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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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삼평의 노을
2009년 05월 02일 15시 48분  조회:2564  추천:56  작성자: 량춘식

[단편소설]
삼평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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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춘식

    피빛 단풍이라 부르는 색깔도 해마다 일교차와 일조량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잖아요. 모닥불도 물가에서와 숲속에서의 색깔이 다르고 태양마저 매일 다른 색으로 떠오르는데 뭘…그래서 어떻다는거야, 날더러 기어이 이곳에 눌러앉아 떨꺼덕. 죽어버리라는거야. 대체 뭐가 다르다는거야. 니 말대로라면 온 세상에 어느것 하나도 다르지않는 것 없것다…그렇쵸. 다 달러요. 오직 아들이 출국해 무지무지 벌어 보낸 돈, 그 돈에 따르는 효도가 변할리 없잖아요. 그거래요. 효도를 제외하고…

    이 미련한 마누라야, 그 벌어 부친 돈, 효도가 문제야. 그게 우리들을 후딱 다르게 만들어버린게야. 닌 이렇게 뚱보반편이 되고 난 이렇게 주려말라 숨만 붙어있고…달러질거야요, 현성의 수백개 보이라굴뚝이 무너지고 발전창의 온수를 쓴다던데 그때면 공기 좋아 새들의 노래소리도 들을수 있을게고 집안에 플라스틱꽃 대신 함초롬히 생화를 창턱에 놓아 피우고…이 망할 할망구야, 니 날 끝내 죽이자고 드는구먼기래여…
    
    늙은 량주는 몇해를 두고 그렇게 입씨름을 했다. 아니, 자식들의 외국서 벌어 부친 돈으로 산골오지를 벗어나 현성 올라가 한십여년이나 호화아빠트에서 전화놓고 핸드폰 차고 화투 치고 마작 쌓고 귀족살림을 하다가 몇해전에 할멈은 풍을 맞고 령감은 페결핵에, 위궤양, 간염으로 진단을 받고 살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륙십이 금방 넘은 량주가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60이 청춘이고 70이 중년이라며 100살까지 살리라던 그들은 그저 맘대로 안되는 인생이 야속하기만 해났다. 왜 이럴가, 왜 펀펀하던 아내가 입이 삐뚤어지고 다리 손이 한짝씩 말을 잘 듣지않는건지, 왜 그같이 건장이여서 씨름군이던 남편이 녹쓴 수레바퀴처럼 삐꺼덕삐꺼덕 소리를 내는것인지. 둘은 그저 누워서 펀히 서로의 몰골을 바라보면서, 현성의 검누른 연기를 풀풀 토하는 보이라굴뚝들 사이로 해살과 쪽빛을 찾으면서 원망하고 저주의 빛을 보내군 했든 것이다.

    그런 끊임없는 부부의 모순과 갈등가운데서도 병의 근원은 알바없었고 근치에 대해선 더욱 캄캄하던거였다. 그간 텔레비광고에 나오는 약종들과 안리요하는 협잡군들한테 몇천원짜리 약을 사느라 판 돈이 십만원도 더 들어갔다. 했으나 삐뚤어진 아내 입은 여전했고 자기도 갈수록 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벌겋게 단 가마에 오줌을 갈기는 칙치익. 소리 같았다.

    할망구야, 나 한달을 더 버텨낼 것 같지가 못해. 어쩜 지금 하는 말이 유언이라두 되지않겠는지 모르겄어. 나 현성 올라온 십몇년을 두고 한시도 맘속을 떠나지않은게 있거든. 그건 시종 다르게 변함이 없이 싹트고 꽃피고 열매를 맺고, 그렇게 해마다 실하게 커왔거든…령감, 그게 뭔데요. 이제야 별수 있나요. 죽기전 령감의 소원이라니 들어줘야지유…
    
1
 
    령감은 말하지 않았다. 얼굴색은 거므프리했고 두눈은 삶은 물고기눈처럼 빛이 죽어있었다. 다만 엉기엉기 일어나 옷을 입고 개화장을 짚은채 로친을 끌고 문을 나선거였다. 그날 로친은 어안이 벙벙한채 따라나섰다. 죽음이 이웃이던 것이다. 한생을 함께 살아온 령감이 그저 불쌍해서 못보겠었다. 대체 어데로 가는것일가, 령감만 알고있을뿐이였다.
    
    봄이였다. 시내에선 볼 수 없는 아니, 못 보아온 봄이였다. 뻐스는 거리를 벗어나 한 시오리를 질풍같이 달리더니 이제는 배불룩이 아낙의 허리띠같이 둘러간 산굽이를 안고 터덜터덜 굼벵이처럼 기여서 간다.
    
    차창으로 내다봐도 어디가 어딘지 알바없고 있었다. 대체 어딜가, 어딜가는가 물어도 령감은 거의 죽는 꼴을 하고 손사래만 칠뿐이다. 아마 림종전의 소원성취겠거니 느껴질때는 삐뚠 입이 더욱 삐뚤어대는 느낌이다. 암만봐도 고향으로 가는 길로밖에 짐작이 가지않고 있었다.
    
    15년전, 고향 삼평마을을 떠날때는 5월이였다. 무너져내리는 토벽집에다 농기구들을 던져버린채 달랑 빈몸으로 내외가 뻐스에 몸을 실었댔다. 아들이 현성에다 아빠트를 사놓은 것이다…뻐스에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행복에 겨워했다. 부릉부릉하는 뻐스의 엔징소리보다 차창밖으로 불어치는 바람소리가 더 세찼다. 창은 열수가 없게 밖은 온통 싯누른 먼지바람이였다. 모조리 람벌해버려 수림을 잃은 산등성이는 벌거벗었고 전엔 볼수없던 산사태가 길을 메우고 논밭을 뭉개버린다.
    
    이보쇼, 동무. 한뉘 옴팡진 산골서 기차도 못보고 개처럼 살다가 이제 행복하게 됐씀다. 해해…한뉘 개처럼 살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유. 고향을 막 말하지마우. 삼평골에 풍년이 들고 메돼지 놀가지 욱실대던 그땐 헛간에 량곡이 넘쳐나고 온 겨울 돼지, 소, 개를 잡아 달아놓고 조막도끼로 뚝뚝 찍어먹던때가 있잖았소, 개 처럼 살았다니 그 말이 개소리지…
    
    그때 시내로 올라가는 뻐스에서도 고향을 그같이 싸고돌더니 쭉 15년 긴세월을 시내에서 아빠트생활을 하면서도 그예 고향, 삼평을 못 잊었는가. 죽기전에 삼평골을 디디면 어델 다니고 보면 뭐가 볼게 있단말인가. 듣자하니 백몇십호가 이젠 드나 스무호가 되나마나하게 남았다고 그러던데. 그담엔 더 말해 뭣하랴. 농호들이 없으니 고향이야 황페하길 더 이를데 있으랴. 하여튼 그러할 망정 못가보면 유한이 될것이니.

2
 
    령감, 나야 입이 삐뚤어지고 조금 절름거려도 아직 오래 살것지. 그러니 령감 소원 안 들어줬다가 령감 죽은귀신 밤마다 내게 붙지야말게 해야지비. 속으로 그렇게 기도하며 가는길에 할망구는 령감모르게 울기도 울었다.
    
    대체 어딜 가냐는 물음에 입을 열지않다가 내린 곳은 짐작처럼 삼평이였다. 황페하길 짝없겠거니 여긴 고향, 아니 슬그머니 기분이 둥둥 뜨기시작을 해서 본게 생각속의 삼평이 아니던 것이다. 온통 푸른 세계속에 봉선화, 아카시아, 민들레꽃들이 아름다워 등잔밑이 어둡다고 이 가까운 고향으로 15년동안이나 와 보지않은게 부끄럽든 것이다.

    령감, 보시우다. 맘껏 보시우다. 오, 령감, 이러한 고향이기에 죽어 유한이 되지않게끔…
    
    할망구가 삐뚠입을 너불거려 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전인데 령감은 비척거리고 걸어간다. 이마에선 땀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발걸음도 휘청인다. 아마 마지막 힘 다해 삼평을 걸어보려는것이겠지. 그러나 당금당금 넘어질듯하는 걸음은 내처 앞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니?! 절벽산! 이건 뒤동산 절벽산 아래 자기집 논자리가 아닌가. 걸음을 멈추고 절벽산을 마주한 령감이 무릎을 탁. 치고나서 당금 죽을 사람답잖게 나온다.
    
    할망구, 이 절벽산이라네. 우리 집 논밭을 내려다보구 아아히 창공을 찌르고 선 이 절벽산이 지루히도 내 맘속에 자리를 잡고 솟아있었다구. 어느 한날한시도 다름이 없었다그거여. 할망구, 나 속심 말을 하네만 난 긴 시간을 속죄를 했었어. 왜? 우리 아이가 절벽산에 바라올라 살구나무에 살구를 뜯다가 떨어진 것이 정갱이뼈를 분질렀던 그 해 말이네. 절벽에서 하마트면 아이가 죽을번한 일이 속에 내려가지않아 도끼로 살구나무는 물론 절벽산봉의 나무들과 산아래 나무숲을 모조리 찍어버린 일 있잖어.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어. 왜 그런지 난 나 자신이 점점 할 말이 없어지고 웃음도 마르고 밤잠도 설치는 등 그뿐이면 몰라도 식욕이 감퇴되고 성욕이 가물든거여.

    어떤 날 밤 할망구 아니 그땐 처녀처럼 싱싱했지. 내 사타구니 그걸 때리며 뼉다구같던 것이 왜 이리 흐물떡거리는 죽은 쥐새끼같으냐구 원망두 많았던 그 우울한 밤들이 생각안나? 그땐 원인을 몰랐어. 다 찍어버린 살구나무, 참나무, 피나무, 봇나무, 황철나무들이 새해봄이면 또 다시 커서 숲을 이루겠지 여겼어. 그 후론 해마다 절벽산아래 어거리대풍 들던 우리집 벼농사가 태반이 쭉정이가 아니면 립고병으로 쓰러지고 충재가 들지않으면 왕가물이 들어 해마다 페농이였어. 그러던차 아들의 돈으로 우리가 현성 올라간게 아니겄나…아따, 이 놈의 다 죽는갑던 령감이 절벽산을 보더니 흥분을하며 말두 장설이구만기래여. 아마 죽기전의 개똥벌레 궁둥이같은 반짝 반디빛 현상은 아닐터이지?
    
3
 
    에라이 주리를 틀 할망구야, 내가 그리 쉽게 죽을것같어. 내 목숨은 절벽산의 일초일목과 이어진건데랴.

    그때에야 두 눈 똑바로 뜨고 절벽산을 쳐다보는데 15년, 긴 세월 찍힌 나무밑둥들에서 새싹이 돋고 벼랑너설에 자란 살구나무씨가 떨어져 새로이 자란 살구나무들… 이 절벽산을 나무숲으로 단장했다.아카시아, 야산국화, 진달래, 살구꽃, 찔광이, 돌배꽃들이 피여 웃고 벌은 붕붕, 시찌시찌 시찌비이 산새, 꾸룩꾸룩 비둘기, 찌찌찌익 찍 독수리, 부엉부엉 부엉새들이 하늘을 까맣게 점찍으며 나는 가마새들과 화합을 즐긴다.
    
    할망구는 넋없이 바라보다가 산그늘이 드는 저녁때를 알고서 저녁뻐스를 놓친다고 바락 소릴 지른다.

    안간다. 안가! 갈려면 네나 가버려라. 이 좋은 절승경개를 버리구 보이라굴뚝속을 기여들어가. 내 페결핵은 거기서 얻은게여. 또 네 입도 공기혼탁으루 삐뚤어진거야. 쿨룩쿨룩. 그놈의 아빠트란것도 봄과 늦가을이면 스팀이 차가워서 랭돌인데다 오싹 한기가 들어 감기가 열백번두 더 걸리는 것 아녀. 나 싫어. 싫타! 꿈마다 화토불에 감자구워먹구 수려한 졀벽산이 훼슬훼슬 돌열을 뿜어 기온이 맞춤해 벼풍년 들었던게 아녀. 안간다, 안가! 나 여기서 이렇게 누워 죽을란다. 절벽산의 부활을 만세 부르며 죽는 것으로 절벽산을 란벌하고 고향을 버린 죄를 용서받을거여. 쿨룩쿨룩쿨룩룩.
    
    그러고 뉘엿뉘엿 해지는 저녁그늘속에 민들레밭에 드러누우니 할망구가 애고애고., 넋두리를 하다가 펄쩍 제 정신이 드는갑더니 삼검불이 된 머리카락새로 얼마 떨어지지않은 곳을 주시한다. 거기엔 숫제 얼핏 보기에도 누가 버리고간 농막이 있었다.

    령감, 우리 저기 농막 가 살기우. 그런 말이 다 어떻게 할망구 입에서 나갔던지 모른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죽은 듯이 누워있던 령감이 번쩍 눈을 뜨더니 끙. 하고 일어나는게 아닌가.

    농막에 들어서니 녹 쓸었을망정 가마 두 개가 걸려있고 먼지에 개똥천지였으나 장판구들이 그대로였다. 대수 쓸고 닦고 불을 때니 가마에서 설설 물이 끓고 구들도 따뜻해난다. 일이 될려고그랬던지 헛간에 녹쓴 삽이며 괭이까지 있었던 것이다.                                                    

4
    
    용변보러 나갔다싶던 령감이 비척비척 쓰러질 듯 들어서더니 돈 백원을 메치며 당장 돼지고기에 입쌀, 소금등속을 사오란다.

    뭐라고? 돼지고길 사오라고 그랬어유? 돼지고기가 아니라 참새고기도 못 드시던 령감이 그게 진말이요? 하며 믿을수 없어 한다.

    내 전에 씨름군일적엔 절벽산아래 논벌에서 점심참마다 돼지비게에다 술 근반씩이나 마시구두 써레질이구 가을이구 일에 황소였거든. 그런데 그후론 절벽산에 나무숲이 사라지니 별쭝맞게 내 입맛두 가더라 그거여. 어디 그뿐인가. 나무숲이 없으니 짐승들이 없고 꽃이 없으니 새와 벌들도 없드라고. 더욱이는 나무숲 없는곳엔 비가 내리지않고 우박과 먼지바람만 모여왔지. 절벽에 모이던 돌열도 흩어졌던지 랭기만 감돌고말이야. 그러니 공기야 청신하지못하고 침침하고 부패한 냄새만 역할뿐이였지. 그러니 어찌 농사가 될수있겠나.
    
    할망구, 나 오늘 기실은 옹근 15년동안이나 가슴에 암처럼 커온 속죄를 하러온것이였어. 죽어서 여한이 안되게 말이네. 그런데 이렇게 절벽산이 부활이 되다니 뜻밖이네, 뜻밖이여. 그러니 내 이제 단 이틀을 살더라도 내 힘으루 한삽 또 한삽 논을 일구어보구 죽을려하네. 절벽산 아래 논을 일구는 꿈은 긴 세월을 두고 밤마다 아빠트속을 채웠댔어, 어흐흐흑흑 . 그건 나의 전부였어. 꿈에 내 밭 둘레엔 언제나 풍광 수려한 절벽산이 숨쉬네.그런 내 밭을 죽어서도 가지구 갈란다. 새 울고 꽃 피고 샘이 흐르는 풍경아래 항금나락 춤추는 내 구천세계에로 할망구도 같이 가얄게 아냐.

    할망구가 웃동네 한족마을에서 돼지고기, 입쌀등속을 사오니 어두어둑 어둠이 깃들었는데 그때까지 령감이 삽질 한번하고 쿨룩쿨룩룩 또 한번 하고 쿨룩룩거리는게 아닌가.
    
    조그만 농막안에 구수한 냄새가 차고 구들밥이 올랐다. 시허연 돼지비게가 오르고 오다가 벌에서 한줌 뜯은 미나리무침도 올랐다. 갑자기 령감이 꽥. 소릴 질러서 할망구는 깜짝이야 했다. 거의 죽어가던 시체같던 사람이 오래만에 내는 소리였다. 술이 없다는게 아닌가. 에라이 령감쟁이가 술이란 웬말인가. 페결핵에 간병에 위궤양에 비장이 약해 페스트에 걸린 수탉처럼 날개와 다리를 가누지못하는 꼴이던 애처롭던 그이가 아니던가.

    다시한번 더 두눈 부릅뜨고 소리를 지르는 맥없는 모습일망정 그게 기꺼웠다. 죽자고 저러는가, 죽기전에 저 모양인 것은 아닐테지. 아무튼 운명직전이라치고 소원이야 들어줘야지. 그러며 헐레벌떡 달려서 술을 사오니 돼지비게 두점에 술 한잔 겨우 마시고 그 자리에 쓰러져 코를 곤다.  

5
    
    할망구는 밤중에 몇번이나 일어나 령감의 숨소리를 귀담아 듣고 코에다 손을 대 보았다. 괴상한 일이다. 현성 아빠트에선 밤중에 잠이 안 온다고 투정을 부리고 전렵선염이든지 오줌도 열몇번이나 일어나 들랑거리던데 이건 첨이다. 통잠이다. 죽지 않았는가? 죽지않았다. 림종전이 이런거나 아닌지.

    령감은 이튿날 일찍 일어났다. 아침에 좀 삽질을 하고 오후에도 해질녁까지 쉬다가 파고 쉬다가 파고. 돼지고기는 한점두점씩이더니 저녁엔 술 두 잔까지 들고 돼지비게도 네점이나 맛있게 우물거린다.

    령감은 사흩날에도 죽지않았고 낮이면 논밭을 일구었다. 열흘이 되니 제법 얼굴색이 달라진다.
    
    장검으로 자른 듯 깎아지른듯한 절벽산, 나는 한때 벌거숭이가 되였었다. 벌거숭이가 되였던 그 이듬해엔 쉼없이 졸졸 흘러내려 논밭의 관개수 되였던 골짝샘마저 말랐었다. 다람쥐 참새마저 자취를 감췄고 날 우러르고 칭송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가버렸다. 나무숲은 절벽산의 옷이다. 그 옷은 신비한 요술처럼 생명을 부여한다. 새들을 부르고 짐승들을 부르고 더운날 그늘을 부르고 가문 날 비를 부르고 뿌리론 영양가로 수분을 공급한다. 여름이면 서늘하게 해주고 겨울이면 푸근하게 해준다. 어디 그뿐인가. 숲이 있기에 열기를 방출하여 주위 십리구간의 밭들이 풍년들게 기후를 조성해준다. 그런 옷을 잃고 여름이면 따가왔고 먼지바람에 모대겼고 가뭄속에 생기를 잃었으며 목이 갈했다. 겨울이면 추웠다. 그리고 지독히도 고독했다. 그러나 필경 난 절벽산이다. 다 갈라져도 언제든 옷을 입겠다는 신념이 굳다.

    나는 찍힌 뿌리들에서 움이 돋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한해 또 한해를 커갔다. 십여년만에 나는 끝내 전의 풍성함을 되찾은 것이다. 다 모여왔다. 새도, 토끼도, 샘치도, 꽃들도…오늘은 이렇게 15년만에 산아래 논 주인도 찾아올줄이야. 이게 신비한 자연의 힘이다. 삼평마을 사람들이 90년대중반기부터 출국바람속에 부자되고 현성이나 큰 도시로 올라가 사느라 분분히 마을을 떠났는데 기실 다수의 사람들의 이동은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에 거쳐 삼림을 란벌하는통에 산과 벌이 벌거숭이가 된데에 근원이 있는 것이다. 삼림이 없는 지대에는 홍수, 산사태, 왕가물이 필연이듯하기에 십년에 일곱해를 흉년이겠으니 농민의 의미가 있을리 만무한 것이다.

    밤이면 현성의 불빛이 하늘의 은하계처럼이나 아물거리는 여기 삼평이 풍광이 수려하고 해마다 황금파도 설렜다면 현성부자들이 이곳에다 별장까지 짓고 처가집 다니듯 할 꽃나라일 것을. 유감천만가운데서도 다행이라면 절벽산에 오르길 저어하여 지속적인 람벌이 되질못한덕으로 겨우 수림옷을 입은데다 영 못보는가 했던 산아래 벼밭주인이던 저이들이 림종때라고 잊지않고 찾아와 한삽두삽 개간으로 농민의 본질을 남김없이 드러내니 알수있어라, 리향민들의 깊은 맘속의 수려한 고향의 꿈을.

6
 
    절벽산이 시무룩히 웃고 내려다보는 하루 또 하루를 령감따라 논을 일구느라 늙은 손바닥이 물집이 터져서 아리다고 생떼질 쓸때마다 쿨룩크하하. 낄낄크쿨룩룩. 령감의 웃음소리는 즐겁다.
    
    둬짐 푼하게 논이 생겼다. 돌돌돌 돌산에서 샘을 끌어들여서 관개수로 쓴다. 멀리 까맣게 큰비가 내려도 여긴 잔비 끝에 무지개 선다. 바람도 솔솔, 벼랑산은 훼슬훼슬 돌열기 내뿜어 논벌은 후끈후끈 하우스속 같다. 주절주절 논코에선 플라나리아와 하얀 나비 디스코련습에 다망하고 시그널레드로 무대를 펼쳤는가 머리들고 바라보면 오렌지, 코발트바이올렛, 스칼렛…모든 연분홍빛으로 아름다운 들이다.

    기실 힘센 장정이 논 둬짐 푸는데는 단 사흘이면 된다는데 둘이서 꼬빡 스무날도 넘게 악전고투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령감은 한삽을 파고 한동안을 쉬고 로친은 파기싫어서 한참씩을 쉬고.

    그러나 모내기는 일삯을 놓았던 것이다.

    푸른 논가운데 언제나 서 있었다. 쿨룩쿨룩. 페를 들어내는 기침소리도 차츰 사라지고 있었고 삽질도 날따라 기운이 배여온다.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 극성스럽고 조잘조잘 물소리 고르롭던 어느날 밤, 절벽산의 부엉새 울음소릴 들으며 량주는 잠 못이루고 있었다.

    령감이 죽기전 소원으루 여겨 나 예까징 따라왔고만은 죽기는커녕 환생을 하구있구먼요…나 꺼뻑 죽었으면 절벽산아래 묻어버리고 올라가 아빠트에 도박판 만들고 즐겁겠다 그거여? 처녀적부텀 멋만 따고 배돌이를 치던 네 년이…
    
    살아나니 둘의 아웅다웅은 밤마다 시작된다. 로친의 시내로 올라가고퍼하는 심사가 불보듯하니 말이다.

    절벽산나무숲이 짙고 벼 배부르던 날, 논기음을 매다가 말고 로친이 논둑에 올라선채 더는 이런 고생을 사서는 못살겠다고. 시내 올라가 아들이 부쳐보내는 돈도 다 못쓰고사는 자기라며 입 삐뚠 볼이 으등거려질 때,

    에끼 할망구가 그 삐뚠입에서 안 쓸 말이 나올적 있었나. 꽥 소릴 지르는데 그 소리가 페병 간병 위병으로 시체같던 령감의 입에서 튀여나오는 소리답잖게 우렁차서 벼랑산이 메아리쳐온다. 그통에 로친이 깜짝 놀라는데 농막살이가 싫어 눈물을 펑펑 쏟는 로친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령감이 한번더 소릴 내여지른다.


7
 
    할망구가 풍기에 삐뚤어졌던 그 입이, 입이 언제 바루잡혔나, 어허허. 그려. 잡혔구먼기래여. 똑 츠녀같군기래, 허허…아니, 뭐라나요? 내 입이 바루잡혔다고요? 어머머머, 왜 이럴까요, 내 입이 바루잡혔잖아요. 호호…

    로친이 꺼꾸로 업뎌서 샘물에 얼굴 비춰보며 못 미덥게 놀라와 한다.

    이제는요 날 보구 할망구라 부르지 말어요. 60살이니깐 츠녀맞잡인데…날 보구 령감말 집어치워. 63살이니깐 나야말루 청년맞잡이 아니것어.

    그날 밤 더욱 희구한 일이 생겻다. 한치마폭 은실은실 달빛아래 긴 세월 남자구실을 못하던 령감이 오줌누는 소리가 논코 물소리처럼 아니, 시찌시찌 시찌비이- 새울음소리처럼 들려오고 줄기가 무지개처럼 활등으로 뻗는다는 거였다.

    우리 3계절은 여기서 살아요…그러니까 4분의3의 계절을 대자연에 귀속시키자 그거지. 바루 그거야.

    령감이 손벽을 쳤고 로친도 살까기가 된 자기 엉덩일 갈긴다.

    모텔알프스보다도 더 멋스런 농막, 그리고 푸른 논벌… 영원히 달라질줄 모르는 푸르름의 혜택을 입어 삼평의 노을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2007년5월17일  훈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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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4 ]

4   작성자 : 명화에게
날자:2012-12-25 07:17:58
나의 메일이 바뀌였소.

hunchun1199@ daum.net

혹시 들어와 보고 련락하길 바라오. 량춘식으로부터

2012.12.25
3   작성자 : 김명화
날자:2010-04-13 04:05:39
당신은 여기 들어와 이글을 읽기전 마음자체부터가 삐딱한 정신을 갖고 입장한 치사한 인간이오! 아이디가 그게 뭐요? 당신같은 사람한테는 한글이 아깝구려. 누구와 비교하고 질투하면 발전이 없소. 이세상에 량춘식선생님이 작가로 탄생안했어도 당신의 사는 수준은 지금과 다를바 없는 수평이오! 언어와 행세 똑바로 하고 사시길...
2   작성자 : 량춘식
날자:2011-01-03 12:21:20
갱신촌의 제자를 찾습니다. 아마 김명화인것 같은데 이글을 보신다면 저의 메일, lcz-5168@hanmail.net 에 오르시길 바랍니다
1   작성자 : ㅎㅎ
날자:2009-05-03 12:06:27
ㅎㅎ 왜 항상 삐뚤서한 시각으로 바라보시는지 ㅎㅎ 춘식이만큼 하시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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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단편) 붉은 고추밭 2023-09-07 0 534
7 [단편] 삼원나루 2019-07-11 0 635
6 [단편] 산빛 자물쇠 (량춘식) 2017-05-27 0 984
5 [단편소설] 이 풍요한 고장을 2012-12-26 0 1970
4 [단편소설] 먼 불빛 2010-03-24 33 2313
3 [단편소설] 삼평의 노을 2009-05-02 56 2564
2 [단편소설] 푸른강은 흘러라 2008-11-11 51 3447
1 [단편소설] 눈이 내리네 2007-10-14 6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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