 뒤에서 밀었던지, 그 어떤 황홀한 자석이 앞에서 당겼던지간에 서방흥선생은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길림성방송원경연 1등상, 제2차, 3차, 4차 길림성방송원경연에서 련속 특등상의 월계관을 안아왔으며 길림성 “최우수 방송원”칭호를 수여받기도 했다.
서방흥선생의 그 부드럽고 친절한 목소리는 하늘상공에 울려퍼지는 전파를 타고 우리 민족의 자랑으로 뭇 사람들의 심금을 하냥 울려줄것이다.
≪연변라지오텔레비신문≫ 1998. 12.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