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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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삼원나루
2019년 07월 11일 14시 26분  조회:636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삼원나루

량춘식

 

나루터에는 “한사람이 3원! 한마리 3원!”이란 붉은색 페인트로 삐뚤삐뚤 써갈긴 패말이 도강객들을 커다랗게 맞아준다.

늑징, 침탈이 아닌 걸 알면서도 배 타고 강 건느는 사람들은 돈 1원 지어 50전 때문에 꼬치꼬치 캐고 강 량안이 떠나가게 소릴 질러대군 한다. 

“저런… 저런, 저 큰 덩치의 황소가 왜 3원이야? 요 돼지새끼도 3원 받는데… 뭐, 뭐야…”

“병든 사람헌티 돈 받어… 콱 가져… 홍문에 난 앙이를 뽑아 팔아 처묵을 늠으새끼가…”

그런 억이 막히는 처지에 맞닥뜨릴 때가 보통이였다. 

목숨 걸고 줄배를 놓은 장본인이 바로 ‘절름뱅이’ 억수! 자기가 아니던가. 두부 한모에 3원인데 그래 내가 놓은 배로 강 건네주고 받는 돈 3원이 죄라도 된다는 말인가…

하루가 십년 맞잡이로 고독하고 우울했던 그 나날들을 유유히 흐르는 강으로 나가 하루해를 지우군 했던 억수였다.

죽음, 유유한 강을 넋없이 바라보면서 익사를 선택하던 그 날, 긴 턴넬 속이 끝나듯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해처럼 불쑥 나타났을 줄이야.

거의 십년 나마 정지되였던 강건너 간이역에 다시 렬차가 정거된다던 거였다. 십여년 전, 강에는 줄배가 있었더랬다. 강 량안에 든든히 박힌 쇠말뚝이 그걸 증명해준다… 고작 10여호의 철로가속들만이 사는 너무 보잘 것 없는 간이역이라서 그랬던지 단 일분간의 정차가 취소될 줄이야. 아아, 1분! 그 1분 때문에 숱한 백성들이 강가에서 통곡을 쳤던 일은 지금도 억수의 눈가에 삼삼하다… 매일마다 남행과 북행으로 렬차가 1분씩 두번 정차하군 했었다. 사방 500리 구간에 300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도시 주위에 3개의 현성이 있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팔고 살 수 있는 거대한 시장이였다. 그 때문에 간이역으로 산 하나 넘어서 강을 건너서 벌의 긴 오솔길을 걸어서 사방 50리 구간의 촌락들에서 백성들이 꾸역꾸역 끊임없이 나타났다. 단 1분간의 정차 동안에 근 몇십명을 헤아리는 객들이 렬차를 오르내리군 했던 간이역이였다… 그렇게 옥수수죽처럼 끓었던 간이역이 정차 정지로 인해 제 역할을 잃은 지 얼마 안 지나 강의 줄배도 언젠가 행방불명이 된 거였다. 

그로부터 보따리나 자루, 광주리를 든 장사군들은 덜렁덜렁거리고 먼 거리를 굴러가는 값 비싼 뻐스나 경운기를 타고서 가야 했다. 

“우메야, 강건너 간이역에 렬차가 정착한다능기 증말이우다?…”

“그런데는 어쩌겠수, 줄배가 읍능기 강 건늘 수 읍능기…”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그렇게 말뚝을 박고 나무다리가 놓였는데 담이 작은 녀인들이나 아이들과 늙은이들은 건너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해마다 물귀신의 공양으로던지 다리를 건느다 사람 몇명씩이나 강에 떨어져 ‘물귀신’이 되는 걸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중 어느 날 억수가 무릎을 치며 마을 사람들의 안전과 경제적으로도 리익이 될 사위 좋고 시어미 좋을 방도가 생긴 것이였다…

“억수 만만세에-”

“억수에게 미녀가 아니, 선녀가 따라라아-”

목숨을 내걸고 줄배가 놓이던 날, 그런 축원의 구호소리가 강 량안을 뒤흔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만세에-’, ‘미녀가…’는 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 아침도 눈두덩이를 비비며 나타난 사공을 향해 사람들은 볼 부은 소릴 질러댄다. 

“이봐, 돼지여? 배돈 벌어 산다는 놈이 해 한발이나 뜬 지금에야 기여나오다니…”

“그 날 그 날 번 돈이 밤마다 어느 과부년을 즐겁게 해주는지 누가 알라우 글씨여… 흐흐…”

그럴 법도 했다. 고양이 손도 빌려쓴다는 5월이여서 강건너 농사를 짓는 그들이기에 거기다 37살을 먹도록 녀자를 모르다가 간밤 나루터에서 사랑하는 ‘양귀비’와 키스를 해본 흥분 때문에 이 아침에 당하는 수모도 달가울 수 밖에.

조반도 거른 채 긴 고리창을 끌고 나루터를 향해 달음박질쳤다. 아침해살이 눈부시고 강 량안에는 안개가 뽀얗다. 길섶의 고들빼기가 이슬을 물고 노오랗게 꽃술을 내보이며 수줍어한다. 

그렇게 신과 바지가랭이를 다 젖히며 달려온 것인데 벌써 나루터는 시끌벅적할 줄이야.

줄배는 주인이 아니고는 누구도 소유될 수 없게 강둔치에서 십여메터나 떨어진 흉용팽배하는 물결 우로 떠서 출떡출떡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언제나 일을 마치는 대로 긴 갈구리창으로 밀어붙이고 일의 시작으로 걸어당겨내는 자기 소유만의 ‘경제물’이 있었다. 

강 량안의 높직한 둔덕에 깊게 박힌 통나무 기둥에 단단히 고정된 와이야줄이 치렁치렁하게 휘돌이를 놓고 흐르는 강심의 물결을 내려다보며 ‘챙채애앵-’ 하고 아츠런 소리를 내고 있었고 둔치를 물어뜯고 배전을 쳐대는 물결소리가 고막이 먹먹하도록 치통을 일으킨다. 

고리창에 걸린 배가 드륵드르륵- 강쇠의 마찰음을 내면서 둔치에 와닿자 나이 듬직한 로농이 한소리 먹여왔다.

“마소부터 실어얀다구, 이잉.”

첫 배 운송부터가 시끄러웠다. 말 두필에 말임자와 옥수수씨 마대를 멘 사람, 새끼돼지 세마리를 팔러 가는 중늙은이들이 배에 올랐는데 말임자가 말의 배 아래로 움츠리고 앉게끔 한배가 찼는데 그 무게에 배전은 출떡출떡 쳐오르는 시커먼 물갈기 때문에 핑- 현기증이 일 정도였다. 공포에 질려 낯색이 파랗게 질린 늙은이는 말꼬랭이를 꽉 거머쥔 채 뱁새눈을 판들거리고 사공과 연신 따져묻는다. 

“여봐, 사공총각, 말 한필에 3원 받는 거지?”

“뭐, 뭐라고요?… 그렇죠. 당연히 한마리당 3원인 거죠!”

사공은 배전을 마구 쳐대는 물소리에 잘 들리잖던지 큰소리로 묻고 대답을 한다. 

“저렇게 덩치 큰 말이 3원이믄 요 내 돼지새낀 1원을 받아도 과분하다 그 말여!…”

배미에 앉은 중늙은이 돼지임자는 배바닥에다 분풀이로 연신 침을 뱉으며 분개해하고 있었다.

“왜 이러나, 이담 자네도 이 배에다 집채같이 큰 짐이나 노새를 실을 적 없을 라구… 왜 1원두 따지구 그래유?”

말임자가 게두덜대자 중늙은이는 더욱 떠들어댔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구 그렇게 모아야 아들놈 장갈 보내지…”

“관두라구. 어제두 볼라니까 집의 아들이 눈과 입가에 선글라스와 휴대폰을 걸고서 도시청년들의 스타일루 거들먹거리던데… 뉘집 처녀가…”

그들이 옳거니 그르거니 시비를 걸고 있을 때였다. ‘꽤액’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다마 같은 말눈깔에 겁 먹은 돼지새끼가 ‘풍덩’ 강물에 뛰여든 것이였다.

“내… 아이고, 나의 돼지새끼가… 내 생명 같은 돼지…” 하고 화닥닥 놀라 어쩔 바를 몰라할 때 어느결에 사공의 긴 포획그물이 사품치는 강물에 떠내려가는 돼지새끼를 번개처럼 건져올린 것이였다. 그런 기회를 놓칠세라 말임자가 “돼지새끼를 구한 값이야 단 3원이라도 내얍지요? 아무리 어째도… 킬킬…”

돼지임자가 말임자의 그 말에 화도 나고 사공의 눈치도 보여 몸둘 바를 몰라하고 있을 때였다. 

나루터의 저쪽 언덕에서 란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수소 두마리가 여윈 암소 한마리를 다투고 있는 중이였다. 

소임자 셋이서 당기고 저쩌고 하여 겨우 가축들의 타오르는 성욕의 불길이 조절이 된 모양이였다.

배가 이물을 대안나루에 대이기 바쁘게 사공이 사구려 소리를 뽑듯 목청을 뽑았다. 

“말 두필에 6원, 말임자 3원, 그리구우… 돼지새끼 3마리에 9원, 돼지새끼임자 3원, 그리구우… 옥수수 반마대는 한마대가 안 차기에 더우기 ‘사람’, ‘마리’에 해당하지 않기에 관두시구려…”

돼지새끼임자가 기어코 돼지새끼를 구해준 값으로 3원을 더 건네는 것도 뿌리친 채 수입 24원만 허리춤에 찌른 채 금방 소들이 란리를 놓던 대안으로 이물을 돌린 것이다.

거기서 일군들이 어서 배가 와닿기를 바라고 소리소리 질러오는데 성욕을 못 푼 수소들까지 영각을 뽑아대고 있었다. 억수는 엊저녁 달빛 아래 배 우에서 그녀와 난생처음으로 련애란 걸 해본 흥분 때문에 늦잠에서 겨우 깨여나다 보니 아침 때식마저 거른 채로였다. 했어도 경제적인 호황의 기분 때문에 맥 드는 줄 모른다. 돼지, 노새, 말, 소, 거위들의 울음소리까지 모두 돈이 오는 소리로 반가왔다. 아니, 그녀와의 사랑의 분위기로 흥분된다. 

“아아, 돈이여! 할아부지보다 더 위대한 돈이셔!”

억수는 그렇게 낮은 중얼임을 련속 반복하면서 눈앞으로 그녀를 떠올려보군 했다.

사공은 배 이물에 돌격의 태세로 버티고 선 채 와이야줄을 잡아당긴다. 쉭! 쉭! 강바람이 차돌들이 날아오르는 소리처럼 들리고 검푸른 물결이 헤가르는 고물을 들이받고 물어뜯으며 흰갈기를 일으킨다. 

배가 대안에 닿자 역시 가축부터 상선하게 되였다. 

소 세마리 중 두마리만 배에 오를 수 있게 되였는데 ‘성전쟁’이 다시 터질 줄이야.

덩치 크고 뿔 큰 ‘미남소’가 상선하려는 암소를 쫓아가 풀쩍 올라타버리는데 배가 뒤집어질듯 기우뚱거리고 사람들이 아우성을 지른다. 

“야, 거참 부러운 풍경이군… 흐하하…”

어떤 이는 배가 번져질가 공포에 떨고 있는 판인데 한 중늙은이는 배짱 좋게 롱지거리다.

“에끼, 동물들이 흘레하능기 뭐가 부럽다구까지 그려…”

“동물들의 흘레가 저같이나 솔직한 건지 참!… 인간들이야 얼마나 여수처럼 드러워… 그러니 자연히 난 동물들의 모든 행위를 귀여워하는 거여. 흐하하…”

그렇게 중늙은이 둘이 서로 열띤 소리를 할 때였다. 그걸 구경하느라 배에 오르는 것조차 잊은 사람들이 입이 벌어지게 혀를 찼다. 글쎄 ‘선녀암소’가 자길 올라탄 ‘미남수소’를 홱 돌따서며 뿌리로 세게 떠받아버린 거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여위고 눈곱 끼고 느침만 질질 흘리고 선 지지리 못생긴 수소에게로 음풍영월이듯 음순을 들이대던 거였다. 

“아하, 통 리해가 안 가는구려. 아쉽고 또 아쉽구먼이라. ‘선녀소’가 ‘똥구리소’를 허락하다니…”

한 중늙은이가 유감천만이던지 무릎까지 쳐대고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한 녀성이 비꼬듯한 투로 내뱉고 있었다. 

“저 ‘똥구리소’의 온몸에 옥수수가루와 두병찌끼들이 묻었잖아유. 저걸 핥아먹고 싶어서라도… 그럴 거라구요. 녀인들도 마찬가지라구요. 좀 못났더라도 부지런하고 돈 잘 벌어내는 사내들을 추구하는 게 아닐가요. 호호…”

사공총각은 그녀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짙은 화장이 그녀의 거친 피부를 은페시키고 있었는데 이 세월에 농촌에선 자기 같은 녀자마저 ‘금값’이 아니랴는 오만함이 그대로 드러나뵌다. 

하긴 그랬다. 지독히도 ‘메마른’ 세월이다. 주글주글한 할머니들의 축 처진 젖통마저 부끄럽게 마주뵈는 억울한 놈이였었다. 

어떻게 장갈 들어볼 수는 없을가… 피 말리는 고민과 뼈 휘는 방황의 계절이 시작되였다… 결국 돈, 돈을 벌어야 한다는 선입견의 강한 휘동하에 목숨을 걸고 강에 줄배를 놓게 된 것이였다…

“개 한마리 3원, 소 세마리에 9원, 사람들 아홉에 27원, 총 39원이요…”

“이봐 이보라구, 개도 돈 받어? 이런 제길헐 늠으…”

“개도 ‘마리’에 속하니깐요. 미안하지만 이건 도강의 ‘법’이지요!… 세상 모든 것에는 법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 법을 리행하지 않거나 어기면 벌 받고 자유를 박탈당하게 돼있거든요! 렬차, 뻐스, 택시를 타도 말파리나 개파리를 타도 다 돈을 내야지요. 당신들이 렬차를 타고 현성이나 도시를 여유작작 나다닐 수가 있으며 기름진 토양에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도 이 배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돈 3원을 내고 30원, 3만원을 벌 수 있는 곳으로 가겠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사공총각이 역정 서린 구구한 설명을 해댈 땐 더는 맞장을 치는 이가 없었다. 말해봤자 기다리는 건 손해 밖에 더 없을 거였다. 그것은 한바탕 청동빛의 얼굴이 불끈 솟아오르는 태양을 향하고 울뚝불뚝 근육 진 몸의 오금센터들에서 뼈들이 내는 소리가 여물게 들리는 위엄 때문이기도 했다. 

상쾌한 아침은 이 아침만도 돈 63원이나 번 이 아침나절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아침은 배 뜨는 아침마다 사례 터친 입안처럼 짜릿했던 것이였다. 

그는 배미에다 그물을 드리웠고 강가에다 주낙을 늘여놓군 하는 것이였다. 그것은 언제나 헛탕 칠 때가 없었다. 사람들이 무리 지어 고향을 떠나간 후 아니, 지금도 떠나가고 있지만 그 때문에 강물은 더욱 맑아지고 물고기도 많아지는 것이였다. 배미에 드리운 조그만 어획그물에선 고물부터 배바닥을 붙어다니는 뱀장어나 송사리들이 들었고 강물에 놓은 주낙들에선 운수가 좋을 땐 사발 크기 만큼의 두통이 큰 메사구들이 개구리거나 작은 물고기를 꿴 주낙에 끌려나오군 했다. 배돈도 벌고 물고기돈도 벌고 꿩 먹고 알 먹는 격의 삶은 그렇게 이제 강에 배를 놓은 날부터 거의 둬해째 나던 거였다. 

그는 그런 보람된 살이를 시작하고부터 처녀 없던 자기 주변에 언제 저 같이 동탕하고 요요한 계집애가 나타난 것인가를 놀랍게 의식한 거였다. 

조선족이든 한족이든 몽골족이든간에 처녀란 출국이 아니면 도시로 나가 돈 벌고 짝을 이루는 게 요즘 법인데 말이다. 

처녀는 마냥 꽤 거리를 두고 이쪽을 흘끔흘끔 눈길을 던져오고 있었는데 말이다. 봄이 지나고 무더운 여름이 다 갈 때까지도 처녀는 먼거리의 섹시함만 보여줄 뿐, 말 건넬 틈서리조차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랬다고 아예 무시하려고 애썼지만 온몸의 정열과 눈길이 그예 처녀의 모습에로 가 조청처럼 떨어지지 않던 거였다.

한 몇십메터의 동안을 두고서 처녀는 배 모는 걸찬 사공청년의 기운과 돈 받는 거동들을 주시하고 점심참에는 물고기를 끓여내는 구수한 내음을 기꺼이 맡고 있는 눈치였다. 

“에이, 여기 와 같이 구수하고 얼큰한 메기국이나 먹어주시여어…”

억수가 담을 길러 강가의 하얗게 피여나는 억새꽃에 바래여 해쓱하니 얼굴이 더욱 꽃 같아 보이는 그 처녀를 향해 목청을 돋우어 불러보았다. 그러나 처녀는 의연히 강뚝 풀섶에 오도카니 앉은 채 알은체도 않는다. 억수는 두번, 세번이나 불러보았지만 역시 그쪽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서야 “아차, 저 처녀 혹시 정신이상에라도 걸린…” 그렇게 머리통이 윙- 울리며 기가 죽은 거였는데… 그 처녀에 대한 아쉬움과 슬픔 속에 늦가을도 한겨울도 물러가고 이 여름, 그러니까 한주일 전 강수면에 저녁노을빛이 흐르고 무수한 잠태기들이 날치며 저녁을 가송할 때 ‘미친녀’가 원래는 ‘벙어리처녀’겠음을 알아버리고 말 줄이야…

아침도 늦은 아침이였다. 한바탕 배객들을 건네주고 난지라 마카와 메기를 건져 배 우에서 앵코숱불탕을 끓여서 술 둬냥에 밥을 게눈 감추듯 하고 나니 엊저녁 사랑이 사례처럼 몸통 속을 기습하면서 여울여울 갑문을 닫고 묻히는 조개처럼 배전을 잡고 누운 채 잠에 빠져든 것이였다. 얼마나 잤을가? 무슨 소리에 잠을 깨며 눈을 떴을 때는 강한 해살이 얼굴을 가린 밀짚모자를 비집고 숨 막히도록 얼굴을 쪄내고 있었다.

“어이… 어서 배를 갖다 대란 말야… 렬차시간이 다되여가는데, 어이…”

“배사공이지 저팔계야… 한뉘 남자노릇 제대루 못하구 살 놈아…”

사공 억수는 대안에서 고래고래 소릴 질러대는 잰내비 같은 놈들을 깊은 강물에 처넣고 싶도록 화가 동했다. 그러나 심심찮게 배객들한테 당하군 하는 일이 밥 먹듯해서 화를 흐르는 강물에 거품처럼 띄워보내야 하는 것이 습관된듯했다. 

배 고물이 나루에 닿자마자 두 청년이 배에 뛰여올랐다. 

둘 다 린근 동네에 사는 청년들 같았다. 장밤 마작을 치고 술판까지 벌렸던지 물감을 들여 금황색으로 빛나는 머리는 쑥밭이고 옷매무시는 쥐가죽 같은데 입에서는 술냄새가 풀풀 날렸다.

물길을 가르는 배에서 둘은 신선이나 된듯 기분이 둥둥 떠서 이러쿵저러쿵 자기 좋은 소릴 하느라 법석을 떨고 있었다. ‘왕바바’라고 불리는 바위 같이 생긴 녀석이 떴다 고았다.

“나 레슬링운동이 좋드라구, 히히…”

그 말을 ‘요밍밍’이라 불리는 개미허리 청년이 받았다. 

“난 말야 기래두 사이버카페가 좋더라구, 낄낄…”

“임마, 그런 델 갈 거면 차라리 삼바가 더 좋지 뭐. 고대와 현대가 묘하게 어울리는 곡조에 맞추어 엉덩이 춤을 추고 배꼽 춤을 추는 섹시미녀들이 붐비는 그 속을 와인을 얼근히 마시고 한데 어울리느라면 챠, 시간은 어느 년의 샴푸나 메니큐어에서 풀어지는 것이고 그러면 행복은 결국 내 정열의 창조물이 아니더냐, 뭐 그런 거야!”

“얌마, 넌 레슬링이 뭐가 좋다고 거기루 ×빠지게 다녀? 네가 뭐 근육살을 올린다구? 원체 바위 같이 생긴 네가 말야? 뭣에 유혹되였어…”

밍밍의 야유 젖은 물음에 바바가 붉은 실타래가 풀린듯한 충혈진 눈을 검푸르게 용용한 강물 속에 헹구면서 힘 없이 중얼거렸다. 

“레슬링 운동실에 들어서면 난 제 정신이 아니야! 한달 훈련비 600원씩이나 왜 거길 뿌려줬냐고?… 우연히 그 앞을 지나다가 활짝 열린 문안으로 세상 첨 보는 섹시한 처녀가 나에게 윙크해보이는 거 아녀. 한번 들어와 근육훈련을 해보란다… 아아, 그 무거운 아연덩어리 레슬링기구를 다룰 적마다 빤히 날 내려다보는 녀교련원, 그녀의 머루알 같은 동공과 근육투성이로 미끈히 뻗어내린 허벅지와 탄탄한 앞가슴이며를 올려다보느라면 무거운 아연덩어리가 불시에 날 내려쳐 내가 죽어버려도 원이 없을 것 같더라고…”

밍밍이 젊은 이마에 늙음을 피우며 “넌 그게 문제야. 미인들을 찾아헤맨다니까. 거기다 썬쩐 들어가 개고생하여 돈 버는 부모형제들의 돈을 싹 팔지 뭐. 킥킥…”

“얌마, 너두 안 그래? 맹장이 터졌소 하고 거짓말을 써서 부쳐온 만원 돈을 마사지를 하오 하며 안마원아씨한테 싹 처넣어버린 거 내 모를라구…”

그담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배가 거의 대안을 가 닿을 때였다. 밍밍이 강가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거긴 벙어리처녀가 선녀처럼 서있었다. 

“저 벙어리 처녀를 꼬시다가 나 귀뺨을 얻어맞았댔어… 말 못해 그렇지, 속이 여물구 미녀지, 그래서 영원히 사랑을 하려구 그런 건데…”

“하긴 이 근처에 저 벙어릴 내놓구두 절름거리거나 간질병이 있는 풍만하구 수양버들 같은 처녀들이 있긴 한데… 그런 것들마저 날 거들떠보지도 않는단 말야! 휴.” 

밍밍이 말 같은 말을 한마디 던졌다. 

“우리 둘은 백수건달이야! 이렇게 세월을 보내다간 영원히 장갈 들기 어려울 걸! 장갈 드는 길은 단 한가지, 어떻게라도 돈을 벌어야 해!”

배두가 대안의 둔치에 대이기 바쁘게 두 청년이 훌쩍 뛰여내리려 들었다. 사공이 가로막았다. 

“도강값을 치르고 내려야지.”

바바가 코방귀를 뀌였다. 

“뢰봉아저씨를 따라배우라우. 응? 기리구 우린 돈이 없다구요.”

억수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 시커멓게 룡트림을 하는 강물에 눈길을 던지면서 맞장을 떴다.

“늬들 부모형제가 뼈 휘게 벌어 부친 돈을 시내루 올라가 마구 탕진을 하는 데는 돈이 아깝지 않구 강을 건느는 돈 3원은 아깝다 그 말여?… 그 꼴루 노니깐 어느 처녀가 늬들을 좋아하겠어…”

두 청년은 그것도 배 우에서 안되겠던지 선선히 돈 6원을 사공에게 뿌리고 얼굴색들이 지지벌개서 배에서 뛰여내렸다. 

억수는 여름 속에 묻힌 간이역을 향해 숨을 헐떡이며 달려가는 두 청년의 뒤모습이 몇해 전의 자신 같지 않나 의심이 들어 두려워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먹먹해오는 치통 같은 전률 때문에 얼굴을 붉히며 대안에 눈길을 주었다. 

거기서 아름다운 처녀가 갈꽃같이 부서지게 입 벌리고서 이쪽을 향해 손 저어오고 있었다. 은은한 목소리는 없어도 찬송가처럼 부드러운 느낌으로 몸속이 출렁이고 있었다.

저 녀인이 없었다면 자기는 실로 어떻게 된 인간으로 살아갈 것인가. 계집애가 자기에게로 추파를 보내오던 그 날부터 처녀로 변한 것이였고 키스를 한 엊저녁부터 자기는 자신감 넘치는 남자가 된 것이 아닐가.

그렇다면 진정 누가 나에게 진정한 남자의 자격을 준 것일가…

“하느님이 뭔 줄 알어? 세상사람들이 바루 하느님인 게야. 그 하느님은 눈이 있어, 다 본다고. 어느 누가 삶에 등가죽이 벗겨지도록 노력을 하고 있다면 그에게 ‘자격’을 준다고…” 라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비로소 깨달을 것 같았다. 

흉흉한 세찬 강물결을 헤가르고 목숨 걸고 와이야줄을 늘여 배를 놓던 그 날의 ‘절름뱅이’, 억수를 사람들은 보았다! 매일 배를 몰아 3원씩 돈 모으는 로총각을 사람들은 보았다! 그렇게 아글타글 모은 돈으로 집도 수리하고 텔레비죤도 사놓고 살기 시작하는 사공총각을 눈들이 보았다… 아마, 저 처녀도 나날이 눈에 드는 삼촌벌 되는 사공총각을 따라서 강가에 나왔나보다. 

“저 가시내, 무섭도록이나 곁을 주지 않고 하루해를 보내군 하는 가시내가 허구헌 날 강가로 나오는 까닭이 뭐야.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듯 자기도 큰 도시로 시집을 가고파서겠지야…” 

그렇게 미워까지 하고 귀찮아하다가 달포 전의 세찬 강바람 속에 흠뻑 땀 흘리고 지친 자기에게 개나리꽃처럼 배시시 웃어뵈며 고운 종이로 싼 전병을 내여밀었을 때에야 ‘벙어리’처녀임을 안 것이였다. 

희망, 언제나 기회를 놓칠 줄 모르는 억수다. 미소 지어보이는 그 고운 얼굴을 보며 내여민 손목을 덥석 잡았다… 강물은 메기의 이늘 같은 정열을 분비하고 강아지풀이며 방동사니며 보리뱅이에 소똥꽃, 말씹풀 같은 잡풀들마저 ‘절름뱅이’와 ‘벙어리’의 사랑을 시기해 잎으로 눈 가린다. 

현대적 사랑은 이런가? 대안에서 도강하려는 개들이 아우아우- 갈까마귀소릴 질러오는 데도 통 귀먹었다. 

사랑은 그렇다. 배고픈 줄도 모르고 눈이 멀고 귀가 멀게 불타오른다. 

벙어리처녀는 끝없이 손짓하고 웃고 손짓하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 뜻은 그래도 고향이 좋아요. 봄에는 산딸기에 두릅이, 여름에는 오디와 칡이, 가을에는 다래가 지천으로 깔려있어 우리 둘 입을 무척이나 즐겁게 하지요… 비행기 타고 유람선 타는 신선놀음도 부럽지 않아요. 도시나 천국 같다는 외국에 살아도 병든 사랑이라면… 고향에서 부지런히 돈 벌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가 진짜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춘 사나이지요!… 그렇게 들려오는 것이였다… 엊저녁의 그 달콤한 정경 속에 잠겨 노래처럼 흐르는 강물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참이였다. 

문득 눈길이 대안에서 배를 대기하는 객들이 목청 돋우어 부르는 소리도 없이 그저 맥없이 애타도록 막대기 같은 손을 저어오는 게 애처롭게까지 안겨오고 있었다. 

사공은 아쉬운 나머지 쩝쩝 입맛을 다시며 황급히 배에 뛰여올랐다. 그런데 엊저녁 밤 늦도록 련애하고 혼곤히 잠에 빠졌을 처녀가 어느 사이 나루터로 나와 뒤따라 배에 올랐을 줄이야.

대안의 나루터에 비스듬히 걸터앉기도 하고 와이야줄 고정대에 몸을 기댄 채 다가오는 배를 대기하고 있는 세 사내들은 금방 하행렬차에서 내린 것이였다. 술에 취했거나 아니라면 뉘집 황둥개에게 쫓기다 맥이 다 빠져버린 사람처럼 셋 다 죽은 붕어눈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물이 나루턱 밑에 대이자 세 사람은 어질어질 배에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셋 다 약속이나 한듯 눈확과 관골들이 튀여나오게 여위였고 창백한 얼굴들이였다. 그럴망정 그들을 맞이하느라 그런지 고향의 저녁노을은 아름답게 피여나고 선녀가 내렸는가 이물 쪽에 아릿다운 처녀가 미소를 머금어 살풋이 그들을 맞는 것이 이게 그 늙고 낡아빠진 느낌의 고향이 맞냐 의심이 들 지경이였다. 

그들이 서울도 아닌 꿈도 꾸기 싫은 누더기 고향에 이 같이 선녀 같은 녀인이 다 있었더냐 의혹과 경악에 질려할 때였다. 

“야, 이 놈들아. 이 할아부지를 못 알아보다니…”

팔 힘줄이 튀여나오게 배줄을 당겨내던 사공이 미인에게 넋을 앗기고 있는 셋을 향해 버럭- 질러대는 소리는 반갑고 하소연에 가까운 유머스런 목소리였다. 

“아하, 이… 이게 억수가 아냐?! 저런… 안 죽고 살어있었구나아…”

학처럼 목이 약해진 ‘게사니목’이 알아보고 알은체하는데.

“절름뱅이 아니, 아니지. 소학교 적… 시간에 오줌을 솰솰 누었던…” 하는 왼볼에 한모숨의 털 기미가 돋친 ‘털사마귀’가 손벽을 탁- 치고 알아보는데. 

“맞구만이라, 거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해서 선생님께 ‘무용지물’이라고 불리던 절름뱅이 억쇠가 아냐? 반갑다아-”

그러며 코대만 긴 ‘이딸리아’가 덥석사공의 손을 부여잡으며 왈칵- 희열의 눈물을 쏟던 거였다. 

“짜아식, 할아부지를 만나니까 단통 눈물부터 흘리는구나… 하긴 이게 몇년 만이야. 나 혼자 버리구 잘난 척 침 뱉고 가버린 늬들이…”

억수도 코 풀기, 오줌 누기, 담배 피기, 술 마시기 했던 중소학교 적 동창생이자 한동네 친구들인 그들을 만나 감구지회로 코등이 저려나고 있었다. 

‘무용지물’, ‘게사니목’, ‘털사마귀’, ‘이딸리아’들은 그렇게 서로의 뜻밖의 상봉을 눈물겹게 즐거워는 했지만 정작 얼굴을 맞대고는 뭐 별로 할 말도 없어 되려 어색한 국면이였다.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저 그래도 소위 ‘고향의 주인’이라 자처하는 억수가 입을 열었다. 

“늬들, 고향 떠난 지 한 십년도 넘었겠지?… 이 할아부지가 몹시나 그리웠겠구나… 허허…”

 ‘게사니목’이 그런 ‘괄시’에 자존심을 세웠다. 

“무용지물 같은 것이, 말마다 ‘할아부지’를 달어싸구 있어, 네가…”

“내가 왜 할아부지냐 하믄 난 고향을 튼튼히 지키고 있기에 ‘터주대감’ 즉 할아부지인 거야. 안 그래?… 해마다 추석께믄 내가 풀이 무성한 늬들의 할아부지와 할머니의 묘지들을 벌초해주었어… 몇해 전의 추석이든가. 그 날도 늬들 할아부지 할머니 봉분들의 벌초를 해주다 해볕이 따스하더라니 봉분에 기대여 소르르 잠이 들었었어. 꿈을 꾸었어. 글쎄 한 할아부지가 글쎄 나 보구 ‘할아부지이-’ 해서 ‘할아부지가 어찌 나 보구 할아부지라구 부릅니꺼?’ 하니 그 할아부지가 하시는 말씀이 ‘내 자손들은 다 한국이란 델 가서 오질 않구 대신 그대가 해마다 이렇게 와서 우리들의 수염도 깎아드리구 술과 밥도 공양하시니 그댄 실로 존경을 받아야 할 할아부지외다아’고 그랬어. 꿈을 깨고서 든 생각이 ‘난 저승사자들의 눈에 아마도 한국 나간 사람들의 할아부지로 뵈는 게나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지 뭐야… 하하하…”

원체 소학교 적부터 언변이 없는 억수의 입에서 그런 말이 다 나오자 셋은 서로 강냉이죽처럼 부옇게 색 바랜 눈들로 바라만 볼 뿐이였다. 억수가 한마디 더했다. 

“그런디 웨 이랴? 늬들 셋이 이렇게 똑같이 오다니. 기리구 뼉다구 한토막을 서로 으릉으릉 다투어 갉다가 온 것처럼 그 꼴들이 뭐여? 금방 도강한 그 건달청년들 같이나.”

‘털사마귀’가 입을 열었다. 

“나두 참 이상해. 똑 마치 하루한시에 약속이나 한듯 고향엘 가는 렬차에서 만났다닝게… 셋 다 어미 잃은 송아지 꼴을 해가지고.”

억수는 그 말이 들을수록 이상해서 배미 쪽으로 해서 우두커니 용용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내를 손가락질로 물었다. 

“닌 어쩌라고 코 하나만 남기고 다 뼈골이야. 페스트에 걸린 닭새끼 꼴 같으이…”

‘이딸리아칼코’가 삑- 마른 코를 풀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병은 자랑을 하랬다고… 헉. 제길.”

“제길이란, 왜 말을 시원히 못하구 그래. 한국엘 가서 술과 창기질 땜에 칼코만 간직하구 왔어? 하핫하하…”

억수는 짜개바지 적부터 쩍하면 자길 ‘절름뱅이’라고 업수히 보아왔던 칼코를 짐짓 놀리며 강이 떠나가게 웃어제꼈다. 참으로 오랜만에 통쾌히 웃어대다가 대방이 하는 기 죽은 말에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 

“뭐? 금방 뭐라고 그랬어? 아암?!… 장암이… 쯧쯧쯧…”

“그렇다구. 나도 암이여. 위암… 얘, 털사마귀는 간암이라구. 제길. ‘암쟁이’들이 약속이나 한듯 고향엘 모여올 줄이야… 공기 좋고 물 좋은 고향엘 오믄 배꼽 만큼이라도 더 살 수 있겠는지 일루의 희망을 품고서…”

‘게사니목’이 먼산을 주시하고 선 채 시누런 이발을 드러내보이면서 말하고 있었는데 슬프고 해괴해보였다. 

“아아, 거 참으루 안됐구만이라. 잘살려고 고향을 떠나간 늬들이… 그려. 하여튼 잘 왔구만이라! 고향이란 뭐여? 코앞만 보구 사욕만 차릴 줄 밖에 모르는 옹졸한 곳이 아니지. 고향이란 고향에 대구 ‘퉥!’ 하고 침을 뱉고 간 놈, ‘가난구덩이’라고 욕하고 간 놈, 더우기는 ‘영원히 장갈 못 들 곳’이라고 배신을 하고 떠난 놈들에게마저 관용을 베푸는 곳이야! 거 서울이나 큰 도시에선 암환자들 돈이 없으면 무작정 화장터루 내몰지만 고향은 푸른 들, 샘치 솟고 꽃들이 만개한 아름다운 산으루 맞이하는 그런 신선적인 곳이야! 돈 일전 한푼 없는 거지도 더라면 악한도 도적놈까지도 넓은 품으로 받아들이는 곳이지!… 에익, 등신 같은 불쌍한 것들아!”

“우리가 왜 등신 같은 불쌍한 것들이여?…”

‘이딸리아칼코’가 억울하다는듯 걸고 든다. 사공은 껄껄- 큰소리로 웃고 나서 손가락질로 꾸중처럼 말했다. 

“불쌍한 놈들이야 가난하여 장갈 못 드는 걸 이르는 것이지만 듣던 소문처럼 늬들이야 부모의 집이든 형님의 집이든 한국 서울의 한복판에 아빠트에 들어 사는 ‘부자’들 아니것어. 그런 조건으로도 장갈 들 수 없겠으니 그기 바로 ‘등신 같은 불쌍한 놈’들 아니겄나…”

그 말에 셋 다 고개를 깊이 떨군 채 할 말이 없어한다. 

그 때였다. 사례든듯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털사마귀’가 아까부터 처녀의 몸에서 눈길을 떼지 못해하다가 “참 못 믿을 일이여. 아직도 고향에 저 같이나 이쁜 처녀가 다 있다는 게…”

억수가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그러게 난 세상이 불공평하지 않구 공평하다구 말하고 싶네. 이 절름뱅이가 영원히 장갈 못 들 거라고 늬들도 장담을 친 바 있지만 그보다는 ‘절름뱅이야, 너 처녀손목도 못 쥐여보고 죽어도 난 모른다’며 고향의 처녀들이라고 생긴 건 다 한국으로 대도시로 가버렸다만 난 이렇게 출렁이는 강물에 두둥실 뜬 배 우에서 저 미녀와 키스란 걸 하면서 영화의 주인공처럼 사랑을 한다네! 낄낄…”

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딸리아칼코’가 휘청거리다 하마트면 시커멓게 치렁치렁한 강물에 떨어질 번했다. 그리고 한다는 말이 “억… 억수야, 정… 정말루 저 미녀가 너의 약혼녀란 말이냐? 한국 서울에서도 보기 힘든 저 같이나 섹시한 미녀가 너의… 이거 혹시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지 모를 일이야… 어디 진짜라면 너 저 처녈…”

그렇게 말할 사이 억수는 어느 결에 처녀께루 다가가 ‘뻑’하고 키스를 해보였다. 그것도 모자라 처녀더러 해볕과 거센 바람에 거칠어진 자기의 손등에 대고 ‘뽀뽀’를 소리나게 하도록 했다. 처녀가 방실방실 웃으며 억수의 손등에 대고 그 고운 입술로 ‘뽀뽀’를 할 때 셋은 죽는 시늉을 지으면서 당금이라도 파도 세찬 강물에 뛰여들듯이나 허둥댔다. 

‘게사니목’이 정면으로 억수를 바라보지 못하며 물었다. 

“이봐. 억수야, 대체 팔자소관이란 말 맞어? 좀 알려줘. 넌 사는 비결이 있는 게 아녀? 이제라도 그걸 알고퍼.”

사공이 한번 더 힘껏 이물을 굴리고 배줄을 잡아당기고 나서 관성을 타는 배 우에서 로인이 손주놈들한테나 살아온 경험을 말하기라도 하듯 느리게 말을 했다. 

“암, 거야 있다마다. 발 없는 말이 하루 아침에 천리를 간다고 내가 들어서 아는 바지만 늬들에게 녀자복이 없는 건 첫째, 부모형제들이 피땀으로 번 돈을 사기치는 것, 둘째, 술을 뜨물처럼 들이켜기 좋아한 것, 셋째, 계집질을 오줌 누듯 밥 먹듯 한 것, 넷째는 도박에 인이…”

그 말을 듣다 못해 ‘털사마귀’가 소리를 치고 말았다. 

“에끼끼, 뭔 ‘째’가 그리도 많어… 드럽게 곁을 치지 말구 복판을 쳐울리란 말야…”

억수는 셋을 향해 이가 갈리는 소리이듯 말하고 있었다.

“바루 늬들이 ‘분투’란 걸 모른다 그 말여! 늬들은 능력이 없는 데다 생긴 것도 과학적이 못되잖아. 게다가 부모형제들의 피땀을 축내고 사는 등신들이니까… 그런 악습들이 늬들에게 준 게 뭐여? 암 밖에 더 있어?… 늬들이 어려서부터 ‘무용지물’이라고 업수히 보아왔던 날 봐! 한국에도 못 가는 병신이라도 비관실망이란 모르고 머리를 써서 이 사품치는 무서운 강에 배를 놓아 렬차를 타러 오가는 길손들에게 복지를 마련해줄뿐더러 나도 이렇게 돈을 벌잖아. 그러니 벙어리라도 저 같이 생육을 할 수가 있고 밥과 찬을 만들어오는 섹시한 ‘양귀비’가 생겼잖아… 잘 기억해둬. 내가 말하는 건 바루 인생철학이여!”

쿨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털사마귀’는 여윈 볼따구니에 달린 사마귀의 털 몇대나 뽑으면서 쿨쩍거렸고 ‘이딸리아칼코’는 자기의 코를 쥐여비탈았고 ‘게사니목’은 긴 목을 축 늘어뜨린 채 긴 한숨만 풀풀 내쉬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자기 ‘이딸리아칼코’가 강건너 저 멀리 우뚝 솟은 절벽산의 칼코닉슨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울 할아부지가 ‘나의 초가집에서 나의 녀인과 살면 그기 곧 선경에서 불로장생하는 도를 닦는 신선 아이겄나!’ 그러셨어. 그러고 보면 어쩜 무용지물 아니, 억수 니야말로 신선 된 거 아이겄나!… 제길! 난 신선이 되기는 고사하고 ‘병신’이 됐다니까… 망해도 드럽게… 끄윽윽끅끅…”

“난 ‘가난구덩이’를 탈출했다고 기고만장했더니 백번을 죽어도 생각 못할 ‘암구덩이’에 빠질 줄이야… 흑흑으응응…”

“에익… 난 외국엘 날아간 강남 간 제비가 되였나 했는데 결국은 불 때는 시커먼 구새통 속으로 날아들어간 꼴이 아니구 뭐야… 흑흑…”

‘게사니목’도 ‘털사마귀’도 배전을 두드리면서 절망에 빠져했다. 

세 ‘암’들이 엇갈아 저주를 퍼부으면서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울음소리로 불러보다가 저도 모르게 귀구멍들이 열려한 것은 지척에서 들려온 이상한 소리 때문이였다. 그것은 벙어리미녀가 지르는 우어어- 하는 부름소리였던 것이다.

벙어리처녀가 ‘암’들 앞에 흰 종이 한장을 펴고 그 우로 또박또박 연필글씨를 써보이던 거였다.

 

울 엄마는 두부장사와 살고

난 배사공과 살래요

‘암’도 여기선 ‘신선’에게 쫓겨요

… …

 

‘암’친구들은 고향에서 살았다. 벙어리처녀의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고도 십년이나 더 살다 갔다는 말 때문에 다신 한국에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향의 산에 올라 천년바위 아래 풍풍 솟는 이 시린 샘을 떠마시고 더덕, 도라지, 황기…를, 들에 나가 미나리, 민들레…를 캐여서 먹으며… 담배와 술 그리고 밤을 패는 도박을 끊고 친구들과 배 타고 주낙 놓아 물고기도 잡고 오이, 고추를 심을 터전도 재미로 가꾸면서 살아가고 있다. 

… …

인생철학이 둥실둥실 떠가는 여기 삼원나루터로 오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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