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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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2008년 11월 11일 10시 15분  조회:12110  추천:60  작성자: 량춘식

[중편소설]

하류의 물살


량춘식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 나는 앉아있다. 나는 이것이 마지막 고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은 여느때처럼 황페하고 적막한것이 아니라 탕개가 풀리며 어느 정도 감동하기까지 한다.
    구태의연한 풍경이라서 두만강하류는 아름답기만하다. 삼국이 린접해있는 국경선이다. 왼편으로 로씨야의 트럭과 송아지만큼 큰 개짖는 소리, 오른편으로 조선의 기관차의 고동과 닭들의 홰치는 소리가 련속부절히 들려와 못가보는 이웃이기만하던 력사의 비망록이 안개의 강으로 한가슴 흘러들기만한다. 짙은 회백색, 흑청색의 두만강하류는 그 흐름이 완만하고 수많은 잔주름이 미명의 빛속에 잘디잘게 쪼개진다. 짙푸른 엽록소가 물든 강변갈숲과 진붉게 물기오른 피빛버들숲을 어루쓸고 나가는 하늘빛 동쪽 저 멀리 무연히 바다가 누워있다. 동해란다. 저 바다로 모국의 강릉이나 속초항에 가 대일수 있기도 하다면… 봄이면 청록색, 여름이면 짙푸른 파랑, 가을이면 감청색, 겨울이면 짙은 남색의 상공으로 계절따라 터새, 철새, 나그네새들의 울음이 그 얼마나 이 가슴을 쪼개고 애끓였던가.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이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삼각지와 넓은 바다가 잘 내려다보였다.
    강하구는 물살이 완만했다. 민물과 짠물이 서로 섞였다. 그곳에 물고기들이 서식했다. 수심 얕은 수토사이가 산란에 적당하기때문이다. 새우무리와 조개무리의 민둥뼈동물도 모여들었다. 새들은 주린 배를 채웠다. 그리고 날개를 손질하며 쉬다가 떠났다. 그럴적마다 이 마음은 곧잘 감동했고 아쉬운 나머지 핑글 더운 눈물이 고여오르군 했었다. 도요새의 유연한 비행을 두고, 갈매기의 기류에 따른 묘한 상승을 보며 너희들이야말로 삶이란 그물에 걸려 헐떡이는 인간들과는 달리 가고픈 곳 다 다니며 자유의 신이라는 부러움으로 마음의 날개를 끝없ㅇ 퍼득이였던것이다.
    내가 못가본 곳은 너무나 많다. 국경선너머는 말고 조국의 수도 북경은 물론 성소재지인 장춘마저 못가본, 비행기는 말고 파란 렬차 한번 못타본, 자전거만 타는 한심한 농투사이니 말이다. 그래도 제일 가고픈, 자나깨나 그리는 품의 강심(江深)이 있다. 안해가 있을 그 어디에―서울의 어느 김밥집이나 부산의 고삭은 나루배아래 바람등받이에 새우잠 자는, 강릉이나 영동의 어느 두메산골 감자밭이나 두만강 철교란간을 붙잡고 흐느끼는 오, 어쩌면 이제는 속초항에서 동해를 거쳐 배가 연변 훈춘에 와닿아 속초항만에서 환향의 기회를 기다리며 쪽잠 들고있을 그곳으로 찾아가고픈것일가. 그런데 왜 자꾸 안해를 , 사랑하는 안해의 처지를 이토록 슬프게만 매여놓고있을가. 어느때 어느 남자 문뜩 딸라띠를 해띠고서 눈이 까매서 기다릴 이 나그네를 찾아올지 뉘 알랴. 하긴 생각이 처량하게만 흘러드는것도 리해가 갈것 아니냐. 고향을 떠날적에 자그나마 온 방천마을의 남녀로소가 한사람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송별을 고할적 3년만에, 두만강변의 해당화 세번 지고 필적에 환향하리라 맘놓으라며 맹세하던 안해가 아니던가. 그런데 3년이 지나고 또 3년이 오도록 《돌아가겠어요.》하는 대답이 올줄은 모르고있는 형편이다. 문득문득 날아드는 송금표, 많으면 륙천 팔백원, 적으면 일천 이백원씩 희열에 들뜨기보다는 오히려 고맙고 미안스럽고 가슴아프기까지 해나서 받아보는것은 개인날 궂은날 가리잖고 발이 부르트도록 서울에서 부산으로, 강릉서 영동으로 자리를 부엌데기처럼 옮기며 바꾸어온 《피땀》이였던것이다.
    여보, 이젠 제발 돌아와주오. 덕분으로 아이들까지 대학 보내고 페결핵으로 황천객이 다됐던 어머니도 편히 살아서 신수 멀끔하구먼. 저금한 돈도 적잖은데… 이렇게 바다 건너 수없이 새처럼 편지가 날아갔어도 《더 벌어야죠…》라는 한마디 애매한 대답뿐인걸 어쩌랴.
    돈이 안해를 악마로 만들었는가? 돈을 벌기 위해 태여났을가? 말도 안된다. 안해여, 그대의 봄같은 숨소리와 말소리, 수정같은 눈동자와 박씨 같은 가쯘한 이, 고운 얼굴과 앞가슴과 숫눈무지 같은 하반신, 그리고 해바라기 같은 정과 도덕과 량심은 그대 혼자만의것이 아니어늘… 그러나 내 지금 별수 있으랴. 언젠가 안해가 말했듯이 삶이란 결국 그런것, 어부가 그물코를 시작하여 끝맺을 때까지 한코를 뜨면 열코을 나가야 하고 열코를 뜨면 백코를 나가야 하는, 결국 그런 한코, 두코의 그물이 자기를 쳐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굶고 주려 마르게 하는 《마귀그물》이란걸 알면서도 한사코 떠나가는게 인간인것이다. 이때문에 나는 고통스럽다. 애당초 허욕에 날치며 안해를 풀어보낸것이 지금은 그것이 돈으로 지지리 어두운 고독만을 바꾸어오고 귀체(貴體) 스스로 귀체의 모든것을 해친다고 해야 할지를.
    그립다, 그리워서 망망한 바다가 보이는 하류의 삼각지로 나간게 아닐가. 마를수 없는것이 바다라면 여기 두만강하류의 풍족도 영원할것이다. 황어, 산천어, 청어, 정어리, 쏘가리, 가재미, 꼴뚜기, 송어, 련어, 용어들이 은빛 번뜩일 때 그보다는 오월, 련어철에 몇십근 지어 백여근씩 되는 련어들이 알을 쓸고저 무리쳐 오르는데 한마리만 잡아도 사람이 실컷 먹고 나머지를 도끼로 찍어 돼지를 먹인다고 한다. 얼마나 아까운 짓인가. 인간들이란 린색하기 짝 없다. 하류에 수없이 고기가 많다는 선입감때문일것이다.
    물속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가. 그 어떤 고갈이라던가 하는것을 느낄수 없을텐데. 이런 느낌이 나에게 던져준 상상이였을가. 나에게는 언제부턴가 하류가 안해의 미끈한 하반신으로 착각되군 했다…
    얼마나 맑지고 청청한가. 700리 두만강의 상류, 중류가 오염이 없었으니 하류야 거울면 같이 유유했었다. 푸른 강역에 차돌을 쏟아부은듯 오붓하게 들어앉은 방천마을이다. 길섶에 어렵잖게 굶어죽은 시체를 볼수가 있고 류리걸식하던 《대약진》세월에도 방천마을사람들은 초근목피(草根木皮)를 운운하지 않고 살수 있었다. 훈춘이 중국의 맨 북쪽구석에 위치해있으니 훈춘에서도 70키로메터의 심산수레길을 조여야 대일수 있는 700리 두만강 맨끝쪽, 동해가 훤히 바라보이는 마지막 산속마을이니 오지도 한심한 오지였다. 태여나 죽을 때까지 기차 못타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해는 낡은 자전거를 구해다가 타고 다니는 박가를 자전거 탈줄 안다고 촌장으로 선거했었다. 그토록 구석이라 해서 정치불문인것은 아니였다. 마을의 어느 집에 반도체라지오가 있었고 열흘에 한번씩 우편배달이 다녔으며 간혹 경신향정부에서 《공작대》들도 다니군 하여 정책조달이 되고 생산대회의가 띠염띠염 열리군 했던것이다. 이른봄, 종자구입때나 한여름 종종의 일때문의 수레나들이보다는 늦가을이나 한겨울속의 징구량 바치는 일이 제일 대사로 나서는것은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이였다. 푸름한 신새벽에 개털모자에 고드름을 붙이며 징구량을 꽉 박아실은 수레대오가 산길을 조인다. 뚜꺼덕 삐삐덕, 이랴쨔쨔 소리가 골안을 들었다 놓는데 자칫하다간 좁은 얼음서린 길에서 탈절되여 천길나락으로 굴러 황천객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였다. 그래도 새벽, 낮, 밤을 교체하면서 해해년년 어김없이 완수하군 하는 징구량임무였다. 《대약진》 그 세월에는 쭉정이마저 날려 얻은 낟알까지 깨끗이 실어가게 되였는데 어떤 사람들은 배고파 우는 아이를 업고 촌장을 삿대질하며 욕질을 했다.
    《욕은 당연히 제가 먹어야 합니다. 진작 준비가 되여있으니깐요.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우린 우리 마을이 위치하고있는 <천연요새>때문에 굶어죽을수 없을겁니다. 두만강하류에서 바다에서 오르는 물고기들이 펄떡펄떡 뛰놀고 늪도 있고 벼라별 약재와 산짐승들이 낳은 산도 있지 않습니까… 견딥시다. 나라의 곤난을 함께 떠멥시다…》
    촌장의 예견대로 방천마을은 류리걸식하는 사람들을 볼수 없었다. 어느 집에서 메돼지를 잡아도 스무호남짓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눴고 아이만큼씩한 송어를 잡아도 큰 가마에 끓여서 온 마을  남녀로소가 명절인양 모여 먹군 하였다. 그때 마을에 첫손 꼽히는 《부호》가 있었으니 호주의 성명이 윤철룡이요, 별명이 《손톱눈》이다. 이름과는 달리 키 작고 강마른 철색의 나그네여서 보는 사람을 무안케 할 정도인데 그런 사내가 떡구시같이 실한 아낙과 일곱딸을 낳아 기르면서 잘산다는게 믿어질수 없는 사실이다. 세층으로 된 집앞 뒤주에는 강냉이, 호박, 벼섬이 그득 쌓여있었고 돼지, 게사니, 오리, 닭들이 울어제끼고 바람에 펄럭거리는 흰 이불안과 딸들의 속내의며가 꽃같이 피여난 빨래줄 받침용장대기의 아득한 끝초리로 언제나 말린 물고기들의 기름튀김을 련상시켜오군 하여 아래도리까지 뻐근해나도록 사람을 죽여준다. 그래도 기막힌 깍쟁이다. 배추김치를 넘볼라치면 먹던 김치를 손톱으로 찢어서 주는가 하면 산치기에서 도시락 구워먹을 때 곁의 네 장정들이 말린 붕어튀김을 축낼가봐 미리 한마리를 주어들고 네몫으로 빡빡 쪼개주더라는것이다.
    윤가는 사람들에게 늘 《잘 먹기 위해 부지런해라》고 말한다. 윤가는 확실히 잘 먹어댔다. 많이 먹어서 그런게 아니라 영양이 고루 가도록 각양각색의 음식장만에 신경을 쓰는것인데 열두가지 네발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날짐승의 고기, 열두가지 물고기, 열두가지의 김치, 열두가지의 알곡밥, 열두가지의 알류, 기름류의 정상적인 음복이였다. 그외에 세가지를 금하고있었는데 술, 담배, 도박이였다.
    윤가는 사람들이 《하늘에서 황금이 뚝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할적마다 《시간이 곧 황금이여》 라고 말을 받군 했단다. 윤가는 빠짐없이 생산대 일에 참여하는외에도 점심시간이나 이른아침, 지어 달빛아래에서마저 자류지를 뚜지군 했는데 그뒤엔 숫돌처럼 음식함지박을 인 안해가 따라다녔다. 일하고 먹고 일하고 먹고… 먹고 일하고 먹고 일하고… 비내리는 야밤에 배 타고 그물 늘이는, 주먹눈이 터지는 겨울에 옹노 놓고 덫도 놓는 나그네는 눈코뜰 새 없이 보내는것 같지만 그의 휴식이 과연 어떤 틈사리였는지 마냥 고동색 얼굴은 윤기 돌고 쾌감이 흐른다.
    마을에서 윤가를 두고 《아유, 그 아즈반님이야 세상 복 혼자 굴러가겠죠》 라며 부러워하고 질투하는건 아낙네들이였고 윤가네 가축을 호시탐탐 노리는건 어중이떠중이 청년들이였으며 《손톱눈도 쪼개여 쓰는 눔이여》 라며 공연한 욕지거릴 퍼붓는건 당연히 아낙의 바가지 긁는 소리에 잠을 설치군 하던 나그네들이였다.
    《사내대장부로 태여났으면 올방자 척 틀고 앉아 공대받으며 살아야지. 저 <손톱눈> 같이 한뉘 궁둥이를 하늘에 쳐들고 손톱발톱이 모지라지도록 살어야 쓰것냐, 쯧쯧.》 하고 저주를 퍼붓는건 아버지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되려 아버지를 꾸중한다.
    《두상짝요, 일에는 굼뱅이고 묵는데만 악돌이 되여 술 묵고 담배 피고 도박 치고 뉘  과부엉뎅짝만 살피고 다니는… 애고애고, 윤가처럼 살았으면 내사 춤구갔구만…》
    우리 집은 움막과 다를바 없었다. 뒤처마가 땅과 거의 맞닿아있어 닭들이며 오리가 오르내렸고 돼지까지 이영을 뚜져서는 엄지만큼씩 꾸부정대는 시허연 굼뱅이를 파먹어댄다. 어머니는 병약한 녀자였다. 아버지가 호주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바람에 가난은 이리처럼 덮쳐들었다. 우로 누이 셋이나 달도 못차 죽어버리는 바람에 나, 아들이 나이 지긋해서 본 대잇기자식이였으니 참말로 다행이 아닐수 없었던것이다. 어머니의 전부의 희망은 이 아들이였다. 아무리 봐도 잘난 자식이고 총명한, 큰일을 해낼 인재로 성장할것 같았다. 아버지는 술만 얼근하면 내 이마를 다독거리며 《너 이담 크면은 몇살부터 술 마시겠노》, 《너 이담 크면 몇살부텀 도박 놀겠노》 같은 롱지거린지 진담인지를 하고선 곧잘 낄낄거렸고 《너 이담 크면은 윤씨네 막낭딸에게 장가들거라. 며늘감이 드러났거둥.》 이런 말도 정색해서 곧잘 하군 했다. 
    1966년 여름, 700리 두만강은 전례없이 혼탁했고 물도 불었다. 하늘은 산증에 걸린 아낙처럼 쉴새없이 비를 쏟았고 골물과 산사태까지 쏟아져 흘러든 두만강은 곬을 넘어 광활한 밭들과 인가를 범람해버려 시누런 흙탕물길로 뱀과 죽은 가축들이 쉴새없이 떠내려갔다. 방천마을은 높직한 산등성이에 자리잡고있었기에 가축이나 가장집물은 손해보지 않았다지만 그래도 강역밭들이 몽땅 물에 밀렸다. 이만해도 다행이였다. 그래도 사람들은 풀이 죽어 얼굴이 시커매서 한숨만 풀풀 내쉬였고 머리를 떨구고 다녔다. 수전과 한전이 몽땅 거덜이 났으니 쌀 한알 없이 추운 겨울을 어찌 난단 말인가. 수십개의 마을들에서 향정부에 원조를 요구했고 향정부에서는 현에다 손을 내밀었다. 쌀은커녕 한절반 뜬 강냉이가 인구당 백여근씩 차례진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럴법도 했다. 불었던 물이 다 빠진 때는  마침 가을배추, 무우철이였다. 모두들 얼이 쭉 빠져 정신을 못차리고있을 때 그래도 윤가가 선참 아낙과 딸 일곱을 데리고 떨쳐나섰다. 제일 막내딸 윤수연이가 열살이였으니 우로 롱구선수 같은 딸들의 로동효률은 실로 경탄을 자아낼만했다. 밭을 일구고 배추와 무우, 파를 심는데 검은 흙고랑이들이 강역에서, 산비탈에서 우쭐우쭐 터를 넓혀가고있었는데 그제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고 분분히 묵밭일구기에 나서기 시작을 했다. 농사란 심어서만 되는게 아니였다. 바야흐로 자라기 시작을 하는 무우, 배추에 충재까지 뻗치게 되였는데 그 심한 정도는 온 벌의 풀과 나무잎들을 볼수가 없을 정도였다. 길에 나다니기조차 끔찍했다. 발을 옮겨딛기조차 바쁘게 털벌레들이 지천으로 기여다녔다. 수재에 어혈이 든지라 련이어 닥친 충재앞에서 사람들은 어째보지도 못하고 기운을 내풀고는 《끝장이다, 끝장!》하며 실망을 해버렸다. 그러나 윤가는 강역밭과 산비탈밭에 아낙과 딸들을 내몰았다. 저마다 삽과 낫을 들었다.
    강역밭은 대개 뙈기뙈기를 합해 두헥타르는 될상싶었는데 바야흐로 무우와 배추가 배가 불러가도록 싱싱하게 자란 밭이였다. 그런걸 왜 벌레에게 《소탕》 당한단 말인가. 그들은 땀을 철철 흘리며 밭둘레에 도랑을 빼기 시작했다. 옹근 이틀밤낮을 싸워서야 밭둘레에 두만강물을 끌어들일수 있게 되였다. 그러니 벌레들이 밭에 범접을 할수가 없게 되였다. 산비탈둘레에는 들에서 베여온 깔과 새로 불을 질러 재를 쌓았는데 털벌레들은 재무지를 넘어오지 못했다. 막내딸 수연이까지 밤을 새며 벌레와 싸우다보니 입술이 갈라터지고 감기까지 걸렸다. 가을에 무우,  배추, 파 풍년이 들어 린근마을의 한족들과 쌀, 기장, 조와 바꾸고 돈을 번건 말할것도 없는데… 그해에 내 나이 윤수연이보다 한살이 더 많았으니 열한살, 소학교 4학년이였고 수연의 웃반이였다. 그래도 복식반이였기에 우리는 허름한 교실에서 이웃으로 앉아 공부했다. 나는 키꼴 큰 아버지를 닮았는지 힘을 셌지만 항시 다른 애들이 구워온 감자랑 훔쳐먹기에 여념을 했으므로 공부에는 뒤전이여서 벌을 서군 했다. 수연이는 가만 볼라니까 엄마, 아버지는 잘난데가 없이 꼴불견이건만 어데를 골라서 닮았는지 곱게도 생겼고 공부도 1등이여서 언제나 선생님 칭찬을 독차지하고있었다. 공불 못하면 애들의 눈에 나기 마련이고 그러고보면 자신도 풀이 죽는다. 그런데 나, 이 김석룡이는 어찌하여 단연 이름이 높아졌던가. 너무나 우연한 기회에 선생님과 애들을 놀래웠던 일은 지금까지도 그 가슴을 설레게 한다. 그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풋풋풋, 삐삐삐, 삐삐용, 끄르르륵 쫑쫑…
    새들의 아름다운 목청이 두만강가로부터 신새벽을 깨웠던 모양이였다. 교장실 창유리 같이 알른거리다고 우리 반의 깨여진 창유리처럼 부서져 반짝이는 두만강의 수면에 대고 조약돌총질을 실컷 하고서야 교실에 들어섰다.
    《서랏! 또 지각이야! 또 숙제 못해왔겠지? 어제 수연의 기름개구리튀김을 네가 훔쳐먹었지? 너 대갈통이 호박이라면 삶아나 먹제이. 쓸데가 없는 놈, 들어갓!》
    산수선생님의 뾰족구두코가 내 여윈 엉뎅이를 조긴다. 
    그다음 시간은 작문시간이다. 벌써 배에서 꼬르륵꼬르륵 기아의 변주곡이 울린다. 고소한 냄새가 코를 간지른다. 틀림없는 쏘가리튀김일것이였다. 네발이든 두발이든 하늘의것이든 산의것이든 물속의것이든간에 고기냄새이기만하면 틀림없는 수연의것이다. 눈길은 손만 뻗치면 대일 수연의 책상안으로 들어간다. 나의 손이 나갈무렵 느닷없이 선생님이 와 서있었다. 별수없이 흑판을 보았다. 거기엔 커다란 판서 《아버지》가 씌여있었다. 귀신의 작간이랄가, 쓰고싶은 충동이 물기둥처럼 일며 생각하고 느껴오던 일들이 물보라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작문이 뭔지도 모르는 놈은 드디여 삐뚤삐뚤 모지라진 연필글씨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에 <손톱눈>이란 별명을 가진 한 아버지가 있다. 깍쟁이란 뜻이다. 
    집도 제일 덩실하고 돼지, 닭도 제일 많이 치고 쌀도 제일 많다. 또 논밭도 제일 많다. 뭐나 다 많지만 달라고 하면 깍쟁이 쓴다.
    작년 설날에 우리 집에서 꾸어먹은 쌀 백근 받으러 왔댔는데 아버지와 다투었다. 한마을에 살면서 제일 잘살면서 그깟 백근 받으러 남자답지 못하게 다니는가고 하니 <손톱눈>은 꾸어간것은 친아비의것이라두 한냥 차이 없게 받는게 사는 도리라며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다음 어머니는 안받는것만도 이안해죽겠는데 그런 량심없는 소릴 칠수 있는게 사람이냐고 한바탕 다투었다.
    며칠전 어머니에게 떠밀려 아버지는 또 <손톱눈>에게로 무우 백근, 배추 삼백근을 외상내러 가는수밖에 없었다. 무슨 방법이 있는가? 겨울은 오는데. 그이는 원래 외상치기는 없는데 한마을이니 안면을 봐준다면서 그 손톱 긴 손으로 아버지의 식지를 쥐여 손도장을 찍어버리더라는것이다.
    아버지는 집에 돌아와 씨근거리면서 <씨팔것이, 그저 주면 안되나. 그예 손도장까지…> 이러며 욕설을 퍼부었는데 엄마처럼 나도 한숨이 나갔다. <손톱눈>은 잘사는데 우리 집은 왜 못살가? <손톱눈>은 시간을 금싸락처럼 여기고 일하는데 아버지는 빈둥빈둥 놀기만할가? 
    아, 나에게도 <손톱눈> 아버지가 있었으면.》
    시간이 끝나기 5분전, 선생님이 나의 작문을 애들앞에 랑송했다. 애들이 《우와―》 큰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수연이는 머리를 숙이고 가방끈만 만지작거리고있는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쓰다보니 수연이 아버지를 써버렸는데 수연이가 어떻게 생각할지가 그냥 가슴에 머물러와 밤잠까지 설쳤다.
    이튿날은 일요일이였다. 밖에서는 마가을 궂은비가 구질구질 내리고있었다. 아버지는 대자로 누워 코를 골고있었고 어머니는 늦아침때식을 익히고있었다. 나는 옷을 입고 도로 이불안을 헤맸다. 그때였다.
    《석룡아!》
    쨍쨍한 부름소리가 들려왔다.
    《아유, 이게 뉘냐? 윤아즈버님네 막낭공주가 워짠 일루 다 우리 집으로 왔어? 어서 들어와, 응?》
    뭐야? 그럼 수연이가 왔어? 나는 총알처럼 튕겨일어나 문밖을 나섰다. 수연에게 닭장같은 우리 집안을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수연이는 비닐로 지은 비옷을 입고 샐쭉 웃어보이고있었다. 그 모양은 흡사 일찍 허물없이 사귀여온 딱친구인듯했다.
    《가자, 우리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한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히히.》
    수연이는 내가 말할 사이도 없이 련주포를 쏘고는 특별히 나를 위해 준비한 낚시대까지 넘겨주는것이였다. 그러나 나는 우물쭈물했다. 춥고 비까지 내리는 날에 엉뚱하게 낚시질이라니, 그런데도 뜻밖으로 수연이의 《접대》때문에 싱숭생숭해나는 기분이 난처하기까지 했다.
    《싫단 말이지? 낮잠이나 자면 떡이 생기니? 부지런하면 먹을것도 생기고 100점도 생기고…》
    우리는 탁 트인 조약돌밭에 앉아있었다. 눈앞으로 청빛의 물살이 무겁게 꿈틀대고있었고 황둥오리인가 도요새인가 하는 새들이 비상을 하고 쏘련과 조선을 이어놓은 시커먼 철교가 두만강을 가로질러 길게 가로누워 침묵하고있었다.
    아버지한테 배운거였다. 소녀는 구수하게 굽은 종주먹만큼한 두병덩이를 물살이 면면한 수면에 탁 던져놓고는 나의 낚시찌를 뿌려놓고 자기도 조금 떨어진 곳에다 낚시터를 정하고 앉았다.
    《네가 쓴 작문을 울 아빠께 내용 곧대로 알려주었지.》
    소녀의 말소리는 수면을 미끌며 바이올린소리처럼 타고 왔다. 
    《그래 뭐라던?》
    궁금해서 물었다.
    《……》
    《눈물 흘리더라…》
    《뭐야?》
    나는 깜짝 놀랐다. 걔 아버지가, 눈물도 깍쟁일 걔 아버지가 울다니, 왜 울었단 말인가? 내가 더 묻기도전에 두눈이 둥그래진 나를 바라보면서 수연이 말을 이었다.
    《울 아빤 혼자서 여덟식솔을 먹여살려. 아득바득 벌어서 일전 한푼 아껴쓰거든.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울 아빨 깍쟁이라면서 온역 피하듯 해왔지… 네 글이 너무 기특하다고 하더라. 막 힘이 난다고.》
    낚시질은 생각보다 재미났다. 부끄러웠지만 수연이가 알려주는대로 동동이를 톡톡 치며 끌고가거나 동동이가 물속으로 쑥 꽂히거나 비스듬히 드러누울 때를 겨냥하여 채면 영낙없이 고기가 아가미를 찍힌채 낚시대가 휘도록 물속을 이리저리 요동질하다 끌려나오군 했다.
    두만강하류에 이토록 고기들이 많은데 낚시질에 너무 늦게 미립이 트이는것이 후회되였고 수연이가 아무쪼록 감사하고… 철부지소녀애가 다 낚아내는 고기를 아버지는 한번도 낚아온적 없었으니. 그래도 아버지는 내가 잡아온 고기를 껍질을 발라 생회치고 말려서 기름튀기하고 어탕을 만들고 군불에 굽어내면서 술을 한병 또 한병씩 비워냈다. 시름시름 앓는 엄마때문에 낚아오는 고기를 렴치없이 《임무완성》하군 하는 아버지가 미욱스러웠지만 그래도 아버지이니 방법이 없었다. 나는 완전히 《귀신》이 되였다. 신새벽에 나가고 밤낚시질세계속에 깊이 빠져버렸다. 수연이란 소녀를 까마득히 잊은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물론 수연이가 더는 찾아온 일도 없지만 그는 언제나 학교에서 찾아와 《어제아침도 낚시질 나갔지?》 《숙제를 돌보면서 낚아라.》 하며 부탁들을 부지런히 해댔다.
    수연에게서 배운 낚시질은 추운 겨울 얼음구멍에서도 할수가 있어 온 겨울방학을 두만강 얼음아이가 된건 더 말할것도 없겠지만 괴상하게 재미나던 일은 이듬해 여름, 그러니까 오곡이 홰치며 자라던 7월중순께였다.

    그날 학교 교장이 5, 6학년의 제일 머리 큰 남자애들과 녀자애 몇을 불러들였다. 물론 내 키가 제일 컸다. 아쉽게도 우리가운데는 수연이가 없었다. 우리에게는 《홍소병》이라는 붉은 완장이 왼팔에 껴졌다. 하늘에 오른 기분이였다. 다음은 날이 선뜩선뜩한 낫 한자루씩 차려졌다. 우리는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강역에 나가 풀을 베여오라거나 산에 올라 싸리같은걸 베여오라면 큰일이였다. 뱀이 우글우글하니 말이다. 그뿐인가. 말모기, 등에, 날파리떼가 지천으로 날치니 말이다.
    《이 낫은 혁명의 낫이다. 류소기의 <3자 1포, 4대자유>를 고취하는 자본주의길로 나아가는 놈들을 베는것이다.》
    《목을 베랍니까?》
    교장의 말에 나는 낫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애들이 킬킬 웃어댔다.
    우리는 교장의 뒤를 따라 마을 《소탕》을 떠났다. 집집이 울바자를 뛰여넘어 한창 검푸르게 기운을 쓰고 자라는 옥수수며 콩이며 오이, 고추 같은 곡식과 남새들을 용서없이 베여버렸다. 우리 집의 남새밭을 다칠 때는 앓는 엄마가 울었고 나도 울었다. 그래도 나는 낫질을 했다. 《혁명》을 하기때문이였다. 수연이의 집 앞뒤울의 남새밭이 제일 컸고 오리랑 가지랑 고추랑 참 탐스럽게 자라있었다. 어떻게 알고 달려왔는지 수연이가 눈가에 눈물이 가랑가랑해가지고 집앞에 서있었다. 어쩐지 가슴이 아팠다. 수연이의 가냘픈 어깨와 흐느낌소리와 나에게도 쏠리고있는 눈길을 차마 서리찬 낫으로 벨수는 없을것 같았다.
    《나 배 아파. 똥 누고 올겁니다.》
    나는 낫을 던지고 바지춤을 쥐고 수연이네 울안을 벗어났다.
    수연이네 집은 마을의 투쟁대상, 개조대상으로 지목되였다. 앞울, 뒤울, 산비탈, 강역에 일군 밭들이 몇자루의 낫에 쫄딱 망했고 돼지, 개, 거위, 닭들은 생산대의 양돈장에 빼앗겼다. 그러니 아주 하루새에 부자로부터 알거지가 된 셈이였다. 윤가는 긴 고깔모자를 쓰고 《반당반사회주의분자》라고 쓴 패쪽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했고 그뒤로는 집식솔들이 저마다 《자본주의꼬리》라는 패말을 걸고 줄을 지어 따라야 했다. 공작대라는 사람이 얼마나 지독한지 조금의 틈서리도 주지 않고 끌고다녔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아버지였다. 시퍼런 대낮에 코를 곯던 아버지가 밤을 패며 투쟁대회에 참가하는가 하면 호박넌출, 오이넌출, 당콩넌출, 박넌출을 베여던지는데 제일 열성분자였다. 얼마 안가 아버지는 대뜸 벼락출세를 하여 《빈하중농대표》, 《빈협주석》으로 당선되였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빌새 없었다. 현에서 파견해내려보낸 공작대, 촌장, 부녀주임, 민병련장, 교장, 지어 향파출소장까지 찌프차를 타고 들이닥치군 했다. 
    더욱 믿을수 없는 일은 아버지에게 돈이 많게 된것이다. 어렵잖게 1원, 10원, 몇십원씩 뽑아 개 한마리 사오라, 양 한마리 잡아라 한다. 그보다는 전에 본척도 않고 지냈던 사람들이 닭도 가져오고 마른 물고기, 고사리, 꿩 같은 《례물》을 들고 오는것이였다.
    《엄마, 흥부가 알거지 되고 아버지같은 놀부가 부자되는 이 세월이 참 별났지, 안그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어데 가서 절대 그런 말 번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니는 몹시 겁이 많은 사람이였다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수연이네야말로 마을이 가난에 헤맬 때마다 꾸어주고 외상쳐주어 사람들의 기아를 제거해주었던 유일한 《은인》이란 느낌이 어린이 맘에 뿌리깊이 내린것이였다. 우리 집만 봐도 그러잖은가. 일하기 싫어하는 아버지때문에 거의 해마다 수연이네 량곡을 꾸어왔고 재작년 어머니가 병이 도져 현병원으로 갈 때도 결국은 수연이네가 돈을 선대해주었었다. 마을 회계에게마저 돈이 말라있던 그 세월에 유족하게 사는 《손톱눈》이 없었더라면 어머니는 어떻게 되였을가.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발벗고나서서 수연이네 집안을 헐뜯고있다…
    마을에서는 심심하면 《손톱눈》을 투쟁하는 대회를 열었는데 엄마가 예견한대로 학교에서도 《자본주의꼬리》인 수연이를 비판한다는거였다. 나는 이 주요한 정보를 아버지의 입을 통해 알았다. 내가 안달아난 마음을 눅잦힐길 없어하고있을 때 더욱 악연할 소식이 전해왔다. 래일, 수십리 떨어진 향중심소학교에서 전 향 중소학교 《자본주의꼬리》비판대회를 여니 모두 저녁전으로 각 소학교 《자본주의꼬리》대표인물을 향정부에 압송해야 한다는것이였다.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수연이는 점심을 먹고 학교에 들어서는 즉시로 붙잡힐 판이였다. 그래, 수연이를 빼돌리자. 이것이 짧은 순간에 내린 결단이였다…
    짐작했던바와 꼭 같았다. 대수사가 전개되였다. 향에서 내려온 군대와 공작대 그리고 교장과 홍위병, 홍소병들이 천라지망을 늘였다. 두만강변을 서캐 훑듯했지만 헛물만 켰다.
    천만다행이였다. 수연이를 우리 집 뒤울안 다락에 숨겼으니 말이지 두만강변의 어느 원두막이거나 산의 나무숲에 피신시켰더라면 경을 칠번했다. 마을을 벌컥 뒤집혔으나 《빈하중농대표》이고 《빈협주석》이 사는 우리 집에 대해서는 의심할수도 없었고 언감생심 범접할 담도 없을거였다.
    수연이는 우리 집 다락에서 옹근 한주일이나 피신해있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수연이 엄마가 알고 나의 어머니가 안다. 그렇지만 수연이 어머니는 우리 집에 올수가 없는 사람이요,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 눈치만 살필뿐 뒤울다락에 주의를 돌릴수 없는 처지다. 수연이는 다락에서 고통스러웠지만 잘 먹고 잘 잘수 있어 내가 마음을 놓을수 있었다. 개고기, 양고기, 물고기에 이밥과 찰밥에 기장밥까지 먹을수 있었다. 밤이면 모기가 문다고 모기장까지 쳐주었고 무서워할가봐 내가 다락 2층에서 자기까지 했다. 그때는 왜 그랬을가? 수연이를 어째 그토록 끔찍이 대해주었던가? 단 한가지, 사람은 량심이 있어야 한다. 그것뿐이였다. 수연이네 돈이 엄마를 살렸고 수연이네 쌀이 기아에 모대기고있던 우리 집을 불렸고 수연이가 나의 라태를 깨우는 낚시질을 배워주었지 않은가. 그러나 총명하고 말쑥한 수연이를 두고 언제 한번 이성을 느껴보았다거나 장래의 색시감으로 넘본적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천진한 소년이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소박하고 동정심 많던 천진스런 시절도 흘러가고 막 매스터배이션을 식은 죽 먹듯해가는 열정의 소용돌이에 휘감겨들었다. 《문화대혁명》도 끝나고 손에 장알이 박히도록 일만하다가 귀향하여 농촌마을의 처녀총각이 돼버린것이다. 수연이네 집은 손잡이뜨락또르까지 갖춘 《부자》가 되고 우리 집은 다시 빈곤호가 되여버렸다. 그사이 나와 수연이는 동년때와는 달리 너무나 일반적인, 어쩌다 만나면 《어델 가니?》 라는 보통 인사말이나 하고 지나는 남남의 관계가 되여버린것이다.
    수연이는 더는 동년의 그 고운 모습이 아니였다. 해볕에 그을다 못해 가무잡잡해진 얼굴색이며 할매손처럼 터실터실해진 손이며는 일밖에 모르는, 정이 뚝뚝 떨어지게 만드는 촌녀의 대표형상이였다.
    아버지가 빈정대는 말처럼 나는 《늦된 놈》이 옳았다. 스물네살을 먹었지만 련애대상에 대하여 고민할줄 모르고있었다. 내 생활권이란 기껏해야 두만강하류에서의 그런 무질서한 답습이였던것이다.
    하류는 유유하고 묵묵했으며 고독하기까지 했다. 그런 강하구에 서서 탄식의 숨소릴 죽이곤 했던 나자신을 두고 언제까지 이렇게 오래오래 백치같은 사람이 되여야 하느냐를 스스로 묻군 했었다. 그럴수록 허탈하기만했고 머리는 텅텅 비여오고만 있었다. 그래 안그런가? 뭘 알고 고중졸업을 했단 말인가. 이토록 허무하려고 세상에 태여났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처박고 앉아있었다. 그럴 때마다 저앞 낮은 삼각지류 상공으로 깨액깨액, 삐삐삐삐 하고 우는 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눈길을 그리로 던져본다. 흡사 이 무언의 사내가 스스로 묶어놓은 어떤 완고한 기반에 목이 잠기여 흐느낌도 없이 통곡하고있는 느낌이였다. 그보다는 지금 이 시각도 마당가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이 아들에 대한 알지 못할 축복의 기도를 드리며 서있는 어머니의 가녀린 목줄기와 애달픈 마음이 안겨와서 이 넓은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주고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인가 나는 유유하고 번들거리는 하류의 숲속을 문득 생각해보게 되였다. 물속은 맑고 물의 흐름속도가 빠르나 부드러울것이요, 은빛의 생명체들을 품어가는 모체의 요람일것이라는것, 그 물속세계를 헤매고싶다는 즐거움에 앞서 이름못할 짜릿한 쾌감을 맛보았던것이다. 그러한 신비감이 차츰차츰 식어가고있을무렵,  나에게는 하나의 현실로 인한, 참으로 뜻밖의 이성이 오래 갈앉았던 쪼각 배런듯 불쑥 떠올랐다.
    그날은 한여름의 석양무렵이였다. 노을빛에 수면은 금붕어의 등어리처럼 번뜩번뜩 빛났고 한낮의 폭양에 의해 풍기는 열기속에 도요새의 울음마저 나무숲이나 갈숲으로 잦아든지 오래다. 나는 아주 날렵하고 익숙한 솜씨로 미끼를 뿌리고 낚시찌를 손질하고있었다. 황혼무렵에 낚는 고기들이야 팔뚝같은 잉어나 붕어가 아니면 둔한 송어였다. 어둠에 가리우기전의 수면은 나붓기는 불꽃처럼 아름다왔다. 소녀의 묵독이요 요조숙녀의 미소다. 까닭모르게 기분이 좋아지는 자신을 의심하며 고요한 수면에 붉고 푸른색의 동동이를 띄울무렵 물 끼얹는 소리와 쨍한 비명소리가 간간히 귀전을 쳐온것이다. 강변 수양버들이 음특하게 고개를 숙인 그아래 갈숲너머로 눈이 둥그래졌다. 노을 머금은 수면에 라체의 상반신이 초상으로 안겨들었다. 《아!》 짧은 경탄이 샜다. 수연이라니?! 폭포머리는 함함히 까만 빛발을 뿌리고 흰대접같은 젖무덤은 두개의 핑그빛 자그만 유두를 보이며 박통처럼 부풀어있었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내 심장의 박동이 맹렬함을 느꼈고 그토록 음탕한 놈이 나라는 사실을 승인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하등 필요없는 아버지의 쥐똥같은 젖꼭지를 바라보듯이, 내 배꼽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듯이 수연이의 상반신에 눈길을 걸고있었다.
    그러면서 아주 간곡히, 조금의 주저도 없이 하회를 기다리고있었다. 드디여 그녀의 늘씬한 허리가 물우를 솟구치면서 하신까지 드러났다. 그녀는 약간씩 흐느끼고있었다. 음모가 여실히 드러났다. 새까만 음모는 동년적 수연이의 하얀 필기장에다 연필로 마구 락서를 해놓은것 같은거였다. 그때의 울음먹던 모습이 지금 시각처럼 느껴졌다. 로동에 근육진 시허연 허벅지가 은밀스런 자궁을 황궁인양 받들고 미끈히 솟았다. 내 아래도리가 뻣뻣하다못해 돌덩이를 달아맨듯 불편을 느끼다가 그만 사정을 해버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나머지 슬그머니 주저앉아버리고말았다… 두만강에서 목욕을 하는 수연의 라체를 본후부터 텅 비고 녹쓸던, 실망과 자비의 언덕에서 끝없이 방황하고 갈앉고 추락하던 나의 심상에 변혁이 일었다. 그렇다, 저 녀자를 사랑하리라. 해볕에 그을은 얼굴과 장알박힌 두손이 두만강의 표상, 인상이라면 수연이의 옷속에 감추어진 라체야말로 풍족한 은밀의 생명체들을 키워가는 두만강하류의 속성과 같은것이리라. 우선 돌부처같은 마음속에 사랑부터 키워가라. 저 녀자를 사랑하고 저 녀자의 사랑을 받을수가 있다면 그 사랑이 어쩌면 이 둔해버린 사나이의 운명을 좌우지하여 망각된 앞날을 해빛으로 선사받을지도 모를 일이였던것이다.

    나는 수연이의 하반신을, 밤속의 달빛같던 하반신을 사랑했다. 눈감으면 떠오르고 눈떠도 아른거렸다. 거기에는 살숲의 그늘도 있고 사막의 오아시스도 있으며 들판의 오곡향기 그윽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렇게 옹근 한해를 짝사랑만 하고있던 아릿하던 어느날, 문득 내 나이 스물다섯이라 수연의 나이 스물넷이겠는데 그녀는 왜 여적 독수공방하고있을가? 라는 자문에 후닥닥 놀라버리고말았다.
    나는 고기를 낚기 위하여 지어 살얼음 낀 강에 들어서서 낚시가 걸리지 않도록 바닥의 돌들을 들어내고 풀줄기와 검불과 묵은 나무덩굴을 악쓰고 뽑아내고 언덕의 앉을 자리를 치고 미끼, 낚시찌, 동동이에 이르기까지를 열심히 노력하듯 수연이를 《낚을》 방법을 최대한으로 강구해야 했다.
    동년적 잠만 몰아오던 궂은비 내리는 낮에 수연이가 낚시대 두개를 들고 우리 집을 찾아왔던 일이 푸른 무늬 간 동동이처럼 떠올랐다. 나는 흥분을 했고 용단이 섰다.
    오후부터 날씨가 흐리기 시작하더니 저녁무렵을 잡아 갈꽃같은 비살이 부드럽게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박동하는 내 심장소리를 들으며 밖을 나섰다. 될수 있을가? 사랑의 성패감이 임습하면서 수연이를 국경선너머로 비상하는 백설의 고니로 우상시켜오고있었다. 그럴수록 나자신이 졸렬하게만 느껴지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조금후 나는 높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수연이네 앞마당을 들어서고있었다. 빨래줄에 이불안을 걷고있던 수연이와 정면으로 맞띄웠다. 수연이의 눈길이 내 손에 쥐여진 두대의 낚시대에 와 걸리며 놀라운 빛을 반짝이였다.
    《가자, 두만강으로 나가자. 이렇게 잔잔히 비가 계속되는 날엔 잉어랑 붕어랑 멸치랑 쏘가리랑 다 물린다더라. 옜다. 이건 네 낚시대, 요건 내 낚시대, 그리고 이건 고기미끼, 요건 지렁이…》
    동년적 수연이가 나에게 하던 말 그대로 옮겼다는걸 난 잊지 못하고있었다.
    우리는 강하구의 얕은 언덕에 앉아있었다. 먼 바다가 녀인의 부른 배에 띤 푸른색 비닐띠처럼 안겨오고있었다. 거기로 하류가 뛰여가고있다. 수면우로 동동이 둘이 나란히 떠있었고 물촉새 한쌍이 수양버들가지에 앉아 삑삑, 삑삑 하고 다정히 사랑을 주고있었다.
    《수연아, 나 죽고싶다.》
    찾고찾은 첫마디였다. 녀자의 두눈이 똥그래지더니 이내 까르르 웃어버린다. 난  결이 난 나머지
    《내가 죽으면 속 시원컸지? 너…》
    하고 버럭 고함까지 질렀다.
    《콱 죽어라! 이 두만강에 뛰여들어라. 고기밥이 되구말게스리.》
    그녀는 뾰로통해서 내쏘았다. 정말이지 뜻밖이였다. 내가 죽기를 원하는 수연이라니?! 억이 막혔다.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악만 받치다가 막 일어서려는데 
    《네가 죽으려면 나와 함께 죽자!》
    라는 뜻밖의 비감서린 음성이 나의 심장을 틀어쥐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할수 없었고 백치처럼 녀자의 얼굴을 들여다볼뿐이였다. 나의 검고 툭 튀여나온 관자놀이를 일별하면서 락심한 음성이 파고들었다.
    《나 너 이러는게 마음에 안들거든. 하긴 그래. 우린 <문화혁명>이 낳은 희생품이지. 모든 꿈을 잃었거든. 그렇다고 해종일 세월만 탓하면서 앉아 늙을수야 없잖아.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뭘 좀 하고프다고 생각되는 일땜에 노력해보고싶잖아?》
    《그래 하고픈 일 있지. 널 사랑하고픈 일…》
    어떻게 이런 말이 튀여나갔는지 몰랐다. 죄를 지은것처럼 목을 움츠러뜨리긴 했지만 그 시각 동년적의 수연이를 다락에 감춰두고 밤낮을 《경위》서던 일이며가 눈앞에 선해와서 일루의 희망이 보이기도 했다. 가슴이 설레였다. 수연이는 이윽토록 강물소리를 들으며 말이 없었다. 드디여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경신향정부에서 사업하는 총각의 청혼을 억지로 물리치고 아버지에게 뺨까지 맞았다는것, 엊그저께 훈춘현우전소에서 사업한다는 총각한테서 청혼이 들어왔는데 이제 나이때문에 더 미룰수 없다는 대목까지 들었을 때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며 현기증까지 일었다.
    《수연아, 날 살려다오. 네 나 버리고 가면 난 죽는다, 응? 수연아…》
    난 비루하게 나왔다. 눈물을 찔끔찔끔 짜면서 구걸했다.
    《네가 이렇게 나오니 나도 별수 없구나. 이렇게 하자꾸나. 마을소학교에 교원 한명 수요하는데 약 반달후 시험을 친다더라. 시험내용은 어문은 작문을 쓰고 수학은 초중 1학년교과서 내용까지를 범위로 한대. 그때 나도 치를건데 이번 기회에 네가 <장원>을 하면 내 네게 시집을 가마.》
    수연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표연히 가버렸다.
    나는 넋잃고 두만강만 바라보았다. 세상에 강이 많고많아도 두만강은 단 하나이다. 난 두만강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난 내 가슴에 십자가를 긋고 두만강에 기도했다.
    《주십시오. 이 못난 놈에게 그대를.》
    나는 이 기회가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도박》이란걸 명백히 알고있었다. 작문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수학은 소학부분의 분수응용문제부터 복습해야 했다. 눈앞이 캄캄해났지만 높은 언덕이나 강톱에서 저 바다로 묵묵히 흘러드는 하류의 번뜩임이나 뽀얀 물안개를 바라볼적마다 두주먹이 불끈 쥐여지군 했다. 나는 코피를 쏟았다. 소학교 선생님들을 찾았고 몇십리를 걸어 중학교재를 얻으러 다녔다.
    모여온 수험생들이 어떤 꼴이란걸 손금 보듯했지만 수연이만은 무서웠다. 결과는 뻔했다. 수연이가 1등이였다. 맥이 탁 풀렸다.
    나는 옹근 열흘이나 두문불출했다. 음식맛도 잃고 밤에도 자반뒤집기를 했다. 얼굴은 창백하고 온몸의 힘줄이 쪽 빠져버린듯 사지가 나른해났다. 절망의 변두리에서 방황하고있을 때 아닌 밤중에 홍두깨런듯 마을 소학교장이 우리 집으로 불쑥 들어섰다. 나는 그 어떤 직감이 머리를 쳐들면서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래일부터 학교에 출근하오. 1학년 학생들을 맡아 ㄱ, ㄴ, ㄷ, ㄹ부터 시작해 배워주오. 허허, 축하하오.》
    나는 울었다. 목 긴 황둥오리처럼 꺼억꺼억 울었다.
    《엄마가 죽었나, 울긴…》
    교장이 말려서야 교장의 손을 틀어잡고 울음을 그쳤다.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이 은공을…》
    기실 난 속으로는 《수연아, 이제야 어쩌겠니?…》 하며 쾌자를 부르고있었다.
    학교에 출근하던 날에야 나는 수연이가 그예 《과학농예사》가 되련다며 교원자리를 나에게 양보한 일을 알게 되였다. 너무나 미안했고 쑥스러웠다.
    한치마폭 달빛이 넘쳐나던 그날 밤, 그러니까 소학교원이 되던 이튿날이다. 그녀 생각이 간절하면서도 부끄러워 만날 엄두를 못내고 쩔쩔 매던 나에게로 수연이의 쪽지가 날아들었다. 너무나 뜻밖이였다.
    《저녁 낚시질 나가자. 그 낚시터.》
    나는 온몸을 전률했다.
    달빛아래 하류가 길게 드러누워있었다. 풀빛도 양류의 설렘도 없지만 하류는 수연이의 하신처럼 우유빛이런듯 번들거린다.
    《나 결정했어. 너한테로…》
    《……》
    나는 대답대신 길게 숨소리를 그었다.
    수연이는 나의 두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지친듯 잔디언덕에 스르르  누워버렸다. 나는 그녀를 탐욕스레 내려다보았다. 늘씬한 허리와 긴 다리가 요람처럼 느껴졌다. 드디여 나의 몸이 거칠게 기여올랐다. 그녀는 순순히 내맡겼다. 두눈가에 달이 뜨고 입가로 행복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리고 풍만한 가슴으로부터 난생처음 맡아보는 형언할길 없는 냄새가 피여오르고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처녀의 냄새일것이였다. 머리가 아찔하도록 유쾌하고 아릿한 흥분을 갖다주는 향기였다.
    《문화대혁명때 난 너의 집뒤 다락뒤주에서 한주일이나 숨어있었지. 무서웠지만 잘 먹던 일이… 그리구 무사했고… 난 벌써 그때부터 널 나의 랑군님으로 점찍어두었지 뭐야… 호호.》
    우리의 사랑은 열렬했지만 녀자측의 강렬한 반대를 받았다. 수연이는 종종 우리 집 뒤울 다락에서 잠을 잘 때가 있었다. 동년적에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속에 몸 감추었던 다락뒤주, 오늘은 아버지 매를 피하여 몸 감추어야 할 다락뒤주가 되다니… 털면 먼지밖에 없는 건달놈새끼때문에 우리 수연이가 망쳤다고 욕설을 퍼부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강턱의 얕은 언덕에 앉아 강물의 거침없는 흐름처럼 사랑을 나누었다.
    우리는 결혼을 위하여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었고 삑삑삑삑 하고 물촉새가 울었다. 외투를 펴고 알몸이 된 우리는 흥분의 극치에 다달아 모기도, 강바람도 모르고 거칠게 헐떡이고있었다. 이따금씩 간간히 기러기의 울음소리 같은것이 들려오고있었고 유치원애들의 박수소리 같은 소리가 중부리도요의 날개짓치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수연이에게 태기가 들어서기도 전에 전혀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수연이 아버지가 두만강에 걸린 그물 빼내러 들어섰다가 수중고혼이 돼버리고만것이다. 그물 한코 째지는게 아까와 깊은 물에 들어섰다니 결국 깍쟁이 심리가 《손톱눈》을 해친거였다. 우리의 약혼을 악쓰고 반대해나선 수연이 아버지가 《룡궁》으로 간것을 두고 나는 물론 수연이앞에선 무조건 비감에 싸여있었다.
    《가시아비를 잃었으니 결혼때 돼지는 뉘 잡겠소?》
    나의 말에 수연이는 더 서럽게 울었다.
    우리의 결혼날자는 동지달 초이레날로 정해졌다. 아버지가 누구보다 기뻐했다. 맨날 술이다. 그러다가 무서운 소식이 터졌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채 두만강얼음구멍에 빠져 수중고혼이 되였던것이다.
    《아버님을 잃었으니 결혼날에 북채잡고 술타령, 까투리타령은 뉘 불러요.》
    그 말에 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말았다.
    《울지 말아요. <흥부>와 <놀부>가 룡궁에서 만나 인간세상을 담론하며 즐거운 락을 누려갈거죠.》
    우리는 서로 어이없이 웃고말았다. 이게 바로 인생이고 연분이란건가.
    교장은 나를 《떨떨이선생》이라고 불렀다. 안해의 치마밑에서 설설 기며 산다는 뜻이였다. 나는 교장이 미웠다. 린색하길 그지없다. 나는 교수를 잘했지만 교장은 학기마다 《ㅏ, ㅑ, ㅓ, ㅕ》를 배워주라고 했다. 난 6학년을 배워주고싶었다. 후에 안해가 닭알 열알을 교장집에 《선물》하고서야 난 1학년담임을 벗어나게 되였다.
    안해는 나를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곧잘 핀잔준다. 일하기를 싫어하고 봉건통이란 뜻이다. 안해가 아무리 잔소리를 하고 지어 걸죽한 욕설을 퍼부을지라도 난 대꾸 한마디 없이 욕설을 들어만주거나 아니면 술쩍 피해버리군 한다. 나는 나의 이런 성격이야말로 군자답다고 자처하고있는터였다.
    두만강은 쉼없이 흘렀다. 그러나 예전의 강이 아니였다. 맑고 푸르던 강이 언제부턴가 혼탁해지기 시작한것이다. 조선 청진시에서 흘러든 화학성물질이나 중국 연변의 석현종이공장 같은데서 흘러든 오물들이 그거였다. 그토록 흔하던 민등뼈동물들은 구경하기가 어려웠고 고니같은 희귀한 새들은 볼수조차 없었다.
    안해는 나이 사십대에 접어들면서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고 얼굴에 그물같은 잔주름이 널렸다. 이른아침에 영근 풀섶이슬을 모르고 풀에 손대기 싫었지만 건들건들 휘파람으로 일터에서 돌아오는 안해를 맞고 저녁 설겆이도 해주고 《밉다가도 고와져요》라는 평을 들어보는 나다. 터놓고 말해서 그래야 안해의 이불속을 기여들수가 있었던것이다. 그래, 그 둥글고 부드럽고 긴 하반신의 생존이 나의 소유라는게 얼마나 신비스럽고 다행스런 일인지 나는 안다.
    《영구한 사랑은 하반신에 있나보우.》
    《무슨 뚱단지같은 철학이야요?》
    《강하류가 깊고 넓어야 흐름폭이 거창할게 아니요. 하류가 좁고 옅어 자갈이나 나무등걸 같은것이 보인다면…》
    《강하류를 녀자의 허벅지에 비기다니요?》
    《수연의 얼굴은 변했지만 하반신이야 더욱 튼튼해졌고 빠졌질 않겠소. 난 수연의 하반신을 사랑하오.》
    나는 자신의 라태함을 잘 알고있었지만 고칠수 없는 놈일거라는걸 알고있었다. 그게 나를 괴롭혔다. 나는 왜 이런 사내로 태여났을가. 부지런한 인간과 라태한 놈을 인간세상에 다르게 만들어내놓은것도 조물주의 탓이겠다. 내가 알바 뭐야. 개가 건너다녀도 도움이 된다는 5월의 논밭이나 젖먹이애가 울음소릴 내도 가을걷이에 흥이 난다는 계절에 발길 하나 손끝 하나 내밀줄 모르고 책이나 붙잡고 방구석에 나뒹굴고 코고는 멀쩡한 이 남편을 두고 수연이가 얼마나 골이 났으랴. 말하라치면 직사포였고 끈질기고 내밀성 드센 녀자였지만 왜소하고 선비냄새가 다분한 남편을 두고 언제부턴가 원망 한번 없이 모든것을 그러려니 하고 여기고 버텨보는 그녀였던것이다.
    남들은 우릴 거꾸로라고 말했다. 남자란것이 모든게 다 약한데 녀자가 욕심이 세고 괄괄한 아낙이란다.
    그렇다, 나라는 놈은 왜 이 꼴이지? 놀고 또 놀아도, 먹고 또 먹어도 달랑깨비마냥 비쩍 마르기만하고 안해는 일하고 또 일하고 찬물만 꿀떡꿀떡 들이켜고 된장에 생미나리 같은걸 뚝뚝 찍어먹어도 몸뚱이만 쇠같다.
    《방귀 뀐 놈이 구리다 한다》는 말은 대통령의 연설을 초과한다. 부엌데기처럼 해가지고 다닌다, 집안이 돼지굴같다, 국이 짜다, 못사는거 다 네년 탓이다… 갈수록 학생수가 줄어들어 학교가 망가진다는 말이 나돌아서부터는 더 그랬다. 교원직에 있다고 농포안해를 은근히 얕잡아보아오던 긴 나날들이였건만 안해는 그 모든것을 받아안았으며 그보다는 남편이 지식인이라고 뭇아낙네들앞에 자랑하고 자호감까지 가지군 했었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드는 돈은 아름찼다. 소학교때는 모르겠던데 중학교에 자식 둘을 보내고나니 학비가 엄청났다. 뭐 들을라니 고중에 가면 더 험하고 대학에 가면… 류학 보내자면…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하면 눈앞이 다 캄캄해난다.
    《소처럼 머리만 틀어박고 끙끙 일만하고 머리를 못쓰니까 이 집이 서발막대 휘둘러 걸릴게 없잖아…》
    《집안팎일 손톱 하나 까딱 안하구있다가 그딴 소리 지를 면목 서나보죠…》
    《자식들이 내 머릴 닮아서 총명한것만도 대득이야.》
    《……》
    가난은 우리 부부사이에 간단없는 다툼질을 가져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남들이 왁살스럽다고 그러는 안해, 수연이쪽에서는 늘 지고만다. 그리고는 집안사람들 몰래 가만히 눈물을 흘리군 하던, 밤 깊도록 무언가 깊은 고민에 자반뒤집기를 하면서 두만강물소리에 귀기울이던 안해였다.
    우리 집에서 안해가 더욱 《죽일 년》이 된건 그 이듬해 두만강하류가 국경선 삼국의 언덕을 뭉청뭉청 물고뜯던, 강우량만 잔뜩 상승하던 계절이다. 원래 병약하던 로모가 자리에 드러누웠다. 페결핵이였다. 향병원의 의사는 두달을 못넘긴다고 《사형선고》를 내렸다. 가끔씩 토혈하고 파랗게 질긴 얼굴을 들어 이 아들을 올려다볼적마다 그 눈망울에 말 못할 숙원과 애달픔이 차있는것을 력력히 읽어낼수가 있었다. 가난하게 사는 자손들을 두고 때이르게 천국에 갈수 없노라는, 이 아들의 살림이 펴이고 손주들이 잘되는것을 보고 가야겠다는 그런 간절함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안해는 돼지, 개, 게사니, 닭까지 죄다 팔아서 돈을 만들었다. 겨우 로모의 생명을 칠성판에서 구해냈으나 돈은 약 사고 하는 치료비에 밑빠진 항아리였다. 그 무렵, 나에게도 액운은 떨어지고야말았다. 마을 소학교가 학생고갈로 인해 부도난것이였다. 나의 교원생활이 한창 꽃같이 피여나고있을 계절에 때이르게 찬서리가 내릴줄은 뜻밖이였다.
    《어쩌겠소. 선생에 대해서 우에선 다른 표시가 없더구만. 농사를 짓는것두 살아가는 길 아니겠소? 자, 이 술로 서로의 갈길을 축복합시다…》
    교장을 따라 향중심소학교로 《벼슬》 가는 교원들과 하강(下崗)된 우리 몇은 웃음과 울음속에 폭음을 했다. 아, 이 일을 어머니가 안다면, 안해가 안다면, 자식들이 안다면… 배신감과 억울함 그리고 자비감으로 몸을 떨었다… 밤은 악마의 날개를 한껏 펼쳤고 그아래로 먹빛의 강이 무섭게 꿈틀거린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목놓아 흐느꼈다. 그때… 아, 나의 여윈 어깨를 잡아주는 힘이 느껴졌다. 안해였다. 우리는 삼각주의 얕은 언덕에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안해는 삶의 조폭함에 한껏 짓눌려버린 남편앞에 오래동안 계획했던것이라기보다는 무정한 현실에 대처해 고민하고 시도해온 앞날에 대한 도전을 솔직히 토의하고 정리하고있었다. 그러는 수연이앞에 언제나 자신만은 철학적이고 인위적이며 과학적이라던 나의 고전은 어리석음에 불과한것이였다고, 현실에 대처할줄 아는 삶적분석과 삶에 대처한 행위자가 곧 수연이라는 점에 놀라고 머리가 숙여진것이다. 그는 자신의 말에 흥분하고있었고 나는 감동하고있었다… 안해는 두만강을 이야기하고있었다. 주요하게 하류에 대해서였다. 두만강하류는 곧바로 동해와 합수되여있지만도 좀 섞였을지라도 짠물보다는 민물이며 거슬러올라갈수록 완연한 민물이라는것, 이때문에 수많은 바다고기들이 알쓸 계절을 놓지지 않고 찾아들어 후대를 번식하는 요람이 되는것이다. 송어를 례들어보자. 송어알은 불색을 띤것도 있고 핑크색을 띤것도 있으며 날이 감에 따라 포도색을 띠기까지 하는것이다. 아름다운 색반이 아니고 탐스럽고 향기로우며 알갱이 정도가 큼직하여 다른 물고기들이나 지어 민등뼈동물들까지 악쓰고 먹으려드는 식종에 속하는건 말할것도 없다. 송어는 후대의 번식률을 높이기 위해 매년 5월에 접어들면 기후와 서식환경이 맞춤한 두만강하류를 거슬러오르는것이라고 한다. 그런 후대번식을 위해서라면 송어들은 수천리물속을 밤낮 가르는데 민물은 하류를 찾아 알을 쓸고 원만한 려행을 다한 다음이면 날개가 다슬어 끊어지고 찢어지고 몸뚱이가 군데군데 살이 떨어지고 피멍이 들며 죽기까지 하는 정도에 이른다고 한다. 거기다 비하면 인간은 너무나 단순하고 라태하다. 할아버지가 부치던 밭을 아버지가 부치고 그담엔 그 아들이 부치고… 이런걸 《세세대대》라고 부른다. 《세세대대》는 조상이 건립한 마을에서 살아왔고 그들이 짓고 살던 집에서 살며 그들이 씻고 닦으며 쓰던 그릇들을 사용한다. 《세세대대》는 조상들이 쓰던 땅을 쓰고 강, 호수… 그렇다. 그 터를 쓰고 산다. 그러니 삶의 권안에서 개미 채바퀴 돌듯하여 그 방식이 너무 단조롭고 딱딱하며 신맛이 날 정도가 아닐가. 계절따라 자유자래로 사는, 짠물과 민물의 리용을 활성화하는 송어를 그래 찬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러고 볼 때 인간들도 례외가 아니다. 고향마을을 떠나 산에 올라 숯을 굽고 고사리를 꺾거나 현소재지나 도시로 들어가 콩나물장사를 하여 돈을 벌수도 있다. 돈만 벌수 있다면, 깨끗한 돈만 벌수 있다면 그 어데든 갈수가 있는것이다. 이대로 앉아서 땅에 모든걸 맡기고 산다면 미래와 경직된 인간이요, 락엽같은 생일것이다. 그래, 가야지. 랠 아침 뻐스 타고 훈춘시로 들어가겠어요. 번영하는 병경도시 훈춘시에서 세방 잡고 서시장에서 콩나물이나 남새를 넘겨받아 장사할거야요. 그렇게 장사폼이 잡히면 매대 하나 사서 통이 크게 벌어볼거야요… 별밭이 펼쳐졌다. 금싸락들이 무수히 떨어져서 강물이 빛났다.
    안해가 떠나던 날 아침, 나는 뻐스에 오르는 안해의 뒤모습을 묵묵히 일별했다.
    《당신!》
    안해의 갈린 목소리가 돌아서는 나를 불러세웠다. 눈확이 푹 꺼져버리고 관골이 튀여나온 안해의 얼굴이 처참해보였다. 울고있었다. 눈물이 찰랑 흘러내리고있었다. 손을 젓고 돌아선다. 여윈 얼굴이여도 실팍지고 근육진 하반신이 나의 애처로와진 마음을 다독여오고있다. 
    안해가 가고난 한주일은 밤마다 악마의 밤이 되였고 날마다 옥중의 날이였다. 너무나 그립고 그리웠다. 늘씬한 안해의 허리가 꿈에 황둥오리처럼 날아오고 날아갔다. 《쿨룩쿨룩》하는 로모의 기침소리가 찬 집안은 관속처럼 느껴지기만했다. 꼬빡 두주일만에 나는 훈춘행뻐스에 몸을 실었다.
    서시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팥죽처럼 끓고있었다. 그속에서 안해를 찾는다는것은 전혀 가망성이 없어보였다. 남새를 파는 곳을 찾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거렸지만 안해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배가 고팠지만 먹고싶은 생각이란 조금도 없었다. 안해를 못찾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오후 한시 반 뻐스를 잡아타야 한다. 차비밖에 없다. 머리를 떨구고 락망에 싸여있을 무렵, 얼핏 시야로 한 모습이 날아들었다. 안해였다! 하마트면 소리까지 지를번했다. 구석쪽으로 안해가 벌려놓은, 얼핏 보기에도 싱싱한 남새주위로 신사타입의 남정 몇지 값을 흥정하고있었다. 속이 세게 활랑대고있었고 찡, 눈굽이 젖어들었다. 나도 몰랐다. 왜 그런지를. 어둑새벽에 남새를 넘겨받아 밥술도 온전히 뜰 사이없이 어둠녘까지 줄창 사구려에 혼신을 달굴 안해, 그 안해를 너무 고생시킨다는, 그 안해를 도시의 구석에다 외롭게 버렸다는, 그 안해를 어중이떠중이 남정들의 웃음속에 야유와 조소속에 빠뜨리고있다는 죄책감으로 핑글 더운 눈물이 고이는것이였다. 그러나 그 동정속에 깊이 빠질수록 사랑하고픈 안해를, 그곁에 가닿아 《여보!》 라는 말 한마디 건네볼 용단이 서질 않았다.
    《너, 너 석룡이 사구려를 부르며 살어, 이 못난이…》
    이런 무형의 야유가 쇠몽치로 되여 뒤통수를 후려치는것이였다. 해질녘까지 나는 안해의 뒤모습에 젖어있었다.
    그래도 어둠이 좋았다. 남들이 알게 뭐야. 안해를 누님인양 어깨를 붙이고 거리를 거닐었다. 얼마나 다정했는지 웃고 떠들기도 했고 뻑 하고 안해 볼에다 입맞춤까지 했다. 거리는 천당같았다. 산데리야색등이 교묘한 조소를 날리고 수은등과 섬광등들이 금전의 위력을 턱대고 뻐기고 색스폰소리에 녀가수의 흐느러진 노래가락에 주정뱅이들과 신사들이 저마끔 고아대고있었다.
    시원한 맥주 한고뿌에 고소한 양고기뀀 한대도 참고 군침만 넘겼어도 즐거웠고 행복했다.
    밤이 깊어 우리는 우리의 《굴》로 돌아왔다. 8평방메터짜리 세집이였다. 창호지같이 누르끼한 전등불아래 우리는 널통같은 집안구들에 이불 한짝 편채 피곤한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우리는 이내 서로 흥분을 하기 시작했고 사랑의 도가니에 빠져버리기 시작했다. 수연이의 하반신은 여전했다. 매끌했고 보드라왔으며 높았고 요람인듯 느껴져 정신을 아뜩하니 죽여주고있었다.
    《두만강은 여전하죠?》
    그녀의 그윽한 눈속에 유유히 하류가 흐르고있었다.
    《그렇소. 맑고 푸르오.》
    《강의 최고리상이 뭔지 아세요?》
    《뭔데?》
    《바다로 흘러드는거죠. 바다는 행복한 세계, 격정의 세계로 강은 이를 위해 쉼없이 흘러요. 바위에 부딪치고 소용돌이에 휘말려들면서 얼고 폭우에 견디면서도 조금의 탓이나 비관이 없어요. 강을 이룬 수천수만개의 물방울들이 다 그래요. 어느 하나의 물방울도 쉬려하거나 어느 물방울의 덕을 입으려 하지 않지요. 이게 바로 강이예요. 두만강의 맑고 푸르름이 여기에 있고 폭넓은 하류의 유순하면서도 드팀이 없는 흐름이 여기에 있잖을가요. 우리 인간들을 두만강에 비길 때 우리는 얼마나 리기주의적이고 파렴치하기까지 하며 또 퇴페적인가요? 더럽고 춥고 피땀을 흘리는 일은 하려 하지 않으며 영예롭고 호의호식하는 인간이 되려 하는 인간, 남을 시키고 리용하여 자기 배를 불리는 사람, 남의 등을 두드려 간을 내여먹자고 드는 인간들이 욱실대는가 하면 자포자기하고 비관실망에 젖어 어떤 일에 어째보지두 못하고 주저앉아 무골충이 돼버리는 인간들이 얼마나 가소로운가요… 그래요, 난 언제나 일에 지치거나 자존심이 상하던가 비관에 젖어들 때면 자연 두만강을 생각하게 돼요. 두만강을 생각하노라면 사지에 뻐근히 힘이 생겨나고 심장이 뛰고 정신이 분발되군 하지요…》
    나는 안해의 근육진 몸뚱이우에 업혀있었지만 어째보지도 못하고 사지가 풀려있었다. 참 멋적었고 부끄러웠다. 한숨만 푸푸 토하다가 김빠진 공처럼 굴러내렸다.
    집에 돌아와서도 나는 긴 나날을 두고 고민하지 않을수 없었다. 대체 난 어떤 인간형에 속하는걸가? 어찌 보면 안해가 말한, 그 듣기만해도 지긋지긋해나는 부패한 인간형에 속하는 같기도 했다. 어느날엔가 드디여 난 그 어떤 이름할수 없는 공포감속에 떨기 시작을 했다. 도저히 짐작키 어려웠고 형언할길 바이없었다. 무시무시한 정신이상증세가 틀림없었다. 두만강하류가 급격히 붓는다. 온통 흙탕물이다. 번개가 장검을 휘두르고 우뢰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가며 창살같은 비를 퍼붓는다. 사나운 파도가 시작된다. 내가 모는 고기배가 뒤번져진다. 《손톱눈》이 내 배꼽을 뽑으며 웃어제낀다. 먹빛 물결속이 깊이 잦아든다… 그렇게 헛소리를 내지르면서 한주일을 혼수상태에 처박혔다가 깨여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여버렸다. 그래, 수치스러울게 뭐란 말인가. 어떤 놈은 인간이고 어떤 놈은 쌍놈이란 말인가. 황제는 황제대로의 한숨이 있고 백성은 백성나름의 홀가분이 있는거다. 관직을 가진 놈들은 그 놈대로의 싫은 짓과 질투와 시기의 긴장한 삶이 있는거고 땅파먹고 사는 놈은 역시 잘살자고 버둑질대는 그런 삶이 아닐가. 함께 인간세상에 태여났다는 점이 평화로운 감득일 때 살기 위해 서로 다른 힘을 써감이 뉘가 뉘를 비웃을 자격이 있겠는가. 그런 야유적배심을 가진자야말로 비렬하고 퇴페적인간이겠다…
    인간세상이 어둑새벽처럼 안겨온다. 안해가 나에게 낳아드린 새 인간세상이였다. 새벽이니만큼 조금 흐린 하류처럼 투명하진 못해도 어떻게 어디로 해서 노저어가야 하는지를 가려볼수가 있는ㄱ서이였다. 그렇다. 나는 돼지를 길렀고 닭, 오리, 게사니를 기르게 되였다. 부끄러울게 뭔가. 내 삶을 내가 사는데. 량반틀을 차려 살다간 로모도 굶겨죽이고 아이들 공부도 못시키고말텐데. 오, 안해 홀로 지쳐죽이겠다… 나는 두무남짓한 수전도 다루었다. 정작 시작해보니 못할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식들이 맘놓고 공부에 접어드는게 좋았다. 로모도 쿨룩쿨룩 기분이 난다 그러신다.
    그해 겨울은 주먹만큼한 눈이 터져 온통 푹신한 흰세계속이였다. 내가 지은 량곡을 헛간에 쌓아놓고 기지개를 켜며 겨울을 보냈다. 개짖는 소리, 돼지 우는 소리, 오리 깃터는 소리, 게사니 목빼는 소리, 닭이 홰치는 소리가 모두 내것이였다. 안해에게도 치하의 편지를 몇번이나 받았다. 얼마나 멋진가. 이런 호방한 삶의 풍격을 안해가 가르쳐준것이란걸 차츰 잊으며 자아만족에 혼신을 앗길제 울긋불긋 가을을 타고 안해가 문뜩 나타났다. 영 돌아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백오십리밖의 훈춘시로 가 옹근 두해 반을 고생하다 돌아온 셈이였다. 그새 그립고 그리워 달포사이를 누비고 다니고싶었던 내가 아니던가. 왔다니 무한히 즐거웠지만 한편 속이 비여오기도 했다. 병석에서 항시 칠성판을 건너다보는 로모와 다 큰 아이의 공부 뒤바라지를 하려면 얼마나 막연한 금액이 수요될지 모른다.
    《영 내려오고말았지요.》 라는 뒤에는 해석도 타산도 더 없었다. 안해는 굳어져있을뿐이였다. 그토록 명랑하고 쇠소리나던 그제날의 수연이가 아니였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연지곤지 찍고서
    렐 모레 온다나
    어화둥둥 내 사랑

    레시바를 귀에 꽂고 앉아서 팝송에 맞춰 발장단을 치던 내 만족했던 생활이 끝나가고있음에 나는 차츰 처참해지고있는것이였다. 나는 내가 끝없이 끝없이 추락하고있다는 자비감에 몸을 떨었다. 밤이 그 점을 증명해주고있었다. 하류의 물소리 들으며 향기 맡던 밤, 마주보며 웃고 얘기하던 밤, 키스하며 숨막히던 밤, 풀밭에 뒹굴던 밤, 신혼의 야릇하던 밤, 아기자기 사랑의 밤들이 그 얼마나 황홀했던가.  나에게 그런 밤들이 다시 있을가. 수연이의 얼굴에서 그걸 예고받고있었다.
    하나 또 하나의 밤속에 나는 살아있었으나 죽어있었다. 내 몸에 달려있는것들이 시퍼렇게 멍이 든채 역할들을 발휘 못하고있다. 내 욕망은 곁에 누운 안해의 비파같은 한숨소리에 의해 꺼지고 내 에네르기의 발동기들도 안해의 시퍼런 불을 머금은 눈살에 의해 죽어버린다. 《손톱눈》, 수연이의 아버지가 아이고 아이고 《배고프다》 울며 날아오고 《주정뱅이》 나의 아버지가 미친듯 웃어제끼면서 긴 날개로 시커멓게 날아간다.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밤들이였다.
    안해가, 옹근 한주일동안이나 수인같던 안해가 박씨같이 하얀 이를 드러내여 활짝 웃었다. 그것이야말로 그 어떤 성공에로 향한 확신에 찬 발로였다.
    안해는 나뿐만아니라 키 넘는 아들딸까지 데리고 산책나섰다.
    저녁노을에 온 삼각지가 귤빛으로 물들고 평화를 포인트하며 해오라기가 노을빛을 마시고 날아옌다. 해오라기뿐이 아닌 꼬마물떼새, 흰목물떼새, 중부리도요, 민물도요, 원앙, 청둥오리, 황오리, 왜가리, 고니, 기러기, 농병아리 등 수십종의 철새와 나그네새들이 먹이를 쫓아 하류의 삼각지를 점령하고있었다.
    우리 네식구는 하류가 유리처럼 내려다보이는 삼각지의 낮은 언덕에 가지런히 앉았다.
    건조한 9월의 저녁바람이 대기를 꽉 채워 불었다. 강가의 작은 벌레나 물고기나 조류도 살이 오르고 겨울을 날 생물들은 벌써부터 겨우살이준비에 착수했다. 식물은 뿌리를 더욱 견고하게 대지에 박고, 먹이를 쫓는 동물들의 싸댐도 한층 분주했다. 각양각색의 목청으로 새떼들의 우짖는 소리와 날개치는 소리가 강변 갈대밭을  덮는다. 저 새들의 힘찬 비상이 이제 여기 두만강하류 삼각지로부터 다시 망망한 바다로 이어지리란걸 우리는 잘 알고있었다.
    인간들의 삶의 방식도 저 새처럼 부단히 이동이 되느라면 더 경험이 넓어지고 깊어길것이며 생활도 보다 윤택해질것이라고 안해도 말하고있었다… 아니, 새들이 우리에게 말해오고있는거였다. 우리 철새들은 여름에 그 한대의 추운 지방에서 번식하여 가을이면 지구의 반을 가로지르는 려행길에 오른다. 떠날 때를 안다. 얇은 해살아래 파르스름하게 살아있던 이끼류와 작은 떨기나무가 재빛으로 시들고 긴밤이 저 북방의 찬바람을 몰아올 때쯤이면 려정의 차비를 차린다. 여름동안 부쩍 큰 새끼들도 날개를 손질하며 천봉만학을 아찔히 굽어보며 헤가를 하늘길을 필연적 려행길로 아는것이다.
    처음 떠날 때 우리는 무리를 이룬다. 그러나 창공으로 가로질러 쉬지 않고 날 때는 다만 혼자 날뿐이다. 마라손선수가 42.195키로를 완주할 때 오직 자기자신의 극기와의 싸움이라고 말했듯 작은 심장으로 숨가빠하며 열심히 열심히 혼자 날아간다. 그렇다고 방향이나 길을 잃는 법은 없다. 혼자 날지만 결코 혼자가 아니다. 5백만년전 신생대부터 새들은 그런 고통의 긴 려행을 터득하였다.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수 없는 바다와 하늘이 맞물려있는 무공천지에 길을 열어 봄, 가을 두차례는 대이동으로 장식해온것이다. 오직 생활환경에 적응키 위해서라는 한마디로 치부해버린다면 인간도 거기에서 례외일수는 없다. 오히려 인간은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라태하고 간사하고 비렬하고 봉건적이여서 생활권안에서 수인이 되고 생활이 노예가 되고있지 않는가…
    안해는 무척 격동하고있었고 가끔 목소리가 떨리기까지 하고있었다. 아이들은 서정시같은 구변과 의미심장한 말뜻에 깊이 눌려 사색의 하류를 헤맸고 나도 그 말속에 숨은 오묘함때문에 마음을 바쟁이고있었다.
    그날 밤을 나는 잊을수가 없다. 그날 밤이 있었기에 나는 오늘까지 살아온 지난날이 누구보다 행복했음을 알고있으며 또 기다림으로 푸르게 창연함을 믿고있는것이리라.
    그날 저녁, 안해 수연이는 아이들을 먼저 집으로 보내고나서 나와 단둘이서 강변 갈숲을 찾았다. 정말이지 그러리라고는 생각밖이였다. 주저심 많고 자비심 많은데다 몸집이 왜소한 나를 수연이가 유치원아이를 안듯 번쩍 들어 안아버릴줄이야. 삽시에 온몸이 땅땅 굳어지는 감에 허둥대면서 나는 내가 하류의 수심을 비상하는 한마리의 송어가 되였음을 알았다. 그녀에 의해 우리는 서로 실 한오리 걸치지 않은 라체가 되였더. 그녀는 강이 되여 나를 이리저리 뒤번지며 히스테리적으로 즐겼다. 해덩이처럼 힘껏 발기된 나의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얼마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그래, 난 남자, 나의 남자는 수연이가 준것이야!… 하류는 길게 드러누웠고 달빛에 시허옇게 안겨들었다. 밤깊도록 농병아리의 울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안해를 기다리는 그 한달을 1년맞잡이로 보냈다. 대련시로 나가 늦어서 한달만에는 꼭 소식을 보내리라던것이 반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묘연했다. 반년하고 열흘이 더 지난 어느날, 문득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다. 이게 뭔가? 한국 서울에서 오다니. 꿈만 같았다. 눈물로 아롱진 글구들이 하늘끝 기러기떼처럼 날아든다.

    당신, 그간 가내일동이 무고한지요?
    이제야 소식을 전하게 된걸 용서하세요.
    난 지금 서울시의 한 골목 음식점에서 약간의 휴식시간을 쪼개여 이 글을 쓰고있어요.
    …당신은 너무 뜻밖일거야요. 그러나 모든걸 량해하며 너그럽게 받아주시길… 확실히 생명을 내건 모험이였지요. 한해 반을 훈춘올라가 번 부스럭돈을 전부 밀어넣고 대련에서 야밤에 밀항배에 올랐던거야요. 악취풍기는 선창밑 까막나라속에 갇혀 열물까지 다 토하며 옹근 사흘낮밤을 모대겼을 때는 이 내 육실한 몸이 락엽처럼 엷어진듯했어요… 어느 누군가는 서리찬 비수에 배를 푹 박히고 선지피 콸콸 흘리며 바다에 처박혔다던데, 또 언젠가는 밀항배가 파도에 부서져 60여명 밀항자들이 몽땅 룡궁 갔다던데. 또 그들은 옹근 나흘밤을 고생끝에 한국땅에 가대였는데 《만세》를 부르던 그 찰나에 철컥철컥 하고 수쇄가 채워졌다던데… 나는 아무 탈 없이 하느님이 보호해주셔서 밀항에 성공한거예요.  이 수연이가 배에서 다 죽을것만 같았던 둥둥 뜨는 몸이였지만 한국땅에 한발을 디디고 섰을 때는 사경에서 헤매던 딸이 어머니 품에 안긴듯 울음이 터졌고 다음엔 기쁨에 못이겨 북받치는 힘을 누를길 없었지요… 한국에 들어서니 모든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어요. 일자리가 나서주질 않았고 그나마 어쩌다 맡은 일거리도 고용주가 부도를 맞는 바람에 일값마저 치러주지 않고 훌쩍 사라져버리다보니 한달간은 거리이 개죽 같은걸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였댔어요. 그러다가 요행 구명은인을 만난거예요. 그 언니의 소개로 지금의 《부두어탕집》에서 멸치구이일을 하게 되였는데 고용주가 신용을 지키는 사람이거든요… 첫월급을 받았어요. 중국돈으로 7천 5백원이야요… 막 울었어요. 뼈빠지게 몇해씩이나 버는 돈을 단 한달만에 벌다니요.
    한국에 와서 난 아버지 《손톱눈》을 더욱 새롭게 알게 되였어요.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씀씀이가 계획없이 헤프고보면 보뚝 터뜨린 물이라고 그래요. 아버지가 생전에 혼자의 힘으로 벌어서 어떻게 그 많은 우리 집 식솔들을 먹여살리수 있었겠는가를 알수 있어요. 술, 담배, 도박을 멀리했던, 일밖에 몰랐던 아버지께 절 드리고픈 마음이예요.
    중국에 사는 조선사람들은 모국 사람들의 두가지 삶의 방식만은 꼭 배워야 한다고 해요. 시간을 다투어 열심히 뛰며 일하는것과 번 돈을 꼭 쓸데에 쓰되 그 씀씀이마저 《깍쟁이》여야 해요…

    고동색으로 침묵하고있는 언덕에서 나는 움쭉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안해에게 써보낸 편지의 내용을 다시한번 수개해본다.

    여보, 나 이제 더는 예전의 그런 린색하고 야비한 바보로 살아갈수 없구만. 《남자》, 《인테리》라는 새똥의 작용보다 못한 허영심으로 안해의 등만 처먹고 살아온 인생이 부끄럽구만.
    그러나 이건 어느 모로 보나 수연이앞에서 하는 주제넘는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구만. 하긴 그렇다고 부득불 승인하지 않을수가 없구려.
    수연이는 나의 하류요. 하류의 물이 뻗으면 상중류의 수원이 충족해져 수천헥타르에 달하는 옥토에 생명수가 흘러드는게 아니겠소. 하류가 엄청 수통이라면 상류가 고갈이 되고 하류가 꽉 막히면 홍수가 지는걸 뉘 모르겠소. 그러니 내내 유유히 뻗어만 주는 수연이가 우리 생활에 기쁨과 희망을 갖다주는게 아니겠소.
    너무 오랜 시간을 지체했소. 맑고 푸른 하류의 묵묵한 수고를 그저 지켜보고만 지내왔으니. 아니 《응당》이요, 《천연적》이요에 붙여왔으니 말이요. 말하자면 그대를 보호하고 작업률을 덜어주도록 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왜 진작 못했던가를 뼈저리게 후회하게 되는구만.
    하류여, 내 사랑하는 두만강하류여, 그대는 아름답소. 그대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고상한 지조까지 지녔으며 내 그대 인격미와 체격미에 더욱 혹할것 아니겠소. 그대가 내내 건강한 미를 갖도록 그대 언덕에 풀을 심고 나무를 심고 화초를 심어 얼기설기 하얀 뿌리들이 물의 살을 거뿐히 하리오…
    그렇소. 이젠 돌아올 때가 된것 같소. 《내가 돌아가면 언젠가 내가 번 돈이 거덜이 날게 아니겠어요…》 이런 말 마우. 수연이가 더는 지치지 않도록 내가 나섰단 말이우. 푸르디푸른 두만강하류에 《그물양어장》을 앉히기로 향정부와 계약을 맺은거요. 물론 수연이가 벌어보낸 돈이 은을 낸거지… 애들은 시중학교에 보내고 나와 로모가 강변에 삼간집 짓고 오리, 닭 치고 팔뚝같은 물고기들을 기르며 하류에서 수연이를 기다리겠단 말이요…

    기지개를 켠다. 시야로 넘실대는 황홀경이 날아든다. 나는 뉘연한 강하류의 턱과 변을 따라 갖가지 나무와 풀과 화초의 뿌리로 하얗게 하얗게 엉키고있다…
 

(연변문학 2002년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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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김명화
날자:2010-04-08 02:17:32
삶이 힘들어서 떠난것이지만 한국바람이 많은가족을 견우직녀보다 못하게 만드네요! 견우직녀는 일년에 한번쯤은 만나는데... 슬퍼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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