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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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중편소설

[중편소설] 정신무진(1)
2007년 12월 21일 23시 11분  조회:2440  추천:62  작성자: 량춘식
[중편소섫]
정신무진

량춘식

―동경을 해탈하고 서울행에 오르는 안해를 바라는 내
마른 육체는 해질녘까지 추풍에 나붓기고있었다.

 
1. 구 들
    
―구들은 예술이야요.
안해가 하던 말, 그 말을 난 잊을수 없어한다. 죽음이 닥쳐 이발로 밸을 물어 끊는 아픔의 시각에마저 기억할것이며 죽어서도 천수경처럼 읊조려갈것이다. 

어떻게 그런 말이 다 나왔을가, 공부가 통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16세 어린 나이에 생산대에 나와 일했다는 그녀의 입에서 《구들은 예술이야요》 그런 말이. 또 나는 여적 안해의 그 말을 잊지 못해하는것일가. 그 말을 하던 때가 언젠데, 하긴 오랜 세월이 흘러갔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난 안해를 내놓곤 이 세상 어떤 녀인도 사랑할수가 없음을 믿는다… 나는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기에 그때, 먼 앞날 안해가 날 버릴수도 있을거라는 신화 같은 예측을 해본적이 없었다. 설령 그런 비극이 온다손쳐도 난 내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안해만을 기다리며 살리라고… 그 암흑한 세월에 10년을 녀자애들과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하고 살아온 《인간온역》이던 나에게 감히 말을 건네고 웃음을 짓고 사랑까지 한 그녀를…

1975년, 중국의 《암흑》(문화대혁명)이 장장 10년만에 결속이 되던 해였다. 여름은 지글지글 끓었다. 나는 그냥 삶이 고독하고 허기찼다. 해방전(1947년)에 교육사업에 참가한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동냥온 거러지가 한 성씨(안동김씨)라는데에 동정이 가 한해를 밥 주고 재우며 돌봤다는것을 조건으로 성분을 부농이라 매김받았고 그 미열로 인해 《부농분자》,《반당반사회분자》로 된때문이였다. 그러니 그 억울한 루명을 벗기전에 나는 언제든지 《나쁜》집안의 자식이였다. 

그 지루하고 긴 턴넬속 같던 나날에 아버지는 억울히 억눌렸고, 어느해는 보수 없이 애들을 글 배워주고 밤엔 투쟁을 받았고… 그런 무거운 공포의 벽속에 갇혀 나는 10살부터 19살까지를 맞고 왕따당한게 아닌가.           

나는 그런, 몹시 힘든 길을 가는 애였다. 정신이 한껏 고갈되고 육체마저 비쩍 말라 뼈만 앙상했다. 

―야, 너 이불짐을 싸고 랠 아침 후영으로 일하러 가라.

생산대장의 부름이였다. 
평범치 않은 1975년, 그해 여름에 마을로 내려온 고중졸업생들을 통털어 귀향지식청년이라고 칭한다. 난 국가배급을 타먹던 집 애였으나 촌에 내려와 《로동개조》를 하기에 지식청년이란 이름을 달수가 없었다. 《지식청년》이란 《도시나 현성》을 상징하기에 《귀향지식청년》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닐수 없었다. 

귀향지식청년들, 그 19살무리는 없었다. 이튿날 이불짐속에 책들을 꿍져넣은채 나만이 후영으로 가는 소수레에 오른것이였다. 곁에는 마을의 로농 몇이 담배대통만 풀썩풀썩 날리고. 난 중국에 4인무리가 꺼꾸러진 지금에도 의연히 문화대혁명에 의한 후유증으로 인해 왕따당하는구나를 소태처럼 씹어야 했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후영은 마을에서 20리도 더 되게 떨어진 곳이다. 무너지듯한 산아래로 철길이 아낙년의 허리띠처럼 둘러가고 철길따라 백강이 흐르는데 백강이 ㅅ자형으로 갈라져서 가두어넣은 십여헥타르의 옥토가 바로 후영이란다. 

백강이 깊어서 소와 수레를 함께 배에 실어서 건넸다. 배줄이 챙챙하고 울었다. 시커먼 물굽이가 하늘을 업고 몰려오고 몰려가며 당금이라도 배를 들어엎을듯 기세찼다. 나는 너무나 무서워 소꼬랭이를 꼭 틀어잡았다. 물에 빠지면 젤 믿을게 소였다. 무시로 뱀이 강물을 따라 헤여가고있는게 보였다. 그때마다 닭살이 돋았다. 

점심은 허리에 처맨 벤도밥을 풀어서 수레우에서 먹었다. 너무 멀었다. 덜커덕거리는 수레때문에 밸이 아팠고 여윈 엉뎅이에 물집이 졌던지 아려서 수레에서 내려 걸었다. 

산그늘이 들 무렵에야 목적지에 당도했다. 로농들을 따라 땅굴막으로 들어서기전에 허리띠를 잡고 숲을 찾았다. 잠간 헤쳤는데도 굉장히 아름다운 늪이 나타났다. 칡벼랑을 세우고 수면은 잉크빛으로 고요했다. 돌멩이 같은 조개도 살고 팔뚝만치 실한 가물치도 산다는 늪이 이 곳이란 말인가. 황홀했다. 잠간 취했다. 그러나 로농의 부름소리가 날 끌어가버렸다. 

섬에는 땅굴막이 동서로 백보가량 사이두고 두개나 있었다. 1생산대와 2생산대의 막이였다. 

썩은 나무토막으로 세운 구새만 아니라면 막인지 흙무지인지 분간키 어려웠다. 

땅을 가슴깊이로 파고 지은 땅굴막에 들어서면 가운데를 봉당으로 구들이 량쪽으로 갈라져 놓였다. 연기가 나서 때시걱마다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불이 잘 들지 않다보니 눈물코물을 짜면서 먹는 밥이 맛있은적 없고 구들도 가마목을 내놓곤 랭돌이다. 그러니 후영으로 올라온 사람마다 얼마 있지 못하고 치질이 나오고 랭병으로 허리가 아파서 《페인》이 되여 되내려간다. 그나마 《정배살이》 외딴 섬이라 두부마저 먹을수 없어 때식마다 호박잎따위를 숭숭 썰어넣고 끓인 장국이나 호박채를 먹을뿐이다. 

자는것과 먹는것이 말째고보면 만병이 찾아들기 마련이고 사는게 지긋지긋할것이다. 

한여름이라 벼들이 소리치며 자라는 때여서 농군들은 나날이 증가되여 막안에 든 사람이 열댓이나 되였다. 

나는 그저 굽석굽석 하라는 일만 했고 그런 와중엔 짬짬이 사람들 눈을 피해 외국어(일어), 한어로 된 소설책이며를 외우고 보는데 정신이 팔렸다. 그런통에 로농들의 잔소리가 늘 붙어다녔다. 일군들은 거개가 환갑을 바라보는 늙은이들이였고 유독 나 혼자 청년이였다. 난 패기라곤 없었다. 그들이 기면 나도 기고 그들이 누우면 나도 눕고 그들이 연기에 콜록거리면 나도 같이 콜록거렸다. 

그러던 어느날, 내 가슴에 달이 떴다. 가슴이 설레여 숲을 찾아들어 자주 오줌을 누었다. 풀벌레들의 극성스런 울음이 반가왔다. 
생산대장의 딸, 나보다 두살이 어린 리계복이였다. 

우리 집 앞으로 고래등같은 집이 계복이네 집이였다. 이른아침에 고기그물로 비늘이 번뜩이는 붕어를 잡아들고 들어설 때와 가끔씩 문밖의 나무그늘에 앉아 외국어를 암송낼 때 그냥 바자틈으로 날 재미있게 내다보다가 내 눈길과 마주치고는 얼굴 붉히던 계집애였다. 걔가 언제 저렇게 탐스럽게 컸는지 참 모를 일이였다. 

난 가정배경이 《나쁜 집 애》이기에 걔를 똑바로 볼 엄두를 못내고 말 한마디 나누어보지 못한 처지였다. 그런 계복이가 어떻게 되여 후영엘 다 올수 있단 말인가.

밥짓는 할멈을 도와 식모로 왔다고, 상등로력을 웃도는 12부씩 받으러 왔다고 그랬다. 그래 네 아비가 생산대장이니까 뒤문거래로 공수부자하러 온거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 험한 골이 밤에 전등도 없는 까막나라, 범과 늑대무리들이 소를 물어간다는 이 험한 골로 새파란 1등처녀가 환장할려고 온게란  말인가… 하여튼 계복이가 온 연유를 난 알 필요가 없었다.       

이튿날, 난 일터에서 쉼참을 리용하여 막으로 달려왔다. 무더기로 쓸어나오는 연기에 계복이가 목을 꺾고 줄기침을 터뜨리는게 안쓰러웠던것이다. 

난 가마를 들어내고 삽으로 부뚜막안을 두뼘정도 더 파고 놋돌고리를 낮추었다. 다음 구새목아래 개자리를 파헤쳤다. 이런 변이라고야. 구들지식이란 0점이였다. 연기는 의례 높은 곳으로 향한다. 연기가 평평한 구들곬을 흐르게 하는 흡인력을 가지게 하는데는 개자루가 반메터좌우 깊어져있어야 하는건데, 마치 주먹을 당겼다가 내미는 힘의 산생처럼 구들곬으로 흘러나온 연기가 갈앉았다가 구새로 쓸어나가는 힘의 산생을 말이다. 

―오빤 이거야.
계복이가 엄지를 내밀며 량볼에 보조개를 피웠다. 
불은 훅훅. 소리를 내며 빨아당기고있다. 

―너의 공수를 오늘부터 1부씩 더 올린다. 
막장 터줏령감이 공수책을 꺼내보이며 공포했다. 

―니 그 구들고치는 기술을랑 뉘기헌티 배웠노? 이잉?
난 대답할수가 없이 그저 머리만 떨구었다. 문화대혁명때 투쟁의 혹형에 못이겨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한 할아버지한테 보고 듣고 배운것임을 뉘 알랴… 앞의 농막에서도 날 《모시러》왔다. 나도 뜻밖이였다. 13세 소년때 보아 기억한것이 실효를 발휘할줄이야. 난 단통 《책벌거지》로부터 《구들박사》로 불렸다. 

내가 어떻게 구들이 뜨겁게 불이 들도록 고쳐냈는지 모른다. 그때문에 계복이가 뜻밖으로 나를 잘 대해주고 말까지 걸어오군 하니 난 더 기운이 났다. 계복이가 때시걱마다 맛갈스런 음식을 만들게 늪에 나가 손더듬으로 굵은 가물치를 어렵잖게 잡아들였다. 이상도 했다. 로농들이 아무리 손을 넣어 더듬어도 다치지 않는것을 내 손이 버들뿌리속을 넣어 더듬으면 가물치대가리가 쥐이는 일이.

―넌 오전만 일하구 오후엔 고기나 잡아와라.
그렇게 난 쉽게 공수를 벌어내는 《기술자》로 떠받들렸다. 
고추장을 풀어놓고 깨잎과 가지를 숭숭 썰어넣은 얼벌한 가물치에다 빼갈을 얼근히 마시고 뜨끈뜨끈한 구들에 등과 배를 붙이면 잠도 잘 온다. 

호롱불을 끈 막안엔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코를 곯지 않는건 오직 그녀와 나뿐일거였다. 난 느꼈다. 그녀가 어쩜 나때문에 후영을 찾아온것일지도 모른다고… 난 그녀를 사랑하고있는거였다. 그러나 나 혼자만 알고있는 일이였다. 어쩜 영원히… 그러나 새록새록이 아침마다 계복이가

―구들이 얼마나 뜨뜻한지, 구들은 예술이야요.
챙챙한 목소리로 떠들 때마다 난 한없이 가슴 설레군 했다. 그때마다 난 문밖을 나서서 숲속을 찾았다… 풀벌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른아침이면 난 늪으로 나갔다. 수면에 솟은 절벽을 마주하고 심호흡도 하고 손더듬으로 고기도 잡았다. 그때면 계복이도 쌀 일러 나오군 했다. 그의 그윽한 눈동자와 발그무레 상기된 모습을 나는 감히 바라볼수가 없었다. 

나는 졸장부였다. 점점 다가오는 계복이를, 기회를 내주군 해도 뒤걸음질만 치고있는 나에게 그녀는 그저 남모르게 안타까워할뿐이였으리라… 그러나 난 그때 예감이 있었다. 만물이 나름대로 자기 마당이 있고 통하는데가 있는것과 같이 이 《나쁜 집 애》를 좋아하는 녀자가 있는것이라고. 저 고풍스런 칡벼랑늪이 그걸 증명한다고 믿었다. 

여름이 가고 가을도 가고 그녀도 간지 오래다. 추운 겨울바람속에 나는 몇몇 로농들과 벼, 콩 양창을 하느라 눈코뜰사이 없었다. 설대목이 가까워올수록 집생각이 간절했고 문만 열면 볼수 있을 계복이가 못내 그리웠다. 

큰눈이 내리고 바람이 자고 일은 끝날줄 몰랐다. 

그믐날 전날, 결국 나 혼자만 남아 쌓인 벼무지와 콩마대를 지키기로 되였다. 밖에서 눈보라가 아우성치고 밤정적을 가끔씩 찢으며 승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믐날 아침, 새들의 지저귐소리에 잠을 깨여 문을 여니 조용히 눈이 내리고있었다. 왜 그런지 울컥 설음이 북받쳤다. 다병한 어머니와 억울한 루명을 마저 벗지 못한 아버지와 세 녀동생들의 파리한 얼굴이 번갈아 떠오르며 올음이 비명처럼 터뜨려졌다. 점잖은 소의 울음처럼 울었다. 울다가 불쑥 드는 생각이 있었다. 혼자라도 설을 설처럼 쇠야 한다고 말이다. 

오전에는 덫으로 벼북데기에 내리는 참새를 무려 이십마리나 잡아냈고 오후에는 백강에 나가 얼음을 끄고 개구리와 손바닥만큼씩 큰 붕어를 스무근도 넘게 잡았다. 

아무리 《나쁜 집 애》라도 어찌 설 쇠라고 술 한근 고기 한근도 보내주지 않은채 내버려둔단 말인가. 그리고 아들을 찾아올수도 없게 《감금》받는 우리 처지야 칼로 생살을 저며낼만큼 아들이 불쌍하고 아까와나리라 속이 무너지며 얼음끄기에 지친 몸을 끌고 막에 거의 다달을 무렵이였다. 나는 부지중 나의 눈을 의심했다. 구새에서 분명히 연기가 나고있는게 아닌가. 눈 씻고 다시 보아도 밥 짓는 연기였다. 저럴수가? 도무지 짚이는데가 없었다. 

문을 떼고 들어선 나는 눈앞의 정경에 대뜸 입이 벌어졌다. 겨울하늘에서 선녀가 솜외투 솜바지를 입고 내린거였다. 계복이가 소고기 닷근에 술 한통을 사들고 온게 아닌가.

―울 어머니와 조건을 잡아 다툼질하고 친구네 집에 간다고 나왔거든요.
계복이가 부끄러워하며 변명투로 나온다. 그리고 그는 부끄러움이 가셔지기도전에 막안의 나무기둥을 붙잡고 울었다. 난 그가 왜 우는지 알수 없어 멍해졌다. 그가 겨우 말했다. 

―흑흑, 어쩜 이럴수가… 여기서 홀로 설을 쇠단요, 우리 함께 설 쇠요. 그 말을 듣고 단통 목이 꺽 막혔다. 

계복이는 막을 떠나지 않았다. 소고기를 푹 삶았고 참새고기를 기름에 튀겼고 물고기회를 쳐서 우린 술을 들었다… 그날 밤 구들은 따가왔다…

참으로 아프고 쓴 회억의 구들― 우리의 구들은 마냥 따가왔다가 언제부터인지 랭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밖에 석탄과 나무가 있지만 구새는 연기가 나기 바쁘다… 나는 치질에 걸렸고 허리가 아팠으며 몸의 어느 부위가 녹이 쓸어 썰그럭썰그럭 소리를 내는것  같았다. 그래도

―구들은 참 예술이야요.
안해의 그 말은 그냥 내 귀에 쟁쟁 울려온다… 안해가 없는 구들― 지금은 그 구들에서 뜨뜻했던 그 시절의 구들우에 가지런히 누워 창가에 걸린 달을 보며 얘기를 나누던 행복했던 일들을 떠올릴적마다 나는 홀로 중얼거려본다. 

―리계복씨, 나 혼자 있어도 곁에 그대가 누운 같구만… 난 그저 행복할뿐이오.
                                                                                                         
2. 사 발

우리 집에는 사발도 많았다. 옥사발, 알루미늄사발이 있는가 하면 퉁사발, 된장을 끓여먹는 돌사발도 있다. 세월의 흔적이요 사랑의 축적이였다. 

안해는 날 끔찍이도 아낀다. 아니 난 안해를 파르스름히 윤기도는 옥사발처럼 고와한다. 우리가 어떻게 맺어진 사랑이라고. 구들 잘 고치고 물고기를 잘 잡아들이는 덕에 자기는 《총명하고 재주 좋은 총각》에게로 시집간다며 농약(기실은 제조약물)을 마시고 자살까지 할번한 일로 아버지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평범치 않은 사랑이였다. 
하루 세끼 식탁에는 옥사발에 수북이 담은 이밥, 사기사발에 담긴 국, 퉁사발에 뜬 숭늉물에 된장이 벌렁벌렁 끓는 돌사발이 오르군 한다. 

어느날 안해가 밥상을 마주하고 오래동안 근심하고 생각한것을 터놓았다. 이를테면 지금 남자들은 한국이요 일본이요 어뤄쓰요 하며 돈을 무지무지 번다는데 우리처럼 근근히 소비돈밖에 될수 없는 공자에만 매여달려서 살아서야 어찌 아들의 공부뒤바라지를 할수 있겠느냐는 무거운 화제였다. 하긴 그랬다. 안해는 촌소학교에서, 나는 목릉시의 모 중학교에서 교원사업을 하고있었는데 둘의 로임을 합하여 천원도 되지 않았으며 집값이 짐작없이 폭등하는 시내에서 살수가 없어 자전거를 타고 한시간씩이나 걸리는 고향의 산골오지에 그냥 집을 잡고 출근하는 우리였음에랴.

―남들이야 어떻게 살든 관계할것 없잖소. 교원들의 공자도 오를 때가 오겠지.

―그게 생각대로 될가요, 그리고 언제까지…

―어찌하든 출국할 생각은 하지 마오. 녀자와 사발은 내돌리면 깨여진다구 조상들이 그러잖았소.

내가 꽥 소릴 지르는바람에 안해가 들었던 사발이 떨어지며 깨여졌다. 안해는 깨여진 사발쪼각들을 주워모으면서 울고있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남들 자식처럼 잘 입히고 잘 먹이지 못하는 처지가 안타까워 울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흘러간 1998년 8월, 아들 학일이가 초급중학교 졸업생이 되자 나도 안달아났다. 

―퉁사발은 떨어져도 안깨져요. 돌사발도 안깨져요. 옥사발, 사기사발도 꼭 깨진다는 법 없지요. 사발마다 넘치게 채워가지고 돌아올래요.
급하면 담장도 뛰여넘는다는 뭣 같이 안해는 자식의 전도를 위해 몸을 내번지는거였다. 나는 내가 리자돈을 꿔서 한국엘 나가보려 했지만 《이틀 일하고 사흘씩 허리가 켕기는 사람이 죽자고 그러는가》면서 기어코 자신이 나가야 한다는거였다. 

나는 안해를 말렸다. 했지만 안해는 소학교에 사표를 낸채 흑룡강성 계서시에 사는 친척들의 도움으로 9만원을 내고 일본에 나가는데 성공한것이다.

연길항공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는 그 모습이 아름다왔다. 저 같이 섹시한 녀자가 리계복이던가… 가슴이 오리오리 찢겼다. 

―가지 말라는데도…
비행기에 오르는 안해뒤에 대고 난 비명처럼 씹었다. 

3. 부엌아궁이

부엌아궁이는 시커맸다. 부엌아궁이속으로 길게 아물아물 안해가 웃는다. 그렇게 가끔씩 나는 백치처럼 부엌아궁이속에 끈질기게 눈길을 걸고 안해를 찾군 했다. 

아들을 밥 챙겨주어 학교에 보내고난 뒤면 전화통만 붙잡고 앉았다. 
꼬빡 두해동안은 전화통이 불이 났다. 머나먼 동경에서 걸어오는 전화속의 안해 목소리는 그저 구들에 누워 비단이불을 머리우까지 끄집어 덮고서 귀속에 소근거리는 간질거림과 같은 그런 설레임이였다. 바쁘게 버는 돈이라서 얼마 안되는 돈이라도 꼬빡꼬빡 부쳐와 자식 학잡비와 집살림은 근심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이태후의 어느날부턴가 달포가 지나고 한해가 저물도록 송금표도 더는 볼수가 없고 그저 단 두번의 전화만 받았을뿐이였다. 첫번의 전화내용은 아이앞으로 한해 학잡비 3천원을 보냈다는것, 다음 전화내용은 어느 대학에 록취되였냐는 간단한 물음에 그치지 않았던것이다. 그로부터 긴 시간동안을 남모르게 생활상 쪼들리고 정신곤핍증에 시달려야만 했던것이다. 

안해가 집을 떠나 5년만에, 그러니까 아들이 대학에 록취되던 이듬해에야 나는 완전히 안해로부터 배신을 당한 자신을 믿을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들이 먼저 알고 한해가 되도록 비밀에 붙였을줄이야.
아들은 이 아비가 불쌍했던지 주일마다 전화를 걸어오군 했다. 비행기를 타고도 여섯시간씩이나 걸린다는 머나먼 해남도에서 걸어오는 전화였다. 전화내용은 번마다 같은 내용이였다. 《아버지, 저녁은 뭘루 드셨나요? 아끼지 말구 고기두 사 드셔유…》 뭐 그런것들이였다. 그런 일상적인 전화통화가 계속되던중 어느날엔가 전화속으로 울음먹는 아들의 문안이 들릴줄이야. 아들이 왜 운단 말인가. 그리워서도 아닐것이고 설대목도 아닌데다… 이번에는 내쪽에서 그 연고를 캐고들어서야 아들이 《어머니가 일본에 딴살림 꾸리고있어요…》 하고 실토한것이다. 넌 어떻게 그걸 알았냐? 고함을 질렀을 때 아들은 《어머니도 많이 웁디다. 목이 다 쉬였구요. 뭐 그런 연고가 있었다나요… 그 남자와 살지 않으면 안될… 어머니도 생활이 쪼들리니 내 학비만 빠듯이 부쳐준다고… 아버지께 한없이 미안하다고…》 아들도 목이 메여했다. 

하늘이 무너질듯 눈앞이 까매났다. 난 구들에 엎딘채 오래도록 일어나지 못했다. 찬구들에서 꺽꺽거렸고 그러다도 기절을 했다. 하루밤 몸부림끝에 깊은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찬구들우에 잠을 깼을 때는 창문가로 숫돌빛의 새벽이 새여들 무렵이였다. 

나는 내가 신령의 부름을 받았음을 느꼈다. 전신에 땀이 내배고 량볼이 확확 불 붙는듯, 예리한 안광과 명철한 사색속에서 채찍질하고있었다. 

부엌아궁이앞에 안해는 앉아서 웃고있었다. 오라고 손 젓는다. 나와 안해는 후영의 부엌아궁이앞에 서성이는 처녀총각이였다. 계복이가 말했다. 

―지금부터 어떤 역경이 부딪쳐도 절개 굽히지 않고 우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 증거루 이 《약물》을 마십시다!
그러고 계복이는 사발에 찬물을 붓고 거기에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를 긁어서 풀었다. 시커멓게 그을림이 떴다. 어렷을적 종이를 태운 재를 먹으면 공부를 잘한다고 그래서 종이재와 부엌의 그을림까지 먹던것처럼 우리 둘은 절반씩 갈랐다. 그리고 꿀물인듯 꿀꺽꿀꺽 마셨다. 

부엌아궁이속의 가마밑굽재, 그건 내 령혼의 뭔가를 상징하고있었다. 희망의 끈이고 액을 물리치는 부적으로 보였다. 

나는 부엌으로 내려갔다. 옥사발에 검댕이 재를 담아 물을 붓고 저었다. 걸직했다. 마시기전에 난 허드레처럼 소릴 내질렀다. 

―내 안해는 그 누구도 앗아가지 못한다. 내 안해가 남의것이 되다니… 잠간 유린당할수도 있겠지… 내 안해는 곧 리지를 회복할것이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시니 그제야 웅웅거리던 머리가 트이고 정신이 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약수》라기보다 《신수》를 마신 기분이였다. 나는 또 불이 다 죽어 재만 남은 새벽에 슬슬 기여일어나 부엌아궁이에 머리를 들이밀어도 본다. 그리고 거울을 보면 거울엔 숱검뎅이투성이인 걸인 하나가 보인다. 검뎅이가 묻은 내 골은 안해의 사랑이 묻은 골이 아닐가… 그런 정신상태에 처해있을 때, 나는 이미 학교로부터 무단결석때문에 경고처분 세번째만에 강위에서 제명된후였다…

4. 퉁공기와 옥공기

우리 집에 찬장으로 구리빛공기, 보시기가 하나 보인다. 할아버지적부터 전해내려온 퉁공기였다. 

나는 퉁공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한번도 퉁공기를 써본적은 없다. 

―네 할아버지가 한평생 저걸(퉁공기)로 술 부어 마셨지 뭐가. 술만 얼근하면 퉁공기를 마주하고 말했지. 퉁공기야말루 사내 맘을 닮았다고.
할머니가 천수경처럼 퉁공기를 마주하고 하던  말이다. 그 말의 오묘한 깊이를 그제야 알것 같았다. 

퉁공기, 퉁공기는 언제봐도 구리빛이다. 옥공기곁에 놔도 그 현란한 빛갈에 물들지 않는다. 찬장속에 홀로여도 고독을 모르고 엄동속에 추울수록, 한여름의 폭양속일수록 더욱 그 빛갈이 칼날처럼 쨍하다. 퉁공기는 떨구어도 깨여질줄을 모른다. 

상징적이였다. 기독교신자처럼 치명적으로 나갔다. 막을수 없었다. 정신의 극기를 모았다. 나는 퉁공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안위가 되고있었다. 상우에 씹던 명태쪼가리라도 올리고 퉁공기에 술을 붓는다. 아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퉁공기 맞은켠으로 옥공기도 놓고 수저도 차렸다. 자, 마시오 계복이. 그런 중얼임으로 퉁공기의 술을 들이키고는 계복이 몫으로 부어놓은 두공기의 술도 말끔히 마셔버리군 했다. 처음에는 한주일에 한번꼴로 마셔두었지만 차츰 그 차수가 빈번해갔다. 오기와 번열로 마시던 술을 차츰 상징으로 마셔대다가 나중엔 한탄이 술을 마시게 했다. 전화소리만 울리면 불에 덴 소처럼 뛰쳐일어나 전화기를 부여잡는다. 《여보》라고 부르면 대방에서 아들의 애원조가 들린다. 《아부지, 또 술 취했어… 제발 좀…》 아들은 강경하다가 나중엔 부탁과 애원조로 나온다. 

자존, 정진, 기대, 노력, 기쁨, 행복, 악, 모지름… 모든 심리방선이 그앞에서 무너지고있음을 실감했다. 어쩔수 없었다. 안해를, 그 풋풋하고 싱싱하며 심장 같던 안해를 일본의 어느 사내놈에게 앗기다니 억장이 무너질수밖에… 난 속이 좁은 인간이다. 내 눈에 더 다른 녀자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옥공기를 바라고 슬프게 묻는다. 안해야, 네가 나에게 해준게 뭐냐? 돈 몇만원 부쳐왔다고? 그 돈을 이 몇년간 아들을 공부시키고 먹고사는데 썼을뿐이 아니냐. 날 배신하려거든 어느 누구처럼 고대광실을 지을만큼한 돈이라기보다 적어도 십만원쯤이야 돈을 보내주어얄게 아냐. 이게 뭐야. 난 량손에 쥔게란 없이 안해 잃고 돈을 쥐지 못하고… 애초에 너희도 몰랐을거야. 내가 비극을 저지른다는것을. 인간이란 그런거야. 번연히 알면서 빠져들어가는게 인간상정이라던데… 넌 깨여진 옥사발! 난 널 저주한다. 아니, 저주하다니, 그럴수 없어. 난 널 사랑해, 사랑한다구. 그댄 꼭 돌아올거야. 뒤동산에 진달래가 피고 뻐꾹새 우는 봄날에 계복이는 꼭 나에게로 돌아올거야. 돈도 싫어. 그저 빈 몸으로 와줘. 몸이 와주기만 하면 돼.
그랬다. 저녁마다 술이 들어가면 그렇게 말했다. 뼈로 말했다. 피로 말했다. 

구들은 차갑다. 차츰 불도 며칠에 한번꼴로 피우다나니 바닥과 구들엔 간이국수, 깡통찌꺼기들이 나뒹굴고 여름엔 파리가 기승을 치고 겨울엔 창유리와 벽에 얼음이 드레드레 언다. 

홍문이 아파난다. 홍문과 고환의 거리가 졸리면서 오줌줄기도 가늘다. 허리가 아프고 밸이 탈린다. 술이 과한 날에는 이튿날 잠을 깨고보면 홍문의 괄약근이 조금 열렸는지 똥물이 나와있었다. 

불을 때자, 불을 때야지 하면서도 몸은 점점 더 가증스러워난다. 어떤 날 불 때러 부엌으로 내려갔지만 부엌아궁이속으로 골을 디밀어 그 컴컴한 아궁이속 끝쪽에서 안해가 나오는 환청으로 흥분을 해보군 하였으니… 미친놈이 다된것일가? 아니, 난 미치지 않았다. 미치지 않는다. 

나는 운동이랍시고 몸을 움직여본다. 오래 살아야지. 오래 살아야 자식의 찬란할 래일을 볼수가 있을것이고 안해가 돌아올 날까지 버티여낼게 아닌가.

나의 눈길은 또다시 구들우의 밥상께로 가 걸린다. 퉁공기와 옥공기가 나와 계복이처럼 마주 앉아 즐거운 기분을 뿌려준다. 나를 손짓한다. 그것은 내 고독의 세계에 인이 박히고있는 유혹이 아닐수 없었다.


5. 이발

문밖에 나서서 먼 산들이 어둠속으로 불려가는 저녁무렵이면 그리움보다 더한 아픔이 나를 울린다. 

홍문이 아프고 허리가 아픈데다 이발까지 아플줄이야. 안해가 있을 땐 어디 아픈데라곤 없었댔는데. 조금만 불편해도 안해가 긁어주고 만져주고 자근자근 눌러주면서 《내 손이 약손》이야를 불렀는데.
퉁공기에 술을 마실 때 짝태나 땅콩따위 질기고 딴딴한것만 씹어먹은 탓도 있으리라. 이제 더는 그깟것들을 입에 넣을순 없었다. 그래, 두부안주를 왜 생각못했을가.

모든 고민과 아픔은 술로 대처하다보니 밥도 며칠씩 먹지 못할 때가 보통이니 그럴수록 신체는 더욱 약해질밖에. 나는 문득 이제 더 명태와 소힘줄따위를 사먹으려 해도 돈이 떨어졌음을 느꼈다. 

마을 소매점에서는 비싼 명태를 맞돈이 아니고는 주지 않기에 린근마을 한족동네로 가 두부집에 들르는수밖에 없었다. 다행으로 두부는 이름만 적고 수자를 그어 외상치기할수 있었다. 

나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아버지 굶어죽는다. 너 돈 좀 부쳐주렴아. 엄마와 련계하면 넌 돈을 얻을수 있잖아.  

내 아들은 효자였다. 한주일새에 300원짜리 돈깍지를 받을수 있었다. 얼마 안되는 돈으로 부실한 아비까지 돌보느라 아들은 실로 얼마나 근검절약하고 속 태우는지 나는 알고있었다. 그렇지만 무슨 방법이 있으랴. 난 이제 더는 일할 맥이 없었으며 병 있고 술중독이 온 놈이였다. 

돈만 생기면 큰 술통에다 술부터 사 채웠다. 그리고 두부값도 몇십원이나 물군 했다. 

어느날 아들이 전화에서 말했다. 아버지땜에 엄마한테 학비를 몇천원이나 높이 불렀다고… 죄송스럽다고 그랬다. 야야, 뭐가 죄송스럽냐, 이 아비를 배반한 그런 나쁜 년한테는 련민을 집어치워라 고만. 그랬다. 아들은 전화에서 한참이나 울음을 먹는갚더니 모기만큼한 소리로 《그쪽 엄마한테도 뭐 말 못할 곤난이 있는가봅니다. 전화적마다 목소리가 영 떨리고 쉰걸 보믄…》 하였다. 그날 밤 난 나의 허벅지를 꼬집고 까드득까드득 이발을 갈면서 울었다. 이게 뭐란 말인가. 글쎄 잘 살겠다고 나간것이 너마저 불편해지고있는 꼴이라니 너도 못살고 나도 이 꼴이 되고 우리 집은 철저히 깨여진것이냐. 

이발이 아파난다. 우리 가문에 남자들 유전적으로 암에 걸린 사람 없고 오복에 속하는 이발병이 없었다는데 난 왜 이발통증에 견딜수가 없는겐가. 왼쪽 볼이 떡을 문것처럼 부었다. 

두부를 먹어도 쩡쩡 아파난다. 술을 억망으로 들이켰다. 술에 취해서 잠들군 했다. 

술은 좋았다. 그리움도 아픔도 마비시킨다. 
그러나 필경 술은 육체를 해친다. 술을 마신 이튿날이면 속이 쓰리다못해 열물까지 토하고나면 아픈 속을 푸느라 또 술을 마신다. 술로 이어지는 나날은 길고 길었다. 몽롱한 의식속에 모든 기억과 소원들이 취해서 쓰러져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못견딜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술을 마셔온 원인을 단 두가지로 귀납할수 있었다. 하나는 취중 즐거움 즉 안해와의 지난 행복했던 일들을 현실처럼 환청하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너무 그리울 때 그 아픔을 얼리기 위한것이였다. 그런데 이제 이발이 아픈것을 견뎌내기 위해 술을 마신다면 너무 마셔야 하기에 속이 폭팔할것 같았다. 

―돈은 죽음을 관리하는 가장 문명화된 도구다!
나는 그렇게 소태 씹듯이 중얼거려보았다. 

나는 아들이 부친 돈을 넣고 떠났다. 백강 굽이굽이 뻐스는 달린다. 짙푸른 여름풍경속에 돈 벌어와 이제 시내에 들어가 살아요. 하던 말이 떠오르며 쿡 하고 쓴웃음이 나갔다. 안해의 희고 가쯘한 이발들이 박씨처럼 날아가고 날아온다. 

팔면통시 구강병원에서 의사는 이발을 들여다보고있었다. 아―의사가 불렀다. 입을 짝 벌리자니 자꾸만 울컥거린다. 그럴 때마다 아래배에 기운을 뻗쳤다. 그래도 구역질은 멎지 않는다. 구역질은 안개나 연기처럼 깊은 곳에서 피여오르기도 했다. 대부분은 그러다가 종잡을수 없이 사라졌다. 안개 같기도 하고 연기 같기도 한것이 몸밖으로 새여나올듯이 목구멍으로 스멀스멀하며 퍼져오르면, 어금이를 지그시 물어서 그것을 몸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노라면 합작이 잘되지 않을 때 의사는 내 입에 아예 자갈을 물렸다. 자갈사이로 안이 들여다보이는 동안 나는 한숨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고있었다. 의사는 이몸에 마취주사를 찔렀다. 단통 아래턱이 뻣뻣해나며 돌이 달린듯 불편해난다. 그때에야 난 불에 덴듯 놀라며 의사를 밀치고 벌떡 뛰여내렸다. 의사는 깜짝 놀라며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겨우 말이 나갔다. 왜 마취주사를 놓느냐, 이를 두대나 뽑아야 된다고, 이 한대 하는데 값이 얼마나 되냐, 뭐 이백원씩이라구… 난 그저 이를 뽑아만 달라, 새 이는 싫다… 그러고 다시 벌렁 드러누워서 기다리는데 안해가 일본에 나가 번다는것이 이 꼴을 하고있다니 설음은 또 분개를 타고 목구멍으로 치민다. 그 치미는건 다시 미역가닥이 부패한 냄새나 쇠녹의 비린 내음으로 바뀌여 치민다. 내 구역질은 심히 날 못살게 굴고있는거였다. 

―왜 자꾸 뒤채입니까?
의사가 참다못해 역정을 쏟았다. 

―속이 자꾸 구역질을 하고 가스 같은 공기로 차올라서요. 별 일입니다. 그리고 냄새도 생전 못맡던 냄새로 차고요.

―왔던김에 속시원히 시병원엘 가 검살 해보세요. 요즘 상해와 일본에서 새 의료기를 들여왔다던데. 병이란 미리 알아서 처치해야죠. 안그러면 키우거나 죽음밖에 기다릴것 없지요.

이발 두대나 뽑았다. 혀가 헐렁 들어가 앉았다. 허전했다. 생을 함께 하지 못하고 락오된 안쪽 이발 두대가 한없이 아까왔다. 내 이발 하나 건사 못하는 주제니 안해도 가버렸잖아. 그런 모멸감에 몸을 떨었다. 사내의 능력이란 도대체 뭘가… 참으로 알수 없는 문제였다. 그건 철학이였다. 

(<<연변문학>> 2007년 11월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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