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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볼때 재일 조선족은–선배민족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3)
(4)재일 중국조선족의 극복 과제
카사이 노부유끼
➀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재일 조선족의 강점은 개인 네트워크가 윤활한 것이다. 앞에서도 말한바와 같이 이러한 네트워크는 동족 의식으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네트워크를 확대 충실하려고 하면 충분하지 않을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의 네트워크는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극히 내향적이고 그 규모는 결코 크지 않다.
원래 개인 네트워크란 그 기능이 한계적이고 그 한계적 범위내에서만 보다 밀도가 진한 관계를 쌓아 올리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와 범위가 확대되어 그 관계가 복잡, 대중화되면 개인 네트워크는 한계에 이른다.
② 재일 조선족간의 온도차
재일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네트워크는 결코 튼튼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것은 그들의 역사적 의존성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즉 중국에서의 그들의 출신지는 산재(散在), 분산되어 있어 일본에 도래한 그들은 그 출신지에 의해 동향의식(同郷意識) 가치관에 온도차이가 있다.
재일 조선족은 한국에 재류하고 있는 노동자층과는 달리 기업가, 기술자, 학도 등 엘리트층이 중심인 것이 특징이다. 또 중국에서의 그들의 전통적 중심도시는 연변조선족자치주로서 주 소재지는 연길시이며 연길시 출신 또 연변대학출신이 그들의 정점이 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주 소재지 출신자와 다른 지방도시 출신자 또는 지방 도시 출신자 사이에는 각각 동향성에 근거한 가치관의 온도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인 네트워크 형성의 원인이 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견(私見)에서는 해외에서 한정된 거주자가 형성하는 사회에 있어서 이러한 온도차이를 제거하여 협조성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그 근원인 중국 사회에서 형성된 생활방식, 가치관 및 역사적 의존성은 일본사회에서는 필요없을 것이다.
오히려 차세대를 위해서도 민족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일본 사회에서의 역사적 의존성을 새롭게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즉 1세의 동향성에 의한 횡적인 온도차이를 배제하고, 다음의 세대와의 종적 제휴를 지금의 1세 세대가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배 도래인의 경험으로 보면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1세가 아니라 2세 3세에 의해 가치관의 전환이 진행되며, 그 후세대로 1세 2세에 없는 새로운 가치 정의가 생기기 때문에 현재의 1세의 온도차이는 당분간 계속 될 것이다.
③ 새로운 민족 네트워크 시스템
향후 다른 가치관을 넓리 받아 들여 하나의 사회를 형성·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한계적 개인 네트워크를 초월한 기능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예를 들면 재일 한국국적인 조직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재일 조선족의 강점인 네트워크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적 특성에 배려하면서 현재의 개인 넷트워크와는 다른 새로운 민족 네트워크 시스템의 필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재일 화교·화인이나 재일 한국인은 타운 (공생 지역)을 만들어 거주의 장소만이 아니고 그지역을 관광자원으로 하고 있다. 재일 조선족타운은 가능한가 라고 물으면 지금은 시기 상조이다. 현재 그들이 거주하거나 기업하고 있는 지역은 수도권일 경우 신오오쿠보 코리안타운 및 그 주변이나 아키하바라로부터 케힌토호쿠선 연선 사이타마 근교가 많다. 아직도 선적 공생지역(線的共生地域)을 형성하고 있으며 향후 면으로서의 거주지역을 형성할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러나 조선족타운을 형성하면 거기에서부터 동족성·지연성에 근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스템 형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현재 재일 조선족사회의 중심은 1세이며 3세 4세의 중심 즉 3대 4대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선배도래인의 성숙사회와 비교하는 것은 적당하다고는 할수 없다 . 그러므로 선배도래인 1세와 재일 조선족 1세들의 비교로부터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재일 화교 최초의 도래는 150년전, 재일 한국조선인은 130년전, 재일 조선족은 25년전으로 1세 도래인과는 100년 이상의 시간 차이가 있다. 재일생활에서 이 차이는 지극히 크다. 시간적인 차이보다 국제환경이나 일본 사회의 외국인 수락숙도에 있어서 천지 차이이다.
즉 재일 조선족 1세는 그 생활에서 선배도래인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으며 한편 그들의 경험을 배울 수 있는「후발성 이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 2세 3세의 생활을 통찰함에 있에서 이「유리성」을 어떻게 다면적으로 살려 갈것인가가 현재 1세에게 주어진 문제이다. 선배 사회는 보고(宝庫)이다.
⑸ 에필로그
조국과 떨어져 해외에서 생활하는 민족을「디아스포라」라고 표현하는 언설이 있다.
디아스포라(διασπορά)는 희랍어로「흩드려진것 」이라고 하는 의미로 잘 알려진 예에서는 팔레스타인의 밖에서 이산하여 헤어져 사는 유태인을 가리켜 그 이외에도 그리스인 페니키아인 아르메니아 화인등을 들수 있다.
즉 본국외에 거주하는 집단을 디아스포라「정치상의 이유등에서 본국을 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라고 부른다. 그러나 디아스포라는 그 근저에 피상적 비참한 사정을 배경으로 한 이주집단이라고 하는 비관적 함의가 있다.
그 의미에서는 재일 한국인1세나 중국 동북지방(간도)에 유출한 조선족1세들은 확실히 이러한 민족집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뉴커머라고 하는 현대 해외 코리안과 같이 스스로 성장 기회를 찾아 세계에 펼쳐지는 민족집단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디아스포라의 개념에는 맞지 않는다. 조선족 뉴커머들도 이 예에 빠지지 않는다.
현대 재일 조선족을 비롯한 해외코리안과 같이 자기 발전과 본국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포함한 민족발전형 확산은 세계에 펼쳐지는「협노(協労)집단」이다. 그리고 그들은 민족 아이덴티티에 유지해 세계에 펼쳐진 월드 와이드·파트너인 것이다.
이 원고에서는 재일 조선족 2세 3세등 자손에 대한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보다 좋은 사회를 남기기 위해서 선배 도래인의 재일 생활경험을 분석해 왔다.
하지만 사실 선배인들은 2대 3대전에 간도(間島)로 이주한 중국 조선족 1세이며 자기들의 부모, 조부모이다.
왜냐하면, 재일 조선족들이 전승하려고 하는 문화는 그 모두가 1세부터 계승한 것이며, 중국이라고 하는 타국땅에서 계속 유지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향토인 고향의 산과 땅은 이동하지 않지만, 거기에 뿌리 내린 문화와 사회는 사람을 통하여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끝)
注)
1) 카사이 노부유키 「동아세아 세차례 조류」
「제3회 재일 중국조선족 국제 심포지엄:동북아세아 공동체의 가능성과
코리안네트워크의 역할」2009년12월.
(笠井信幸 「東アジアの三つの波」第3回 在日本中国朝鮮族国際シンポジウム「東北アジア共同体の可能性とコリアン・ネットワークの役割」2009年12月)
2)요미우리신문 2007년12월28일.(2007年12月28日付け読売新聞) (일본어)
3)필자의 현지조사(2008년9월).
4) 카사이 노부유키「동아시아의 문화센타 요코하마 중화가-중국인은 서양문화의중계인-」『항도(港都)요코하마의 문화론』코바야시 테루오 편저 관동 학원 대학 출판회 2009년 (일본어)
(東アジアの文化センター横浜中華街 ―中国人は西洋文化の介添人―
『港都横浜』
5) 카사이 노부유키「재일 한국인들의 조직적 모국 지원 활동」
『한국의 경제 발전과 재일한국기업인』나가노 신이치로 편저 도서출판 말글빛냄 2010년.
*재일 조선족및 그사회에 대한 연구는 일본에서는 아직 거의 없고 이원고는 필자의 일상적인 연구관심사로부터 친필 한것이다.
(在日朝鮮族およびその社会に関する研究は殆どなく、本稿は筆者の日常的な研究関心からまとめたものである)。
글 싣는 순서
⑴ 프롤로그
⑵ 재일 조선족의 특징과 그 모습
➀ 중국인은 재일 조선족의6배, 한국인은 재일 조선족의 5배
② 개인네트워크와 집단형성력
③ 중국조선족의 다언어 우월성
⑶ 재일 조선족이 선배민족에게서 배워야 할점
➀ 민족 아이덴티티 유지강화― 청나라인, 재일화교, 화인들은―
② 민족 유지의 힘― 재일 한국인들은―
⑷ 재일 조선족의 극복과제
➀ 개인 네트워크의 한계
② 재일 조선족사이의 온도차
③ 새로운 민족네트워크 시스템
④ 시대 뒤에서 가는 강점
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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